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장산(黃獐山, 942.1m)-촛대봉(721.5m)
여행일 : ‘16. 4. 7(목)
소재지 : 전남 구례군 토지면과 경남 하동군 화개면의 경계
산행코스 : 화개장터삼거리→삼각점봉→촛대바위→촛대봉→새끼미재→황장산→안부→모암골→쌍계사 주차장(산행시간 : 약 5시간 10분)
함께한 사람들 : 산두레
특징 : 전형적인 육산(肉山)이다. 때문에 색다른 볼거리를 보여주지는 못한다. 거기다 몇 곳을 제외하고는 조망까지도 별로이다. 그런데도 이 산을 사람들이 찾아오는 이유는 뭘까? 이유는 단 하나가 아닐까 싶다. 화개장터에서 쌍계사까지의 5Km 구간, ‘쌍계사 벚꽃 10리 길’로 알려진 이 길에서의 꽃놀이를 겸해서이다. 대부분의 산악회들이 벚꽃이 활짝 피는 3월 말에서 4월 중순 사이에 황장산의 산행계획을 잡는 것이 그 증거일 것이다. 아무튼 지리의 주능선인 삼도봉에서 시작되는 불무장등(不無長嶝, 1,446m) 능선에 딸려있는 황장산과 촛대봉은 순하기 짝이 없다. 보드라운 황톳길은 걷기에 딱 좋고, 솔가리들까지 수북하게 쌓여 여간 폭신폭신한 게 아니다. 거기다 봉(峰)과 봉 사이의 골은 깊지가 않다. 그다지 힘을 들이지 않고도 산행을 이어갈 수 있다는 얘기이다. 능선은 온통 소나무 숲, 솔향을 듬뿍 마시며 걷는 것 또한 행복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아쉬운 점은 ‘벚꽃놀이’를 할 수 있는 꽃길로 내려서는 게 여의치가 않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길을 사유지(私有地)라는 이유로 막아 놓았기 때문이다. 방랑시인 ‘김삿갓’의 시에 ‘네 절 인심 고약타’라는 문구(文句)가 나온다. 그런데 산행 내내 그 문구가 떠오른 것은 무슨 이유일까. 아등바등 하지 않아도 풍족하게 살 수 있다고 해서 붙여졌다는 지명인 '부산(富山)’, 즉 지금의 화개 땅에서 꼭 이렇게까지 야박하게 굴어야만 했을까 하는 아쉬움 때문이다.
▼ 산행들머리는 화개삼거리(하동군 화개면 탐리)
순천-완주고속도로 황전 I.C를 빠져나와 17번 국도를 타고 구례·남원 방면으로 달리다가 구례읍과 마산면의 경계인 서시천(川)을 건너자마자 교차로에서 내려와 하동방향의 19번 국도로 바꿔 타면 버스는 섬진강을 따라 내려가다 화개면의 소재지인 탑리에 이른다. 가수 조영남이 부른 유행가 ‘화개장터’로 유명한 곳이다.
▼ 화개삼거리에서 쌍계사방향으로 40m쯤 떨어진 곳에서 산길이 열린다. ‘화개 철물·건재’와 ‘수앤수 스킨케어’ 사이의 공터 안쪽에 울창한 대나무 숲이 보이고, 숲의 한가운데로 나무계단이 놓여 있으니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 오르는 이의 기부터 죽이고 보려는 듯 산길은 시작부터 가파르다. 황장산은 1천m에도 못 미치는 산이다. 하지만 들머리의 표고(標高)가 100m도 안되다 보니 고산(高山)으로 알려진 다른 산들보다도 더 높이 올라야만 한다. 그러다보니 처음부터 이렇게 가파를 수밖에 없었나 보다.
