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지 : 중국 동북부 여행
여행일 : ‘18. 6. 25(월) - 6.29(금)
여행지 : 중국 대련, 단동, 집안, 통화, 환인
일 정 :
○ 6.25(월) : 대련(성해광장)
○ 6.26(화) : 단동(압록강 철교), 집안(광개토대왕비, 장수왕릉, 환도산성)
○ 6.27(수) : 통화(백두산 천지, 금강대협곡)
○ 6.28(목) : 환인(오녀산성), 단동(유람선 투어)
여행 넷째 날 : 환인(桓仁) 의 오녀산성(五女山城)
특징 : ① 환인(桓仁) : 중국 요녕성(遼寧省)에 있는 인구 31만의 만족자치현(滿族自治縣)이다. 청나라 광서3년(1877년) 화이런현(懷仁縣)이 설치된 이래 여러 차례 개편을 거쳐 1989년 자치현(自治縣)이 되었다. 삼림이 많아 인삼·패모(貝母)·당삼 등의 약재가 많이 나고 농사는 벼농사를 주로 한다. 주민은 현의 이름대로 만족(滿族)이 많이 살고 있으나, 한족(漢族)과 후이족(回族), 몽골족 등도 다수 거주하고 있으며, 특히 조선족중학교까지 있을 정도로 우리 동포들도 많이 사는 지역이라고 한다. 우리에게는 고구려의 도읍(都邑)이었던 곳으로 더 친숙하다. 고구려를 세운 주몽이 이곳에서 나라를 열었기 때문이다. 당시에 쌓았던 졸본성이 지금의 ’오녀산성(五女山城)‘이라고 한다. 근처에는 상고성자고분군(上古城子 古墳群), 고력묘자고분군(高力墓子古墳群), 망강루고분군(望江樓 古墳群), 미창구장군묘(米倉溝將軍墓) 등의 ’고구려 무덤군(高句麗古墳群)‘들도 존재한다.
② 오녀산성(五女山城) : 환인 시내에서 8km정도 떨어진 해발 800m의 오녀산(五女山)에 천연성벽을 적절하게 활용하여 축성한 산성이다. 정상부에 남북 1km, 동서 300m인 평탄지가 조성되어 있는가하면 항상 물이 솟아나오는 샘이 있어 평상시에도 거주하기에 크게 불편하지 않다. 주몽이 나라를 세우면서 수도로 삼았던 흘승골성 또는 졸본성이라는 견해가 제기되는 이유이다. 집안과 서쪽지방을 연결하는 교통의 요충지라는 점도 수도(首都)라고 주장하는 중요한 근거가 된다. 성돌은 30×20×35㎝의 크기이며, 성벽의 축조공법에는 굽도리축조공법이 남벽에서 확인되었다. 굽도리축조공법이란 굽도리를 조성할 때 계단식으로 경사지게 쌓는 방법으로 산성에서는 협곡에 쌓을 때와 높은 성벽을 축조할 때 많이 적용된다. 산성의 동문지(東門址)에서는 성벽이 서로 엇갈리면서 한쪽 벽이 다른 쪽 벽을 모나게 감싸서 옹성(甕城)을 이루었다. 이런 형식은 오녀산성과 국내성에서만 보인다고 한다. 고구려 초기의 옹성을 보는 이유이다. 그리고 이런 점들이 <추모왕(鄒牟王)이 비류곡(沸流谷)의 홀본(忽本) 서쪽의 산 위에 성을 쌓고 도읍을 정하였다>는 광개토대왕비의 비문과 같다면서 졸본성으로 주장하는 근거로 사용된다.
▼ 숙소인 통화를 떠난 버스가 멈춰선 곳은 오녀산 아래에 있는 널따란 주차장이다. 산성으로 오르려면 먼저 ‘오녀산성 박물관(五女山城 博物館)’을 둘러봐야 한다. 매표소를 지나 박물관으로 들어가서 관람을 한 후 셔틀버스가 대기하고 있는 2층으로 나가도록 동선(動線)이 만들어져 있다.
