해파랑길 28코스

 

여행일 : ‘19. 10. 5()

소재지 : 경북 울진군 북면과 강원 삼척군 원덕읍 일원

여행코스 : 부구삼거리(6.1km)도화동산(0.8km)갈령재(수로부인길 : 3.8km)호산버스터미널(소요시간 : 10.7, 3시간)

 

함께한 사람들 : 청마산악회


특징 : 해파랑길 50개 코스 가운데 비교적 짧은 구간이라 할 수 있다. 거기다 코스의 대부분이 바닷가가 아닌 내륙을 지난다는 특징도 있다. 나곡리에서 갈령재까지는 옛 7번 국도, 그리고 강원도와 경상북도의 경계인 갈령재부터는 산길을 탄다. 때문에 출발지인 부구리 근처의 바닷가를 제외하면 제대로 된 사진 한 장 얻지 못할 정도로 구간 전체가 밋밋하다. 성에 차지 않는 풍경일지라도 카메라의 셔터를 누르는데 주저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이다. 그런 때문인지 일행 중에는 코스에 변화를 준 사람들도 있었다. 갈령재 조금 못미처에서 고포마을로 내려갔다가 해안도로를 타고 호산까지 올라오는 방법이다. 이 경우 괜찮은 바닷가 풍경들을 옆구리에 끼고 걸을 수 있다니 참조한다.


 

들머리는 호산버스터미널(울진군 북면 부구리 149-9)

동해(속초-삼척)고속도로 근덕 IC’에서 내려와 7번 국도를 타고 울진·영덕 방면으로 내려오면 덕구교차로가 나온다. 국도에서 빠져나와 천변도로를 타면 2분도 되지 않아 부구삼거리가 나타난다. ‘해랑길 28코스의 출발지이다. 해파랑길 안내도와 스탬프보관함은 동북쪽 코너에 설치되어 있다. 참고로 부구리(富邱里)의 원래 이름은 영구리(靈龜里)였다. 마을에 거북 모양의 신령스런 바위가 있다는데서 유래했단다. 1914년 토지를 측량할 때 일본인 측량 기사가 영구의 한자 표기가 어렵다 하여 부구천(富邱川) 건너 염전리(鹽田里)의 염()자와 구()를 쓰기 쉬운 구()자로 바꾸어 염구리(鹽邱里)가 되었고, 행정구역 개편 때 흥부동(興富洞)의 부()자와 염구동의 구()자를 따서 부구리(富邱里)가 되었다. 이곳 부구리는 예로부터 '흥부장'으로도 유명했다. 울진과 봉화를 잇는 '십이령 보부상길'의 출발점이자 울진장·죽변장과 함께 해산물의 집산지이기도 했다. 보부상들이 이곳을 놓쳤을 리가 없다. 그들은 이곳에서 사들인 해산물을 등에 지고 태백산맥을 넘어 내륙에 가져다 팔았고, 돌아올 때는 내륙의 농산물과 공산품들을 한 짐 가득 지고서 돌아왔단다.





출발지에 내리면 삼거리라는 명칭과는 달리 길이 네 갈래로 나뉘는 것을 눈치 챌 수 있다. 트레킹은 동쪽 방향, 그러니까 부구천의 천변도로를 따라 바닷가로 향하면서 시작된다. 걷는 도중 오른편으로 원자력발전소가 보인다면 제대로 들어선 셈이다.



부구천의 하구, 그러니까 바다와 맞닿은 곳에는 방파제를 쌓아올렸다. 이곳까지 파도가 들이친다는 증거인데 높다란 방파제에는 예쁜 풍경화를 그려 넣었다. 포토죤으로 이용해도 그만이겠지만 그만두기로 한다. 거센 비바람 때문에 우산 펴기도 힘이 드는데 풍경을 즐길만한 여유가 어디 있겠는가.



마을을 벗어나자 바닷가가 나타난다. 여행자의 사진첩 속에 들어앉기에 조금도 부족하지 않는 아름다운 해안이다. 거센 파도에 맨몸으로 저항하고 있는 기암괴석들이 한 폭의 풍경화로 승화되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아주 잘 그린 그림이다.




