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용산(芙蓉山, 609m)
산행일 : ‘16. 2. 27(토)
소재지 : 전남 장흥군 용산면과 관산읍, 칠량면의 경계
산행코스 : 운주마을→삼밭골능선→수리봉→부용산→부용사→운주저수지→운주마을(산행시간 : 3시간 15분)
함께한 산악회 : 청마산악회
특징 : 장흥에 있는 산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으레 천관산을 떠올린다. 그리고 제암산과 사자산, 일림산이 뒤를 잇는다. 그 외에도 편백나무 숲으로 유명한 억불산과 천년고찰 보림사를 품은 가지산, 그리고 산성(山城)을 끼고 도는 수인산 등 괜찮은 산들이 많은 편이다. 하지만 이 지방 사람들은 장흥의 3대 명산으로 부용산을 꼽는 것을 망설이지 않는다고 한다. 바윗길을 품은 산세(山勢)나 조망(眺望)이 그만큼 뛰어나다는 얘기일 것이다. 거기다 동학농민혁명의 마지막 투쟁지라는 역사적 의미까지 지니고 있으니 어찌 주민들로부터 사랑을 받지 않을 수 있겠는가. 아무튼 부용산은 전형적인 육산(肉山)이다. 하지만 주능선 삼거리에서 수리봉을 거쳐 부용산으로 연결되는 능선은 암릉으로 이루어져 있다. 비록 바위를 잡아야만 오를 수 있는 바윗길은 아니지만 조망만큼은 시원시원하다. 동쪽에는 용산면의 풍요로운 들녘, 그 너머로 철쭉으로 유명한 제암산과 사자산, 일림산을 품은 호남정맥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고, 서쪽으로 눈을 돌리면 만덕산과 주작산, 두륜산, 달마산이 손짓한다. 그리고 남쪽에는 억새로 유명한 천관산, 북쪽은 편백나무 숲 휴양림이 있는 억불산이 고개를 내민다. 결과적으로 한번쯤 더 찾아도 좋을 만큼 괜찮은 산이라는 얘기이다.
▼ 산행들머리는 운주마을(장흥군 용산면 운주리)
남해고속도로(영암-순천) 장흥 I.C에서 내려와 23번 국도를 타고 관산방면으로 내려오면 잠시 후 용산면(장흥군)의 소재지인 접정리가 나온다. 이곳 용산사거리에서 우회전하여 들어오면 얼마 지나지 않아 산행들머리인 운주마을에 이르게 된다. 구름이 산마루에 걸려서 머무는 날이 많기 때문에 붙여진 마을이름이란다. 참고로 산행들머리인 용산면의 원래 이름은 장흥의 남쪽이라고 해서 남면 또는 남상, 남하면 등으로 불렸다. 그러다가 1936년에 부용산에서 이름을 따와 용산면으로 고쳤다고 한다. 이곳 사람들이 얼마만큼 부용산을 귀하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알려주는 한 단면이 아닐까 싶다. 아무튼 마을에 이르면 거대한 느티나무 두 그루가 길손을 맞는다. 오백년 가까이 묵은 당산나무로 군(郡)에서 보호수로 지정해놓았다. 나무 앞에 제단(祭壇)이 만들어져 있고, 입구에 금(禁)줄까지 쳐놓은 것으로 보아 이곳 주민들이 신성(神聖)시 하고 있는 모양이다. 산행 후에 만난 주민의 말에 의하면 약 150년 전부터 매년 음력 1월 15일이면 이 나무 아래에서 별신제(別神祭)를 지낸단다. 제사를 잘 지내면 마을 주민은 물론 외지에 나간 사람들까지 무병·무탈하게 된다는 것을 믿으면서 말이다. 다시 말해 마을의 수호수(守護樹)인 셈이다.
