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청도(大靑島)

 

여행일 : ‘19. 8. 30()

소재지 : 인천광역시 옹진군 대청면

코 스 : 선진포선착장매바위전망대모래울(기린소나무)서풍받이 트레킹해넘이전망대옥죽동 모래사막농여해변선진포선착장(버스 투어)

 

함께한 산악회 : 좋은사람들

 

특징 : 인천항에서 북서쪽으로 약 171, 옹진반도에서 남서쪽으로 약 40거리에 있으며 백령도(白翎島소청도(小靑島)와 함께 군사분계선에 근접해 있는 국가안보상 전략적 요충지이다. 대청도는 이웃인 백령도와는 완연히 다른 모습이다. 두루뭉술한 분지모양으로 생긴 백령도와는 달리 우람한 남성미를 자랑하는 산들로 이루어져 있다. 때문에 농업이 주축인 백령도와는 달리 어업이 성행하고 있다. 그런 지리적 여건 덕분에 자연을 앞세운 관광지로 각광을 받고 있는데 서풍받이농여해변신이 내린 낙원이란 평을 들을 정도로 빼어난 경관들이 많다. 참고로 옛 문헌에 의하면 원래의 이름은 포을도(包乙島)였다고 한다. '푸른 섬'의 우리 음을 한자로 기록한 것이란다. 이를 다시 한자화한 것이 청도(靑島)이다. 또 대청도를 암도(岩島)라고 불렀다고도 하는데 이는 대청도의 섬 주위가 모두 암벽이기 때문에 붙여진 지명으로 추정된다. 아름다운 이름과는 달리 고려 말 대청도는 유배지였다는 것도 기억해 두자. 고려 말 김방경 장군이 1278년 왕과 공주 제거 모반의 무고로 이곳으로 유배를 왔고, 고려 출신 기황후를 아내로 맞아 유명한 원나라의 황제 순제(順帝)도 대청도로 유배를 왔었다.


 

찾아오는 방법 : 백령도와 같다. 백령도로 들어가는 길에 들르는 중간기착지이기 때문이다. 에이치해운의 하모니플라워호(07:50 출발)와 고려고속훼리() 소속의 코리아킹호(08:30 출발)와 웅진훼미리호(13:00 출발) 등 하루 3척이 왕복 운항하고 있다. 백령도를 출항지로 삼은 우리는 용기포항에서 730분에서 출발하는 웅진훼미리호를 이용했다. 배를 탄지 30분쯤 지나면 대청도에 이른다. 선진포 선착장에 내리면 아담한 포구에 수많은 어선들이 출어를 기다리고 있다. 옛날이야기이지만 한때 이곳 대청도는 서해 고래잡이의 전진 기지였다고 한다. 1918년 일본은 동양포경주식회사의 포경기지를 이곳에 설치하고 1920년부터 30년 초까지 우리나라 고래잡이의 중심지로 삼았다. 고래잡이를 하는 11~4월에는 130여 명의 일본인 상인이 들어오고 그때 게이샤까지 같이 들어오면서 5가구에 불과하던 선진항은 대청도의 중심지가 되었단다. 1945년 광복 이후 포경업은 막을 내렸지만 선진동에는 아직도 포경회사의 터가 남아있단다. 대청도 근해에서 잡히는 어종도 세월이 흘러가면서 변해왔다. 일제강점기에는 고래잡이가 성행했고, 1950~60년대는 조기와 까나리잡이, 1970~80년대는 홍어잡이, 1990년대부터는 우럭과 볼락 등이 주 어종이라고 한다.




선착장 근처의 등대로 가면 건너편에 있는 탑동해안산책로가 한눈에 쏙 들어온다. 해안가 바위벼랑에 걸쳐놓은 데크로드(deck road)검은낭산책로가 마치 한 폭의 그림처럼 곱다. 하지만 보수중이라서 직접 가볼 수는 없단다. 일부 구간은 험한 벼랑에 선반처럼 달아낸 잔도(棧道)로 되어있어 그야말로 스릴 만점일 텐데 아쉬운 일이라 하겠다. 참고로 답동이란 식량이 매우 귀하던 시기에 논이 몇 마지기 있었다고 해서 붙여진 지명이라고 한다. 저 아래 해변에는 길이가 1km 정도의 완만한 해안이 있어 해수욕장으로 이용된단다.