! 이곳에서는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데 주저하지 말자. 잠시 후 해안을 떠나면서 부터는 두 번 다시 이런 경관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해안의 끄트머리에 이르자 바위절벽이 가로막는다. 하지만 넘실거리는 바닷물 위로 데크로드(deck road)가 놓여있다. 한반도의 종주를 꿈꾸는 해파랑길 종주꾼들을 위한 배려일지도 모르겠다.




그러고 보니 맨 끄트머리 바위덩어리는 섬이었었나 보다. 중간이 이렇게 나뉘어 있는 걸 보면 말이다.



모퉁이를 돌아서면 나곡해수욕장(羅谷海水浴場)‘이다. 경북에서 가장 북쪽에 위치한 해수욕장으로 300m쯤 되는 모래사장을 끼고 있다. 아니 안쪽에는 자갈이 깔려있다니 혼합형 해수욕장으로 보는 게 옳겠다. 바닷가에 널려있는 크고 작은 갯바위들이 한적한 바다와 어우러지면서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풍경이 특히 아름다운 해수욕장으로 정평이 나있다.



해수욕장의 널따란 모래사장은 쓰레기장을 변해버렸다. 플라스틱과 어구, 나뭇등걸 등 태풍 미탁이 실어온 해양쓰레기들이 가득하다. 이밖에도 콘크리트 구조물이 파괴되어 있는 등 태풍이 할퀴고 간 흔적들은 사방에 널려 있었다.



마을 앞 도로변에는 눈에 익은 조형물들이 도열해 있다. ’대게를 머리에 이고 있는 것이 아직도 여긴 울진 땅이란 얘기일 것이다. 이 조형물들은 울진의 특산물을 홍보하는 기능까지 담았다. 대게를 머리에 얹고 있는 막대들이 울진의 또 다른 특산물들을 담은 사진을 하나씩 매달고 있다. 속살이 쫄깃하고 담백하여 궁중에 진상되어 왔다는 울진대게와 다양한 영양분을 함유한 붉은대게, 울진 송림이 키워낸 송이버섯, 청정해역에서 자란 울진고포미역 등 종류도 다양하다.



석호교다리를 건너면 나곡1리 마을회관‘, 해파랑길은 이곳에서 왼편으로 방향을 튼다. 그리곤 천변(川邊) 길을 거쳐 옛 ’7번 국도로 연결된다. ! 이곳 나곡마을은 바다낚시공원과 함께 드라마 함부로 애틋하게가 촬영된 곳으로 유명하다. KBS에서 20167월부터 같은해 9월까지 방송된 함부로 애틋하게는 김우빈과 수지의 주연으로 어린 시절 가슴 아픈 악연으로 헤어졌던 두 남녀가 안하무인 '슈퍼갑 톱스타'와 비굴하고 속물적인 '슈퍼을 다큐 PD'로 다시 만나 그려가는 까칠하고 애틋한 사랑을 그린 멜로드라마이다. 드라마세트장 내부에 촬영당시의 소품과 주인공들의 촬영사진 들을 전시해놓고 있다는데 찾아보지는 못했다. 사진 촬영조차 힘들 정도로 빗줄기가 거세지는데 그럴 정신이 어디 있겠는가.



이후부터는 옛 ‘7번 국도를 따른다. 곁에 국도가 새로 놓인 탓인지 차량통행은 빈번하지 않는 편이다. 그러나 대부분이 속도를 높여 달리기 때문에 마음이 개운치만은 않다. 그렇다고 걱정할 필요까지는 없다. 도로 가장자리에 동해안자전거길을 널찍하게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갈령재에서 시작되는 수로부인길로 들어서기 전까지는 이 자전거길을 따르면 된다.



도로의 상황은 썩 좋은 편이 아니다. 나곡천에 기댄 도로의 한쪽이 확 파여 나갔는가 하면 산사태로 밀려온 토사가 도로를 점령하고 있는 곳도 자주 눈에 띄었다. 지난 주말 이곳을 할퀴고 지나간 태풍 미탁이 남긴 상처일 것이다.



