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축도(防築島)

 

여행일 : ‘19. 7. 28()

소재지 : 전북 군산시 옥도면 말도리

트레킹 코스 : 선착장소망교회뒷장불전망대독립문바위모래미장불생끄미장불방축구미장불인어공주상선착장(소요시간 : 2시간 10)

 

함께한 사람들 : 좋은 사람들


특징 : 군산 선착장에서 37가량 떨어져 있는 방축도(防築島)는 이름 그대로 막기 위해 쌓은 섬이다. 어깨동무하고 있는 횡경도와 명도, 말도와 함께 바람과 파도로 부터 선유도와 무녀도, 장자도 등 고군산군도(古群山群島)를 보호한다. 면적 2.19(해안선 길이 6.5)80여 명이 살고 있는 작은 섬이지만 역사는 꽤 오래되었다고 한다. 통일신라시대 장보고가 해상권을 장악하고 청해진을 설치할 무렵 당나라 상인들이 표류되어 떠다니다가 이곳에 도착하여 살게 되었다는 주장이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섬에는 독립문바위와 시루떡바위, 노적봉 등 눈요깃거리들이 제법 많은 편이다. 흙으로 뒤덮인 밋밋한 섬이지만 바닷가는 해식애(海蝕崖)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참고로 방축도는 하나의 섬에 여러 가지 지명을 담고 있는 섬이다. 북서풍을 막아준다는 의미의 방축금, 가운데 위치한 마을로 경계를 이룬다 하여 샛금·쌩금이·모래미, 마을 섬 길이가 길며 빗겨 다닌다 하여 빗경이·진대성·밝으늘 등으로 불린다.



찾아오는 방법

방축도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장자도(군산시 옥도면 장자도리)’까지 와야만 한다. 방축도로 들어가는 여객선이 이곳 장자도 선착장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옛날에는 군산항에서 배를 탈 수밖에 없었으나 신시도와 무녀도를 잇는 고군산대교’, 무녀도와 선유도 사이의 선유대교’, 선유도와 장자교를 잇는 장자대교가 잇달아 놓이면서 차량의 진입이 가능해지자 중간기착지인 이곳 장자도에서도 배를 탈 수 있게 되었단다.



무인도인 횡경도와 방축도, 명도, 말도가 길게 늘어서서 서해에서 밀려오는 바람과 파도를 온 몸으로 막아내는 모양새이다. 나란히 서 있는 이들 섬 앞으로 관리도가 있고, 그 안쪽으로는 선유도, 장자도, 대장도, 무녀도가 서로 연도가 되어 한 몸을 이루고 있다. 이들 섬 안쪽에는 호수와 같은 바다가 있다. 말 그대로 고군산군도 섬들은 섬 속의 섬답게 잔잔하기 짝이 없는 바다 속에서 평온하게 떠있다고 보면 되겠다.



오전 11시에 출발하는 차도선(차도선(車渡船 : 고군산 카페리호)을 타면서 방축도 여행이 시작된다. 군산항에서 출발하는 이 배는 장자도를 중간기지로 삼은 뒤 관리도와 방축도, 명도, 말도, 관리도의 순서로 한 바퀴 돈 다음 장자도로 되돌아온다. 1항차이다. 2항차는 14:00에 장자도를 출발해서 같은 순서로 한 바퀴 돈 다음 이번에는 군산으로 되돌아 나간다. 하지만 낚싯배를 이용하는 사람들도 많은 편이란다. 뱃삯은 조금 비싸지만 시간 조절이 가능한데다 서해의 도원경(桃源境)으로 소문난 십이동파도(十二東波島)까지 함께 둘러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일행은 카페리호(비로 인해 사진촬영 불가)로 들어갔다가 나올 때는 낚싯배를 이용했다. 기상악화를 우려해 덩치가 큰 차도선을 이용했는데, 파도가 높아지자 이게 오히려 장애요인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파도가 높을 경우 차도선은 접안(接岸)이 불가능하단다.



장자도를 출발한지 20분 만에 방축도에 도착했다. 오는 도중에 관리도에 들렀음은 물론이다. 선착장에 내리자 방문을 환영한다는 현판(懸板)이 길손을 맞는다. 이 동네도 역시 관광서비스업의 비중이 서서히 늘어가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참고로 방축도는 고군산군도에 속한 작은 섬이다. 여기서 고군산(古群山)옛날 군산을 의미한다. 현재의 군산은 하나의 도시이지만 원래는 지금의 군산 앞바다에 떠있는 섬들을 아우르는 지명이었다고 한다. 바다 위에 점점이 솟아있는 섬들이 마치 산봉우리의 무리처럼 보여 군산(群山)’이라 불렀다는 것이다.



