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파랑길 27코스
여행일 : ‘19. 8. 17(토)
소재지 : 경북 영덕군 죽변면과 북면 일원
여행코스 : 죽변항 입구(2.1km)→죽변등대(6.6km)→옥계서원유허비각(2.7km)→부구삼거리(소요시간 : 11.4㎞, 3시간 10분)
함께한 사람들 : 청마산악회
특징 : 해파랑길 50개 코스 가운데 가장 짧은 구간이라 할 수 있다. 거기다 볼거리가 전무하다시피 하다는 특징도 있다. 출발지에 있는 ’죽변등대‘까지 없었더라면 예쁜 사진 한 장 얻지 못할 정도로 구간 전체가 밋밋하기 때문이다. 탐방로 대부분이 내륙을 관통하는 도로의 가장자리를 따르도록 되어 있는데도 제대로 된 보행로가 없다는 단점도 있다. 지나다니는 차량들이 모두 쌩쌩 달리는데다 그 숫자까지 많아서 위험하기 짝이 없다. 완주를 목표로 하지 않는 사람들이라면 생략해도 좋은 구간이라 하겠다. 이때는 죽변등대를 26코스에 포함시키면 되니 경관 좋은 곳을 놓칠 일도 없다.
▼ 들머리는 죽변 시외버스정류장(울진군 죽변면 후정리 330-13)
동해(속초-삼척)고속도로 ‘근덕 IC’에서 내려와 7번 국도를 타고 울진·영덕 방면으로 내려오면 죽변교차로(죽변면 봉평리)가 나온다. 국도를 빠져나와 917번 지방도로 바꿔 타고 해안가로 나오면 잠시 후 죽변항의 입구에 있는 시외버스정류장에 이르게 된다. 정류장의 옆 전신주 아래에 해파랑길 27코스의 안내도와 스탬프보관함이 설치되어 있다.
▼ 죽변항(竹邊港)을 향해 걸으면서 트레킹이 시작된다. 이곳 죽변항 일대는 볼거리가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먹거리 역시 풍부한 울진의 대표적 관광지란다. 고을의 역사도 아주 오래로 거슬러 올라간단다. 신라 법흥왕(法興王 : 牟卽智寐錦王) 때 이미 막강한 세력 집단이 웅거(雄據)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지난번 26코스를 답사하면서 살펴봤던 ‘봉평리 신라비(국보 제242호)’가 전하는 내용이니 정확할 것이다. 그러나 시내를 통과하는 동안 옛 영화를 떠올릴만한 흔적들은 찾아볼 수 없었다.
▼ 잠시 후 도로변에 세월의 무게를 안고 있는 범상치 않은 향나무가 눈길을 끈다. 울진의 또 다른 명물로 자리 잡은 향나무인데 울퉁불퉁한 근육을 자랑하듯 몸을 뒤틀며 하늘로 끌어올린 몸매가 마치 우락부락한 인왕상을 보는 듯하다. 수령이 500년을 훌쩍 넘겼는가 하면 키도 13.5m나 되는 이 나무는 민속적·생물학적 보존가치가 높다고 해서 천연기념물(제158호)로 지정되었다. 그래선지 동네 사람들은 이 향나무를 신목(神木)으로 받들면서 옆에다 성황사(城隍祠)를 지었다. 하지만 이 나무의 고향은 울진이 아니란다. 우산도(지금의 울릉도)에서 살다가 동해의 용왕에게 빌어 육지로 나가는 것을 허락 받았고, 망망대해 파도에 떠밀려 닿은 곳이 지금의 울진군 죽변면 후정리라는 것이다.
