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마산(白馬山, 715.5m)-고당산(姑堂山, 596.8m)
산행일 : ‘16. 5. 21(토)
소재지 : 경북 김천시 조마면·감천면·농소면과 성주군 벽진면·초전면의 경계
산행코스 : 봉곡리→고방사→백마산→전망바위→별미령고개→삼거리→고당산왕복→금오지맥갈림길→임도→고향농원(산행시간 : 4시간)
함께한 사람들 : 청마산악회
특징 : 백마산과 고당산은 금오지맥에 적을 두고 있는 산이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이다. 그 외에는 내세울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얘기이다. ‘아무런 특징이 없는 산’, 이보다 더 나은 표현은 없을 것 같다. 두 산 모두 전형적인 육산(肉山)이기 때문이다. 가끔, 그러니까 백마산 일원에서 화강암들이 지면으로 돌출되기도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육산으로 보는 게 타당하다. 거기다 높이라고 해봐야 고작 715m에 불과할 정도로 산세 또한 빈약하기 짝이 없다. 그러다보니 기암괴석 등의 눈요깃거리가 있을 리가 만무하다. 거기다 육산의 특징대로 조망(眺望) 또한 백마산 정상 등 몇 곳을 제외하고는 트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안 좋은 것은 등산로일 것이다. 정비가 일절 되어있지 않은 탓에 길의 흔적을 찾기조차 힘들 정도로 잡목과 넝쿨식물들이 능선에 들어차 있는 것이다. 만일 산 아래에 위치한 고방사마저 없었더라면 산꾼들로부터 외면당했을 수도 있지 않나 싶다. 지맥을 하는 사람들이나, 봉 따먹기를 하는 사람들이 아니라면 시간을 내가면서까지 일부러 찾아올 필요는 없는 산으로 치부하고 싶다.
▼ 산행들머리는 고방사 입구(김천시 농소면 봉곡리)
경부고속도로 동김천 I.C에서 내려와 3번 국도를 타고 거창방면으로 달리다가 김천혁신도시의 월곡2교차로(김천시 농소면 월곡리)에서 빠져나와 국도 아래를 통과한다. 이어서 군도(郡道 : 농남로)를 따라 들어가다 율곡천(川)에 놓인 농소교(橋 : 농소면 월곡리)를 건너기 바로 직전의 사거리(봉곡 입구)에서 우회전하여 들어가면 오래지 않아 산행들머리인 고방사 입구(봉곡리)에 이르게 된다. 부근에 사실마을 버스정류장이 있으니 참조한다.
▼ 고당사 방향으로 들어가면서 산행이 시작된다. 들머리에 고당사의 들머리임을 알리는 표지석과 이정표가 세워져 있으니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만일 고방사에 들르지 않고 곧장 산행을 하고 싶다면 버스가 들어왔던 방향으로 되돌아 나가야 한다. 그리고 잠시 후 만나게 되는 삼거리에서 오른편으로 방향을 틀어 사실마을로 들어서면 된다. 사실(寺室)이란 마을 이름은 고방사(高方寺) 아래에 있는 마을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니 참조한다. 다른 한편으론 마을에 새가 많다고 해서 새실 또는 새 조(鳥)자를 써서 조곡(鳥谷)이라 부르기도 했단다.
▼ 고당사로 들어가다 보면 오른편 언덕 아래에 제법 규모가 큰 사찰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백련사라는데 특이하게도 평지에다 터를 잡았다.
▼ 고방사로 들어가는 길은 여름철에는 적당하지 않다고 봐야한다. 햇빛을 가려줄 나무들이 없어 뙤약볕에 곧장 노출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햇볕을 가려줄 나무들은 고방사에 거의 다 이르러서야 만나게 된다.
▼ 15분 후 제법 너른 주차장이 나타난다. 도로가 끊어지지 않고 계속해서 위로 향하고 있는 것을 보면, 스님들의 주차장은 위에다 따로 만들어 놓은 모양이다. 하여간 주차장의 왼편에는 일주문(一柱門)을 지어 놓았다. 그리고 돌계단을 통해 사찰에 오르도록 되어있다. 사찰의 일주문에는 신성한 가람에 들어서기 전에 세속의 번뇌를 불법의 청량수로 말끔히 씻고 진리의 세계로 향하라는 상징적인 가르침이 담겨 있다. 이곳 또한 그런 이유로 세운 게 아닐까 싶다. 일주문과 돌계단을 통과하는 과정을 통해서 세속의 번뇌를 씻어내라는 통과의례로 말이다.
