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지 : 북부 유럽 여행
여행일 : ‘17. 6. 19(월) - 7.1(토)
여행지 : 러시아(모스크바, 페테르부르크), 에스토니아(탈린). 핀란드(헬싱키), 스웨덴(스톡홀름), 노르웨이(오슬로, 발드레스플라야, 요정의 길, 게이랑에르 피오르드, 뵈이야 빙하, 베르겐, 하당에르 피오르드, 하당에르비다국립공원), 덴마크(코펜하겐)
일 정 : 6.25(일)-26(월) : 노르웨이의 오슬로, 발드레스플라야, 오따, 요정의 길
여행 여섯째 날 : 노르웨이 최고의 트레킹코스, 발드레스플라야 & 요정의 길
특징 : ① 노르웨이(Kingdom of Norway, 노르웨이어 Kongeriket Norge) : 내륙으로는 스웨덴과 핀란드, 러시아와 접경하고, 해안부는 북해와 노르웨이해, 북극해 및 스카게라크 해협에 면한다. 국토의 70%가 호소(湖沼, 호수와 늪)와 빙하, 암석산으로 이루어져 인구의 70%가 도시에 몰려 산다. 인종은 대부분이 게르만족인 노르웨이인이며, 그밖에도 사미족이 있다. 언어는 노르웨이어이고, 전인구의 94%가 국교인 복음루터교를 신봉한다. 내각책임제 하의 입헌군주국으로 국왕은 ‘하랄 5세(Harald V)’이다. 8세기 말까지 남부에서 여러 개의 작은 나라를 이루고 있던 ‘노르드’인은 9세기 들어 해외 진출, 즉 바이킹 활동을 11세기까지 활발하게 해온다. 872년 하랄왕(Harald王)에 의하여 통일왕국이 세워졌고, 11세기 중엽에는 노르웨이왕이 덴마크왕을 겸하는 세력을 지니기도 했다. 14세기 말부터 1814년까지는 덴마크의 지배를, 1814년부터 1905년까지는 스웨덴의 지배를 받았다. 1905년 스웨덴으로부터 독립하면서 오늘의 왕가가 시작되었다. 대외적으로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으로, 국제연합(UN)에는 1945년에 가입했다. 하지만 EU에는 가입하지 않았다. 우리나라와는 1959년에 외교관계를 수립했다.
② 발드레스플라야(Valdresflya)와 트롤스티겐(Trollstigen) : 청정자연을 자랑하는 노르웨이에서 첫 번째로 만나게 되는 순수(純粹)한 자연이 발드레스플라야(Valdresflya)이다. 북유럽 최고의 트래킹코스로 알려진 이곳은 요툰하임의 광활한 풍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 노르웨이의 다른 고지대(高地帶)와 마찬가지로 12월에 닫혔다가 이듬해 4월에야 열리지만, 열린 후에도 지나다니는 차량들은 그다지 많지가 않다. 덕분에 마음이 동하는 곳이라면 어떤 장소에서건 쉴 수가 있고, 마음껏 여유를 부릴 수 있는 장점을 갖고 있다. 난생 처음 보는 이질적인 풍경에 흠뻑 빠져볼 수 있음은 물론이다. ‘트롤스티겐(Trollstigen)’ 또한 결코 뒤지지 않는다. ‘거인의 사다리’라는 뜻의 이 길은 금방이라도 숨어 있던 요정이 나타날 수 있다고 해서 ‘요정의길’ 이라고도 부른다. 11개의 U자형 급커브와 가파른 경사로(傾斜路)가 있는 아주 스릴 넘치는 고갯길로, 특히 길의 폭이 좁은데다 한쪽 면이 천 길 낭떠러지로 이루어져 있어 고갯마루까지 올라서는 내내 오금저리는 두려움에 떨어야만 한다. 반면에 주변의 경관은 끝내준다. 산자락에 만들어진 수많은 폭포들이 바라보는 이의 눈을 현혹시키는가 하면, 낭떠러지 아래에서 꿈틀대고 있는 구곡간장(九曲肝腸)의 도로는 두려움을 넘어 환희로 다가온다. 한마디로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만한 멋진 경관이다.