▼ 향나무 앞에서 오른편으로 방향을 틀자 죽변항(竹邊港)이 나온다. 후포항과 더불어 울진군의 주요 어업기지이다. 그래선지 항구 주변에 크고 작은 수산물 가공공장들이 많이 들어서 있다. 오징어와 꽁치, 가자미, 대게 등 이곳으로 들어오는 어획량이 그만큼 많다는 증거일 것이다. 참고로 아래 사진의 왼편 건물은 ‘죽변 어판장’이다. 가까이 울진 앞 바다와 멀리 독도 해역까지 출어하여 잡아 올린 싱싱한 해산물로 새벽에 성시를 이루는 곳이다. 때를 맞춰 찾았더라면 경매꾼들과 상인들의 팽팽한 줄다리기를 볼 수 있었을 텐데 아쉽다.
▼ 탐방로는 항구를 옆구리에 끼고 나있다. 심심찮게 횟집이 나타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재래시장에 이어 수산물시장도 나온다. 그런데 ‘대게’라는 낱말을 품지 않은 간판이 거의 없다. 하긴 대게가 집하(集荷)되는 곳으로 후포항과 함께 쌍벽을 이룬다니 이를 말이겠는가. 살이 올라 속이 꽉 찬 대게를 즐기는 축제가 해마다 열리는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지금은 제철이 아니니 내년 봄까지 기다려야 한단다. 그렇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다. 대신 활어회와 어패류를 매우 착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으니 말이다. 지난 달 26코스를 마치면서 이곳을 찾은 우리 부부도 역시 광어와 오징어 회로 대미를 장식할 수 있었다.
▼ 항구는 오징어 낚싯배가 대부분이다. 지난달엔가 이곳 죽변항을 먹여 살리던 오징어가 되돌아왔다는 언론보도가 있었는데 사실이었던 모양이다. 당시 기사는 죽변항 연근해와 울릉도 연근해에 오징어 어장이 대규모로 형성되면서 죽변항이 활기를 되찾았다고 전했었다. 오징어가 최 정점을 이룰 때(6.25)는 오전 한나절 동안만 해도 오징어 활어 12만9000마리에 선어 2080박스가 죽변수협 위판을 통해 도시로 팔려 나갔다면서 말이다. 금액으로 따져도 2억 원어치나 된다니 대단한 어획량이라 하겠다.
▼ 항구를 벗어나자 길이 답답해진다. 높다랗게 쌓아올린 테트라포드가 바다 쪽 경관을 완전히 막아버렸기 때문이다. 먼 바다로부터 밀려오는 파도가 그만큼 높다는 증거일 것이다.
▼ 탐방로는 테트라포드가 끝나는 곳에서 다시 바다와 만난다. 출발지에서 23분쯤 떨어진 지점이다. 바위절벽과 바다가 얼굴을 맞댄 곳에는 데크로드를 만들어 놓았다. 암벽을 옆구리에 끼고 바다 위를 걷는 셈이다. 덕분에 눈이 호사를 누린다.
▼ 바다에는 갯바위들이 수없이 널려있다. 바라보는 각도에 따라 자신의 모양새를 바꾸어가는 바위들이 하나같이 범상치가 않다. 갯바위들 뒤로는 동해바다가 끝 간 데 없이 펼쳐진다. 눈이 시리도록 파란 바다는 오래 전 세미나 때문에 들렀던 마르세이유(Marseille)에서 보던 지중해를 쏙 빼다 닮았다.
▼ 200m쯤 걸었을까 탐방로는 계단으로 변해 산자락을 파고든다. 다리를 놓을 수 없을 정도로 물길이 깊어졌던 모양이다. 참! 누군가 이 일대를 용추곶(龍湫串)이라 했었다. 용이 노닐면서 승천을 꿈꾸다가 그 꿈이 이루어진 곳이라는 데서 유래했다면서 말이다. 그는 또 현대에 찍은 항공사진에서도 용이 웅크리고 있는 듯한 형상이 나타난다면서 선현들의 지혜에 놀라움을 표했었다. 이는 이 일대에 용소(龍沼)가 있다는 얘기가 아니겠는가. 더 이상 다리를 놓을 수 없었던 이유가 아닐까 싶다.