▼ ‘오녀산성’으로 가려면 일단은 ‘오녀산성 박물관(五女山城 博物館)’을 들러야 한다. 소지품에 대한 엑스레이 검사를 치른 후에야 박물관 안으로 들어가지만 사진은 찍을 수 없다고 한다. 중국에 소재하는 박물관들의 공통점이 아닐까 싶다. 카메라의 플래시(flash)만 터트리지 않으면 촬영을 허락하는 다른 나라들과 다른 점이고 말이다. 관람객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감추어야만 할 뭐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물관에 전시된 유물들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오녀산성에서 발굴된 유물이라며 석기·철제갑옷·무기·토기 등을 전시해 놓았는데 특별히 가슴에 담아둘만한 유물은 눈에 띄지 않았다. 2층에는 ‘미창구 장군묘(米倉溝將軍墓)’의 1:1 재현모형이 있었다. 환인현의 미창구촌에 위치한다고 해서 ‘미창구 장군묘(米倉溝將軍墓)’란 이름이 붙여졌다. 고구려를 건국한 ‘동명성왕(東明聖王)’의 것으로 추정되는 무덤이라서 이곳에 재현해 놓았는가 보다.
▼ 박물관의 2층 뒷문을 빠져나오면 널따란 광장이 나온다. 셔틀버스의 주차장을 겸하는 곳이다. 왼쪽에는 주로 기념품과 함께 토산품을 파는 상점가가, 그리고 오른쪽에는 ‘고구려 시조비(高句麗 始祖碑)’라 쓰인 커다란 비석이 세워져 있다. 윗부분에 삼족오를 새기고 중국 특유의 빨간 글씨로 ‘고구려 시조비’라 썼다.
▼ 산성까지는 셔틀버스로 이동해야 한다. 30명 정도가 탈 수 있는 버스는 꾸불꾸불한 비탈길을 굽이굽이 돌아가며 위로 오른다. 그러다보니 오녀산성의 정상부가 보였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하는데 보면 볼수록 위엄이 넘치는 풍경이다. 실제로 오녀산성은 성의 전체 둘레인 4,754m 가운데 4,189m가 천연 암벽으로 이루어져 있어 성벽의 대부분이 저런 암벽이다. 인위적으로 쌓은 성벽은 전체 중 12%인 565m에 불과하다고 한다. 내가 동명성왕이었더라도 서슴없이 수도로 삼았을만한 난공불락의 요새임이 분명하다.
▼ 20분쯤 지나자 오녀산성으로 오르는 계단의 초입에 있는 상부주차장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리니 음료와 기념품을 파는 가판대가 우리를 맞이한다. 한쪽 귀퉁이에는 오녀산성(五女山城)이라고 적은 거대한 비석도 세워져 있다. 비석은 이곳 오녀산성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사실을 알리는 것도 빼먹지 않았다. 참고로 오녀산은 정상부의 지세가 평탄하지만 주변은 100-200m 높이의 절벽을 이룬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이러한 천혜의 이점을 살린 게 ’오녀산성‘이다. 성은 남북으로 길쭉한 부정형을 이루고 있으며, 절벽 윗부분의 평탄한 정상부와 정상부 동쪽의 완만한 사면을 포용하고 있다. 정상부는 남북의 길이가 600m 동서의 너비가 110-200m 정도이며, 전체적으로 천연 절벽으로 둘러싸여 있어 서쪽방면에서 정상부로 진입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인 서문주변에만 일부 성벽이 구축되어 있다.
▼ 입장권을 내고 개찰구를 통과하니 가파른 돌계단이 끝도 없이 길게 뻗어 있다. 하늘을 향해 올라간다고나 할까? 아무튼 계단을 본 사람들마다 놀래는 기색들이 역력하다. 그리고는 이내 우거지상으로 변해버린다. 하긴 저렇게 길고 가파른 계단을 보고도 놀라지 않는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일 것이다.