▼ 국경도시 아르장(Arjang)을 출발한 버스는 1시간 반 정도를 달린 끝에 노르웨이의 수도인 오슬로에 이른다. 오슬로 시청사(市廳舍) 앞의 부둣가이다. 가이드가 점심때까지 시간이 조금 남았다며 자유 시간을 준다. 가는 길에 점심을 먹을 만한 곳이 없기 때문에 이곳 오슬로에서 한 끼를 때우고 떠나야 한다는 것이다.
▼ 그런데 1시간이 채 되지 않는 이 자유시간이 참으로 어중간하다. 무언가 하나를 톡 찍어 구경할 수가 없는 것이다. 별 수 없이 오슬로 시청(Oslo City Hall) 근처에서 어슬렁거리다가 동쪽 바위산에 자리한 ‘아케루스후스 요새(Akershus Fortress)’까지 다녀오기로 한다. 그 곳도 역시 외곽만 눈에 담을 수 있을 따름이다. 내부관람을 할 만한 시간은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르웨이 투어의 마지막 날에도 이 부근에서 30분 정도의 자유시간이 주어지게 된다. 애초에 일정을 잘 조정해서 이 둘을 합쳐놓았더라면 요새의 내부관람까지 가능했을 텐데 아쉬운 일이다.
▼ 아케루스호스 요새(Akershus Fortress)는 오슬로의 역사를 배우며 걷기 좋은 곳으로 알려져 있다. 13세기 ‘호콘 5세(King Haakon V)’가 오슬로 동쪽 바위산 위에 세운 성채인데, 17세기 초 오슬로 대화재로 잿더미가 된 것을 ‘크리스티안 4세(Christian IV)’가 르네상스풍으로 재건했다. 현재 국외 주요 인사의 노르웨이 방문시 영빈관 겸 연회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역사적인 내용을 전시한 박물관도 열어 놓았으며, 성 아래 해안도로는 19세기 말엽 뭉크가 친구들과 산책을 나왔다가 '절규'의 모티브를 얻은 곳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매일 오후 1시30분에 행해지는 위병 교대식이 볼만한 것으로 알려진다. 아래 사진은 못 가본 것이 하도 억울해 노르웨이의 관광 사이트에서 빌려왔다.
▼ 1950년 오슬로(Oslo) 시(市)의 창립 9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지어진 청사(廳舍)는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는 장소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의 김대중 전 대통령도 2000년 12월 10일 이곳에서 수상증서 및 금메달을 받고 수상 연설을 한바 있다. 자세한 얘기는 뒤로 미루겠다. 노르웨이에서의 마지막 날 일정에 시청사의 내부관람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 점심 식사를 마친 후에는 산간마을인 오따(Otta)로 향한다. 가는 길에 1천m가 넘는 고원지대를 지나야 하는 험난한 여정이다. 오슬로를 떠난 길은 시간이 지나갈수록 고도(高度)를 높여간다. 그렇다고 서둘러서 변화를 주지는 않는다. 거리가 멀다보니 1천m 정도의 높이는 서두르지 않아도 되는 모양이다. 언제부턴가 차창 밖으로 내다뵈는 풍경이 많이 달라졌다. 끝없이 펼쳐지던 허허벌판은 언제부턴가 사라져버리고 모나지 않는 산릉(山稜)이 좌우로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이 길은 우리나라와는 다른 특징을 보여준다. 어쩌다 만나게 되는 호수에서 그런 특징이 여실히 나타나는데 우리가 가야할 반대편이 뻔히 건너다보이는데도 빙 에둘러 돌아가는 것이다 .우리나라 같으면 다리 하나 뚝딱 놓아버렸을 텐데도 말이다. 여유로움이 몸에 배어있는 이 나라 사람들의 심성을 보는 것 같아 내 마음 또한 포근해진다.