▼ 체험장 옆으로 난 마을 안길로 들어서면서 산행이 시작된다. 들머리에 ‘등산안내도’ 외에도 ‘산촌생태마을 조성 안내판’과 ‘약다산 생체 체험공원 안내판’ 등이 세워져 있으니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안내판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운주마을은 ‘생태체험마을’이다. 마을 주변 산에다 표고버섯과 산약초, 산채류 등을 재배하는 한편, 마을 방문객을 위한 주요 진입로를 정비하고 산약초 재배단지를 활용한 산약초 축제 등을 열고 있다. 이런 활동이 인정을 받아 산림청 주관으로 실시한 2009년 ‘산촌생태마을 평가’에서 우수마을로 선정되기도 했다.
▼ 체험장 앞에는 디딜방아가 만들어져 있다. 아마 이 마을에서 공동으로 사용해오던 방아를 옮겨놓은 모양이다. 그리고 그 옆에 둥그런 구(球) 위에다 곤충 두 마리를 얹어놓은 조형물이 보인다. ‘쇠똥구리’란다. 쇠똥구리란 본디 쇠똥을 뭉쳐서 굴리는 곤충이다. 그렇다면 둥그런 구는 쇠똥일 것이다.
▼ 마을 안길을 지나면 저만큼에 운주저수지가 나타난다. 길은 저수지 조금 못미처에서 둘로 나뉜다. 하지만 어디로 가더라도 정상에 오를 수 있으니 고민할 필요는 없다. 계속해서 임도를 따를 경우에는 부용사를 거쳐 정상에 이르게 되고, 수리봉을 먼저 거치고 싶다면 왼편 산자락으로 들어서면 된다. 다만 갈림길에 세워진 이정표(등산로, 오도재← 1.8Km/ 부용사·용샘, 부용산 정상↑ 1.7Km)에 현혹되지 않는 주의는 필요하다. 뜬금없이 오도재를 표기해 놓았기 때문이다. 물론 이 길로 들어서더라도 오도재를 갈 수는 있다. 주능선삼거리까지 오른 뒤에 왼편 능선을 따라 내려가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느 누가 산의 정상으로 향하지 않고 다시 내려가는 길을 선택하겠는가. 그래서 뜬금없다는 표현을 썼다.
▼ 산자락으로 들어서는 입구 양쪽에 대나무를 세워 놓았다. 그리고 둘 사이에는 금(禁)줄을 쳐놓았다. 마을 입구의 당산나무 앞에도 금줄이 쳐져 있었던 것을 보면 마을에서 제사(祭祀)라도 지냈는가 보다. 아무튼 대나무 이파리가 아직까지도 싱싱한 것을 보면 옛날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정월 대보름’관련 행사였지 않나 싶다.
▼ 통나무계단을 오르면서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주민들이 ‘삼밭골’이라 부르는 능선이다. 잠시 후 가파른 오르막길이 시작된다. 비록 버거울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땀께나 쏟아야만 하는 코스이다. 하지만 다행이도 그 거리는 길지가 않다. 6~7분 정도가 지나면 산길은 그 기세를 뚝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 기세를 죽였다고 해서 오르막길이 아주 없어져버린다는 얘기는 아니다. 다만 긴 완경사(緩傾斜)와 짧은 급경사(急傾斜)가 번갈아가며 나타날 따름이다. 길가는 온통 참나무 천지, 간혹 소사나무들도 섞여 있다. 그런데 그 참나무들이 소사나무를 닮았다. 남해안의 산들 대부분, 아니 이곳 부용산의 주능선만 해도 소나나무가 주인노릇을 한다. 소사나무에 빌붙어서 살다보니 생김새까지 닮아버렸나 보다. 그렇게 20분 정도를 오르면 비석까지 갖춘 ‘수원 백씨’ 무덤이 나온다.
▼ 무덤을 지나자마자 산죽(山竹)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울창하긴 하지만 어른의 허리춤에나 닿을 정도로 키가 작아 시야를 가로막지는 않는다. 이런 풍경은 산행을 마칠 때까지 계속해서 나타난다. 부용산이 지닌 특징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산이 온통 산죽들로 뒤덮여 있는 것이다. 이는 약다산(藥多山)이란 이름에 어울리는 풍경은 아닌 것 같다. 약다산이란 산에 약초(藥草)가 많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인데, 저렇게 산죽들이 많은 곳에서는 약초가 자라날 것 같아 보이지 않기에 하는 말이다.
