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지 : 북부 유럽 여행
여행일 : ‘17. 6. 19(월) - 7.1(토)
여행지 : 러시아(모스크바, 페테르부르크), 에스토니아(탈린). 핀란드(헬싱키), 스웨덴(스톡홀름), 노르웨이(오슬로, 발드레스플라야, 요정의 길, 게이랑에르 피오르드, 뵈이야 빙하, 베르겐, 하당에르 피오르드, 하당에르비다국립공원, 덴마크(코펜하겐)
일 정 : 6.29(목) : 뉘하운 운하, 아멜리엔보그성·크리스티안보그성, 시청사, 게피온 분수
여행 열째 날 : 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
특징 : ① 덴마크(Kingdom of Denmark) : 북유럽의 유틀란트반도와 씨일랜드(Zealand) 등 500여 개의 부속 도서로 구성되었으며, 그린란드(Greenland)와 패로(Faroe)제도는 덴마크의 자치령이다. 종족은 북게르만계 노르만족의 한 분파인 데인족(Dane)이며, 언어는 덴마크어가 공용어이다. 종교는 바이킹시대는 다신교적 신앙형태였으나 9세기경 기독교가 전래되었으며, 1936년 복음주의루터교가 국교로 지정되어 전체 국민의 88%가 믿고 있다. 덴마크는 9세기경 독립 국가를 이루어 13~14세기에는 북유럽 전역을 지배하는 대국이었으나, 1523년 스웨덴이 독립해 나가고, 1814년 나폴레옹전쟁에서의 패전으로 노르웨이를 잃으면서 약화되었다. 1864년에는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군에 패하면서 국토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지역을 잃었다. 권력구조는 입헌군주제이다. 1448년에 창시된 올덴부르크 왕조가 1849년 6월 절대왕정 폐지 및 의회 신설을 골자로 하는 자유헌법을 제정하면서 권력구조가 바뀌었다. 국제적으로 중립을 표방했으나 2차 세계대전시 독일군의 침공 이후 이를 포기하고 1949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가맹, 1973년에는 유럽공동체(EU, 유로화는 쓰지 않는다)에 가입했다. 우리나라와의 관계는 대한제국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902년 7월 대한제국 전권대신 유기환(兪箕煥)과 덴마크 전권대신 파블로우(巴禹路厚) 사이에 한정수호통상조약(韓丁修好通商條約) 및 부속통상장정이 조인되었다. 이는 대한제국이 외국과 맺은 마지막 수호조약이다. 1905년 을사조약이 맺어지면서 외교권이 박탈되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수교기간이 3년에 불과했지만 덴마크 정부의 기술 지원에 의해 우리나라 최초의 전화가설이 이루어지는 등 경제교류에 이바지한 바가 크다. 1959년의 공사급 외교부 설치, 1966년 명예총영사관 개설 등의 과정을 거쳐 1972년에는 상주대사관이 설치되었다.
② 코펜하겐(Copenhagen) : 셸란섬의 북동 해안에 있는 무역항으로 1043년에는 하운(Havn) 또는 하프니아(Hafnia:항구)라는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다. 1167년에 최초의 성채가 축조된 뒤에 발전하여 13세기 중엽에는 수륙 교통의 요지를 차지하는 지리적 조건으로 쾨벤하운(去來港)이라 불리었다. 13~16세기에 한자동맹의 공격을 받기도 하였으나, 1422년 도시권을 획득하였고, 1443년 이후 덴마크의 수도가 되었다. 1658∼1659년 스웨덴의 공격을 받았으며, 나폴레옹 시대에는 1801년과 1807년, H.파커와 H.넬슨이 이끄는 영국함대의 포격을 받기도 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도 독일군의 지배를 받았다. 시내에는 녹지가 많으며, 유서 깊은 건물들이 많아 아름다운 도시로 꼽힌다. 아말리엔보그 왕궁의 북쪽에는 별 모양으로 해자(垓子)를 두른 성채가 있고, 그 해안에 안데르센의 동화로 유명한 인어상이 있다. 대안에 있는 스웨덴의 말뫼 사이에는 철도 연락선이 오간다.
▼ 코펜하겐의 투어는 ‘크리스티안보그 궁전(Christiansborg Palace)’으로부터 시작된다. 1167년 코펜하겐의 창설자 ‘압살론(Absalon) 주교’가 세운 성채(城砦)가 시초로, 1560년 ‘프레데릭 2세(Frederik II, 1559~88 재위)’가 옛 성채가 있던 자리에다 짓기 시작해서 그의 아들 크리스티안 4세 때(1620년)에 완공되었다. 독일 르네상스 양식을 띠고 있는 이 궁정은 18세기 말까지 왕실의 거처로 사용되어오다가 1794년의 화재로 왕실은 ‘아말리엔보그 궁전(Amalienborg Palace)’으로 옮겨가게 된다. 1828년에 새로운 궁전이 지어졌지만 ‘플레데릭 6세(Frederik VI, 1808~14 재위)는 이곳으로 돌아오지 않고 별장처럼 사용했다고 한다. 이후 또 다시 화재를 입었던 것을 1907년부터 21년에 걸쳐 복원해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
▼ 궁전의 안에는 덴마크 수상의 집무실 외에도 국회와 대법원이 한꺼번에 들어있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행정부와 입법부, 사법부 등 3권(三權)이 한 공간에 집결되어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공간의 일부는 덴마크 왕실의 리셉션 룸과 예배당 등으로 사용되고 있다. 안으로 들어가는 출입구의 상단에는 네 개의 얼굴을 조각해 놓았다. 턱을 괴고 괴로워하는 모습, 귀를 기울이는 모습, 머리를 쥐어뜯는 모습, 가슴을 움켜쥐는 모습 등이 새겨져 있는데, 이는 국회의원이 된 자는 국민의 말에 귀 기울이고 국민의 고통을 덜어주는 일에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라는 의미라고 한다. 우리나라의 국회의사당에도 하나쯤 만들어두면 어떨까 싶다. 하긴 그런다고 해서 따를 사람들도 아니겠지만 말이다.