이곳 대청도의 투어도 역시 버스로 진행된다. 다만 버스의 크기가 조금 작아졌을 따름이다. 도로의 폭이 좁기 때문이라는데 맞는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선진포에서 출발하는 일주도로는 어느 방향으로 가든지 상관없지만 우리는 오른쪽 방향으로 시작했다. 그리곤 첫 번째 방문지로 사탄고개에 위치한 매바위 전망대를 택했다. 이곳이 블랙야크가 정해놓은 대청도의 인증 장소인 삼각산(343m)정상표지석에서 가장 가까운 들머리이기 때문이다. 들머리에 세워진 이정표(삼각산 정상 1.37/ 선진포선착장 5/ 광난두정자각 2.62)는 삼각산 정상까지의 거리를 1.37로 적고 있다. 지척이라는 얘기일 것이다. 하지만 산악회의 인솔자는 삼각산 등산과 서풍받이 트레킹 중 하나만 선택하란다. 잘못하면 나머지 투어일정을 진행할 수 없다면서 말이다. 시간이 넉넉하다는 가이드의 조언에도 불구하고 초지일관 밀어붙이니 어쩌겠는가. 블랙야크의 인증사진과 관계없는 우리 부부는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는 서풍받이 트레킹을 선택했다.



전망대에는 매의 조형물을 커다랗게 세워놓았다. 대청도는 황해도 장산곶에서 대청도를 오가던 매를 채집해 매사냥을 했던 곳으로 유례가 깊다. 중국에서 서해를 횡단하여 날아온 매가 처음으로 찾은 곳이 대청도라서 가을만 되면 이 매를 잡으려는 사냥꾼들이 많이 왔다고 한다. 이 매를 해동청(海東靑 : 사냥용 매를 부르는 말, 매의 옛 이름)이라 부르는데 이런 사실들을 알리기 위해 옹진군에서 세운 것이란다. 최근 조형물이 매가 아니라 독수리라는 논란이 있었으나 우리처럼 문외한들의 눈에는 그게 그거로 보이니 문제될 것은 없겠다. 참고로 이곳 대청도는 고려시대부터 해동청을 기르고 훈련해 사냥했다는 기록이 전해오고 있다. 남북을 오갔던 해동청은 소설가 황석영이 1974년부터 연재한 소설 '장길산'의 첫 대목에 등장하는 장산곶 매로도 알려져 있다.



매바위전망대는 해안가를 향해 날개를 펼치고 누워있는 매 형상의 바위인 수리봉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다. 아름답기로 소문난 사탄동 해안도 눈앞으로 성큼 다가온다.



고갯마루의 ‘V’자 형 절개지 상부에는 러브 브릿지라는 보행자 전용의 다리가 놓여있다. 길을 내느라 끊어놓은 능선을 다시 이어놓은 셈이다. 누군가는 저 다리를 일러 다목적용이라 했다. 낮에는 산책로로 이용되지만 밤이 되면 내동소재 마을의 야경을 즐기는 곳으로 용도를 바꾼다면서 말이다. 이왕에 시작했으니 삼각산(三角山)’의 내력에 대해 조금 더 알아보자. 삼각산이란 천자나 왕의 도읍에만 사용할 수 있는 지명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이곳에 천자나 왕이 있었다는 얘기가 아니겠는가. 그렇다. 이곳 대청도는 원나라의 순제가 태자시절 귀양(流配)왔던 곳이란다. 세종실록지리지에 대청도에는 고궁 3, 뒤 칸 1칸과 담의 옛터가 있다고 적혀있는 것이 그 증거라 하겠다. 현재의 대청초등학교 자리가 거택기(居宅基)’라 불리는 궁궐터로 추정된단다. ‘택리지에도 비슷한 내용의 글이 적혀 있다는 것도 기억해 두자.



