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지 : 터키 여행
여행일 : ‘18. 8. 16(목) - 8.24(수)
일 정 : 이스탄불(16~17)→아야스(17)→투즈괼(18)→카파도키아(18~19)→이고니아 콘야(19)→안탈리아(20)→파묵칼레(20)→에페소(21)→트로이(22)→이스탄불(23),
여행 둘째 날 : 토프카프 궁전(Topkapı Palace/Topkapı Sarayı)
특징 : 15세기 중순부터 19세기 중순까지 약 400년 동안 오스만 제국의 군주가 거주하던 궁전으로 이스탄불을 관광할 때는 꼭 들려야하는 명소이다. 이스탄불 구시가지가 있는 반도, 보스포루스 해협과 마르마라 해, 금각만이 합류하는 지점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세워져 있다. 현재는 박물관으로 이용 중이다. 총 면적은 70만 평이며, 벽 길이만도 5km나 된다. 토프카프 궁전은 유럽의 다른 궁전과는 달리 화려하지 않은 것이 특징이다. 그러나 건축학적인 면에서 관심 갖고 볼 것이 많고, 특히 자기·무기·직물·보석 등 볼거리가 많은 곳이다. 참고로 ’토프카프 궁전‘의 첫 번째 이름은 ‘예니 사라이(Yeni Sarayı)’이었다. ‘아흐메트 2세’가 새로이 지은 궁전이라는 뜻이다. 그러다가 궁전 입구 양쪽에 대포가 배치된 데 연유하여 토프카프 궁전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투르크어(語)로 토프는 `대포` 카프는 `문`을 뜻한다. 이 궁전은 1856년 ‘돌마바흐체 궁전’이 설 때까지 ‘오스만투르크(Ottoman Turks)’제국의 정치·문화 중심지로 통했다. 궁전은 비룬(외정)과 엔데룬(내정) 그리고 하렘 세 곳으로 나뉘어 있다.
▼ 이른 식사를 마치고 유적들이 밀집되어 있는 ‘이스탄불 역사지구(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로 향한다. 오늘도 역시 대로변에서 투어가 시작된다. 버스의 진입을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투어가 시작되는 진입로의 풍경이 눈에 참 익숙하다. 그러고 보니 5년 전엔가 업무출장차 이스탄불에 들렀을 때도 이 길을 지났었다. 하긴 소피아대성당과 토프카프궁전, 블루모스크, 지하궁전 등 이스탄불 관광의 필수코스라 할 수 있는 유적들이 모두 이곳에 몰려있으니 당연한 일이 아니겠는가.
▼ 탐방로는 블루모스크 옆을 스치는가 싶더니 소피아대성당 앞으로 우릴 인도한다. 하지만 가이드는 이곳도 역시 통과해 버린다. 문이 열리는 시간까지 기다리는 것보다는 조금 더 안쪽에 위치한 ‘토프카프 궁전’을 먼저 들러보겠다는 것이다.
▼ 잠시 후 ‘토프카프 궁전’의 앞에 이른다. 토프카프 궁전은 세 개의 문과 그에 딸린 네 개의 넓은 중정(中庭, 집안의 안채와 바깥채 사이에 있는 뜰)을 가지고 있다. 궁전 안으로 들어가는 첫 번째 문은 ‘바브 휘마윤(아랍어: Bâb-ı Hümâyûn)’이라 불리는 황제의 문 또는 ‘술탄의 문(Saltanat Kapısı)’이다. 문의 바깥쪽에 새겨진 글은 아흐메트 2세가 이 궁전의 건축을 1478년에 완공했다는 내용이라는데 이방인의 눈에는 그저 그림문자일 따름이다. 그런데 지난번에 왔을 때는 총을 든 군인들이 이곳을 지키고 있었는데 지금은 왜 보이지 않는 것일까? 이스탄불의 치안이 많이 좋아졌다는 증거일지도 모르겠다.