방축도 선착장은 유난히 방파제가 높다. 세찬 바람과 높은 파도를 피해 정박한 배들의 안전을 지키기 위함일 것이다. 방축도라는 이름에 걸맞는 방어적 축대라 하겠다. 그것으로도 부족했던지 안쪽에 또 다른 방파제를 쌓아올렸다. 간이 물양장(物揚場) 시설을 갖춘 외황(外港)이 못미더운 작은 배들의 대피항으로 사용하고 있지 않나 싶다.



포구에는 관광안내소가 마련되어 있어 출항시간을 못 맞춘 여행객들에게 쉼터의 역할을 해준다. 그 옆 녹색 패넬(panel)에 둘러싸인 건물은 내연발전소이다. 이 발전소에서 나오는 전기는 방축도뿐만 아니라 이웃 섬인 명도와 말도까지 공급된다. 옛날은 저녁 6시부터 12시까지 제한적으로 전기를 공급했지만, 증설이 이루어진 지금은 24시간 전기 공급이 가능해져 냉장고 사용은 물론이고 겨울철 보일러 난방까지도 가능하단다.



마을 담벼락은 온통 벽화(壁畫)들로 채워져 있다. 그런데 하나같이 동양화 기법으로 그려져 있다. 특이하다 하겠다. 마을의 설화(說話)를 벽화로 만드는 사업을 펼쳤다고 하더니 그 영향이 아닐까 싶다. 아무래도 현대화보다는 동양화로 그려놓은 설화가 더 우리에게 익숙할 것이기 때문이다.



길을 나서는데 맞은편에서 전기자동차가 달려온다. 최근 들어 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 아닐까 싶다. ‘탄소제로 ᆞ에너지 자립 섬’, 즉 전기자동차만 돌아다니고, 전기를 자급자족하는 섬으로 가꾸는 게 요즘의 추세이기 때문이다. 작년에는 전남도와 한전KDN간의 에너지산업 육성·조성 업무협력협약식에 참석한 이낙연총리가 활짝 웃고 있는 사진이 첨부된 관련기사까지 올라온 적도 있었다.



발전소를 지나 해안도로를 따라 마을로 가다보면 왼쪽 언덕바지에 어업인안전쉼터 건물이 보인다. 이 또한 복지국가를 향해가고 있는 요즘 흔히 볼 수 있는 풍경 중의 하나다. 마을로 들어서지 않고 언덕바지로 올라서면 소망교회가 나온다. 교회 앞에서 길이 갈리는데 오른쪽은 도로로 이어지는 길이고 왼쪽은 또 다른 마을로 이어진다. 그건 그렇고 오른쪽으로 보이는 방축구미 마을은 매립한 듯 가운데에 농지가 들어있다. 그 주위로 집들이 들어서 있는 모양새이다. 길도 그 둘레로 이어지는 순환도로 형식이다. 집들도 오밀조밀 있는 것이 아니라 조금은 산만하게 분포되어 있다.



계속해서 순환도로를 따른다. 교회 앞에서 내리막길로 변하는데 이곳에도 마을이 들어섰다. 마을이 끝나갈 즈음 가로수 역할을 하고 있는 울창한 동백나무 숲을 만난다. 이곳에서 샘끄미장불로 이어지는 갈림길(이정표 : 독립문바위/ 샘끄미·동백숲)이 나뉜다.



길을 걷다보면 우물도 만나게 된다. 가뭄에도 물이 마르지 않는다는 달샘이 아닐까 싶다. 샘은 위를 뚜껑으로 굳게 닫아걸었다. 옆의 작두샘도 녹이 덕지덕지 슬어있는 채로 놓여있다. 지금은 사용하고 있지 않다는 증거일 것이다. 맞다. 마을에 상하수도가 들어오고 난 뒤부터 죽은 샘이 되었다고 한다. 그런 달샘을 옛날 형태로 복원해놓은 것이다. 달샘을 중심으로 아낙네들이 모여 빨래를 하고, 식수로도 사용하던 옛 추억이 못내 그리웠던가 보다. 하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달샘의 복원지는 따로 있었다. 그곳에는 애기돌(작은돌, 모래미돌, 아기·사랑의 상징)과 올돌(넓은 돌, 쌩끄미돌, 여성의 상징인 음), 장돌(긴돌, 방축구미돌, 남성의 상징인 양) 등 샘에서 출토된 3개의 돌도 전시되고 있었다.



