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우산(黃牛山, 600.8m)-미림산(美林山, 686m)

 

산행일 : ‘16. 4. 23()

소재지 : 경북 봉화군 명호면과 재산면의 경계

산행코스 : 명호수쉼터(명호교)570황우산윗고개삼각점(598m)미림산 서봉(686m)미림산 동봉(691m)상리마을(산행시간 : 4시간)

 

함께한 산악회 : 안전산악회

 

특징 : 황우산이나 미림산은 나름대로 산에 이력이 붙었다고 하는 사람들에게도 생소한 이름이다. 하긴 높은 산이 많기로 소문난 봉화 땅에서, 700m에도 못 미치는 이런 산을 알고 있다면 차라리 그것이 더 이상할 것이다. 거기다 바위다운 바위 하나 구경할 수 없는 전형적인 육산(肉山)이라서 볼거리 또한 없다. 심심찮게 나타나는 송이버섯 채취지역이니 입산을 금()한다는 서슬 시퍼런 경고판을 굳이 볼거리로 치지 않는다면 말이다. 또한 육산의 특징대로 조망(眺望)까지도 일절 터지지 않는다. 산이 있을 경우 무조건 올라야만 하는 산꾼들이 아니라면 일부러 찾아올 것까지는 없을 것이다. 거기다 지역의 인심(人心)까지도 별로이다. 사유지(私有地)에 승낙도 없이 들어왔다며 낫까지 들고 겁박(劫迫)하는 주민을 만났기 때문이다. 지금은 송이 채취 철이 아니라서 굳이 그래야할 이유가 없었을 텐데도 말이다. 20년 이상 산을 타왔고, 안 가본 곳이 없을 정도로 전국의 산들을 올라봤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산행들머리는 명호수쉼터(봉화군 명호면 고계리)

중앙고속도로 풍기 I.C에서 내려와 5번 국도를 타고 영주로 온다. 시가지 초입 가흥교차로(영주시 가흥동)에서 36번 국도로 옮겨 울진방면으로 달리다가 봉화제2농공단지(봉화군 봉성면 금봉리)에서 내려와 오른편 918번 지방도를 타면 도천삼거리(봉화군 명호면 도천리)에서 35번 국도(918번 지방도와 중복)를 만나게 된다. 이곳에서 우회전하여 국도를 타고 안동방면 들어가면 잠시 후 고계삼거리(명호면 풍호리)를 만난다. 이곳에서 다시 나눠지는 918번 지방도로 옮겨 명호교()를 건너면 명호수 쉼터라는 작은 가게가 나온다. 오늘 산행의 들머리이다.




영천수 쉼터앞 도로를 건너면서 산행이 시작된다. 도로를 건너자마자 청량산래프팅(rafting)’ 앞에서 오른편 시멘트포장 농로(農路)를 따른다. ‘승용차주차장안내판이 세워진 방향이다.



경작지 사이로 난 농로는 5분쯤이면 끝이 난다. 그리고 산길은 왼편 산자락으로 난 오솔길을 따른다. 경사는 거의 없지만 길의 흔적은 또렷하지 않다.



잠시 후 왼편에 또렷한 길이 하나 나타난다. 농로가 끝나기 바로 전에 왼편으로 들어서는 길이 보였는데, 그게 옳은 길이었던 모양이다. 잠시 후 검정 비닐 덩어리가 보인다. 뼈대는 세워져 있지 않지만 홈이 파져 있는 걸로 보아 송이 움막 터인 모앙이다. 송이 철이 아니어선지 황량한 모습이다. 그런데 근처에 쓰레기봉지들 까지 널브러져 있어 볼썽사납기까지 하다. 여느 등산객들이 버리고 간 모양이다. 저런 몰상식한 사람들이라면 산을 찾지 않으면 어떨까 싶다. ‘아니 온 듯 다녀가소서.’ 산을 오를 때마다 이 말을 염두에 두어야 할 일이다. 그리고 잠시 후 두 번째 송이 움막이 나타난다. 이번 것은 뼈대만 세워져 있다. 산길은 이곳에서 왼편으로 방향을 튼다.



