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산(華鶴山, 613.8m)-금성산(錦城山, 468m)-개천산(開天山, 497.2m)-천태산(天台山, 478.1m)

 

산행일 : ‘15. 2. 15()

소재지 : 전남 화순군 청풍면과 춘양면 그리고 도암면의 경계

산행코스 : 청풍리임도화학산접팔재금성산깃대봉개천산홍굴재천태산거북바위개천사주차장(산행시간 : 5시간)

함께한 산악회 : 청마산악회

 

특징 : 오늘은 지도(地圖)에 산()으로 표기된 것들의 숫자만 헤아려도 무려 네 개나 된다. 그런데 이 네 개의 산들은 하나의 능선으로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산세(山勢)들은 너무나 다르다. 화학산과 삼성산은 바위 하나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전형적인 육산(肉山)이지만, 개천산과 천태산은 전국의 어느 골산(骨山)들에도 뒤지지 않을 정도의 근육질을 자랑하는 암릉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다. 때문에 산행은 극()과 극을 한꺼번에 경험할 수 있게 이어진다. 초반에는 마치 평지와 같은 느낌의 능선을 걷는가 하면, 후반부에는 스릴(thrill) 넘치는 바윗길을 타게 된다. 거기다 천연기념물(天然記念物, natural monument)비자나무 숲(483)’과 전통사찰(傳統寺刹)로 지정된 개천사(52)’까지 끼고 있으니 억지로라도 한번쯤은 찾아볼만한 산이다.

 

산행들머리는 청용리(화순군 청풍면)

호남고속도로 문흥 J.C(광주시 북구)에서 제2순환로로 갈아타고 지원교차로(동구 용산동)까지 와서 이번에는 22번 국도를 타고 화순읍까지 온다. 이어서 29번 국도를 타고 보성방면으로 달리다가 이양면에서 839번 지방도로 옮긴 후에, 청풍면소재지에서 차천을 가로지르는 상촌교를 건넌 후 왼편에 보이는 청용길로 들어서면 얼마 지나지 않아 산행들머리인 청용리에 이르게 된다.

 

 

 

마을 앞에서 왼편으로 들어가면서 산행이 시작된다. 들머리에 이정표(화악산 2.5Km)가 세워져 있으니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것도 아니라면 진행방향에 보이는 정자(亭子)를 기점으로 삼으면 될 일이다. 동네로 들어서는데 주민 한분이 마을로 들어오기 전의 삼거리에서 산행을 시작했으면 편했을 거라고 알려주신다. 등산객들 대부분이 그곳에서 산행을 시작하는 모양이지만 어디서 시작하던지 큰 차이가 없으니 하등에 문제될 것이 없다.

 

 

정자 앞에서 오른편으로 크게 방향을 튼 골목길은 마을의 한 가운데를 통과한다. 동네 안길은 돌담이나 토벽(土壁)에 담쟁이 넝쿨이 덕지덕지 붙어있다. 우리가 어릴 때 보아오던 풍경 그대로이다. 그런 풍경은 마을을 통과하기 직전에 만나게 되는 우물에서 마지막 방점을 찍는다. 집집마다 수도가 놓인 지금에야 그 효용을 잃었겠지만 한때는 저곳에서 이 동네의 모든 소문들이 확대 재생산 되었을 것이다. 온 마을 아낙네들이 모여 방금 텃밭에서 따온 채소를 씻거나 간단한 손세탁들을 하면서 말이다. 누군가 얹어놓은 플라스틱 바가지는 목마른 길손들을 위한 배려인가 보다.

 

 

 

청용마을을 통과하면 잠시 후에 임도(이정표 : 화악산 정상 3Km/ 주차장 가는 길 500m/ 청용마을 500m)를 만나게 되고, 이곳에서부터는 임도(林道)를 따르게 된다. 물론 왼편은 주차장에서 올라오는 길이다. 경사(傾斜)가 거의 없는 임도는 바닥을 넓적한 석판(石板)으로 깔아 놓았을 정도로 정비가 잘 되어 있다. 지난 해 겨울 발칸반도에 갔을 때 깊은 인상을 받았던 산책로가 생각날 정도로 멋진 길이다. 이렇게 좋은 산길을 만들어주신 화순군청 관계자분들께 감사를 드려본다. 비록 이곳 화순군에 있는 산에 올 때마다 드리는 인사지만 말이다.