▼ 5분쯤 올랐을까 저만큼에 데크로 만든 전망대가 나타난다. 가파른 오르막에 힘들어 하는 이들을 위로라도 하려는 모양이다. 아무튼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전망대에 오르면 화개면 일대가 발아래에 펼쳐진다. 유유히 흘러가는 섬진강의 푸른 물줄기가 시원함을 더해주고, 그 위에 놓인 아치(arch)형의 ‘남도대교’는 ‘영호남의 화합’이라는 캐치프레이즈(catch phrase)를 대변이라도 하려는 양 아름답기 짝이 없다. 다리의 왼편에 보이는 건물들은 새로 지었다는 ‘화개장터’일 것이다.
▼ 산길은 편안하다. 가끔은 가파른 곳도 나타나지만 대부분은 완만한 능선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토종의 소나무들이 울창한 능선은 가끔 갈림길을 만들어 놓는다. 물론 이정표는 없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왼편은 구례군이고, 오른편은 화개면이라는 것만 염두에 두고 산행을 이어가면 될 일이다.
▼ 10분 남짓 진행하면 제법 널찍하게 터를 잡은 묘역(墓域)을 지나고, 다시 10분쯤 더 걸으면 바위지대가 나타난다. 짧은 구간이긴 하지만 볼거리가 제법 많은 구간이다.
▼ 바위지대를 지나면서 산길은 숨을 고른다. 이제부터 경사가 많이 누그러진다. 그리고 시작부터 함께했던 소나무 숲이 한결 더 울창해진다. 그에 따라 코끝을 스치는 솔향 또한 더욱 짙어진다. 내딛는 발걸음의 속도를 뚝 떨어뜨린다. 그리고 가슴을 활짝 연다. 호흡의 크기를 최대한으로 늘려본다. 청량한 기운이 온몸으로 퍼져나간다. 이런 걸 두고 웰빙(well-being)산행, 아니 힐링(Healing)산행이라 할 것이다.
▼ 산행을 시작한지 40분쯤 지나면 구례군에서 세운 이정표(황장산↑ 4.9Km/ 기촌마을← 1.9Km/ 법하마을→ 1.2Km)가 보초를 서고 있는 작은재에 이른다. ‘나지막한 고갯마루라’는 뜻을 지닌 이름이 아닐까 싶다. 이곳에는 하동군에서 세운 이정표(황장산↑/ 구례←/ 법하마을→/ 화개장터↓)가 하나 더 있지만 크게 도움은 되지 못한다. 이정표의 생명은 지명과 방향, 그리고 거리의 표시인데, 그중에서 거리가 빠져있기 때문이다. 이를 보완이라도 하려는 듯 이정표의 아래에다 지도(地圖)를 그려 놓았지만 현재위치가 표기되지 않아 도움이 안 되기는 매한가지이다. 국민이 낸 세금으로 만든 시설물이니 이왕이면 조금 더 신경을 써서 만들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 촛대봉으로 향한다. 산길의 풍경은 여전하다. 토종 소나무 숲은 여전히 울창하고, 그 아래에는 진달래들이 무리지어 피어있다. 오르막길의 경사가 아까보다 조금 가팔라졌지만 힘들 정도는 아니다. 하나 아쉬운 점은 안개가 끼는가 싶더니 점점 더 짙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비가 안 오는 것만 해도 다행이지만 아무래도 오늘 산행은 조망을 기대해서는 안 될 것 같다.
▼ 20분 후, 의미 없는 이정표(황장산 4.0Km/ 작은재 0.9Km)를 지났다싶으면 5분 후에는 삼각점(경남 464호)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삼각점봉’ 위에 올라서게 된다. 누군가 삼각점표지판 위에다 ‘583.4m’라고 봉우리의 높이를 표시해 놓았다. 삼각점봉 정상에서의 조망은 뛰어나다고 알려져 있다. 진행방향에는 황장산이 있고, 시선을 왼편으로 돌리면 왕시루봉과 문바우등 그리고 그 오른쪽 뒤로 노고단, 돼지평전, 반야봉이 시원하게 펼쳐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예외이다. 안개가 짙은 탓에 조금만 떨어져도 형상을 구분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 조망을 포기하고 산행을 이어간다. 앞을 가로막는 봉우리를 피해 우회로(迂廻路)를 만들 줄 아는 마음씨 고운 길이다. 7분 후, ‘삼신마을 갈림길’(이정표 : 황장산← 3.4Km/ 삼신마을↑/ 작은재↓ 1.5Km)을 만난다. 이정표를 따르면 되니 걱정할 일은 아니지만 황장산은 이곳에서 왼편으로 급하게 방향을 튼다.
