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지 : 북부 유럽 여행
여행일 : ‘17. 6. 19(월) - 7.1(토)
여행지 : 러시아(모스크바, 페테르부르크), 에스토니아(탈린). 핀란드(헬싱키), 스웨덴(스톡홀름), 노르웨이(오슬로, 발드레스플라야, 요정의 길, 게이랑에르 피오르드, 뵈이야 빙하, 베르겐, 하당에르 피오르드, 하당에르비다국립공원), 덴마크(코펜하겐)
일 정 : 27(화) : 하당에르 피오르드, 하당에르비다 국립공원
여행 여덟째 날 : 하당에르 피오르드, 하당에르비다 국립공원
특징 : ‘하당에르피오르드(Hardanger fjord)’는 노르웨이 남서부의 호르달란(Hordaland) 주(州)에 있는 길이가 170km쯤 되는 협만(峽灣, fjord)으로 베르겐 남쪽의 해안에서 시작해서 ‘하당에르비다국립공원’까지 뻗어있다. 노르웨이에서 두 번째, 즉 송내피오르드(Sogne fjord) 다음으로 길다. 거대하고 거친 느낌으로 다소 남성스러움이 강한 다른 피오르드에 비해 ‘하당에르’는 그 속에 부드러운 여성스러움을 지녔다. 봄이 되면 피오르드 이곳저곳에서 만발하는 꽃의 향기가 바닷속으로 스며들고, 사과나무와 살구나무 밭이 펼쳐지는 구릉이 목가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고 한다. 하이킹 코스가 발달한 곳으로 유명한데, 도중에 에이드피오르(Eidfjord)와 욘달(Jondal), 울렌스방(Ullensvang), 오다(Odda), 울빅(Ulvik) 등의 아기자기한 마을을 만날 수 있다. 하당에르 피오르드는 그 끄트머리(아이드피오르드)에서 고원지대(高原地帶)를 만나게 된다. 이 일대가 노르웨이에서 가장 큰 국립공원인 ‘하르당에르비다 국립공원(Hardangervidda)’이다. 고원지역의 평균 해발고도는 1,100m이며, 최고점은 ‘하당에르외쿨렌 빙하(Hardangerjøkulen glacier)’의 상단으로 해발이 1,863m에 이른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황량한 평원에는 빙하의 침식작용이 만들어 낸 수많은 호수와 강들이 형성되어 있다. 주변의 유명관광지로는 뵈링폭포(Vøringfossen)와 하르당에르 민속박물관(Hardanger Folkemuseum), 트롤통가(Trolltunga)바위 등이 있다.
▼ 점심식사 후에는 베르겐의 남쪽에 있는 ‘하당에르피오르드(Hardanger fjord)’로 향한다. 다음 목적지인 오슬로로 가는 길목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당에르피오르드와 아이드피오르드, 그리고 하당에르비다국립공원(Hardangervidda National Park)을 거쳐 숙소가 위치하고 있는 ‘누레피엘(Norefjell)’까지 가는 긴 여정이다. 누레피엘은 오슬로에서 북쪽으로 130Km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는 산악지대로 차량을 이용할 경우 2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다. 첨부된 지도를 살펴보면 오늘 달리게 될 길은 베르겐에서 오슬로까지 ‘7번 국도’로 연결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두 시간 정도를 달렸을까 차창 밖으로 ‘하당에르피오르드(Hardangerfjord)’가 얼굴을 내민다.
▼ 하당에르를 만나자마자 현수교(懸垂橋)가 나타난다. 2016년에 개통되었다는 이 다리는 협곡의 양안(兩岸)에다 200m 높이의 주탑(主塔)을 세우고 길이 1,380m에, 폭이 20m인 상판을 놓았다. 왕복 2차선이다. 이 다리의 특징은 교량으로 연결되는 터널이 아닐까 싶다. 교차로까지 나있어 터널에서의 차량이동을 용이하게 해준다.
▼ 다리의 남쪽 끝에는 간이 쉼터가 만들어져 있다. 관광객들을 위한 쉼터로 보이는데 벤치와 식탁, 화장실(문이 잠겨 있었다) 같은 편의시설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카페나 매점 등이 보이지 않는 걸로 보아 휴게소는 분명 아니다. 이 쉼터의 특징은 지나온 다리의 전경사진을 찍기에 안성맞춤이라 할 수 있겠다.