 

 

산길은 바닥만 고운 게 아니다. 가는 길에 순국열사 무명용사 충혼위령비도 만나게 되고, 누군가가 서툴게 쌓아올린 돌탑들도 눈에 띈다. 화학산은 동족상잔(同族相殘)의 슬픈 상처가 남아 있는 산이라고 하다. 19514, 대대적인 빨치산(partisan) 토벌작전으로 혈전이 벌어져 적어도 500, 많으면 1000명이 넘는 귀중한 인명이 희생된 비극의 현장이라는 것이다. 그때 희생된 영혼들을 위로하기 위한 비()가 아닐까 싶다.

 

 

이어서 얼마 후, 그러니까 산행을 시작한지 30분 남짓 지나면 약수터에 이르게 된다. 약수터는 정자(亭子)와 벤치 그리고 운동기구까지 갖춘 쉼터를 겸하고 있다. 마침 물맛까지 좋은 편이니 잠시 쉬면서 식수를 보충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것이다. 정상으로 가는 길은 이곳에서 두 갈래(이정표 : 화학산 급경사 600m/ 화학산 정상 900m)로 나뉜다. 오른편에 보이는 길은 급경사(急傾斜) 오르막길, 시간에 쫒기는 것도 아니기에 왼편으로 향한다. 조금 더 걷더라도 편하게 올라보기 위함이다.

 

 

 

약수터 근처에서 임도는 끝을 맺고 이번에는 오솔길로 변한다. 이어서 잠시 후에는 가파른 오르막길로 변한다. 드디어 산행다운 산행이 시작되는 것이다. 산길이 가파르게 변해도 올라가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다. 조금만 가파르다 싶으면 어김없이 통나무로 계단을 만들어 오르는데 도움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오솔길로 들어선지 15분쯤 지나면 엄청나게 널따란 헬기장에 올라서게 된다. 이곳에서 정상은 등산안내도가 세워진 오른편으로 열린다. 왼편에 보이는 능선을 따를 경우에는 땅끝지맥이 분기(分岐)되는 호남정맥 상의 노적봉(430m)에 이르게 된다. 또한 땅끝지맥’ 1구간에서 가장 빼어난 경관을 자랑한다는 각수바위도 만나게 된다.

 

 

헬기장에서 정상을 향해 올라서면 잠시 후에 삼거리(이정표 : 접팔재 1.9Km/ 청용마을입구 3Km/ 삼개봉 1.0Km, 각수바위)가 나온다. 삼거리의 바로 위가 바로 화학산 정상이다. 다음에 가야할 곳이 접팔재이니 정상을 오른 후에는 당연히 이곳 삼거리로 되돌아 내려와야만 한다. 구릉(丘陵) 모양의 널따란 정상에는 정상표지석과 삼각점 외에도 무인산불감시탑과 이곳이 고산철쭉의 군락지(群落地)임을 알리는 안내판 등이 세워져 있다. 화학산은 산세(山勢)가 학()이 날개를 펼쳐놓은 것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풍수리지(風水地理) 상으로 볼 때 큰 화학산과 작은 화학산이라는 한 자웅(雌雄)의 학이 날개를 활짝 펴고 나는 형상인 화학귀소형이라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정상에는 묘()들이 몇 기() 보인다. 들머리에서 화학산까지는 50분 정도가 걸렸다.

 

 

 

 

정상에서의 시야(視野)는 막힘없이 사방으로 뻥 뚫려있다. 한마디로 조망이 일품인 것이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이 정상의 한쪽 귀퉁이에다 팔각의 전망데크를 만들어 등산객들의 조망(眺望)을 돕고 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정자였다는데 등산로를 정비하면서 새로 만든 모양이다. 그러나 비가 내리기 일보 전인 오늘은 시계(視界)가 썩 좋지 않다. 그저 금성산과 그 뒤에 있는 개천산 등이 희미하게 나타날 따름이다. 날씨가 좋은 날에는 보림사가 있는 가지산과 나주호()까지도 볼 수가 있다는데 말이다.