▼ 거리는 얼마 되지 않지만 제법 가파른 오르막길이다. 힘들다. 세속의 번뇌를 씻는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왼편에 보이는 부도(浮屠)들을 눈에 담다보면 4분 후에는 사찰의 앞마당에 올라서게 된다. 고방사(高方寺)가 한눈에 잘 들어오는 곳이다.
▼ 고방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소속의 사찰로 418년(눌지왕 2)에 아도(阿度)화상이 직지사와 함께 창건하였다고 전해진다. 창건당시의 이름은 고방사(古芳寺)이다. 그 뒤 임진왜란 때 법당을 제외하고 모두 불에 탔으나 1636년(인조 14) 옥청(玉淸)과 현철(玄哲)이 적묵당과 설선당을, 그리고 1656년(명종 11) 학능(學能)이 청원루를 지었다. 현재의 건물은 1719년(숙종 45) 수천(守天)이 옮겨서 중창한 것이다. 원래의 절터는 현재의 위치에서 동남쪽으로 약 1㎞ 떨어진 곳에 있는 약수터 자리에 있었는데, 그곳에 빈대가 많아서 사람이 머무를 수 없었으므로, 법당인 보광전(普光殿)을 헐어 현재의 자리로 옮겨 짓고 나머지 건물은 모두 불태웠다고 한다. 현재의 고방사는 1981년에 주지인 법전화상이 중흥한 것이다. 감로당을 이전 개축하고 관음전, 삼성각, 향로실, 사천왕문, 범종각, 청원루 등을 신축하였으며 보광명전을 해체, 복원하고 3층 석탑 등을 새롭게 건립했다. 문화재로는 고려 말 또는 조선 초기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목조아미타삼존불상(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467호)’이 있다.
▼ 삼성각 옆을 지난다. 길이 나있어서이다. 하지만 사찰의 채마전(菜麻田)으로 보이는 밭에서 끝나버린다. 그렇다고 되돌아나갈 수도 없기에 막무가내로 왼편 산비탈을 치고 오른다. 그리고 잠시 후 능선에 올라선다. 절에서 대략 4~5분 정도가 걸렸다. 왼편에 능선을 따라 난 오솔길이 보인다. 이로보아 절의 사천왕문 근처에서 곧장 능선으로 오르는 산길이 있었던 모양이다.
▼ 능선은 처음부터 가파른 오르막길로 시작된다. 오늘 산행은 워밍업(warm up)을 할 시간도 주지 않으려는 모양이다. 아니 고방사까지 한참을 걸어왔으니 워밍업을 한 것이나 마찬가지로 쳐도 되겠다. 아무튼 산길은 곧장 치고 오르지를 못하고 왔다갔다 꿈틀대고서야 고도(高度)를 높여간다. 가파른 오르막길에서 나타나는 전형적인 모양새이다.
▼ 9분 후 첫 번째 봉우리에 올라선다. 오른편으로 시야가 열리기 시작한다. 이따가 오르게 될 고당산 뒤로 수많은 고산준령(高山峻嶺)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고 있다. 황악산이나 삼도봉, 민주지산 등이 아닐까 싶다. 그 오른편에 보이는 감천면의 들녘이 제법 널따랗다.
▼ 바위의 숫자가 늘어난다. 그렇다고 암릉으로 볼 수는 없다. 그저 딛고 올라서면 그만일 정도의 크기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곳곳에서 조망이 터진다. 바위답지는 않지만 바위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는 셈이다. 7분 후에는 두 번째 봉우리에 올라선다. 시야는 더욱 넓어졌다. 그리고 이번에는 김천시가지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 산행 초입부터 보이기 시작하던 비닐 끈이 언제부턴가 거의 공해 수준으로 늘어나버렸다. 덕지덕지 붙어있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이다. 아무래도 이 부근에서 송이버섯이 많이 나오는 모양이다. 그렇다면 가을철 산행지로는 적합하지 않겠다. 눈치를 받는 것은 고사하고, 자칫 잘못하다간 오해를 부를 수도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 고층아파트들이 만들어내는 숲도 보인다. 김천혁신도시일 것이다.