길가에 가스공사의 시설이 보인다. 건축물이라기보다는 예술작품에 가까울 정도로 예쁜 외형을 을 갖고 있지만 용도는 모르겠다.



계속해서 옛 ’7번 국도를 탄다. 이 도로는 해파랑길의 동반자라 할 수 있다.



그렇게 얼마를 걸었을까 나곡교차로가 나온다. 왼편 나곡3로 들어가는 길은 새로 놓인 7번 국도로 연결된다. 그 들머리에는 나곡 태실마을이라는 간판을 세워놓았다. 하단에는 광해군 왕녀의 태()’라며 태실의 주인공까지 밝히고 있다. 맞다. 광해군 11(1619)에 태어난 왕녀 아기씨의 태를 묻었다는 기록(萬歷四十七年六月二十三日生 王女阿只氏胎室, 萬歷四十七年十一月初四日)이 적혀있는 비()가 저 마을에 있다고 한다. 태함과 태항아리, 태지석 등은 비록 도굴범들의 차지가 되었지만 말이다. 참고로 광해군은 2명의 부인에게서 11녀의 자식을 낳았는데 문성군부인 류씨에게서 폐세자 질()을 숙의 윤씨에게서 옹주를 만력 47년에 낳았다. 숙의 윤씨에게서 태어나 박원(朴遠)에게 시집간 옹주의 출생년도가 같으므로 저 마을에 묻힌 태는 숙의 윤씨가 생산한 옹주의 것임을 알 수 있다.



나곡교차로를 지나면서 길은 오르막으로 변한다. 하지만 차량 통행이 빈번했던 도로답게 경사가 거의 없는 편이다.



도로변에는 자전거쉼터도 만들어져 있다. 자전거 거치대와 함께 자전거코스 안내도를 세워놓았다. 명품 자전거길로 소문난 동해안종주 자전거길다운 시설이라 하겠다. 그러나 벤치가 보이지 않는다는 아쉬움도 있다. 자전거보다는 자전거를 타고 온 사람들이 더 우선일 텐데도 그들이 쉴 수 있는 시설을 갖추지 못했다.



조금 더 걷자 고포마을(나곡6)로 연결되는 길이 나뉘는 삼거리에 이른다. 들머리에는 울진 고포 돌미역이라 적힌 입간판을 세워놓았다. ‘조선시대 임금님의 진상품이라는 부제까지 달았다. 그만큼 품질 좋은 돌미역이 생산된다는 얘기일 것이다. 고포마을은 그보다 더한 특징도 갖고 있다. 손바닥만큼이나 작은 마을이 두 개의 커다란 행정구역(경북 울진, 강원 삼척)으로 나뉘는 것이다. 같은 마을에서 행정구역이 둘로 나뉘니 생활의 불편이 많을 것은 뻔한 일이다. 주민들은 하나의 마을로 통합하길 원한다는데 잘 되지 않는 모양이다.



동해안 자전거길고포마을 삼거리에서 오른편 고포마을로 향한다. 해파랑길 역시 마찬가지다. 하지만 우린 계속해서 옛 국도를 탄다. 선두대장이 깔아놓은 표시지를 따른 것이 그 원인이지만, 억지로 들어가 봤자 빗줄기 때문에 사진 한 장 제대로 못 찍을 것 같아서였다는 점도 또 다른 이유라 하겠다. 삼거리에서 몇 걸음 더 걷자 도로변에 이보혁 홀민 유애비(李普赫 恤民遺愛碑)’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조선 후기 영조 때 만든 관찰사의 선정비(善政碑)’라고 한다.



안내판이 지시하는 언덕으로 오르자 밭 가운데에 비석(碑石)’가 자리하고 있다. 상단이 둥근 호패 모양의 월두형으로 된 비()인데, 밭과는 시멘트로 단을 지어 구획했다. 비의 전면에는 관찰사이공보혁휼민유애비(觀察使李公普赫恤民遺愛碑)’라 적혀 있다. 비문 양쪽에 새겨져 있다는 국화문양과 뒷면의 옹정십이년건립(擁正十二年建立)’이라는 글귀는 빗줄기 때문에 확인할 수 없었다. 그나저나 이보혁이라는 인물은 명인전에 나오는 인물이 아니므로 휼민(恤民)이란 글씨가 의심스럽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도 참조해 두자.



