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파랑길 12코스
여행일 : ‘18. 12. 15(토)
소재지 : 경북 경주시 감포읍과 포항시 남구 장기면 일원
산행코스 : 감포항(1.4km)→송대말등대(2.0km)→오류고아라해변(2.5km)→연동마을(7.6km)→양포항(거리 및 소요시간 : 14.56㎞, 3시간 26분)
함께한 사람들 : 청마산악회
특징 : 경주의 대표어항인 감포항을 출발하여 포항의 미항으로 손꼽히는 양포항까지 이어지는 해안가를 따르는 코스이다. 그러니 해안 절경들이 지속적으로 펼쳐지는 것은 당연하다 하겠다. 특히 감은사지 삼층석탑을 모티브로 한 등대가 올라앉은 ’송대말(松臺末)‘과 옛 시인들의 놀이터였다는 ’소봉대(小峰臺)‘는 그 어디에 내놓아도 뒤질게 없는 명품 경관임이 분명하다. 지역의 특성에 맞게 디자인 된 ’송대말등대‘와 연동항의 ’치미등대‘ 등의 등대들을 구경하는 재미도 제법 쏠쏠하다. 거기다 어민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기회도 제공된다. 길가 덕장에서 드러누운 채로 싱그러운 해풍을 맞으며 영글어가는 포항의 특산품인 과메기를 만날 수 있는가 하면, 운이라도 좋으면 해녀들이 물질을 하면서 연출하는 하얀 물보라까지도 눈에 담을 수 있다. 특히 모퉁이의 끝자락에 걸터앉은 등대가 멋진 계원해변과 외국에서나 볼법한 요트들이 정박되어 있는 양포항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풍경은 가히 이국적(異國的)이다. 한마디로 눈요깃거리가 넘치는 코스라 하겠다.
▼ 트레킹 들머리는 감포항(경주시 감포읍 감포리 504-20)
동해고속도로(포항-부산) 동경주 IC에서 내려와 929번 지방도를 이용해 문무대왕릉 방향으로 달리다가 대본삼거리(경주시 감포읍 대본리)에서 31번 국도로 갈아타고 포항방면으로 올라가다 보면 감포교차로(경주시 감호읍 나정리)가 나온다. 교차로에서 빠져나와 오른편 ’동해안로(포항 방면)‘를 따른다. 잠시 후에 만나게 되는 전촌사거리(감포읍 전촌리)에서 우회전하여 ’감포로‘로 들어서면 얼마 지나지 않아 해파랑길 12코스의 들머리인 감포항에 이른다. 방파제회센터(감포읍 감포리 504-20)의 모서리에 해파랑길(11-12코스) 안내도와 함께 스탬프보관대가 설치되어 있다.
▼ 횟집들이 즐비하게 늘어선 해안도로를 따라 걸으면서 12코스의 트레킹이 시작된다. 오른편으로 감포항의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짐은 물론이다. 감포항은 규모가 아주 크다고는 할 수 없지만 드나드는 어선이 많은 동해남부의 중심 어항이다. 감은사지 삼층석탑을 형상화한 등대가 방파제의 끄트머리에서 손짓을 보내오고 있다. 다음 행선지로 향하는 나그네를 길 배웅이라도 하는 모양이다.
▼ 항구를 오른편에 낀 해안도로를 따르다 보면 그 끄트머리쯤에서 수협활어직판장을 만난다. ’천년의 고도(古都). 경주‘에 위치하고 있다는 것을 자랑이라도 하려는 듯 홍보 문구 또한 ’천년의 바다‘, ’천년의 향기‘, ’천년의 맛‘ 등 온통 ’천년(千年)‘ 일색이다.
▼ 탐방로는 수협활어직판장의 뒤편에서 골목으로 파고든다. 입구에 ’방파제슈퍼‘가 문을 열고 있으니 참조한다. 아무튼 골목으로 들어서자마자 기괴한 풍경을 만난다. 담장 위에 난감하게 생긴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는 것이다. 작품의 아래에 ’새 천국. 새작가 김삿갓‘이라고 적어놓은 걸로 보아 새를 형상화한 것으로 보이나 아무리 봐도 새로 보이지가 않기 때문이다. 참! 아까 들머리에서 살펴봤던 ’해파랑길 탐방기사(경북일보)‘를 옮겨놓은 패널(panel)에서는 이런 정보가 없었다. 기사를 쓴 ’이순화 시인‘ 역시 이 길을 걸었는데도 말이다. 하긴 시인의 눈에는 하찮아 보였을 수도 있겠다.