▼ 황제의 문을 들어서면 첫 번째 마당인 ‘제1중정(I. Avlu or Alay Meydanı, First Court)’이다. 오스만 군주와 궁전을 수비하는 ‘예니체리’라는 이름의 근위대가 주둔했다고 해서 ‘예니체리 마당(Court of the Janissaries)’ 또는 ‘퍼레이드 마당(Parade Court)’이라고도 불린다. 일반 백성은 이곳까지만 자유롭게 다닐 수 있었는데 현재도 이스탄불 시민들의 공원으로 개방되어 있다. 제1중정에는 진료원, 장작 저장소, 제빵소 등이 있었으나, 현재는 동로마 제국 때 지은 ‘하기아 이레네 성당’과 화폐 제작소 말고는 남아 있는 것이 하나도 없다.
▼ 왼편에 6세기경 동로마 제국의 유스티니아누스 1세 때 건립되었다는 ‘하기아 이레네(Hagia Eirene)’ 성당이 보인다. 건축 재료와 구조면에서 볼 때 전형적인 ‘비잔틴 건축물’인데 오스만 제국이 동로마 제국을 정복한 후에도 모스크로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건축물의 원래 형태가 그대로 남아 있다고 한다. 전리품과 무기 저장소로 사용해왔으며 1846년에는 오스만제국 최초의 박물관으로 사용하기도 했단다.
▼ 제1중정을 지나면 ‘경의의 문(Middle Gate; Ortakapı)’이 나온다. 국정운영을 담당했던 제2중정은 이 문과 ‘바뷔스 셀람(Bab-üs Selâm)’을 통해서 들어갈 수가 있었다. 오스만 제국 시대에는 술탄과 술탄의 어머니만이 말을 타고 ’경의의 문‘을 통과할 수 있었다고 한다. 수상을 포함한 다른 사람들은 모두 말에서 내려 이곳을 통과해야 했단다. 일반 백성들은 아예 출입 자체가 금지되었다니 참조해두자. 아무튼 경의의 문 양쪽에는 방추형의 석탑이 세워져 있다. 미국 디즈니랜드의 모델이 되었을 정도로 동화적이라니 한번쯤은 잘 살펴볼 일이다. 이 문의 또 다른 특징은 공항 검색대처럼 몸은 금속 탐지기, 가방은 X-선 촬영으로 보안 검색을 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만큼 중요한 보물들을 많이 소장하고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싶다.
▼ ‘경의의 문’을 통과하면 ‘제2중정(II. Avlu, Second Court)’이다. 문안으로 들어선 가이드가 일행을 불러 모은다. 궁에 대한 설명을 듣고 이후부터는 개인적으로 궁전을 둘러보라는 것이다. 그리고는 문의 바로 뒤에 만들어 놓은 오스만투르크 당시의 영토가 그려진 지도와 이곳 ‘토프카프 궁전’을 축소시킨 미니어처(miniature)를 앞에 두고 설명을 시작한다.
▼ ’제2중정‘은 아름다운 공원처럼 꾸며져 있다. 아니 이곳 말고도 궁전 안에 있는 네 개의 중정(中庭) 모두가 잘 가꾸어진 공원이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바닥의 일부분을 파헤쳐 놓은 게 보인다. 과거에는 이렇게 생겼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던 모양이다.
▼ 제2중정에는 대신들이 국사를 논의하던 ‘디완 건물’과 거대한 황실 주방인 부엌 궁전(Saray Mutfakları)이 자리하고 있다. 중정의 왼쪽에 위치하는 대회의실 격인 디완(Dîvân-ı Hümâyûn, Imperial Council Chamber)은 오늘날의 내각(內閣)을 말하는 것으로, 조정의 주요 업무가 이곳에서 논의되고 결정되었다. 건물 위에 만들어 놓은 탑은 ‘정의의 탑’으로 회의시간 동안 스파이의 접근을 방지하기 위해 설치한 것이라고 한다. 디완 건물을 ‘쿱베알트’라고도 부른다. 콥베는 ‘돔’이라는 뜻이고, 알트는 ‘아래’라는 뜻이다. 내각회의는 토프카프 궁전 초기에는 매일 열렸으나, 점차 시간이 흐르면서 줄어들다가 18세기 초에 이르러서는 일주일에 하루만 열리게 되었다. 무서운 사실은 재상들의 회의과정을 황제가 2층 밀실에서 조그마한 구멍을 통해 엿봤다는 점이다. 아무것도 모른 채 불평불만을 털어놓다가는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질 수도 있었을 테니 얼마나 무서운 일이겠는가. 디완에는 고풍스런 시계들이 전시되고 있었다.