조금 더 걷자 또 다른 삼거리가 나온다. 이번에도 역시 고포마을로 연결되는 삼거리다. 그래선지 아까와 같은 이정표와 안내판을 세워놓았다. 그렇다면 아까 지나쳤던 삼거리에서 오른편으로 들어가 고포마을을 둘러본 뒤에 이곳으로 되돌아 나왔다면 최상의 코스 선택이 되었을 것 같다. 국도변에 있는 도화동산이나 자유수호의 탑’, 그리고 수로부인길까지 모두 둘러볼 수 있기 때문이다.



가로수로 배롱나무를 심어놓은 탐방로는 마음에 쏙 든다. 일본을 여행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정도로 벚나무로 가득 찬 도로보다 얼마나 더 멋진 길인가. 그런 내 마음을 알고 있다는 듯이 목백일홍은 연분홍 꽃망울까지 활짝 열었다.



도로로 올라선지 1시간이 조금 못되어 탐방로는 도화동산에다 데려다 놓는다. 20004월에 발생한 동해안 산불을 무사히 진화했던 것을 기념해 세운 공원이란다. 26,794의 피해를 입혔던 당시 산불은 삼척시에서 울진군으로 번져 오기 시작하였다. 이에 민··군이 합심하여 22시간 만에 산불을 진화했는데, 이를 기념하기 위해 울진군 피해지역인 이곳 고포리에 조성했다는 것이다. ‘도화공원이란 도화(道花)인 백일홍을 심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공원에는 백일홍 등 교목 128본과 관목 4,850본이 식재되어 있으며, 정자와 산책로 등이 세워져 있다. 높이 6m, 길이가 3m인 천마 조형물 만들어 놓았다는데 직접 확인해보지는 못했다. 눈에 띄지 않았기 때문이다.



동산의 꼭대기에는 정자를 배치했다. 전망 좋은 곳에는 벤치도 놓아두었다.




동산에서 바라본 7번 국도는 고속도로나 다름없다.



경상북도(울진군 북면)과 강원도(삼척군 원덕읍)의 경계인 갈령(葛領) 고갯마루에는 자유 수호의 탑이 세워져 있다. 1968년 무장공비 120명이 남한혁명기지 구축을 목적으로 울진과 삼척 지역에 침투했었을 때 아군 33명이 전사하고, 민간16명이 희생된바 있다.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의 주인공 이승복 소년을 떠올리면 쉽게 기억되는 사건이다. 이 탑은 무장공비 섬멸작전 당시 보여준 민··군의 활약상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것이란다.




고갯마루에는 휴게소로 보이는 커다란 건물이 들어서 있다. 하지만 웬만한 축구장만큼이나 너른 주차장에는 두어 대의 자동차만이 외로울 따름이다. 7번 국도가 새로이 개설되면서 이 휴게소 또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있다는 얘기이리라. 고개를 넘는 자동차들이 없는데 하물며 쉬어갈 자동차가 어디 있겠는가.



휴게소를 지난 탐방로는 이제 산속으로 파고든다. 그리곤 수로부인길을 따르게 된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서 문화생태 탐방로로까지 지정(2009)해 놓았으니 나름 유명한 길이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들머리에는 이정표도 세워놓지 않았다. 그저 해파랑길임을 알려주는 리본이 매달려 있을 따름이다. 잘 살펴보고 들어서야 한다는 얘기이다. 참고로 한양과 경기 동부, 강원도를 이어주던 관동대로는 조선시대의 9대 간선도로 중 제3로였다. 이 길은 한양 흥인문을 출발해 대관령을 넘고, 강릉 안인역과 삼척 사직역, 용화역, 소공령, 월천리, 갈령, 울진 망양정 등을 두루 거쳐 평해에 이르는 대로였다. 전체 길이 920리의 관동대로 가운데 삼척 구간 60(24)수로부인길인데 이 길은 동해의 쪽빛 바다와 해안 절경을 감상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조선의 명재상이었던 황희의 자취도 느껴볼 수 있도록 꾸며져 있다.