▼ 언덕으로 올라서니 ‘november resort’가 나오고, 이어서 탐방로는 소나무 숲속으로 파고든다. ‘송대말 등대(松臺末 燈臺)’로 가는 길인데 ‘소나무가 우거진 대의 끝부분’이라는 뜻을 가진 지명에 어울리는 풍경이라 하겠다. 숲의 끝자락에는 관사를 포함한 사무동 등 건물 전체가 한옥(韓屋)으로 지어진 등대가 자리 잡았다. 1933년 감포어업협동조합에서 감포항 인근 해역에서의 해난사고를 막기 위해 등간(燈竿)을 설치한 것이 ‘송대말 등대’의 시초라고 한다. 이후 감포항의 이용선박이 점차 늘어나면서 1955년에는 감포항 북쪽 송대말(松臺末)에 무인등대를 새로 설치했고, 1964년에는 유인등대로 바꾸면서 기존 등탑에 대형등명기를 설치해 광력을 증강했다. 특히 2001년에는 ‘감은사지 3층 석탑’을 형상화한 모습으로 등탑의 외형을 눈에 띄게 바꾸었다. 지역 특성에 맞게 디자인을 한 것이다. 들머리에서 이곳 송대말등대까지는 18분이 걸렸다.
▼ 바위벼랑으로 이루어진 송대말(松臺末)의 맨 끄트머리에는 하얀색 등대가 자리 잡았다. 뒤에 보이는 네모진 등탑(燈塔), 즉 감은사지 삼층석탑을 모티브로 한 등탑을 새로 지었으니 이 등탑은 현재 사용하지 않는다는 얘기일 것이다. 아무래도 옛 등대의 원형을 보여준다는 의미에서 그냥 남겨놓은 모양이다. 바로 앞에 보이는 오래 묵은 시멘트 구조물과 함께 말이다. 이 구조물은 더 오래된 등탑이 있었던 자리라고 한다. 그건 그렇고 일제 강점기 때의 송대말은 최고급 휴양지로 이름을 날렸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옛이야기일 따름이고 시멘트 구조물에 붙어있는 당시의 역사를 담은 안내판과 사진만이 과거의 번성했던 영광을 전해줄 따름이다.
▼ 등대 앞 갯바위는 주상절리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데 갯바위와 육지 쪽의 암벽을 시멘트벽으로 막아 놓았다. 위에서 거론했던 일제강점기 때의 흔적으로 당시 일본인들이 만들어놓은 수족관(水族館)의 흔적이란다. 당시 이곳에는 조선총독부 산하 고관대작의 전용 별관인 영빈관이 들어서 있었다고 한다. 당시에는 귀하디귀했던 딸기밭이 있었을 뿐만 아니라 한창때는 일본인들을 실어 나르던 전속택시까지 상주했을 정도로 번성했다는 것이다. 총독부 우정국에서 송대말의 사진을 담은 우표까지 발행했을 정도라니 말 다했다. 아무튼 고관대작들은 이곳 송대말에서 경관을 즐기다가 즉석에서 생선회를 떠서 먹었다고 한다. 저 수족관에서 갓 잡아 올린 생선으로 만든 회였을 게 분명하다.
▼ 등대 앞은 데크 전망대를 만들어 놓았다. 이곳은 ‘한국관광공사’에서 ‘사진 찍기 좋은 녹색명소’로 선정했을 정도로 아름다운 뷰(view)를 자랑한다. 난간에 서면 갯바위로 밀려드는 파도와 파도 속에서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작은 암초들이 눈에 들어온다. 조금 커 보이는 암초 위에는 작은 등대가 걸터앉았다. 그뿐만이 아니다. 암초를 희롱하고 있는 바닷물은 영롱한 에메랄드빛 그 자체이다. 하긴 관광공사에서 아무 곳이나 ‘사진 찍기 좋은 장소’로 선정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참고로 이곳은 경주의 또 다른 새해 일출 명소로 알려져 있다. 경주의 일출 명소는 물론 봉길리의 문무대왕릉 해변이다. 하지만 너무 입소문을 탄 탓에 신년이면 해맞이 인파들로 북새통을 이룬다고 한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고즈넉하게 일출을 보겠다는 사람들이 이곳을 찾는다는 것이다. 이곳에서는 갯바위와 바다 위의 무인등대 뒤쪽으로 해가 돋는 풍경을 만날 수 있다고 한다.
▼ 등대를 뒤로하고 다시 길을 나선다. 갯바위들이 널린 아름다운 해안도로를 따라 잠시 걷다보면 ‘척사항(尺紗港)’이 나온다. 송대말등대를 출발한지 15분만이다. ‘척사’의 원래 이름은 ‘장사’였다고 한다. 백사장이 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다음에는 창 같은 바위가 있다고 해서 ‘창사’라 부르다가, 일제강점기 때에 더없이 너른 백사장이 파도가 치면 자로 비단 주름을 재는 형상으로 보인다고 해서 ‘자 척(尺)’에 ‘비단을 잣다 사(絲)’를 써서 척사(尺紗)라고 고쳐 불렀단다. 그러나 지금은 백사장은 대부분 사라지고 대신 뾰쪽뾰쪽한 갯바위들만 바닷가에 널려있을 따름이다. 아무래도 바다 이름을 다시 ‘창사’로 되돌려 놓아야 할 것 같다.