 

 

아까의 삼거리로 내려와 이번에는 접팔재방향으로 내려선다. 능선을 따라 난 길은 한마디로 유연하다. 큰 오르내림이 없이 고만고만한 봉우리들을 연결시키면서 이어지는 것이다. 오늘처럼 질퍽거리지만 않는다면 산악마라톤 코스로 딱 좋을 것 같다. 하긴 오늘도 뛰다시피 했다. 물론 심심찮게 나타나는 질퍽거리는 곳을 피해가면서 말이다. 산길은 가는 길에 성적골(정상으로부터 0.4Km)과 동구바골(정상으로부터 1.6Km) 등에서 갈림길을 만든다. 이정표가 낡은 탓에 길 찾기에 도움이 되지 않으나 걱정할 필요는 없다. 갈림길에 신경 쓰지 말고 그저 능선을 따른다 생각하며 진행하면 되기 때문이다.

 

 

정상에서 내려선지 25분쯤 지나면 능선의 허리를 싹둑 자르며 이어지는 널따란 임도(林道)에 내려서게 된다. 접팔재(이정표 : 깃대봉/ 청풍면 백운리 3.0Km/ 우치마을 3.0Km/ 화학산 정상 2.0Km)로서 청풍면 백운리와 도암면 우치리를 잇는 산길이 지나는 고갯마루이다.

 

 

산길은 임도를 건너 맞은편 능선으로 연결된다. 산길의 풍경은 접팔재를 지나서도 변하지 않는다. 널따란 산길은 밋밋한 능선을 따라 평탄하게 이어지는 것이다. 다만 뒤편에서 화악산이 계속해서 따라오고 있다는 것이 다르다면 다른 점일 것이다.

 

 

 

 

접팔재에서 5분쯤 지나면 오른편 방향이 떨어져 나간 이정표(개천산 2.5Km/ 접팔재 0.4Km, 화학산 2.3Km) 하나가 나타난다. 이곳에서 몇 발짝만 더 오르면 이정표가 없는 또 다른 삼거리가 나온다. 금성산은 이곳에서 오른편에 보이는 능선를 따라야 한다. 그리고 금성산을 둘러보고 난 뒤에는 다시 이곳으로 돌아와야만 한다. 오늘 오르는 네 개의 산과 한 개의 봉()인 시루봉은 공통점 하나를 갖고 있다. 정상들이 모두 등산로에서 약간씩 빗겨나 있다는 것이다. 많게는 500m정도에서 적게는 몇 십m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떨어져 있는 것이다. 때문에 정상을 둘러보고 난 뒤에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나와만 하는 것도 어김없이 똑 같다.

 

 

어른의 허리춤이나 찰 정도로 낮게 자란 산죽(山竹) 사이로 난 산길을 지나서 얼마간 더 걸으면 금성산 정상이다. 정상은 아무런 특징이 없는 그저 그렇고 그런 밋밋하게 솟아오른 봉우리일 따름이다. 거기다 정상석이나 삼각점은 물론이고 그 흔한 이정표 하나 세워져 있지 않다. 누군가 매직펜(magic pen)으로 살아있는 나무 기둥에다 금성산 469m’라고 적어 놓았기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정상인줄도 모르고 지나치기 십상이었을 것이다. ‘능선삼거리에서 금성산을 다녀오는 데는 17분 정도가 걸렸다. 화학산에서 금성산까지는 40분 남짓 걸렸다.

 

 

 

삼거리로 되돌아와 또 다시 주능선을 따른다. 삼거리에서 내려서자마자 거대한 바위가 하나 나타난다. 오늘 산행 중에 처음으로 보는 바위이다. 이제부터 볼거리가 많은 바윗길이 시작되나보다 하는 기대는 허망하게 끝나버린다. 능선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또 다시 평범한 흙길로 돌아가 버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망할 필요는 없다. 내려가는 길에 보면 험상궂을 정도로 날카롭게 서있는 산봉우리가 진행방향에 나타나기 때문이다. 저 정도라면 바위산이 분명할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맞은편 산봉우리로 올라가는 길은 험하기 짝이 없다. 가파르게 오르던 산길에 바위들이 나타나기 시작하더니 끝내는 안전로프까지 매달아 놓았다. 로프에 의지해야할 정도로 험하게 변했다는 증거일 것이다. 그러나 조금 힘이 들 따름이지 위험하지는 않으니 걱정할 필요까지는 없다.