널찍한 임도로 들어서자 이정표(월천1리 방면 종점 2.47/ 월천리 정수레미콘방면)와 함께 삼척 수로부인길이라는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수로부인은 신라 제33대 성덕왕 때 강릉태수를 역임한 순정공의 아내다. ‘삼국유사(三國遺事)’수로부인전에는 두 개의 설화가 전해온다. 아득한 높이의 바위 벼랑 위에 핀 붉은 철쭉꽃을 꺾어다 수로부인에게 바치며 어느 촌로(村老)가 부른 헌화가(獻花歌)’와 용()에게 끌려간 수로부인을 구하면서 백성들이 부른 해가(海歌)’가 바로 그것이다. 수로부인은 워낙 용모와 자태가 아름다워서 그 뒤로도 깊은 산이나 큰 못을 지날 때마다 여러 차례 신물(神物)들에게 잡혔다가 풀려나곤 했단다. 당시 강릉으로 향하던 순정공과 수로부인의 실제 노정(路程)이 어떠했는지는 정확히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오랫동안 동해안의 남북을 가로지른 교통로였던 관동대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노정을 밟았을 것이다. 그런 이유에서 관동대로 삼척 구간이 수로부인길이라 명명된 것으로 보인다.



이름과는 달리 수로부인길은 매력이라곤 거의 찾아볼 수 없는 그저 그렇고 그런 둘레길의 하나였다. 산림이 우거져 호젓하게 산림욕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전망이 탁월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볼거리가 많은 것도 아니다. 거기다 빗속에서 걷다보니 최악이 되어버렸다.



임도를 따라 걷다 해파랑길 표식이 붙어있는 장승이 보이기에 오솔길로 들어섰다. 그리고는 능선을 따라 진행하는데 길의 상태가 썩 좋지 않다. 탐방객이 드물었던 탓인지 잡목에 길을 내주어버린 상태로 변한 것이다. 거기다 그 나무들이 빗물에 젖기까지 해 걷는 게 여간 사납지가 않다.



이 구간에서는 국시뎅이(돌서낭을 가리키는 이 지역 방언)’도 만날 수 있다. 옛길 고개를 넘는 사람들이 행로의 무사안녕을 기원하며 돌을 주워 침을 뱉고 던져 쌓은 돌무더기인데 일명 구시라고도 하며 서낭당과 같은 기능을 가진 신령한 장소로 여겨지는 곳이다. 그러나 당집은 보이지 않았다. 옛말에 당산림 가운데 참나무가 참말을 해서 엄나무가 엄두를 내고 자작나무가 제작을 해 당집을 지었다고 했는데 이곳 나무들은 조금 게을렀나 보다.



산길이 끝나면 월천1이다. 산길로 들어선지 30분 남짓 되는 지점이다. 월천리(月川里)의 본래 월라(月羅)였다고 한다. 나중에 마을 동쪽에 월봉(月峯)이 있는가 하면 가곡천(柯谷川) 하구에 위치한다고 해서 월천(月川)으로 고쳐 부르게 되었단다. 마을회관에 이르자 오른편에 버티고 있는 거대한 소나무 한 그루가 눈에 들어온다. 높이 29m에 나무 둘레가 4.5m에 이르는 거목으로 나이가 500살도 더 되었단다. 소나무 아래에 당집까지 지어져 있는 걸로 보아 마을의 보호수 역할을 톡톡히 해온 모양이다.




마을 앞에서 개울을 따라 내려가자 가곡천 하류에 지어놓은 한국가스공사의 LNG생산기지가 나온다. 눈에 들어오는 거대한 시설물은 LNG 저장탱크인데 도시가스 수요가 적은 계절에 LNG를 저장하였다가 수요가 공급보다 많은 동절기에 LNG를 보충해서 수요와 공급 간 불균형을 해소시키는 완충 역할을 한단다.