▼ 쉼터에는 관광안내판이 세워져 놓았다. 하당에르(Hardanger)지역과 하당에르비다(Hardangervidda)의 경관들을 사진과 함께 설명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눈길을 끄는 건 세계최고의 아찔한 전망대로 알려진 ‘트롤퉁가(Troolltunga)’가 아닐까 싶다.
▼ 노르웨이 3대 트레킹 중 가장 도전적이라는 ‘트롤퉁가(Trolltunga)’는 '트롤(Troll)의 혀(tunga)'라는 의미이다. 트롤은 북유럽의 신화에 등장하는 괴물인데, 마치 괴물이 혓바닥을 내놓고 있는 것처럼 절벽이 툭 튀어 나와 있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이다. 이 절벽에 서서 바라보는 노르웨이의 산하는 지상 최고라는 평가를 받는다.
▼ 편의시설은 부족하지만 쉼터로서의 입지요건은 썩 좋은 편이다. 저 멀리 만년설을 뒤집어 쓴 고봉(高峰)들이 시야에 들어오는가 하면, 근처 산자락에 자리 잡은 농가(農家)들은 하나같이 목가적(牧歌的)인 분위기를 물씬 풍기고 있다. 이곳 ‘하당에르피오르드(Hardanger fjord)’는 멋진 피오르드와 함께 목가적 분위기의 마을을 한꺼번에 구경할 수 있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이 지역은 과일 정원으로 유명한데 여름이면 사과와 체리, 배, 자두와 같은 과일나무들의 꽃을 구경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방문한단다.
▼ 쉼터에 놓인 식탁에는 여행객으로 보이는 젊은이들이 먹거리를 펼쳐놓고 있다. ‘2남1녀’라서 균형을 맞추진 못했지만 그네들은 표정은 여유로우면서도 행복해 보인다. 사진 찍어도 되겠냐는 질문에 주저 없이 ‘O.K’, 아니 포즈까지 취해준다. 역시 서구의 젊은이들답다.
▼ 이후로는 피오르드의 해안선을 따른다. ‘하당에르’는 ‘게이랑에르’와는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바위벼랑이나 폭포 등 여행자들의 눈을 현혹시킬만한 아름다운 풍경들은 만날 수 없으나, 대신 이곳 나름의 색다른 풍경화를 내보여 준다. 구릉(丘陵)처럼 밋밋한 산릉들이 하나 같이 하얀 만년설(萬年雪)을 뒤집어쓰고 있다. 눈앞에 나타나는 풍경 하나하나가 새로운 아름다움으로 성큼 다가온다.
▼ ‘하당에르피오르드(Hardanger fjord)’는 노르웨이 남서부의 호르달란(Hordaland) 주(州)에 있는 협만(峽灣, fjord)으로 노르웨이에서 두 번째, 즉 송내피오르드(Sogne fjord) 다음으로 길다. 길이는 170km쯤 되는데 베르겐 남쪽의 해안에서 시작해서 ‘하당에르비다국립공원’까지 뻗어있다. 아니 더 정확히 표현하면 하당에르비다국립공원과 얼굴을 맞대고 있는 것은 ‘이이드피오르드(Eid Fjord)’이다. 하당에르피오르드의 지류(支流)라 할 수 있는 피오르드이다.
▼ 피오르드는 잔잔하고 조용하고 끝이 없다. 흡사 어머니의 품이라도 되는 양 포근하면서도 평화로운 느낌이다. 아름답다. 아니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느낌, 그게 뭔지 모르겠다. 인간이 가진 표현력의 한계가 얼마나 허약한 것인지를 여실하게 보여주는 그런 느낌이다. 천년의 세월을 거슬러 올라간 듯한 웅숭깊은 산맥과 협곡 사이로 태고의 바닷길이 열린다. 노르웨이의 자연은 그렇게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 잠시 후 버스는 또 다른 쉼터에 내려놓는다. 개방된 화장실을 찾다보니 급했던 모양이다. 아무튼 쉼터에서의 조망은 끝내준다. 피오르드 너머로 나타나는 설산(雪山)이 그 아름다운 자태를 맘껏 자랑하고 있다.