▼ 안쪽 뜰에서 생소한 풍경 하나가 여행객들을 맞는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자전거들이 늘어서 있는 것이다. 국회의원들이 타고 온 것이라는데, 이 나라의 국회의원들은 절대 자동차를 타고 출근을 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란다. ’자전거를 타고 와서 국정을 논한다?‘ 이 얼마나 검소한 삶인가. 거기다 봉사정신(정문 위의 인물상)까지 더해졌으니 맨날 싸움질만 하고 있는 국회를 바라봐야만 하는 우리네 현실로서는 마냥 부러울 따름이다.
▼ 궁전 앞 광장에는 프레데릭 7세(Frederik VII, 1848~63 재위)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1848년 왕위에 오른 그는 덴마크의 마지막 절대군주이며 재위 중에는 덴마크 의회(兩院) 설립에 관한 헌법을 승인(1849)하여 입헌군주제가 되도록 하였다. 전제주의의 포기, 성격 등을 이유로 최근의 왕 중 덴마크에서 가장 사랑받는 왕이 되었다. 술을 즐기고 괴팍하였지만, 격의 없으면서도 기품있게 보이는 재주를 가지고 있었다. 덴마크 전국을 수시로 여행하며 일반인들과 교류하였으며, 그의 모토는 '민중의 사랑은 나의 힘'이었다.
▼ 궁전의 맞은편에는 ’홀멘스교회(Church of Holmens, Holmens Kirke)‘가 위치하고 있다. 그 오른편에 뾰쪽하게 솟아오른 것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증권거래소로 알려진 옛(舊) 증권거래소(Børsen, The Stock Exchange)의 첨탑(尖塔)이다. 코펜하겐을 경제적으로 힘이 있는 대도시로 만들고자 했던 ’크리스티안 4세(Christian IV. 1588~1648 재위)‘의 지시로 1619년에 지어지기 시작했으며, 1640년에 완공되었다. 네덜란드 르네상스 양식으로 건축되었으며, 네 마리 용의 꼬리가 서로 꼬여 올라간 모양의 첨탑으로 유명하다. 높이가 56m에 이르는 이 첨탑은 ’루드비히 하이드리터(Ludwig Heidritter)‘가 제작했으며 코펜하겐의 상징으로 꼽히기도 한다. 길게 뻗어 있는 건물의 전체 길이는 127m 이며, 건물의 지붕과 벽면은 아름답고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다. 1745년과 1855년에 보수, 재건되었고 1974년까지 증권 거래소로 사용되었다.
▼ ’홀멘스교회(Church of Holmens)‘는 현 국왕인 ’마르그레테 2세(Margrethe II, 재위 1972~)‘ 여왕의 결혼식이 열렸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1967년에 거행되었던 이 세기의 결혼식은 사랑을 지키기 위해 종교까지 바꾸어야 했던 ’사랑이야기‘가 더 흥미를 끈다. 당시 덴마크의 차기 군주였던 ’마그레트 공주‘의 결혼 상대인 ’앙리 드 라보레 드 몽페자 백작(Comte Henri de Laborde de Monpezat)‘이 ’로마 가톨릭‘을 버리고 덴마크의 국교인 ’복음주의 루터교‘로 개종(改宗)을 했기 때문이다. 참고로 ’프레데릭(Frederik Andre Henrik Christian) 왕세자‘의 세례식도 이곳에서 행해졌었다.
▼ 다음 방문지는 ’게피온 분수(Gefion springvandet)이다. ‘아말리엔보그 궁전(Amalienborg Slot)’에서 대략 500m쯤 떨어진 곳에 위치한 게피온 분수는 북유럽 신화에 등장하는 여신이 황소 4마리를 채찍질 하는 역동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 게피온 분수대는 1908년 칼스버그 재단이 정부에 기증한 것으로 1908년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사망한 덴마크 선원들을 추모하기 위해서 만들어 졌다고 한다. 덴마크 조각가 ‘안데스 분드가르드 (Anders Bundgard)’가 디자인했는데, 이곳 코펜하겐이 위치한 질랜드(Zealand) 섬의 탄생 신화와 연관이 있다고 한다.
