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지 : 중남미의 멕시코 및 페루
여행일 : ‘18. 4. 23(월) - 5.2(수)
여행지 : 멕시코, 페루. 쿠바(비행기 사정으로 인해 취소)
일 정 :
○ 4.23(월) : 멕시코시티(소깔로광장, 과달루페성당)
○ 4.24(화) : 멕시코시티(테오티우아칸)
○ 4.25(수) : 쿠스코(마추픽추)
○ 4.26(목) : 쿠스코(12각 돌, 쿠스코대성당, 산토도밍고성당)
○ 4.27(금) : 리마(아르마스광장, 사랑의 공원, 라르꼬마르)
○ 4.28(토) : 파라가스(바예스타 섬), 이카(와카치나 사막)
○ 4.29(일) : 나스카(나스카라인)
○ 4.30(월) : 멕시코시티(소우마야 미술관)
여행 첫째 날 : 멕시코시티 과달루페 대성당(Basílica de Guadalupe)
특징 : ‘과달루페(Guadalupe)’는 포르투갈의 파티마, 프랑스의 루르드와 함께 ‘세계 3대 성모발현 성지’이다. 2만 명의 신도가 동시에 미사를 드릴 수 있을 정도로 크다는 것 말고도 교황 바오로 2세가 5차례 이상이나 방문한 곳. 이 지역에서 살던 농부의 푸른 외투에서 성모의 형상이 나타나 성지로 여겨지고 있는 성당. 성모가 피부가 까맣고 원주민 모습을 했다고 해서 이단아로 취급받던 가톨릭 성지 등으로 세상에 알려졌다. 과달루페 성당의 탄생 이야기는 153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기독교로 개종한 후안 디에고(Juan Diego)라는 인디언 농부에게 성모 마리아(Virgin Mary)가 나타나 테페약(Tepeyac) 언덕에 교회를 지으라고 말한다. 자신은 농부에 불과하므로 그런 힘이 없다고 하자, 성모 마리아는 그에게 능력을 부여하겠다는 말을 남기고 사라진다. 디에고는 이런 이야기를 주교에게 찾아가 여러 번 말했으나, 주교는 그의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디에고가 걸친 망토 위에 마치 기적과도 같이 성모 마리아의 모습이 선명하게 나타난다. 주교가 엎드려 경배 드렸음은 물론이다. 현재 디에고가 입었다는 망토는 과달루페 성당 벽에 걸려있으며 참배객들은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가면서 구경할 수 있다. 이 성모상은 얼굴이 유럽인이 아니라 인디언을 닮았다는 것과, 디에고라는 인디언에게 성모 마리아가 나타났다는 점이 부각되면서 인디언들이 기독교로 개종하는 데 크나큰 역할을 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1737년에는 ‘성모 마리아’가 멕시코의 수호성인(patron saint)이 되었고, 라틴 아메리카의 천상 수호성인으로 인정받았다. ‘후안 디에고’도 2002년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성인으로 인정되었다. 오늘날 이 일대는 성스러운 곳으로 인식되어 하루에 수천 명이 찾아오고 축제일인 12월12일에는 수십만 명이 이곳을 찾는다고 한다. 이 성당이 수많은 기적을 불러 일으켰다는 소문 때문이란다.
▼ 성모 마리아는 스페인인들이 멕시코를 점령한 이후인 1531년에 발현했다. 이 성당의 뒤편에 있는 떼뻬약 (Tepeyac) 언덕에 갈색 피부 빛을 한 채로이다. 백인이 아니고 갈색 피부를 한 성모마리아가 현현한 거다. 이 사건 이후 7년 동안 (1531-38년) 약 800만 원주민이 가톨릭으로 개종 했다고 하니 성모의 발현은 가톨릭 이라는 종교를 멕시코에 확실하게 뿌리내리게 한 결정적 이유가 된거다. 그걸 기념하기 위해 뒷동산에 첫 성당을 세웠고, 이후 하나씩 늘어나 현재는 무리를 이룰 정도로 많아졌다. 멕시코 가톨릭의 영원한 성지로 자리 잡았다는 증거일 것이다.