 

 

금성산 입구 삼거리를 출발한지 13분 정도가 지나면 무명봉에 올라서게 된다. 봉우리 위에 세워진 이정표(임도끝 0.4Km/ 등봉재 0.8Km/ 접팔재 1.1Km)에는 헬기장삼거리라는 이름표가 매달려 있다. 이곳에서는 오른편 등봉재 방향으로 내려서면 된다. 그러나 내려서기 전에 먼저 할 일이 있다. ‘삼거리봉의 건너편에 있는 헬기장에 다녀오는 것이다. 헬기장이 바로 깃대봉이기 때문이다. 금성산에서 깃대봉까지는 20분 남짓 되는 거리이다.

 

 

삼거리봉에서 깃대봉(496.2m)2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널따란 헬기장은 아무런 특징이 없다. 정상표지석이나 삼각점, 이정표 하나 없이 그저 공터로 남아있을 따름이다. 날씨라고 좋을 경우에는 조망(眺望)이라도 좋으련만 오늘은 그마저도 허락하지 않는다. 헬기장에서 올라왔던 반대방향으로 나가보면 내려가는 길 하나가 열려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지도(地圖)에 표기된 임도 갈림길로 내려가는 길이다. 그러나 우린 삼거리봉으로 되돌아 나간다. 선두대장이 깔아놓은 방향표시지를 충실히 따르려 함이다.

 

 

삼거리봉에서 내려서면 얼마 지나지 않아 비스듬히 누운 이정표(개천산2.0km/동해다리/깃대봉)를 만나게 되고, 이어서 잘 자란 편백나무 숲을 지나게 된다. 누군가가 호흡을 크고 느리게 해보란다. 편백나무가 피톤치드(phytoncide)를 가장 많이 배출한다는 것을 알고 있음이리라. 피톤치드는 스스로 움직이지 못하는 나무들이 각종 병충해(病蟲害)에 저항하기 위해 배출하는 분비물(分泌物)을 말한다. 이 물질은 사람들에게도 많은 도움을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살균작용은 물론이고, 장과 심폐기능을 강화시켜주는 한편, 스트레스 해소에도 뛰어난 효능이 있다는 것이다. 이런 길에서는 구태여 발걸음을 서두를 이유가 없다. 발걸음은 더디게 그리고 심호흡은 크게 하면서 느긋하게 걸어본다. 나도 모르게 기분이 상쾌해진다. 피톤치드의 효과가 아닐까 싶다. 그러나 아쉽게도 편백나무 숲은 그다지 오래 이어지지 않는다.

 

 

 

편백나무 숲을 지나면 등봉재삼거리(이정표 : 개천산 0.9km/ 임도끝 0.5km/헬기장0.7km)에 연이어 등봉재(개천산 0.8km/ 개천사 0,8km/ 접팔재 2.2km)를 지나게 되고, 이어서 잠시 후에는 왼편에 임도(林道)가 보인다. 어쩌면 지도에 표기된 임도갈림길이 아닐까 싶다. 임도에 내려가면 승학골이라는 이름표를 단 이정표(개천산 정상 1.0Km/ 동광리 양지마을 2.0Km/ 깃대봉·접팔재 2.8Km)가 반긴다. 그런데 표기된 거리표시가 조금 이상하다. 분명히 아까 등봉재에서 2~3분 정도를 더 걸어왔는데도 거리는 오히려 더 멀어져(0.8km1.0Km)있는 것이다. 산행을 시작할 때 청용리 근처에서도 이와 비슷한 상황을 맞닥뜨렸었는데, 등산로 정비에 많은 정성을 들인 화순군청에서 방심 탓이 아닐까 싶다.

 

 

임도삼거리에서 본격적인 오름길이 시작된다. 그런데 그 오름길의 가파름이 보통이 아니다. ‘산이 허리를 곧추세우고 있다라는 말이 있다. 산의 경사(傾斜)가 엄청나게 가파를 때 쓰는 표현이다. 지금 오르는 길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싶다. 길게 매어진 안전로프에 의지하지 않고서는 쉽게 올라설 수 없을 정도로 가파르기에 하는 말이다. 거기다 그 거리 또한 만만치가 않다.