▼ 갈수록 안개가 짙어지더니 이젠 십여 미터만 떨어져도 사물의 형상을 구분할 수가 없다.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으니 길가 풍경만 둘러보며 산행을 이어갈 뿐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오르막의 경사가 심하지 않고, 거기다 붉게 피어난 진달래꽃 무리들이 잠깐의 눈요깃거리가 되어준다는 점이다.
▼ 12분 후, 돌담으로 둘러싸인 특이한 무덤을 지나니 거대한 바위 하나가 나타난다. 촛대봉이라는 지명을 낳게 한 촛대바위이다. 일부 화개 사람들은 남근석(男根石)이라고도 부른단다. 하지만 일부 지도에는 ‘올빼미바위’라고도 표기되어 있다.
▼ 촛대바위를 지난 산길은 가팔라진다. 하지만 계속해서 가파르지만은 않다. 가파르다가도 완만해지고 또 어떤 곳에서는 내리막길도 나타난다. 그러면서 산길은 서서히 고도(高度)를 높여간다. 능선이 고도를 높여갈수록 안개는 더욱 짙어져 간다. 조금만 떨어져도 사물의 형상을 알아보지 못할 정도이다. 심심찮게 나타나는 기암괴석들이 그저 그렇고 그런 바위들로 변해버리는 안타까운 여정이 계속된다.
▼ 촛대바위에서 20분 남짓 더 걸으면 촛대봉 정상에 선다. 대여섯 평 남짓한 공터로 이루어진 정상은 오석으로 만든 정상표지석과 이정표(황장산 1.9Km, 농평마을 6.6Km/ 둘레길(작은재) 3.0Km)가 자리를 지키고 있다. 구례군에서 세운 것들이다. 하동군에서 세운 또 다른 이정표도 보인다. 산행에 도움이 되지 못하는 이정표이다. 잡목(雜木)들로 둘러싸인 정상은 시야(視野)가 좋지 않은 편이다. 하긴 오늘 같이 안개가 짙게 낀 날에는 시야가 트인다고 해도 별 볼일 없었겠지만 말이다. 참고로 이곳 촛대봉은 봉래봉 또는 삼각봉으로도 불린다고 한다.
▼ 촛대봉 정상에서 삼신리로 내려가는 길이 나뉜다. 국제신문 산행팀이 하산했던 코스이다. 하지만 우린 황장산으로 향한다. 촛대봉을 뒤로하고 신우대숲 사이로 난 산길을 따라 완만하게 내려서면 10분이 조금 못되어 새끼미재에 이르게 된다. 새끼미는 고양이를 일컫는 하동지방의 방언으로 이곳에 고양이 형상의 바위가 있어 붙여진 이름이란다. 하지만 그렇게 생긴 바위는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아니 바위라는 것 자체가 아예 없다.
▼ 새끼미재는 하동군에서 세운 이정표(황장산↑/ 촛대봉↓)가 자리를 지킨다. 하지만 그보다는 스테인리스로 만든 작은 팻말형의 이정표가 더 눈길을 끈다. 누가 세웠는지는 모르겠으나 이곳의 지명을 ‘새끼미재’로 표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길은 양쪽으로 나뉜다. 비록 이정표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왼편은 조동마을, 오른편은 용강마을로 연결된다. 조동마을에 비해 용강마을 방향의 길이 훨씬 더 뚜렷하지만 출입을 막고 있는 모양이다. 사유지이므로 출입을 하지 말라고 적힌 종이가 비닐 속에서 썩어가고 있는 것을 보면 말이다.
