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지 : 중남미의 멕시코 및 페루
여행일 : ‘18. 4. 23(월) - 5.2(수)
여행지 : 멕시코, 페루. 쿠바(비행기 사정으로 인해 취소)
일 정 :
○ 4.23(월) : 멕시코시티(소깔로광장, 과달루페성당)
○ 4.24(화) : 멕시코시티(테오티우아칸)
○ 4.25(수) : 쿠스코(마추픽추)
○ 4.26(목) : 쿠스코(12각 돌, 쿠스코대성당, 산토도밍고성당)
○ 4.27(금) : 리마(아르마스광장, 사랑의 공원, 라르꼬마르)
○ 4.28(토) : 파라가스(바예스타 섬), 이카(와카치나 사막)
○ 4.29(일) : 나스카(나스카라인)
○ 4.30(월) : 멕시코시티(소우마야 미술관)
여행 셋째 날 오전 : 마추픽추로 가는 길목, 오얀따이땀보(Ollantaytambo)
특징 : ① 페루(Republic of Peru) : 한반도보다 1.2배 큰 땅덩어리에서 인디언(45%)과 메스티조(37%), 백인(15%) 등이 함께 살고 있으며, 언어는 스페인어와 케츄아어, 아이마라어를 사용한다. 수도는 리마(Lima)이다. 종교는 가톨릭이 국교로 90% 이상이 믿는다. 페루 땅에 인간이 출현한 증거는 기원전 9,000년경에 나타난다. 노르테 치코 문명은 기원전 3000년에서 1800년경 사이에 태평양 연안을 따라 번성하였다. 그 뒤를 이어 쿠피스니케·차빈·파라카스·모치카·나스카·와리·치무 문화가 고고학적으로 발견된다. 15세기 이후에는 현재의 에콰도르 북부 및 칠레 중부에 걸친 고대 잉카제국의 중심지였다. 1533년 이래 스페인통치를 받아오다가 1821년 7월 26일 독립하였다. 1866년에는 이웃 칠레와의 전쟁에서 패배하여 북부 영토를 상실하였고, 1841년에는 에콰도르와 국경분쟁을 겪기도 했다. 대외적으로는 중도·중립의 입장을 취하고 있으며, 1945년 유엔, 1973년 비동맹회의에 가입하였다. 우리나라와는 1963년 국교를 수립하고, 1971년부터 상주공관을 운영하고 있으며, 페루의 광물자원 개발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참고로 ’페루(Peru)‘란 이름은 16세기 초 파나마의 산 미겔 만 근처에 살았던 지방 통치자의 이름 ’Biru‘에서 유래했다고 전해진다.
② 오얀따이땀보(Ollantaytambo) : 페루는 두 얼굴의 나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재의 수도인 리마를 비롯하여 옛 잉카 제국의 수도였던 쿠스코까지 깔끔하게 정비된 도로와 유럽풍의 건물들, 역사를 간직한 잉카 제국의 벽들, 친절한 시민들 등 역사와 조화되면서도 현대적인 대도시의 면모를 여지없이 볼 수 있다. 반면에 도시를 조금만 벗어나면 안개로 둘러싸인 신비로운 분위기들을 만날 수 있고, 그곳에서 역사의 비밀을 간직한 원초적인 자연 경관을 체험하게 된다. 이런 양면성이 페루만이 가지고 있는 매력이라 할 수 있겠다. 오늘의 여정, 산상의 잊혀진 도시 마추픽추로 가는 길에 만나게 되는 오얀따이땀보(Ollantaytambo)는 그 가운데 후자라고 보면 되겠다. ‘살아있는 잉카의 마을’ 오얀따이땀보에서는 현재도 페루의 전통과 관습을 간직하며 살고 있는 현지인들을 만날 수 있다.
▼ 마추픽추로 가는 여정은 쿠스코로부터 시작된다고 보면 된다. 하지만 이곳까지 오는 데는 엄청난 인고(忍苦)의 시간이 필요했다. 오후 5시에 멕시코시티를 출발한 비행기는 6시간이 지난 후에야 페루의 수도 리마에 도착했다. 도착시간은 자정에 가까운 저녁 11시, 입국수속을 마치고 짐을 찾고 공항을 빠져나오니 이미 다음 날 1시 무렵이 되어버렸다. 그런데 쿠스코로 들어가는 비행기가 5시30분에 출발한다며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란 언질이 주어지는 게 아닌가. 호텔에 들어가 대충 씻고 난 후에 모래알 씹는 기분으로 대충 아침식사를 때울 수밖에 없다. 잠시잠깐도 눈을 부쳐보지 못했음은 물론이다. 그렇게 어렵게 탄 비행기는 예정대로 6시50분에 쿠스코에 내려주었다. 드디어 마추픽추로의 여정이 시작된 것이다.
