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추봉(龍湫峰, 584m)-신선봉(神仙峰, 490m)
산행일 : ‘14. 8. 28(목)
소재지 : 전남 담양군 용면과 전북 순창군 쌍치면·구림면의 경계
산행코스 : 주차장→용연1폭포→용연2폭포→가마터→용추봉→임도→신선봉→시원정→출렁다리→용소→주차장(산행시간 : 3시간 20분)
함께한 산악회 : 산두레
특징 : 영화 ‘남부군’은 한국에서 만들어진 전쟁영화 중에서 시사(示唆)하는 바가 큰 반전영화(反戰映畵)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 영화의 주요 촬영지 중의 한 곳이 바로 ‘가마골’이다. 산의 특징을 설명하면서 왜 골짜기를 거론하는지 의아해 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왜냐하면 오늘 오른 용추봉이나 신선봉이 색다른 볼거리가 일절 없는 평범하기 짝이 없는 산이기 때문이다. 그 대신 이 봉우리들이 품고 있는 골짜기인 가마골은 자못 빼어나다. 마치 중국의 양산박처럼 높은 바위협곡(峽谷)이 구불구불 길게 이어지는 계곡이 자그마치 십리나 된다. 그만큼 골이 깊고 험하다는 이야기이다. 그래서 6.25전쟁 때는 가장 치열했던 파르티잔(partisan) 격전지(激戰地) 중의 하나였다고 한다. 노령병단 소속 1,000여 명이 그들만의 해방구였던 이곳에서 1955년 3월까지 끈질지게 저항하다 군경(軍警)의 합동작전에 의해 소탕되었다는 것이다. 여러 산이 겹치고 있어 은폐하기 좋고 계곡에는 크고 작은 폭포(瀑布)와 넓은 분지(盆地)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일 것이다. 수량(水量) 또한 풍부해서 숨어서 저항하기 좋은 조건을 두루 갖추고 있다.
▼ 산행들머리는 가마골생태공원 주차장
순천-완주고속도로 남원 분기점에서 88올림픽고속도로 광주방향으로 바꿔 타고 달리다가 순창 I.C에서 내려와 792번 도로를 타고 담양 방향으로 가다 보면 가마골생태공원 입구 삼거리가 나온다. 이곳 삼거리에서 오른편으로 들어서면 잠시 후에 산행들머리인 공원주차장에 이르게 된다. 요즘은 국도나 지방도가 잘 닦여있어서 어느 곳으로 들어와도 시간차이가 별로 나지 않는다. 우리가 타고 온 버스도 호남고속도로 전주 I.C에서 내려와 옥정호(전북 임실군) 근처에서 회문산과 강천산의 근처를 거쳐 이곳으로 왔다.
▼ 주차장에서 내려 공원관리사무소 옆으로 난 임도를 따라 들어가면서 산행이 시작된다. 생태공원의 입장료는 성인기준 2천원, 관리사무소보다 한참 아래에 있는 매표소에서 입장료를 계산했기 때문에 관리사무소에서는 별도의 절차 없이 그냥 통과할 수 있다. 관리사무소에서 50m쯤 들어가면 삼거리가 나온다. 이정표(용연1·2폭포, 용추사, 제1등산로/ 용소, 출렁다리, 제3등산로)와 생태공원안내도, 그리고 ‘가마골’이라고 쓰인 커다란 화강암 표지석이 있다. 오늘 산행은 용추봉을 오르는 코스이다. 그러나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산보다는 산이 품고 있는 가마골을 보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만큼 가마골이 더 널리 알려져 있다는 얘기이다. 옛날 그릇을 굽던 가마터가 많았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여졌다는 가마골은 영산강의 발원지(發源地)이며 민족상잔(民族相殘)의 아픈 역사를 간직한 곳이기도 하다. 1950년 한국동란 당시 전남북 피난민 3,000여명과 파르티잔(partisan) 1,000여명이 노령병단을 만들어 1955.3월까지 국군(國軍 : 8사단, 11사단) 및 경찰과 대치했었고, 이 전투에서 아군은 445명 전사하였고, 부상자도 800여명이나 되었다고 한다. 이승만대통령이 이곳을 직접 방문해 격려했을 정도이니 얼마나 전투가 치열했었는지 짐작이 되고도 남을 것이다. 빨치산은 가마골에 병기시설인 탄약 제조창과 군사학교, 인민학교, 정치보위학교와 정미소까지 설치했다고 한다.