▼ 새끼미재를 지나면서 산길은 급격히 가팔라진다. 어쩌면 오늘 산행에서 가장 가파른 구간일 것이다. 그리고 10분 후에는 바위 벼랑 위에 만들어진 데크전망대에 올라서게 된다.
▼ 오늘 같은 날에 전망대는 있으나 마나이다. 바로 앞에 있는 사물도 잘 알아볼 수 없는데 어찌 멀리 있는 풍경까지 기대 할 수 있겠는가. 전망대의 방향으로 보아 지나온 촛대봉과 이를 둘러싸고 있는 삼신봉과 시루봉, 형제봉 등 인근의 높은 산들이 조망될 것 같지만 눈앞에 펼쳐지는 세상은 온통 안개만이 자욱할 뿐이다.
▼ 다시 산행을 이어간다. 아까보다는 정도가 좀 덜하지만 가파르기는 매한가지이다. 촛대봉과 황장산의 고도차이가 200m가 넘는데 이를 극복하느라 서두르고 있는 모양이다.
▼ 12분 후, ‘중기능선 삼거리’(이정표 : 황장산 1.4Km, 평도삼거리 2.7Km/ 천왕사 3.1Km)를 만난다. 왼편은 조동마을로 내려가는 길이다. 하지만 이정표에는 천왕사로 표기되어 있으니 참조한다.
▼ 중기능선 삼거리를 지난 산길은 그 기세를 조금 누그러뜨린다. 그리고 8분 후에는 이정표(황장산 0.7Km/ 작은재 4.2Km)가 보초를 서고 있는 887m봉에다 올려놓는다.
▼ 이후부터 산길은 많은 변화를 보여준다. 우선 오르막만을 고집하던 산길이 오르내림으로 바뀐다. 그리고 엉성하긴 하지만 밧줄난간까지 설치된 바윗길도 나타난다. 거기다 산죽(山竹) 숲도 빼놓을 수 없다. 어른의 허리높이 정도로 자란 신우대들이 펼치는 푸르른 세상도 잠깐의 눈요깃거리로 충분하기 때문이다.
▼ 그렇게 16분 정도를 진행하면 전위봉을 만나고, 이어서 잠시 후에는 황장산 정상에 올라서게 된다. 촛대봉에서 정확히 1시간, 산행을 시작한지는 2시간40분이 조금 더 지났다.
▼ 제법 너른 공터로 이루어진 황장산 정상은 구례군에서 만든 오석(烏石)으로 된 정상표지석과 이정표(평도삼거리 1.3Km, 농평마을 4.7Km/ 남도대교 8.2Km), 그리고 삼각점 하나가 자리를 지키고 있다. 참고로 황장산(黃獐山)은 그 근원을 노루(獐)에서 찾는 이들이 많다. 인근 반야봉의 아래에 노루목이란 지명이 있다. 반야봉에서 불무장등으로 뻗어 내린 산세(山勢)가 마치 노루가 머리를 치켜들고 있는 듯한 형상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들은 ‘노루목’의 노루와 황장산의 노루 ‘장(獐)’자를 같은 의미로 받아들인다. 그 이유로 ‘불무장등(不無長嶝, 1,446m) 능선’에 위치한 황장산의 뿌리가 반야봉이라는 것을 들면서 말이다. 하지만 하동문화원에서 발행한 ‘하동군 지명지(河東郡 地名誌)’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으니 참조할 일이다. “황장산의 한문 표기가 잘못되어, 지금은 ‘누른 노루’라는 ‘황장산(黃獐山)’으로 쓰고 있으나 원래의 지명은 정상(고개)까지 멀고도 먼 산이라는 뜻인 ‘항장산(項長山)’이었다.”