▼ 무덤을 지나서도 산길의 풍경은 그다지 변하지 않는다. 다만 소사나무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그 밀도(密度)를 높여가고, 산길의 경사 또한 점차 가팔라져 간다는 점이 달라졌을 따름이다. 그렇게 20분 정도를 오르면 주능선삼거리(이정표 : 부용산 정상→ 1.9Km, 부용사 2.8Km/ 오두재(임도)← 0.7Km, 관산 성산계곡/ 운주마을↓ 1.8Km)에 올라서게 된다.
▼ 오른편 능선을 따른다. 이정표가 가리키는 ‘부용산 정상’ 방향이다. 비록 이정표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중간에 수리봉을 거치게 되니 참조한다. 일단 능선에 올라서고 나면 산길은 평탄해진다. 걷기에 딱 좋은 길이다.
▼ 능선을 따르다보면 가끔 거대한 바위들을 만나기도 된다. 하지만 어느 것 하나 바위까지는 접근할 수가 없다. 빽빽하게 들어찬 잡목(雜木)들이 길을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멋진 전망대를 그냥 지나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행정기관에서 조금만 더 신경을 썼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바위 주변의 잡목들을 조금만 제거했더라면 등산객들이 좋아하는 멋진 전망대가 생겼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14분쯤 걸으면 무인산불감시탑이 나온다.
▼ 산불감시탑을 지나면서 바윗길이 시작된다. 비록 거대한 암벽(巖壁)은 아니지만 크고 작은 바위를 딛고 넘는 등 나름대로 풍치가 있는 암릉이다. 그리고 석다산(石多山)이란 이름이 왜 붙었는가를 알 수 있게 해주는 구간이다. 길가에는 철쭉과 진달래나무들이 많이 보인다. 꽃이라도 활짝 핀다면 바위와 어우러져 한 폭의 잘 그린 산수화를 만들어낼 게 분명하다.
▼ 게다다 바윗길을 걸으며 즐기는 조망 또한 만만찮을 게 분명하다. 오늘은 연무(煙霧)로 인해 시야가 막혀있지만 주변의 명산들이 한눈에 쏙 들어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날씨가 좋은 날에는 도암만과 다도해의 풍경까지 선명하게 눈에 들어온단다.
▼ 수리봉 근처는 울퉁불퉁한 바위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중에 베틀바위도 있다. 동학농민혁명 때 아녀자들이 바위 아래에서 베를 짰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부용산은 동학농민혁명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는 산이다. 1897년 갑오농민혁명 때 전봉준 장군과 함께 농민군을 이끌었던 이방언이란 장군이 있었다. 그와 그를 따르던 장흥 사람들이 석대들 전투에서 패한 뒤 마지막 보루로 삼아 끝까지 항전하다 일본군과 관군에 전멸당한 한이 서린 역사를 안고 있는 산이 바로 부용산이다.
▼ 조망을 즐기면서 바윗길을 오르다보면 어느새 수리봉 정상이다. 산행을 시작한지 1시간20분 만이다. 비좁기 짝이 없는 정상은 텅 비어있다. 정상표지석은 물론이고 그 흔한 이정표 하나 보이지 않는다는 얘기이다. 거기다 정상석이 없는 곳에서 흔히 만나게 되는 ‘정상표지판’까지도 눈에 띄지 않는다. 지형도에 표기되어 있지 않은 봉우리라는 것이 그 원인인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산행에 이력이 붙은 산꾼들이 아니라면 이곳이 정상이라는 것도 모르고 그냥 지나칠 게 분명하다.
▼ 수리봉에서 내려선다. 허리를 곧추세우고는 결코 내려설 수 없을 정도로 가파른 내리막길이다. 주변의 나무들에 의지해가면서 조심조심 내려선다.
