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지 : 중남미의 멕시코 및 페루

 

여행일 : ‘18. 4. 23() - 5.2()

여행지 : 멕시코, 페루. 쿠바(비행기 사정으로 인해 취소)

 

일 정 :

4.23() : 멕시코시티(소깔로광장, 과달루페성당)

4.24() : 멕시코시티(테오티우아칸)

4.25() : 쿠스코(마추피추)

4.26() : 쿠스코(12각 돌, 쿠스코대성당, 산토도밍고성당)

4.27() : 리마(아르마스광장, 사랑의 공원, 라르꼬마르)

4.28() : 파라가스(바예스타 섬), 이(와카치나 사막)

4.29() : 나스카(나스카라인)

4.30() : 멕시코시티(소우마야 미술관)

 

여행 둘째 날 : 신들의 도시 테오티우아칸(Teotihuacan)

 

특징 : 아메리카대륙에서 발굴된 피라미드 유적 중 가장 규모가 큰 테오티우아칸은 멕시코시티로부터 40외곽에 자리하고 있다. 1987년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 유산으로 지정된 이곳은 인간이 신이 되는 장소로 알려져 신들의 도시라고도 불린다. 기원전 300년 전부터 지어지기 시작한 테오티우아칸은 기원후 150년 경 태양의 피라미드, 기원후 500년 경 달의 피라미드가 건설됨으로써 태양과 달의 신화의 무대가 되는 곳이기도 하다. 대표적 볼거리로는 태양의 피라미드, 달의 피라미드, 께쌀꼬아뜰 신전, 께쌀빠빨로뜰 궁전(Palacio de Quetzalpapalotl), 유적 박물관, 죽은 자의 길 등이 있다. 참고로 나중에 이곳을 발견한 아스텍인들은 테오티우아칸을 신들의 고향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래서 아스텍 우주관의 중심인 태양과 달의 신화의 무대로 이곳을 삼았던 거란다. 아스텍과 마야, 잉카 문명이 산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인신 공양을 행했던 것이 바로 이 테오티우아칸의 영향이라고 보면 되겠다. 당시 이곳은 콘스탄티노플에 맞먹을 정도로 큰 도시였다고 전해진다. 인구가 20만에 육박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큰 도시가 갑자기 사라져버렸다고 한다. 기원전 2세기부터 시작해서 350년에서 650년 사이에 크게 번성했고 이렇게 거대하고 웅장한 피라미드를 만든 문명이 7세기경에 갑작스럽게 쇠퇴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져버린 것이다. 그래서 이들이 어디서 왔고 어떻게 살았으며 어떻게 멸망하게 되었는지 알 수가 없단다.

 

 

 

죽은 자와 신이 만나는 영험한 도시이자 융성했던 고대도시로 연결되는 길목은 멕시코시티에 기대 사는 서민들의 동네가 아득하게 펼쳐져 있다. 2000만 명이 거주한다는 세계 최대 도시의 외곽을 달동네들이 산자락과 능선을 빼곡히 채우고 있는 것이다. 주로 메스티조들이 살면서 매일 수백 만 명의 사람들이 도심(都心)으로 출퇴근을 한단다.

 

 

 

 

멕시코시티를 출발한지 1시간쯤 지나자 테오티우아칸(Teotihuacan)에 이른다. 이곳의 피라미드들은 생명의 근원이라고 믿었던 태양숭배 신앙의 성스러운 제단(祭壇)이었다. 그러나 산사람의 가슴을 갈라 뛰는 심장을 꺼내고 인육을 먹었던 참담한 제사(祭祀)의 현장이기도 했다. 그런 광신적인 믿음은 킨토솔이라는 인디오의 전설에서 연유되었다고 전해진다. 네 번째 태양이 테오티우아칸을 비추다 사라지자 신들에게 경배드리던 인간도 몰사(沒死)됐다. 절망에 빠진 신들이 이곳에 모여 상의한 끝에 그중 두 신이 각각 태양과 달의 신이 되었다. 그러면서 태양의 신이 태양의 운행을 위해 인간의 피를 요구했다. 태양이 다시 떠오르지 않는 날 멸망할 것이라고 믿었던 테오티우아칸 사람들은 태양이 다시 떠오르길 빌며 피라미드 앞에서 제사를 올렸다. ‘피의 제전’. 그것이 정기적으로 이 피라미드 정상에서 펼쳐졌다. 이 잔인한 의식은 1521년 스페인 정복자들이 테노치티틀란(Tenochtitlan, 현 멕시코시티)’에 당도했을 때도 계속 됐다고 한다. 고도의 수학과 천문학을 바탕으로 정확한 태양력을 사용했던 그들이 이 잔인한 의식 때문에 미개한 야만인으로 몰렸고, 끝내는 멸망하고 만다.