▼ 또 다른 각도에서 바라본 ‘과달루페 성당’이다. ‘올드 과다루페’의 뒤편에 도톰하게 솟아오른 게 ‘떼뻬약 언덕’이고 그 위에는 1553년에 지은 ‘성모 출현 성당’이 서있다. ‘과달루페 성모(Nuestra Señora de Guadalupe 혹은 Virgen de Guadalupe)’에 대해 한걸음 더 나가보자. ‘과달루페 성모’는 멕시코 가톨릭을 대표하는 이미지이자 멕시코를 대표하는 상징물로, 16세기에 발현했다는 멕시코의 성모마리아를 일컫는 호칭이다. 멕시코 인디오를 닮은 구릿빛 피부의 과달루페 성모는, 멕시코 독립 운동 시기 미겔 이달고(Miguel Hidalgo)와 멕시코 혁명시기 에밀리아노 사파타(Emiliano Zapata) 군대의 깃발에 그려지는 등, ‘멕시코의 어머니’를 상징하는 인물로써 가톨릭 신자뿐만 아니라 전 멕시코 국민에게 상징적인 존재로 인식된다. 멕시코 대표 소설가이자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옥타비오 파스(Octavio Paz)’의 ‘멕시코 국민들의 정신적 요람과 국민적 행운의 대상으로써 유일무이한 지위’라는 기록이나 또 다른 국민 소설가 ‘카를로스 푸엔테스(Carlos Fuentes)’의 ‘기독교 신자 여부를 막론하고 과달루페 성모를 믿지 않는다면 진정한 멕시코 인이라고 할 수 없다’는 표현이 이를 증명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2002년에는 로마교황청이 중남미의 대표 가톨릭 성지로 공표하였고, 매년 12월12일 과달루페 성모 축일에는 무릎으로 기어서 성당을 오르는 행렬이 이어진다고 한다.
▼ 경내로 들어서면 교황 ‘요한 바오로 2세(Johannes Paulus II)’의 동상이 참배객들을 반긴다. ‘과달루페의 성모’와의 깊은 인연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것이란다. 그는 이탈리아를 벗어난 첫 번째 사목 방문지로 과달루페를 선택했다고 한다. 그리고 1990년 5월 6일 ‘후안 디에고’의 시복(諡福)을 시작으로 1992년에는 바티칸에 있는 성 베드로 대성전 지하에 과달루페의 성모 경당을 지어 축성했다. 1999년에는 아메리카 주교회의의 요청을 받아들여 과달루페의 성모 축일을 아메리카 대륙 교회 전체의 전례 축일로 지정하였으며, 다음 날에 과달루페의 성모 대성당을 다시 방문하였다. 2002년 7월 31일, 그는 1천 2백만 명의 군중이 모인 가운데 ‘후안 디에고’의 시성식을 거행하였으며, 다음 해에 성 후안 디에고(12월 9일)와 과달루페의 성모(12월 12일)를 로마 전례의 전례력에 기재했다. 그가 얼마만큼 극진히 ‘과달루페의 성모’를 챙겼는지를 알려주는 일정들이라 하겠다.
▼ 마당에 서면 고색창연한 두 개의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왼쪽은 성모가 발현한 한참 뒤인 1709 년 세워진 ‘추리게레스코(Churrigueresco)’ 양식의 과달루페 원 본당이다. 에스파냐에서 나타난 바로크 말기의 건축양식으로, 추리게라가(家:Churriguera family)와 그 제자인 ‘P.리베라, N.토메’에 의해 확립되었다. 곡선, 회화, 조각 등을 많이 사용한 과잉 장식이 특징이다. 그 오른편에 보이는 붉은 돔의 건물은 ‘주교좌성당(主敎座聖堂)’이다.
▼ ‘올드 바실리카(old basilica, 원래 본당)’와 ‘주교좌성당’ 사이의 틈이 일정하지 않아 보인다. 1709년에 완공된 ‘올드 바실리카’가 지반 침하로 인해 기울어졌기 때문이란다. 이로 인해 근처에 1974년부터 2년에 걸쳐 새로운 본당, 즉 ‘뉴 바실리카’를 현대적인 모습으로 세웠다. 과달루페의 동정녀 마리아상의 원화는 현재 뉴 바실리카에 보관되어 있다.
▼ 2002년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에 이해 시성이 된 ‘후안 디에고’의 망토에 나타난 성모의 모습과 장미가 새겨진 조형물이 성당 구내에 세워져 있다.