▼ 겨울철 세계 각국의 스키어들이 몰려드는 핫플레이스(hot place)인 바이토스톨렌(Beitostolen)을 지나면서 차창 밖으로 내다보이는 풍경들이 바뀌어져 간다. 고도(高度)를 높여가는 속도가 서서히 빨라져가는 것이다. 그리고 얼마 후에는 나무 한 그루 눈에 띄지 않는 삭막한 풍경으로 바뀌어 버린다. 북유럽 최고의 트래킹코스로 알려진 ‘발드레스플리야(Valdresflya)’에 들어선 모양이다. 아니 ‘요툰하이멘국립공원(Jotunheimen National Park)’일지도 모르겠다. 얄팍하기 짝이 없는 내 앎을 갖고 두 지역의 경계를 나눈다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일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아무튼 ‘발드레스플라야’를 가로지르는 도로(51번)는 요툰하임국립공원의 동쪽에 위치하고 있어, 이 길을 가다보면 요툰하임의 광활한 풍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고 한다. 노르웨이의 다른 고지대들이 다 그러하듯이 이 길 역시 겨울철이 시작되는 12월에 닫히고, 이듬해 4월이 되어야만 다시 열린다. 가장 높은 지점은 해발이 1,389m나 된다.
▼ 숨도 고를 겸해서 잠시 쉬어가기로 한다. 안내판은 보이지 않지만 작은 공터로 이루어진 걸로 보아 전망대(展望臺) 용도로 만들어놓은 것 같다. 노르웨이 여행의 장점 중 하나가 바로 이런 자유로움이 아닐까 싶다. 마음이 동하는 곳이라면 어떤 장소에서건 쉴 수가 있고, 마음껏 여유를 부릴 수 있다는 점이다.
▼ 엊그제 하지(夏至)가 지났는데도 아직도 산은 새하얀 눈을 머리 위에 이고 있다. 그래 이곳은 1200미터를 훌쩍 넘기는 고원지대(高原地帶)이다. 거기다 북극권인데 오죽하겠는가. 가이드의 말로는 일 년 내내 눈을 구경할 수 있는 곳이란다. 아니 조금 옹색하기는 해도 스키까지 탈 수가 있다니 할 말 다했다. 아무튼 이렇게 척박한 곳에서도 오래된 경작지와 목장 등 사람들이 살고 있는 흔적들이 눈에 띄기도 한다. ‘여름 농장’ 즉 여름에만 거주하는 가옥(家屋)들이다. 이곳 발드레스플라야(Valdresflya)에 걸쳐있는 지역인 Heidal, Sjodalen, Valdres 등에서는 생활 전통이나 자연경관이 잘 보존되고 있단다.
▼ 전망대에 서면 건너편 저 멀리에 멋진 산 하나가 나타난다. 나무 한 그루 보이지 않는 민둥산의 꼭대기 위로 하얀 뭉게구름이 지나간다. 그 아래에는 크지도 그렇다고 작지도 않은 호수가 놓여있다. 난생 처음 보는 이질적인 풍경이다. 가슴이 뭉클해지는 걸로 보아 그 풍경이 사뭇 고왔던 모양이다.
▼ 반대편 방향에도 호수가 보인다. 비록 작지만 호수임에는 틀림이 없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저런 호수들을 수없이 만났었다. 이곳 ‘발드레스플라야(Valdresflya)’가 물길이 따로 없는 평원(平原)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고산(高山)에 쌓여있던 만년설(萬年雪)이 녹아 흐르다가 움푹 파인 곳을 만나 고이게 되면 자연스레 호수를 만들 거라는 얘기이다.
▼ 버스는 또 다른 공터에서도 멈추어 선다. 이번에는 ‘Rjupa전망대’라는 공식적인 이름까지 갖고 있는 곳이다. 하지만 주차장이 비어있기는 아까와 매한가지이다. 성수기인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비어있다면 일 년 내내 붐빌 일은 없겠다. 그런 분위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모든 것이 여유롭다. 바쁜 사람도 없고 재촉하는 일도 없고, 급한 마음 또한 생기지 않는다. 마음에 들면 서고 싫어지면 떠난다. 적당히 숨고르기를 하며 여정을 이어가기에 딱 좋은 분위기이다.
