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데산(646m)
산행일 : ‘16. 7. 9(토)
소재지 : 경북 포항시 북구 죽장면과 영덕군 달산면·남정면의 경계
산행코스 : 옥계유원지→옥녀교→바데산→곰바위→안부→비룡폭포→호박소→경방골→신교→옥계유원지→팔각산장(산행시간 : 4시간50분)
함께한 사람들 : 안전산악회
특징 : 바데산은 낯선 이름이다. 웬만큼 산에 이력이 붙은 사람들이라 해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이는 산이 700m에도 못 미칠 정도로 나지막한데다가 생김새 또한 전형적인 육산(肉山)인 것이 그 원인이지 않을까 싶다. 보잘 것 없는 산세(山勢)에다 볼거리까지 일절 없기 때문이다. 거기다 바로 옆에 위치하고 있는 주왕산과 내연산, 팔각산, 동대산 등의 유명세에 가려버린 것도 이유라면 이유일 것이고 말이다. 하지만 막상 산에 들고 나면 그런 생각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사라져 버린다. 산과 계곡이 어우러지는 빼어난 풍경이 비경(秘境)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가끔가다 나타나는 바위에 오르면 저 멀리 동해바다가 색다른 풍경으로 나타나고, 특히 하산 길에 만나게 되는 경방골의 비경은 전국의 어느 산들에 견주어도 뒤질 게 결코 없다. 아니 오히려 더 뛰어나다고 봐야 할 것이다. 울퉁불퉁한 근육질의 바위 협곡(峽谷)들이 만들어내는 수많은 폭포와 담(潭), 그리고 소(沼)들은 그 하나하나가 비경 그 자체이다. 한마디로 무릉도원(武陵桃源)이 따로 없다. 한번쯤은 꼭 들러봐야 할 산이라는 얘기이다.
▼ 산행들머리는 옥계유원지(영덕군 달산면 옥계리)
중앙고속도로 서안동 I.C에서 내려와 34번 국도를 타고 영덕으로 향한다. 이때 안동시내를 통과하면서 35번 국도를 탈 경우 청송방면으로 가버릴 수도 있으니 주의한다. 신양삼거리(영덕군 지품면 신양리)에서 우회전하여 69번 지방도로 옮겨 들어오다 대지삼거리(달산면 대지리)에서 좌회전하면 잠시 후 대서천을 가로지르는 흥기교(橋 : 달산면 용평면 437)를 만난다. 다리를 건너자마자 나타나는 삼거리에서 우회전하여 930번 지방도로 옮기면 얼마 지나지 않아 옥계유원지에 이르게 된다. 오늘 산행의 들머리이다.
▼ 잠수교(潛水橋)를 건너면서 산행이 시작된다. 대서천(川), 쉽게 말해 옥계계곡을 가로지르는 다리이다. 비가 올 경우 물에 잠긴다고 해서 잠수교라 불린다. 참고로 ‘옥계(玉溪)’는 옥같이 맑고 투명한 물이 흐르는 계곡이란 뜻이다. 14세기 말인 정종 연간에 노(盧)씨라는 선비가 마을을 형성했다고 전한다. 그는 이곳의 자연에 반해 자신의 호를 옥계라 했고, 지명 또한 옥계가 되었다.
▼ 옥녀교로 연결되는 도로(죽장로)를 따른다. 오가는 차량이 조심해서 비켜 지나다녀야 할 정도의 도로이다. 옥계계곡을 오른쪽 옆구리에 끼고 들어간다. 옥같이 맑다는 물가에는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많은 피서 인파들이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맞다. 오늘 아침 일기예보에 ‘폭염경보’가 내렸던 곳 중의 하나가 바로 이 근처였었다.