황우산은 전형적이 육산(肉山), 바위다운 바위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없다. 아예 포기를 하고 오르는데 뭔가 눈에 쏙 들어오는 풍경이 나타난다. 보기 힘들 정도로 기이하게 생긴 고사목(枯死木)이다. 그래 이런 정도라면 볼거리가 아예 없다고 할 수는 없겠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런 풍경은 이것 딱 하나 뿐이었다.



움막을 지나면서 산길을 가팔라진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 수준을 높여간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다. 버거울 정도는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게 얼마를 올랐을까 또 다른 움막이 보인다. 이번 것은 뼈대에 온전한 비닐까지 씌어져 있다. 송이 채취 철이 아닌 요즘에도 누군가 이용을 하고 있는 모양이다.



가파른 오르막길이 계속되는 데도 힘들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코끝을 스치고 지나가는 솔향이 그 원인이지 않을까 싶다. 그 향기 속에는 피로회복에 도움이 된다는 만병통치약, 피톤치드(Phytoncide)가 듬뿍 들어 있을 테니까 말이다.



산행을 시작한지 40분쯤 되면 봉긋하게 솟아오른 봉우리 하나가 나타난다. 570m봉이다. 산길은 정상 근처에서 오른편으로 우회(迂廻)를 시키고 있지만 그냥 치고 오른다. 정상의 생김새를 보기 위해서이다. 하지만 정상은 그런 내 기대를 저버렸다. 거짓말 조금 보태서 손바닥만한 바위 몇 개가 깔려있을 따름이다. 물론 정상표지석이나 이정표도 있을 리가 없다. 조망 또한 꽉 막혀있다.



일단 570m봉에 올라섰다하면 산길은 편해진다. 오르내림이 거의 없는 능선이 계속된다. 다음에 오르게 될 황우산 정상과의 고도(高度) 차이가 겨우 30m에 불과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 구간에서 눈여겨 봐두어야 할 것이 하나 있다. 능선의 소나무들이 제법 굵어졌다는 것이다. 그래선지 길가 나무기둥에 입산금지, 송이버섯 채취 금지라고 쓰인 코팅지(coating)가 심심찮게 매달려 있다. 소나무가 저 정도는 되어야만 송이버섯이 자라날 수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싶다.




10분 남짓 걸었을까 길게 쌓여 있는 축대(築臺)가 보인다. 오지(奧地)의 산에서 가끔 만나게 되는 산성(山城)의 터를 닮았다. 하지만 내 상식으론 황우산에 산성은 없다. 그렇다면 화전민의 흔적일지도 모르겠다. 그 위가 널따란 분지(盆地)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분지의 바로 위가 황우산 정상이다. 대여섯 평 남짓한 황우산 정상은 산봉우리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저 능선 상에 약간 솟아오른 한 지점으로 보일 따름이다. 정상에는 삼각점(판독 불가능) 하나만이 외로울 뿐 정상표지석은 보이지 않는다. 물론 이정표도 없다. 그저 대구의 산꾼 김문암씨가 매달아 놓은 정상표지판이 이를 대신하고 있을 따름이다. 주변의 잡목(雜木)들 때문에 조망 또한 없다. 참고로 황우산은 한 마리 황소가 물을 마시고 있는 듯한 모양새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그 물은 안동시를 눈앞에 둔 낙동강변의 물이다.



미림산으로 향한다. 적당히 가파른 내리막길을 잠시 내려서면 바위벼랑이 나타난다. 얼마나 왜소한지 벼랑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민망스러울 정도이지만 오늘 산행에서 유일하게 만난 바위였기에 그런 표현을 썼다.



이어지는 산길은 작은 오르내림이 반복된다. 아니 제법 높고 가파른 오르막길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산길은 정상까지 오르는 것을 고집하지는 않는다. 친절하게도 우회로(迂廻路)를 만들어 산행을 편하게 해주고 있다.




산길은 한없이 곱다. 보드라운 흙길에 솔가리들까지 수북하게 쌓여 여간 폭신폭신한 게 아니다. 이건 숫제 양탄자 위를 걷는 느낌이다. 길가에 늘어선 아름드리 노송(老松)들 덕분일 것이다.



비록 잠깐이긴 하지만 오른편으로 시야(視野)가 열린다. 나뭇가지 사이로 918번 지방도와 이름 없는 꼬맹이 산들이 나타났다 사라진다.