▼ 척사항에 들어서니 방파제의 끄트머리를 장식하고 있는 등대가 눈길을 끈다. 2005년에 지어진 간이등대가 노후화되자 높이 10m의 새로운 등대를 최근(2018년)에 다시 만들었다는데, '성덕대왕신종(일명 에밀레종)에서 모티브를 따왔다고 한다. 송대말등대와 마찬가지로 지역 특성에 맞는 이색적인 등대를 만든 셈이다. 특히 저 등대에는 스피커를 설치해서 실제로 종소리가 울려 퍼질 수 있도록 했단다. 경주를 찾는 관광객들에게 또 다른 볼거리를 만들어주었다고 보면 되겠다.
▼ 척사항을 빠져나와 언덕으로 오르면 왕복 2차선의 자동차도로(감포로)를 만난다. ‘해파랑길 12코스’의 특징 가운데 하나라고 보면 되겠다. 탐방로의 대부분이 바닷가를 따르지만 심심찮게 자동차도로로 올라서는 것이다. 그 도로들 가운데는 자동차들이 속도를 내며 달리는 31번 국도도 있다. 특히 탐방로를 따로 만들어놓지 않아 씽씽 달리는 자동차들을 피해가며 걸어야 하는 소름끼치도록 위험한 구간도 있다.
▼ 다행이도 몇 걸음 걷지 않아 탐방로는 또 다시 해안으로 내려선다. 그리고는 곧이어 ‘오류 고아라해변(舊 오류해수욕장)’에 이른다. 척사항에서 10분쯤 걸렸다. 길이 600m에 폭이 70m인 백사장은 현재 ‘해수욕장’으로 성업 중이란다. 자갈이 대부분인 인근 해변들과는 달리 고운 모래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모래로 찜질까지 할 수 있을 정도란다. 거기다 1.5m 안팎의 수심(水深)과 우거진 소나무 숲, 그리고 민물까지 곁에 두고 있으니 해수욕장의 입지조건으로 이만한 곳이 또 어디 있겠는가.
▼ 잘 자란 해송들이 그득한 해변 숲속에는 2013년에 조성된 ‘오류캠핑장’이 들어서 있다. 카라반 28대와 캠핑사이트 8면을 갖춘 명품 캠핑장이다. 거기다 어린이놀이터와 체육시설은 물론이고 샤워장과 흔들의자, 세척실까지 만들어놓았다니 가족단위 캠핑을 하는 데는 이만한 곳도 없겠다. 그래선지 이곳의 카라반 예약은 하늘의 별따기라고 소문이 나있다. 하긴 개장 이래 매년 6만 명 이상이 찾는다니 두말하면 뭐하겠는가.
▼ 탐방로는 바닷가로 내려선다. 밀려오는 파도에 따라 자갈들이 굴러가는 소리가 매력적인 바닷가이다.
▼ 모퉁이를 돌기 직전에 화살표시를 따라 시멘트 계단을 오른다. 이어서 언덕을 넘어서면 진행방향 저만큼에 자그만 포구를 낀 ‘모곡마을’이 나타난다. 고아라해안에서바닷가로 내려선지 10분만이다. 모곡마을의 옛 이름은 ‘맥곡’이었다고 전해진다. 옛날 어느 선비가 지나가다가 야생보리가 잘 된 것을 보고 보리를 심어 정착한 것이 마을의 시초라고 해서 ‘보리 맥(麥)’을 써서 맥곡이라 했단다. 그러던 것이 언젠가부터 ‘모곡’으로 변했다는 것이다. 주민들에게는 옛 이야기가 그리웠던가 보다. 마을에 붙여져 있는 표지판들은 하나같이 ‘보릿골 길’이라는 주소를 달고 있었다.
▼ 수묵화처럼 들어앉은 모곡항을 놓아두고 또 다시 시멘트 계단을 오르면 이번에는 ‘31번 국도’가 길손을 맞는다. 바닷가를 장식하고 있는 아름다운 수묵화는 국도를 따라 걸으면서도 가끔 눈에 담을 수 있다.