▼ 질랜드(Zealand) 탄생 신화에 따르면 스웨덴 왕은 밤에 이 지역을 경작할 수 있도록 여신, 세피온에게 약속을 하였다고 한다. 여신은 그녀의 네 아들을 황소로 변하게 한 뒤, 땅을 파서 스웨덴과 덴마크 핀(Fyn) 섬 사이를 흐르는 바다에 던져 질랜드 섬을 만들었다. 그때 파헤쳐진 스웨덴 땅은 지금의 베네렌(Vanern)호수로 변하였으며, 호수의 모양이 질랜드와 비슷하다고 전해지고 있다. 권력에 대한 집착은 동서고금(東西古今)을 막론하고 같았나 보다. 신(神)까지도 사랑하는 자식을 짐승으로 변하게 했을 정도이니 인간이야 오죽하겠는가. 욕 얻어먹기에 바쁜 요즘의 정치인들을 너무 나무랄 일도 아닐 것 같다.
▼ 분수의 옆에는 ‘세인트 알반 교회(St. Alban's Kirke, St. Alban's Anglican Church)’가 자리 잡고 있다. 1887년에 지어진 영국 성공회의 교회당이다. 교회의 이름은 영국의 첫 순교자인 ‘알반 성인(St. Alban)’에서 따왔다. 35년간의 고생 끝에 완성되었는데 건축비용은 전액 교인들의 모금으로 충당되었단다. 신고딕양식(초기 영국스타일)으로 지어진 이 교회는 높은 종탑과 흰 석회암 타일, 좁은 아치형 창문, 그리고 예쁜 스테인드글라스가 특징이라 할 수 있다.
▼ 분수의 근처는 공원(公園)으로 가꾸어져 있다. 울창한 숲과 호수, 그리고 잘 다듬어진 잔디가 화보에서나 보았음직한 예쁜 풍경으로 나타난다. 눈앞에 펼쳐지는 그림 같은 풍경화나. 그 그림 속을 거니는 사람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모두가 여유로워 보인다. 누군가 이곳 코펜하겐 사람들이 언급한다는 몇 개의 단어들을 나열한 적이 있었다. 가족, 자연, 오늘 그리고 행복이다. 너무 당연해서 자주 잊고 사는 그것들을 오늘은 꼭 챙겨봐야겠다. 참고로 ‘세인트 알반 교회’가 있는 인근은 ‘처칠공원’으로 불리기도 한다. 하지만 이곳까지 포함되는지는 모르겠다.
▼ 분수의 뒤편은 항구다. 대형 크루즈선박이 입항하는 곳으로 평소에도 많은 관광객들로 붐비는 곳이다. 하지만 오늘은 텅 비어있다. 그래서 게피온분수가 붐비지 않았던 모양이다.
▼ 코펜하겐 시청사로 가는 길에 잠시 ‘코펜하겐대학교’(University of Copenhagen, Københavns Universitet)‘에 들른다. 겨우 외관만 눈에 담을 수 있었지만 말이다. 코펜하겐대학은 1479년 ‘크리스티안 1세(재위 1448∼1481)’가 교황 ‘식스토 4세’의 제안을 받아들임으로서 설립된 이래 북유럽 지역의 고등교육 및 학술연구 부문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해오고 있다. 덴마크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이자 가장 규모가 큰 대학이며, 유럽에서 연구를 선도하는 명문대학 가운데 하나로 손꼽힌다. 현재 8개 학부에 100개 이상의 학과 및 연구소가 있다. 대학은 4개의 캠퍼스로 나뉘어져 있는데, 지금 지나가고 있는 이곳은 그 가운데 중앙캠퍼스이다.
▼ 건물의 앞에는 높다란 좌대(座臺)를 여럿 만들고 그 위에다 흉상(胸像)을 올려놓았다. 이 대학에서 8명의 노벨상 수상자들을 배출했다고 하더니 그들의 흉상이 아닐까 싶다. 수상자 가운데 대표적인 인물로는 ‘닐스 뤼베르 핀센(1903, 의학)’과 ‘닐스 보어(1922, 물리학)’, ‘오게 보어(1975, 물리학)’, ‘닐스 카이 예르네(1984, 의학)’ 등을 꼽을 수 있다.
▼ 잠시 후 ‘시청 광장(City Hall Square, Copenhagen)에 이른다. 코펜하겐 시내 중심부, 코펜하겐 시청사의 앞에 있는 광장이다. 29.300 m²에 이르는 널따란 광장은 시에서 주관하는 다양한 공식 행사와 축제, 시민들의 시위와 집회 장소로 사용된다. 이 광장은 코펜하겐과 다른 지역의 거리를 측정할 때 기준점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광장을 에워싼 대부분의 건물들에는 전광판과 네온사인 간판이 설치되어 있어 화려한 야경을 자랑하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또한 광장은 아름답고 유서 깊은 여러 건축물로 둘러싸여 있다. 1905년에 완공된 시청사는 물론이고, 덴마크의 유력 일간지 가운데 하나인 ’폴리티켄스 후스(Plitikens Hus)‘의 본사 건물도 이 광장에 있다. 1905년에 지어진 이 건물의 전면 상단에는 뉴스를 알리는 전광판이 설치되어 있다. 1902년에 지어졌으며 세계적인 음악가 ’야콥 가데(Jacob Gade)‘가 연주했던 장소로도 유명한 ’브리스톨 호텔(Hotel Bristol)‘ 건물과 1985년에 문화재로 지정된 ’팔라스 호텔(Palace Hotel)‘ 등도 있다.
