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파랑길 25코스

 

여행일 : ‘19. 7. 20()

소재지 : 경북 울진군 기성면과 매화면, 근남면 일원

산행코스 : 기성버스터미널(6.0km)기성망양해변(3.8km)망양휴게소(11.8km)망양정(1.7km)수산교(소요시간 : 23.3가운데 16.73시간30)

 

함께한 사람들 : 청마산악회


특징 : 기성공용정류장에서 시작해 수산교에서 막을 내리는 해파랑길 25코스는 두 가지 특징을 갖고 있다. 가장 긴 구간 가운데 하나(23.3)이자 가장 아름다운 구간 가운데 하나라는 점이다. 초반에 잠깐 내륙을 걷기도 하나 그 이후부터는 줄곧 해안선을 따르게 되는데 빼어난 자태의 기암괴석들이 줄을 이어 나타나면서 잠시의 방심도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이 구간에서는 관동팔경의 하나인 망양정을 두 번(현종산과 둔산)이나 만나게 된다. 정자에 올라 그 옛날 이곳을 찾아와 시를 읊조리던 시인묵객들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그런 아름다운 경관들이 이번 여정에는 태풍 다나스를 만났다. 높은 파도와 해무가 바닷가 절경들과 어우러지며 만들어내는 갖가지 풍광들은 어느 하나 빼어나지 않은 것이 없었다. 그것도 잘 그린 수묵화(水墨畫)였다. 태풍이 몰고 온 빗줄기 속에서 거닐었지만 대신에 환상적인 풍광을 마주할 수 있었으니 이런 걸 두고 새옹지마(塞翁之馬)라 하지 않을까 싶다. 참고로 관동팔경(關東八景)은 통천의 총석정과 고성의 삼일포, 간성의 청간정, 양양의 낙산사. 강릉의 경포대, 삼척의 죽서루, 울진의 망양정, 평해의 월송정을 말한다. 북한 지역에 있는 총석정과 삼일포를 빼고 나머지 관동6경을 모두 해파랑길에서 만날 수 있다.


 

들머리는 망양정 옛터(울진군 기성면 망양리 413-4)

해파랑길 25코스는 기성공용정류장이다. 스탬프보관함 역기 버스정류장 앞에 설치되 어 있다. 당진·영덕고속도로(청주-영덕) 영덕 IC에서 내려와 7번 국도를 타고 울진방면으로 올라오다 기성교차로(울진군 기성면 정명리)에서 빠져나오면 된다. 하지만 우리 부부는 구도(舊道)를 타고 울진방면으로 더 올라가다 망양정 옛터부터 트레킹을 시작했다. 태풍 다나스가 몰고 온다는 비바람 속에서 23를 걷는다는 게 무리로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거기다 7쯤 되는 이 구간이 25코스 가운데 가장 볼거리가 없다는 점도 작용했다.




쉼터에서 내려 망양정 옛터(望洋亭 舊地)‘로 오르면서 트레킹이 시작된다. 벼랑에 올라앉은 탓에 갈지()‘자로 걸쳐놓은 나무계단을 올라가야 만날 수 있다. 위로 오르면 동해바다가 한눈에 쏙 들어오는 곳에 삼칸겹집(정면 3, 측면 2)의 정자가 지어져 있다. 오래전 이곳에 있었다는 망양정(望洋亭)을 복원해 놓은 것이란다. 관동팔경 중 하나인 망양정은 원래 기성면 망양리의 해안가에 지어졌다고 한다. 고려(高麗) 때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허물어져 방치되던 것을 1471(조선 성종 2) 평해군수 채신보가 현종산(懸鍾山) 기슭인 이곳으로 옮겨지었단다. 이곳에 있던 망양정 또한 허물어진 채로 방치되어 있었던 모양이다. 1517(중종 12) 울진현령 이휘호가 이를 한탄하며 지금 망양정이 있는 둔산(屯山 : 근남면 산남리)으로 옮겨 새로 지은 걸 보면 말이다. 그 이후 터로만 남아 있다가 2015년에 복원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단다. 그러니 이젠 ()‘라는 용어는 그만 사용해야 할 것 같다. 정자의 옆에는 망양정유허비(望洋亭遺墟碑)가 세워져 있다. 망양정에 얽힌 사연을 적은 안내판과 평생에 바다 보려는 뜻 이루고자 하시거든 그대 부디 망양정에 올라 보시게나라는 글귀의 시판(詩板)도 보인다. 수서 박선장의 시란다.



