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봉(兄弟峰, 531.7m)-신산(神山, 457m)
여행일 : ‘16. 5. 29(일)
소재지 : 경북 구미시 선산읍과 옥성면의 경계
산행코스 : 이문삼거리→기차바위→형제봉→헬기장→갈등고개→부처바위→신산→천주교공원묘지→S-Oil 주유소(산행시간 : 3시간 50분)
함께한 사람들 : 청마산악회
특징 : 오늘 오른 산들은 모두 전형적인 육산(肉山)이다. 그렇다면 산행 중에 만나게 되는 기차바위나 부처바위에 대해 궁금해 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이유는 의외로 간단하다. 바위다운 바위 하나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바위가 귀하다보니 다른 산에서라면 족보도 못 내밀 바위들이 명품바위로 등록되어 있다고 보면 된다. 그래서 옛 사람들이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펴라’고 했나보다. 그건 그렇고 두 산은 이웃을 하고 있으면서도 엄청나게 다른 대접을 받고 있다. 형제봉은 도심(都心)속 공원(公園)이 부럽지 않을 정도로 잘 가꾸어져 있는 반면에 신산은 완전한 푸대접이다. 아니 정상석이나 이정표는 물론 사람들의 발길까지 뚝 끊겨 있는 것이 대접이란 단어조차도 붙이기 어색한 정도이다. 때문에 신산은 걷기조차 힘들 정도로 산길이 거칠다. 종주를 하는 사람들이나 봉(峰) 따먹기를 하는 사람들이 아니라면 구태여 신산까지 찾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러느니 부처바위에서 하산을 하다가 영봉정(迎鳳亭)과 비봉산(122.2m)을 둘러보는 게 훨씬 더 낫지 않을까 싶다.
▼ 산행들머리는 이문삼거리(구미시 선산읍 이문리)
중부내륙고속도로 선산 I.C에서 내려와 68번 지방도를 타고 선산읍으로 들어온다. 읍내로 들어서서 처음으로 만나게 되는 이문삼거리(선산읍 이문리)가 오늘 산행의 들머리이다.
▼ ‘가야산추어탕’과 ‘예스공인중계사사무소 사이로 난 골목으로 들어가면서 산행이 시작된다. 이곳 외에도 선산중학교나 선산고등학교, 선산보건소, 선산순복음교회 등 여러 곳에 들머리가 있으니 편한 곳을 골라잡으면 될 일이다.
▼ 골목은 금방 끝이 난다. 그리고 마지막 민가(民家) 앞에서 왼편으로 산길이 열린다. 밭두렁길이라고 보는 게 옳을 것 같다.
▼ 오른편에 선산중학교 건물이 보인다. 또 다른 들머리가 되는 곳이다. 그 오른편에 보이는 아파트는 주공아파트일 것이다.
▼ 산길은 한마디로 곱다. 보드랍기 짝이 없는 흙길은 넓은데다 경사까지도 완만하다. 그 길은 짙은 소나무 숲속을 따른다. 바람결 따라 흘러온 짙은 솔내음이 코끝을 간질인다. 마침 주어진 시간까지 여유롭다. 모처럼 ‘느림보의 미학’을 추구해 볼 기회다. 걷는 속도를 최대한으로 떨어뜨린다. 이어서 가슴을 활짝 연다. 그리고 가능한 크게 숨을 들이마신다. 청량한 기운이 실핏줄을 따라 온몸을 누빈다. 심신(心身)은 한없이 상쾌해진다. 이런 걸 두고 힐링(healing)산행이라 할 것이다.
▼ 6분 후 갈림길(이정표 : 장원봉↑ 0.3Km, 형제봉 3.7Km/ 이문리(서당마을)→ 0.4Km/ 이문삼거리↓ 0.4Km)을 만난다. 오른편은 또 다른 들머리에서 올라오는 길이다.
▼ 10분 후 체육공원에 이른다. 이곳에 안내판 하나가 세워져 있다. 요 아래에 있는 서당마을의 선비들이 도성(都城)에 있는 과거장으로 향할 때 넘어가던 길목이었던 뒷산 봉우리를 장원봉이라고 한단다. 그리고 고려 우왕 14년부터 조선 정조 14년까지 과거에 급제한 14명의 명단을 적어 놓았다. 안내판의 상단에 적힌 ‘장원방’이란 지명은 서당마을에 있었던 글방의 이름이 아닐까 싶다.