▼ 15분쯤 걸었을까 진행방향 오른편에 멋들어지게 생긴 다리 하나가 나타난다. 옥녀교란다. 옥계계곡과 연관을 시켜 지어낸 이름인 모양이다. 하지만 내 머릿속에서는 ‘옹녀’라는 단어로만 맴돌고 있다. 다리의 모양새가 옹녀의 다리처럼 매끈하게 생겨서 그런 것이나 아닐까 싶다. 그것도 아니라면 내 성정이 본디부터 음탕해서였을 테고 말이다.
▼ 산길은 옥녀교와 만나는 지점에서 왼편으로 열린다. 들머리에 이정표(바데산 정상 ↗ 2.5Km/ 동대산 정상↗ 7.8Km/ 동대산 입구↓ 300m)가 세워져 있으나 길 찾기에 주의가 필요한 지점이다. 말뚝모양으로 생긴 이정표가 눈에 잘 띄지도 않을 뿐더러, 웃자란 잡초들 때문에 길머리 또한 뚜렷하지가 않기 때문이다.
▼ 웃자란 잡초들 때문에 산길은 잘 나타나지 않는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다. 그 거리가 짧을뿐더러, 길가 나뭇가지에 묶여 있는 산악회의 리본들을 찾아가며 진행하면 된다.
▼ 잠시 후 통나무계단이 나타나면서 산길은 또렷해진다. 그리고 제법 길게 이어진다.
▼ 그렇게 15분 정도를 올라서면 작은 능선(이정표 : 바데산 정상← 2.2Km/ 바데산 입구↓ 0.3Km)을 만나면서 산길은 왼편으로 크게 방향을 튼다. 만나는 지점에 무덤이 있으니 기점으로 삼아도 좋을 듯 싶다.
▼ 산길은 능선을 만나면서 가팔라진다. 그리고 그 도(度)를 더해가더니 끝내는 버틸 수 없을 정도로 가팔라져 버린다. 오늘은 ‘폭염경보’까지 내려졌을 정도로 무더위가 기승을 부린다. 게다가 바람 한 점 불어오지 않는다. ‘지옥의 행군’이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닐 듯 싶다. 길바닥에 널브러져 쉬고 있는 등산객들이 심심찮게 눈에 띄는 이유일 것이다.
▼ 조망도 트이지 않는다. 가끔 나뭇가지 사이로 건너편에 있는 동대산이 나타났다 사라질 뿐이다.
▼ 또 다시 가파른 오르막길을 오른다. 그렇게 45분 정도를 오르면 전망이 트이는 봉우리(이정표 : 바데산 정상 1.2Km/ 바데산 입구 1.3Km) 위에 올라서게 된다. 건너편에 있는 팔각산은 물론이고, 그 뒤에 있는 주왕산까지도 한눈에 잘 들어온다.
▼ 전망봉을 지나면서 산길은 그 사나웠던 기세를 많이 누그러뜨린다. 그리고 작은 오르내림을 반복하면서 서서히 고도(高度)를 높여간다.
▼ 그렇게 10분 정도를 진행하면 등산로에서 왼쪽으로 약간 비껴난 곳에 있는 전망바위를 만난다. 바위의 한쪽이 수백 길의 낭떠러지로 이루어져 있어 위험스럽기 짝이 없다. 하지만 일단 올라가고 볼 일이다. 오늘 산행에서 가장 뛰어난 조망을 보여주는 곳이기 때문이다.
▼ 전망바위는 바윗덩어리 세 개가 나란히 붙은 형상이다. 바위 위에서의 조망은 일품이다. 나란히 서있는 팔각산의 봉우리들이 한눈에 쏙 들어온다. 팔각산 뒤에는 낙동정맥의 주능선을 배경으로 깔고 있는 주왕산이 또렷하다.
▼ 전망바위에서 내려서는 길은 가파른 내리막길이다. 하지만 로프가 매어져 있어 위험하지는 않다. 안부로 내려선 산길은 다시 오르막으로 변한다. 그리고 잠깐이지만 너덜길이 나타나기도 한다. 그렇게 25분 정도를 진행하면 드디어 바데산 정상이다. 산행을 시작한지 벌써 두 시간이나 지났다. 거리에 비해 시간이 많이 걸린 셈이다. 무더위로 인해 속도를 낼 수가 없었던 탓일 게다.