올라왔던 반대편으로 내려가면 망양2이다. 마을 앞에는 일자형 방파제가 만들어져 있으나 배들은 보이지 않는다. 태풍 다나스의 영향이 아닐까 싶다. 저 정도 시설로는 거센 파도를 배겨낼 수 없을 것 같기 때문이다. 참고로 망양(望洋)이란 마을 이름은 관동팔경 중의 하나인 망양정(望洋亭)이 있는 마을이라는 데서 연유되었단다.



바닷가 모래사장에는 기괴하게 생긴 바위들이 상당수 널려있다. 그 가운데 뭍으로 기어오르는 거북이 모양의 바위가 보여 카메라에 담아봤다.



가로등처럼 줄지어 서있던 대게 조형물들이 망양리에 이르면서 오징어로 변해있다. 이 지역의 또 다른 특산품이라는 증거일 것이다. 맞다. 2015년엔가 이 마을에 대한 기사가 뜬 적이 있었다. 울진군의 특산물인 오징어를 자체 기술로 숙성시킨 '배오징어'를 판매하는 영어조합법인(營漁組合法人) '오징어 사랑'이 마을기업으로 지정되었다는 내용으로 기억되는데, 그게 이젠 자리를 잡았나 보다.



백사장에서 노닐던 갈매기들이 떼를 지어 날아오른다. ’()의 도움닫기라는 누군가의 표현대로 힘차게 하늘로 오르는 풍경이 장관이다. 태풍이 몰고 온 거대한 파도에 놀랐나 보다.



바닷가에 널린 기암들만큼이나 기괴한 느낌을 주는 폐건물도 보인다. 바닷물에 아랫도리를 담그고 있는데 이미 오래전에 버려졌는지 내부가 아예 쓰레기장으로 변해있다. 하지만 이 또한 멋진 풍광으로 다가온다. 높은 파도와 물안개가 만들어낸 극적인 효과일 것이다.



태풍 다나스의 영향으로 사위가 온통 회색빛으로 변해있다. 그 속에서 실루엣으로 나타나는 풍경들은 하나같이 신비롭기 짝이 없다. 어느 화가가 있어 신선이나 살 법한 저런 풍경들을 그려낼 수 있을까. 조물주만이 가능할 것이다.



그렇게 20분쯤 걷자 바닷가에 조성해놓은 광장이 나타난다. ’황금 울진 대게공원이란다. ‘대게하면 사람들은 보통 영덕을 떠올린다. 하지만 울진 사람들은 울진이 원조라고 주장한다. 근거까지 질서정연하게 늘어놓으면서 말이다. 그래선지 이곳에도 집게발을 위엄 있게 벌린 대게 조형물을 세워놓았다. 물론 터도 잘 잡았다. 광장 뒤편의 바위무더기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정도로 빼어난 풍광을 자랑한다.



대게 조형물 옆에 세워놓은 빗돌에는 영덕 대게에 대한 자랑을 잔뜩 늘어놓았다. 동국여지승람과 임원경제지, 대동지지에 자해(紫蟹 : 대게)’를 울진의 특산물로 적고 있다면서 말이다. 사실 울진이 세간에 알려진 일등공신은 영덕과의 대게 원조 싸움이었다. 그 싸움의 진원지인 울진 후포항과 영덕 축산항은 20가 채 안 되는 직선거리다. 국경과 행정구역이 없는 대게 입장에서 보면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하지만 대게의 최대 집산지는 포항의 구룡포항이라고 한다. 영덕과 울진으로 봐서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가슴 아픈 진실이라 하겠다. 아무튼 아웅다웅하는 이들의 다툼은 결과적으로 둘 모두에게 시너지효과를 가져다주었다. 경쟁하듯이 대게 축제를 열고 관광객들을 불러 모은 덕분에 그 축제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날이 갈수록 불어났기 때문이다. 참고로 울진의 대게축제는 후포항에 있는 왕돌초광장 일대를 무대로 삼는다. ‘월송 큰 줄 당기기등 전통 민속놀이와 대게춤 플래시몹, 대게춤 경연대회, 거일리 대게원조마을 풍어 해원굿 등 공연이 준비돼 있다.



대게공원의 옆에는 오징어판매점이 들어서있다. 앞에서 얘기했듯이 이곳 망양마을은 '배오징어'라는 자체 상품으로 유명한 곳이다. '오징어 사랑'이라는 영어조합법인은 행정안전부에서 선정하는 마을기업으로 지정되었을 정도다. 그러니 저런 전문 판매장 하나쯤은 갖고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 겨울철이면 이 부근은 오징어풍물거리로 변한단다. 도로변이 온통 오징어 덕장으로 변한다는 것이다. 그런 풍광을 찍으려는 사진작가들이 자주 찾아올 정도란다.