▼ 삼거리에서 오른편 용연폭포 방향으로 들어선다. 당연히 왼편 길은 하산길이 된다. 반반하게 자연석을 깔아놓은 임도(林道)는 온통 단풍나무 천지이다. 등산로를 정비하면서 조성한 모양인데 울창하게 숲을 이루고 있어 가을에 올 경우 멋진 오색의 단풍을 보여줄 것이 틀림없다. 임도의 오른편 방향은 계곡이다. 골은 그다지 깊지 않으나 물줄기는 제법 세다. 요즘 계속되는 남부지방의 폭우가 그 원인일 것이다.
▼ 임도를 따라 잠시 걸으면 다시 삼거리가 나온다. 이곳 삼거리에는 이정표(용연1폭포/ 용연폭포, 용추사)가 하나 세워져 있는데 차라리 없느니만 못한 것 같다. 아예 없었더라면 지도를 보며 능히 찾아갈 수 있는데도, 괜히 만들어 놓은 이정표가 사람을 헷갈리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오른쪽 방향으로 표시된 용연폭포는 아마 2폭포를 이르는 모양인데 2자를 빼먹어 사람을 헷갈리게 하는 것이다. 왼편으로 방향을 잡으면 잠시 후에 용연1폭포 앞에 서게 된다.
▼ 2단으로 이루어진 높이 20m 정도의 용연1폭포는 이 정도의 폭포가 어떻게 해서 세간(世間)에 널리 알려지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그 경관이 수려하다. 그리고 호쾌하기 짝이 없다. 계곡이 그다지 크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장관을 보여주는 것은 엊그제 내린 폭우(暴雨)로 인해 수량이 늘어난 때문일 것이다. 그 때문인지 제법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어 사진을 찍느라고 분주한 풍경이다. 들머리에서 1폭포까지는 10분 남짓 걸렸다.
▼ 등산로는 폭포 앞을 지나 맞은편 비탈로 올라간다. 그리고 곧이어 아까 헤어졌던 길과 다시 만나면서 산길은 현저하게 완만(緩慢)해진다. 개울을 왼편에 끼고 이어지는 산길은 잠시도 한눈을 팔 틈을 주지 않는다. 오른편 바위절벽들이 만들어내고 있는 임시폭포들 때문이다. 폭포(瀑布)이면 폭포이지 왜 임시(臨時)라는 수식어(修飾語)를 붙였는지 의문이 드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날씨가 맑을 때에는 없어졌다가 장마 때, 그것도 온 산이 물로 넘쳐나다시피 할 때에만 나타나는 폭포이기 때문이다.
▼ 개울을 왼쪽 옆구리에 끼고 10분쯤 걸으면 왼편 아래로 내려가는 비탈길이 하나 나타난다. 이 길을 따라 100m쯤 내려가면 무속인(巫俗人)들이 몰래 제(祭)를 지낼 정도로 기(氣)가 세다는 용연2폭포이다. 2폭포는 아까 지나왔던 1폭포보다 더 나은 경관(景觀)을 자랑한다. 높이도 20m였던 1폭포보다 10m정도가 더 높은데다가 물줄기가 중간에 꺾이지 않고 곧바로 아래로 떨어지기 때문에 더욱 웅장하게 보이는 것이다. 2폭포가 1폭포보다 더 나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2폭포에 들르는 것을 포기하고 그냥 지나쳐버린다. 아래까지 내려갔다 다시 올라오는 것이 싫었던 모양이다.
▼ 아까의 갈림길로 되돌아와 다시 산행을 이어간다. 폭포 위로 올라가는 짧은 급경사(急傾斜) 구간을 지나면 길은 다시 평평해지면서 널찍한 임도(林道)로 변한다. 이어서 작은 사방댐을 지나면 자동차가 다닐 수 있는 도로와 연결된다. 2폭포에서 6분 정도의 거리이다. 이곳 삼거리에 이정표(용추사 0.4Km, 가마터 0.5Km/ 신선봉 1.5Km, 용소폭포 2.0Km/ 용연 1·2폭포 0.5Km, 관리사무소 0.8Km)가 세워져 있는데 어쩌면 오늘 산행에서 만난 이정표 중에서 유일하게 거리표시가 되어있는 이정표가 아닐까 싶다. 이곳에서 왼쪽으로 진행하면 신선봉에 오를 수 있다. 만일 용추봉이 볼품없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이라면 용추봉을 생략하고 곧바로 신선봉으로 직행할 수도 있을 것이다.