▼ 예닐곱 평 남짓한 공터로 이루어진 정상은 사방이 숲으로 둘러싸여 있다. 때문에 조망은 트이지 않는다. 정상에는 자그마한 정상표지석과 삼각점(영덕 25), 그리고 이정표(동대산 정상, 동대산 입구 9.8Km/ 바대산 입구 2.5Km)가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리고 또 하나, ‘산행 삼행’이라는 안내판도 보인다. ‘가지고 가는 것은 도시락, 못가지고 가는 것은 담뱃불, 가지고 오는 것은 쓰레기’라고 적혀있는데 공감이 가는 내용이다.
▼ 하산을 시작한다. 이정표가 가리키고 있는 동대산 방향이다. 하산 길은 너덜길로 시작된다. 그리고 잠시 후 제주도에서나 볼 법한 풍경이 나타난다. 무덤의 담을 돌로 둘러친 것이다. 봉분도 역시 돌투성이다. 제주도의 무덤이 돌이 많은 특성에서 나타났던 것처럼, 이곳도 역시 돌이 많다보니 저런 모습으로 만들어졌나 보다.
▼ 계속해서 너덜길이다. 제법 규모가 큰 바위도 보인다. 생김새도 괜찮은 편이다.
▼ 하산을 시작한지 10분 정도가 지나면 오른편으로 시야(視野)가 열리는 전망바위를 만난다. 건너편에 동대산의 능선이 또렷하고, 수직의 발아래에는 경방골이 내려다보인다.
▼ 조망을 즐기다가 다시 하산 길을 재촉한다. 가파른 내리막길을 길게 내려선다. 그러다가 산길은 가팔랐던 경사를 한꺼번에 뚝 떨어뜨려 버린다. 그리고 갈림길 하나를 만들어 낸다. 동대산으로 가려면 계속해서 능선을 타면 된다. 하지만 이쯤에서 산을 내려가고 싶다면 오른편으로 방향을 잡아야 한다. 비룡폭포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 계속해서 능선을 탄다. 조망이 일품이라는 곰바위에 올라보기 위해서다. 산길은 작은 오르내림을 두어 번 한 뒤에야 독바위에다 올려놓는다.
▼ 그렇게 20분 정도를 걸으면 커다란 바위가 앞을 가로막는다. 곰바위이다. 학성바위 또는 쌍바위로도 불리니 참조한다. 곰바위의 상부는 바위를 왼편에 끼고 돌아 오르면 된다.
▼ 바위에 오르면 일망무제(一望無題)의 조망이 펼쳐진다. 영덕풍력발전단지와 영덕 앞바다가 아스라이 시야에 들어온다. 지나온 바데산과 진행방향에 있는 동대산은 보너스로 쳐도 될 듯 싶다.
▼ 5분 후 십자로 안부(이정표 : 비룡폭포→ 1.4Km/ 동대산 정상↑ 3.4Km/ 사암리 회관← 2.3Km/ 바데산 정상 1.8Km)에 이른다. 다음 행선지인 비룡폭포로 가려면 오른편으로 내려서야 한다. 계속해서 능선을 탈 경우 동대산으로 가게 되니 주의한다.
▼ 능선을 벗어난 산길은 급할 것이 없다는 듯이 서서히 고도(高度)를 낮춘다. 이어서 6분 후에는 경방골에 내려선다. 상류인데도 불구하고 물의 양이 제법 많은 골짜기다. 계곡에 내려선 집사람이 세수부터 하는 걸 보면 날씨가 덥기는 더운가보다.
▼ 하지만 산길은 개울을 지나자마자 또 다시 산자락으로 들어붙는다. 그리고 산비탈을 따라 길게 이어진다. 개울가로 길을 낼 수 없을 정도로 골짜기가 험했던 모양이다.