망양정휴게소에 가까워져 가면서 바닷가 기암들이 많이 커졌다. 그 숫자도 아까보다 많이 늘어났다. 거기다 어떤 곳에서는 해식애(海蝕崖)가 나타나기도 한다.



그런 풍광은 15분 후에 만나는 망양정휴게소에서 정점을 찍는다. 이 휴게소는 해안가 바위절벽에 걸터앉은 여건 덕분에 경관이 빼어난 것으로 소문났다. 동해 바다와 절벽이 어우러지면서 멋진 풍광을 펼쳐낸다는 것이다. 휴게소 건물에는 스카이워크도 만들어놓았다. 스릴을 느끼면서 아름다운 풍광에 도취되어 보라는 모양이다. 아래층에 있는 화장실로 내려가는 계단도 놓치지 말자. 인물사진의 배경으로 바다 풍경을 넣을 수 있는 포토죤이기 때문이다. ! 휴게소 조금 못미처에서 기성면(망양리)이 끝나고 매화면(덕신리)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깜빡 빼먹을 뻔했다.




이후부터는 휴게소에서 합류한 집사람과 함께 걷는다. 체력안배를 위해 코스를 단축한 집사람이 미리 휴게소에 도착해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도착할 때까지 엔젤리나 커피 한 잔으로 시간을 때우면서 말이다. 잠시 후 탐방로는 7번 국도와 만난다. 통행량이 많지만 안전을 걱정할 필요는 없다. 국도와는 별개로 탐방로를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국도를 따라 걷는데 건너편에 덕신휴게소가 보인다. 덕신해안이 가까워졌다는 얘기일 것이다.



20분 후에 만나게 되는 덕신1리에서 탐방로는 해안가로 되돌아간다. 계속해서 7번 국도를 타면 고분공원(古墳公園)이 있는 매화리에 이르게 되나 해파랑길은 해안길을 따르도록 나있다. 덕분에 우린 5~6세기의 묘제문화(墓制文化)를 볼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그뿐만이 아니다. 매화리는 벽화마을로 더 유명하다. '공포의 외인구단'의 만화가 이현세의 작품이 마을을 점령하고 있기 때문이다. 까치 오혜성과 마동탁, 엄지의 얼굴에 잠시나마 1980년대로 돌아갈 수 있다는데 아쉬운 일이라 하겠다. 참고로 고분공원(古墳公園)에는 유구와 유물의 특징이 잘 드러나는 3호와 36, 51, 56호 고분과 그 부곽 3, 80, 82호 등 10기의 돌덧널 무덤껴묻거리들이 복원되어 있다.



덕신리 앞 해변은 모래사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규모도 꽤 큰데다 해안방재림(海岸防災林)도 조성중이다. 하지만 내버려졌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황량한 모습이다. 하지만 이곳은 1991년에 개장한 해수욕장이란다. 길이 300m, 폭이 50m이니 크지도 작지도 않은 규모라 하겠다. 특히 이곳에서는 스쿠버다이빙과 수상스키를 즐길 수 있다고 한다. 참고로 덕신(德新)이란 지명은 조선시대 때 덕신역이 있었다는 데서 유래된 이름이라고 한다. 때문에 역말이라고도 불린단다.




오덕교(오산리와 덕신리에서 한 글자씩을 따왔지 않나 싶다)를 건너면 오산1(烏山一里)‘. 덕신리를 지난지 15분만이다. 이 마을은 오천(烏川)‘이란 이름으로도 불리는데 뒷산이 까마귀 머리모양으로 생긴데다, 앞 냇가에도 까마귀가 많이 서식했다는 데서 유래된 이름이란다.



방파제를 겸하고 있는 도로변 난간은 벽화를 그려 넣었다. 맨숭맨숭한 시멘트벽이 그림으로 채워지자 분위기 싹 바뀌었다. 좋은 발상이라 하겠다. 다만 다양한 변화를 주지 못하고 똑 같은 그림을 일렬로 배치한 것은 흠이라 하겠다.