어린이놀이터도 만들어 놓았다. 초등학교가 폐교된 이후 어른들만의 섬으로 남아있으려니 했는데 꼭 그렇지만도 않은 모양이다. 이곳 방축도의 또 다른 이름은 쌩끄미라고 한다. 섬에서 50여기의 고인돌이 발견되었으니 역사가 깊은 섬이라 하겠다. 그래서 생태문화체험 및 서해안 지질학 연구의 대상이 되기도 한단다. 2009년도에는 전라북도가 실시한 참 살기 좋은 마을가꾸기 사업콘테스트에서 최우수마을로 선정되기도 했단다. 달샘을 복원하고 동백나무 숲을 조성하는 등의 주민들 노력이 좋은 평가를 받았기 때문이다.




쌩끄미마을은 방축도(防築島)3개 마을 가운데 하나이다. 왼편의 마을을 모래끄미, 중간에 있는 마을을 쌩끄미, 그리고 오른편에 있는 마을은 방축구미라고 부른다. ‘끄미가 마을이란 뜻을 갖고 있다니 은 가운데를 나타내는 방언인 모양이다. ‘쌩끄미가운데 있는 마을이란 뜻이라니 말이다. 역사가 깊은 섬이라 그런지 몰라도 제주도 방언처럼 재미있는 지명이다.



잠시 후 모래와 자갈이 반반으로 섞여있는 해안에 이른다. ‘쌩끄미장불이란다. 이정표는 샘끄미로 적고 있으니 참조한다. 아무튼 장불이란 물이 빠지는 썰물 때 드러나는 너른 모래밭, 갯벌을 뜻하는 전라도 방언이다. 바닷가에 사는 사람들은 앞장불, 뒷장불, 마루장불 같이 위치나 생김새를 나타내는 대명사 뒤에 장불을 갖다 붙인다. 이곳 방축도에도 방축구미장불모래미장불’, ‘뒷장불등이 있다.



쌩끄미 장불은 배를 세워놓을 수가 없어 방축구미장불을 배의 피항지로 삼고 있단다. 고인돌 근처에 있는 모래미장불도 마찬가지란다. 바닷가에 널려있다시피 하는 녹슨 닻들이 그 증거가 아닐까 싶다. 옛날에는 억지로라도 배를 대었겠지만 방축구미에 깔끔한 포구가 들어서고 난 뒤에는 그럴 필요가 없어졌을 것이다.




삼거리로 되돌아와 조금 더 걸으면 만나게 되는 정자 앞에서 또 다른 삼거리(이정표 : 독립문바위/ 모래미)가 나타난다. 방축도의 명물인 노적봉을 만나고 싶다면 이곳에서 왼편으로 방향을 틀어야 한다. ! 이 부근에 고인돌유적이 있다고 했는데 확인할 수는 없었다. 이정표가 세워져 있지 않아 찾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고인돌유적 뿐만이 아니다. 같은 이유로 달샘 복원지도 가보지 못했다.



바다 방향으로 잠시 내려가자 모래사장이 나타난다. 간이선착장이 만들어져 있는 모래미장불이다. 하지만 배는 보이지 않는다. 필요할 때만 배를 댄다는 얘기일 것이다. 그래선지 해변에 들어선 서너 채의 가옥들 주변도 잡초만이 무성하다. 건물의 내부도 텅 비어있었음은 물론이다.




자갈이 꽤 많이 섞인 모래사장의 양 옆은 갯바위다. 오른편으로 눈을 돌리면 작은 바위섬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노적봉(露積峯)’이란다. 곡식을 한데 모아 쌓아올린 모양새라는 얘기일 것이다. 밀물 때라서 가까이 다가갈 수는 없었지만, 멀리서 본 노적봉은 바위산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지세가 험했다. 보기 드문 기암(奇岩)이라 하겠다. 거기다 숱한 풍상을 고스란히 다 겪었을 것 같은 소나무가 함께 어우러지며 멋진 경관을 만들어내고 있다. 과연 방축도의 명물 가운데 하나로 꼽힐 만하다.



포구 주변에는 커다란 플라스틱 통들이 널려있다. 인근 해역에서 많이 잡힌다는 멸치를 젓갈로 담아놓은 통들이 아닐까 싶다. 일 년쯤 묵힌 뒤 가장 맛있을 때 김장젓갈로 파는데 주민들의 큰 수익원이라고 한다. 자식 키우고 가르치며 살아온 삶의 흔적인 셈이다.