▼ 정상에서의 조망(眺望)은 빼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이 지리산 방향에 ‘조망안내도’까지 세워 놓았다. 하지만 오늘은 예외이다. 안개 때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것이다. 아쉬운 마음을 다른 이의 글로써 대신해 본다. “지리산 자락에 발을 담근 황장산의 또 다른 면모가 펼쳐진다. 지리산은 서쪽 왕시루봉으로부터 북쪽 노고단, 반야봉을 지나 동쪽의 영신봉으로 주능선을 이어간다. 영신봉에서 남쪽으로 흘러내린 능선은 삼신봉을 지나 시루봉과 형제봉을 세우더니 섬진강을 만나 그제야 숨을 죽인다.” 안내도에 천왕봉까지의 능선을 모두 그려놓은 걸로 보아 지리산 능선 전체가 다 시야에 잡히지 않을까 싶다.
▼ 하산을 시작한다. 정상석 뒤, 그러니까 이정표의 평도삼거리·농평마을 방향이다. 좁다란 진달래 터널을 빠져나간다.
▼ 잠시 후 로프에 의지해서 바윗길을 짧게 내려섰다가 맞은편의 작은 바위봉 하나를 넘으면 산길은 가파른 내리막길로 변한다. 그리고 15분 정도 후에는 안부에 내려서게 된다. 하산코스로 예정된 모암골은 이곳에서 오른편으로 내려가야만 한다. 하지만 철조망으로 막아 놓았다. ‘산나물 불법채취 금지’라는 현수막까지 걸어 놓았다.
▼ 철조망을 피해 오른편으로 내려선다. 산나물만 채취하지 않는다면 별 문제가 없을 것 같아서이다. 잠시 후 개인사유지이니 돌아가라는 표지판을 만난다. 그렇다고 돌아갈 수는 없는 일이다. 우리의 처지는 선두대장의 뒤를 따를 수밖에 없는 운명이고, 선두대장이 깔아놓은 ‘진행방향표시지’는 모암골로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 가파른 내리막길을 잠시 내려가면 커다란 바위 하나가 나타난다. 크기도 대단하지만 생김새까지도 범상치 않은 바위이다. 지금 내려가는 골짜기의 이름이 모암골인데, 혹시 이 바위의 이름이 모암이 아닐까 하여 카메라에 담아본다.
▼ 산길은 흔적을 찾기가 힘들 정도로 희미하다. 길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또 어찌 보면 앞서간 일행들이 지나가며 새로 만들어 놓은 듯도 싶다. 그러다보니 진행속도가 더뎌질 수밖에 없다. 가뜩이나 내려가는 길이 사나운데, 선두대장이 깔아놓은 ‘방향지시지’ 조차 찾기가 만만찮기 때문이다. 하지만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다. 잘 살펴보면 산악회들이 매달아 놓은 리본들이 눈에 띌 것이기 때문이다.
▼ 그렇게 얼마쯤 걸었을까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작은 개울이 나타난다. 그리고 아래로 내려갈수록 물줄기가 굵어지더니 나중에는 쉽게 건너지 못할 정도로까지 물살이 거세져 버린다.
▼ 조금 반반하다 싶어 나아가다보면 계곡에서 멀어지는 느낌이다. 아니다 싶어 다시 계곡으로 돌아오면 바윗길로 변하면서 길은 다시 험해진다. 거기다 흔들거리는 바위를 건너뛰며 계곡을 가로지르기까지 해야 하니 시간은 한없이 지체된다.
▼ 푸른 이끼들이 점령하고 있는 계곡은 별천지(別天地)이다. 언젠가 KBS-TV의 촬영팀과 함께 둘러봤던 삼척의 ‘이끼폭포’ 만큼은 아니어도 일반인들이 쉽게 만날 수 있는 풍경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외진 곳에 위치한 덕분에 아직까지도 때를 덜 탔기 때문일 것이다.