▼ 마추픽추로 가는 육로(陸路)는 둘로 나뉜다. 하나는 산허리를 따라 옆으로 도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4000m급의 산릉을 아예 넘어버리는 것이다. 우린 후자를 택했다. 다른 길은 마추픽추에서 돌아올 때 이용하기로 했고 말이다. 그런데 아무리 올라가도 민가들이 없어지지 않는다. 산비탈에 기대어 다닥다닥 지어진 집들이 끊임없이 나타나는 것이다. 가이드의 말로는 국유지인 산비탈에 집을 지어놓고 일정기간을 거주하면 소유권이 주어지기 때문이란다. 물론 국유지를 점용한데 대한 사용료는 내야한단다.
▼ 산허리에 구름이 걸려있다. 해발고도가 3400m에 이르는 쿠스코에서는 일반적인 풍경이란다. 그보다도 훨씬 더 높으니 구름이 산허리에 걸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아무튼 안데스 산맥의 풍경은 언제 보아도 참 아름답다.
▼ 돌아오는 길에 만난 산상 휴게소, 쉬어갈만한 마을을 만날 수 없는 오지에서는 꼭 필요한 시설이 아닐까 싶다. 특히 이렇게 조망까지 좋은 곳이라면 힐링까지도 제공해줄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화장실이 잠겨있다는 건 아쉬운 일이라 하겠다. 카페에서 관리하고 있는 것 같은데 자기들이 문을 연 후에야 화장실도 개방하는 모양이다. 하루 종일 문을 열어놓는 화장실만 보아오던 나에게는 낯선 풍경으로 다가온다.
▼ 저 아래 보이는 협곡으로 우르밤바강이 흐른다고 한다. 세계에서 가장 길고 가장 넓은 유역을 가진 강의 최상류가 이곳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난 지금 7천km의 안데스산맥 품에서 7천km의 아마존 강을 발밑에 두고 있는 셈이다. 참고로 우루밤바강 유역은 ‘성스러운 계곡(Sacred Valley)’으로도 불린다. 피삭(Pisac)에서 오얀따이땀보를 거쳐 마추픽추까지 우루밤바(Urubamba)강을 따르는 2,000~3,000m 고도의 100여㎞에 걸친 지역을 말하는데, 이 지역의 계단식 농지에서 대량의 농산물 재배가 가능했다고 한다. 그 농산물로 ‘쿠스코 잉카’가 번영을 이룰 수 있었다고 해서 ‘신이 주신 성스러운 계곡’으로 불렸다는 것이다.
▼ 높은 산자락에 널따란 분지(盆地)가 펼쳐져 있는 게 보인다. 잘 다듬어진 게 경작지가 분명하다. 가이드의 말로는 저 부근에 농업연구소가 있다고 했다. 잉카인들의 농업유적인 모라이(Moray)을 말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모라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짙은 감흥이 느껴진다. 모라이(Moray)는 잉카인들이 척박한 환경 속에서 농사를 짓고 살아가기 위해 만들어낸 농업연구소였다고 한다. 유적은 로마의 콜로세움처럼 원형의 계단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가장 아래쪽의 밭과 가장 위쪽의 밭의 기온차가 있기 때문에 어떤 온도에서 어떤 작물이 가장 잘 자라는지를 연구한 후 대중들에게 농업기술을 전파했단다.
▼ 이런 고산지대에도 꽃은 피는가 보다. 노랗게 핀 이름 모를 꽃들이 산자락을 온통 뒤덮어버렸다.
▼ 마추픽추로 가거나 오는 길에 한번쯤은 ‘우루밤바(Urubamba)’를 지나게 된다. 우루밤바 강 유역에 위치한 작은 마을로 우루팜파(Urupampa)라고도 불린다. ‘성스러운 계곡(Sacred Valley)’이라 불리는 ‘우르밤바계곡’ 투어를 하는 사람들이라면 식사를 위해서라도 들를 수밖에 없는 요지라고 한다. 또한 산속의 보석 같은 소금밭인 살리나스(Salinas)로 가는 길목이기도 하다. 우린 하룻저녁을 이곳에 묵었다. 해발이 3400m나 되는 쿠스코보다는 2280m에 불과한 이곳이 숙면(熟眠)과 휴식에 좋을 것 같아서이다.