▼ ‘코펜하겐 시청사(Copenhagen City Hall, København Rådhuset))’는 1892년 짓기 시작해 1905년에 완공된 붉은 벽돌의 중세풍 건물로, 내·외부가 정교한 조각으로 장식되어 있다. 정면 입구에 있는 상은 코펜하겐의 창설자인 압살론 주교이고, 청사 내부에는 100년에 1천분의 1초밖에 오차가 생기지 않는다는 ‘옌슨 올센’의 천문시계가 있으며 15분마다 시간을 알려주는 105.6m 높이의 시계탑에서는 코펜하겐 시내의 전망을 감상할 수 있다. 코펜하겐 역사상 여섯 번째로 지어진 점을 인정받아 1981년에 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청사 견학은 가이드 투어로만 가능하다.
▼ 시청사로 접근하는 길가에는 이곳 덴마크가 낳은 세계적인 동화작가 ‘안데르센(Andersen | Hans Christian Andersen, 1805-1875)‘의 동상(銅像)이 세워져 있다. 1961년에 제작된 이 동상은 어딘가 허공을 쳐다보며 앉아있다. 그가 바라보고 있는 곳은 평소 그가 자주 찾던 ’티볼리 공원(Tivoli Gardens)‘이다. 1805년 덴마크의 오덴세에서 태어난 그는 가난에서 벗어나고자 15세 때 코펜하겐으로 상경하여 배우가 되려했으나 피나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목적을 이룰 수 없었다. 몇 번인가 절망의 늪에 빠졌지만, 당시 유망한 정치가이자 안데르센의 평생 은인이었던 ’요나스 콜린(Jonas Collin)‘의 도움으로 슬라겔세와 헬싱고르의 라틴어 학교에서 공부하고, 마침내 코펜하겐의 대학을 졸업하였다. 1835년 발표한 ’즉흥시인(Improvisatoren)‘이 독일에서 호평을 받으면서 그의 문명은 유럽 전체에 퍼지기 시작했으며, 같은 해에 내놓은 최초의 ’동화집‘은 동화작가로서의 생애의 출발점이 되었다. 이후 인어공주, 벌거벗은 임금님, 미운오리새끼, 성냥팔이 소녀 등 130여 편의 주옥같은 동화들을 발표했는데, 백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전 세계 어린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안데르센 동화의 특징은 서정적인 정서와 아름다운 환상의 세계, 그리고 따스한 휴머니즘에 있다.
▼ 광장에는 1904년에 만들어졌다는 청동과 화강암으로 된 '용의 분수(Dragespringvandet)’가 한쪽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다. 의외의 풍경이라는 생각이 든다. 용이라고 하면 선뜻 동양을 떠올리는 게 보통이기 때문이다. 그나마 우리네 용(龍)과 많이 다르게 생겼다는 것이 그 낯설음을 조금은 완화시켜준다.
▼ 시청사 맞은편에는 1938년에 지어진 ‘리치 빌딩(Richshuset)’이 있다. ’THAI‘라는 글자가 적힌 건물이다. 이 건물의 꼭대기 탑(塔)에는 날씨를 알려주는 것으로 유명한 소녀상(少女像)이 들어 있다. 금색으로 만들어진 이 소녀상은 맑은 날씨에는 자전거를 타고, 비가 올 때는 강아지와 함께 우산을 쓰고 나타난다. 그런데 오늘은 자전거를 타고 있는 걸로 보아 날씨가 맑을 모양이다. 배에서 내릴 때만 해도 비가 내렸었는데 다행이 아닐 수 없다. 그 아래의 벽면에 수은주처럼 생긴 조형물도 만들어 놓았는데 설마 진품은 아니겠지?
▼ ‘아멜리엔보그 궁전(Amalienborg Palace)’은 1794년 크리스티안보그 궁의 화재 때 ‘프레데릭 5세’가 사들인 이후 현재 국왕인 ‘마그레테 2세’ 여왕까지 무려 223여 년이나 덴마크 왕족의 거주지가 되어왔다. 원래는 네 귀족가문이 쓰던 별장이었는데, 크리스티안스보그 성이 불타면서 왕가에서 이를 사들인 것이란다. 궁전은 네 개의 똑같이 생긴 건물들이 광장을 둘러싸고 있는 듯한 모양새이다. 이 건물들에 왕실 가족들이 거주하고 있으며, 현재는 겨울철에만 사용한다고 해서 ‘겨울궁전’이라는 별칭으로도 불린다. 이 궁전들은 크리스티안 7세와 8세의 궁전만 일반 대중에게 공개된다고 한다.