오늘 산행은 꽃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듯 싶다. 능선 곳곳에서 철쭉 군락지들을 만날 수 있는데, 유난히도 크고 고운 철쭉들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다. 행운이 아닐 수 없다. ‘그동안 봐왔던 철쭉 중에서 가장 화려한 것 같네요’, ‘, 맞습니다. 맞고요집사람의 감탄에 장단을 맞추며 산행을 이어간다.




30분 후 송이 움막이 있는 594m봉에 올라선다. 오늘 처음으로 조망(眺望)이 터지는 곳이다. 건너편에 문명산이 보인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막 조망을 즐기려는데 누군가가 고함을 질러대면서 쫒아온 것이다. 아니 이건 숫제 욕설 수준이다. 잠시 후 산의 주인이라는 사람이 나타나더니 왜 주인의 승낙도 없이 남의 땅에 들어왔냐며 윽박질러 댄다. 그런데 낫을 들고 있어 겁부터 왈칵 난다. 얼마 전 매스컴에서 분노조절장애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는 뉴스를 보았기 때문이다. 아무튼 우리나라에는 임자 없는 산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국유(國有)이거나 아니면 사유(私有)인가만 다를 뿐이다. 그리고 산들은 어느 것 할 것 없이 등산객들의 출입을 제한하지는 않는다. 특별히 보호해야할 그 뭔가가 있을 경우를 제외하고는 말이다. 설사 그럴 경우라도 입구에 금()줄을 쳐 출입을 막던지, 아니면 들머리에 출입을 금한다는 안내판을 붙여 놓는다. 그런데 이곳 황우산은 분명 그런 차단장치나 안내가 없었다. 다만 산행을 시작한지 한참 되고나서부터 입산금지, 송이버섯 채취금지라는 안내판이 눈에 띄었을 따름이다. 그리고 능선을 따라 금줄을 쳐 놓았다. 이는 금줄을 넘어서지 말라는 의미일 것이다. 특히 지금은 송이 채취 철도 아니다. 그런데도 굳이 등산객이 들어오는 것이 싫다면 입구를 막아 애초부터 출입을 금지시키던지, 만일 그 정도까지 금하지는 않는다면 주인의 전화번호를 표기해 놓아 미리 양해를 구할 수 있게 하는 게 온당한 일이 아니겠는가.




다시 산행을 이어간다. 파출소에 신고하겠다는 주인장에게는 하산지점에서 뵙자는 답변으로 마무리했다. 이해할 수 없는 그의 우격다짐을 계속해서 받아주기에는 산행시간의 제약이 있었기 때문이다. 산길은 큰 변화를 주지 않는다. 그저 작은 오르내림만을 반복해가면서 이어질 따름이다. 당연히 경사까지도 완만하다.



능선의 왼편에는 금줄이 쳐져있다. 송이버섯이 많으니 절대 들어가지 말라는 경고일 것이다. 하긴 주변에 제법 굵은 소나무들이 많은 것으로 보아 송이버섯이 잘 자라나기도 하겠다.




이번에는 현수막(懸垂幕)이 보인다. 특수임산물 재배지에 산주의 동의 없는 입산을 금지하며, 허락 없는 임산물 채취는 불법으로 징역이나 벌금형에 처해진단다. 근처에는 봉화군 진세 산양삼 영농조합에서 붙여 놓은 같은 내용의 경고판도 보인다. 이런 현수막을 산행들머리에 매달아 놓았었더라면 어떠했을까 싶다. 그렇다면 미리 양해를 구하고 산행을 시작했을 수도 있었겠기에 하는 말이다. 아무튼 그네들의 고충도 충분히 이해는 간다. 몰상식한 일부 등산객들이 주인이 있는 임산물을 막무가내로 채취하는 것을 나도 본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산길은 마지막 봉우리(610m봉이 아닐까 싶다)에서 정상을 고집하지 않고 또 다시 우회(迂廻)를 시킨다. 그리고 가파른 내리막길이 이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려서는 게 어렵지는 않다. 솔가리들로 다져진 비탈길이 미끄럽지가 않기 때문이다.



그렇게 10분 조금 못되게 내려서면 황우산과 미림산의 경계인 윗재이다. 움막봉(594m)에서는 25분이 걸렸다. 윗재는 남쪽의 명호면 고지현(명호재)에서 북쪽의 재산면 옥동마을로 연결되는 고갯마루인데 아직까지도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은지 시멘트로 포장까지 해 놓았다.