▼ 장원봉을 지나서도 산길은 변함이 없다. 짙은 소나무 숲속으로 난 길은 여전히 폭신폭신하고 경사(傾斜) 또한 변함없이 평평하다.
▼ 그렇게 10분쯤 더 걸으면 왼편 산자락에 웅크리고 있는 커다란 바위 하나가 나타난다. 기차바위라는데, 그 형상이 기차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하지만 내 눈에는 강아지의 머리에 더 가까운 것 같다. 복날이 가까워지니 헛것이 보인 거나 아닌지 모르겠다.
▼ 기차바위를 지났다싶으면 정자(亭子)가 나타난다. 하지만 등산로에서 약간 비켜나 있으니 구태여 올라볼 필요는 없다. 조망이 일절 트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저 쉬었다 가라는 의미로 지어놓은 모양이다.
▼ 이후부터 산길은 조금씩 가팔라져 간다. 하지만 힘들다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는다. 다른 산들의 오르막길에 비하면 평지나 다름없기 때문일 것이다.
▼ 그렇게 10분쯤 더 걸으면 커다란 바위 하나를 만나게 된다. 그냥 지나치지 말고 꼭 바위 위로 올라가 볼 것을 권한다. 오늘 산행에서 처음으로 시야(視野)가 트이기 때문이다. 선산I.C 근처의 들녘과 함께 월류산 등 인근의 나지막한 산들이 한눈에 잘 들어온다.
▼ 바위에서 내려와 또 다시 산행을 이어간다. 오솔길처럼 좁아진 산길이 나름대로 풍치가 있어 보인다. 서둘지 않고 쉬엄쉬엄 오른다. 함께 걷던 김선배에게는 그마저도 힘들었던 모양이다. 막걸리로 목이라도 축이고 가자는 것이다. 망설일 것 없이 퍼질러 앉는다. 반쯤 얼린 막걸리는 그야말로 꿀맛이었다. 산에서나 느낄 수 있는 참맛이 아닐까 싶다.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이 막걸리를 비우고 자리를 턴다. 한 병을 갖고 유사장까지 낀 세 명이서 나누다보니 금방 동이 나버렸던 탓이다.
▼ 잠시 후 돌탑이 있는 봉우리 위에 올라선다. 전망대에서 15분 남짓 되는 지점이다. 누군가는 이곳을 일러 서부재라고 했다. 하지만 나뉘는 길이 보이지 않는 걸로 보아 옳지 않은 것 같다.
▼ 돌탑봉에서 안부로 내려선다. 지도(地圖)에 서부재로 표기된 지점이다. 하지만 오른편 사면(斜面)이 벼랑에 가까울 정도로 가파르다. 길이 날 것 같지 않다는 얘기이다. 아무래도 지도가 잘 못된 모양이다. 이후로도 능선을 가로지르는 고갯길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 잠시 후 또 다른 돌탑봉에 올라선다. 그런데 이번의 돌탑은 거의 예술품 수준이다. 상부에다 돌 몇 개를 신기(神技)에 가깝게 쌓아 놓았다. 아슬아슬한 것이 바람만 조금 불어도 금방 쓰러져 버릴 것 같다. 혹자는 이곳을 비봉산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비봉산은 따로 있다. 신산보건소 근처에 있는 122.2m봉이다. 형제봉 등 선산의 산들을 펼쳐 놓았을 때 봉황의 머리 부분이 122.2m봉이라니 비봉산의 명찰은 그곳에다 달아 놓아야 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을까 싶다.
▼ 다음 봉우리에서 산길은 오른편으로 휘어져 내려간다. 그리고 또 다시 위로 향한다. 산길은 여전히 고운 흙길이다. 거기다 주변은 소나무들 천지, 짙은 솔내음이 코끝을 간지른다. 저 내음 속에는 그렇게나 몸에 좋다는 피톤치드(Phytoncide)가 가득할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 산행은 힐링(healing)산행이 분명하다.