▼ 널따란 도로를 따라 잠시 걸으면 커다란 규모의 사방댐이 보이고, 이어서 사방댐과 연결된 굴다리 아래를 통과하면 곧바로 또 다른 삼거리가 나온다. 삼거리에 ‘정광사 4㎞’ ‘용추사 200m’라는 표지석 두 개가 세워져 있다. 삼거리로 오는 길에 문득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히 내가 산속에 들어온 게 맞는가 하는 의구심 말이다. 한참을 산을 올랐기에 산중인줄 알았는데 난데없이 비닐하우스가 나타났으니 어찌 그런 생각이 들지 않겠는가. 그렇다. 용추사 근처는 너른 분지(盆地)로 이루어져 있어서 사람들이 둥지를 틀고 살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었다. 그런 연유인지 비록 무리지어 살지는 않지만 개까지 거느린 어엿한 농가(農家)가 존재하고 있었다.
▼ 용추사 방향으로 걸음을 옮기면 왼편에 제법 너른 저수지가 펼쳐진다. 아까 사방댐으로 보였던 것이 사실은 저수지였던 모양이다. 그리고 ‘낚시금지’라고 적혀있는 것을 보면 양어장(養魚場) 역할까지 겸하고 있는 모양이다.
▼ 입구의 표지석에 적힌 200m라는 거리표시가 무색하게 용추사까지의 거리는 제법 되었다. 아마 적힌 숫자의 배는 되지 않을까 싶다. 꾸불꾸불한 길을 돌아 들어가니 용추사가 조용히 나를 맞는다. 용추사는 백양사의 말사(末寺)란다. 건물이라곤 고작 대웅전 역할을 하고 있는 천불전과 삼성각, 그리고 요사채가 전부인 한적한 사찰(寺刹)이다. 거기다 인기척조차 없다. 그때 어디선가 들려오는 풀벌레 소리, 스님 없는 절간에서 들꽃과 풀벌레들이 대신 수행에 전념하고 있는 모양이다. 오래 머물 이유가 없어 천불전 앞 석조(石造) 샘터에서 물 한금으로 보시를 대신하고 돌아선다. 참고로 이 절은 526년(백제 성왕 4년)에 창건하고,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1630년에 중창했다고 한다. 물론 6`25전쟁 때도 전화를 그냥 비켜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당연히 지금 있는 건물들은 그 후에 새로 지었을 것이다. 용추사를 둘러보고 다시 삼거리로 되돌아 나오는 데는 정확히 11분이 걸렸다.
▼ 표지석이 있는 삼거리에서 얼마 걷지도 않았는데 오른편에 외형(外形)이 특이한 건물하나가 보인다. 가마골이라는 이곳 지명(地名)을 낳게 한 가마터이다. 1998년 용추사 주변에서 임도 개발 공사를 하다가 발견된 가마터를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復原)했다고 한다. 이 가마는 기와를 굽던 시설로서 당시 3기의 가마터가 발견됐는데 그 중 복원된 것은 2호기란다.
▼ 다시 산행을 이어간다. 이어지는 도로는 좌우로 꿈틀대면서 위로 향한다. 그렇게 10분 조금 못되게 걸으면 왼편으로 길이 나뉜다. 등산로는 이곳에서 포장도로를 벗어나 왼편으로 향한다. 경사가 완만한데다 넓기까지 한 등산로를 따라 살망살망 걷다보면 채 5분이 안되어서 능선안부에 올라서게 된다. 오른편은 산성산으로 가는 길이니 용추봉은 이곳에서 왼편 능선을 따라 진행해야 한다. 이곳에서부터는 전남과 전북의 경계이자 **)호남정맥의 마룻금을 따라 걷게 된다. 들머리에 산악회 시그널(signal)들이 마치 무당집 처마처럼 어지럽게 매달려 있으니 헷갈릴 일은 없을 것이다.