▼ 두 성당을 왼편에 끼고 돌아보기로 한다. 자그만 성당과 조형물들이 곳곳에 들어서 있어 잠깐의 눈 돌릴 틈조차 주지 않는다. 조금 더 시간이 주어졌더라면 가슴에 담아 둘 그 뭔가를 조금 더 살펴볼 수 있었으련만 주어진 시간에 쫓겨 발걸음을 서두르는 게 안타깝다. 아니 건축기법이나 예술에는 문외한인데다 스페인어까지 모르는 나에겐 ‘낫 놓고 기역자’일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 언덕 위에 최초로 성당이 지어진 이래 언덕 주변에는 작은 성당들이 하나씩 늘어나기 시작했다. ‘포시토사원((templo del pocito)’도 그중의 하나란다. 별 모양의 창틀과 밝은 색의 타일로 장식된 돔(dome) 형식의 지붕이 돋보이는 건축물이다.
▼ 포시토사원을 지나면 널따란 쉼터가 나오는데, 수많은 사람들이 분수대 앞으로 몰려들어 사진을 찍느라 분주한 풍경이다. 분수대에 세워진 조형물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멕시코인들이란다. 원주민인 인디오들이 가톨릭으로 개종하고 성모님께 경배하는 모습이 실제의 크기로 만들어져 있기 때문이다.
▼ ’후안 디에고‘가 성모 마리아를 만났다는 언덕으로 올라간다. 최초로 지어졌다는 성당을 둘러보기 위해서이다. 정성들여 가꾸어놓은 아름다운 길을 따르다보면 여러 종류의 조형물들을 만나게 된다. 꽃으로 장식된 성모 마리아상이 보이는가 하면, 범선의 날개부분을 세워 놓기도 했다. 오르는 높이가 상당하다 보니 길가에는 벤치까지 놓아두었다. 쉬엄쉬엄 올라가라는 배려일 것이다.
▼ 마침내 용을 무찌른 ‘미카엘 천사상(San Miguel)’이 지키는 떼뻬약(Tepeyac) 언덕에 도착한다. 이곳에는 작은 예배당이 지어져 있다. 누군가는 1660년에 지어진 ‘세리토 예배당(Capilla del Cerrito)’이라고 했는데 맞는지는 모르겠다. 그는 또 ‘크리스토발 데 아귀레’와 ‘테레사 펠레그리나’가 세웠다고 했다. 1531년 12월 ‘후안 디에고’라는 인디언 개종자에게 동정녀 마리아가 2번 나타나 교회를 세우라고 명령했다는 그 장소라면서 말이다. 다른 한편으로 1553년에 지은 ‘성모발현성당(Basilica de Nuestra Senora de Guadalupe)’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으니 참고해 두자.
▼ 성모가 발현했다는 떼뻬약(Tepeyac)은 원래 아스텍 여신 ’또난친(Tonantzin, 신의 어머니)‘을 모시던 곳이라고 한다. 원주민의 성지가 가톨릭의 성지로 바뀌게 된 셈이다. 그래선지 가톨릭의 성모신앙과 아스텍의 지모신앙이 덧 입혀져 ’과달루페 성모‘를 숭배하는 ’과달루페노‘가 탄생 하게 되었다는 설도 있으니 참조한다. 외래 종교가 현지에 정착하는 과정에서 일정부분 토착화 현상은 겪을 수밖에 없는 현실이지 싶다.
▼ 성당의 앞은 뛰어난 전망대이다. 우뚝 솟아 있는 성당의 꼭대기에는 종탑이 있고 그 위에 피뢰침을 등에 업은 십자가가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마치 인간과 신을 연결하는 중개자처럼 서 있다. 성당의 뒤에는 멕시코시티의 시가지가 끝도 없이 펼쳐진다.
▼ 성당의 내부는 온통 ’과달루페 성모‘ 일색이다. 중앙 제단은 물론이고 벽화들까지도 대부분 성모의 그림으로 채워져 있다. 성모를 위해 세웠으니 뭐라고 할까마는 예수님이 너무 축소된 것 같아 약간은 어색한 감마저 든다.
▼ 이젠 본당으로 내려가야 할 차례이다. 아까와는 다른 방향으로 난 계단을 따라 아래로 내려간다. 이 계단은 성모에 기도하려고 전국에서 몰려오는 신자들이 무릎을 꿇고 오르는 코스로도 유명하다. 특히 ’과달루페 성모 축일‘인 12월12일(성모 마리아가 후안 디에고 앞에 나타난 날)에는 무릎으로 기어오르는 사람들로 가득 찬다고 한다. 바닥이 돌로 되어 있어 잘못 했다가는 무릎이 까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성모님이 도움이 있어 그럴 리야 없겠지만 말이다.
