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지 : 중국 동북부 여행

 

여행일 : ‘18. 6. 25() - 6.29()

여행지 : 중국 대련, 단동, 집안, 통화, 환인

일 정 :

6.25() : 대련(성해광장)

6.26() : 단동(압록강 철교), 집안(광개토대왕비, 장수왕릉, 환도산성)

6.27() : 통화(백두산 천지, 금강대협곡)

6.28() : 환인(오녀산성), 단동(유람선 투어)

 

여행 첫째 날 : 대련(大连)의 성해광장

 

특징 : 대련(大连, 다렌) : 중국 랴오닝 성(遼寧省) 랴오둥(遼東) 반도에 있는 항구도시이다. 북방의 홍콩으로 불리는 대련(大连)학업은 베이징에서, 일은 상하이에서, 노후는 다롄에서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로 중국인들에겐 선망의 도시라고 한다. 살아가기에 딱 좋다는 얘기가 아닐까 싶다. 대련의 가장 큰 강점은 깊고 푸른 바다와 다채로운 해안선을 끼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인구밀도가 낮아서 거리가 언제나 한산하고 깨끗하다. 거기다 성해광장 등 푸른 광장을 80여 개나 갖고 있는 도심(都心)은 언제나 쾌적함을 자랑한단다. 하긴 유엔 환경계획(UNEP)에서 세계 환경의 날을 맞이하여 세계 환경보호에 공헌한 도시 중 하나로 중국 도시 중에서는 유일하게 대련을 선정했다니 두말하면 뭐하겠는가. 그나저나 19세기까지만 해도 대련은 작은 어촌에 불과했다고 한다. ‘·일 전쟁후 러시아가 이 지역을 조차하면서 근대화의 기틀이 마련되었고, 그 시절 러시아가 건설한 건축물이 지금껏 고풍스럽게 보존돼 있단다. ·일 전쟁 후에는 일본이 조차하여 남만주철도 본사를 대련에 설치하고 만주 공략의 거점으로 삼았다. 지금도 일본식 전차가 도심을 관통하면서 이국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고 한다. 한편 대련은 우리와도 인연이 깊다. 항일 운동에 불을 지폈던 안중근 의사가 생을 마감한 뤼순 감옥(旅顺 監獄)’이 시내에서 50분 거리에 있다.


 

성해광장(星海广场) : 1993년에 조성을 시작해서 1997년에 완공된 이 광장은 어마어마하게 큰 규모를 자랑한다. 아시아에서 가장 크고 세계에선 두 번째로 크다고 하며, 베이징에 있는 천안문 광장의 4배 규모인 176에 달할 정도란다. 광장의 내원 직경은 199.9m인데 이 의미는 1999, 즉 대련건설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분수와 화표 등 광장에는 볼거리가 다양한 편이다. 하지만 광장이 너무 넓어서 전 구간을 걸어서 돌아보기는 어렵다. 자전거를 대여해 하이킹을 하거나 아이를 동반한 가족이라면 마차를 타고 한 바퀴 둘러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아무튼 군중집회용의 광장이라기보다는 거대한 기념 녹지공간으로 보였다.




버스에서 내리면 모시조개를 포개서 엎어놓은 것처럼 생긴 건축물이 길손을 맞는다. 청화대학의 건축공정연구설계원에서 설계한 대련 조가비박물관(大连 贝壳博物馆)’이라고 한다. 아시아에서 가장 많은 조가비를 전시해 놓았다고 하는데 들어가 보지는 못했다. 이번 여행도 역시 패키지이다. 단동으로 가는 길에 끼워 넣기 식으로 만든 빠듯한 일정이니 박물관을 둘러보는 여유는 언감생심(焉敢生心)이라 할 수 있겠다.



그렇다고 박물관에 대한 정보까지 놓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이곳에는 세계 각지의 진귀한 조가비 5천여 종이 전시되어 있다고 한다. 4대양 30개 나라의 개인 채집 및 수매자(收買者)의 손을 거쳐 수집되었단다. 미국, 일본, 대만 등 각국 학회 또는 개인 소장가의 기부나 교류형식으로 얻기도 했음은 물론이다. 전시된 조가비 중에는 무게가 약 100킬로를 넘나드는 종류 및 식인 조가비 거거(砗磲, Tridacnidae spp)가 있는가 하면 확대경으로만 감상할 수 있다는 사베이(沙贝)도 있단다.



공원으로 향하다 보면 엄청나게 놓은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용도는 모르겠으나 날로 커져가는 대련시의 현재를 보는 것 같다.



몇 걸음 더 걷자 이번에는 놀이공원의 입구가 나온다. 사무실로 쓰고 있는 객차(客車)가 눈길을 끈다. 나무로 만들어진 것이 제법 고풍스러워서이다. 하지만 이곳도 역시 지나친다. 주어진 시간으로는 광장 주변을 얼씬거리는 것만으로도 빠듯했기 때문이다.




광장에 들어서자마자 마치 책을 펼쳐놓은 것처럼 생긴 거대한 시설물이 눈에 들어온다. 롤러스케이트를 타라고 만들어 놓은 것 같기도 한데 맞는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이 시설물은 성해광장에서 가장 볼만한, 아니 성해광장을 상징하는 구조물이라고 한다. 보기에 별로 높아 보이지 않지만 실제로 올라가면 서있기 무서울 정도로 경사가 급하고 또 굉장히 높다. 바람도 세게 불어 떨어질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이다. 대신 광장 전체를 눈에 넣기에는 이만한 곳도 없다.