▼ 마음을 가다듬고 계단을 오르기 시작한다. 계단은 그 숫자가 많을 뿐만 아니라 경사까지도 가파른 편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조금은 편해진 또 다른 길을 만날 수 있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 아닐까 싶다. 아무튼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혀갈 즈음 ‘십팔반(十八盤)’이라고 쓰인 비석 하나가 길손을 맞는다. 고구려 시대 때부터 있었던 길을 이르는 말로 당시에는 말과 마차까지 다녔다고 한다. 이 길을 따르더라도 정상에 오를 수 있음은 물론이다. 전체 길이는 938m, ‘갈 지(之)’자를 그리는 구절양장의 길을 따라 열여덟 구비를 지나야만 정상에 이를 수 있다고 해서 ‘십팔반(十八盤)’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글쎄다. 십팔반이란 게 본디 중국에서 전해지는 열여덟 가지의 무예를 이르는 말인데..
▼ 얼마쯤 올랐을까 대나무를 엮은 시설물이 길게 만들어져 있다. 위에는 레일까지 깔려있다. 정상에 오른 후에 확인해보니 공사용 자재를 운반하는 궤도(軌道)였다. 정상에서 제법 큰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었던 것이다.
▼ 올라가기 시작한 지 30분쯤 지났을까. 계단과 나무만 보이던 풍경이 바뀐다. 더욱 좁아진 계단 길 양쪽으로 수직 절벽이 높게 솟아 범상치 않은 에너지를 내뿜고 있는 것이다. 아까 버스를 타고 오면서 보았던 그 바위절벽이 아닐까 싶다. 절벽이 시작되는 입구의 너럭바위에 ‘천창문(天昌門)’이라는 글씨를 굵게 새기고 붉은 페인트를 칠해 놓았다. 이렇게 생긴 곳은 대부분 ‘통천문(通天門)’이라 부르는 게 보통인데 왜 이곳에서는 ‘창성할 창(昌)’자를 썼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억겁의 세월을 견뎌온 바위 덩어리들은 마치 저 위쪽에 있는 그 무언가를 지키는 수호신이라도 되는 양 통과하려는 사람들을 매섭게 지켜보는 형상이다. 바위 안으로 한 발 내딛자 서늘한 바람이 온 몸을 스치고 지나간다. 바람은 바위에서 흘러나오는 기운들과 섞여 신성지역으로 들어가기 전 온 몸에 남아있는 답답하고 무거운 기운을 씻어주려는 듯 했다.
▼ 땀을 한바가지나 흘린 후에야 정상에 올라서니 길이 두 갈래로 나뉜다. 오른편은 왕궁유적과 천지(天池)를 거쳐 점장대(点將臺)로 이어지고, 왼편은 비래봉(飛來峰)과 자매교(姉妹橋), 오녀송(五女松)을 거쳐 점장대로 이어진다. 다시 말해 어느 방향으로 가더라도 어느 한 지점에서 다시 만나게 된다는 얘기이다. 탐방로가 산상(山上)의 바위벼랑을 따라 한 바퀴 빙 둘러볼 수 있게 나있는 것이다.
▼ 조망을 기대하면서 일단은 왼편으로 가본다. 그런 내 예상은 적중했다. 운해송수(雲海松濤)라고 적힌 커다란 비석이 세워진 곳이 뛰어난 전망대였기 때문이다. ‘운해송수’란 '구름바다에 소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며 물결을 이룬다.'는 뜻이니 주변 풍광을 잘 표현한 글귀가 아닐까 싶다. 실제 풍경도 구름바다와 바람이 소나무를 흔들며 자연의 아름다운 풍광을 연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 환인(桓仁) 시내와, 시내를 ‘역S자’로 굽이굽이 흐르는 훈강(渾江)이 멀리 보인다. 즉, 주몽이 첫 도읍지를 고를 때 물과 땅이 어우러진 곳을 찾다가 훈강의 넉넉한 물줄기에 반해 이곳에 정착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그나저나 저곳이 바로 광대한 만주 벌판이다. 고대 역사를 공부를 할 때마다 가슴 뛰게 하던 고구려의 주 활동무대였던 곳이다. 저기를 고구려 무사들이 말을 달려 기상을 한껏 높였을 것이라는 추측은 나 혼자만의 감흥이었을까?