두 번째 방문지는 모래울 해안이다. 원래 이름은 사탄동(沙灘洞)’. 우리말로는 모래여울이란다. 모래가 바람에 실려 아름다운 곡선을 이루는 여울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그런데도 마을표지석은 모래울로 적고 있다. ‘사탄이란 단어가 여행자들에게 좋지 않은 어감을 준다는 것을 눈치라도 챘나보다. 특히 기독교인들에게 말이다. 기독교인들에게 사탄(satan)은 최대의 적대적 이름이지 않겠는가.



모래울해안을 둘러보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해변 뒤쪽의 소나무 숲모래울해변인데 어느 곳을 먼저 들를지를 놓고 고민할 필요는 없다. 탐방로의 끄트머리에서 둘이 서로 만나기 때문이다. 우리 부부는 소나무 숲을 먼저 찾았다. 산자락으로 들어서자 사방에 적송(赤松)이 가득하다. 그런데 하나같이 백년은 훌쩍 넘겼음직한 낙락장송 일색이다. 한그루에 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소나무 수백 그루가 해변을 내려다보고 있는 셈이다.



사람들은 이곳의 소나무들을 일러 기린송(麒麟松)’이라 한다. 이곳으로 유배 온 원나라의 순제가 이곳을 거닐던 중 기린송이구나라고 했다는 설화를 덧붙이면서 말이다. 기린은 사슴 형상에 뿔이 있고 전신이 비늘로 덮여 있는 상상의 동물이다. 예로부터 중국에서는 기린의 비늘과 같은 소나무를 기린송이라 불렀고, 기린송이 아들을 가져다준다고 믿었단다. 그렇다면 역사적 사실을 향해 한걸음 더 나가 보자. 1324년 원나라 명종의 태자 도우첩목아(陶于帖木兒)가 계모의 모함으로 대청도에 유배를 왔다가 이듬해 되돌아가 황제(원 순제 1320~1370)가 되었다. 그 흔적은 옥죽포(玉竹浦)와 고주동(庫柱洞) 등의 지명에서 찾아볼 수 있다. 옥죽포(玉竹浦)는 태자가 들어 온 포구라 하여 태자를 의미하는 옥자(玉子)를 써서 예전에는 옥자포(玉子浦)라 했다. 또한 지금의 고주동은 태자가 창고를 지어 곡식을 쌓아 두었던 곳이란다. 참고로 순제는 원나라의 마지막 황제로 부인이 고려 출신의 기황후이다. MBC TV 드라마 <기황후>는 총 51부작으로 2013년 방송되어 큰 인기를 끌었다. 기황후로 배우 하지원, 원 순제의 역에 배우 지창욱이 열연했는데, 드라마의 인기와 함께 드라마의 배경이 된 대청도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고 한다.



데크계단을 내려오면 모래울해안이다. 바람에 날려 온 고운 모래가 아름다운 곡선을 이루고 있는데 그 길이가 무려 1km나 된단다. 모래사장의 주변은 수백 그루의 적송과 기암절벽이 함께 어우러지며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낸다. 그런데도 해변은 텅 비어있다. 성수기가 아닌데다 평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문득 바다에 풍덩 빠져 수영을 하고 싶다는 유혹에 빠져든다. 하지만 금물이란다. 인근의 다른 해수욕장들과는 달리 파도가 심해서 인명 사고가 몇 번 있었고, 그래서 지금은 해수욕을 통제하고 있단다.



바다에는 사람의 얼굴을 닮았다는 대갑죽도가 돛단배처럼 두둥실 떠있다. 예로부터 대청도 어민들의 무사귀환을 기원하던 섬이다.