▼ 산행을 시작한지 1시간쯤 되면 주능선에 올라선다. 그리고 오늘 산행에서 처음으로 이정표(백마산 정상↑ 1200m, 농소면 노곡길 2600m/ 농소면 봉곡리← 1700m)를 만난다. 왼편은 봉곡리에서 올라오는 길이다. 아까 산행 들머리에서 헤어졌던 사실마을로 들어가는 길과 이곳에서 다시 만나게 된다.
▼ 주능선 만난 산길은 그 사나웠던 기세를 많이 누그러뜨린다. 그리고 작은 오르내림을 반복하면서 서서히 고도를 높여간다. 여유로운 산길이다 보니 시선까지도 자유롭다. 간간히 터지는 조망을 즐기며 걷는 호젓한 산행이 이어진다.
▼ 20분 남짓 후 또 다른 삼거리(이정표 : 백마산 정상↑ 200m/ 노곡리← 1600m/ 봉곡리↓ 2700m)를 만난다. 이곳도 역시 벤치를 놓아 쉼터를 겸하도록 해놓았다. 나무 그늘이 짙은 뛰어난 쉼터이다.
▼ 산길은 삼거리를 지나면서 약간 가팔라진다. 하지만 부담은 없다. 조금이라도 가파른 곳에는 통나무로 계단을 만들어 놓아 오르는데 부담을 줄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7분 정도를 오르면 드디어 백마산 정상이다. 산행을 시작한지 1시간 30분 만이다.
▼ 제법 너른 공터로 이루어진 정상에는 자연석으로 만든 정상표지석과 한쪽 방향만 표시된 이정표(농소면 노곡리 1800m, 봉곡리 2900m), 그리고 이등삼각점(김천 27 1981 재설)이 설치되어 있다. 또 하나, 태극기가 펄럭이고 있는 국기봉도 보인다. 전체적으로 잘 정비된 모습이다. 아니 정비가 되어가고 있는 중이다. 정비를 하면서 사용할 통나무들이 수북하게 쌓여있고, 발전기로 보이는 기계까지 놓여있는 것을 보면 말이다. 백마산의 원래 이름은 갈수산(渴水山)이다. 물이 귀한 산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그러던 것이 음(音)이 변해서 걸수산(乞水山)으로도 불리다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풍수지리로 볼 때 말의 형상이라 하여 백마산(白馬山)으로 고쳤다는 것이다. 예로부터 백마산은 신성한 산으로 알려져 왔다. 가뭄이 심할 때면 정상에서 기우제를 지냈다고 한다. 정상에는 무덤을 들이지 않는데, 묘가 들어설 경우 가뭄이 든다는 속설 때문이란다.
▼ 정상에서의 조망은 뛰어나다. 북녘으로는 김천시가지가 아득하고 그 오른편에는 구미시의 금오산과 칠곡의 영암산 등이 우뚝하다. 남쪽으로는 염표봉산과 염속산, 그 너머로는 합천의 가야산이 눈부시다. 서쪽도 고산준령들 일색이다. 백두대간의 황악산이 하늘 마루금을 그리며 힘차게 달려간다.
▼ 하산은 올라왔던 곳의 반대방향이다. 이제부터는 금오지맥을 따른다. 보드라운 흙길이 이어진다. 하지만 길의 사정은 좋지가 않다. 정비가 일절 되어있지 않아 잡목과 넝쿨식물들이 능선에 가득하기 때문이다. 한쪽 방향으로만 길을 안내하고 있던 정상의 이정표가 이제야 이해가 간다. 이쪽은 아직까지 등산로 정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안내였던 모양이다. 참고로 금오지맥(金烏枝脈)이란 수도산에서 동북으로 가지를 쳐 추량산, 삼방산, 고당산, 백마산, 금오산, 제석봉, 꺼먼재산 등을 일군 후 감천과 낙동강이 만나는 선산읍 어강나루에서 그 숨을 다하는 도상거리 81.4km의 산줄기를 말한다.