▼ 계단이 끝나는 곳에서 길이 두 갈래로 나뉜다. 왼편은 정자를 거쳐 마을로 연결된다. 등대는 물론 오른편으로 진행해야 한다. 향긋한 솔향이 코끝을 스쳐가는 멋진 길이다. 굵직한 소나무 숲을 헤집으며 길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소나무숲길이 끝나면 이번에는 울창한 대나무 숲이 바톤(baton)을 이어 받는다. 참! 이 길을 신라 때 군인들이 오가던 길이었을 거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신라 진흥왕이 현재 등대가 있는 언덕에 왜구의 침입을 대비해 수군 2천여 명이 주둔하는 큰 토성을 쌓았다면서 말이다. 그의 말대로라면 그 길이 지금은 해파랑길로 변해있다는 얘기가 된다.
▼ 대숲 길 중간에는 전망대를 만들어 놓았다.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동해바다는 일망무제(一望無際)다. 비취빛 바다가 끝 간 데 없이 펼쳐지며 왜소해질 대로 왜소해진 현대인들에게 호연지기를 불러일으키게 만들어 준다.
▼ 울창한 대밭을 지나자 아름답고 하얀 등대가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그림엽서처럼 서있다. ‘죽변등대(경상북도 기념물 제154호)’인데 1910년에 점등되었다니 100살도 훨씬 넘겼다. 이 등대는 동해를 누비는 모든 배들의 길라잡이가 된 근대문화유산이다. 그동안 어민들의 고달픈 애환을 어루만져왔으며 아직도 우직하게 죽변항을 드나드는 배들을 지킨다. 대한제국 시절 착공된 죽변등대는 등탑 내부 1층 천장에 태극 문양이 새겨져 있다고 한다. 원래는 대한제국 황실의 상징인 오얏꽃 문양이 있었단다. 그러나 문이 굳게 닫혀있어 직접 확인해 볼 수는 없었다.
▼ 다시 대나무 숲속으로 들어선다. 잠시 후 ‘용(龍) 조형물’을 머리에 이고 있는 대문을 빠져나오자 적당한 크기의 광장이 길손을 맞는다. 바닥과 축대를 온통 그림으로 채워 넣었다. 주민 참여형 ‘한뼘 정원’이란다. ‘용의 꿈길’이라고 적힌 안내판도 세워놓았다. 승천을 기다리며 용이 머물던 용소(龍沼)가 요 아래에 있는데 가뭄이 심해질 때면 기우제(祈雨祭)를 지내기도 한단다. 그런 연유로 용추곶(龍湫串)이란 이름까지 얻게 되었다니 기억해두자.
▼ 잠시 후 빨간 지붕이 쪽빛 바다와 어우러지는 아담한 집 한 채가 나타난다. 지중해의 해변에서나 볼 법한 외모를 지닌 이 집은 2004년 방영된 SBS 드라마 ‘폭풍 속으로’의 촬영지라고 한다. 고기잡이 아버지 밑에서 자란 형제와 그들에게 다가온 운명적인 사랑, 그리고 그들의 파란만장한 삶을 다룬 드라마인데. 이덕화와 송윤아가 출연해 시청자에게 진한 감동을 안겨주었던 집이 그대로 남아 있어 죽변항을 찾은 이들의 발길을 재촉하는 명소가 됐다.
▼ ‘어부의 집’으로 내려가는 길에 주변 풍광을 눈에 담아본다. 바위벼랑에 걸터앉은 ‘어부의 집’은 울창한 대나무 숲이 둘러싸고 있다. 그 아래는 비취빛 푸른 동해바다. 청아한 바닷바람의 연주가 대나무 숲 속에 선듯 귓불을 타고 흐르며 속삭인다.