(**) 호남정맥(湖南正脈), 한반도 13정맥의 하나로, 금남호남정맥(錦南湖南正脈)의 종착지인 주화산에서 갈라져 남서쪽으로 내장산에 이르고, 내장산에서 남진하여 장흥 제암산(帝巖山)에 이르며, 제암산에서 다시 남해를 끼고 동북으로 상행하여 광양 백운산(白雲山)에 이르는 산줄기이다. 이 산줄기는 영산강 유역을 이루는 서쪽 해안의 평야지대와 섬진강 유역을 이루는 동쪽의 산간지대로 갈라놓았다. 주요 산으로는 경각산, 내장산, 백암산, 추월산. 무등산, 제암산, 조계산, 백운산 등 호남지역의 명산들을 거의 다 품고 있다.
▼ 능선으로 올라서면 산길은 아무런 특징이 없는 밋밋한 능선으로 변한다. 능선은 온통 참나무들로 둘러싸여 있고, 그 아래에는 산죽(山竹)들 세상이다. 그리고 등산로는 그 산죽들 사이로 나있다. 굳이 용추봉의 특징을 말하라면 정상에서의 조망(眺望) 외에는 길가의 산죽을 들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다지 경사(傾斜)가 심하지 않은 작은 오르내림을 반복하면서 서서히 고도(高度)를 높이다보면 30분 후에는 용추봉 정상에 올라서게 된다. 중간 무렵에 지도(地圖)에 나와 있는 506m봉을 지나왔겠지만 실제 봉우리에는 아무런 표시가 없었기 때문에 어떤 게 506m봉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 함께 걷고 있는 사람들, 어느 한 사람의 얼굴에서도 힘들다는 표정을 읽을 수가 없다. 물론 그 원인이 지금 걷고 있는 능선의 오르내림이 심하지 않은 평탄한 길이기 때문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날씨라는 변수도 있었음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동안 기승(氣勝)을 부려오던 더위가 이미 한풀 꺾여있는 것이다. 혼돈스러웠던 올 여름이지만 그 작열했던 무더운 열기는 가을의 오곡에 결실을 안기는 것에서부터 계절은 분명히 가고 있다. 그 계절이 지금 산행을 하고 있는 사람들의 얼굴표정에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 용추봉 정상은 헬기장을 겸하고 있기 때문에 너른 분지(盆地)로 이루어져 있다. 표지석이 없는 정상은 말뚝 모양으로 만든 스테인리스 표지판이 대신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정표도 없음은 물론이다. 정상뿐만이 아니다. 용추봉(신선봉 제외)에는 이정표나 안내도 등 그 어떤 편의시설들도 눈에 띄지 않았다. 철저하게 버려진 것이다. 들머리에서 정상까지는 1시간30분이 걸렸다.
▼ 정상은 주위의 나무들을 제거한 탓에 사방으로 시야(視野)가 탁 트여 조망(眺望)이 뛰어나다. 내장산을 비롯해 회문산, 여분산, 무등산, 강천산, 산성산, 추월산 등이 차례로 보인다. 입암산과 내장산이라고 해서 안보일리 없다. 거기다 멀리로는 무등산까지 내다보인다. 그야말로 눈이 호사(豪奢)를 누리는 곳이다.
▼ 산길은 정상을 지나 계속된다. 그리고 별다른 특징이 없다는 점도 계속된다. 맞은편 숲으로 들어가면 산길은 얼마 후에 왼편으로 크게 휜다. 그리고 이어지는 산길은 아까 올라올 때와 마찬가지로 작은 오르내림을 반복한다. 다만 아까는 고도(高度)를 높여왔지만 이번에는 고도를 낮추어간다는 점만 다를 뿐이다. 그러다가 20분쯤 지나면 삼거리를 만나게 된다. 물론 이곳에도 이정표는 보이지 않는다. 당연히 길 찾기에 주의가 필요한 지점이다. 호남정맥 마룻금인 오른편이 더 또렷한데다 산악회 시그널들이 더 많이 매달려있기 때문이다. 다음 코스인 신선봉은 이곳 삼거리에서 호남정맥과 해어져 왼편으로 내려서야 한다.
▼ 앞서가던 집사람이 냉큼 숲속으로 들어서는 게 보인다. 싸리버섯을 찾았단다. 주위를 살펴보니 버섯이나 산나물이 자라기에 딱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능선의 오른쪽 참나무 숲, 그러니까 응달이다. 거기다 엊그제 내린 비로 인해 습(濕)하기까지 하니 이보다 더 나은 버섯의 발육(發育) 조건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런 내 예상이 맞았나보다. 오늘 산행에서 우리부부는 싸리버섯을 한 소쿠리나 채취했으니까 말이다. 거기다 영지버섯이라는 보너스(bonus)까지 얻었으니 오늘 산행은 그야말로 행운이었다.