▼ 건너편 저 멀리 만년설을 뒤집어쓰고 있는 산들이 끝없이 펼쳐진다. 그 아래 해안가에는 싱그러운 초록으로 물든 그림 같은 마을이 자리 잡았다. 누구나 한번쯤은 머물러보고 싶은 마을이지 싶다. 누군가는 ‘노르웨이에서는 자연이 스스로 말을 한다.’고 했다. 북유럽 여행, 그중에서도 특히 노르웨이 여행을 하면서 느낀 거지만, 눈에 들어오는 풍경마다 하나같이 그림이나 엽서처럼 예쁘기 짝이 없다.
▼ 내륙 깊숙이 파고든 피오르드는 빙곡(氷谷)이 침수되며 생긴 좁고 깊은 바닷길이다. 피오르드는 안으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절정의 풍광을 보여준다. 차장에 스쳐가는 풍경을 쫓다보면 자칫 지루해질 수도 있을 법 한데 눈이 너무 호사해서 인지 피곤한 줄도 모른다. 아무튼 여행사가 약속했던 세 개의 피오르드는 모두 둘러본 셈이다. 하지만 제대로 본 것은 ‘게이랑에르’ 하나뿐이라 할 수 있다. 이곳 ‘하당에르’는 차창을 통해서나마 경관을 구경할 수가 있었다. 가끔가다 전망대도 만났음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송내 피오르드(Sogne fjord)’는 완전히 수박 겉핥기에 불과했다.
▼ 바위언덕 위에도 농가가 자리 잡았다. 이 지방의 특징답게 주위에는 많은 과일나무들이 심어져 있다. 이렇게 산자락을 파고든 집들은 심심찮게 눈에 띈다. 약간의 불편을 감수하고서라도 자연 속에서의 삶을 만끽하고 싶어서일 것이다.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이 거의 종교수준인 노르웨이 사람들다운 풍경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 하당에르피오르드의 가장 안쪽 협만(峽灣, fjord)은 아이드피오르드(Eid Fjord)라고 했다 .하지만 그게 어디쯤에서부터 시작되는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해수면(海水面)이 보이지 않는다 싶으면 도로는 협곡의 안으로 들어서게 된다. 그리고 고도(高度)를 높여간다. 험상궂은 암벽이 볼만하지만 그 거리가 가까워 협곡의 전체적인 모양새를 카메라에 담을 수는 없었다. 때문에 다른 분의 사진을 빌려다 썼다. 포슬리(Fossli)호텔 앞 전망대에서 찍은 사진이다.
▼ 얼마쯤 달렸을까 카페와 화장실을 갖춘 휴게소가 나온다. 노르웨이 최대의 국립공원인 ‘하당에르비다(Hardangervidda)’로 들어가는 입구에 위치하는데, 7번 국도를 이용하는 관광객들이 빼놓지 않고 꼭 들르는 휴게소이다. 아니 저 위에 있는 ‘포슬리(Fossli)호텔’로 올라가지 않는 사람들이 들른다고 하는 게 더 옳은 표현이겠다. ‘아이드피오르드(EidFjord)’의 백미(白眉)라 할 수 있는 ‘뵐링폭포(The Vøringfoss Waterfall)’를 가장 잘 조망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 휴게소에는 ‘Velkomen Til EidFjord Kommune’라고 적힌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에이드는 피오르드의 이름일 뿐만 아니라 지자체(地方自治團體)의 이름이기도 한 모양이다. ‘Velkomen Til’은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 에이드피오르드의 범위를 표시해 놓을 걸로 보아 ‘관광안내도’쯤 되지 않을까 싶다. 그게 아니라면 ‘환영합니다.’쯤 되는 인사말일 것이고 말이다. 참고로 덴마크어로 ‘벨코멘(Velgommen)’은 위의 둘 가운데 후자(後者)인 ‘환영합니다.’이다.