▼ 세트장 일대는 대나무 숲에 파묻혀 있는 모양새이다. 대나무가 많은 바닷가라는 데서 유래되었다는 ‘죽변(竹邊)’이란 지명에 어울리는 풍경이라 하겠다. 대나무가 많은 바닷가라 해서 ‘죽빈(竹頻)’이라 불리다가 언제부턴가 죽변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곳의 대나무는 우리가 늘 보아오던 대나무와는 많이 다르다. 키가 작고 얇은 소죽(소릿대)인데 선조들은 이 나무로 활을 만들어 왜적으로부터 죽변을 보호했다고 전해진다.
▼ ‘어부의 집’을 한 바퀴 돌다가 발걸음을 멈춘다. 잘게 부서지는 파도가 예쁜 하트 모양의 해안선을 만들어내고 있어서다. KBS-2TV의 ‘생생 정보통’에도 소개된 바 있는 저 풍경을 보기 위해 찾는 연인들의 숫자가 만만찮다고 한다. 서로의 사랑을 약속하는 징표로 삼기 위해서이다. 믿거나 말거나 이곳을 연인들이 함께 거닐면 반드시 사랑이 이뤄진다는 ‘전설’까지 내려온다니 어찌 찾지 않고 배기겠는가. 혹시라도 사랑이 영원이 계속되기를 간절히 원하는 연인들이 있다면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반드시 이곳으로 찾아와야 할 이유이다.
▼ 삼거리로 되돌아와 트레킹을 이어간다. 이정표는 세워져 있지 않지만 도로 바닥에 그려진 파란색 선(동해안종주 자전거길)을 따르면 된다. 해파랑길이 버리고 해안길을 따를 수도 있다는 점도 기억해 두자. ‘어부의 집’에서 하트해안으로 내려선 다음 해안길을 따르면 된다. 하지만 어느 정도 진행하다가 바닷가를 빠져나와야 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 부부는 가다가 되돌아 나와야만 한다는 카페 주인의 경고성 조언에 넘어가 바닷길로 들어서는 것조차 포기하고 말았다.
▼ 삼거리 근처에서 하트해변이 또 다시 눈에 들어온다. 그런데 하트모양이 아까 어부의 집에서 보던 때보다 더 또렷하게 나타나는 게 아닌가. 아까는 물결무늬가 하트였는데 이번에는 해안선의 모양까지도 하트를 닮아있는 것이다. 참! 어떤 이들은 더 나은 사진을 원한다면 죽변항로표지관리소 옥상으로 가라고 했다. 하트의 꼭지에 연인을 남겨둔 채이다. 드라마 세트장에서 찍은 사진보다 하트 모양이 아주 확실하게 그려지니 사랑의 맹세가 영원히 봉인될 것이라면서 말이다. 단 옥상에 오르려면 직원에게 먼저 허락을 받아야 한단다.
▼ 도로를 따라 잠시 걷자 군부대가 나오는가 싶더니 이내 길이 둘로 나뉜다. 오른편은 ‘동해안종주 자전거길’이고 해파랑길은 왼편이다. 우리 부부를 포함한 일행 몇 명은 이곳에서 하늘색 선이 그어진 ‘자전거길‘을 따르기로 했다. 운영진으로부터 바닷가로 길이 나있다는 정보를 들었던 게 원인인데 이는 틀린 정보였다. 바닷가는 구경조차 시켜주지 않은 채 마을길만 따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해파랑길보다 한참이나 에둘러 갔을 뿐 눈에 담을 만한 풍경은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
▼ 3분쯤 더 걸었을까 괴상하게 생긴 집이 보이는가 싶더니 ’죽변3리‘ 마을회관이 나온다. 자전거길은 이곳에서 오른편으로 크게 방향을 튼다. 그리고는 아예 골목길로 들어서버린다. 가끔은 담 너머로 주민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정겨운 길이다.