삼거리로 되돌아와 조금 더 진행하면 방축도 교육회관이 나타난다. 들머리에 세워놓은 이정표에는 펜션이라고 적혀있다. 교육회관으로 지어졌으나 현재는 여행객의 숙박시설로 활용하고 있다는 얘기일 것이다. 건물 앞 송림(松林)에는 운동기구와 벤치, 평상, 그네 등을 놓아두었다. 주민들의 쉼터 역할도 겸하는 모양이다. ! 숲속에는 희망의 섬, 방축도를 꿈꾸며라는 빗돌도 보인다. 행정안전부에서 주관하는 행복한 우리 동네 만들기 사업에 참여하여 대상을 차지한 것을 기념해 세운 것이란다.




교육회관 앞에서 길은 세 갈래(이정표 : 독립문바위/ 등산로/ 펜션)로 나뉜다. 오른편 언덕, 그러니까 등산로라고 표시된 방향의 길목에는 뒷장불전망대가 팔각정으로 지어져 있다. 전망대에 오르면 시야가 활짝 열린다. 이웃 섬인 광대섬이 눈앞으로 성큼 다가오는데, 유인도서인 명도와의 사이에서 징검다리 역할을 하는 모양새이다. 날씨가 좋으면 십이동파도와 새만금까지 눈에 담을 수 있단다. 그런 풍광들을 사진에 담을 수 있도록 포토죤도 만들어놓았다. 고마운 일이라 하겠다. 그러나 뜬금없는 시설물도 보인다. ‘관리도 관광안내도를 세워놓은 것이다. 두 섬이 서로 도와가자는 의미일지는 모르겠으나 이곳에서는 관리도가 보이지 조차 않는다. 그런 목적이었다면 관리도가 한눈에 쏙 들어오는 방축구미장불에다 세웠으면 좋았을 걸 그랬다.




이정표에는 나타나지 않지만 등산로와 독립문바위 사이에는 길이 하나 더 있다. 이 길을 따라 50m쯤 내려가면 뒷장불에 내려선다. 몽돌해변인데 모래미장불이나 쌩끄미장불 만큼 넓지는 않지만 아늑한 것이 해수욕장으로 제격이라 하겠다. 조금 전에 보았던 펜션에서 머문다면 편의시설이 없다는 불편까지 해소할 수 있으니 가족이나 친구들끼리 놀기에 부족함이 없겠다. ! 이곳에는 수석(壽石)으로 제격인 돌들도 제법 보였다. 그래서 돌 수집가들이 몰래 들어와 채집해가기도 한단다. 삼가야 할 일이다.



해변은 양쪽이 모두 해식애(海蝕崖)로 이루어져 있다. 바위 벼랑은 날카롭지도 그렇다고 거대하지도 않다. 대신 낚시꾼들이 앉기엔 안성맞춤인 모양새이다. 누군가 이곳 방축도를 바다낚시의 명소라 했는데 그 말이 사실이었던가 보다.



이젠 독립문바위로 향할 차례이다. 이정표가 지시하는 방향으로 들어서자 울창한 숲속을 헤집으며 데크 로드(deck road)가 놓여 있다. 탐방로는 중간에 놓인 산봉우리 하나를 우회해가며 바위절벽 위에 걸터앉은 전망대로 연결시킨다. 그러다보니 가파른 계단을 길게 오르기도 한다.




탐방로는 정상 갈림길명도 갈림길을 지난 뒤에야 전망대에 데려다 놓는다. 전망대의 위에는 비탈지면서도 좁아터진 여건을 무릅쓰고 팔각정까지 지어놓았다. 여유롭게 독립문바위를 조망하다가 돌아가라는 모양이다.




그럼에도 눈앞에 펼쳐지는 조망은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독립문바위도 나뭇가지 사이로 살짝 드러날 따름이다. 방축도와 광대섬을 잇는 인도교가 눈에 들어오는 게 그나마 다행이라 하겠다.



삼거리로 되돌아와 이번에는 명도 방향으로 향한다. 그리고 갈림길 하나를 더 지나자 또 다른 전망대가 나타난다.