 

 

 

 

이 지역은 멕시코시티의 대표적인 관광지 가운데 하나이다. 이런 좋은 기회를 놓치기가 아까우기라도 했던지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기념품 가게들이 줄줄이 늘어서 있다. 하지만 아직 문은 열려있지 않은 상태이다. 그만큼 우리가 일찍 도착했다는 얘기일 것이다. 덕분에 호객행위에 시달리지 않고도 곧바로 관람에 들어갈 수 있었다.

 

 

첫 번째 방문지는 출입구 근처의 허물어진 유적지 건물군이다. ‘나비의 궁전이라는 이름이 붙은 께쌀빠빨로뜰 궁전(Palacio de Quetzalpapalotl)’인데 테오티우아칸의 여러 유적지 가운데 가장 세련되고 아름다운 벽화와 조각으로 장식된 건축물이란다.

 

 

피라미드들과는 달리 이곳 께쌀빠빨로뜰(Quetzalpapalotl)’은 기둥과 지붕을 갖춘 방과 마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문가들이 궁전(宮殿)과 신전(神殿)으로 사용되었을 것이라고 추정하는 이유이다. 지금은 지붕의 대부분이 없어졌지만 견고하게 지어진 벽들은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벽은 대부분 큰 돌과 작은 돌을 함께 이용해 쌓았다. 문양(紋樣)을 넣기 위한 것으로 보이지만 보다 더 견고하게 쌓으려는 아이디어 일 수도 있겠다. 사이가 뜰 수밖에 없는 큰 돌들의 사이사이에 작은 돌들을 넣어 빈틈을 없앨 경우 훨씬 더 견고한 건물이 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벽의 하단에 재규어(jaguar)가 프레스코화(Fresco : 덜 마른 석회벽에 수용성 그림물감으로 그리는 기법)로 그려져 있다. 인신공희(人身供犧)로 바쳐진 인간의 심장을 먹고 있는 재규어를 그렸다는데 특이하게도 머리에 깃털이 달려 있다. 재규어(jaguar)는 고대 중미 사람들이 가장 숭배하던 동물이었다고 한다.

 

 

중앙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에 살던 고대 사람들은 자신들의 삶을 기록으로 남길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들에게는 문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 대신 독특한 그림과 조각으로 자신들의 문화와 생활상을 표현했다. 그 대표적인 유적지가 바로 이곳 테오티우아칸이며 이외에도 내일쯤 들르게 될 잉카문명의 유적인 마추픽추와 쿠스코 등이 있다고 한다. 이들에게는 또 다른 공통점이 있단다. 이렇게 훌륭한 문화를 갖고 있었으면서도 어느 날 갑자기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안쪽의 기둥 벽에 나비의 몸통을 한 께찰(Quetzal)’이 새겨져 있어 나비의 궁전으로도 불린다고 한다. ‘께찰이란 중앙아메리카에서 서식하는 꼬리가 긴 초록색 새()로 아즈텍과 마야문명에서 신성하게 여겨진다. 그런 문화는 지금까지도 이어진다고 한다. 특히 과테말라에서는 국조인 동시에 화폐단위로도 이용된다.

 

 

 

 

 

 

 

물속에 있는 재규어를 그린 벽화도 보인다. 그밖에도 깃털이 달린 고동등 다양한 동물들이 그려져 있는데 색상이 약간 바래기는 했지만 원래의 색깔을 아직까지도 잘 간직하고 있다. 이를 보존하기 위한 노력도 엿보인다. 플래시를 터뜨리지 말라는 경고판이다.