▼ 궁전은 프레데릭 5세의 기마상을 기준으로 8각 형태의 광장으로 형성되어 있으며, 이 광장을 로코코풍의 건축물 네 채가 둘러싸고 있는 모양새이다. 건물들은 크리스티안 7세 궁전((Christian VII's Palæ, eller Moltkes Palæ, 몰케 궁전), 크리스티안 8세 궁전 (Christian VIII's Palæ, eller Levetzaus Palæ, 레베차우 궁전), 프레데릭 8세 궁전(Frederik VIII's Palæ, eller Brockdorffs Palæ, 브록도르프 궁전), 크리스티안 9세 궁전(Christian IX's Palæ, 샤크 궁전) 등의 각기 다른 이름을 갖고 있는데, 균형 잡힌 덴마크 사회답게 건물도 안정적이고 균형 있게 지어졌다. 그리고 전혀 사치스럽거나 화려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검소함이 생활에 배어 있는 덴마크의 전체적인 특징이 아닐까 싶다.
▼ 프레데릭스 5세 기마상을 배경으로, 뒤에 보이는 웅장한 건축물은 ‘프레데릭스 교회(Frederiks Kirke)’이다. ‘프레데릭 5세(Frederik V)’ 때 지어졌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여졌다. 또한 노르웨이 산 대리석으로 100년에 걸쳐 지었다고 해서 ‘대리석교회(Marmorkirken)’라고도 불린다. 교회는 로코코 양식으로 지어졌으며 돔의 높이는 31m이다. 이는 스칸디나비아 반도에서 가장 큰 돔이라고 한다.
▼ 네 개의 건물들은 각기 국기봉을 갖고 있다. 그런데 국기를 내걸어놓은 건물은 하나도 없다. 왕족이 궁전에 머무르고 있을 때에만 건물에 덴마크 국기가 게양된다니 왕족들 모두가 집을 비웠다는 의미일 것이다. 참고로 ‘덴마크 왕실(Danish Monarchy)’은 10세기 초에 유틀란트 반도 북부지역에 흩어져 살고 있던 여러 바이킹 부족들을 규합한 노왕(the Old/老王) 고름(Gorm)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이어서 1042~1447년의 에스트리스(Estrith) 왕가와 1448~1862년의 올덴부르그(Oldenburg) 왕가를 거쳐 1863년부터 시작된 슐레스비히 홀슈타인 쇠너보르그 글뤽스부르그(Glucksburg) 왕가가 현재까지 이어져 유럽의 여러 왕가 중 가장 오랜 왕통을 기록하고 있다. 현 국왕은 1972년에 즉위한 마르그레테 2세(Margrethe Ⅱ) 여왕이다. 1967년 앙리 백작과 결혼하여 슬하에 장남 프레데리크와 차남 요아킴 등 2남을 두었으며, 아멜리엔보그 궁전에 거주한다. 참고로 덴마크 국왕은 헌법상 입법권과 행정권을 보유하고 있으나 실제로 입법권은 의회에, 행정권은 내각에 속함으로써 국왕은 상징적 존재에 머문다.
▼ 짙은 갈색의 초소는 여전하지만 그 앞에 서있어야 할 근위병(近衛兵)은 보이지 않는다. 왕족들이 집을 비우면 그들에게도 휴식이 주어지는 모양이다. 그 덕분에 아멜리안보그 궁전의 또 다른 볼거리라는 근위병의 교대식은 구경할 수 없었다. 하긴 매일 정오에 이루어진다니 시간도 맞추지를 못했다.
▼ 광장에는 ‘프레데릭 5세(Frederik V, 1746-1766)의 기마상이 세워져 있다. 경건주의(敬虔主義, Pietism)의 영향으로 인해 보수적이었던 아버지와는 달리 비교적 자유로운 통치를 했던 왕이다. 그러나 첫 번째 왕비인 루이세가 죽고 난 뒤 국정을 소홀히 하게 되자. 아담 고틀로브 몰트케(Adam Gottlob Moltke), 요한 하르트비 에른스트 폰 베른스토르프(Johann Hartwig Ernst von Bernstorff), 하인리히 카를 폰 심멜만(Heinrich Carl von Schimmelmann)과 같은 유능한 각료들이 국정을 대신했다. 아무튼 재위기간에 7년전쟁(1756~63)에서 덴마크의 중립을 유지한 결과 대외무역이 증진되었고, 러시아와의 전쟁위기(1762)를 가까스로 넘겼으며, 1757년 농업위원회를 설치하면서부터 영농기술 분야의 정부주도 개혁을 단행했다. 전체적으로 무능한 국왕으로 평가되지만 이 궁전으로 이사 온 첫 국왕이라는 인연으로 광장의 한가운데까지 차지하고 있는 모양이다.
▼ 아멜리엔보그궁전 맞은편 강 건너에는 ’오페라 하우스(Copenhagen Opera House)가 위용을 뽐내며 화려한 자태를 보여준다. 1,700석 규모의 이 현대적 건물은 덴마크의 건축가 ‘Henning Larsen’가 설계를 맡았다. 이 지역 출신의 선박업체가 코펜하겐 시에게 기부한 것인데, 완성하는데 무려 미화 5억 달러 가까운 비용이 들었다고 알려진다. 오페라하우스의 현대적인 디자인은 건축 애호가들로부터 호평을 받는다고 한다. 바다를 향하고 있는 둥근 유리벽과 직각의 석조 벽면이 철제 지붕을 이고 있는 구조로, 건물의 어느 한 면도 동일하게 설계되지 않았다고 한다. 건물은 21세기 초 유럽을 지배하던 경제적 낙관주의를 보여주는데, 천장은 금박 105,000장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바닥은 스모크 오크로 제작되었단다.