전망대에 서자 독립문바위가 눈에 들어온다. 하지만 나뭇가지 사이로 나타나기 때문에 완벽하지가 않다. 그게 아쉽다면 바닷가로 내려가면 된다.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서 독립문바위를 보려고 바닷가로 내려선다. 동굴이 나타나는가 싶더니 수직에 가까운 바위벼랑이 길손을 맞는다. 벼랑에는 굵은 밧줄이 매어져 있다. 그렇다고 안전까지 보장되지는 않으니 조심해야 할 일이다. 중심을 잘 잡아야 함은 물론이고, 앞뒤 사람 간에 간격을 두는 등 안전에 주의를 기울여야겠다.




잠시 후 바닷가에 내려서면 독립문바위가 코앞이다. 바위는 아랫도리를 물속에 담그고 있다. 밀물 때라서 일 것이다. 그래선지 구멍을 둘러싼 바위 모양이 마치 아치처럼 보인다. 저런 모양새가 서울 서대문구에 있는 독립문과 비슷하다고 해서 같은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하지만 이곳 주민들은 구멍바위라고도 부른단다. 바위 한가운데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기 때문이란다. ‘북문바위라고도 불린다니 참조한다.



같은 독립문바위이지만 홍도의 그것만큼은 못하다. 하지만 작은 고깃배는 능히 드나들 수 있단다. 그래선지 이곳은 사진작가들이 즐겨 찾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구멍을 빠져나가는 장면이 아니더라도 구멍 뒤쪽으로 배가 지나가는 풍경은 한 폭의 풍경화가 되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그것도 잘 그린 그림으로 말이다.



고개라도 돌릴라치면 광대섬을 잇는 인도교가 눈앞으로 성큼 다가온다. 말도와 명도, 방축도 등 3개의 유인도서와 무인도서인 보농도와 광대섬을 인도교(人道橋)로 이어 명품 트레킹코스로 만들겠다며 놓고 있는 다리이다. 참고로 총 4개소에서 진행되는 인도교 설치 계획은 제1교 말도~보농도 308m, 2교 보농도~명도 410m, 3교 명도~광대섬 477m, 4교 광대섬~방축도 83m 등 총 연장 1278m로 설계됐다.



되돌아 나오다가 왼편으로 길이 나있기에 일단은 들어서고 본다. 희미하나마 길이 나있는데다, 방향으로 보아 광대섬으로 연결되는 길일 것 같아서이다. 거기다 방축도와 광대섬 사이에는 출렁다리가 놓여있다는데 어찌 가보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또 하나의 명물을 보겠다는 소박한 내 꿈은 이뤄지지 못했다. ‘공사중 출입금지라는 현수막과 함께 길이 끊겨있었기 때문이다. 2개월 전쯤 군산시에서 추진하고 있는 인도교 설치공사가 지지부진하다는 기사를 본 것 같은데 사실이었던 모양이다. 당시 기사는 2022년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는 이 공사가 지난 겨울부터 중단되고 있다고 했다. 한시라도 빨리 재개되어 이 섬들을 한꺼번에 둘러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삼거리로 되돌아와 조금 더 오르면 또 다른 삼거리(이정표 : 정상/ 독립문바위/ 명도)가 나온다. 일단은 정상으로 향하고 본다. 이정표까지 세워져 있으니 어찌 지나칠 수 있겠는가. 정상으로 오르는 길은 널따랗다. 양 옆에 밧줄 난간을 쳐놓았을 뿐만 아니라 조금 가파르다 싶으면 어김없이 통나무 계단을 깔아놓았다. 그러나 사람들이 다니지 않은 탓에 웃자란 잡초가 주인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었다.



잡초에 싸대기 두어 대 맞아가며 7분 정도를 오르자 정상이다. 널찍한 공터로 이루어진 정상은 벤치 두 개가 놓여있을 따름이다. 정상석은 물론이고 그 흔한 이정표 하나 보이지 않는다. 그저 대구 뫼들산악회에서 매달아놓은 표지기(정상, 99.9m)가 이 모든 것을 대신하고 있을 따름이다. 하지만 이 표지기마저도 봉우리의 이름은 적지 못했다. 이름이 없는 봉우리라는 증거일 것이다.



방축구미 마을로 되돌아와 이번에는 인어상을 만나러 간다. 포구 안쪽에 따로 만들어놓은 피난항의 가장자리를 따르다보면 들머리인 데크 계단이 보인다.



한참 동안이나 가파른 오름짓을 하던 탐방로가 이윽고 내리막길로 변한다. 이어서 사각의 정자를 지나는가 싶더니 하얀 인어상(人魚像) 앞에 데려다 놓는다.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주민들의 정성을 모아 세운 거란다. 왠지 묘하다는 생각이 든다. 인어에 대한 설화는 모두 외국의 이야기로만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전혀 없는 것은 아니란다. 인천의 장봉도와 여수의 거문도, 부산 해운대에서 인어공주에 대한 설화가 전해지고 있단다.