▼ 계곡은 숫제 물의 나라이다. 크고 작은 바위들을 넘거나 에돌면서 수많은 폭포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어디선가 눈에 익었던 풍경이다. 그렇다. 2년쯤 전에 들렀던 크로아티아의 ‘플리트비체국립공원(Plitvice Lakes National Park)’에서 이와 비슷한 풍경을 보았던 것 같다.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곳',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숲', '크로아티아의 영광'이라는 수식어를 모두 가지고 있는 플리트비체국립공원은 호수(湖水)로 유명하다. 하지만 내 눈에는 윗 호수의 물이 아래 호수로 흘러내리면서 만들어내는 수많은 폭포들이 더 경이롭게 보였었다. 사실 이곳의 물줄기들은 그 규모가 훨씬 작고 폭포들의 숫자 또한 플리트비체국립공원에 크게 못 미친다. 그럼에도 그때의 광경이 연상되었다는 것은 그만큼 이곳의 풍경이 빼어나다는 증거일 것이다.
▼ 안부에서 내려선지 50분 정도가 지나면 대나무 숲이 나타난다. 언제쯤인지는 몰라도 사람이 살았다는 증거일 것이다. 그리고 잠시 후에는 외딴 움막 한 채를 만나게 된다. 인기척이 없는 것을 보면 산나물이나 버섯을 채취할 때나 이용하는 모양이다. 아니면 이곳까지 내려오는 동안 거미줄처럼 널려있던 고로쇠 채취용 호스 등을 보관하는 자재(資材) 창고일 것이고 말이다.
▼ 움막을 지나면서 산길은 또렷해진다. 하지만 안심해서는 안 된다. 굵어진 물줄기가 사람의 통행을 막고 있기 때문이다.
▼ 15분쯤 내려갔을까 계곡이 철조망으로 막혀있다. ‘개인사유지이니 무단출입할 경우 고발조치하겠다.’는 서슬 시퍼런 경고판까지 내걸려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사유지의 경계선을 따라 설치된 금(禁)줄을 따라 길이 나있다는 것이다. 그 길을 따라 오른편으로 향한다. 그리고 사면으로 난 산길을 따라 언덕 두어 개를 넘는다.
▼ 얼마쯤 걸었을까 저만큼 아래에 차밭이 보인다. 전에 가보았던 보성의 차밭에는 비할 수 없지만 나름대로 너른 규모이다. 이곳 쌍계사 인근이 생로병사(生老病死)를 초월한 신선(神仙)들이 즐겼다는 녹차, 즉 대나무 이슬을 먹고 자란 찻잎으로 만든다는 죽로작설차(竹露雀舌茶)의 원산지이라고 했는데 맞는 얘기인 모양이다. 그러니 저 정도의 차밭이 있는 게 당연할 테고 말이다. 이중환은 ‘택리지(擇里志)’에서 이곳을 ‘부산(富山)’으로 적고 있다. 노력하지 않아도 풍족하게 살 수 있다고 해서이다. 해동의 문장 고운 최치원선생이 신선으로 돌아가기 전 말년(末年)을 지냈고, 가락국 김수로왕의 일곱 왕자가 성불(成佛)을 하기 위해 이곳을 찾았던 이유가 아닐까 싶다. 먹고 살 걱정 없이 작설차나 마시며 살아가는 것, 그 자체가 바로 신선이나 부처의 삶이었을 테니까 말이다. 참고로 이 부근 쌍계사 아래 장죽전(長竹田)에는 차의 시배지(始培地)가 있다. 828년 신라 흥덕왕 때 사신으로 당나라에 갔던 김대렴이 차나무 종자를 가져다 이곳에 심은 것이 국내 차 역사의 효시가 됐다고 한다. 실제로 인근에는 수령 천년이 넘는 야생 차나무(도기념물 제264호)도 있다. 이 나무에서 딴 녹차 100g은 지금도 2000만 원을 호가한다니 믿고 말고는 본인이 알아서 할 일이다.