LNG 생산기지 앞에는 솔섬이 있다. 가곡천이 바다가 만나는 곳에 위치한 모래톱인데 소나무가 빽빽이 들어차 있다고 해서 솔섬이라 불린단다. ‘속섬이라고도 불린단다. 아마도 내륙 깊숙이 파고들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 아닐까 싶다. 아무튼 이 솔섬2007년 세계적인 사진작가인 마이클 케나(Michael Kenna)’가 한국에 와서 찍은 작품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전국에서 수많은 사진작가들이 찾아오는 곳이 되었다. 하지만 내 눈에 비친 솔섬은 그저 그렇고 그런 작은 모래톱에 불과할 따름이다. 배경으로 삼을 수밖에 없는 LNG기지 탓이 아닐까 싶다. 거기다 빗줄기로 인해 물 위에 섬을 띄워보는 사진작가들의 단골 기법을 사용할 수 없다는 점도 작용했을 게고 말이다. 참고로 우리나라에 솔섬은 삼척 솔섬, 부안 솔섬, 태안 솔섬, 변산 솔섬, 순천 와온 솔섬, 장흥 소등섬 등 멋진 솔섬들이 있다. 그 중에서도 이곳 솔섬이 최고로 알려졌는데 LNG생산기지 건설로 인해 두 번 다시는 볼 수 없게 버렸으니 안타까운 일이라 하겠다.(첨부된 사진은 몽중루님의 것을 사용했다)



이젠 가곡천을 거슬러 올라간다. 강둑 아래 둔치는 공원을 만들려는지 공사가 한창이다. 아니 태풍 '미탁'이 할퀴고 간 상처를 치유하는 중일지도 모르겠다.



’7번 국도의 다리 아래를 지나자 월천교가 나온다. 가곡천을 가로지르는 다리로 한쪽 가장자리에 보도가 만들어져 있다. 참고로 가곡천은 응봉산(1,267m) 남쪽 기슭과 삿갓봉(1,119m) 북서쪽 계곡에서 발원하여 태백산맥 협곡을 따라 흐르다가 가곡면 풍곡리에서 두 줄기가 합류한 후 가곡면을 거쳐 원덕읍(월천리)에서 동해로 흘러드는 길이 43.5의 하천이다. 옛날에는 하천 하류에 있는 옥원리의 명칭을 따라 옥원천이라 부르기도 했다. 상류에 위치한 용소골은 폭포와 소()가 협곡을 따라 수없이 펼쳐져 절경을 이루는 것으로 유명하다.



월천교의 상류 쪽에 다리 하나가 더 놓여있다. 징검다리인데 똑 같은 규격으로 만든 게 눈에 좀 거슬리지만 동심(童心)을 불러일으키는 데는 이만한 다리도 없겠다. 하지만 태풍 미탁은 이곳에도 그 흔적을 남겼다. 징검다리의 1/4 정도가 떠내려가 버렸다.



날머리는 호산 시외버스터미널

다리를 건너면 호산삼거리호산교차로가 연이어 나오고, 날머리인 시외버스터미널7번 국도의 아래를 통과하자마자 만나게 된다. 월천1리에서 30분쯤 되는 지점이다. 오늘은 3시간 동안에 대략 11정도를 걸었다. 빗줄기 속을 걷느라 한눈을 팔지 않았던 게 원인이지 싶다. ! 이곳으로 오는 도로변에 '관찰사 한익상 영세 불망비'가 세워져 있다는 걸 깜빡 잊을 뻔했다. 조선 헌종2년에 기근이 심하자 백성을 구호한 선정을 베푼 덕을 기리고자 세운 비이다. 旣停魚貢(세금으로 고기를 이미 다 바친 것을 중지하고), 又旣還錢(또 세금도 감하고 돈도 되돌려 줌으로), 海陸俱安(어촌과 농촌이 함께 다 평안하다,) 萬姓銘心(만백성들이 마음 깊이 새겨 오래도록 잊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