▼ 국도의 가장자리를 따라 내놓은 ‘동해안 자전거길’을 따른다. 그리고는 꽤 오랫동안 이 길을 따라 걷는다. 하지만 지루하지는 않다. 아름다운 해안 풍경이 심심찮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거기다 전망 좋은 자리를 하나씩 꿰차고 있는 아름다운 펜션들을 보는 재미도 제법 쏠쏠하다 하겠다. 참! 지금 걷고 있는 길이 핸드폰에 깔아놓은 해파랑길 지도와 다르다는 것을 깜빡 잊을 뻔했다. 중간 어디쯤에선가 바닷가로 내려가야 했는데 앞서가는 집사람의 뒤꽁무니만 따라오다 보니 들머리를 놓쳐버렸다.
▼ 길가에 정체를 알 수 없는 건물이 보이기에 카메라에 담아봤다. 약간 유별나 보이는 건물의 외관이야 그렇다 치도라도 전면을 장식하고 있는 문양이 너무 독특해서이다. ‘우물 정(丼)’자를 형상화 시킨 것이라고 우기는 나에게 집사람이 음표(音標, note)의 기호라며 점잖게 타이른다. 그러고 보니 ‘올림표’인 ‘♯(sharp)’와 ‘내림표인 ’♭(flat)‘가 맞는 것 같다. 그렇다면 저 건물은 음악관련 공연장일지도 모르겠다.
▼ 국도에 올라선지 15분쯤 지나면 연동마을이다. 예로부터 소금을 생산하는 염전이 있는 마을이라 해 염동(鹽洞)으로 부르다가 현재는 연동(蓮洞)으로 고쳐 부르고 있단다. 접근성이 뛰어난데다 신선한 해산물이 많이 난다고 해서 경주는 물론이고 인근 포항이나 울산에서도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그런 특징을 살렸는지 이곳은 현재 어촌체험마을로 조성되어 있다. 농림수산식품부에서 어촌마을 관광활성화와 소득증대를 위한 어촌지원 사업의 일환으로 조성한 ‘어촌체험마을’은 전국에 100여개가 산재해 있는데, 경주에서는 유일하게 연동마을이 어촌체험마을로 지정되어 있단다. 마을 앞 전망 좋은 곳에는 ‘연동어촌체험마을 펜션’이 자리 잡았다. 정부로부터 예산을 지원받아 지었는데 1층은 식당 겸 회의실로 사용되고 2층은 펜션으로 문을 열어 관광객들을 맞고 있단다.
▼ 바닷가 갯바위에는 연화정(蓮花亭)이란 정자가 올라앉았다. 신라의 왕과 연화의 애절한 사랑 얘기가 전해지는 바위이다. 왕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연화가 넋을 놓은 채로 저 바위에 앉아 있다가 죽었다는 것이다. 스토리텔링이 만들어낸 이야기로 보이지만 정자까지 지어놨으니 여행객들에게는 구전에 의한 얘기쯤으로 들릴 만도 하겠다.
▼ 포구의 안쪽에는 철제 타워 하나가 우뚝 솟아올랐다. 포구의 밖에도 같은 모양으로 생긴 타워가 하나 더 있다. 두 타워를 연결한 줄에 매달려 하늘을 나는 ‘아라나비’라는 해양레포츠 시설이라고 한다. ‘아라나비’는 바다의 순 우리말인 ‘아라’와 ‘나비’를 조합한 것으로, '체험자가 안전띠와 연결된 도르래를 와이어에 걸고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바다 위를 하강하는 신종 익스트림 레포츠(extreme leports)'를 말한다. 이밖에도 연동마을에는 스노클링과 카약체험도 해볼 수 있단다. 그야말로 바다놀이터인 셈이다. 또한 토박이 주민들이 어릴 적 추억으로 간직하던 ‘대나무낚시’와 ‘새우잡이’, ‘통발낚기’ 등의 체험 프로그램도 마련되어 있단다.
▼ 방파제 끝에 세워놓은 등대의 외형이 특이해서 다가가보기로 한다. 신라시대의 국찰(國刹)이었던 황룡사의 ‘치미(鴟尾)’를 형상화한 것이란다. 치미란 고대의 목조건축에서 용마루의 양 끝에 높게 부착하던 장식기와를 말하는 것이니 참조한다. 그나저나 훌륭한 착상이라 하겠다. 항구에 있어서 등대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이제껏 보아온 등대들은 하나같이 밋밋하고 특별한 인상을 남기지 못했었다. 그런데 저렇게 작은 등대에다 자기 고장 특유의 멋을 담았으니 얼마나 기발한가. 요즘은 디자인이 곧 경쟁력인 시대이다. 작은 시설물 하나에도 기능성과 함께 디자인의 중요성을 도입한 경주시에 찬사들 보내드린다. 그리고 나처럼 호기심에 이끌려 이곳을 찾는 여행객들이 많이 늘어나기를 빌어본다.