▼ 하룻밤을 머문 ‘hotel agusto’s Urubamba‘, 넓은 정원이 아름답게 꾸며진 리조트형식의 예쁜 호텔이다. 아침에 조금 일찍 일어나 호텔 주위를 산책해보라는 가이드의 귀띔이 이를 증명한다 할 것이다. 3성급 호텔이지만 시설 또한 괜찮은 편이다. 웬만한 시설은 다 갖추고 있으며 조금 느리기는 하지만 와이파이까지도 터진다. 제공되는 음식도 쿠스코나 리마 등 대도시의 호텔들에 비해 하등 뒤질 게 없었다.
▼ 조금 더 달리면 해발 2,792m의 고원지대에 위치한 오얀따이땀보(Ollantaytambo)가 나온다. 쿠스코에서 88㎞쯤 떨어진 지점이니 쿠스코와 마추픽추의 중간 지점쯤으로 보면 되겠다. 잉카 연대기를 작성했던 학자들의 기록에 의하면 ‘성스러운 계곡’에 자리한 오얀따이땀보는 쿠스코 다음으로 중요한 도시였다고 한다. 중심지에만 1000명이 넘게 살았을 정도였다는 것이다. 쿠스코에서 오얀따이땀보까지 곧장 도로로 연결되어 있어 군사적으로도 매우 중요했으며 잉카의 지배층들이 많이 살았던 곳이란다. 그래선지 작지만 깔끔하게 정리된 인상을 물씬 풍기고 있었다.
▼ 마을 한가운데에는 널따란 광장이 들어서 있다. 나이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오래 묵은 노거수(老巨樹)를 가운데 놓고 작은 화단들이 둘러싸고 있는 모양새이다. 곳곳에 벤치를 놓아 쉼터를 겸하도록 했음은 물론이다.
▼ 광장의 밖은 상점들이 둘러싸고 있다. 테라스를 갖추고 있는 것이 하나같이 고풍스런 느낌을 물씬 풍긴다. 스페인과 페루의 건축양식이 함께 섞여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드는 것은 나 혼자만의 생각일까?
▼ 관광지여서인지 쓰레기통까지도 그럴듯하게 만들어놓았다. 잉카인들이 신성시 여겼다는 퓨마의 머리를 씌워놓았다. 그 옆에는 뭔가 보따리를 매고 있는 잉카여인의 조형물도 보인다.
▼ 이젠 골목으로 들어가 볼 차례이다. 가장 큰 특징은 담벼락이 두 개의 단(段)으로 나뉘어져 있다는 점이다. 커다란 바위를 쌓아올린 축대의 위에 집을 지은 것이다. 가이드의 말로는 아래 부분의 돌 축대는 잉카 때의 흔적이란다. 그러면서 그는 바위와 바위가 맞닿아있는 곳에 틈이 생기지 않는 것을 증거로 들었다. 그게 바로 잉카의 자랑인 토목기술이라며 만일 빈틈이 있다면 그건 스페인 통치기에 새로 쌓은 것이 분명하다는 것이다.
▼ ‘살아있는 잉카의 마을’ 오얀타이탐보에서는 현재도 페루의 전통과 관습을 간직하며 살고 있는 현지인들을 만날 수 있다. 가이드가 안내해준 민가에서도 그런 풍경들을 만날 수 있었다.
▼ 초가지붕 위에 뭔가가 올라앉아 있다. 토로(Torro)라고 한다. 잉카인들은 결혼을 하거나 새로 이사를 했을 때에는 지붕 위에다 한 쌍의 황소와 암소 조형물을 올려놓는다고 한다. 집을 지켜준다고 믿기 때문이란다.
▼ 사람의 해골과 여러 가지 인형 등 알록달록한 장식물들로 꾸며져 있는 실내로 들어가니 찍찍거리는 요란한 소리가 들린다. 깜짝 놀라 살펴보니 팔뚝보다 조금 작다 싶은 ‘꾸이’들이 바닥에서 뛰어놀고 있는 게 아닌가. 아니 정확히 말하면 모이로 주어진 듯 싶은 풀을 뜯어먹고 있다. ‘꾸이’(Cuy)라는 이름의 쥐란다. 쥐목 고슴도치과에 속하는 동물인 꾸이는 페루가 원산지이며, 돼지같이 통통하다 하여 영문명으로는 '기니피그(Guinea pig)'라 불린다. 우리나라에서도 애완용 동물로 잘 알려져 있는 꾸이를 이곳 원주민들은 고기를 얻기 위해 집단으로 사육해왔단다. 그리고 현재까지도 페루 사람들의 별미 요리로 사용된단다. 그런데 쥐인데도 불구하고 징그럽다거나 무섭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귀엽다는 느낌이 더 강하다. 아마 식용으로 길러진다는 정보가 우리에게는 혐오로 느껴질 수밖에 없는 ‘쥐’라는 이미지를 지워버렸나 보다.