▼ 조금 더 나아가보기로 한다. 자매교(姉妹橋)라는 다리 아닌 다리를 건너자 이번에는 쉼터용 정자가 지어져 있는 봉우리에 올라선다. 정자는 소정봉(小丼峰)이라는 간판을 달고 있다. 이름으로 미루어볼 때 옛날 이곳에 작은 우물이라도 있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다. 아무튼 주변 풍광이나 조망 등 특별한 볼거리가 없는 곳이니 특별히 염두에 둘 필요는 없겠다.
▼ 반대방향으로 진행할 것이라는 연락을 받고 아까의 삼거리로 되돌아온다. 그리고 이번에는 오른편으로 향한다. 잠시 후 냉과류와 기념품을 파는 가게가 나온다. 화장실은 물론이고 커다란 안내도까지 세워두었으니 잠시 쉬어가는 것도 괜찮겠다. ‘아는 것만큼 보인다고 했다’ 지도라고 꼼꼼히 살펴둔다면 꼭 봐두어야 할 볼거리를 놓치는 불상사는 생기지 않을 것이다.
▼ 매점의 옆은 서문(西門)이다. 오녀산성의 성문은 동문과 서문, 남문 등 3개가 확인된다고 한다. 그중 서문(西門)은 서쪽에서 접근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입구에 설치되어 있다. 너비는 3m이며, 문의 남쪽과 북쪽은 성벽을 이어 쌓았는데 북쪽의 성벽은 ㄱ자 형태로 회절(回折)하도록 하여 마치 치(雉)나 적대(敵臺)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성돌의 면석은 쐐기모양의 다듬은 성돌을 사용하였으며, 뒷채움돌은 길쭉한 마름모꼴의 성돌을 사용하였다. 문지의 바깥쪽 양쪽바닥에는 구멍이 파여진 확돌이 놓여있고, 문 안쪽부분의 양쪽에는 凹자 형태의 위실(衛室)이 구축되어 있다.
▼ 통로 옆에 아까 올라오면서 보았던 대나무를 엮어 만든 시설이 설치되어 있다. 이곳의 대나무 위에는 레일(rail) 말고도 운반용 기구까지 놓여있다.
▼ 본격적인 투어에 나선다. 탐방로는 정비가 잘 되어 있다. 길이 널찍할 뿐만 아니라 바닥은 판석(板石)을 깔아 비가 오는 날에도 질퍽거리지 않도록 했다. 탐방로 주변은 거의 평원 수준이다. 지각변화를 겪는 과정에서 정상의 단단한 바위부분만 침식당하지 않고 남아있기 때문이란다. 그 바위지대가 오랜 세월 풍화작용(風化作用, weathering)을 거치면서 나무가 우거지고 샘물까지 솟아올랐다. 사람이 기거할 수 있게 변한 것이다.
▼ 산성에는 왕궁과 병영(兵營), 초소, 장대(將臺), 주거지가 자리하고 있다. 그 가운데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것은 주몽이 살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왕궁터(王宮址)이다. 공식 이름은 ‘1호건축기지(一號建築基址)’. 길이 13.5m에 넓이 5m의 건물이 있었다지만 지금은 7개의 기둥만 남아있을 따름이다.
▼ 몇 걸음 더 걸으면 이번에는 옥황관(玉皇觀)의 건물터가 나온다. 청나라 광서제 때 선양 태청궁감원의 리선선이 옥황상제를 모시는 전각을 지었으나 1966년에 철거되었단다. 오녀산성과 아무런 연관도 없는 건물이었으니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
▼ 잠시 후 오녀산성에서 가장 뛰어난 전망대라는 태극정(太極亭)에 이른다. 이곳에서 바라볼 경우 태극의 문양이 나타난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그 문양을 찾아 절벽의 끄트머리로 나가본다. 저 멀리 주몽이 건넜다는 비류수의 흐름이 'S'자를 반대로 뒤집어 놓은 듯한 형태를 띠고 있다. 완전한 태극이라 하겠다. 그뿐만이 아니다. 정자의 중앙 바닥에 태극도(太極圖)를 그려놓았는가 하면, 정자 곁에는 태극의 문양을 만들어내는 풍경을 담은 사진까지 걸어두었다.