모래사장 뒤편 언덕에 올라가보니 대청부채(Iris dichotoma)’에 대한 안내판을 세워놓았다. 이곳 대청도에서 최초로 발견된 붓꽃속 식물인데 무분별한 채집으로 인해 지금은 멸종위기 야생식물 2급으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단다. 그래선지 이곳 어딘가에서 해당 식물이 자란다면서도 애써 찾지는 말라는 충고까지 해주고 있다. ! 이 부근에는 천연기념물 제66호인 동백나무 자생지도 있다고 했는데 직접 확인해보지는 못했다. 우리나라에서 동백나무가 자랄 수 있는 최북단이라는데 아쉬운 일이라 하겠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지 않는가. 이곳에 그런 자생림이 있는 줄도 모르고 찾아온 내가 그걸 본다는 것 자체가 언감생심이 아니겠는가.



아까 매바위 전망대에서 얘기했던 대로 매의 형상으로 생겼다는 산세, 이 매의 목 위로 도로가 나 있는데 고갯마루에 광난두 정자각이 지어져 있다. 삼각산에서 내려온 사람들이 서풍받이로 들어가기 전 잠시 휴식을 취하라며 지어놓은 정자가 아닐까 싶다. 주변의 뛰어난 풍광도 감상하면서 말이다. 이 정자에 오르면 멀리 독바위해변과 사탄해변 그리고 북쪽에 떠있는 갑죽도가 눈에 들어온다. 이곳은 낙조(落照) 포인트로도 유명하다. 정자에 앉아 바라보는 낙조는 가히 한 폭의 그림이란다. ‘광난두정자각서풍받이트레킹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이 정자각을 기점으로 서풍받이 부근을 한 바퀴 돌고 다시 돌아오게 된다.



이정표(광난두해변 1.0/ 고주동 2.7/ 모래울동 1.2)가 가리키는 광난두해변 방향으로 내려가면서 트레킹이 시작된다. 3가 조금 못되는 서풍받이 산책로는 난이도가 낮은 것으로 알려진다. 트레킹화도 제대로 신지 않은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이 자주 눈에 띄는 것이 그 증거라 하겠다. 아무튼 밋밋한 산길을 따라 10분쯤 걷자 삼거리(이정표 : 마당바위1,230m/ 기름아가리/ 광난두정자각430m)가 나온다. 기름아가리로 내려가는 길이 왼편으로 나뉘는 곳이나 개의치 않고 직진한다.



10분쯤 더 걷자 이번에는 하늘전망대가 나온다. 안내판에는 해와 달, , 그리고 하늘의 기운을 받아 마음가짐을 새롭게 할 수 있는 천혜의 비경을 담아갈 수 있는 곳이라고 적혀있다. 이곳이야말로 신선들의 휴식처라는 부언까지 달아놓았다. 주변경관이 그만큼 빼어나다는 얘기일 것이다. 안내판의 호언은 과히 틀리지 않았다. 발아래에 있는 갑죽도는 물론이고 그 뒤로는 모래울과 지두리 방향의 해안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서슬 시퍼런 바위절벽으로 솟아올라 거센 파도와 해풍을 막아내고 있으니 또 다른 서풍받이라 하겠다.




능선에는 하얗게 몸뚱이를 드러낸 소사나무가 유난히도 많았다. 거대한 바위로도 막기 힘든 서풍을 가느다란 몸과 가지로 막으며 거칠고 억세게 자란 흔적이 아닐까 싶다. 뻗어나간 각도와 모양새가 예측불허로 자유분방한 소사나무들이 빽빽이 들어선 숲 저편으로 푸른 바다가 자잘하게 미분되고 있다.



밧줄난간에 의지해 봉우리 하나를 더 오르자 다른 전망대가 나타난다. 이름표가 붙어있지 않은 전망대이다. 대신 대갑죽도(大竹島)’에 대한 안내판을 세워놓았다. 수면 위로 얼굴 모양의 대갑죽도가 보인다는 것이다. 예로부터 이곳 대청도 어민들이 하늘을 향해 무사귀환을 빌던 섬이라는 부언도 빼놓지 않았다.



발아래 보이는 바다 위에는 사람의 얼굴 형상을 하고 있다는 대갑죽도가 흡사 돛단배처럼 두둥실 떠있다. 예로부터 대청도의 어민들이 무사귀환을 기원하며 빌던 섬으로 이곳 대청도 주민들에게는 매우 소중한 섬이란다.