▼ 6분쯤 걸었을까 능선에서 오른편으로 약간 빗겨난 지점에 커다란 바위가 보인다. 첨부된 지도에 ‘전망바위’로 표기된 지점이다. 바위에 오르면 농소면과 감천면의 경계를 이루는 작은 산줄기가 또렷한데, 그 오른편에 있는 김천시가지는 아득하기만 하다.
▼ 능선은 작은 봉우리들을 오르내리면서 이어진다. 첫 번째 봉우리는 고맙게도 왼편으로 우회(迂廻)를 시킨다. 이어서 나타나는 680m봉과 670m봉은 꼭대기를 넘는다. 하지만 힘들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봉우리와 봉우리 사이의 골이 깊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 산길은 또렷하지 않다. 거기다 가끔은 길이 나뉘기도 한다. 하지만 능선을 따라 걷는다는 느낌으로 진행하면 길을 잃을 염려는 없다. 그리고 나뉘었던 길 또한 다시 합쳐진다는 느낌이다. 참 잊고 지나갈 뻔 했다. 요 아래에 있는 마을의 이름까지 만들어 낸 특징, 즉 갈대밭을 말이다. 산행을 하다보면 몇 군데에서 갈대밭이 눈에 띈다. 비록 거대하지는 않지만 가을철에 찾을 경우 잠깐의 눈요깃거리로는 충분할 것 같다. 하여간 요 아래에 위치한 봉곡리에는 노산(蘆山)이란 이름의 마을이 있다. 마을 뒷산에 갈대(蘆)가 많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그 뒷산이 바로 백마산일지니 어찌 갈대가 없을 수 있겠는가.
▼ 서두르지 않고 고도를 낮추어가는 내리막길은 꽤 오랫동안 계속된다. 그렇다고 가파른 구간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가끔은 가파르게 변하기도 하지만 금방 끝나버리기 때문에 그런 표현을 썼을 따름이다. 그렇게 50분 정도를 내려오면 별미령고개이다. 물론 백마산 정상에서부터 걸린 시간이다.
▼ 백마산을 넘어 성주로 연결되는 고개인 별미령(別味嶺)은 예부터 성주에서 서울로 갈 때 거쳐야하는 고개이다. 백마산의 갈대밭을 헤치고 고개를 넘다가 숨을 돌리며 걸치는 막걸리 맛이 일품이라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하지만 성주군의 홈페이지에는 별미란 이름이 별뫼(성산, 星山)가 변한 것으로 적고 있다. 어느 설이 옳은 지는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몫일 것 같다.
▼ 고갯마루에는 ‘벽진(碧珍)이라고 쓰인 커다란 빗돌이 하나 세워져 있다. 벽진면 청년회에서 세운 것이라는데 ’벽진의 다짐’이란 제목의 글을 새겨 벽진가야(옛 성주가야를 뜻함)를 상기시키고 있다. 그리고 뒷면에는 '고향' 이란 제목의 시가 적혀있다. 고개를 지나는 나그네들에게 향수라도 불러일으키려는 모양이다.
▼ 도로를 건너 맞은편 산자락으로 들어붙는다. 초입은 길의 흔적이 잘 나타나지 않는다. 하지만 일단 능선에 올라서고 나면 길은 또렷해진다.
▼ 잠시 후 울창한 소나무 숲을 통과한다. 짙은 솔내음이 사방으로 흩날린다. 무더운 여름날씨에 지쳐있던 육신이 가뿐해진다. 이런 게 바로 피톤치드(phytoncide)의 효능이 아닐까 싶다. 질병의 치료나 예방은 물론 피로회복의 효능까지도 뛰어나다는 피톤치드를 가장 많이 배출하는 나무 중의 하나가 바로 소나무이기 때문이다.
▼ 이후부터 산길은 별다른 특징이 없이 이어진다. 나무들도 어느새 참나무들 천지로 변해있다. 조망(眺望)도 일절 없다. 하지만 길은 고운편이다. 보드라운 흙길에 오르막의 경사(傾斜) 또한 급하지가 않다. 다음에 오르게 될 고당산이 백마산보타 한참 낮다보니 서둘러가며 고도(高度)를 높일 필요가 없었던 모양이다.