▼ 부촌들이 즐비한 해안을 잠시 따르면 코펜하겐을 상징하는 작은 ‘인어상(A Statue of the little mermaid)’을 만날 수 있다. 코펜하겐을 찾는 모든 관광객들이 꼭 들르는 관광 명소인데 안데르센 동화에 등장하는 인어공주에서 동기를 얻었으며, 덴마크 유명 발레리나를 모델로 하여 만들어졌다고 전해진다. 칼스버그 맥주 창업주의 아들인 ‘칼 야곱센(Carl Jacobsen)’이 조각가 ‘에드바르 에릭센(Eadvard Eriksen)’에게 제작을 의뢰하여 얼굴은 프리마돈나 ‘엘렌 프라이스’, 몸매는 작가의 부인을 모델로 했다. 80㎝ 정도 밖에 되지 않는 작은 크기로 만들어졌다.
▼ 이 작은 청동상은 응답받지 못한 슬픈 사랑에 얽힌 덴마크 동화의 주인공을 그리고 있다. 어느 나이 어린 인어가 자신이 사랑하는 왕자와 함께 육지에서 살기 위해 마녀에게 목소리를 주는 대신 다리를 얻게 되었다. 왕자가 다른 공주와 결혼하게 되자, 인어는 왕자를 죽여야 마법에서 풀려나고 바다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왕자를 죽이지 않았다고 한다. 슬프면서도 아름다운 내용이다. 이 이야기는 1800년대 코펜하겐에서 살던 세계적인 동화작가 ‘한스 안데르센’의 작품 ‘인어공주’에 나온다. 덴마크를 방문하기 전에 한번쯤 원작을 읽어보고 가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아닐까 싶다. 참고로 이 동상은 한때 목이 잘려 세계를 깜짝 놀라게 만들기도 했다. 당시 범인은 거짓으로 가득 찬 기성 미술계에 항의하기 위해 저지른 일이었다는 괴변을 늘어놓기도 했다. 다행히도 머리 부분은 한 달 만에 원래 위치로 돌아와 다시 관광객들을 반기고 있다.
▼ 인어공주 주변 해안에는 ‘Svend Rathsack’의 작품이라는 ‘천사 상’이 세워져 있다. 해군 수병(水兵) 전사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만든 것이란다.
▼ 코펜하겐에서의 마지막 일정은 ‘뉘하운 운하’ 유람선 투어이다. 투어는 뉘하운(Nyhavn)‘에서 유람선을 타면서 시작된다. ‘새로운 항구(new harbor)’라는 의미의 뉘하운은 1673년 완성된 인공(人工) 항구이다. 1670년부터 1673년까지 덴마크의 ‘크리스티안 5세’ 국왕에 의해 건설되었으며 1658년부터 1660년까지 일어난 덴마크-스웨덴 전쟁에서 잡힌 스웨덴 출신 전쟁 포로들의 노동력이 활용되었다. 뉘하운은 ‘콩엔스 뉘토르브 광장(Kongens Nytorv)’과 바다를 연결하는 관문 역할을 수행했으며 수많은 화물선들과 어선들이 이곳에 기항했다. 또한 맥주, 어부, 매춘으로 악명 높았던 곳이기도 하다. 부두로 사용되고 있는 수로(水路)에는 수많은 요트와 유람선이 오간다. 참고로 투어는 뉘하운항구에서 시작해 오페라하우스를 지나 인어공주상이 있는 곳까지 갔다가 크리스티안보그 성이 있는 슬로츠홀멘 섬을 돌아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는 코스로 운영된다.
▼ 매표소 앞에는 커다란 닻(anchor)이 놓여있다. 이곳이 항구임을 알려주려는 의도일 것이다.
▼ 뉘하운은 운하를 앞에 두고 서있는 예쁜 색깔의 오래된 건물들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광경이 볼 만하다. 운하 남쪽에는 18세기의 고풍스런 건물들이 즐비하고, 북쪽에는 네모난 창이 많이 달린 파스텔 색조의 건물이 화려하게 이어진다. 과거 선원들이 휴식을 즐기던 술집 거리였으나 현재는 야외 테라스를 갖춘 세련된 레스토랑이 즐비하다. 그리고 관광객은 물론 현지인들로 언제나 붐빈다.
▼ 아래사진은 코펜하겐에서 가장 작은 아파트가 있는 건물이라고 해서 올려봤다. 코너의 건물과 그 다음 건물의 사이에 있는데, 두 건물을 연결시켜 놓은 듯한 모양새이다. 얼핏 보아서는 통로로 보이지만 가이드의 설명으로는 분명한 아파트란다.
▼ 뉘하운은 ‘안데르센Andersen, Hans Christian’이 사랑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1845년부터 1864년까지 이곳에 거주했는데, 가난했던 그는 비싼 방세 때문에 세 번이나 이사를 다녀야만 했다고 한다. 그가 살던 집은 18번지와 20번지 그리고 68번지인데, 아래 사진은 그 가운데 하나인 20번지이다.