미림산으로 가려면 맞은편 능선을 타야 한다. 하지만 우린 오른편으로 방향을 틀어 임도를 따른다. 산행대장의 진행방향표시지가 그쪽으로 갈 것을 지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면 산행을 편하게 해볼까 머리 꽤나 굴렸던 모양이다. 능선의 봉우리들을 아예 빼먹어버리려는 속셈을 보면 말이다. 하지만 내가 알기론 능선을 타는 것이 더 수월하다. 어차피 중간에 있는 598m봉에 올라서야 하는데 임도를 따를 경우 높여야할 고도(高度)가 오히려 더 늘어나버리기 때문이다.



하여튼 임도를 따르다보면 7분 후 길이 두 갈래로 나뉜다. 이곳에서는 왼편으로 향한다. 오른편은 918번 지방도가 지나가는 고지현으로 가는 길이지 싶다. 1~2분 후 산자락으로 올라선다. 물론 길은 없다. 그저 초입에 보이는 묘()를 기준으로 삼을 수밖에 없다.



묘역을 지나 능선으로 오르면 시야가 탁 트인다. 나무 한 그루 없는 민둥산이 눈앞에 펼쳐지는 것이다. 산불이라도 났었던 모양이다. 아니면 경제림 조성을 위해 베어냈을지도 모르겠다. 하여튼 그런 일이 생긴 지는 얼마 되지 않았던 게 틀림없다. 아직까지도 조림(造林)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을 보면 말이다.



주능선으로 오르는 길은 가파르다. 하지만 발길을 잡는 방해물이 없어 오르는 게 어렵지는 않다. 그렇게 20분 조금 못되게 오르면 기존의 산길을 만난다. 아까 윗재에서 제대로 진행했을 경우 이 길로 오게끔 되어 있다. 기존의 산길은 만나자마자 오른편으로 우회(迂廻)를 시킨다. 앞에 보이는 봉우리를 오르지 않겠다는 의미일 것이다.



하지만 난 같이 산행을 하고 있는 윤선생님을 꼬드겨 위로 오른다. 물론 길은 없다. 하지만 고생한 보람은 있었다. 지금은 사용하고 있지 않은 삼각점을 발견한 것이다. 산악회의 리본들이 너절하게 매달려 있는 걸로 보아 598m봉이 아닐까 싶다. 선답자들의 글에 598m봉에 삼각점이 설치되어 있다고 적혀있었기 때문이다.



미림산으로 향한다. 물론 능선을 탄다. 앞을 가로막는 아무런 방해물도 없는 산길은 순한 편이다. 거기다 시야까지 탁 트인다. 발아래에는 이따가 하산하게 될 918번 지방도 주변의 마을들이 내려다보이고, 그 뒤에는 올망졸망한 산들이 첩첩이 쌓여있다. 일월산과 통고산으로 보이는데 시계(視界)가 좋지 않아 구분은 불가능하다. 오늘은 전국에 미세먼지와 황사 주의보가 내려진 날이다. 산행을 시작할 때만 해도 괜찮은 것 같았는데 어느새 시야를 가로막을 정도로 그 농도(濃度)가 짙어진 모양이다.




잠시 후 산길은 험해져 버린다. 불에 탄 나무들이 뒤엉킨 채로 길을 꽉 매우고 있다. 쓰러진 나무의 아래를 기어나가거나. 나무들을 피해 새로 길을 만든다. 그것도 여의치 않을 경우에는 아예 나무를 넘을 수밖에 없다. 손이 까맣게 되지만 그 정도를 갖고 불평한다면 호강에 지쳤다고 봐야한다. 가로막고 있는 나무들 틈새마다 온통 아카시아나무와 가시넝쿨들로 들어차 있어 한걸음 내딛기도 만만치가 않다. 할퀴거나 찔리는 것으로도 부족해 심심찮게 싸대기까지 맞아야만 통과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자신도 모르게 육두문자가 튀어나오는 순간이다.




앞서가던 윤선배가 너무 예쁘다며 카메라를 치켜들고 계신다. 아니나 다를까 처음으로 보는 꽃이다. 집사람이 상수리나무의 꽃이라고 알려준다. 옛날 산이 황폐했었을 때 사방(砂防)용으로 식재되었던 흔하디흔한 나무인데 저렇게 예쁜 꽃을 피워낼 수 있다는 게 놀랍다. 끈질긴 삶의 한 단면이 아닐까 싶다. 그곳도 성공한 삶이다.