▼ 머리에 왕관을 쓰고 손에는 십자가를 든 사제가 지구를 밟고 섰다. 기독교 신자가 아닌 사람들 입장에서는 광오(狂傲)하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겠다.
▼ 과달루페 성당 안으로 들어간다. ‘그리스도 왕의 속죄 교회 (Templo Expiatorio a Cristo Rey)’로도 불린다는 ‘올드 바실리카(old basilica)’ 즉 원래의 본당이다. 1709년에 완성되었다고 한다. 안전을 위해 미사 등 공식적인 행사는 하지 않으며 참배객들만 받아들이고 있단다.
▼ 금박을 입힌 내부시설이 화려하기 짝이 없다. 특히 사방에 걸려있는 그림들이 눈길을 끈다. 인디오들의 개종(Conversion de los indios), 2월의 첫번째 기적(Primer milagro Diciembre) 등 과달루페 성모가 발현한 시대상이 그려진 그림들이 많이 보인다. 후안 디에고의 망토(tilma)에 그려진 성모화를 놓고 토론을 벌이고 있는 성직자들을 그린 그림도 걸려있다. 성모발현의 인정 여부를 놓고 그만큼 말이 많았다는 증거일 것이다.
▼ 마지막으로 들어갈 곳은 새로 지어진 본당이다. 올드 바실리카가 붕괴될 위험에 처하자 1974년부터 2년에 걸쳐 새로 지었다는데 천막 모양으로 된 대성당의 외관 중앙에는 ’¿No estoy yo aqui que soy tu MADRE?‘라는 글귀가 쓰여 있다. ’너의 어머니인 내가 여기 있지 않느냐?‘라는 뜻이란다. ‘국립 인류학 박물관’을 설계한 ‘페드로 라미레스 바스케스(Pedro Ramirez Vasquez)’가 설계했는데, 한꺼번에 20,000만 명을 수용할 수 있을 정도로 큰 건물이란다.
▼ 성당 안에서는 미사가 거행되고 있다. 매일 매일이 같은 풍경이라고 한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30분 단위로 계속해서 미사가 열린단다. 하긴 바티칸의 바실리카(basilica) 다음으로 많은 신도들이 방문하는 순례지(巡禮地)라는데 이 정도 규모에 이 정도는 바쁘게 돌려야 하지 않겠는가.
▼ 새 본당의 제단 뒤편으로 돌아가자 평지 에스컬레이터가 나타난다. 왼편에 걸려있는 그림, 즉 1531년 발현한 ‘과달루페 성모’, 즉 ’후안 디에고(우리말로 요한 야고보)‘라는 이름으로 영세를 받은 멕시코 원주민 ‘콰우틀라또아친(Cuauhtlatoatzin, 말하는 독도리라는 의미)‘의 망토(tilma)에 새겨져 나타났다는 그 ’성모화‘를 수월하게 볼 수 있도록 만든 시설이다. 아무튼 이 망토(tilma)는 480여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전혀 삭지 않고 깨끗하게 보존되어 있다. 덕분에 수많은 순례객들이 디에고에게 발현하셨던 성모님의 모습을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다.
▼ 그런데 벽에 걸린 성모 마리아의 얼굴이 조금 묘하다. 늘상 보아오던 유럽인이 아니라 남미 인디언 비슷하게 생긴 것이다. 멕시코 국민들은 그런 외모와 함께 인디언에게 나타난 사실을 중시하고 있단다. 그래서 여느 ‘성모마리아’와 구별하여 ‘과달루페의 성모’라고 부른다, 아무튼 이 성모화(聖母畵)는 현대과학으로도 풀 수 없는 신비를 간직하고 있단다. 1979년 적외선을 이용해 형상을 조사한 미국 과학자들은 ‘사람의 손으로 그린 그림이 아니다. 칠감이나 붓질의 흔적이 전혀 없다.’라는 결론을 내렸다. 특히 과학자들은 성모 마리아의 눈을 우주광학 기술로 2,500배 확대해 보는 순간 소스라치게 놀랐다고 한다. 홍채와 동공에 동일 인물들이 비쳤기 때문이다. 후안 디에고가 틸마를 펼쳤던 순간과 몇몇 인디언 가족들이 보였다는 것이다. 과학자들은 그 결과를 ‘성모 마리아의 눈은 즉석 사진기처럼 눈앞의 형상을 그대로 포착했다.’라고 밝혔다. 또한 이 그림은 476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지만 성모화의 섬유조직과 형태, 색감에는 아직도 변함이 없다고 한다.