 

 

 

 

다음은 달의 피라미드(Piramide de la luna)’이다. ‘께쌀빠빨로뜰의 바로 이웃에 위치하고 있다. 테오티우아칸(Teotihuacan)의 북단(北端)에 있는 달의 피라미드는 밑변의 길이가 146m, 높이가 46m4층 구조물로 100만톤 이상의 흙과 돌이 쓰였다고 한다. 기원후 500년경에 건설되었다고 알려진 이 피라미드는 인간의 심장과 피를 바쳤던 곳, 즉 인신공희(人身供犧)가 있었던 곳으로 추측된다. 당시 인신공희를 위해 기다리는 사람의 줄이 끝이 없었다고 하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희생되었는지 감히 상상하기 힘들다. 이런 사람을 죽여 제물로 바치는 일은 16세기까지 천년이 넘는 세월동안 지속되어 오다가 스페인의 지배를 받은 후에야 없어지게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 인명 경시행위는 스페인 사람들에 의해 이어졌다고 하니 아이러니(irony)가 아닐 수 없다. 재미삼아 호박 찌르듯이 인디언들을 찔러보기까지 했다는 것이다. 사람의 목숨을 개미 새끼 목숨만도 못하게 생각했던 그네들의 업보(業報)가 아니었을까?

 

 

달의 피라미드는 태양의 피라미드 보다 조금 낮다. 하지만 눈대중으로는 거의 비슷하게 보인다. 태양의 피라미드보다 조금 더 높은 곳에 지어졌기 때문이란다. 아무튼 테오티우아칸의 전체적인 조망은 달의 피라미드의 꼭대기가 가장 뛰어나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올라갈 수가 없단다. 얼마 전 관광객이 떨어져 목숨을 잃은 뒤부터는 통행을 금지시켰단다.

 

 

 

 

달의 피라미드는 여러 제단(祭壇)과 작은 피라미드들로 둘러싸여 있다. 그중 정면에 위치한 제단에 올라가보는 선에서 만족하기로 한다. 가이드의 발걸음은 이미 태양의 피라미드로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달의 피라미드는 경사가 심해 위험할 수도 있으니 대신 태양의 피라미드를 올라가보는 것으로 만족하라면서 말이다. 달의 피라미드 위에서 바라보는 죽은 자의 길에 대한 조망이 일품이라고 하던데 아쉬운 일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패키지여행의 가장 큰 단점이 보고 싶은 것을 모두 다 볼 수가 없다는 게 아니겠는가. 대신 편하고 싸게 돌아보고 있는 중이니 이쯤에서 만족해보기로 하자.

 

 

달의 피라미드 정면으로 곧게 뻗어나간 길이 죽은 자의 길이다. 이를 중심으로 좌우에 작은 신전들이 늘어서 있다. 이들은 믿기 어려울 정도로 완벽하게 대칭을 이루고 있다. 제단에라도 올라온 게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눈앞에 펼쳐지는 모든 형태와 규모에 탄성이 절로 나온다.

 

 

죽은 자의 길(La Calle de los Muertos)’은 인신공희(人身供犧)의 길이다. 인신공희로 뽑힌 사람들의 의전(儀典)의 길로서 그들이 이 길을 걸어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길의 폭은 40m, 길이가 5.5에 이르나 현재 발굴되어 사람이 다닐 수 있는 길이는 2.5정도라고 한다. 당시 인신공희로 바쳐질 사람들을 뽑을 때는 가장 용감한 사람을 뽑았는데, 경기를 해서 이긴 사람을 뽑는 방법이 사용되었다고 전해진다. 이때 많은 젊은이들이 제물로 선택받기 위해 최선을 다해 경기에 임했는데, 이는 인신공희로 뽑혀지는 것을 최고의 영예로 생각했기 때문이란다.

 

 

태양이 작열하는 날에 죽은 자의 마음으로 죽음을 기다리는 길을 걸어본다. 그러다 문득 맥없이 걷기만 한다는 게 마땅찮아 거리 좌우에 있는 유적들의 위로 올라본다. 테오티우아칸(Teotihuacan)에서 가장 높다는 태양의 피라미드가 한눈에 쏙 들어오는 것은 물론이고, 주변의 다른 유적들도 빠짐없이 시야에 잡힌다.