▼ 차에서 내리자마자 숲속으로 들어서고 본다. 그리고 입이 떡 벌어지는 풍경을 만난다. 건너편의 거대한 바위절벽에 ‘뵈링폭포(The Vøringfoss Waterfall)’가 걸쳐져 있는 것이다. 2단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위쪽에선 돌과 돌 틈바구니를 구르다가 아래쪽에선 그대로 내리뛰는 모양새이다. 높이는 182m이고, 막힘없이 낙하하는 최대 높이는 163m나 된다고 한다.
▼ 만년설(萬年雪)이 녹으면서 만들어 놓은 폭포에서 무지개가 피어올랐다. 가이드는 노르웨이의 자연이 만들어내는 장관 가운데 하나가 무지개라고 했다. 또한 그녀는 무지개는 비가 그친 직후에 만날 수 있다고 했다. 이번 여행 중에 비, 그것도 제법 강한 빗줄기를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무지개는 꼭꼭 숨어있었다. 그런데 그 귀한 무지개를 이곳에서 만나게 된 것이다. 행운이 아닐 수 없다.
▼ 그런데 2%가 부족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폭포가 전모(全貌_를 보여주지 않고 자신의 일부를 감추고 있는 것이다. 그 이유는 잠시 후 안내판을 만나면서 알아차리게 된다. 지도에다 전망이 좋은 포인트를 표시해 놓았는데, 조망사진까지 올려놔 보는 사람들의 이해를 돕고 있다. 지금 내가 서있는 위치는 애초부터 전체적인 조망이 불가능한 곳이었던 것이다.
▼ 안내판이 알려준 곳으로 이동한다. 아까 버스를 타고 왔던 도로이다. 도로는 서는 곳마다 일류의 전망대로 변한다. 그리고 서는 곳마다 각기 다른 그림들을 내보여 준다. 이래서 이곳 ‘뵐링폭포’를 일러 ‘하당에르비다 국립공원(Hardangervidda National Park)’의 가장 빼어난 절경 가운데 하나로 꼽는가 보다.
▼ 폭포의 꼭대기에 건물 몇 동이 보인다. 백 년의 역사를 자랑한다는 ‘포슬리(Fossli)호텔’이다. 여름 한 철에만 문을 여는데, 비싼 숙박비에도 불구하고 수개월 전부터 예약이 마감되는 인기 있는 호텔로 알려져 있다. 저 호텔은 노르웨이가 낳은 세계적인 음악가 그리그가 악상이 떠오르지 않을 때 가끔씩 찾아와 묵어갔다는 곳이다. 그는 뵈링포센(Vøringsfossen, The Vøringfoss Waterfall)과 고원의 아름다운 전경을 바라보며 ‘솔베이지의 노래’를 작곡했을지도 모르겠다. 페르귄트는 기쁨과 회한의 눈물을 흘리며 솔베이지의 품에 안겨 죽어간다. 그렇다면 그때 그녀가 불러주던 노래는 ‘뵈링포센’의 물 떨어지는 소리가 아니었을까? 참고 로 호텔 벽 한쪽에 그리그의 젊은 시절의 사진과 악보 및 그의 생활용품들이 보관되어 있다고 한다.
▼ 가장 먼 곳에 있는 조망처에 이르자 폭포는 둘로 변한다. 하지만 그 경관은 아까만 못하다. 거대한 물줄기의 폭포 하나가 새로 나타난 대신에 아까 보았던 멋진 폭포는 절반 정도가 가려져 버렸기 때문이다.
▼ 이곳 ‘뵈링폭포(The Vøringfoss Waterfall)’는 협만(峽灣, 피오르드)과 고원(高原)의 경계선이다. 폭포로 올라서기 전에는 ‘하당에르 피오르드(Hardanger fjord)’였고, 이제부터는 ‘하당에르비다(Hardangervidda)’로 들어서게 된다. 노르웨이어인 ‘비다(vidda)’는 고원을 뜻한다. 그러니 하당에르(Hardanger) 지역에 있는 피오르드(fjord)와 비다(vidda)라고 이해하면 되겠다. 뵈링폭포를 지났으니 이미 고원(高原)에 들어선 셈이다. 노르웨이 최대의 국립공원이자 유럽에서 가장 넓은 고원이란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려는 양 주위는 엄청나게 널따란 분지(盆地)로 이루어져 있다. 산이라기보다 구릉(丘陵)에 더 가까운 능선에는 울창한 숲이 들어서 있다. 고원이라고는 하나 아직은 해발이 낮다는 증거일 것이다.