▼ 안부로 내려섰던 산길은 다시 오름짓을 시작한다. 능선은 언제부턴가 소사나무가 주인노릇을 하고 있다.
▼ 수리봉을 내려선지 10분쯤 지나면 다시 바윗길이 시작된다. 앞서가던 집사람이 암반 위에 자리를 잡는다. 시야가 막힘없이 터지는 곳이다. 나도 집사람 곁에 주저앉는다. 그리고 준비해온 주전부리를 꺼내놓는다. 막걸리 한잔 걸쭉하게 들이키는데 한줄기 바람이 볼을 간질이며 지나간다. 보드라운 바람결에는 봄기운이 완연하다. 그렇게나 추웠던 엊그제의 추위도 찾아오는 계절만큼은 막을 수 없었나 보다. 허나 아쉬운 점도 있다.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이 또렷하지 않다는 것이다. 바다를 향해 고개 숙인 나지막한 산야(山野)들이 짙은 연무(煙霧) 속에 갇혀 버렸다.
▼ 다시 산행을 이어간다. 아까 쉴 때에는 왼편에 펼쳐지는 조망을 즐겼는데 이번에는 오른편으로 시야가 열린다. 발아래에 운주마을과 운주저수지가 또렷하고, 비록 희미하긴 하지만 그 뒤편에는 용산면의 너른 들녘이 펼쳐진다.
▼ 바윗길을 걷는 재미가 제법 쏠쏠하다. 굳이 붙잡지 않고도 오를 수 있을 정도로 아기자기한 바윗길이니 위험한 곳은 찾아볼 수가 없다. 시선을 자유로이 돌릴 수 있는 여유까지 생김은 물론이다. 좌우로 펼쳐지는 시원스런 조망을 실컷 즐길 수 있는 구간이란 얘기이다. 비록 오늘은 그게 허용되지 않고 있지만 말이다.
▼ 능선에서 만난 기암(奇巖), 매의 머리를 쏙 빼다 닮았다. 만일 수리봉의 전체 모양이 매의 형상을 닮지 않았다면 이 바위에서 그 이름의 원천을 삼아도 되겠다.
▼ 바윗길이 끝났다 싶으면 산길은 보드라운 흙길로 변한다. 이후부터는 육산이 갖는 전형적인 특징들을 보여준다. 그리고 잠시 후에는 부용산 정상에 올라서게 된다. 수리봉을 내려선지 30분 만이다. 참고로 부용산(芙蓉山)은 연꽃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불가에서는 부용화를 불교를 상징하는 귀한 꽃으로 여긴다. 이 때문에 풍수(風水) 전문가들은 부용산을 연화부수형의 명산으로 여긴다고 한다. 이밖에도 부용산은 약초가 많다 하여 약다(藥多)산, 부처가 솟을 산이라 하여 불용(佛聳)산, 돌이 많아 석다(石多)산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다.
▼ 헬기장을 겸하고 있는 널따란 정상에는 자그마한 정상표지석과 삼각점(장흥 25. 1990 재설), 그리고 이정표(부용산 0.9Km, 용산 운주 2.0Km/ 오두재 2.5Km)가 자리를 지키고 있다. 정상은 또한 쉼터로 이용되기도 하는 모양이다. 한쪽 귀퉁이에 놓아둔 평상에 드러누워 낮잠을 자고 있는 등산객이 그렇게 평화로워 보일 수가 없다. 이 모든 여유가 짧은 산행코스 덕분이 아닐까 싶다. 사방이 탁 트인 정상에서의 조망은 한마디로 뛰어나다. 하지만 아쉽게도 오늘은 예외이다. 아직까지도 연무가 걷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저 앞서 다녀간 사람들의 글로서 아쉬움을 달래본다. 산꼭대기에 올라서면 천관산과 제암산이 바로 이웃하고 억불산이 어깨를 스친다. 동쪽으로는 득량만, 서쪽으로는 강진만의 푸른 바다가 눈앞에 아른거린다. 그리고 ‘일단 올라가보면 남도의 끝자락에 ‘이런 명산도 있었는가.’라고 감탄했다던 그의 말이 계속해서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 하산을 시작한다. 장구목재 방향이다. 잠시 후 주능선삼거리에서 길이 두 갈래로 나뉜다. 왼편은 장구목재를 거쳐 괴바우산으로 연결되는 능선이다. 그런데 ‘진입제한’이라는 경고판이 통행을 막고 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주민들의 작품이 아닐까 싶다. 집사람의 투정으로 괴바우산을 가지 않기로 한 이상 차라리 잘 되었다 싶다. 이곳에서 곧바로 하산하는 게 훨씬 편하기 때문이다. 거기다 부용사라는 산사(山寺)까지 덤으로 들를 수 있음은 물론이다. 참고로 장구목이란 장구의 목처럼 움푹 파인 모양새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리고 임진왜란 때 장사 이맹(李孟)이 이곳에서 활을 쏘아 왜적을 죽여 피란민들을 안전하게 했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 산죽(山竹) 숲 사이로 난 하산 길은 가파르게 시작된다. 하지만 길을 잘 닦아놓아서 내려서는 데는 어려움이 없다.