하지만 내 눈에는 왼편에 보이는 바위절벽이 더 얼굴을 닮았다. 바위 거인이 대갑죽도를 바라보며 활짝 웃는 형상이다.



조금 더 걷자 서풍받이 트레킹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조각바위 언덕(이정표 : 마당바위610m/ 갈대원280m/ 광난두정자각1,050m)’이 나온다. 데크로 만든 예쁘장한 전망대에 올라 주변을 돌아본다. 왼쪽은 줄잡아 100m도 넘어 뵈는 거대한 바위 병풍이고, 오른쪽은 하늘에 쐐기 박듯 치솟은 상어주둥이 형상의 암봉이다. 그런 해안절벽의 가운데서 장대(將臺)처럼 불쑥 튀어나온 기막힌 조망대에 우리가 올라선 것이다. 아무튼 발아래로는 광막한 바다; 그리고 좌우로는 기암괴벽이 펼쳐지는데 이런 풍경에 시선과 마음이 묶이면 누구라도 오래도록 머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수천 년 동안 대륙으로부터 몰아쳐오는 북서풍의 강한 바람과 그 바람이 일으킨 파도들이 거대한 절벽을 조각을 해서 저런 절경이 탄생했을 것이다.




해안이 온통 깎아지른 듯한 수직의 절벽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곤 먼 바다에서 불어오는 거센 파도와 바람을 온몸으로 막아내고 있다. 맞다 서풍받이가 본디 중국에서 서해로 거쳐 불어오는 바람을 온몸으로 막아주는 바위라는 뜻에서 붙여진 지명이라니 이름에 걸맞는 풍경이 아니겠는가. ! 누군가는 서풍받이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일몰(日沒)’이라고 했다. 붉은빛이 거대한 바위에 닿으면 바위의 색 또한 오묘한 붉은 기운을 낸단다. 죽기 전에 한 번은 꼭 봐야 할 절경이라고까지 극찬했는데 오후 배로 대청도를 떠나야 하는 우리에겐 그런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아쉬운 일이라 하겠다.



서풍받이는 웅장하다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눈앞에 펼쳐지는 해안절벽들은 어느 것 하나 평범한 것이 없다. 거센 바람과 파도가 억겁의 세월 동안 저 해안절벽들을 신묘하게 조각해 놓은 것이다. 자연이란 얼마나 훌륭한 조각가인가. 혹자는 끌로 새겨놓은 듯한 조각들이 이어진 조각바위와 뾰족하게 솟아오른 서풍받이를 일러 삼서트레일(해발 343의 삼각산 등반과 서풍받이 트레킹을 줄인 말이다)’의 백미(白眉)라 했었는데 내 생각도 같다.



왼편으로도 시야가 열린다. 갈대원(광난두해안)으로 이어지는 완만한 경사의 평지가 눈앞에 펼쳐진다. 그 뒤는 독바위해변이 떠받히는데 그쪽도 역시 서슬 시퍼런 바위절벽으로 이루어져 있다.



서풍받이 산책로는 아기자기하다. 길이 썩 넓지는 않으나 걷는 데는 불편함이 없다. 다만 바닥에 크고 작은 돌들이 많이 밟혀 속도를 내기는 힘들다. 나름 바윗길이라 부를 만한 곳도 나온다. 아무나 다닐 수 있다는 소문만 믿고 방심할 일은 아니라는 얘기이다. 그래선지 여러 곳에 벤치를 놓아두었다. 쉬엄쉬엄 걸어보라는 얘기일 것이다.



서풍받이에서 다시 한 번 오름짓을 하자 또 다른 전망대가 만들어져 있다. 그런데 하늘전망대라는 적은 안내판이 보는 이들을 헷갈리게 만든다. 같은 코스에 같은 이름의 전망대를 하나 더 만들어 놓았으니 어찌 헷갈리지 않을 수 있겠는가. 아무튼 장대(將臺)처럼 튀어나온 전망대에 서자 대륙에서부터 몰아쳐온 북서풍에 갑자기 숨이 턱 막힌다. 이렇게 센 바람이 큰 파도를 일으키며 오랜 세월 절벽을 조탁하지 않았다면 저와 같은 절경이 어떻게 탄생할 수 있었겠는가.