▼ 너른 곳으로 빠져나오자 외벽이 유리로 된 ‘왕립극장(Royal Danish Playhouse)’이 나타난다. 그런데 중세의 느낌이 강한 ‘왕립(王立)’이란 단어에 어울리지 않게 건물은 완전 현대식이다. 옳은 얘기다. 사실 왕립극장의 본관은 코펜하겐 중심부의 ‘콘겐스 뉘트로브(Kongens Nytorv) 광장’에 위치하고 있다. 건물 또한 1874년에 지어졌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중세풍의 외관을 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결과적으로 지금 눈앞에 보이는 저 건물은 2008년에 개관한 ‘연극 전용극장’이라는 얘기이다. 연극 공연뿐만 아니라 강연회나 소규모 콘서트 등 다양한 행사가 열리는데, 3층으로 이루어진 객석에는 모두 950명의 관객을 수용할 수 있다고 한다. 참고로 ‘덴마크 왕립극장’은 1748년에 왕실을 위한 극장으로 설립되었다가 후에 국립극장으로 변경되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발레단인 덴마크 왕립 발레단과 1448년에 설립된 왕립 오케스트라, 오페라단이 왕립극장에 소속되어 있다. 현재 덴마크 왕립 극장은 덴마크 문화부에서 직접 관리하고 있다.
▼ 아까 아멜리엔보그궁전에서 보았던 오페라하우스이다. 덴마크에서 규모가 가장 큰 오페라하우스로, 1천 5백석 규모의 대극장과 200석 규모의 소극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위의 ‘국립극장’과 더불어 ‘덴마크 왕립극장’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고 보면 되겠다.
▼ 고급 주택들이 들어서 있는 지역에는 개인용 ’도크(dock)‘로 보이는 시설들을 보유하고 있다. 건물들 사이로 물길을 연결하여 주거지와 선착장을 최대한으로 가깝게 했다. 이 지역에서는 가지런히 정박되어 있는 자그만 요트들을 흔하게 볼 수 있다. 소득이 높은 나라이다 보니 저 비싼 요트가 없이 사는 나라의 자동차쯤으로 여겨지는가 보다.
▼ ‘Holmen 해군기지’에는 군함 몇 척이 정박해있다 1400년대 덴마크의 해군 영웅인 ‘Peder Skram’의 이름을 딴 박물관이 있는 곳이다. 아래 사진은 일부러 군함을 피해 찍었다.
▼ 유람선 투어 중에 다시 한 번 ‘인어공주’를 만난다. 이번에는 그녀의 뒷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관광명소답게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주변에 몰려있다. 이왕에 말이 나온 김에 유럽을 여행하는 사람들 사이에 떠도는 우스갯소리를 하나 전해볼까 한다. 저 ‘인어공주 동상’이 브뤼셀의 ‘오줌싸개 동상’, 그리고 독일의 ‘로렐라이의 언덕’과 함께 ‘유럽의 3대 썰렁 명소’로 꼽힌다는 얘기이다. 그런 수모에도 불구하고 저 작은 공주님은 ‘랑엘리니(Langelinie)’의 바위 위에 꿋꿋하게 앉아 있다. 그래서 ‘작은 고추가 맵다’라는 말이 생겨났나 보다.
▼ 이번엔 아멜리엔보그 궁전이다.
▼ 또 다시 운하로 들어간다. 뉘하운보다 색감은 조금 뒤떨어지지만 예쁜 요트들이 쭉 늘어서 있는 게 아까와는 또 다른 느낌을 준다. 한마디로 아름답다는 얘기이다. 그 말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가이드의 멘트가 뒤따른다. 부지런히 카페라 셔터를 눌러대란다. 감탄할만한 사진이 찍힐 거라면서 말이다.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경을 행여나 놓칠 새라 다들 손놀림이 바빠진다.
▼ 카메라를 들이댈 준비를 하고 있으라는 가이드의 귀띔이다. 눈 깜작할 새에 지나가버리기 때문에 미리 대비해야만 사진촬영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 건물을 놓칠 경우 두고두고 후회하게 될 거라는 겁까지 곁들이는 게 아닌가. 그 정체는 코펜하겐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로 알려진 ‘구세주교회(Vor Freslers Kirke)’이다. 1696년 ‘크리스티안 4세’에 의해 고딕 양식으로 지어졌는데, 설계는 건축가 ‘Lambert van Haven’가 맡았다. 이 교회는 천사가 조각된 정교한 바로크양식의 제단과 파이프오르간도 눈길을 끌지만, 그보다 더 인상적인 것은 95m의 나선형 첨탑이다.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이 교회탑을 설계한 이는 다 지어지고 나서야 내부의 나선형 계단을 거꾸로 설계한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탑의 바깥으로 빙 둘러 꼭대기에 이르도록 설계된 이 계단은 고소공포증이 있는 이들에게는 경계의 대상으로 알려지고 있다. 참고로 이 계단은 '쥘 베른(Jules Verne, 1828-1905)'의 소설 ‘지구속 여행’에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주인공 엑셀이 현기증을 치료하기 위해 리덴브로크 교수에게 끌려가는 곳으로 나온다. 이왕에 거론한 김에 한 구절만 옮겨볼까 한다. ’내부의 나선계단을 올라가는 중에는 별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150개의 계단을 오르기 시작하자 바깥 공기가 얼굴을 때렸다. 종탑의 테라스에 이르자 거기서 계단은 외부로 계속 이어졌다. 난간은 약해보였고 점점 좁아지는 계단은 하늘로 올라가는 듯 했다‘
▼ 아까 보았던 오페라하우스나 국립극장보다도 더 화려하고 독특한 건물 하나가 눈길을 끈다. 북유럽에서 가장 크다는 왕립도서관이다. 1999년 밀레니엄을 시대를 맞이하여 증개축한 별관인 ’블랙다이아몬드‘에는 책방은 물론이고, 카페와 공연시설이 함께 들어있다고 한다. 검은 유리에 반사된 물과 빛이 마치 보석처럼 반짝이는 건물이다.