▼ 조금 더 걷자 '천지(天池)'라 불리는 작은 못이 길손을 맞는다. 이 못의 물은 말라본 일이 없다고 한다. 못은 동서로 긴 장방형인데 그 크기는 동서의 길이 12m 남북의 너비 5m, 깊이 2m로 아담하지만 성안에 있는 주민을 먹여 살리던 생명수였다. 못은 암반을 깎아낸 다음 변두리에 큼직큼직한 막돌을 쌓았으며 지면에 나타나는 부분에만은 네모나게 잘 다듬은 돌을 규모 있게 쌓았다. 못의 북쪽 벽 가운데에는 물이 빠져나가는 구멍을 만들었다고 한다.
▼ 못의 서남 모서리 밖에는 이 못과 연결된 조그마한 샘을 팠다. 이 샘 역시 못에 쓴 돌과 같은 잘 다듬은 돌로 쌓았다. 안에는 관우 동상이 세워져 있고, 동전을 던져 무사안녕을 기원하게 만들었다.
▼ ‘3호 대형건축기지(三號 大型建築基址)’와 ‘거주건축군지(居住建築群址)’ 등 이후에 나오는 유적지들은 복원공사가 한창이었다.
▼ 공사구간을 지나 동남쪽으로 조금 더 가면 산성에서 가장 높은 점장대(點將臺)가 나온다. 점장대는 고구려 사람들이 진을 치고 전략을 짜던 곳으로 '집선대'라고도 하며, 오녀산 정상의 전망대 중에서 ‘환룡호(桓龍湖)’를 바라보는 풍경이 가장 좋은 곳으로 알려져 있다. 수백 미터의 절벽위에서 바라보는 호수는 용이 꿈틀대는 모양을 흡사하게 닮았다. 한마디로 절경이라는 얘기다.
▼ ‘역S자’로 흐르는 훈강(渾江)이 그 흐름을 잠시 멈춘 곳이 바로 환룡호(桓龍湖)이다. 댐의 물을 공급하기 위해 호수를 만들었지만 득과 실은 분명하다. 중국인들에게는 득(得)이 될지 모르겠지만 한국인의 입장에서 보면 크나큰 실(失)이라 하겠다. 인공호수 때문에 많은 고구려 유적이 수몰되었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이 호수가 구름과 잘 어우러지면서 한 폭의 그림으로 변했다. 그래 지금은 아름다운 풍경을 즐기는데 만족해보자.
▼ 점장대 근처에는 또 다른 매점이 들어서 있다.
▼ 조망을 즐기다가 또 다시 탐방을 이어간다. 올라왔던 반대방향으로 잠시 걸으니 허공을 향해 툭 튀어나간 지점에 정자가 지어져 있다. 지도에 나오는 ‘소점장대(小點將臺)가 아닐까 싶다. 아니 장대보다는 초소가 제격일 위치다.
▼ 정자에 오르면 환룡호가 다시 한 번 눈앞에 펼쳐진다. 저 물속에는 고구려 시대와 그 이전 시대까지도 점쳐 볼 수 있는 수많은 피라미드 적석총과 고구려 성터들이 잠겨있다고 한다. 안타깝고 답답하지만 어쩌겠는가. 우리네 땅도 지켜내지 못한 우리네 처지를 탓할 수밖에.
▼ 다시 서문으로 돌아와 하산을 시작한다. 오는 도중에 하늘이 한줄기로 보인다는 일선천(一線天)으로 내려가는 길을 만났지만 직접 걸어보지는 못했다. 앞에서 성큼성큼 걷고 있는 가이드의 걸음에 발맞추다보니 그럴만한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오녀산성이 자랑하는 절경 가운데 하나를 놓쳐버렸다. 안타깝지만 이런 게 패키지여행의 특징이니 어쩌겠는가. 이런 불상사를 없애기 위해서는 동문으로 올랐다가 서문으로 내려가도록 코스를 짜는 게 좋을 것 같다. 아무튼 서문에서 시작되는 하산은 ’십팔반(十八盤)‘을 이용했다. 계단이 아니어서 무릎 보호에도 좋을뿐더러, 주변 경관까지도 썩 뛰어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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