▼ 갈림길에서 5~6분쯤 내려오면 이정표(부용사 0.7Km/부용산 정상 0.1Km)가 보이고, 이어서 저만큼에 샘 하나가 나타난다. 안내판까지 갖추고 있는 ‘용샘’이다. 예로부터 부용산의 석간수(石間水)는 만병에 효험이 있다고 알려져 왔다. 그리고 그 석간수는 골짜기마다 쉼 없이 솟아났다고 한다. 그 석간수 중의 하나가 바로 용샘이 아닐까? 그렇다면 두 말할 것 없이 마시고 봐야 할 것이다. 마침 표주박까지 놓여 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집사람은 영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는 표정이다. 바닥에 고여 있는 물이 썩 깨끗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녀의 말마따나 용샘은 넘치지 않고 고여 있었다. 흐르지 않는 물은 썩는 법이다. 집사람이 마시지 않는 게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 안내판을 들여다본다. 병자(病者)들이 이 용샘의 물을 마시면 병이 나았단다. 그리고 아주 심한 가뭄을 빼고는 물이 마르지 않는단다. 수량(水量)이 풍부하다는 안내판의 글귀가 맞는다면 등산로를 정비할 때 물길을 조금 터 주었더라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랬더라면 약효가 좋다는 물을 한 모금도 못 마시고 발길을 돌려야 하는 나 같은 사람들이 없었을 것 같기에 하는 말이다. 참고로 이곳 용샘은 가뭄이 심할 때 주민들이 개를 잡아서 기우제(祈雨祭)를 지내던 곳이란다. 왜 하필이면 개였을까? 농담이지만 몸보신을 겸한 제사였을지도 모르겠다. 무더운 여름철에 개를 잡아 몸보신을 하는 게 풍습이던 시절도 있었기에 하는 말이다. 하지만 그게 아니란다. 살아있는 개의 목을 친 다음 피를 용샘의 바위벽에 발랐단다. 그러면 용(龍)이 지저분한 개의 피를 씻어버리기 위해 비를 내리게 했다는 것이다.
▼ 서운함을 달래며 부용사를 향해 발길을 옮긴다. 반반하던 산길은 잠시 후 가파르게 변한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다. 부담 없이 내려설 수 있게끔 등산로 정비가 잘 되어 있기 때문이다.
▼ 발길이 편하면 주변 풍광이 눈에 잘 들어오는 법이다. 오른편 나뭇가지 사이로 수리봉이 나타난다. 그런데 그 생김새가 여성의 젖가슴을 닮았다. 산의 이름으로 보아 독수리를 닮아야 하는데도 말이다. 조금 더 눈에 힘을 주면서 바라본다. 맞다. 매의 부리를 닮은 것 같기도 하다.