전망대에서의 조망은 일품이다. 좌우로 펼쳐지는 천애절벽은 물론이고 바다 건너 지두리쪽 해안까지 한눈에 쏙 들어온다. 특히 삼각산에서 뻗어내려 온 능선이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답게 펼쳐진다. 누군가는 삼각산과 서풍받이를 잇는 삼서 트레일3대 조망처 가운데 하나로 서풍받이전망대를 꼽았었다. 하지만 내 생각으로는 이곳이 더 뛰어나지 않을까 싶다. ! 나머지 두 조망처는 삼각산 정상 근처 ‘330m과 남서쪽 꼬리의 갯바위지대인 마당바위라고 한다.



이후부터는 길이 조금 험해진다. 제법 굵은 바위들이 바닥에 깔려있기 때문이다. 그런 길을 얼마쯤 걸었을까 삼거리(이정표 : 마당바위/ 갈대원360m/ 조각바위350m)가 나온다. 마당바위에 거리표시가 없는 걸 보면 다 왔다는 얘기일 것이다. ‘마당바위라는 표지판과 마당바위에 대한 안내판까지 세워놓은 것도 이를 뒷받침할만한 증거라 하겠다. 하지만 앞으로도 100m 가까이를 더 내려가서야 마당바위를 만날 수 있었다. 시퍼런 바다를 앞에 두고 있는 마당바위는 완만한 경사를 이룬 거대한 바위다. 얼핏 운동장을 연상시킬 정도로 넓기까지 했다. 참고로 트레킹을 시작한 광난두정자각에서 이곳까지 오는 데는 한 시간 정도가 걸렸다. 이정표에 적힌 거리가 1,660m였던 점을 감한하면 꽤나 더디게 걸은 셈이다. 절경으로 소문난 주변 경관에 자주 눈길을 맞춘 것이 그 원인이 아니었을까 싶다.




마당바위의 끝은 아찔한 낭떠러지다. 난간으로 다가가자 푸른 바다가 한눈에 펼쳐지며 가슴을 시원하게 뚫어준다. 그 바다 건너에는 이곳 대청도의 아우 격인 소청도가 자리하고 있다. 대청도의 4분의 1크기인데 1908년에 설치되었다는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등대로 유명하다. 또한 소청도에서는 천연기념물 제508호인 분바위도 만날 수 있다. 분바위는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박테리아 화석으로 알려져 있다.



삼거리로 되돌아와 이번에는 갈대원으로 향한다. 길은 산등성이가 아닌 사면(斜面)으로 나있다. 그렇다고 길이 험하지는 않다. 오르내림이 거의 없으니 오히려 걷기 편하다고 보면 되겠다. 그렇게 15분 정도를 걷자 광난두해안(이정표 : 광난두정자가750m/ 조각바위280m/ 마당바위430m)’이 나온다. 잔자갈이 깔려있는 몽돌해안인데 안내판은 갈대원이라고 적고 있다. 마당바위에 세워진 이정표도 이곳을 광난두 대신 갈대원이라 적고 있었다. 해안가가 갈대밭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얘기일 것이다. ! 요 아래 해안가에 귀순자를 위한 전화가 설치돼 있다는데 직접 확인해보지는 못했다.



이 부근은 갯바위 낚시를 즐기는 이들에게도 인기가 높다고 한다. 출렁이는 푸른 파도를 벗 삼아 서해의 정취를 물씬 느낄 수 있는 곳이란다. 청정해역에서 갓 잡아 올린 물고기의 참맛은 덤이라 하겠다. 이후부터는 오르막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그 끄트머리에 아까 트레킹을 시작했던 광난두 정자각이 있다. 1시간 30분 정도의 서풍받이 트레킹이 종료된 것이다.