안으로 들어서자 대련의 100주년을 기념해 찍어놓았다는 1000쌍의 발자국들이 나온다. 모두 대련 시민들의 발자국을 찍어놓은 것이라는데 1899에서 2009년으로 발자국들이 향해있는 게 인상적이다. 그 중엔 1899년에 태어난 할머니의 전족도 있단다.








바다 방향에 음악 분수가 있다는 정보를 듣고 이를 찾아보기로 했다. 하지만 분수는 눈에 띄지 않고 그저 너른 바다만이 눈에 들어올 따름이다.




광장만 큰 게 아니었다. 광장의 앞 바다에 놓인 다리 역시 범상치가 않다. 광활한 지역의 표적이 될 수 있을 만큼 시설이 육중하고 웅장한 모습이다.







광장에는 여러 종류의 동상들이 만들어져 있다. 그런데 각 동상에 만들어둔 빈자리가 눈길을 끈다. 관람객들이 그곳에 들어가 자신의 동작을 하면서 사진을 찍도록 해 놓았다. 멋진 아이디어라 하겠다.





광장 가운데 있는 한백옥(汉白玉)으로 만든 화표(华表)도 주목해서 보자. 천안문의 화표보다 10m나 높은 19.97m, 1997년 홍콩이 중국에 반환된 것을 상징한단다. 화표는 고대 중국 전통건축의 상징으로 고궁이나 왕릉 등의 대형 건축물들 앞에 세우던 거대한 돌기둥이었다. 이 조형물은 천안문광장의 상징이기도 한데 과거 대련의 시장이었던 보시라이가 시의 발전을 위한 의지를 담아 이곳에다 세웠다고 한다. 화표의 받침판에는 여덟 마리의 용()이 덧붙어있고, 기둥에도 한 마리의 용이 조각되어 있는데 이는 중국의 아홉 개 주를 상징한단다. 화표의 정상에는 2.3m 크기의 조형물을 얹었다. 망천후(望天吼)라는 짐승으로 전설에는 용왕의 아홉 번째 아들이라고 전해진다. 하늘을 향해 울부짖는 모습인데 지키고 바라는 습관이 있다 하여(守望) 여기서는 간절히 바라는 것(盼望)’을 상징한단다.




바다의 반대편에는 작은 인공 연못들이 끝 간데 없이 길게 늘어서 있다. 연못의 안에 작은 구멍들이 뚫려있는 걸로 보아. 아까 찾아내지 못했던 음악분수가 이것일 수도 있겠다.








주차장 근처에 있는 커피숍 후가배(后咖啡, hoou coffee), 현관에 한글로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라라고 적어 놓은 게 눈길을 끌기에 카메라에 담아봤다. 그나저나 대충 둘러봤으면 이젠 단동으로 가야할 차례이다. 성해광장은 밤에 오면 더 아름다운 모습들을 볼 수 있다는데 아쉬운 일이다. 저 너른 광장 전체를 전구로 장식해 놓아 크리스마스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한다는데 말이다. 그리고 매일 저녁마다 펼쳐지는 음악분수는 전체적인 아름다움에 화룡점정(畵龍點睛)이라고들 말하지 않았던가.



중국 여행에서 마사지가 빠질 리가 없다. 기본인 발마사지 외에도 선택코스로 전신마사지를 끼워 넣는 등 이번 여행도 역시 두 번이나 포함이 되어있었다.



쇼핑도 역시 패키지여행의 필수라 하겠다. 편백(扁柏, 히노끼)과 라텍스(latex), 죽섬유(竹纖維), 잡화 등의 쇼핑이 있었다. 참가자들이 가장 부담을 느끼는 시간이 아닐까 싶다. 일행 가운데 매상을 많이 올려주는 사람이라도 있다면 다행이겠지만.




현지 음식이 질릴 때쯤 평양고려식당이라는 북한식당을 찾았다. 평양냉면을 기본으로 하고 장어구이를 안주로 시켜 들쭉술과 대동강맥주로 반주를 했는데, 냉면이 우리가 평소에 먹어오던 평양냉면의 맛과 약간 다르다는 것을 빼면 맛은 대체로 괜찮은 편이었다. 하긴 미녀들이 펼치는 춤과 노래를 들으며 먹고 마시는데 맛이 없을 리가 있겠는가. 특히 미녀들이 따라주는 술맛은 옆에 앉은 집사람에게 미안할 정도로 일미(一味)였다. 그건 그렇고 남한 손님과 북한 접대원이 흉허물 없이 대화를 주고받는 게 낯설어 보이지 않는다. 통일이 다 된 듯한 요즘 분위기가 반영된 풍경이어서 일게다.



장거리 여행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틈틈이 휴게소에 들른다는 것이다. 90년대 말 국제회의 참석을 위해 중국 땅을 밟은 이래 중국여행은 벌써 열 손가락으로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늘어났다. 그동안 중국은 참 많이도 변했다. 특히 휴게소가 가장 많이 변하지 않았나 싶다. 90년대에는 화장실에서 일을 보기가 무서울 정도로 시설이 엉망이었는데 요즘은 우리나라에 버금갈 정도로 깨끗해졌으니 말이다. 휴게소의 먹거리 또한 부담을 느끼지 않고도 골라먹을 수 있을 정도로 위생적으로 변해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