▼ 10분쯤 후 또 다시 계곡에 내려선다. 그리고 계곡의 좌우(左右)를 오가면서 내려간다. 장마 때 물난리라도 치루고 나면 길의 흔적을 찾기가 만만찮을 구간이다. 하지만 계곡을 벗어나지 않는 다는 점만 염두에 둔다면 큰 어려움이 없이 진행할 수 있을 것이다. 거기다 군데군데 매달려 있는 리본(ribbon)을 참고한다면 금상첨화(錦上添花)일 테고 말이다.
▼ 계곡을 가로질러가며 10분 남짓 더 걸었을까 ‘추락주의’라는 경고판이 나타난다. 산길은 바위 협곡(峽谷)의 왼편 벼랑에 걸치듯이 나있다. 자칫 미끄러지기라도 할 경우에는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위험한 코스이다. 그래서 경고판까지 세워 주의를 촉구하고 있는 모양이다.
▼ 그나마 다행인 점은 안전로프를 매어 놓았다는 것이다. 그것도 제법 굵다. 그리고 로프가 움직이지 않도록 촘촘하게 고정을 시켜 놓았다. 방심하지만 않는다면 큰 어려움 없이 내려설 수 있을 것이다.
▼ 물 떨어지는 소리가 거세지는가 싶더니 이내 안내판 하나가 나타난다. ‘비룡폭포’란다. 비룡폭포란 그 생김새가 흡사 용(龍)이 여의주를 물고 하늘로 날아오르는 것처럼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란다. 안내판 앞에 서면 이단(二段) 삼단으로 연결되는 비룡폭포가 눈앞에 펼쳐진다. 설악산에 있는 비룡폭포의 웅장함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바위 절벽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분위기만은 결코 뒤지지 않는다. 소나무와 바위가 어우러지면서 멋진 풍경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흡사 잘 그린 한 폭의 산수화를 보는 듯하다.
▼ 계곡으로 내려서서 이번에는 폭포와 대면(對面)한다.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떨어지는 물줄기가 제법 거세다. 폭포의 아래는 어른의 키를 약간 넘을 정도로 깊은 소(沼), 옷을 벗을 겨를도 없이 물속으로 뛰어들고 본다. 무더위에 지친 육신이 더 이상의 버팀을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잠수도 해보고, 폭포에 낙차 큰 물줄기로 안마도 받아본다. 그러기를 20여분, 천국(天國)이 따로 없다. '별유천지비인간(別有天地非人間)‘, 즉 ’속세에 물든 인간 세계와는 전혀 다른 이상향(理想鄕)‘이란 이런 걸 두고 말하는 게 아닐까 싶다.
▼ 폭포 아래에서 길이 둘(이정표 : 동대산 입구↑ 2Km/ 곰바위↗ 0.7Km/ 사암↓ 1.4Km)로 나뉜다. 아까 곰바위 근처에서 나뉘었던 길이 이곳에서 다시 합쳐지는 모양이다. 동대산 입구 방향으로 내려선다. 물길을 따라 가지런히 걷다가 왼쪽으로 계곡을 건너니 쉬어갈 수 있도록 정자(이정표 : 동대산 입구↑ 1.7Km/ 동대산← 2.8㎞/ 비룡폭포↓ 0.4Km)를 세워두었다. 왼편에 보이는 ‘물침이골’ 골짜기를 따라 길이 나있다. 아까 십자안부에서 동대산으로 향했을 경우 이곳으로 내려오게 된다.
▼ 동대산에서 시작되는 물침이골의 물줄기와 합쳐진 경방골은 더욱 더 힘 있는 물줄기로 변화를 꽤한다. 덕분에 곳곳에다 폭포와 담(潭), 그리고 소(沼)를 만들고 있다. 사람들은 그저 뛰어 들기만 하면 된다. 물론 옷은 입은 채로이다. 오가는 등산객들이 생각보다는 많기 때문이다.