▼ 등대로 연결되는 방파제의 바닥에는 타일을 이용해 벽화까지 그려놓았다. ‘트릭 아트 포토죤(trick art photo-zone)’이라며 일단은 작품 속으로 들어가 모델이 되어보라고 권한다. 그림 위에 서서 사진을 찍을 경우 실제로 흔들다리 위에 서있는 것과 같은 상황이 연출된다는 것이다.
▼ 사방에 널린 볼거리들을 바쁘게 주워 담다가 또 다시 길을 나선다. 탐방로는 이제 테트라포드(tetrapod, 해일이나 파도를 막기 위해 방파제에 설치하는 콘크리트 블록)들이 마치 담장이라도 되는 양 해안을 따라 늘어서 있는 해안가를 따른다.
▼ 그렇게 10분 남짓 걸었을까 ‘해파랑길 이정표(양포항 6.4㎞)가 보이는가 싶더니 두원마을(斗院里)이 나온다. 마을 앞에 등대도 갖추지 않은 작은 포구가 조성되어 있을 뿐 눈에 담을만한 풍경은 갖고 있지 않다. 그저 흔하디흔한 작은 어촌에 불과하다는 얘기이다. 참고로 거랑(시내보다는 크고 강보다는 조금 작은 물줄기를 이르는 ’내‘의 방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붙어있다시피 한 연동마을과 두원마을은 하나같은 둘이라 하겠다. 더군다나 이 거랑마저도 수년 전 복개가 되어 얼핏 보면 한 마을로 보일 정도다.
▼ 두원마을에 들어서자 이제까지 보아오던 것과는 다른 모양의 이정표(양포항↑ 6.8㎞/ 경주시↓)가 길손을 맞는다. 근처에는 안내판 모양으로 제작된 이정표도 설치되어 있다. 포항시에서 ’호미반도 해안둘레길‘을 조성하면서 세운 것이란다. 참고로 ’호미반도 해안둘레길‘은 한반도에서 해가 가장 먼저 뜬다는 호미반도의 해안을 따라 내놓은 포항판 ’올레길‘이다. 해병대 상륙훈련장이 있는 청림 해변에서 호미곶 광장까지 25㎞ 구간을 4개 코스로 나눈 뒤 연오랑세오녀길(청림동∼연오랑세오녀테마공원, 6.1㎞), 선바우길(연오랑세오녀 테마공원∼흥환해수욕장, 6.5㎞), 구룡소길(동해 발산1리∼구만리 어항, 6.5㎞), 호미길(호미곶면 구만리∼호미곶 상생의 손, 5.3㎞) 등 코스별로 특색을 살린 이름을 부여했다. 호미곶의 '상생의 손'부턴 구룡포를 거쳐 장기 두원리까지 33.6㎞를 잇는 해파랑길 13ㆍ14코스와 연결되는데, 이 구간을 해안둘레길에 포함해 ’해파랑길(5코스)‘로 부르기도 한다. 그러니 우린 지금 ’호미반도 해안둘레길‘의 5코스를 걷는 셈이다.
▼ 탐방로는 두원리에서 비탈진 언덕 위로 향한다. 철제계단을 밟고 위로 오르면 개인용 도크(dock)로 여겨질 정도로 작은 항구들이 두어 곳에 만들어져 있는 작은 마을을 지난다.
▼ 마을 안길을 잠시 걷다가 풍력발전기가 내다보이는 방향으로 오르니 또 다시 ‘31번 국도’가 나온다. 해파랑길 12코스 가운데서 가장 위험한 구간이 아닐까 싶다. 이곳에는 그동안 함께 써오던 ’동해안 자전거길‘ 마저도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다. 도로를 자동차와 함께 나누어 써야만 하니 이 얼마나 위험한 일이겠는가. 이런 길에서 안전을 유지하려면 약자인 인간이 강자인 자동차를 피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참! 이 구간을 걷다보면 해안이 잘 조망되는 곳에 놓여있는 카라반들이 눈에 띈다는 것을 깜빡 잊을 뻔했다. 여름철 피서객들에게 꽤나 인기가 높을 것 같다.
▼ 씽씽 달려대는 자동차들을 피해가며 얼마간 더 걷자 탐방로는 다시 해안가로 내려선다. 그리고는 몽돌해변을 따라 걷는다. 자갈 위를 걷다보니 발걸음이 피곤해진다. 발이 빠지는 모래사장처럼 발을 붙잡는 곳이 있는가하면 삐끗해지지 않으려고 발목에 힘을 주는 통에 발에 피로를 주는 곳도 있다.