30분 가까이 악전고투를 치룬 끝에야 미림산(서봉) 정상에 오른다. 만일 등산로가 정상이었다면 20분도 채 걸리지 않았을 거리이다. 하여튼 미림산은 주능선에서 오른편으로 약간 빗겨난 곳에 뽈록하니 솟아오른 산봉우리이다.




지형도 상의 정상인 서봉(686m)은 나무 한 그루 없는 완벽한 민둥산이다. 그저 불에 타다 남은 나무 등걸들을 쌓아놓은 무더기가 보일 따름이다. 그러니 이곳이 정상이라는 그 어떤 표시도 찾아볼 수 없다. 그저 눈치로 때려잡을 수밖에 없다. 하여튼 이곳에서도 조망은 좋다. 그게 산불이라는 좋지 않은 결과 덕분이니 이것 또한 새옹지마(塞翁之馬)의 한 예가 아닐까 싶다.



다시 능선을 탄다. 이후부터는 앞을 가로막는 방해물은 만나지 않는다. 그저 조망이나 즐기면서 걸으면 된다. 그것도 무료하다면 산자락에서 고개를 내밀고 있는 고사리라도 뜯어볼 일이다. 부지런한 우리 집사람은 언제 그렇게 뜯었는지 일 년 동안 제사상에 올리고도 남을 양을 뜯었다. 그렇게 15분쯤 걸으면 미림산의 최고봉인 동봉(691m)에 올라선다.



한두 평 남짓한 공터로 이루어진 동봉의 정상도 역시 정상표지석이나 이정표는 없다. 김문암씨가 매달아 놓았다는 정상표시판도 보이지 않는다. 주변의 나무들이 검게 그을린 것으로 보아 산불의 영향이 이곳까지 미쳤던 모양이다. 하지만 전부터 쌓여있었다는 돌탑은 여전히 남아있다. 앞서간 누군가가 맨 위의 돌맹이에다 미림산이라고 적어 놓았다. 고마운 일이다.




하산을 시작한다. 그런데 진행방향표시지가 곧장 아래로 향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내가 알기론 조금 더 능선을 타다 아래로 내려가도록 되어 있는데도 말이다. 그렇다고 나 혼자 돌아갈 수도 없어 그냥 아래로 내려서고 본다. 그리고 고생문이 활짝 열렸다. 아까 능선에서 만났던 상황은 이곳에 비하면 양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길이 험했던 것이다. 아니 이곳은 애초부터 길이 아니었으니 길이라고 할 수도 없겠다.



검게 그을린 노송(老松)들이 가슴 아프게 만든다. 일제(日帝)의 잔재라는 송진 채취 흔적만 해도 가슴이 저려오는데, 끝내는 화마 속에서 몸부림치다 그 생명을 다한 것이다.



악전고투를 치러가며 20분 정도를 내려오면 민가가 나타난다. 마침 집 앞에 수도 파이프가 보인다. 냉큼 쫒아가 물부터 마시고 본다. 산골에서 흘러나온 물이어서인지 감로수(甘露水)가 따로 없다. 물통에까지 채워 넣고 돌아서니 스님의 복장을 하고 있는 여성분이 내다보고 있다. 그렇다면 여염집 모양으로 지어진 이 건물들은 암자(庵子)란 얘기일 것이다. 하지만 부처님을 모신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그동안 봐왔던 절간들은 그 외모만 보고도 부처님을 모신다는 느낌을 받았었기에 하는 말이다.


산행날머리는 상리마을

민가에서부터는 임도를 따른다. 비록 포장은 되어있지 않지만 차량이 다닐 수 있도록 정비가 잘 되어 있다. 계곡을 옆으로 난 임도를 따라 20분 정도 걸어 내려오면 저만큼에 상리마을이 보이면서 오늘 산행이 종료된다. 오늘 산행은 정확히 4시간이 걸렸다. 간식 때문에 중간에 쉬었던 시간이 10분을 채 넘기지 않았으니 온전히 걷는데 걸린 시간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하지만 산불의 흔적이 길을 막지만 않았어도 3시간30분 안에 산행을 마칠 수 있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