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지 : 스페인 및 포르투칼

 

여행일 : ‘15. 11. 12() - 19()

여행지 : 스페인(바로셀로나, 몬세라토, 발렌시아, 그라나다, 미하스, 론다, 세비아, 톨레도, 마드리드), 포르투칼(리스본, 까보다로까, 파티마)

 

 

여행 다섯째 날 오후 : 포르투갈, 까보 다 로카(Cabo da Roca)

 

특징 : ‘땅 끝 마을하면 우리는 먼저 전라남도 해남을 떠올릴 것이다. 우리나라의 제일 남쪽 끝이니까 말이다. 땅 끝 마을이 포르투갈에도 있다. 그 옛날 먼 바다로 나갈 수 없던 시절에는 이곳은 정말 땅의 끝이었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떨까. 유럽의 끝이라는 데는 변함이 없다. 낭만과 여유의 끝을 경험할 수 있다는 까보 다 로카(Cabo da Roca)’는 유럽 대륙의 서쪽 끝이자. 포르투갈의 땅 끝 마을이다. 대서양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는 이곳은 리스본에서 서쪽으로 약 40떨어져 있다. 특히 140m 높이의 절벽이 대서양의 푸른 파도와 어우러져 장관을 이룬다. ‘땅 끝 마을임을 알리는 돌탑이 주요 볼거리인데, 꼭대기에 커다란 십자가가 있다. 이 탑에는 포르투갈의 시인 카몽에스가 남긴 '이곳에서 육지가 끝나고 바다가 시작된다.'는 시구(詩句)가 새겨져 있다. 탑 앞에 서면 대서양의 쪽빛 바다와 시리도록 파란 하늘이 지평선에서 하나가 되며 경계를 잊어버리게 만든다.

 

 

 

리스본을 출발한 버스는 구불구불한 산길을 달린다. 멀미를 유발시키는 전형적인 산길이다. 하지만 그다지 위험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길의 아래편이 벼랑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는 은퇴 이후 여행을 계속해오면서 가슴을 졸여야만 했던 길이 하나 둘이 아니었던 게 보다 큰 원인이었지 않을까 싶다. 그렇게 1시간 반 정도를 달리면 유럽대륙이 끝나는 곳에 이르게 된다. 이베리아반도의 제일 서쪽 까보 다 로카 곶(바다 쪽으로, 부리 모양으로 뾰족하게 뻗은 육지)’ 그러니까 대서양이라는 바다가 시작되는 곳이다.

 

 

 

 

 

 

 

탈출하듯 버스에서 내리면 거센 바람이 와락 달려든다. 옷깃을 단단히 여민 후에야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넓고 완만한 초원이 펼쳐진다. 유난히도 선인장이 많아 보이는 풀밭이다. 그 선인장들이 꽃이라도 피운다면 장관을 이루겠다. 어느 글에선가 그 시기를 6월쯤이라고 했다.

 

 

 

버스에서 내리면 가장 먼전 바닷가 쪽에 우뚝 솟아 있는 십자가가 눈에 들어온다. 시원한 바닷바람이, 때로는 매우 심한 바람이 불어 올라오는 언덕 위에 바람을 등지며 우뚝 서 있는 십자가 탑은 아마도 이 바다를 나갔다가 영영 돌아오지 못한 많은 탐험가들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한 위령탑인지도 모르겠다.

 

 

 

 

 

대서양의 반대편 풍경, 바닷가라는 느낌이 들지 않을 정도로 깊은 산자락들이 눈앞에 펼쳐진다.

 

 

 

탑으로 곧장 가지 않고 왼편 바닷가 절벽 쪽으로 간다. 회색 빛 하늘과 맞닿아 있는 시퍼런 대서양 바다의 수평선이 눈에 들어온다. 둥그런 모양이다. 하지만 그보다는 험상궂은 바위절벽으로 이루어진 해안선이 눈길을 끈다.