▼ 마을 전체에 시냇물처럼 순환하는 수로(水路) 시설이 잘 정비되어 있다. 잉카문명의 뛰어난 흔적이라 할 수 있겠다.
▼ 뒤편에 계단식으로 만들어진 경작지(耕作地)가 보인다. 가파른 산비탈을 이용하여 건설한 17개의 계단식 경작지라고 한다. 연대기 작가들은 계단식 경작지를 가득 채운 형형색색의 꽃과 거대한 돌로 만든 성벽과 계단이 어떤 곳보다 아름다웠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그렇게나 아름다운 곳을 우린 들러보지 못했다. ‘비라꼬차(Viracha:태양의 신)를 모시는 신전과 공주의 목욕탕, 물건을 저장했던 창고, 방어용 요새 등 오얀따이땀보에 있는 다른 유적들도 마찬가지다. 아쉬운 일이지만 어쩌겠는가. 패키지여행이란 게 본디 빠듯하게 짜여진 일정이 특징이 아니겠는가. 참고로 오얀따이땀보는 잉카 군대가 에스파냐 군대와 전투를 벌여 크게 승리한 곳이기도 하단다. 1536년 잉카 저항의 지도자 ’망코 잉카‘가 이끄는 군대가 쿠스코를 공격한 후 이곳으로 이동하여 피사로가 이끄는 에스파냐 군대와 벌인 전투에서 크게 승리했던 곳이라는 것이다.
▼ 마을을 다 둘러봤으면 이젠 마추픽추로 떠날 차례이다. 광장에서 10분 정도 걸으면 기차역이 나온다. 마추픽추로 가는 방법은 세 가지가 있다고 한다. 첫째는 헬리콥터를 이용하는 방법이다. 하지만 일반인들의 이용은 불가능하다니 일단 빼놓고 보자. 두 번째 방법은 트래킹을 하는 것이다. 주로 대학생 등 각국의 젊은 청년들이 활용한다. 나 같이 나이가 지긋한 사람들에게는 이것 또한 ‘그림의 떡(畵中之餠)’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러면 이제 하나가 남았을 뿐이다. 바로 관광열차를 이용하는 방법이다. 이곳 ‘오얀따이땀보(Ollantaytambo)’까지 와서 관광열차를 타고 ‘마추픽추 역’까지 가는 방법이다. 나뿐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관광객들이 이 방법을 이용한다고 보면 되겠다. 참고로 쿠스코-오얀따이땀보-아구아스 칼리엔테스 구간을 운행하는 철도회사는 두 개가 있다. 잉카레일(Inca Rail)과 페루레일(Peru Rail). 이곳 오얀따이땀보에서 출발하는 기차는 잉카레일이다.
▼ 기념품 가게들이 즐비한 골목을 지나자 ‘오얀따이땀보역’이 나온다. 규모가 크진 않지만 쉼터 등의 시설까지 두루 갖춘 제대로 된 역사(驛舍)이다. 역사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하나같이 마추픽추로 들어가는 열차를 타기 위한 사람들이다. 하긴 마추픽추가 있는 ‘아구아스 칼리엔테스(Aguas Calientes)’까지 가는 교통편이 오로지 기차뿐이라니 어쩌겠는가.
▼ 열차의 내부는 반은 정방향, 반은 역방향으로 배치되어 있다. 물론 지정된 좌석에 앉아야만 한다. 역방향에 앉을 경우 창밖의 풍경을 보는데 어려울 수도 있으니 복불복(福不福)이라 하겠다. 그건 그렇고 아름다운 주변 경관에 빠져들 즈음이면 한 잔의 차와 비스킷(biscuit)이 제공된다. 맛도 괜찮을뿐더러 열차요금에 포함되어 있는 서비스라니 마음 놓고 음미해볼 일이다. 아무튼 차창 밖으로 나타나는 풍경은 아름답기 짝이 없었다. 높은 산과 깊은 계곡 그리고 물살이 센 물길의 파노라마가 끊이지 않고 펼쳐지는 것이다. 누군가 경춘선의 경치와 백담사 계곡의 맑은 물을 합쳐놓은 듯한 분위기라고 했는데 딱 맞는 표현인 것 같다. 다만 백담사에 비해 유속이 빠르고 물빛 또한 탁하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물속에 석회질이 가미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난 이런 풍경을 카메라에 담지 못했다. 조금 더 나은 경치를 기다리다가 깜빡 잠이 들어버렸기 때문이다. 어제 저녁을 뜬눈으로 새웠으니 몰려드는 잠을 어찌 참을 수 있었겠는가.