인어상 앞에서의 조망은 일품이다. 이곳 방축도가 감싸주고 있는 고군산군도의 섬들이 빠짐없이 눈에 들어오는 것은 물론이고, 선착장을 끼고 있는 방축구미마을은 아예 코앞으로 다가와 있다. 방축도에서 가장 큰 마을로 관광안내소와 발전소, 파출소, 마을회관 등 공공시설이 이곳에 모두 모여 있다. 이왕에 시작했으니 하나 더 알고가자. 이곳 방축도는 행정안전부가 선정한 ‘2018년 휴가철 찾아가고 싶은 33에 꼽히기도 했다. 섬 전문가와 관광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심사단이 휴가를 계획하는 여행자들의 다양한 취향을 고려해서 --’, ‘-’, ‘미지의-’, ‘가기 힘든-등 다섯 가지 주제로 분류해 선정했는데 이곳 방축도가 미지의-에 포함된 것이다. 풍경과 자연경관이 아름답지만 그 동안 잘 알려지지 않아 신비의 섬으로 남아있었다는 얘기가 아닐까 싶다.



선착장으로 되돌아와 방파제의 끝으로 다가가자 바위절벽 위에 걸터앉은 인어상이 눈앞으로 성큼 다가온다. 그런데 바위절벽이 시루떡을 찌그러뜨린 모양새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저런 바위를 일러 시루떡바위라고 부른단다. 고서(古書)를 쌓아놓은 듯한 모습, 펼쳐놓은 두꺼운 책장이 바람에 날리는 모습을 하고 있다고 해서 책바위라고 불린단다. 저런 바위들은 과거 조산운동과 같은 큰 규모의 지각운동 때 횡압력으로 만들어진 게 보통이니 참고해두자.



되돌아온 장자도에서 주어진 시간은 무려 3시간, 외톨이 나그네에겐 할 일이 별로 없다. 물회 한 그릇을 안주삼아 소일하다가 방파제로 나오니 우락부락한 바위봉우리로 이루어진 대장도가 바로 건너에 있다. 빼어난 자태이나 수년 전에 이미 올랐던 터이라 감상하는 선에서 만족하기로 한다. 시멘트바닥에 앉아 대장도의 풍경에 더해 해상낚시터의 부교(浮橋)를 오가는 관광객들 숫자를 헤아리다가 나도 모르게 깜빡 잠이 들었다. 도원경(桃源境)에 취하다가 잠이 들었으니 운 좋으면 신선(神仙)이라도 만났으련만 난 그러지를 못했다. 신선을 마주할 정도의 수양이 아직 부족함을 그들도 알았나보다.




한숨 잘 잤는데도 주어진 시간은 아직도 많이 남았다. 이번에는 선유도 해수욕장까지 다녀오기로 한다. 두 섬을 잇는 옛 다리를 건너자 진행방향 저 멀리에 선유도가 빼어난 자태를 드러낸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알려진 곳이다. 전국 어디에 내놔도 뒤떨어지지 않는다는 해수욕장에 이르니 전에 왔을 때는 보이지 않던 타워가 하나 세워져 있다. 짚라인의 탑승장이라는데 차례를 기다리는 줄이 제법 긴 것을 보면 여행객들로부터 사랑을 듬뿍 받고 있는 모양이다.




에필로그(epilogue), 방축도 여행은 명소 탐방과 인근 섬들에 대한 조망 등 크게 두 가지로 나눠 볼 수 있다. 하지만 난 멋진 조망이 펼쳐진다는 큰산의 산행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무심코 앞서가는 일행들을 뒤쫓다보니 쌩끄미장불과 모래미장불 등 명소들을 그냥 지나쳐버렸기 때문이다. ‘100&을 진행하고 있는 그들로서는 인증사진 촬영 장소인 독립문바위를 찾는 게 최우선 목표였을 것이다. 그러니 사진이나 찍고 그 느낌을 글로 옮겨보려는 나와는 그 목적이 완전히 다르다 하겠다. 그런데도 난 그들의 뒤만 쫄쫄 따랐고, 그 결과 주어진 시간에 쫓겨 둘 가운데 하나를 포기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결과적으로 난 조망 산행을 포기했다. 아쉬운 일이지만 어쩌겠는가. 준비가 되지 않은 채로 여행을 따라나선 내 자신을 탓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