▼ 산행날머리는 쌍계사주차장(화개면 용강리)
차밭을 지나면 용강리, 산골치고는 꽤나 큰 마을이다. 골목을 따라 내려오다 보면 다원(茶園)이라고 쓰인 간판들이 유난히도 자주 눈에 띈다. 조금 전에 지나왔던 차밭들과 무관하지 않을 듯 싶다. 그리고 잠시 후 쌍계사주차장에 이르게 되면서 오늘 산행이 종료된다. 오늘 산행은 총 5시간10분이 걸렸다. 거의 쉬지 않고, 거기다 속도까지도 줄이지 않은 채로 걸었는데도 5시간을 넘겼으니 생각보다 산행거리가 길었던가 보다. 참고로 이곳에서 화개장터까지의 5㎞ 길은 ‘쌍계사 벚꽃 10리 길’이란 이름으로 불린다. 이 길은 길바닥에 흩날리는 꽃잎들과 화심(花心)에서 꿀을 핥아내는 벌들의 분주함, 그리고 꽃 길 옆 개천에서 노니는 은어 떼의 한가함이 어우러지며 춘색(春色)을 다투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그만큼 이곳의 풍광이 빼어나다는 얘기일 것이다. 산악회(산두레)에서 없는 길을 만들어가면서까지 이곳으로 하산지점을 잡은 이유일 테고 말이다. 하지만 봄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꽃이 져버린 벚나무들은 붉은 속 내장을 흉물스럽게 내보이고 있을 따름이다. 벚나무가 만들어낼 수 있는 가장 흉한 몰골이다. 어제 내린 봄비의 양이 계절에 맞지 않게 많았던 모양이다. 그렇다면 주민들이 부르는 ‘혼례길목’이란 길의 이름은 그 목적을 다한 셈이다. 벚꽃 아래에서 혼담을 나누어야 백년해로(百年偕老)를 기약할 수 있는데, 그 꽃이 다 저버렸으니 말이다.
♧ 에필로그(epilogue), 하산 코스로 잡았던 모암골은 오랜만에 만난 절경이었다. 바위로 이루어진 협곡이 비록 거대하지는 않지만 시선을 끌기에 부족함이 없었고, 크고 작은 바위들이 널브러진 계곡에는 물의 양도 많았다. 그리고 그 물줄기들은 계곡의 바위들을 넘거나 에돌아 내리면서 크고 작은 수많은 폭포들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한마디로 장관이었다. 크로아티아의 ‘플리트비체국립공원(Plitvice Lakes National Park)’이 생각났다고 하면 믿을는지 모르겠다.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곳'에 꼽힐 정도로 절경이라는 플리트비체국립공원은 호수(湖水)로 유명하다. 하지만 난 호수들이 만들어 내는 수많은 폭포들이 더 좋았었다. 사실 모암골의 물줄기들은 그 규모가 훨씬 작고 폭포들의 숫자 또한 플리트비체국립공원에 크게 못 미친다. 그럼에도 그때의 광경이 연상되었다는 것은 그만큼 이곳의 풍경이 빼어나다는 증거일 것이다. 이런 절경을 그냥 방치하지 말 것을 소관 지자체(地方自治團體)에 정중하게 권해본다. 등산로 등을 조금만 정비한다면 하동에는 또 하나의 멋진 휴식처가 탄생할 것으로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토지 소유자들과의 협의가 필요하겠지만 말이다.
'산이야기(전남)'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선문 종찰 보림사를 품은 작지만 알찬 산, 가지산(‘16.5.7) (0) | 2016.05.16 |
---|---|
천년고찰 쌍봉사를 품고 있는 철쭉 명산, 계당산(‘16.5.1) (0) | 2016.05.09 |
소리 소문 없이 빼어난 산세를 펼치는 중상봉-계족산(‘16.4.2) (0) | 2016.04.12 |
입소문은 덜 탔지만 빼어난 산세를 지닌 부용산(‘16.2.27) (0) | 2016.03.07 |
구산선문 중 하나인 태안사를 품은 곡성의 봉두산(‘15.11.3) (0) | 2015.11.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