▼ 잠시 후 난감한 상황과 맞닥뜨린다. 바다로 흘러들어가는 개울에 징검다리가 놓여있는데, 건너는 게 녹록치 않아 보이는 것이다. 물길이 거북이 등딱지처럼 생긴 징검다리를 피해 옆으로 돌아 흐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물길의 폭이 꽤 넓어서 건너뛰는 것은 애초에 글렀다. 다른 방법을 찾아볼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결국에는 조금 큰 돌을 옮겨놓고 이를 징검다리 삼아 건널 수 있었지만 물에 빠질 위험을 감수한 모험이었다. 평소처럼 스틱을 챙겨왔더라면 아무런 문제도 생기지 않았을 텐데 트레킹이라서 만만히 본 게 불찰이 아니었나 싶다.
▼ 탐방로는 언덕을 넘기도 한다. 그 가운데 먼저 넘게 되는 언덕은 능선으로 연결된 무인감시초소를 머리에 인 봉우리의 끝이 해식애(海蝕崖)로 이루어져 있다. 고민할 필요도 없이 언덕을 가로지르면 된다. 그러나 두 번째로 만나게 되는 언덕의 상황은 확연히 다르다. 길은 언덕을 가로지르면서 나있지만 모퉁이만 살짝 돌면 반대편에서 그 길을 다시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 길은 갈수록 험해진다. 조금씩 굵어지기 시작하던 몽돌이 언제부턴가 숫제 너덜로 변해있다. 걷기가 한층 더 어려워졌음은 당연하다. 대신에 눈에 들어오는 경관은 더욱 고와졌다. 해안의 끄트머리를 장식하고 있는 해식애가 에메랄드빛 바다와 어우러지면서 한 폭의 풍경화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잘 그린 그림이다.
▼ 선바위(立石. 생김새로 이름을 지어봤다) 근처에 이르자 더 이상의 진행이 불가능해져 버린다. 끝이 보일 때까지 진행을 고집하겠다면 바위벼랑에 매어져 있는 밧줄에 의지해서 위로 올라갈 수는 있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다. 세 방향이 모두 해식애로 이루어져 있을 뿐만 아니라, 나머지 한쪽마저도 군부대의 철조망으로 막혀있기 때문이다.
▼ 더 이상의 모험을 포기하고 왔던 길로 되돌아 나가기로 한다. 속상했지만 몇 걸음 걷지 않아 오른편 산자락으로 나있는 오솔길 하나를 찾아냈으니 그나마 다행이라 하겠다. 희미한데다 경사까지 가팔라서 오르는 게 만만찮지만 버거울 정도는 아니었다. 그렇게 올라서면 또 다시 31번 국도를 만난다. 정규의 탐방로로 되돌아온 셈이다. 이 구간을 걷다보면 가로수처럼 늘어선 소나무들 사이로 바다가 내다보인다. 특히 진행방향 저 멀리에 있는 소봉대까지 한눈에 들어오는 풍경은 가히 일품이라 하겠다.
▼ 모퉁이를 돌아선 탐방로는 다시 해안가로 내려선다. 고운 모래가 300m쯤 깔려있는 해안이다. 거기다 폭까지 30~40m쯤 되니 해수욕장으로 개발해도 충분하겠다. 하지만 해변은 그냥 방치되어 있다. 그늘을 가려줄만한 숲이 없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양포항이 4㎞가 남았음을 알리는 이정표를 만난 뒤에도 모래사장은 계속해서 이어진다. 다만 그 폭이 조금 좁아졌을 따름이다. 그런 모래사장을 오른편 옆구리에 끼고 나있는 탐방로를 따르다보면 아까 나무사이로 살짝 내다보이던 소봉대가 어느새 코앞으로 성큼 다가와 있다.
▼ 그렇게 얼마를 더 걷자 드디어 소봉대(小峰臺)이다. 두원리를 출발한지 40분 만이다. 소봉대는 장기면(포항시 남구) 계원2리에 딸린 조그만 섬이지만 물이 낮아지고 방파제가 생기면서 지금은 걸어서 닿을 수 있게 되었다. 소봉대란 지명은 인근 ‘복길 봉수대(烽燧臺)’의 전초기지 역할을 하던 작은 봉수대가 있었다는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다른 한편으로 그 생김새가 마치 거북이가 엎드린 것 같다고 해서 ‘복귀봉(伏龜峯)’이라 불리기도 한다니 참조한다. 아무튼 작은 산봉우리 모양으로 생긴 이곳은 경관이 빼어나다고 알려져 있다. 때문에 예로부터 많은 문인들이 찾아와 울렁이는 심상을 글로 옮겼다고 전해진다. 구암 이정·검간 조정·도곡 이의현·유하 홍세태 등 조선 중후기 선비들의 작품이 기록으로 남아있단다. 특히 조선 중기의 성리학자 회재 이언적(李彦迪·1491∼1553)이 지은 칠언절구는 시비로 만들어져 섬 아래쪽에 세워져 있다. 그러나 요즘의 소봉대는 한가롭기 짝이 없다. 봉수는 무너져 흔적조차 찾을 수 없고, 갯바위에는 풍류를 읊던 옛 선비들 대신에 세월을 낚는 낚시꾼들만 가득하다.