잠시 후 오산항에 이른다. 오산항은 인근에서 조업하던 배들이 피항(避港)할 수 있는 항구로, 울진군에서 세 번째로 큰 곳이다. 정치망 어선들이 잡아온 활어를 경매하는 아침 풍경이 볼만하다고 알려져 있다. 특히 미역은 밀물과 썰물이 교차하는 탓에 그 맛이 매우 뛰어나 고포 미역 못지않게 인기란다.



다음은 오산2초산마을이다. 1670년경 안동 김씨가 이곳에 터를 잡았을 때만 해도 지심이라 했는데, 1680년에 울산 임씨가 마을에 들어오면서 뒷산에 숲이 무성해지고 자손이 번성하기를 바라면서 초산(草山)‘으로 개칭했다고 전해진다. 도로변의 조형물은 이곳에서 홍게로 되돌아간다.



또 하나 눈에 띄는 것은 바닷물에 아랫도리를 담그고 있는 작은 바위섬이다. 발을 딛고 설 공간도 없는데 다리를 놓은 것이다. 조그만 특징까지도 흘려버리지 않고 관광에 활용하려는 의도가 돋보인다 하겠다.



오산해변은 길면서도 너른 모래사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해안에 들어선 소나무 숲도 울창한 편이다. 하지만 편의시설은 눈에 띄지 않는다. 해수욕장으로는 개발되지 않았다는 얘기일 것이다. 도로 건너의 울창한 송림에 국립수산과학원 동해연구센터가 들어있으니 이렇게 너른 모래사장을 독차지 하고 있는 셈이다.



10분쯤 더 걷자 오산3‘, ’무릉마을이 나온다. 한자로는 무릉(武陵)이라 쓴다니 그만큼 경관이 좋다는 의미가 아닐까 싶다. 그래선지 마을 앞 도로변에 작은 쉼터를 만들어놓았다. 새천년을 맞이하여 아름다운 무릉 땅을 후손에게 물려주려는 마을 사람들의 마음이 담긴 숲이란다. 이름 또한 새천년생명의 숲이라는데 맞는지는 모르겠다. 또 다른 특징도 있다. 홍게를 머리에 인 기둥들이 바닷가를 장식하는데 대게와 미역, 오징어 등 이 지역 특산물들을 중간 어림에 그려 넣었다.



간이 물양장(物揚場)도 보인다. 오산항까지의 거리가 부담스러운 배들을 위한 시설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텅 비어있다. 하긴 태풍이 지나간다는데 그 누가 배를 대겠는가.



무릉마을을 지나면서 바다와 육지는 한껏 가까워졌다. 그 덕분에 강한 파도와 바람이 만들어낸 물방울이 몽환적인 분위기를 한껏 연출하고 있다. 기암괴석과 낙락장송들이 자꾸만 걸음을 멈추게 만든다. 풍경에 취해 자꾸 걸음이 늦어진다.



파도 속에서 거대한 바위군락이 치솟는다. 모나지 않고 매끈한 모양새이다. 주름이 깊은 것도 보인다. 파도가 지나간 흔적이 아닐까 싶다. 그렇다면 오늘도 갯바위는 주름 하나 새롭게 만들고 있을 것이다.



무릉마을(오산3)를 지나면 매화면은 끝을 맺는다. 이어서 탐방로는 근남면으로 들어선다. 동정마을(진복2)이다.



10분쯤 더 걷자 진복2‘, 동정마을에 이른다. 동정(洞庭)이란 호수 같은 바다를 둔 마을의 전경이 중국의 양자강 기슭 동정호(洞庭湖)를 닮았다는 데서 연유된 이름이라고 한다. 그래선지 마을 앞에는 제법 큰 포구가 만들어져 있다. 그 규모에 걸맞게 치장이라도 하려는 듯 정자를 짓는가 하면 바닥에는 트릭아트(trick art)‘까지 그려 넣었다.



동정항에서 20분 남짓 더 걷자 진복1, ’선진마을이다. 선진마을 부근은 예로부터 멸치후리로 유명세를 떨쳤던 곳이란다. 멸치후리란 어부들이 '당선' 이라 부르는 배를 타고 나가 멸치떼를 찾아내면 '망선'에 그물을 싣고 나가 그물을 둥글게 쳐서 멸치떼를 후려 낼 때에 부르는 소리이다. 당시 부르던 그물치기노랫말이 지금까지 전해져 오고 있단다.




진복리 해안 역시 수려하다. 온갖 상상력을 불러일으키게 만드는 기암괴석이 사방에 널려있다. 원래부터 저런 형상은 아니고 오랜 시간 파도와 바람에 쓸리고 깎여 지금의 모습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 어느 뛰어난 조각가가 저런 모양을 새길 수 있을까. 섬세하면서도 엉뚱한 것이 조물주만이 가능하다 하겠다.