▼ 잠시 후 산불감시조소가 세워져 있는 언덕에 올라선다. 두 번째 돌탑봉에서 15분 만이다. 이곳은 조망이 좋은 곳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오늘은 예외이다. 뿌옇게 낀 연무(煙霧)로 인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 잠시 후 형제봉 정상에 올라선다. 산행을 시작한지 1시간20분 만이다. 제법 너른 공터로 이루어진 정상에는 커다란 정상표지석과 119의 ‘구호지점 표시목’, 그리고 ‘등산로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일부 사람들은 이곳을 형제봉 중 형봉(兄峰)이라 부른다. 얼마 전 작고(作故)하신 고(故) 한현우선생이 대표적인데, 그들은 그 이유를 형제봉(兄弟峰)이란 이름에서 찾는다. 이곳과 잠시 후에 오르게 될 헬기장이 있는 봉우리(531m) 등, 두 개의 봉우리로 이루러졌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여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높낮이에 따라 형(兄)과 동생(弟)으로 나눈다. 어떻게 보면 맞는 말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러려면 두 산을 아우르는 이름이 하나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그 하나를 비봉산(飛鳳山)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극히 일부에 불과할 따름이다.
▼ 정상에서의 조망(眺望)은 괜찮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주변의 나무들로 인해 한 바퀴 다 뚫리지는 않지만 청화산과 냉산까지 시야에 들어온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조망은 운이 좋을 때나 가능한 모양이다. 오늘은 비가 오지 않는 데도 불구하고 사위가 희뿌옇기 때문이다. 발아래에서 ‘S-Line'으로 펼쳐지고 있어야 할 낙동강과 드넓은 선산들녘까지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러니 더 넓은 조망을 바란다는 것이 어쩌면 언감생심(焉敢生心)일 것이다.
▼ 신산으로 향한다. 가파른 내리막길이 꽤 오랫동안 계속된다. 중간에 작은 오르내림도 끼어있음은 물론이다. 형제봉을 지나면서부터 산길은 기양지맥(岐陽枝脈)을 따른다. 기양지맥이란 백두대간(白頭大幹)의 국수봉(794.2m) 남쪽 600m지점인 734.2m봉에서 동쪽으로 분기하여 백운산(631m)과 기양산(705m), 수선산(683m), 형제봉(532m), 신산(457m) 등을 일구어 낸 후, 감천(甘川)이 낙동강에 합수하는 구미시 서원마을(선산읍 원리)에서 그 맥을 다하는 45.8km의 산줄기를 말한다. 감천의 북쪽 울타리가 되며 북으로는 병성천을 흘려보낸다.
▼ 15분 후 안부사거리에 내려서게 되고, 이어서 맞은편 능선을 7분 정도 치고 오르면 널따란 헬기장이 나온다. 일부 사람들이 형제봉 중 아우(弟)봉이라 주장하는 봉우리이다. 깔끔하게 정비되어 있는 것이 아직도 헬기장으로 사용되고 있는 모양이다.
▼ 헬기장 근처에서 왼편으로 길(이정표 : 갈등고개↑/ 솔바람길(마당숲)← 1.3Km/ 헬기장↓ 20m, 형제봉 0.8Km)이 하나 나뉜다. 신경 쓸 필요 없이 갈등고개로 향한다.
▼ 다시 내리막길이 시작된다. 이곳도 역시 상당히 가파르게 떨어진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시 완만하게 변한다. 그리고 보드라운 흙길이 계속된다.
▼ 헬기장을 내려선지 12분 만에 임도(이정표 : 부처바위↖/ 옛길 합류↗ 80m/ 선산복합체육시설→ 3,3Km)를 만난다. 오른편 임도를 따를 경우 선산시내로 연결된다. 임도를 가로지르면 침목(枕木)으로 만든 계단이 나타난다. 부처바위는 계단을 밟고 위로 올라야 한다.
▼ 1~2분 후, 이번에는 갈등고개이다. 이정표(부처바위 1.5km, 휴양림(옛오솔길) 1.2km/ 뒷골(체육공원) 1.6km/ 임도 0.1Km, 형제봉 1.1Km)와 119의 구호지점표시목이 세워져있다.