▼ 길을 걷다보면 지역 특산품인 과메기를 말리고 있는 작업장들이 심심찮게 눈에 띈다. 둘째가라면 서러운 겨울철 대표 별미인 과메기는 청어나 꽁치를 말려서 만든다. 저렇게 매달거나 널어놓은 과메기들은 차가운 해풍에 얼었다 녹기를 반복하면서 맛이 고소하고 담백해지며, 특히 어린이 성장과 피부미용에 좋다고 한다. 과메기라는 이름은 말린 청어인 '관목청어(貫目靑魚)'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꼬챙이 등으로 '청어의 눈을 뚫어 말렸다'는 뜻이다. 1960년대 이후 청어 어획량이 줄면서 꽁치로 대체됐었으나 요즘은 다시 청어가 잡히기 시작한단다. 과메기는 아래 사진과 같이 꽁치나 청어의 배를 갈라 내장과 뼈, 머리를 제거하고 나서 말리는 편과메기가 일반적이다. '배지기 과메기'라고도 부른다. 그러나 새끼줄에 매달아 통째로 말리는 통과메기도 있단다.
▼ 다시 길을 나선다. 탐방로는 이제 해안도로를 따른다. 국도는 아니고 그저 마을 앞으로 난 길쯤으로 여기면 되겠다. 몽돌해변으로 내려서서 걷기도 한다. 이곳도 역시 해수욕장으로 문을 열지는 않았다. 그렇게 이어지던 탐방로가 결국에는 국도로 올라서고 만다. 국도를 따라 조금 더 걸으면 만나게 되는 삼거리에서는 ‘아일랜드팬션’의 안내판이 가리키고 있는 오른편으로 들어선다.
▼ 탐방로는 다시 왼편으로 휘어져 나간다. 다시 국도로 되돌아나간다는 얘기이다. 하지만 우린 계속해서 해안가를 따르기로 했다. 건너편 뽈록하니 튀어나온 땅끝에 걸터앉은 계원등대가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기존의 해파랑길을 벗어났음은 물론이다. 아무튼 긴 밭두렁을 따라 얼마간 걷자 길은 산자락으로 파고든다.
▼ 산모롱이를 돌아서자 탁 트인 초원이 깜짝 선물처럼 나타난다. 소봉대를 출발한지 30분만이다. 이국적이다 싶은 풍광의 초원 끝에는 양포항로표지관리소, 즉 ‘계원등대’가 자리 잡았다. 보여주는 풍광은 아름답지만 무인등대에다 규모까지 작다보니 등대에 대한 내력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대신 여기서는 등대의 역사나 짚어보자. 등대의 기원은 기원전 280년 무렵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의 파로스(Páro) 섬에 세워진 등대다. 이 등대는 세계 불가사의로 알려져 있다. 등대가 서있는 파로스 섬은 알렉산드리아와 1km 정도의 제방으로 연결되어 있었는데, 대리석으로 이뤄진 등대는 높이가 135m에 이르고 등대 안에는 수백 개의 석실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놀라운 일은 그뿐만이 아니다. 파로스 등대에서 밝히는 빛은 반사경을 타고 50km 밖까지 전해졌으며, 맑은 날에는 터키의 수도 이스탄불의 모습이 반사경에 비칠 정도였다고 한다. 이런 점으로 미루어보아 등대는 해양도시의 첫 관문이자 그 도시의 랜드마크 역할을 하기에 충분하다 하겠다.
▼ 지난밤에도 조업을 나간 어선이 길을 잃지 않도록 수초에 한 번씩 깜빡거렸을 등대와 눈을 맞춘 뒤 양포항으로 향한다. 길은 해식애와 갯바위로 이루어진 아름다운 해안가를 따라 나있다. 해식애 너머로는 포항 제일의 미항이라는 양포항이 그 아름다운 자태를 살짝 드러낸다.
▼ 조금 더 걷자 이번에는 황계마을(계원1리)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손재림 문화유산 전시관’이 위치한 마을이다. 중풍 치료의 명의로 알려진 한의사 손재림 씨가 폐교를 매입해 화폐와 한의학 등을 모아 만든 전시관이란다.