▼ ‘정의의 탑(Tower of Justice)’ 아래에서 연결된다는 하렘(Harem)은 들어가 보지 못했다. 토프카프 궁전을 방문한 이상 놓쳐서는 안 되는 궁전의 하이라이트라는데 방문 당시에는 이를 알지 못했었기 때문이다. 하긴 알고 있었다고 해도 주어진 시간이 부족해 처삼촌 벌초하듯이 둘러볼 수밖에 없었겠지만 말이다. 아무튼 하렘은 왕실 사람들이 일상생활을 영위하던 공간이었다. 하렘의 모든 생활은 전통과 의무, 의식에 지배당했으며 ‘하렘’이라는 단어는 ‘금지’, ‘개인적’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단다. 술탄은 이슬람법에 따라 네 명의 아내를 둘 수 있었다. 술탄의 아내는 카든(kadın; 아내)이라는 칭호를 얻게 되었다. 이후 아들을 낳으면 하세키술탄(haseki sultan)으로, 딸을 낳으면 하세키 카든(haseki kadın)으로 불렸다. 술탄의 어머니 왈리데 술탄(valide sultan)이 하렘을 지배했으며 자신의 이름으로 대규모 토지를 소유하고 흑인 환관을 통해 이를 관리했다. 수상에게 직접 명령을 내려 지시 사항을 전달할 수 있었고 술탄의 아내에게도 큰 영향력을 미쳤다. 후궁 선택과 국정 운영에 있어서도 술탄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 마당 오른쪽에 있는 ‘궁전 부엌(Palace Kitchens)’은 군주를 비롯해 궁전 안에 있는 사람들의 직분에 따라 열 개의 별도 주방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종탑처럼 천장을 높게 만들어 요리할 때 풍기는 연기와 냄새를 내보낼 수 있도록 구멍을 뚫은 게 특징이다. 1천200여 명의 조리사가 매일 200마리의 양을 요리하는데, 주방에서 만들어진 음식은 200여 명의 사람이 줄을 서서 접시를 손에서 손으로 전달하는 방식으로 식탁에 올려졌다하니 머릿속으로나마 그림을 그려보자. 황실의 위엄이 그려지지 않는가. 아쉽게도 안은 들여다볼 수가 없었다. 독이 든 음식이 닿으면 색이 변하는 그릇 등 술탄이 아끼던 자기들이 많이 전시되어 있다는데 아쉬운 일이라 하겠다.
▼ 이젠 ‘제3중정(Third Court)’으로 들어갈 차례이다. ‘바쉬스 싸데(Bâbüssaâde or Bab-üs Saadet)’라 불리는 ‘지복의 문(Gate of Felicity)’을 통해서 들어갈 수 있는데, 이 문은 군주와 군주의 측근만이 통과할 수 있었다고 한다.
▼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문 앞에 네모난 돌맹이 하나가 뽈록하니 튀어나와 있는 게 보인다. 옛날 출정식(出征式)을 할 때 이곳에 술탄이 깃발을 꽂으면 출정하는 군인들이 이를 빼들고 전쟁터로 향했다고 한다.
▼ ‘지복의 문’ 오른편에는 수도꼭지가 만들어져 있다. 황제가 재상이나 사신들을 맞을 때면 이 수도꼭지를 틀어 놓음으로써 황제와의 대화를 밖에서 엿듣지 못하도록 했단다.