멋지게 생긴 바위들은 하나 같이 정수리에 소나무를 이고 있다. 단단한 돌에 뿌리를 내린 생명력이 경이롭다. 한 생애가 지나가는 것처럼 하늘을 머리에 이고 아득한 수평선을 향해 무념무상으로 서 있다.



그런 절경들 가운데서도 백미(白眉)는 단연 촛대바위라 하겠다. 길쭉하면서도 타원형으로 생긴 바위가 바닷가에 서있는데, 정수리에서 자라는 나무가 인상적이다. 그 형상이 촛대를 빼다 닮았다고 해서 촛대바위라는 이름으로 불린단다. 하지만 이런 절경이 사라질 뻔한 적도 있었다. 1986년 울진해안도로를 개설하면서 장애물로 여겨 제거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주민의 요청과 공사관계자의 노력으로 남아있는 게 천만 다행이라 하겠다.




바닷가 기암절벽들은 하나같이 옅은 안개 속에 잠겨있다. 그야말로 한 폭의 수묵화(水墨畫)이다. 옛날 사람들은 저런 바위들을 결코 내버려두지 않았다. 풍류에 취한 신선(神仙) 하나쯤은 꼭 올려놓았다. 그래서 옛날 사람들이 이곳 울진을 일러 선사(仙槎)‘라 했었나 보다. 선사란 하늘의 은하수로 올라가는 뗏목이라는 뜻으로, 고문헌에 나타나는 울진의 옛 이름이기도 하다. () 무제(武帝) 때 장건이 선사를 타고 은하수에 올라 견우와 직녀를 만나서 베틀을 괸 돌을 얻어왔다는 전설에서 유래됐단다. 자연과 더불어 유유자적 평화로운 삶을 살아간다는 또 다른 표현이라 하겠다.



해변에는 생김새가 각기 다른 갯바위들이 널려있다. 어떤 것은 몸을 포개기도 한다. 그 위로 거센 파도가 숨차게 들이친다. 그것도 태풍이 몰고 파도답게 바위를 통째로 삼켜버리기도 한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성 싶은 절경들이 끝나는가 싶으면 탐방로는 산포3에 이른다. 선진마을을 지난 지 30분만이다. 이 마을은 1600년 경 터를 잡은 홍천 용씨와 함께 제주 고씨가 마을을 개척했는데, 당시는 마을에 화재가 자주 발생하여 동네의 모습이 검게 보인다고 해서 흑포동(黑浦洞)이라 불렀다고 한다. 그러다가 아예 화재를 없애기 위해 마을 뒷산 네 곳에 화강(火瓨)을 묻어놓고 매년 2월 초하루에 물을 가득 채우고 제()를 올려 마을의 평안을 기원했단다. 다른 설명이 없는 걸 보면 그 이후 화재가 없어졌다는 얘기일 것이다. 마을 앞 해변은 모래가 곱다. 야트막한 바위도 심심찮게 보인다. 가족 단위 피서지로도 인기가 좋을 것 같다.



잠시 후 산포2에 이른다. 해안의 경치가 좋다고 해서 가리개(佳里介)’라고 불리던 마을이다. 1650년부터는 마을 앞 해안선에 모래사장이 길게 펼쳐진다고 해서 가는 개(細浦)’라 고쳐 불렀단다. 마을을 지나자마자 삼거리가 나타난다. 그런데 도로 표지판이 사람을 헷갈리게 만드는 게 아닌가. 왼편은 해맞이광장으로 가는 길이고 직진하면 망양정과 망양해수욕장으로 연결된다는데, 그게(망양정) 그거(해맞이광장)로 여겨지니 말이다. 일단은 망양정 방향의 도로에 그려진 파란색 선을 믿어보기로 했다. ‘동해안자전거길의 표식인데 대부분의 구간이 해파랑길과 겹치기 때문이다. 이때 선두대장으로부터 신호가 온다. 잘못 가고 있다는 것이다. 고집을 좀 부리다가 삼거리로 되돌아오니 해맞이광장 방향의 도로변 전신주에 해파랑길 표식이 붙어있다. 해파랑길과 자전거길이 삼거리에서 나뉘어 있었던 것이다.