▼ 안내판에 ‘Jotunheimvegen’라는 단어가 보인다. 영어는 아니지만 ‘요툰하이멘 국립공원(Jotunheimen National Park)’에 대한 안내판이 아닐까 싶다. 그렇다면 그 아래에는 ‘세계의 경이로운 자연경관 100곳(100 Natural Wonders Of The World)’ 가운데 하나로 뽑힌바 있는 요툰하이멘(Jotunheimen)의 아름다운 경관을 소개하고 있을 게 분명하다.
▼ 또 다른 안내판에는 지도가 그려져 있다. ‘Rjupa’라는 지명 옆에 붉은 점을 찍어 놓았다. 이곳이 ‘Rjupa 전망대’라는 증거이다.
▼ 전망대에 서면 커다란 호수 하나가 눈앞에 펼쳐진다. ‘Vinstre 호수’라고 한다. 해발이 1,302m나 되는 높은 곳에 저렇게 커다란 호수가 있다는 것이 경이롭기까지 하다.
▼ 호숫가를 따라 난 좁다란 길가에 작은 오두막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게 보인다. 북유럽의 명물 가운데 하나인 통나무집 ‘히테(hytte)’일 것이다. 호텔이나 모텔보다 가격이 저렴할 뿐만 아니라 주방시설까지 갖추고 있어 배낭여행자들의 사랑을 듬뿍 받는 시설이다. 참고로 히테(Hytee)란 별장을 의미한다. 이곳 사람들은 주말이면 이 시골집에 내려가 채소 등을 직접 가꾸며 소일하는 것이 또 다른 일상이자 휴식이다. 그러다보니 산간오지(山間奧地)에 위치하는 게 보통이다. 하지만 요즘의 히테는 해변이나 호숫가, 스키장 근처 등의 경치가 좋은 곳에다 마련하는 게 보통이라고 한다. 그중에는 민박(民泊)으로 이용하는 곳도 많단다.
▼ 요툰하이멘 국립공원(Jotunheimen National Park)은 스칸디나비아에서 가장 높은 산악지대(山岳地帶)로 노르웨이의 남부지역에 위치한다. 빙하기(氷河期, glacial stage) 때 얼음으로 덮여있던 융기평원이 빙상(氷床, 빙하)의 침식(侵蝕) 작용을 거치면서 해발 1,000~2,000m의 산지 및 호수, 계곡, 피요르드 등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환상적인 자연경관으로 형성되었다. 산지의 서쪽에는 유럽 최대의 빙하인 요스테달스브레 빙하가 아직까지 잔존하고 있단다. 요툰하이멘(Jotunheimen)은 이러한 높은 산들이 자아내는 웅장하고도 신비한 자연 경관 때문에 '거인의 나라'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으며 북유럽 신화나 전설에 자주 등장한다. 주인공이 애인 솔베이지를 버리고 산속 마왕의 딸에게 혼을 판다는 입센(Henrik Ibsen,1828-1906)의 희곡(戲曲) '페르귄트(Peer Gynt, 1867)'의 무대가 되기도 했다.
▼ 개울을 발견한 집사람이 쪼르르 달려 내려간다. 졸졸졸 흐르는 물에 손을 담그는 모습이 아직도 동심(童心)을 벗어나지 못했나 보다. 하긴 이렇게 아름다운 경관 속에서 어른 티를 낼 필요는 구태여 없겠다. 그녀가 화들짝 놀란다. 명색이 얼음이 녹으면서 만들어 놓은 개울인데 얼마나 차겠는가. 엄청나게 손이 시렸을 것이다.