▼ 잠시 후 골이 왼쪽으로 휘면서 기암절벽이 앞을 가로막는다. 그 아래에 쟁반처럼 널찍하고 맑은 물이 넘칠 듯이 담겨 있다. 경방골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알려진 호박소란다. 와폭(臥瀑)에서 떨어지는 물길이 만들어낸 소(沼)는 그 깊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검푸른 빛이다. 그 물결 위에 또 다른 푸른빛이 감돈다. 구름 몇 점 떠다니는 파란 하늘과 녹음 짙은 산자락이 물결 위에서 두둥실 떠다니고 있다.
▼ 계곡은 색상과 모양이 제각각인 암반(巖盤)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사이를 흐르는 청류(淸流)는 보기만 해도 시원해진다. 다가가 보면 작은 송사리들이 떼를 지어 나들이를 떠나는 것을 볼 수 있다. 사람이 다가가도 도망갈 줄을 모르는 것은 그만큼 인적이 뜸한 곳이라는 증거일 것이다. 협곡 위로 솟아 오른 기암과 그 위로 걸린 강인한 생명력의 소나무도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다.
▼ 산길은 골짜기를 따라 나있다. 때로는 개울을 가로지르기도 한다. 장마철에는 피해야 하는 코스가 아닐까 싶다. 하지만 오늘 같이 무더운 날에는 최상의 코스가 아닐 수 없다. 어떠한 제재나 간섭을 받지 않고 물에 첨벙 뛰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 계곡 길을 따라 내려서는 동안 형형색색의 기암괴석이 널려있고, 물길이 빚어낸 소와 담을 만난다. 길게 드러누운 와폭도 뒤질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내민다. 자연미 넘치는, 오염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길이 계속해서 이어진다. 누군가는 경방골을 일러 ‘한눈을 팔 겨를이 없다’고 했다. 산중미인(山中美人)들을 바라보는 호사를 누리느라 그렇게 된다는 것이다. 이름 없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름답기 그지없는 폭포와 소, 그리고 담이 많다는 얘기이다. 크고 작게 'U'자를 그리는 계곡은 곳곳에다 폭포를 만들었고, 소와 담에 모였던 물은 한 바퀴를 휘돌아 나와 다음 여행지로 떠난다.
▼ 20분 조금 못되게 걸었을까 저만큼에 다리 하나가 나타난다. 첨부된 지도에 신교로 표시된 다리이다. 제대로 된 산행은 대충 이곳에서 끝난다고 보면 된다. 이제부터는 널따란 도로를 따라 내려가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 5분쯤 후 산행을 시작하면서 길이 나뉘었던 옥녀교에 이르게 되고, 이후부터는 아침에 걸어 올라왔던 길을 거슬러 내려가면 된다. 내려가는 길, 건너편 언덕 위에 정자 하나가 보인다. 시루떡을 쌓은 듯한 절벽을 병풍처럼 두르고, 너른 너럭바위를 타고앉아 비췻빛 옥계계곡을 조용히 내려다보고 있다. 경상북도 기념물(45호)인 침수정(枕漱亭)일 것이다. 물가에서 탁족(濯足)을 즐기다가 올라가 쉬기에 딱 좋은 곳에다 지어 놓았다. 옛 사람들에게 탁족이란 단순히 더위만을 피하는 방편은 아니었다. 흐르는 물을 관조하며 마음을 다스리는 정신수양이기도 했다. 체면을 중시하던 선비들이 인적이 드물고 산수가 좋은 계곡을 찾아 시원한 물속에 발을 담그고 시를 읊으며 자연과 풍류를 벗 삼았다. 여유와 멋이 가득 느껴지는 친 자연피서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참고로 조선 정조 8년(1764년), 손성을(孫星乙, 1724-1796)에 의해 지어진 침수정은 정면 두칸, 측면 두칸 규모의 아담한 정자(亭子)다. 뒤쪽 두 칸은 방이고 앞쪽 두 칸은 바위 위에 기둥을 세운 누마루다. 누마루를 돌아가면서 계자난간을 설치해 운치를 더 했다. 침수정이란 이름은 '침류수석(枕流漱石)'에서 나왔다고 한다. '흐르는 물을 베개 삼고 돌로 양치질을 한다'라는 뜻이란다. 손성을은 이곳에서 거문고를 타고 시를 지으며 세상의 명리를 허공에 떠다니는 뜬구름으로 여겼다고 한다.