▼ 호남정맥과 헤어진 후 또 다시 오르내림을 반복하며 고도(高度)를 낮추다보면 임도(林道)에 내려서게 된다. 임도를 따라 왼편으로 10여m만 내려가면 신선봉으로 가는 길이 열린다. 들머리에 이정표(신선봉 0.4Km, 용소 1.0Km/ 용추사 1Km, 관리사무소 1.8Km/ 복흥면 답동 3.0Km, 정광사 3등산로)가 세워져 있으니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참으로 오랜만에 보는 이정표다. 거기다 거리표시까지 되어있으니 더 반가울 수밖에 없다.
▼ 산죽(山竹) 사이로 난 길을 따라 5분쯤 걸으면 나무의자를 갖추어 놓은 쉼터이다. 쉼터에는 담양군에서 만들어놓은 안내지도(案內地圖)가 보인다. 그러나 이 지도는 참고만 할 뿐 맹신해서는 안 된다. 지도와 현실이 맞지 않아 자칫하면 엉뚱한 길로 빠지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거기다 이정표도 마찬가지다. 중요한 갈림길 어느 곳에서도 이정표는 눈에 띄지 않았고, 어쩌다 하나씩 보이는 이정표도 도대체 산행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산행을 하는데 가장 필요한 거리표시가 없이 그저 방향만 표시해 놓고 있을 따름이기 때문이다. 관리관청(管理官廳)인 담양군청에 정중하게 바래본다. 이왕에 ‘생태공원’으로 조성했다면 그에 걸맞게 정비해 줄 것을 말이다.
▼ 쉼터봉에서 잠깐 내려선 산길은 다시 위로 향한다. 그 길에 바위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신선봉이 바위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예고라도 하려는 모양이다. 그리고 곧이어 신선봉 정상에 올라서게 된다. ‘신선봉 정상’이라고 쓰인 팻말이 정상석을 대신하고 있는 정상은 남쪽으로 조망(眺望)이 트인다. 바로 오른쪽에 있는 치재산은 물론이고 강천산과 추월산, 무등산, 내장산 등이 아까 용추봉 정상에서보다 한결 더 가까이 보인다. 용추봉에서 신선봉까지는 50분이 걸렸다.
▼ 굽이치는 산릉(山稜)을 바라보는 눈 시림은 감동 그 자체이다. 여름이 가면서 가을로 접어든다. 이 시기의 녹음의 빛깔은 참으로 매혹적이다. 여름을 벗고 가을의 옷을 입기 위한 변화의 모습이 그것이다. 저 녹음은 얼마 후이면 오색의 단풍으로 물들 것이고 그때 사람들은 더 많이 산에 미쳐갈 것이다.
▼ 신선봉에서 용소로 내려가는 길은 급경사(急傾斜) 내리막이다. 거기다 잔돌까지 많기 때문에 미끄러지지 않도록 주의가 필요한 구간이다. 그러나 너무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 길가에 굵은 로프로 난간을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바윗길 구간뿐만 아니다. 흙길이라도 경사(傾斜)가 심한 곳에는 어김없이 안전로프를 매달아 등산객을 배려하고 있다. 아까 지나왔던 용추봉 구간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
▼ 가파른 내리막길을 30분 가까이 조심스럽게 내려오면 외편이 깎아지른 바위절벽으로 이루어진 전망바위에 이르게 된다. 나무의자까지 설치된 이곳에서는 가마골과 생태공원의 시설물(施設物)들, 그리고 가마골의 명물인 출렁다리가 한눈에 잘 들어온다.
▼ 전망바위에서 내려오면 곧이어 시멘트로 지어진 시원정(始源亭)이란 정자가 나온다. 정자(亭子)에 오르면 영산강의 발원지(發源地)인 용소폭포와 가마골의 아름다운 협곡(峽谷)이 한눈에 잘 들어온다. 사방이 병풍처럼 둘러싸인 골짜기 속에서 신비스런 용의 기운이 느껴지며, 잠시 시간을 거슬러 올라 전설(傳說) 속에 빠져 들어본다. 그러나 정자에서 오래 머물 필요까지는 없을 것이다. 이곳 말고도 출렁다리 등 곳곳에서 이 정도의 조망은 흔하게 터지기 때문이다. 참고로 시원정의 현판(懸板)은 호남지역의 유명한 서예가(書藝家) 장전 하남호선생의 작품이라고 한다.