 

 

가파른 오르막길은 15분이 넘게 계속된다. 그러나 그 고생에 대한 보상은 괜찮은 편이다. ‘바위 숲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수많은 바위들이 숲을 이루고 있는 풍경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볼거리가 제법 쏠쏠한 구간이다. 산길은 바위를 왼편에 끼고 우회(迂廻)를 시킨다. 그리고 얼마 후에는 개천산 삼거리’(이정표 : 개천산 0.1km/ 천태산 1.1km/ 화학산4.7km)에 이르게 된다.

 

 

개천산 삼거리에 이르러 위를 올려다보면 아찔하기 짝이 없다. 험상궂은 바위들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과연 올라가는 길이 있을까 싶을 정도이다. 그러나 막상 오름길에 들어서고 보면 별 어려움 없이 올라갈 수 있다. 비록 가파르기 짝이 없지만 커다란 바위들을 요리조리 잘도 피해가면서 길이 나있는 덕분이다.

 

 

개천산 정상은 의외로 흙으로 이루어져 있다. 바윗길을 타고 오르던 분위기와는 영 딴판인 것이다. 제법 너른 분지(盆地)로 이루어진 정상에는 정상표지석 외에도 무인산불감시탑이 세워져 있다. 아까 등봉재를 지나면서부터 내리기 시작하던 빗줄기가 제법 굵어졌다. 그 탓에 정상에서의 조망(眺望)은 일절 트이지 않는다. 바로 곁에 있는 천태산은 물론이고 날씨만 맑다면 깃대봉과 금성산, 화학산 등이 또렷할 텐데도 말이다. 천태산(개천산)은 중국의 절강성에 있는 천태산과 그 생김새가 비슷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천태사를 창건한 도의선사가 당나라에 유학(遊學) 갔을 때 보았던 천태산을 닮았다고 해서 그런 이름을 붙였다는 것이다. 그 뒤에 도선국사가 이를 개천산으로 고쳤다고 한다. 여기서 천태산이라 함은 개천산과 함께 아우르는 이름이다. 옛날에는 천태산과 개천산을 구분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깃대봉에서 개천산까지는 50분 정도가 걸렸다.

 

 

개천산 삼거리로 되돌아와 이번에는 천태산으로 향한다. 내려가는 길은 가파르게 시작된다. 그리고 얼마 후, 그러니까 개천산을 출발한지 15분 정도가 지나면 이정표(천태산 정상 0.4km/ 음지마을 1.5km/ 개천사 0.7km/ 개천산 정상 0.6km)가 세워진 사거리에 이르게 된다. 홍굴재이다. 오늘의 하산방향에 있는 개천사로 가려면 이곳에서 오른편으로 내려서야 한다. 천태산 정상을 오른 후에는 당연히 이곳으로 되돌아와야 한다는 얘기이다.

 

 

 

홍굴재에서 산길은 다시 오름길로 변한다. 그러나 그다지 가파르지는 않은 편이다. 등산로 주변의 나무나 바위들을 완벽하게 덮어씌우고 있는 송악(Hedera rhombea)을 구경하면서 걷다보면 10분 후에는 헬기장(이정표 : 천태산정상 0.2km/ 안성마을 2.5km/ 개천산정상 1,0km)에 올라서게 된다.

 

 

 

헬기장을 지나면서 산길을 바윗길로 변한다. 한마디로 볼거리가 넘쳐나는 구간이다. 그 첫 번째의 구경거리는 뾰쪽하게 솟아오른 바위 무더기이다. 무더기 하나만으로도 산의 형태를 그려낼 수 있을 정도로 갖가지 모양새의 바위들로 넘쳐난다. 한마디로 뛰어난 볼거리라 할 수 있다. 누군가의 글에서 읽은 적이 있는 불꽃바위가 이곳이 아닐까 싶다.

 

 

 

불꽃바위를 지나서도 암릉은 계속된다. 아쉽게도 그 거리는 짧다. 하지만 아름답다고 느끼는 데는 조금도 부족함이 없다. 50m가까이 되는 바위벼랑이 주변의 풍경과 잘 어우러지며 멋진 풍광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천태라는 이름에 부끄럽지 않네요.‘ 산의 이름을 천태만상(千態萬象)에서 따온 것 같다면서 농담처럼 던지는 일행의 우스개가 낯설지 않는 것은 지금 눈앞에 펼쳐지는 풍광이 그만큼 아름답다는 증거이리라.