 

 

 

벼랑 아래로 향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아마 아래까지 내려갈 수 있는 모양이다. 하지만 난 이쯤에서 만족하기로 한다. 조망이란 가까이 다가가는 것보다는 멀리서 바라보는 것이 한결 더 나음을 익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언덕배기에는 등대가 그림처럼 서있다. 1772년에 세워진 포르투갈 최초의 등대로 지금도 묵묵히 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단다. 구릉(丘陵)으로 이루어진 까보 다 로까는 나무들이라곤 보이지 않는다. 대신 온통 파란 풀밭이다. 대서양의 거센 바람 때문에 몸을 낮출 수밖에 없었던 모양이다.

 

 

 

높이가 140m쯤 된다는 벼랑의 난간에는 펜스가 쳐져있다. 누군가 우리나라의 해군사관생도가 떨어진 이후부터 쳐졌다고 했으나 믿을 일은 아니다. 그저 마음 놓고 벼랑까지 나갈 수 있게 해준 것에만 감사하기로 한다. 만일 펜스가 없었더라면 벼랑까지 다가갈 엄두도 못 냈을 테니까 말이다.

 

 

 

몽환적인 풍경보다 사람들의 발길을 끄는 것은 십자가가 돋은 커다란 기념비다. 십자가 탑에 부착된 돌 판에는 북위 3747, 동경 930이라는 좌표와 포르투갈의 민족시인 루이스 데 카몽이스(Camões, 1524~1580)’의 시구(詩句)가 적혀 있다. <여기 땅이 끝나고, 바다가 시작된다!(Aqui, onde a terra se acaba, E o mar comeca)> 어쩌면 끝이라고 체념하지 말고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라는 격려의 문구가 아닐까 싶다. 하나의 끝은 다른 하나의 시작일 테니까 말이다. 아무튼 이런 정신을 바탕으로 많은 해양 탐험가들이 배출되었을 것이다. 그 덕분에 한때 세상에서 가장 넓은 식민지들을 거느릴 수 있었을 테고 말이다. 참고로 루이스 데 까몽이스를 포르트갈의 민족 시인으로 만들어 준 것은 우스 루지아다스(Os Lusiadas)’라는 대 서사시이다. 까몽이스는 이 서사시에서 포르투갈의 정복과 항해사들의 영광, 그리고 지난 왕들의 업적, 즉 다시 말하자면, 포르투갈의 역사를 방대한 서사시로 기록했다.

 

 

 

 

 

 

 

 

 

뭍의 끝에 선다. 바람이 와락 달려든다. 포르투갈 사람들의 억센 억양만큼이나 거센 바람이다. 아찔한 절벽 아래에는 바위에 바다가 부서지고 있다. 그리고 그 너머로 대서양이 넘실대면서 쪽빛 바다와 시리도록 파란 하늘이 지평선에서 하나가 되어 경계를 잊어버리게 만든다.

 

 

 

 

해안을 따라 난 산책로에서 고개를 숙이면 까마득한 절벽 아래로 파도가 쉴 새 없이 몰아치며 포말을 만든다. 파란 바다와 절벽에 부딪치는 하얀 파도, 그리고 바닷바람! 이것이 전부이다. ‘까보 다 로까에서 특별한 볼거리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 그저 육지의 끝이라는 감상적인 생각과 여기서부터 바다가 시작된다는 당연하면서도 새로운 이미지로 만족해야 한다. 다만 그 정도로는 마음에 안찬다면 거센 파도에 시달리며 만들어진 해안절벽의 기괴한 아름다움으로 채워볼 일이다.

 

  

 

 

 

절벽 아래에서는 쪽빛 바다가 하얗게 부서지는데, 눈을 조금 더 멀리 하면 어디까지가 바다이고 어디서부터가 하늘인지를 알 수 없는 파란 수평선이다. 아마도 거기서부터 대서양의 거센 바람이 우리를 맞이하러 달려 온 모양이다.

 

 

 

한 바퀴를 돌아 다시 등대로 되돌아오면서 까보 다 로카(Cabo da Roca)’ 투어는 끝을 맺는다. 한가하게 걸어도 1시간이면 충분한 거리이다. 조금 속도를 빨리해서 자투리 시간이라도 남았다면 등대 옆의 흰색 단층 건물로 들어가 볼 것을 권한다. 유럽의 서쪽 끝에 왔다는 증명서를 떼어 주고 있으니 기념으로 한번쯤 받아볼 겸해서 말이다. 물론 유료(有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