▼ 1시간 30분 정도의 기차여행이 끝나면 마추픽추의 들머리라 할 수 있는 ‘아구아스 칼리엔테스(Aguas Calientes)’역에 도착한다. 이곳은 마추픽추를 오르기 위한 사람들이 모이는 ‘베이스캠프’다. 오로지 마추픽추만을 위해 존재하는 작은 마을. 지나가는 길손이나 머무는 객(客)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마추픽추를 인연의 끈으로 묶고 있다. 오늘도 그들은 사라진 제국의 흔적을 보기 위해 하늘에 좀 더 가까운 곳으로 오를 것이다. 나 또한 그 가운데 한사람일 테고 말이다.
▼ 물의 도시라 일컬어지는 ‘아구아스 깔이엔테스(Augas Calientes)’는 ‘물(Auga)’과 '뜨겁다(Calientes)'가 합쳐진 ‘온천마을’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한편으론 마추픽추 마을(Machupicchu Pueblo)이라고도 불리는데 1901년 쿠스코 철도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난 정착민촌이란다. 비록 옛 철도부설 및 광산촌의 모습을 여전히 담고 있는 작은 마을에 불과하지만 매년 전 세계에서 1백만 명 이상이 머물다 가는 세계적인 도시이다. 잉카 전성기를 이끌었고 마추픽추를 건설한 것으로 알려지는 파차쿠텍 황제의 동상이 세워져 있고, 마추픽추 비지터센터, 환경청, 전통시장, 기타 잉카문명을 상징하는 조형물들이 마을 곳곳을 장식한다.
▼ 여행자들 사이에는 ‘어디서 무엇을 할지 모를 경우에는 광장으로 가보라’는 금과옥조(金科玉條)가 있다. 그래서 찾은 곳이 마을 중앙에 있는 ‘망코카팍 광장(plaza manco capac)’이다. 광장에 들어서니 추장 한 분이 환영인사를 건네 온다. 잉카의 9대왕인 ‘파차쿠텍 잉카 유팡키(Pachacutec Inca Yupanqui, 1438~1471년)’라고 한다. 그는 부족국가로 남아있던 잉카를 제대로 된 왕국으로 바꾼 왕이었다. 수도 쿠스코의 정비와 함께 제국의 영토 확장에 힘써 수도로부터 약 4000㎞에 달하는 안데스의 영토를 지배하였으며, 당시 인구가 600만 명에 달했다고 한다. 이때 조세제도도 마련되었단다. 특히 케추아어를 공용어로 삼음으로써 실질적인 제국 통일의 기반을 마련했단다. 우리나라의 광개토대왕쯤으로 여기면 되지 않을까 싶다. 아무튼 마추픽추도 그가 건설했을 것이라고 추정하는 학자들이 많다는데, 이곳에 그의 동상을 세워놓은 이유가 아닐까 싶다.
▼ 셔틀버스가 기다리는 곳으로 빠져나오니 또 다른 동상이 기다린다. 이번에는 잉카인들이 신성시 여겼다는 퓨마와 콘돌까지 거느리고 있다. 대단한 위용이지만 누구인지는 모르겠다.
▼ 마을에는 기념품가게와 음식점들이 수없이 많이 들어서 있다. 구경도 할겸 기웃거리다가 마추픽추를 축소해놓은 자그만 기념품 하나쯤 사갖고 돌아가면 어떨까 싶다. 조금은 조잡스럽지만 왔다간 기념은 남겨야하지 않겠는가. 만일 그것도 아니라면 나 같이 시원한 맥주 한 잔으로 갈증을 풀어볼 일이다. 장거리 여행에 지친 심신을 말끔히 치유해 줄 것이다.
▼ 기념품가게들을 들락거리며 상가를 통과하고 나면 셔틀버스(실제 버스보다 더 좋게 나와서 모형을 촬영한 사진을 사용했다)가 기다리고 있다 ‘마추픽추국립공원’에서 운영하는 버스로 관광객들을 마추픽추의 입구가 있는 중턱까지 데려다 준다. 물론 걸어서 올라가는 방법도 있다. 실제로 버스를 타고가다 보면 묵묵히 걸어가고 있는 젊은 트레커(tracker)들이 자주 눈에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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