▼ 성당에는 성물(聖物)을 파는 매점이 들어서있다. 길거리에서 판매하는 ‘과달루페 성모상’이나 성모화(聖母畵)를 믿지 못하겠다면 이곳에서 구입해 둘 일이다. 조금은 비싸겠지만 말이다. 그건 그렇고 판매대에 진열되어 있는 성물들이 대부분 과달루페 성모와 관련이 있다. 멕시코에 오면 예수의 상은 별로 안 보이고 오나가나 성모뿐이라고 하더니 그 말이 맞았나 보다.
▼ 밖으로 나오니 신부님 앞에 꽤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다. 성당 안에서 구입한 성물(聖物)에 축성을 받으려는 신자들인 모양이다. 저런 풍경이 멕시코의 본모습이 아닐까 싶다. 아무튼 과달루페 성모발현 후 아즈텍인들은 대부분 가톨릭으로 개종했고, 현재의 멕시코는 인구 1억2,000여만 명 가운데 1억의 신도를 갖고 있는 가톨릭국가이기도 하다. 이쯤에서 머리가 혼란해져야 정상이지 싶다. 원주민과 그들의 신앙을 몰살시키는데 정신적 지주가 됐던 가톨릭은 이들에게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 너른 광장의 한쪽 귀퉁이에는 시계탑 역할을 하고 있는 거대한 십자가가 세워져 있다. 잉카문명과 스페인양식이 혼합되었다는 설명인데 내 얄팍한 상식으로는 감이 잡히지 않는다.
▼ 십자가의 가로세로가 교차되는 지점의 바로 아래에 작은 공간이 만들어져 있다. 인형극을 펼치기 위한 공간인데, 성모 마리아가 나타난 광경을 인형들이 움직이면서 재현한다. 그 스토리가 궁금했지만 시간이 없어 끝까지는 보지 못했다.
▼ 성당 울타리 쪽에는 대형의 십자가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다. ‘십자가의 길’을 새겨놓지 않았나 싶다.
▼ 투어를 끝내고 밖으로 빠져나온다. 이 지역은 멕시코시티의 대표적인 관광지 가운데 하나이다. 때문에 출입구 주변에는 성지(聖地)와 관련된 기념품 외에도 멕시코의 토산품들을 판매하는 상점들이 즐비하다. 하긴 이 일대가 온전히 성지처럼 취급되고 있다니 오죽하겠는가. 그로인해 멕시코 시골에서는 마을 주민 전체가 과달루페 성당을 순례하기 위해 걸어서 오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또 어떤 사람들은 고통을 통한 신앙훈련의 하나로 성당 근처에서부터 무릎걸음으로 기어오기도 한단다.
♧ 에필로그(epilogue) : ‘과달루페의 성모’는 MBC-TV의 인기 예능프로그램 중의 하나인 '신기한 TV 서프라이즈'에서도 소개된 바 있다. 2016년 8월에 방영된 방송에서는 큰 키와 금발, 흰 피부인 보통의 ‘성모화(聖母畵)’와는 달리 멕시코 원주민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것과 멕시코 원주민의 망토에 그려졌다는 점, 그리고 액자에 넣어진 채로 보관되어 있는 사연에 대한 내용을 소개하면서 ‘과달루페 성모’를 모신 이후에 생긴 기적들, 그리고 멕시코 원주민들의 천주교 개종을 위해 조작되었다는 의혹에 대한 실험결과 등을 재현시켰다. 논란이 계속되자 교황청은 미국 항공우주국 나사에 조사를 의뢰했고, 연구를 맡은 ‘필립 칼라한’과 ‘조디 스미스’이 적외선 투시를 이용해 성모화를 정밀 조사를 실시했는데, 과달루페의 성모화가 사람이 그린 게 아니라고 결론이 난 것이다. 성모화에서는 어떠한 붓질의 흔적도 없었고, 물감으로 사용된 도료 역시 학계에 보고되지 않은 것이었기 때문이란다. 과학적인 기술로도 밝혀내기 불가능한 신비로운 그림이라는 게 '신비한 TV 서프라이즈'가 내린 결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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