▼ 30분 후 능선이 둘로 갈라지는 삼거리를 만난다. 물론 별미령에서 부터이다. 삼거리에 이정표는 보이지 않는다. 대신 헌 비닐들만 어지럽게 널려있을 따름이다. 송이꾼들의 움막터인 모양이다. 우리가 따라갈 금오지맥은 이곳에서 왼편으로 흐른다. 하지만 고당산은 오른쪽 방향이다. 주능선에서 살짝 비켜나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고당산 정상을 오른 후에는 다시 이곳으로 되돌아 나와야만 한다.
▼ 고당산으로 향한다. 잠시 후 헬기장을 만난다. 하얀 페인트로 쓴 ‘H'가 아직도 선명한 것이 현재도 사용을 하고 있는 모양이다.
▼ 헬기장에 서면 건너편에 있는 고당산 정상이 한눈에 들어온다. 훌쩍 뛰어오르면 한 번에 닿을 만큼 가까워 보인다.
▼ 헬기장에서 안부로 짧게 내려선다. 이어서 맞은편 산비탈을 기다시피 오른다. 바위로 이루어진 탓에 오르는 게 생각보다 난감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싫지만은 않다. 비록 거대하지는 않지만 오늘 산행에서 처음으로 만난 바위다운 바위이기 때문일 것이다. 엎어지고 포개진 바위 무리들을 보는 재미가 나름대로 쏠쏠하다.
▼ 잠시 후 고당산 정상에 올라선다. 삼거리에서 8분 거리이다. 정상은 그저 그렇고 그런 산봉우리에 불과하다. 아무런 특징이 없는데다 조망까지도 터지지 않는다. 정상표지석은 물론 그 흔한 이정표까지도 보이지 않는다. 그저 대구의 산악인 김문암씨가 매달아 놓은 정상표지판이 이를 대신하고 있을 따름이다. 아니 그것뿐만이 아니다. 개인들이 붙여 놓은 ‘정상표시 코팅(coating)지’도 두 개나 보인다. 참고로 고당산의 옛 이름은 할미당산이라고 한다. 산의 아래에 할미당절이 있다고 해서 그렇게 불리었는데, 절이 없어지면서 산의 이름도 고당산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 삼거리로 되돌아와 다시 산행을 이어간다. 10분 조금 지났을까 길이 둘로 나뉜다. 금오지맥은 계속해서 능선을 따르지만 우린 왼편 지능선으로 내려선다. 첨부된 지도(地圖)에 표시된 하산코스보다 조금 이른 지점이니 참고한다.
▼ 길가에 핀 노랑꽃이 시선을 끈다. 널린 게 들꽃인데 웬 호들갑이냐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생김새가 가을꽃을 닮아 카메라에 담아봤다. 요즘 세상이 아무리 ‘하 수상’하다 해도 이건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 하산 길도 역시 평범하기 짝이 없다. 내리막길의 경사(傾斜)도 완만한 편이다. 산이 낮다보니 서두르지 않고도 고도를 낮출 수 있는 모양이다. 무릎에 부담을 주지 않는 산행이 가능하다는 얘기이다. 거기다 가끔은 조망까지도 터진다. 수도산 방향으로 연결되는 금오지맥의 산들이 잘 조망된다. 등산로를 메우다시피 하고 있는 잡목(雜木)들만 뺀다면 괜찮은 산길이라 할 수 있다.
▼ 지능선으로 갈아타고 15분쯤 지나면 오른편 산비탈로 내려선다. 산자락 아래로 난 임도(林道)가 보였기 때문이다. 물론 길은 없다. 길을 만들어가면서 내려가야 한다는 얘기이다. 쉽지는 않지만 위험하지도 않으니 걱정할 필요까지는 없다.
▼ 산행날머리는 고향농원(성주군 벽진면 용암리)
5분 후 임도에 내려선다. 이어서 시멘트로 포장된 임도를 따라 10분 조금 못되게 걸으면 수많은 축사(畜舍)들로 이루어진 커다란 농장이 하나 저만큼에 나타난다. 오늘 산행이 종료되는 고향농원이다. 첨부된 지도에 표시된 하산지점인 별뫼산장에서 별미령고개 방향으로 100m정도 떨어졌다고 보면 된다. 오늘 산행은 총 4시간 10분이 걸렸다. 간식을 먹느라 중간에서 쉬었던 시간을 감안할 경우 4시간이 걸린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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