▼ 마을 안길을 통과해 언덕에 오르자 여러 종류의 운동기구를 갖춘 작은 공원이 만들어져 있다. 정자와 벤치를 함께 만들어 쉼터의 기능까지 겸하도록 했다. 잠시 고개를 내밀었던 동해바다는 이곳에서 마지막으로 이별을 고한다. 그게 아쉽다면 정자에라도 올라 볼 일이다. 정자에서 바라본 울진의 바다는 도통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짙푸른 청람빛이다. 온몸이 금세 푸른 물에 물들 듯한 바다는 현기증을 일으킬 만큼 명징하며 매혹적이다.
▼ 조금 더 걷자 이번에는 ’죽변 중·고등학교‘가 나온다. 시골 면소재지인데도 고등학교까지 있다는 게 놀랍다. 3층짜리 교사(校舍)까지 갖춘 걸로 보아 학생들의 숫자도 만만찮다는 얘기일 것이다.
▼ 학교를 지나자마자 도로에 내려선다. 죽변면사무소에서 시작되는 ’죽변북로‘인데 이 길은 후정리에 있는 ’환동해 산업연구원’으로 연결된다. 도로에 내려서서 4분 정도 진행하면 ‘죽변도서관’이 나오니 참조한다.
▼ 6분 정도 더 걷자 이번에는 ‘후정해수욕장’의 들머리임을 알리는 이정표가 세워져 있다. 송림과 잘 어우러진 아름다운 해수욕장인데 그냥 지나치기로 한다. 1㎞를 더 걸어가면서까지 들러볼만한 가치를 못 느꼈기 때문이다. 참! 이쯤에서라도 해파랑길을 찾았으면 좋았으련만 우린 그러지를 못했다. 덕분에 난 ‘후정2리’에 있다는 ‘장량수 급제패지(張良守 及第 牌旨)’ 제단비라는 볼거리를 놓쳐버리고 말았다. 국보 제 181호로 지정된 이 급제패지는 고려 희종 1년(1205)에 진사시(進士試) 병과(丙科)에 합격한 장량수에게 내린 과거시험 합격증이다. 장량수는 울진의 토성(土姓)인 장씨(張氏)로 울진부원군 문성공 장말익의 8대 손(孫)이다.
▼ 계속해서 ‘죽변북로’를 따른다. 가로수가 없어 오뉴월 뙤약볕에 온 몸을 노출시킬 수밖에 없는 악전고투가 계속된다. 트레킹 마니아들에게는 최악의 코스라 하겠다. 그렇게 17~8분쯤 걷자 ‘후정교’가 나온다. ‘환동해 산업연구원’과 ‘한국해양과학기술원(동해연구소)’의 들머리이다.
▼ 다리를 건너자마자 왼편 뚝방길을 탄다. 해파랑길로 합류하기 위해서이다. 하지만 이 또한 잘못된 판단이었다. 계속해서 ‘동해안종주 자전거길’을 따랐더라도 해파랑길과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뚝방길을 따라 3~4분쯤 걸으니 해파랑길을 다시 만날 수 있었다.
▼ 계속해서 뚝방길을 탄다. 7번 국도 아래를 지나는 굴다리를 통과하자 잠시 후 길이 또 다시 나뉜다. 계속해서 뚝방길을 타야 하지만 이번에는 오른편에 보이는 ‘고목2리’ 방향으로 진행한다. 뚝방길이 거친데다 해파랑길의 안내표식도 마을 방향에다 매달아 놓았기 때문이다.
▼ 해파랑길은 마을 앞에서 ‘동해안종주 자전거길’과 또 다시 만난다. 아까 후정교에서 계속해서 자전거길을 따랐더라면 조금 더 쉽게 이곳에 이르렀을 것으로 보인다. 그나저나 탐방로는 바다를 떠난 지 이미 오래다. 한적한 농촌 마을길만 걷고 있으니 해파랑길의 정체성을 잃은 구간이라 하겠다.