▼ 요툰하이멘 국립공원(Jotunheimen National Park)을 지나면 이젠 내리막길이다. 주변 풍광도 확연히 달라진다. 울창한 숲은 물론이고 계곡에도 물이 넘쳐흐른다. 한마디로 아름답다는 얘기이다. 여기에 감미로운 음악까지 곁들여진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가 아닐까 싶다. 눈치 빠른 가이드가 이런 분위기를 놓쳤을 리가 없다. 준비해온 CD를 틀어준다. 위에서 얘기했던 '페르귄트(Peer Gynt, 1867)'인데, 우리의 귀에도 익숙해진 ‘솔베이지의 노래(Solveigs Lied)’가 여기서 나온다. ‘에드바르드 그리그(Edvard Grieg, 1843-1907)’가 작곡(作曲)한 노래들이다. 반쯤 눈을 감은 채로 노래에 귀를 기울이다보면 어느덧 산간마을이 오따(Otta)에 이르게 된다. 아래의 사진 두 장은 다른 분의 것을 빌려다 썼다. 비가 너무 많이 내려 버스의 안에서는 사진촬영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 오따(Otta)는 오플란주의 지방 자치 지역 가운데 하나인 셀(Sel)의 행정 관청이 있는 타운이다. 오플란주의 주도인 릴레함메르(Lillehammer)로 부터 북쪽으로 약 110km 떨어진 곳에 위치하는데, 우리나라의 읍(邑) 규모에 조금 못 미치는 크기라고 보면 되겠다. 오따(Otta)는 슬픈 사연을 간직하고 있는 산간마을이다. 14세기 무렵 흑사병으로 주민 3000명이 모조리 죽음을 당하고 8명만이 살아남았다는 것이다. ‘오따’라는 지명은 당시 살아남은 사람들의 숫자인 ‘8’을 나타내는 라틴어(Latin language) ‘옥토’에서 유래되었다고 전해진다. 인근에는 1962년에 노르웨이 최초의 국립공원으로 지정된바 있는 ‘론다네 국립공원(Rondane National Park)’이 있다. 아무튼 오늘 하루의 일정은 이곳에서 종료된다. 숙소로 정해진 ‘Rondeslottet Hotel’은 시내에서 벗어난 산꼭대기에 자리하고 있는 산장형의 호텔이다. 왔다갔다 갈지(之)자를 그려야만 호텔까지 올라갈 수 있는데다. 엘리베이터까지 없어 이층으로 올라갈 때에는 무거운 가방을 끙끙거리며 들고 올라가야만 한다. 하지만 시설을 깨끗했다. 제공되는 식사 또한 괜찮은 편이었다. 다만 캔 맥주 하나에 10유로나 받는 살인적인 가격은 나 같은 애주가들을 주눅들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 아침식사를 마친 후 ‘요정의 길’로 향한다. 새벽부터 내리기 시작한 빗줄기가 많이 굵어졌다. 어제까지만 해도 햇빛이 쨍쨍 내려쬈는데 참 변덕스러운 날씨이다. 누군가 종잡을 수 없는 게 북유럽 날씨라더니 그 말이 맞는 모양이다. 덕분에 아름답기로 유명한 주변의 경관이 엉망으로 변해버린다. 차창에 부딪치는 빗줄기가 시야를 가려버렸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조망을 포기할 수는 없는 일이다. 또렷하지 않다고 해서 그마저도 놓칠 수야 없지 않겠는가. 다들 좌우를 오가며 카메라의 셔터를 눌러대기에 여념이 없다. 자신도 모르게 터져 나오는 탄성을 감출 생각도 못하면서 말이다.
▼ 길의 양쪽은 바위벼랑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니까 우릴 태운 버스가 협곡(峽谷)을 따라 달리고 있다고 보면 되겠다. 양쪽 산자락에 수많은 폭포(瀑布)들이 만들어져 있다. 수량(水量)이 풍부한데다 높기까지 해 다른 어느 유명 폭포들에 비해 조금도 뒤질 것이 없어 보인다. 한마디로 장관이 아닐 수 없다. 거침없이 쏟아대는 빗줄기가 거추장스럽지만 대신에 저런 멋진 풍경을 만들어 내다니 자연이 아니고서는 생각해볼 수도 없는 일이다. 새옹지마(塞翁之馬)란 인간들에게만 해당되는 고사성어(故事成語)가 아닌 모양이다.