다음은 해넘이 전망대이다. 모래울에서 선진포로 넘어가는 길에 만나게 되는데, 독바위와 서풍받이의 사이 반도처럼 톡 튀어나온 지점의 바위절벽 위에 걸치듯 만들어놓았다.



그런 지리적 이점으로 인해 이곳에서의 조망은 가히 일품이다. 왼편에 보이는 삼각형의 바위절벽은 독바위. 홀로 외롭게 서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인데 저 바위는 저녁노을의 풍경속으로 들어가 소품이 될 때 더욱 멋진 풍광이 연출된단다. 전망대의 이름을 해넘이로 붙여놓은 이유가 아닐까 싶다.



오른편으로는 광난두 해변이 펼쳐진다. 광난두해변의 끄트머리에 있는 송곳니처럼 솟은 바위는 기름아가리라고 한다. ‘아가리라는 게 본디 병·그릇·자루 따위의 구멍의 어귀를 이르는 말일지니 기름항아리의 주둥이정도로 여기면 되겠다.



이번엔 옥죽동에 있는 모래사막으로 갈 차례이다. 몇 개의 고개를 넘자 양지동 들판이 펼쳐지고, 내리막으로 내려와 우측으로 가면 적송보호림이 있다. 그 옆에는 널따란 모래언덕(砂丘)이 펼쳐져 있다. 산등성이에 분포되어 있는 모래언덕은 길이 1.5km에 폭이 600m라고 한다. 꽤 넓은 편이다. 그래서 모래사막이라는 단어를 서슴없이 사용하고 있는 모양이다. 입구에 세워놓은 안내판은 아예 한국의 사하라사막이라며 너스레까지 떨고 있다. 그나저나 이 모래는 신안군 우이도의 모래 언덕과 비슷한 이치라고 한다. 서해의 거대한 겨울 파도가 물밀듯이 옥죽동 해변으로 밀려오면서 모래들이 오랜 세월동안 해변과 산자락에 날려서 쌓인 것이 지금의 모래밭으로 변한 것이란다.



우리나라에도 과연 낙타가 있을까? 그 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중동의 사막이라고 착각할만한 풍경을 이곳에서 만났으니 말이다. 모래언덕의 중간어림에 네 마리의 낙타 모조품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사막의 정취를 살리려 했던 모양인데 좀 생뚱맞아 보이지만 낙타의 등에라도 올라보면 중동의 어느 사막에 와 있는 기분을 낼 수 있으니 좋은 아이템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한걸음 더 나아가서 실제 살아있는 낙타를 가져다 놓고 낙타투어를 해보는 것도 괜찮을 것이고 말이다.



해발이 40m라는 모래언덕에 올라서면 옥죽동해안이 한눈에 쏙 들어온다. 대청도에는 크게 5개의 큰 해안이 있는데 동쪽으로 지두리 해안과 농여해안이 있고, 서쪽으로 답동해안, 남쪽으로 모래울해안이 있다. 옥죽동 해안은 북쪽에 위치하는데 이 모래언덕은 저 해안에서 밀려온 모래들이 오랫동안 쌓이면서 만들어놓은 결과물이다. 그런데 모래언덕과 옥죽동해안 사이에 소나무 숲이 경계선처럼 들어서있다. 방풍림이라는데 가이드의 말로는 저 숲으로 인해 모래밭이 점점 줄어들고 있단다. 모래가 바람에 날리면서 배수로를 막고 경작지인 밭까지 덮어버린 것이 조성의 원인이었는데, 최근 자연적인 현상을 그대로 두는 것이 좋겠다고 해서 다시 소나무를 베어버리고 모래사막을 더 조성키로 했단다.