 

 

 

 

 

 

 

신에게 바칠 인간 제물이 오가던 성스러운 길을 요즘은 산 자들이 거닌다. 이 길은 달의 피라미드와 태양의 피라미드 등 다양한 건물들을 연결하는 중추적인 역할을 한다. 테오티우아칸(Teotihuacan)을 이루는 모든 건축물들이 죽은 자의 거리로 합해지는 것이다. 아무튼 양쪽에 늘어선 신전과 주택 등 석조 구조물들이 고대도시의 완연한 모습을 추측하게 해준다.

 

 

 

얼마쯤 걸었을까 왼편으로 테오티우아칸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인 태양의 피라미드(Pirámide del Sol)’가 나타난다. 세계에서 세 번째로 높은 이 피라미드는 겉보기에는 4단으로 보이지만 실제는 6단 구조라고 한다. 높이 63m에 가로세로 222mx225m의 규모인데 꼭대기에 신전이 있었던 흔적이 발견된 것으로 보아 처음 지어졌을 당시에는 높이가 74m가량 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단다. 대단한 건축물이 아닐 수 없다. 이쯤에서 알고 넘어가야 할 것이 하나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세상에서 가장 큰 피라미드가 이집트에 있을 것이라고 여기지만 사실은 멕시코에 있다고 한다. ‘촐룰라 (Cholula) 피라미드가 바로 그것인데 쁘에블라(Puebla) 서쪽 10지점에 있다고 한다. 기단 폭()450m에 높이가 65m에 이를 정도여서 이집트 체오프스(Cheops) 피라미드를 능가한다고 한다. 하지만 스페인 점령군에 의해 파괴되고 꼭대기에 교회가 세워져 지금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라 그저 낮은 산봉우리 정도로만 여겨진단다.

 

 

! 이곳 멕시코의 피라미드는 이집트의 피라미드와 확연히 다른 용도를 갖고 있다는 걸 깜빡 잊을 뻔했다. 이집트의 피라미드는 왕의 무덤으로 만들어졌지만 이곳 멕시코의 피라미드는 신을 모시는 장소로 쓰이던 제단(祭壇)으로 사용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세계에서 가장 큰 제단으로 보면 되겠다.

 

 

태양의 피라미드는 특별한 현상을 보이기도 한단다. 춘분과 추분 때면 정상 중심부에 태양이 떨어진다고 한다. 한 낮이 되면 태양이 태양의 피라미드의 바로 위로 오게 되고, 피라미드 서쪽면의 아랫단에 완벽한 직선 그림자가 드리워지면서 태양의 그림자와 피라미드 그림자의 길이가 66.6초 동안 같아진다고 한다. 때문에 매년 춘분과 추분 때에는 이런 현상을 보기 위한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든단다. ()를 받기 위해서일 것이다.

 

 

피라미드 계단을 오른다. ‘걷다 보면 올라가겠지하는 각오로 시작했다. 세계 방방곡곡에서 찾아온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함께 오른다. 다들 가쁜 숨을 몰아쉬는 걸 보면 국적과 인종을 불문하고 힘들기는 매한가지인가 보다. 아무튼 여행자들은 뙤약볕과 고산지대의 가쁜 호흡을 기꺼이 끌어안고 태양의 피라미드 정상까지 도전한다. 피라미드 위로 오르는 행위가 허용되는 것도 낯설고, 남녀노소 예외 없이 그 계단을 오르는 행렬도 장관이다.

 

 

 

 

버거울 정도로 가파른 구간도 있다. 고소공포증이라도 있는 사람들은 공포까지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가파르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다. 계단의 중간에다 밧줄난간을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무섭다거나 힘이 부칠 경우에는 붙잡고 오르라는 배려일 것이다.

 

 

 

 

올라가면서 바닥을 자세히 살펴보면, 크기가 각각 다른 돌을 쌓고 그 사이에 회반죽을 발라 놓았음을 알 수 있다. 철기 문명이 아니어서 오로지 돌로 돌을 다듬어 쌓아올려 이 피라미드를 만드는 데는 수많은 사람들의 땀과 눈물이 요구되었을 것이다. 전문가들에 계산으로는 이 피라미드를 짓는데 하루에 3천 명이 동원되었다고 해도 최소 30년은 족히 걸렸을 것이라고 한다. 다른 특징도 보인다. 피라미드 경사면에 삐죽이 나온 돌들이 이채롭다. 겉에 발랐던 회반죽이 미끄러지지 않도록 지지대 역할을 한 것이 아닐까 싶다.