 

 

 

 

스릴 넘치는 바윗길을 올라서면 드디어 천태산 정상이다. 개천산에서 30분 남짓 걸렸다. 천태산 정상은 5평 남짓한 작은 분지(盆地)로 이루어진 정상은 검은 오석(烏石)으로 만들어진 정상석이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 다른 볼거리는 없다. 가장 뛰어난 볼거리인 조망이 딱 막혀있기 때문이다. 천태산에서의 조망(眺望)은 사뭇 뛰어나다고 알려져 있다. 날씨가 웬만큼만 받쳐주어도 보인 다는 무등산은 언감생심(焉敢生心)이고, 코앞에 있는 개천산도 겨우 그 형체만을 내보이고 있다. 어느덧 날씨는 빗발이 거세졌고 그 빗줄기에 가린 산하는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져버린 것이다. 참고로 천태산은 나주방향에서 보면 마치 붓끝처럼 뾰족하게 보인다고 해서 문필봉(文筆峰), 또는 필봉(筆峰)으로도 불리며, 인근 사람들은 그런 산의 기운을 받아 명필가들이 많이 배출된다고 믿는다고 한다. 개천사는 한때 천불산(千佛山)으로 불린 적도 있다. 개천사에 있던 천불전(千佛殿)이 사람들의 입소문을 타던 때가 있었던 모양이고, 그 유명세(有名稅)가 결국 산의 이름에까지 영향을 미쳤던가 보다.

 

 

다시 홍굴재로 되돌아와 이번에는 개천사 방향으로 내려선다. 산길을 그다지 급할 것이 없다는 듯이 서서히 고도를 떨어뜨려 간다. 그러다가 7분쯤 후에는 거북이를 닮은 특이한 바위 하나를 만나게 된다. 일명 거북이상() 또는 금자상(今玆像)이라고 불리는 바위로서 마치 거북이 한 마리가 천태산 정상을 향해 올라가는 듯한 모양새이다. ‘그동안 봐온 거북이 중에서 가장 잘 생겼네요.’ 함께 산행을 하던 일행의 말마따나 볼수록 살아 있는 느낌을 주는 명품 중의 명품이었다. 그래선지 바위 옆의 안내문을 보면 이 거북이가 정상에 오르면 일본이 망한다하여 일본군(日本軍)들이 목과 발을 잘라버렸다고 한다. 정형외과 수술을 거친 듯 시멘트로 붙인 흔적이 있고, 다리는 적당히 맞춰 놓았다. 견훤이 이 거북이를 보고 영감을 얻어 이곳에서 사찰(寺刹)을 짓고 기도를 하다 후백제를 건국했다는 전설(傳說)이 있을 정도로 그 특이한 생김새만큼이나 품은 얘기들도 다양하다.

 

 

거북이바위에서 조금만 더 내려오면 울창한 비자나무 숲을 만나게 된다. 아까 하산을 시작하면서 간간히 보이던 비자나무들이 무리를 지어 있는 것이다. 천태산 비자나무 군락(天台山 榧子木 群落 : 천연기념물 제483)은 천태산의 동남쪽 기슭에 군락을 이루고 있는데, 그 면적은 대략 10정도 된다. 나무들은 가슴높이의 줄기둘레가 2m를 넘기고 있는 것으로 보아 나이가 300년생쯤으로 추정되고 있다. 밀도는 1001105그루이고 종자 수확량은 해에 따라 변이가 심하나 많을 때에는 70가마니가 얻어진다고 한다. 비자나무는 보통 남해안 등 따뜻한 곳에 분포한다. 따라서 부락근처 또는 사찰주변에 흔한데 이곳 비자나무숲도 자생종(自生種)이 아닌 인공(人工)에 의해서 조성된 것으로 믿어지고 있다. 참고로 전라남도에서 비자나무가 순림(純林)으로 군락을 이루고 있는 곳은 이곳 외에도 백양사의 사찰림(천연기념물 제153)과 해남 연동(蓮洞)의 윤씨비자림(천연기념물 제173), 고흥 금탑사의 비자나무숲(천연기념물 제239) 등이 있다.