▼ 나지막한 산자락에 들어앉은 집들 중에는 잔디로 지붕을 덮은 집들도 보인다. 저렇게 잔디로 지붕을 덮음으로써 ‘보온(保溫)과 보냉(保冷)’ 효과를 얻는단다. 눈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지붕은 높은 삼각형에다 색깔은 벽돌색이다. 설마 국가에서 지정해 놓지는 않았겠지만 건물마다 거의가 진한 브라운 색깔을 칠해 놓았다.
▼ 점차 고도를 높여가던 대지는 어느덧 1천m를 넘긴다. 언제부턴가 주변의 풍경은 확연히 변해있다. 푸름을 자랑하던 초원은 오간데 없이 사라져버렸고, 그 빈자리를 아직 덜 녹은 눈이 차지하고 있다. 동토(凍土)의 나라에 들어선 모양이다.
▼ 눈과 물이 반반인 대지가 끝도 없이 펼쳐진다. 이때 어디선가 불어온 바람 한줄기가 이마를 스쳐간다. 포근하기 짝이 없는 바람이다. 눈앞의 풍경은 겨울이건만 기후는 이미 여름의 문턱을 넘어섰는가 보다. 그래 맞다. 우린 엊그제 하지를 떠나보냈었다.
▼ 드넓고 황량한 평원에는 빙하의 침식작용이 만들어놓은 수많은 호수와 강들이 널려있다. 개울도 보인다. 물줄기가 제법 그럴싸하다. 이 부근에 수력발전용 댐이 있다더니 저런 물줄기들이 있었기에 가능했었을 게다.
▼ 나지막한 언덕 사이에는 호수가 있고, 그 너머에는 일 년 내내 녹지 않을 것 같은 설원(雪原)이 펼쳐진다. 생전 처음 대해보는 낯선 풍경이다. 마치 여기가 천상이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면 믿을지 모르겠다. 어떤 글이나 사진으로 이런 느낌을 전달할 수 있겠는가. 그저 오감(五感)으로 느끼며 받아들이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일 것 같다. 혹시라도 잊혀 질까 두렵다면 카메라를 끄집어 내보자.
▼ 길 양옆에는 어른의 키를 훌쩍 넘기는 긴 장대들이 쭉 꽂혀 있다. 겨울철 제설작업(除雪作業)을 할 때, 이곳이 길임을 알려주는 표시라는데 장대 끝까지 눈에 묻히기도 한단다. 눈이 얼마나 많이 내리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9월이 되면 이 길은 막힌다. 아마 다음 해 4월 이후나 되어야 다시 열리게 될 것이다. 그때는 아무도 없는 고원은 적막강산, 오롯이 하늘만 향하게 되는 얼음 나라, 그야말로 겨울왕국이 된다.
▼ 호수주변에 자그만 집들이 옹기종기 들어서 있는 게 보인다. 앞에서도 얘기했듯이 히테(Hytter)라고 부르는 통나무집인데, 텐트가 없는 사람들이 묵어갈 수 있도록 시설을 대여해 준다. 북유럽에서는 이런 시설(Hytter)이 캠핑장마다 활성화되어 있는 독특한 문화를 형성하고 있다. 물가가 비싼 북유럽에서 주머니가 가벼운 여행자들에게는 이보다 더 반가운 시설은 없을 듯 싶다.
▼ 꽤 오랜 시간을 버스가 달려도 여전히 같은 그림이다. 햇살에 반짝이는 호수와 그 주변을 포위하고 있는 눈들... 이따금 검게 젖은 바위와 몸을 웅크린 키 작은 나무들이 한 폭의 진경산수화 같다. 미처 생각하지 못한 아름답고 위대한 순수자연에 압도당해서인지 소름이 오소소 돋는다. 갑자기 눈물 한 방울 또로록 흘러내린다. 어제에 이어 두 번째이다. 자연이든 사람이든 순수한 진실 앞에서는 눈물이 나는 모양이다.