▼ 용샘에서 부용사까지는 제법 먼 편이다. 하지만 가끔가다 터지는 조망을 즐기면서 내려가다 보면 지루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렇게 25분 정도를 내려가면 부용사(이정표 : 용산 운주마을 1.2Km/ 부용산 정상 0.8Km)에 이르게 된다. 일반 여염집 냄새가 물씬 풍기는 부용사는 절이라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 절간 앞 고목(古木) 아래에 모셔진 돌부처만 아니었다면 이곳이 절간인줄도 모르고 그냥 지나쳤을 것이다. 늘상 보아오던 단청이 화려한 절간들에 너무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부용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소속의 사찰이다. 고려 때 창건되었을 것으로 추정하지만 이를 증명할 문헌(文獻)은 전해지지 않는다. 조선 말 동학혁명 때 전소(全燒)되었다고 했는데, 근래에 새로 지었나 보다.
▼ 이곳 부용사는 용산벌에서 피어오르는 운무(雲霧)와 떠오르는 일출의 장관을 볼 수 있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주민들이 자식들의 성공을 비는 기도처로도 유명하단다. 절에서 내려오는 길에 지나가는 차량을 4대나 만날 수 있었다. 자그마한 사찰 치고는 찾는 사람이 제법 많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런 이유가 있었나 보다.
▼ 눈여겨 봐둘 것도 없어 하산을 서두른다. 하지만 아무리 바빠도 빼먹지 말아야 할 것이 하나 있다. 아까 용샘에서 못 마신 약수를 꼭 마셔보라는 것이다. 마침 절에서 ‘부용산 약다수(藥多水)’라는 약수터를 만들어 놓았다. 거기다 아까의 용샘과는 달리 쏟아지는 물줄기까지 시원스럽다. 마음 놓고 마셔도 된다는 얘기이다. 물맛은 기대에 어긋나지 않았다. 여간 달고 시원한 게 아니다. 산행을 하며 쌓였던 피로가 한순간에 가셔버릴 정도다. 집사람의 손길이 바빠진다. 남아있던 물통을 비워버리고 새로 채워 넣느라 분주하다.
▼ 부용사에서부터는 임도를 따른다. 시멘트로 포장된 길이 싫다면 숲속으로 난 등산로를 이용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린 임도를 따랐다. 산죽사이로 난 숲길이 썩 좋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 임도를 걷다 만난 눈요깃거리, 탱글탱글하게 영근 명감나무 열매가 예쁘고, 건강과 행복을 빌어주는 돌장승은 귀엽기까지 하다. 거기다 길은 편백나무 숲을 가르기도 한다. 이곳 장흥은 광활한 편백나무 숲으로 유명한 곳인데, 그 영향이 이곳까지 미친 모양이다.
▼ 부용사에서 20분쯤 걸었을까 왼편에 커다란 저수지가 나타난다. 농업용 저수지인 ‘운주저수지’이다. 하지만 저수지는 거의 유원지 수준으로 잘 조성되어 있다. 정자와 산책로, 거기다 음수대(飮水臺)와 운동기구까지 골고루 갖추었다. 갈수록 빈집이 들어나고 있다는 농촌이다. 그런 시골을 사람들이 되돌아 올 수 있는 멋진 삶터로 만들기 위한 사업의 일환이 아닐까 싶다.
▼ 장흥은 역시 따뜻한 남쪽 나라이다. 그 증거라도 보여주려는 양 샛노란 민들레꽃이 활짝 피어났다. 경칩(驚蟄)이 되려면 며칠이 더 남았는데 이곳 남쪽 나라에는 이미 봄이 활짝 무르익었다.
▼ 산행날머리는 운주마을(원점회귀)
저수지 둑 아래로 내려서면 곧이어 산행을 시작하면서 만났던 삼거리를 만나게 되고, 이어서 저만큼에 운주마을이 나타나면서 오늘 산행이 종료된다. 오늘 산행은 총 3시간30분이 걸렸다. 간식을 먹느라 중간에서 쉬었던 시간을 감안한다면 3시간15분이 걸린 셈이다. 물론 쉬엄쉬엄 걸었던 결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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