▼ 그렇게 한참을 달릴 즈음 가이드가 마이크를 잡는다. ‘요정의 길’에 들어섰다는 것이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길은 고도(高度)를 높여간다. 그리고 잠시 후에는 갈지(之자)를 그리면서 겨우겨우 위로 향한다. 도로 폭도 엄청나게 좁다. 오가는 차량이 서로 만났을 때를 생각하니 소름이 끼칠 지경이다. 바로 옆이 천 길 낭떠러지인 것이다. 참고로 요정의 길(trollstigen)은 8년간의 공사 끝에 1936년 완성되었다. 꼭대기에 오르기 위해서는 가파르면서도 비좁은 산모퉁이를 11번이나 돌아 올라가야하는 모험을 감수해야만 한다. 한다. 대신,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경관은 환상적이다. 트롤스티겐은 대개 6월부터 8월까지 관광이 가능하며, 날씨에 따라서 폐쇄되기도 한다.
▼ 이곳도 역시 폭포로 넘쳐난다. 바위벼랑으로 이루어진 산자락이 마치 주름치마라도 입은 양 수십 개의 주름을 만들고 있다. 그 주름 사이로 물이 흐르며 폭포가 만들어진다. 하지만 이런 풍광은 오늘 같이 비가 오는 날에나 구경할 수 있는 별미(別味)일 것이다. 날이 맑을 경우에는 흘러내릴 물이 없을 테니까 말이다. 아니다. 이곳 노르웨이는 1년간의 강우일(降雨日)이 200일 정도나 된다니 이틀 건너 하루는 구경할 수도 있겠다.
▼ 아래 사진은 가슴을 졸이면서 찍어본 사진이다. 까마득한 벼랑 아래로 방금 지나왔던 길이 아슬아슬하게 이어지고 있다. ‘트롤스티겐(Trollstigen)’의 ‘Troll’은 북유럽 신화에 나오는 괴물로 스칸다나비아 국가에 사는 거인족 요툰의 후예라고 한다. ‘stigen’은 사다리의 노르웨이식 표현이다. 트롤스티겐(Trollstigen)은 이 둘을 합했으니 ‘괴물이 사용하는 사다리’쯤으로 생각하면 되겠다. 결과적으로 거인 트롤이 이 꼬불꼬불한 길을 사다리 삼아 산을 오르내렸다는 얘기가 되는 셈이다. 그 길을 거인이 아니라 우리가 오르고 있다. 경사는 생각보다 훨씬 더 가파른 편, 코너에 반사경은 보이지 않는다. 거기다 경사가 가팔라서인지 1/4 정도는 1차선이다. 앞을 잘 살피면서 달리다 맞은편에서 차라도 나타날 경우에는 폭이 넓은 곳에서 기다리고 있어야 한다. 그럼 가운데에서 만날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 별 수 없다. 신경을 곤두세우며 비좁은 길을 후진하다가 다소나마 길이 넓어지는 곳에서 서로 비켜가야 한다. 다른 곳이라고 해도 별 수 없다. 2차선이라고 해도 노선의 폭이 좁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큰 차량과 마주칠 경우 차를 바깥쪽으로 붙여야하는데, 그쪽이 절벽인데다 가드레일까지 어설퍼서 간이 콩알만 해진다.
▼ 이 여성분은 겁도 없는 모양이다. 절벽 아래를 촬영하겠다고 차창 쪽으로 몸을 기대기까지 한다. 그러니 겁이 많은 난 중심 잡기에 바쁠 수밖에 없다. 절벽 아래를 보려고 사람들이 몰려올 때 나라도 반대방향으로 무게중심을 옮겨 주어야 될 것 같아서이다. 여기서 하나 짚고 넘어가자. 이곳 ’요정의 길‘은 해외 인터넷에서 화재가 되었던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길‘에서 11번째로 꼽혔을 만큼 위험천만인 도로다. 그러니 겁을 좀 먹었다고 부끄러울 것까지야 뭐 있겠는가.
▼ 간을 졸여가며 오르다보면 어느덧 널따란 주차장이 나타난다. 수십 대, 아니 수백 대를 주차해도 되겠다. 주차장 한켠에는 예쁘장한 휴게소도 지어져 있다. 카페와 기념품가게가 들어있다지만 시간이 이른 탓인지 아직까지도 문을 열어놓지 않았다. 휴게소 앞에는 깔끔한 화장실도 준비되어 있다.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다는 증거일 것이다.