맨 마지막으로 들른 곳은 농여해안이다. 이곳 대청도에는 옥죽포와 농여, 사탄동, 탑동 등 해수욕장이 여럿 있는데, 그중에서도 농여 해수욕장의 규모가 가장 크다. 단단하기로 유명한 백령도의 사곶해변과 마주보는 지리적 요인 때문인지는 몰라도 이곳 농여해안의 모래사장도 역시 단단하기 짝이 없다. 사람들이 지나다니는데도 발자국 하나 남지 않을 정도다. 이곳도 역시 규암에서 비롯된 매우 가는 모래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오른편으로는 널따란 모래사장이 끝 간 데 없이 펼쳐진다. 물이 빠질 때만 나타나는 현상으로 사람들은 저곳을 풀등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걸어서 들어갈 수 있는 풀등으로는 국내에서 유일하단다. 풀등은 모래가 쌓인 곳에 풀이 수북하게 난 곳을 말한다. 대이작도 풀등이 가장 대표적이지만 그곳은 배를 타야만 갈 수 있다.



단단한 모래밭을 얼마간 걷자 농여해변의 또 다른 매력인 나이테바위가 나온다. ‘나이테란 나무줄기나 가지의 가로 단면에 나타나는 둥근 모양의 테로서 1년 마다 하나씩 생기므로 이 테를 보고 그 나무의 나이를 알 수 있다. 그런데 눈앞에 나타난 바위가 마치 버텨온 오랜 세월을 보여주기라도 하려는 듯이 나이테의 문양을 쏙 빼다 닮은 것이다. 대청도의 지질은 국내 최고(最古)10억년의 역사를 가진 것으로 추정된다. 나이테바위를 비롯한 주변 바위들의 나이도 그와 비슷할 것이다. 이곳 농여해변이 올 7국가지질공원(家地質公園, National Geoparks of Korea)’으로 지정된 이유가 아닐까 싶다. 지구과학적으로 중요하고 경관이 우수한 지역으로서 이를 보전하고 교육, 관광 사업에 활용하기 위하여 환경부장관이 인증한 곳이 국가지질공원인데 우리나라는 2011년부터 이 제도가 도입되었다. 그리고 제주에서 접경지역인 DMZ까지 전국에 걸쳐 10곳의 국가지질공원이 있다. 이번 지정에는 대청도(옥죽동 해안사구·미아해변·서풍받이·검은낭)와 소청도(분바위·월띠), 백령도(두무진과 진촌리의 현무암·사곶해변·콩돌해안·용틀임바위)의 다른 명소들도 포함되어 있다.




농여해안은 썰물 때면 미아해안과 연결된다. 둘 모두 곱디고운 모래사장이 넓고 길게 펼쳐져 있는 해변이다. 하지만 그보다는 해안가에 널려있는 기암들을 구경하는 재미가 더 쏠쏠하다. 어느 것 하나도 같은 모양이 없는데 대부분의 바위들이 예쁜 물결무늬를 하고 있는데다 또 어떤 것은 구멍까지 뚫려있어 포토죤 역할을 톡톡히 해준다. 대청도 사람들은 1.2km 정도의 이 구간에다 농여트레일이라는 이름을 붙여놓았다.



우리가 늘 보아오던 바위들과는 그 생김새부터가 확연히 틀리다. 보통의 지층은 가로로 펼쳐져 있는데, 농여해안의 바위들 대부분은 세로로 서 있다. 퇴적층이 강한 지층 운동을 하다가 세로로 서버리는 바람에 이런 모습을 하게 된 것이란다. 아무튼 모래밭에 널려 있는 크고 작은 나이테 바위들의 모습은 어느 하나 독특하지 않은 것이 없다. 마치 조물주가 만든 조각공원으로 알려진 대만의 예류 지질공원에 와있는 듯하다.





책을 읽다보면 숨이 막힐 듯한 아름다움이라는 표현을 가끔 볼 수 있다. 이곳 농여해안은 그러한 표현을 헌정(獻呈) 받아도 충분할 듯 싶다. 그만큼 이곳의 경관(景觀)이 빼어나기 때문이다. 트레킹에 나선 사람들은 해안의 비경(秘境)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이유일 것이다. 자기도 모르게 내지르는 감탄사(感歎詞)의 횟수만큼이나 카메라의 셔터를 누르는 손길도 바빠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