도로를 따라 200m쯤 걸으니 울진대종과 망양정으로 들어가는 길이 오른편으로 나뉜다. 이곳에서부터 울진해맞이공원(또는 망양정해맞이공원)이 시작된다고 보면 되겠다. 이어서 200m쯤 더 진행하자 해맞이광장이 나타난다. 공원의 핵심축인 이곳에는 다양한 문화 행사를 할 수 있도록 넓은 공터가 조성되어 있으며, 가장 큰 행사라 할 수 있는 해맞이 행사의 타종식을 위한 울진대종(蔚珍大鐘)도 만들어져 있다. 부산시 무형문화재 제12호인 박한종이 만 듯 것으로 높이 286에 무게가 무려 7,518이나 나간단다. 문양은 국보 제29호인 성덕대왕신종(일명 에밀레종)의 아름다운 비천상을 응용했단다.



바닷가 언덕에는 해맞이전망대를 지어놓았다. 이곳은 원래부터 일출장소로 유명했다고 한다. 해발 45m 정상에 올라 바다를 바라보면 섬이나 다른 장애물이 없어 떠오르는 해를 한눈에 쏘옥 담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인근 주민들은 공원이 조성되기 전부터 해맞이행사를 열어왔단다. 그중에서 가장 조망이 좋은 곳에 전망대를 들어앉힌 것이다. 전망대에 오르자 난간에 소원패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해에 비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던 모양이다.



이번에는 해맞이공원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망양정(望洋亭)으로 향한다. 울창한 산죽(山竹) 숲이 만들어놓은 터널이 일품으로, 중간에 갈림길을 두 차례 만나지만 이정표가 세워져 있으니 어렵지 않게 찾아갈 수 있을 것이다.



잠시 후 관동팔경의 하나인 망양정(望洋亭)에 이른다. 아까 기성면에서 만났던 망양정 옛터의 정자를 옮겨지은 것이다. 1860(철종 11) 울진현령 이희호(李熙虎)가 망양리의 정자가 허물어진 채로 방치되고 있는 것을 한탄하며 지금의 자리로 이건(移建)했다고 한다. 그 이후 여러 차례 보수를 거치다가 2005년 울진군이 완전해체한 뒤 새로 지었다. 정자에는 꽤 많은 액자들이 걸려있었다. 어두컴컴한 탓에 누구의 글인지는 확인할 수 없었지만 망양정을 노래했던 정철(송강별곡)이나 김시습 등의 시문(詩文)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그들이 풍경을 노래한 망양정은 현재의 망양정이 아니다. 겸재와 김홍도가 그려냈던 망양정도 이곳이 아니다. 숙종이 내린 관동제일루(關東第一樓)’를 달았던 정자도 이곳이 아니었음은 물론이다. 이들이 노래한 곳은 망양정 옛터에 있던 정자였다. 옛터에 새로운 정자를 짓고 유허비까지 이전 설치한 것은 그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올라왔던 반대방향의 계단을 따라 내려가니 다시 해안도로가 나온다. 아까 길이 헷갈렸던 삼거리에서 직진했더라면 이곳에서 만났을 것이다. 도로 건너편은 망양정해수욕장이다. 수심이 얕을 뿐만 아니라, 폭은 좁지만 동해안에 있는 해수욕장 중에서는 수온이 높은 편이란다. 주변의 송림 또한 망양정해수욕장의 자랑거리란다. 하지만 해수욕장으로 들어가 보지는 않았다. 태풍이 소멸되었다고는 하지만 가까이 다가가기에는 부담스러울 정도로 파도가 높았기 때문이다.



이젠 수산교로 향할 차례이다. 울진의 젓줄이라는 왕피천(王避川)과 어깨를 나란히 걷는다. 강 건너에는 엑스포공원이 들어서있다. 2005년에 개최된바 있는 울진세계친환경농업엑스포의 주 행사장을 기반으로 해서 만든 공원이란다. 걷는 도중에 울창한 송림 속에 들어앉은 캠핑장도 만났는데, 태풍이 예고된 속에서도 의연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캠핑족들이 의외로 많이 보였다.




트레킹 날머리는 수산교(울진군 근남면 산포리 798-5)

그렇게 10분쯤 걷자 왕피천대교에 이르고, 다리 아래를 지나자 이번에는 수산교가 나오면서 트레킹이 종료된다. 해파랑길 안내도와 스탬프보관함은 다리 앞에 설치되어 있다. 오늘은 총 3시간 30분이 걸렸다. 핸드폰의 앱이 16.7를 찍고 있으니 빠르게 걸은 셈이다. 태풍이 몰고 온 바람이 뒤에 밀어준 덕분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