▼ ‘지복의 문(Gate of Felicity)’을 통과하면 ‘제3중정(Third Court, III. Avlu)’이다. 군주의 즉위식이 성대하게 열리던 술탄의 개인 공간으로 백인 환관이 보초를 섰는데, 이 공간의 하이라이트는 16세기에 건축된 ‘알현실(Audience Chamber)’이라 할 수 있다. 중책을 맡은 관리와 외국의 대사가 국정을 논의하기 위해 이 작은 공간에 모이곤 했단다. 술탄은 황금과 에메랄드로 장식된 옥좌에 앉아 사절단이 입구를 통과할 때 그들이 가져온 공물과 선물을 확인했다고 전해진다.
▼ ‘제3정원’에는 토프카프궁전의 중요한 보석들을 전시하는 공간도 있으나 사진촬영은 금지하고 있었다. 세계에서 일곱 번째로 큰 스푼 모양의 다이아몬드(86캐럿), 현란한 보석들이 박힌 금 투구, 루비 사파이어가 박혀있는 단검 등 술탄과 왕비가 누렸던 부귀영화를 엿볼 수 있는 보물들이 전시되고 있다고 보면 되겠다. 성물관(聖物館)도 역시 사진촬영은 금지된다. 성물관에는 1517년 셀림 1세가 이집트를 정복하고 가져왔다는 무함마드의 수염과 이빨, 그가 들었던 군기, 그의 발자국 주조물 등이 전시되어 있다. 모세의 지팡이, 다윗의 칼, 요한의 손 등도 보인다. 이집트를 정복한 술탄 셀림 1세는 1516년 8월 칼리파직을 이양 받음으로써 이스탄불이 이슬람 세계의 중심지가 되었다. 칼리파란 이슬람 세계 최고 통치자의 칭호인데, 이전에는 바그다드와 카이로가 이슬람 세계를 통치하는 주요 도시였다.
▼ 제3중정에 있는 ‘1719년에 세워졌다는 아흐메트 3세의 도서관(Library of Ahmet III)’도 있다.
▼ ‘제4중정’은 출입문을 통과하지 않고도 들어선다. 술탄과 왕족이 거주하는 공간이기 때문에 출입문이 따로 없다고 한다.
▼ 메지디예 키오스크(Grand Kiosk, mecidiye koshku)의 모퉁이를 돌아서자 시야가 뻥 뚫리면서 시원스런 경관이 눈앞에 펼쳐진다. 보스포루스(Bosporus) 해협은 물론이고 구시가지와 신시가지의 경치가 한눈에 쏙 들어온다.
▼ ‘제4중정’에는 세 개의 정자가 있는 데, ‘바그다드 정자’는 바그다드를 정복한 기념으로 은과 진주, 상아로 장식되었고, ‘예레반 정자’는 코카서스산까지 영토를 확장한 기념으로 지었는데 연못 옆에 위치하고 있으며, 황금빛 지붕을 하고 있는 ‘아프타리에 정자’는 골든 혼을 바라보기에 전망이 뛰어나다. 아래 사진은 예레반 키오스크(Yerevan Kiosk, revan koshku)이다.
▼ 궁전 안을 헤매고 돌아다니다 무심코 들어가 보니 타일로 장식된 호화롭기 짝이 없는 방들이 길손을 맞는다. 궁전에서 가장 호화로운 방으로 꼽히는 ‘무라트 3세의 개인실(Privy Chamber of Murat III)’이 아닐까 싶다. 1578년 세워졌으며 현재의 장식이 모두 원본이라는 곳 말이다. 아니 혹시 예레반 키오스크의 실내였는지도 모르겠다.
▼ 궁전을 돌아다니다 보면 몽골의 ‘게르(ger)’를 빼다 닮은 둥근 지붕들이 자주 눈에 띈다. 자신들의 뿌리가 몽골 유목민의 후예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 게르를 본떠 지은 것이라는데 맞는지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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