▼ 15분 조금 못되어 산행을 시작하려고 차에서 내렸던 곳에 이른다. 하지만 산악회의 버스는 팔각산장에 주차되어 있단다. 930번 지방도를 따라 10분 이상을 더 걸어야만 한다. 도로는 땡볕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다. 거기다 지금은 폭염경보까지 내려졌을 정도로 무더위가 기승을 부린다. 걷는 것 자체가 무리이겠지만 어쩌겠는가. 흐느적거리며 발걸음을 내디딜 따름이다. 하지만 다행인 것은 경치 좋기로 소문난 옥계계곡을 눈요기 삼으며 걸을 수 있다는 것이다. 나란히 앉아 물속에 다리를 담그고 있는 젊은 연인들도 보인다. 그들의 싱싱함이 전해진 듯 피로에 지친 심신에 새로운 힘이 솟아난다. 고려 때의 학자 이인로는 ‘탁족부(濯足賦)’라는 글에서 ‘돌 위에 앉아 두 다리를 드러내고 발을 담그니 불같은 더위가 지나가네.’라고 탁족의 시원함을 노래했다. 옛 사람들에겐 계곡물에 발을 담그며 더위를 쫓는 ‘탁족’만한 피서가 없었을 것이다. 어디 옛 사람들 뿐이겠는가. 그래서 저리도 많은 사람들이 물가를 찾지 않았겠는가.
▼ 산행날머리는 학소대(鶴巢臺) 앞 팔각산장 주차장(달산면 옥계리 43-3)
더위에 지친 몸은 갈수록 더 흐느적거린다. 그리고 모든 것을 체념할 즈음에야 저만큼에 팔각산장이 나타나면서 오늘의 산행이 종료된다. 오늘 산행은 총 5시간20분이 걸렸다. 목욕 등을 위해 중간에서 쉬었던 시간을 감안하더라도 4시간50분이나 걸렸다. 거리에 비해 많이 걸린 셈이다. 아무래도 무더위 때문에 속도가 많이 떨어진 탓이 아닐까 싶다. 아무튼 산장의 앞에는 ‘선경옥계(仙境玉溪)’라고 쓰인 커다란 빗돌이 세워져 있다. 수백 길 높이의 학소대(鶴巢臺) 바위벼랑이 그 뒤를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다. '별유천지비인간(別有天地非人間)‘이란 말이 있다. 이백의 시조인 산중문답(山中問答)의 마지막 구절이다. 저 빗돌을 세운 이는 이백의 시를 읊으며 무릉도원(武陵桃源)을 떠올렸을 지도 모르겠다.
'산이야기(경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볼거리는 없으나 울창한 숲길이 고운, 천마산-자개봉(‘16.8.25) (0) | 2016.08.30 |
---|---|
빼어난 암릉에다 조망까지 갖춘, 호국의 충혼이 어린 유학산(‘16.8.13) (0) | 2016.08.22 |
국립공원 안에 있으면서도 푸대접 받는 갓바위산-신선봉(‘16.6.11) (0) | 2016.06.20 |
붙어 있지만 받고 있는 대접이 너무 다른, 형제봉-신산(‘16.5.29) (0) | 2016.06.07 |
천년고찰 고방사를 낀 한적한 산, 백마산-고당산(‘16.5.21) (0) | 2016.05.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