▼ ‘고목2리’ 근처 도로가에 ‘황금송’이라고 적힌 음식점 간판이 세워져 있다. 황금송이란 잎이 황금빛인 소나무를 일컫는데 돌연변이종이라서 귀한 대접을 받는다. 혹시라도 그런 나무가 눈에 띌까 좌우를 살펴보니 산릉이 온통 굵직한 소나무들로 뒤덮여 있다. 그러고 보니 이곳 울진은 금강송(金剛松)이 잘 보존되고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워낙 깊은 산속에 자리한 덕분에 일제강점기와 6·25전쟁 등에도 살아남았다. 옛 서면을 금강송면으로 개명을 했을 정도라면 이곳 울진의 금강송에 대한 애착이 과연 어느 정도인지 이해가 갈 것이다. 그런 금강송 숲에서 ‘송이버섯’이 자라는데 이게 또 송이버섯 가운데서도 단연 최고로 친단다. 그런 장점을 그냥 지나칠 지자체가 어디 있겠는가. 버스정류장에까지 송이버섯을 그려 넣었다.
▼ 잠시 후 만나게 되는 ‘고목1리(古木1里)’ 표지석은 ‘충절의 고장’이란 부제를 달고 있다. 조선 개국을 거부하고 고려왕조의 복벽(復辟)을 도모한 최복하(崔卜河) 선생을 자랑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가 벼슬에서 물러나 입향(入鄕)한 곳이 바로 고목리이니 말이다. 조금 더 걷자 이번에는 ‘옥계서원 유허비(玉溪書院 遺墟碑)’가 길손을 맞는다. 이곳은 우암 송시열(尤菴 宋時烈)과 석당 김상정(石堂 金相定), 만은 전선(晩隱 田銑)을 함께 모신 서원이다. 원래 옥계서원은 울진읍 옥계동에 ‘사(詞)’를 세우고 우암 선생 진상(眞像)을 받들어 모셨으나 철폐되었다. 이후에 정조 1년에 죽변면에 중건되었고 순조 29년에 ‘서원’으로 승격되었지만, 이후에도 이건 되고 중건되고 철거되고 낡아서 허물어지는 과정을 겪다가 2005년에서야 지금의 위치에 비각이 세워졌다고 한다.
▼ 탐방로(동해안종주 자전거길)는 파란색 선을 그어 차도와 구분해 놓았으나 차량 통행이 잦은데다 속도까지 내어 달리니 위험하기 짝이 없다. 마음 놓고 걸으려면 뒤통수에 눈이라도 달아야 할 지경이다. 오뉴월 뙤약볕에 온몸을 노출시키는 것만 해도 죽을 맛인데 오가는 차량까지 조심까지 피해야하니 트레커(trekker)들에게는 최악의 코스라 하겠다.
▼ 위험스러울 뿐 눈요깃거리 하나 없는 지루한 도로를 30분 남짓 걷자 ‘울진원자력발전소’가 그 모습을 드러낸다. ‘한국수력원자력’ 소속의 ‘한울원자력본부’로 1988년 울진 1·2호기가 상업운전을 시작한 이래 현재 총 6개의 원자로가 가동 중에 있다. 또한 새로 지은 신한울 1·2호는 상업운전을 앞두고 있다. 아주 오래전 정부 일을 하면서 출장 왔던 기억을 되살리며 발전소로 들어가 본다. 원자력발전소의 연료봉을 닮은 거대한 조형물을 지나자 원자력홍보관이 어서 오라고 손짓을 한다.
▼ 홍보관은 3층 건물에 홍보관 1개동과 전시관 1개동으로 구성되어 있다. 에너지 역사 코너와 원자력 바로알기, 환경 방사능 관리 및 원자력 발전 수거물 코너 등 14개의 코너로 구성된 전시관에는 각종 모형(원자력발전소 내부 절개 모형, 원자력 발전소 전경 모형, 표준 원자력 발전 절개 모형, 태양열 발전소 모형, 풍력 발전소 모형, 지역 발전소 모형, 조력 발전 모형, 대형 터빈 모형)과 게임기, 영상물 등 첨단 기술의 다양한 체험용 전시물들이 설치되어 있다.