▼ 갈등고개에는 이정표가 하나 더 세워져 있다. ‘숲길 따라 도보여행 길’의 이정표이다. 구미시에서 조성한 일종의 ‘둘레길’이 아닐까 싶다. 아니면 경상북도 차원에서 만들었을 테고 말이다. 하여간 이 도보여행길 중 ‘구미 나드리길’은 낙동강 물줄기 따라서 서울로 향하는 영남의 길, 즉 신행(新行, 신부가 혼례식을 마치고 신방을 치른 뒤 신랑집으로 가는 의식)이나 과거를 보러 한양에 갈 때 걸었던 옛길이다. 보존상태가 양호하다니 언제 한 번 시간을 내어 걸어볼 일이다. 느릿하게 길을 따라 걸으며 그 시절 그들이 느꼈을 것들을 느껴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
▼ 산길은 한마디로 곱다. 보드랍기 짝이 없는 흙길은 아예 폭신폭신할 정도이고 경사 또한 평지나 다름없다. 그래서일까 MTB(mountain bike)를 타는 사람들도 보인다. 비켜줬더니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지나간다. 예의가 바른 것 같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을 것 같다. 방금 전 등산객의 안전과 숲길 보호를 위해 자전거나 오토바이의 운행을 자제해 달라는 구미시청의 현수막을 보았기 때문이다. 예의 이전에 하지 말아야할 것은 하지 않는 것이 도리일 것이다.
▼ 갈등고개에서 9분쯤 더 걸었다싶은데 곤충을 닮은 바위가 나타난다. 부처바위란다. 바위의 옆에다 부처바위의 내력을 적은 안내판과 119의 ‘구호지점표시목’ 등 기본적인 시설 외에도 운동기구와 평상, 그리고 충혼탑에서 이곳까지 걸었을 때 소요되는 칼로리의 양을 몸무게별로 구분해서 적은 안내판을 세워 놓았다. 쉼터의 기능을 겸하도록 한 것이다. 그만큼 이곳 선산 사람들이 자주 찾는 장소라는 증거일 것이다.
▼ 부처바위는 바위의 생김새가 부처가 누워있는 형상과 흡사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다른 한편으론 갈라져 있는 바위들이 붙어있다고 해서 ‘붙여진(사투리로 ’부처진‘)바위’라는 설(說)도 있다. 두 번째 설이라면 몰라도 첫 번째 설은 옳지 않은 것 같다. 옆으로도 모자라 바위의 위까지 올라가봤지만 어떠한 각도에서도 부처의 형상은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 바위 위에서의 조망은 괜찮은 편이다. 방금 지나온 형제봉은 물론이고, 북쪽과 남쪽으로 시야가 열린다. 지금은 비록 연무(煙霧)로 인해 흐릿할 뿐이지만 날씨가 좋을 경우 상주방면의 낙동강과 금오산이 눈에 들어올 것 같다.
▼ 다시 산행을 이어간다. 부처바위 근처 갈림길에서는 왼편이다. 잠시 후 무명봉과 운동기구 및 의자가 설치되어 있는 쉼터봉(437m봉)이 연이어 나타난다. 둘 모두 갈림길이 나뉘지만 망설일 필요 없이 왼편방향이다. 신산으로 가기 위해서이다. 하지만 영봉정을 거쳐 비봉산으로 가고 싶다면 이곳에서 오른편으로 진행해야만 한다.
▼ 437m봉을 지나면서 산길은 극도로 나빠진다. 쓰러져 있는 나무들이 그대로 방치되어 있는가 하면 울창하게 우거진 잡목(雜木)들이 등산로까지 점령해버렸다. 악전고투를 치러야만 진행이 가능한 구간이다. 1Km가 채 되지 않는 거리를 30분이나 걸려서야 이를 수 있었던 이유일 것이다. 그렇게 두어 곳의 안부를 오르내리다보면 드디어 신산의 정상에 올라서게 된다. 형제봉을 출발한지 1시간30분 만이다.
▼ 신산은 산의 정상이라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는다. 그저 능선을 따라 난 길의 한 부분으로 보일 따름이다. 정상표지석을 세우지 않은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그 흔한 이정표까지도 보이지 않는다. 그저 ‘정상표시 코팅지(coating)’가 이들을 대신하고 있을 따름이다. 가끔 함께 산행을 이어가고 있는 ‘서래야 박건석’ 선생께서 매달아 놓은 것인데 고마운 일이다. 가끔가다가 엉뚱한 곳에다 표지판을 매단다고 해서 다른 산꾼들에게 원망도 많이 듣지만 말이다.