▼ 굴곡이 거의 없는 고원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아니 높은 산이 없다보니 그렇게 보이는 것일 게다. 하긴 유럽에서 가장 너른 고원이라니 두말 하면 뭐하겠는가. 이 고원은 평균 고도가 1,100m이고, 가장 높은 곳은 1,863m이며, 면적은 서울의 10배 정도 크기라고 한다. 여행의 필수는 여유로움이다. 그 외의 것은 필수조건이 아닌 선택사항에 불과할 따름이다. 발길을 옮길 때마다 쉼 없이 이어지는 풍경을 담을 맑은 두 눈과, 마주치는 사람들과 교감할 수 있는 미소만 챙기면 된다. 일상을 놓아보자. 어렵지 않은 일이다. 동화처럼 순수하고 깨끗한 여행지라면 누구라도 그럴 수 있을 것이다.
▼ 흑백(黑白)으로만 덧칠되어 있던 풍경화에 초록의 색깔이 추가되어 있다. 아니 대부분이 초록빛으로 바뀌어 있다. 동토의 세계를 빠져나왔다는 증거일 것이다. 아무튼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경관이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다. 그것도 아름다운 풍경을 배경으로 한 러브스토리다. 그래선지 흡사 영화세트장을 연상시키는 듯한 풍경들도 자주 눈에 띈다. 아니 그림엽서에나 나올 법한 아름다운 풍경들이다.
▼ 하룻밤을 머물렀던 ‘누레피엘 스키 & 스파 호텔(Norefjell Ski & Spa Hotel)’, 7번 국도에서도 한참을 더 들어가야 만날 수 있다. 하긴 해발이 1,400m를 훌쩍 넘기는 곳에 위치한 스키장의 리조트(resort)이니 산꼭대기까지 올라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호텔은 뾰족지붕에 나무 외장(外裝)을 한 전형적인 노르웨이식 건물로, 꽤 모던(modern)한 느낌을 보여준다. 하긴 노르웨이의 리얼리티 TV 프로그램에까지 나왔을 정도라니 두말하면 잔소리일 것이다. 부대시설로는 한 잔의 여유를 즐길 수 있는 바(bar)와 레스토랑이 있으며 실내 수영장 및 ‘풀-서비스 스파(full-service spa)’까지 갖추고 있다. 식사는 아침과 저녁이 제공되는데 질과 양도 시내 중심가에 위치한 호텔들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괜찮은 편이었다.
▼ 해발이 1,400m를 훌쩍 넘기는 스키장의 리조트를 겸하다 보니 호텔 또한 산꼭대기와 마찬가지인 곳에 자리 잡았다. 덕분에 공기가 맑을 뿐만 아니라 주변 경관 또한 빼어나다. 아침 일찍 숲속을 산책하며 자연과 동화되어 보는 것도 하나의 즐거움이 아닐까 싶다. 마침 이정표까지 세워놓아 큰 어려움 없이 돌아볼 수 있을 것이다. 시간이 조금 남을 경우에는 취사가 가능한 시설(노르웨이에서는 그냥 아파트라고 하는데 우리나라로 치면 콘도)들의 앞에 조성해놓은 인공호수까지 다녀올 것을 권한다. 별로 크지는 않지만 잠시 쉬어가게끔 편의시설들을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 에필로그(epilogue), 캔맥주라도 하나 살까 해서 슈퍼마켓에 들어가니 우리네 컵라면을 닮은 ‘미스터 리’가 눈에 띈다. 노르웨이에 귀화한 이철호씨가 창업한 브랜드라고 한다. 언젠가 책에서 그를 본적이 있었던 것 같다. 아마 ‘그래도 끝까지 포기하지 마라’라는 그의 일대기였을 것이다. 6.25전쟁 직후인 1954년에 이곳 노르웨이로 이민을 온 그는 구두닦이와 조리사 등의 일을 하다 ‘라면사업’으로 대박을 터뜨렸다. 그로 인해 노르웨이 이민자 가운데 최초로 국민장과 기사작위까지 받았으며 노르웨이 초등학교와 고등학교의 교과서에 그의 이야기가 실렸을 정도란다. ‘위대한 한국인’이라 할 수 있겠다. 그와 같은 동포인 내 어깨 또한 으쓱해진다. 아무튼 한글로 된 브로셔(brochure)나 한글 안내방송과 함께 이번 여행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풍경이 아니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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