▼ 홍보관의 외부는 공원으로 꾸며놓았다. 여러 조형물과 잔디 광장, 산책로, 수목, 초화류, 파고라, 벤치 등이 설치되어 있다. 운동시설과 주차장, 화장실 등의 편의시설을 갖추고 있음은 물론이다. 덕분에 지역 주민과 직원들의 휴식은 물론이고 학생들의 소풍 장소로도 자주 이용된단다.
▼ 발전소와 부구마을(富邱里)은 ‘부구다리’로 연결된다. 다리 건너의 부구마을은 생각보다 큰 동네이다. 북면의 소재지라는 점도 있겠지만 원자력발전소의 직원들이 큰 몫을 차지하고 있을 것이다.
▼ 트레킹 날머리는 부구삼거리(울진군 북면 부구리 149-9)
다리를 건너면 ‘부구삼거리’이다. 해파랑길 27코스가 종료되는 지점으로 안내도와 스탬프보관함은 삼거리에서 소방서로 가는 코너에 설치되어 있다. 해파랑길 27코스의 공식적인 거리는 11.4㎞이다. 하지만 핸드폰에 깔아놓은 앱은 12.66㎞를 찍고 있다. 해파랑길이 아닌 ‘동해안종주 자전거길’을 따른 덕분에 1.2㎞ 정도를 더 걸은 셈이다. 소요시간은 3시간 10분. 1시간에 4㎞도 못 걸었으나 원자력발전소 홍보관과 죽변 등대공원을 둘러본 시간을 감안한다면 알맞은 속도로 걸었지 않나 싶다.
▼ 소방서를 지나 조금 더 내려가자 바닷가가 나온다. 응봉산에서 발원한 부구천이 동해바다와 만나는 지점이다. 이곳도 역시 모래톱으로 이루어져 있어 트레킹을 하면서 흘린 땀도 씻을 겸 물놀이에 그만이다. 바닷물을 씻어내려면 소방서까지 걸어가야 한다는 게 조금 불편하겠지만 말이다.
♧ 에필로그(epilogue)m, 해파랑길 울진구간은 총 5개 코스 67km로 이루어져 있다. 누군가는 이 구간을 어떠한 기교나 화려함이 없는 선 굵은 동해안 트레일이라고 했다. 고독과 외로움을 벗 삼아 걷는 여행자에게 내면의 소리를 더 잘 들을 수 있는 구간이라면서 말이다. 하지만 나는 이에 동조하지 않는다. 부산·울산·경주·포항·영덕 등 그동안 걸어왔던 그 어느 구간보다도 ‘해파랑길’의 정체성을 많이 잃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선 바닷길이 아닌 자동찻길을 따르는 일이 다른 구간보다 훨씬 더 많았다. 파란색이나 흰색 선을 그어 인도와 차도를 구분하고 있지만 인도의 폭이 좁아 차량이 지나갈 때는 몸이 휘청거리기까지 할 정도였다. 그나마 그 선이 지워져버린 곳도 심심찮게 만날 수 있었다. 뒤통수에 눈이라도 달아야 안전을 확보할 수 있다고나 할까? 탐방로의 정비 또한 다른 구간에 훨씬 못 미쳤다. 기초이자 필수시설이라 할 수 있는 이정표는 거의 보이지 않았고, 다른 표식들도 해파랑길 조성과정에서 만든 것들이 전부였다. 해파랑길에 대한 울진군의 노력이 일절 보이지 않았다는 얘기이다. 재정자립도가 어떻게 되는지는 몰라도 아쉬운 일이라 하겠다. 요즘 지자체들은 한사람이라도 더 많은 관광객들을 유치하는 게 대세이기에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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