▼ 계원등대에서 10분쯤 떨어진 곳에 있는 황계마을의 해안가를 따라 걷다가 엄청나게 큰 소나무가 보여 골목으로 파고든다. 그러자 수령(樹齡)이 500년이나 된다는 곰솔(1992년 보호수 지정)이 길손을 맞는다. 용수철처럼 몸을 ‘S’자로 잔뜩 웅크린 채로 곧 튀어오를 것 같은 모양새가 일품인 노거수(老巨樹)이다. 저런 모양새, 즉 나무줄기의 뒤틀림이 용처럼 생겼다하여 용송(龍松)이라는 이름까지 얻었다고 한다. 그나저나 나무는 엄청나게 굵고 무성하다. 몇 해 전의 태풍으로 가지가 많이 부러졌다는데도 저 정도이니 피해를 입기 전에는 얼마나 더 웅장했을지 상상도 되지 않는다. 참고로 곰솔 앞 오른편에 보이는 바위는 ‘성혈바위’란다. 전체적인 모양새는 거북이를 닮았으며, 지름 10~15㎝에 깊이가 8㎝인 구멍들이 뚫려있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여졌단다. 여기서 성혈(性穴)이란 선사시대에 고인돌이나 민간신앙의 기원을 담아 바위 표면에 새긴 원형의 홈을 말한다. 신앙 혹은 별자리와의 관련된 기념물로 추정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그림이나 형상을 표현한 바위그림(岩刻畵)이라는 해석도 있다. 그러나 알 바위나 알 구멍이라 부르는 장소가 여러 곳에서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근세에도 자손의 번창을 빌고자 바위에 성혈을 새기는 주술적인 행위를 지속하였음을 알 수 있다.
▼ 용트림을 하고 있는 나무줄기의 아래쪽은 여러 가닥의 새끼줄로 묶여있다. 새끼줄의 안쪽에는 반듯하게 접힌 종이뭉치를 끼워 넣었다. 뭔지는 몰라도 신성(神聖)의 표시가 아닐까 싶다. 하긴 저렇게 괴이한 모양으로 자랐으니 마을 사람들이 그냥 놓아두었을 리가 없다. 그리고 저 표식은 마을에서 당산나무로 섬기고 있다는 증거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 마을 주민에게 길을 물어본 다음 곰솔을 오른편에 끼고 난 골목으로 들어선다. 이어서 신우대 숲 사이를 헤집으며 난 시멘트포장길을 잠시 걷자 탐방로는 또 다시 국도로 올라선다. 잠시 후 길가에 세워진 이정표(양포항 1.75㎞/ 두원리 어항 5.1㎞)가 오른편에 보이는 옛 도로로 들어서란다. 길은 할 일을 모두 마친 은퇴자처럼 한가한 풍경이다. 뻔질나게 오가던 차량 대신에 이젠 어망이 그 주인이 되었다. 한쪽에는 마른 어망을 손질하고 있는 주민들도 보인다.
▼ 국도를 다시 만나기 조금 전에 또 다른 이정표(양포항 1.4㎞/ 두원리 어항 5.4㎞)를 만난다. 이번 것은 산자락을 헤집으며 난 오솔길로 내려서라고 일러준다. 바닷가로 내려서니 탐방로는 이제 방파제를 겸한 축대의 위를 따른다. 그러다가 우린 ‘테트라포드’, 아니 바다 숲 조성을 위해 만든 어초(魚礁)들이 널려있는 곳에서 길을 놓쳐버렸다. 별 수 없이 어초를 우회한 후 자그만 조선소의 작업현장을 통과한다. 남의 사유지로 들어서버린 것이다. 미안한 일이지만 누군가는 이런 해프닝 또한 이번 구간의 특징 가운데 하나라고 했다.
▼ 트레킹의 날머리는 ‘양포항(포항시 남구 장기면 양포리)‘
계원마을을 출발한지 40분 정도가 지나 해안가 끝자락에 이르니 탐방로가 왼편으로 방향을 튼다. 바로 앞에 양포항이 버티고 있는데도 말이다. 물길이 둘 사이를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양포교(橋)를 건너자마자 오른편으로 방향을 틀어 양포항으로 들어선다. ‘포항의 미항’이라는 애칭이 붙은 양포항은 마리나(marina), 즉 요트나 모터보트 등의 선박을 위한 항구이다. 단순한 요트계류장이라기보다는 상업시설과 관광 기능이 두루 포함된 곳이다. 여름철 해변 산책로에 가로등이 켜지면 캠핑장에서는 고기가 익어가고 바다 공연장에서는 어린이들의 웃음소리가 떠나지 않는다는 입소문이 떠돌 정도로 유명한 여행지로 알려져 있다. 해파랑길의 스탬프보관함은 안내도와 함께 양포복합공원에 만들어져 있다. 이곳 양포항이 ’해파랑길 12코스‘의 종료지점이라는 얘기이다. 핸드폰에 깔아놓은 앱에는 오늘 걸은 거리가 14.56㎞로 표기되어 있다. 사진을 찍으려고 들락거리다보니 원래의 거리(13.5㎞)보다 1㎞를 더 걸은 모양이다. 걷는 데는 3시간26분이 걸렸다. 시간당 4㎞를 조금 더 걸었으니 알맞은 속도였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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