▼ 어느덧 유람선은 크리스티안보그 성이 있는 슬로츠홀멘(Slotsholmen, 덴마크 어로 '성의 섬' 이라는 뜻이다)에 다가와 있다. 이어서 코펜하겐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물중 하나인 ‘크리스티안4세 양조장(Christian IV’s Brewery)‘이 눈에 들어온다. 원래는 도시방어용 시설이었는데, 나중에 군사들에게 알코올(alcohol)을 제공하기 위해 양조장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1967년의 대화재로 규모가 크게 줄었고, 다시 지으면서 무기박물관으로 사용하다가. 2014년부터 ‘Lapidarium of Kings’으로 시민들에게 공개하고 있다. 덴마크의 여러 궁전에서 사용해오던 집기나 예술품 등을 전시·보관 하는 곳이다.
▼ 고개를 숙여야만 통과가 가능한 다리 몇 개를 지나면 배는 이미 크리스티안보그 성에 다가와 있다. 운하 주변으로 도서관, 미술관, 박물관 등 아름다운 건축물들이 줄줄이 늘어서 있다. 사진은 첨부하지 않았지만 크리스티안보그성의 건너편에 있는 ‘니콜라이교회’의 첨탑도 보인다.
▼ 이어서 독특한 생김새의 첨탑을 갖고 있는 구 증권거래소 건물이 나타난다. 왼편에는 홀멘교회가 보이지만 사진은 생략했다.
▼ 하룻밤을 머물렀던 ‘Taastrup Park Hotel’, 시 외곽에 위치하고 있는 자그만 호텔이지만 객실이 널찍할 뿐만 아니라 시설 전체가 깔끔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특히 커피포트가 비치되어 있는 게 최대의 장점, 다만 북유럽답게 이곳에서도 일회용품은 제공되지 않는다. 비누도 역시 물비누이다. 이 호텔의 가장 큰 장점은 주위 환경이라고 할 수 있다. 2~3분만 걸으면 제법 큰 호수가 나오기 때문이다. 호숫가를 따라 나있는 산책로를 따라 한 바퀴 도는데 10분 정도가 걸리는데, 이때 호숫가에 만들어놓은 조형물을 징검다리 삼아 뛰어다녀볼 수도 있으며, 엄청나게 많은 청둥오리들의 재롱잔치도 눈에 담을 수 있다.
♧ 에필로그(epilogue), 덴마크 여행 중 가이드로부터 들었던 안내 멘트 중에 낯설었던 문장이 하나 있다. ‘어느 기업의 전액 지원으로 만들어졌다.’이다. 그게 하도 자주 듣다보니 나중에는 국가는 아예 손을 놓고 놀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이다. 코펜하겐의 명물 오페라하우스와 아말리엔보그 왕궁 앞에 있는 아말리에 정원은 덴마크 최대 기업인 ‘AP묄러-머스크(A. P. Moller-Maersk) 그룹’이 기증한 것이고, 세계적인 맥주회사 ‘칼스버그(Carlsberg)’는 코펜하겐의 얼굴이라 할 수 있는 인어공주상과 게피온분수대로도 모자라 칼스버그박물관까지 국민들에게 선물했다. 그 외에도 열측정장비 제조업체인 ‘댄포스(Danfoss)’와 장난감 제조업체인 ‘레고(Lego)’, 인슐린·의약품 제조업체인 ‘노보 노르디스크(Novo Nordisk)’ 등 수많은 기업들이 그런 사회 환원에 동참하고 있었다. 이는 기업이 현지 사회의 한 부분이 되겠다는 전략이라고 한다. 그래서 덴마크 기업들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을 ‘시티즌 십(citizenship)’이라고 달리 부른단다. 조금 오래된 얘기지만 미국의 블룸버그 통신에서 조사·발표했던 '존경받는 기업들'에는 상위 33개 기업 가운데 8곳이나 덴마크 기업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세계를 놀라게 했던 기사였지만 그에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덴마크는 소득구간에 따라 세금 부과율이 다르고 그 회사의 소득으로는 약 60%의 세금을 내야한다고 한다. 그 세금만으로도 사회에 돈을 환원하는 면이 없지 않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런데도 이에 만족하지 않고 더 많은 것을 환원하고 있는 그네들이 부럽다. 그리고 우리나라에도 그런 기업들이 많이 늘어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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