▼ 산길은 신산에서 두 갈래로 나뉜다. 직진, 즉 왼편으로 난 길은 선산읍과 옥성면의 경계를 가르는 능선길이다. 오른편으로 크게 방향을 틀어 하산을 시작한다. 신산을 지나면서 산길은 더욱 희미해진다. 걷기조차 힘들 정도로 잡목들이 능선을 가득 메우고 있다. 자칫 길을 찾느라 헤맬 수도 있는 구간이다. 하지만 그럴 필요까지는 없지 않나 싶다. 능선만 따른다고 생각하고 진행하다보면 곳곳에서 길의 흔적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 능선을 따르다보면 철조망으로 경계를 구분해 놓은 곳도 보인다. 약초(藥草)를 재배하고 있으니 들어오지 말란다. ‘감시용 카메라’까지 설치했다는 걸로 보아 철조망으로도 부족했던 모양이다. 그리고 무단출입을 할 경우에는 책임을 묻겠다며 엄포를 놓고 있다. 저리도 표현이 사나운 걸 보면, 남이 애써 기른 작물(作物)을 넘보는 사람들이 그만큼 많다는 얘기일 것이다. 이제 그만 우리네 주변에서 사라져야 할 세태(世態)이다.
▼ 6~7분쯤 걸었을까 작은 봉우리 하나가 나타난다. 435.3m봉이다. 일부 지도에는 이곳을 신산(神山)이라고 표기하고 있다. 하지만 또 다른 이들은 보현산(普賢山)이라 부르기도 한다. 하여간 이곳에는 동강난 삼각점이 하나 박혀있다고 한다. 하지만 난 그런 사연이 있는 줄도 모르고 통과해 버렸다. 삼각점도 보지 못했음은 물론이다. 리본을 찾아가느라 땅바닥을 볼 겨를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니 사전준비가 부족했던 게 더 큰 이유가 아닐까 싶다. 덕분에 난 오늘도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을 곱씹어야 하는 하루가 되어버렸다.
▼ 왼편 나뭇가지 사이로 시야(視野)가 열린다. 어렴풋이나마 낙동강이 나타난다. 그 뒤에 버티고 있는 산들은 만경산과 청화산, 그리고 냉산일 것이다.
▼ 잠시 후 이번에는 전망 좋은 바위를 만난다. 형제봉과 금오산이 잘 조망되는 곳이다. 형제봉 산줄기의 끄트머리에는 선산시가지가 조용히 웅크리고 있다.
▼ 두어 번의 갈림길 흔적들을 만나지만 개의치 않고 지나친다. 능선을 따른다는 생각으로 진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이번에는 아주 또렷한 갈림길을 만난다. 신산 정상에서 출발한지 25분 만이다. 왼편 방향에 ‘종주산행’이라고 적힌 리본이 매달려 있는 걸로 보아, 이곳에서 기양지맥과 헤어지는 모양이다. 길의 흔적도 역시 왼편이 훨씬 더 또렷하다.
▼ 오른편으로 향한다. 가파른 내리막길이다. 하지만 그 가파름에 신경 쓸 여유는 없다. 길의 흔적이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다. 이젠 개척 산행으로 진행할 수밖에 없다. 방향을 가늠해가며 아래로 향한다. 능선은 거칠기 짝이 없다. 싸대기 몇 대는 맞을 각오를 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10분 정도를 내려서면 묘(墓) 몇 기(基)가 보인다. 다른 사람들이 천주교공원묘지라고 하던 곳인 모양이다.
▼ 묘역을 지나면서 산길은 좋아진다. 제법 너른 데다 경사까지 완만한 것이 임도로 봐도 되겠다. 편안한 마음으로 5분 정도를 더 내려오면 민가(民家)가 나온다. 이쯤에서 고생이 끝났다고 보면 된다.
▼ 산행날머리는 S-Oil 주유소(선산읍 신기리)
이후부터는 도로를 따른다. 겨우 승용차나 다닐 수 있을 정도의 넓이지만 깔끔하게 아스팔트 포장이 되어 있는 길이다. 중간에 거대한 편백나무들을 만난다. 나무들이 울타리를 친 공터의 한가운데에 ‘캠핑 트레일러(Camping Trailer=Caraban)’ 한 대가 놓여 있다. 유원지로라도 조성하려는 모양이다. 아직은 시작단계이지만 말이다. 그렇게 16분 정도를 걸으면 저만큼에 ‘S-Oil 주유소’와 함께 신축중인 아파트단지가 나타나면서 오늘 산행이 종료된다. 오늘 산행은 총 4시간 40분이 걸렸다. 느긋하게 즐겼던 간식시간을 감안한다면 3시간 50분이 걸린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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