 

 

 

 

 

 

 

숨이 턱에 차오를 즈음에야 252계단은 끝이 난다. 정상에 올라선 것이다. 정상은 제단으로 사용되어서인지 평평하게 되어 있다. 옛날 이곳에는 신전(神殿)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파괴되어 없어진지 오래고 지금은 이곳을 한 바퀴 돌면서 사방을 바라보는 전망대 역할을 할 뿐이다. 아무튼 신전이 있어서인지 이곳에서 소원을 빌면 이루어 준다는 전설이 전해진다고 한다.

 

 

꼭대기에서의 조망은 일품이다. 고대도시 테오티우아칸의 흔적 너머로는 광활한 고원(高原)이 펼쳐진다. 저 멀리 사람들이 거주하는 마을이 장난감 집처럼 펼쳐져 있다. 더 멀리 눈을 들어보면 반쯤 안개에 가려 아련히 산과 나무가 마치 동양화처럼 펼쳐져 있다.

 

 

 

 

남쪽에도 피라미드가 보인다. 테오티우아칸에서 세 번째로 큰 피라미드인 께찰코아틀 신전(Templo de Quetzalcoatl)’일 것이다. 아메리카의 여러 고대문명들이 성스러운 동물로 여기던 깃털달린 뱀을 모시던 의식을 행하던 공간이다. 깃털달린 뱀의 머리 조각상이 신전(神殿)의 벽에 장식되어 있다고 한다. ‘께찰코아틀은 뱀 몸통에 비늘 대신 께찰(Quetzal)의 깃털을 두르고 있다. 도마뱀의 몸통에 날개가 달린 동양의 용과 같은 개념으로 보면 되지 않을까 싶다. 아무튼 께찰코아들은 바람을 일으키고 비를 내리는 신으로 농경사회에서는 풍요로 받아들이며 숭배의 대상이 되었다. 그나저나 난 저곳에 가보지를 못했다. 주어진 시간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주변의 유적지들이 빠짐없이 시야에 잡힌다. 테오티우아칸은 건설 초기부터 완벽한 구상 하에 정교하고 치밀하게 계획하였으며, 종교적인 상징성이 강하게 부각되어 있다. 그 계획의 중심은 도시 전체를 관통하는 넓은 길이다. ‘죽은 자의 길이라고 불리는 이 길 좌우로 많은 석조 구조물, 피라미드와 사원, 광장, 주택 등이 건설되었고 그 끝에 사람의 심장과 피를 바쳤던 달의 피라미드가 우뚝 서 있다. 또 다른 분석도 있다. ‘케찰코아를 태양으로 하고 태양의 피라미드는 토성과 목성, ‘달의 피라미드는 천왕성, 그리고 죽은 자의 길은 은하수를 나타낸다고 한다. 오늘날의 태양계를 중심으로 한 행성의 위치와 같단다.

 

 

북쪽으로는 달의 피라미드가 나타난다. 이곳을 발굴한 고고학자들은 이 기념물의 건축 연대를 AD 150년에서 300년으로 본다. 이집트의 피라미드에 비하면 조족지혈이지만 그 규모는 훨씬 더 크다. 하지만 거의 40년 동안을 발굴 작업에 종사했던 고고학자는 이렇게 말했단다. ‘우리는 테오티우아칸 사람들이 어떤 언어를 사용했으며 그들이 어디로부터 왔는지, 혹은 그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해 여전히 알지 못한다.’ 세월 속에 묻혀버린 역사라 할 수 있겠다.

 

 

 

 

 

관람을 마치고 밖으로 빠져나오니 길가 곳곳에 선인장들이 늘어서 있다. 선인장은 역시 멕시코를 대표하는 식물인가 보다. 사방에 버려지다시피 널려있는 걸 보면 말이다. 쏘깔로 광장에서 거론했던 바와 같이 멕시코 하면 데킬라와 용설란과 함께 떠오르는 단어가 애니깽이 아닐까 싶다. 100여 년 전 이곳으로 끌려와 노예나 다름없이 살아야 했던 우리네 선조와 그 후예들을 이르는 말이다. 그들이 끌려갔던 곳이 선박용 밧줄을 만드는데 쓰이는 선인장을 재배하는 '에네켄(Henequen) 농장'이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길가의 선인장들마저 허투루 볼 수 없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