▼ 정상은 아직까지도 눈이 수북하게 쌓여있다. 하긴 만년설(萬年雪)이라니 일 년 내내 녹을 일은 없겠다.
▼ 전망대로 향한다. 물살이 제법 센 개울에는 현대식으로 디자인된 다리가 걸려있다. 이어서 냇가를 따라 길을 내놓았다. 하나같이 예쁘장한 외관(外觀)을 지녔다.
▼ 잠시 후 절벽 끄트머리에 걸쳐져 있는 전망대(展望臺)를 만난다. 일단은 전망대에 오르고 본다. 하지만 아무것도 보이는 게 없다. 빗줄기 따라 몰려온 안개가 짙게 끼어버린 것이다. 대신 무섭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만약 시야(視野)가 트일 경우에는 유리로 된 발아래가 허전할 수도 있겠다. 여기서 구불구불 구곡간장(九曲肝腸)을 흉내 내고 있는 도로를 내려다보는 게 장관이라 했는데 아쉽기 짝이 없는 노릇이다.
▼ 전망대 앞에서 오른편으로 길이 하나 나있다. 또 다른 전망대로 올라가는 길일 것이다. 하지만 올라가 보는 것은 사양하기로 한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게 분명한데 일부러 올라갈 필요가 없을 것 같아서이다.
▼ ‘게이랑에르’로 향한다. 올라왔던 반대방향이다. 고도(高度)를 떨어뜨리는 속도가 더뎌선지 아까와 같은 절벽은 보이지 않는다. 긴장이 풀리는 순간이다. 그렇게 얼마간 진행하다 ‘링에(Linge)’에 이르면 페리(Ferry)를 이용해서 호수를 건넌다. 버스를 통째로 실기 때문에 버스에 앉은 채로 반대편에 있는 ‘아이스달(Eidsdal)’에 이를 수가 있다.
♧ 에필로그(epilogue), 북유럽의 물가는 영국의 2배, 우리나라의 4배 정도로 높다. 특히 노르웨이는 북유럽 중에서도 물가가 높은 편이다. 2017년 1월에 발표된 ‘빅맥 지수(Big Mac index, 각국의 맥도널드 빅맥 햄버거의 현지 통화가격을 달러로 환산하여 각국의 물가 수준을 보여주는 지수)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3.68달러로 세계 25위에 올랐지만 노르웨이는 5.67달러로 세계 2위를 기록했을 정도다. 교통비, 생필품 등의 가격대가 높고 음식 값도 비싸다. 특히 술을 좋아하는 나에게 노르웨이는 지옥이나 마찬가지였다. 노르웨이는 주류 구입에 대한 규정이 엄격한 국가 중 하나다. 'Vinmonopolet(주류 전문점)'에서만 술을 구입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구입할 수 있는 시간도 제한되어 있다. 특히 슈퍼마켓에서는 도수가 낮은 맥주 등의 주류만 구입할 수 있을 따름이다. 이러한 상황이다 보니 노르웨이 여행 중에는 식당에서 주문해서 마실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 맥주 값이 내 한계점, 그러니까 500㎖ 용량의 캔 맥주 하나에 10유로까지 올라버렸다. 노르웨이에서의 첫날 저녁, 오따에서 생겼던 일이다. 앞으론 그 좋아하는 맥주까지도 마음 놓고 마실 수가 없어져 버렸다. 죽을 맛이다. 참고로 독일이나 발칸에서는 2유로면 충분했다. 비록 슈퍼마켓이긴 했지만,, 혹자는 노르웨이 출신의 화가 뭉크의 ‘절규’(The Scream)가 비싼 물가에서 비롯됐다는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펴기도 한다. 그러나 나 또한 그 주장에 고개가 끄덕여지니 어쩌란 말인가. 나 같은 애주가들에게는 즐거워야할 여행이 고역으로 변할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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