 

 

비자나무 숲을 지나면 곧바로 개천사 뒤뜰에 내려서게 된다. 전통사찰 제52호로 지정된 개천사(開天寺)는 대한불교조계종 소속의 사찰로서 828(신라 흥덕왕 3) 도의(道義)선사가 창건하였다. 도의는 821년경 중국에서 남종선(南宗禪)을 이어받았으며 귀국하여 먼저 가지산(迦智山) 보림사(寶林寺)를 창건한 뒤 이 절을 세웠다. 신라 말기에 도선국사가 세웠다는 설도 있으니 참고할 일이다. 1597(선조 30) 정유재란 때 불에 탄 것을 다시 중창하였다고만 전할 뿐 조선말까지의 연혁도 전하는 바가 거의 없다. 다만 개천사중수상량문에 따르면 1907(융희 1)에 법운(法雲)이 중건하였고 일제강점기에는 용화사(龍華寺)라 불렀다. 이후 6.25전쟁 때에 또 다시 불에 탄 것을 1963년 김태봉(金泰奉)이 주민들의 협조로 중건(重建)하여 오늘에 이른다. 천태산에서 개천사까지는 30분이 조금 못 걸렸다.

 

 

절을 벗어나다보면 다섯 개의 부도가 보인다. 1766(영조 42)의 청직당탑(淸直堂塔), 1808(순조 8)의 도암당탑(道庵堂塔), 19세기의 응서당탑(應西堂塔만봉당탑(萬峰堂塔지월당탑(智月堂塔) 등이다. 1990년대에 옥불(玉佛)이 출토되었다고 하나 사라져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다고 한다.

 

 

산행날머리는 가동저수지 상류에 있는 개천사입구 주차장

개천사에서 빠져나오는 길은 1차선 도로이다. 따라서 승용차는 통행이 가능하나 대형버스는 진입이 제한된다. 따라서 버스의 주차가 가능한 가동저수지의 상류에 있는 개천사 주차장까지는 걸어서 내려가야만 한다. 걸어서 10분 남짓 걸리는 이 길은 짧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길가를 작은 공원(公園)으로 조성하는 등 깔끔하게 꾸며놓은 덕택에 지루한 느낌이 조금도 들지 않는다. 오늘 산행은 총 4시간 20분 정도가 걸렸다. 중간에 간식을 먹느라 쉬었던 30분을 감안할 경우 3시간50분이 걸린 셈이다. 이는 비가 내리기 전에 산행을 마치려고 발걸음을 서두른 결과이니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은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에필로그(epilogue), 시루봉에서 내려오는데 갑장(甲長)인 유사장께서 홍어회에 소주나 한잔 마시고 내려가잔다. 홍어가 뭔지를 아는 친구한테 부탁해서 준비한 것이라면서 말이다. 마침 준비해간 막걸리가 있어서 옆자리를 꿰차고 앉아본다. 소주에 막걸리, 누군가가 맥주를 꺼내 쏘맥(소주+맥주)까지 만들더니 끝내는 김진수선배께서 가져온 오미자술까지 등장하고 만다. 이건 등산이 아니라 숫제 술()판이다. 그러나 어쩌랴 이것도 하나의 삶인 것을, 그리고 이런 게 좋아 함께 산행을 즐기는 것을 말이다. 그건 그렇고, 무슨 이유로 술 얘기를 꺼내느냐 의문을 갖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문득 김진수선배께서 내게 던진 화두(話頭) 하나가 떠오르기에 그 결과를 정리해보려는 것이다. 뭔가 고개를 갸웃거리던 그가 내게 던진 한마디는 방금 지나온 시루봉 근처에서 땅끝기맥(岐脈)’이 시작되니 한번 알아보라는 것이다. 산행을 끝내고 돌아와 확인해 바에 의하면 이 부근에서 땅끝기맥이 시작될 거라는 그의 말은 옳았다. 그러나 그 위치는 이 부근이 아니라 초반에 올랐던 화악산 근처였다. 화악산 정상 바로 아래의 헬기장에서 왼편으로 보이던 능선을 따를 경우 연결되는 호남정맥 상의 노적봉(또는 바람봉, 430m)이 땅끝기맥의 분기점(分岐點)이 되는 것이다. 지리적으로 볼 때에는 화순군 이양면 이만리와 장흥군 유치면 대천리 및 장평면 병동리의 경계쯤이지 않을까 싶다. 아무튼 또 하나의 앎을 선사해주신 선배와 맛난 홍어회를 준비해 오신 유사장님께 지면으로나마 감사 드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