▼ 시원정 아래의 바위협곡에는 출렁다리가 놓여있다. 가마골을 사이에 두고 양쪽 바위벼랑을 출렁다리로 연결시켜 놓은 것이다. 다리는 68m의 길이에 주탑(主塔)의 높이는 12.5m, 연분홍의 철 케이블로 만들어져 있다. 다리가 허공에 매달려 있다 보니 사람들이라도 다닐라치면 어김없이 출렁거린다. 그런데 그 높이가 30m가까이 되다보니 다리가 후들거릴 수밖에 없다. 그러니 겁에 질린 사람들을 놀래주려고 일부러 다리 위에서 뛰어대는 사람들이 생기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그로 인해 비명을 질러대는 사람들도 생긴다. 뛰어대는 쪽은 하나 같이 남자들이고, 대신에 비명은 여자들 차지이다. 그러나 막상 다리 위에서는 출렁다리의 전모(全貌)가 나타나지 않는다. 만일 다리의 본 모습을 제대로 보고 싶다면 양쪽 바위벼랑 위를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출렁다리가 주변의 암릉 및 푸른 신록과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을 연상케 한다.
▼ 출렁다리는 가마골의 명소인 용소폭포(龍沼瀑布가 가장 잘 바라보이는 포인트(point)이다. 다리의 중간쯤에 서면 용소의 전모(全貌)가 적나라하게 펼쳐지는 것이다. 용소는 한 인간의 부질없는 욕심이 불러온 화(禍)에 대한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그 전설의 내용은 대강 이렇다. 옛날 담양 고을에 원님이 새로 부임했는데 그는 풍류(風流)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의 귀에 아름다운 가마골에 대한 소문이 그냥 넘어갈리 없었을 것이다. 그가 구경할 날짜를 잡고 잠을 자는데 꿈에 백발선인이 나타나더니 내일은 내가 승천(昇天)하는 날이니 오지 말라고 간곡히 부탁하고 사라지더란다. 그러나 원님은 신령의 말을 저버리고 이튿날 예정대로 가마골로 행차했다. 어느 못에 이르러 그 비경에 감탄하고 있는데 갑자기 그 못의 물이 부글부글 소용돌이 치고 주위에는 짙은 안개가 피어오르더니 황룡이 하늘로 솟아올랐다. 그러나 황룡은 다 오르지를 못하고 그 부근 계곡으로 떨어져 피를 토하며 죽었단다. 이를 본 원님도 기절하여 회생하지 못하고 죽었다니 한 사람의 부질없는 욕심이 불어온 화(禍)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 뒤 사람들은 용이 솟은 못을 ‘용소’라고 하고 용이 피를 토하고 죽은 계곡을 ‘피잿골’이라 불렀다고 한다.
▼ 출렁다리를 건넜다가 다시 되돌아 내려오는 것이 일반적인 산행코스이다. 그러나 우리부부는 맞은편 산자락으로 향하는 긴 계단을 오른다. 사령관동굴을 보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계단이 끝났는데도 동굴은 나타나지 않는다. 보이는 것이라곤 삼거리에 세워진 이정표(제2등산로, 사령관동굴/ 수변공원/ 시원정, 출렁다리)가 고작이다. 사령관 동굴은 이곳에서도 얼마간 더 올라가야만 하는 모양이다. 우린 여기서 그냥 발걸음을 돌리기로 한다. 끝까지 가보고 싶었지만 얼마나 더 올라가야 동굴이 나올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거리 표시도 되어있지 않은 이정표를 왜 세웠는지 이유를 모르겠다.
▼ 갈림길에서 수변공원으로 내려간다. 대략 5분쯤 내려갔을까 또 다시 갈림길(이정표 : 용소, 관리소/ 사령관계곡(굴)/ 시원정, 출렁다리)이 나타난다. 이정표를 보니 사령관 동굴은 이곳에서도 갈 수가 있는 모양이다. 그렇다면 그 거리는 꽤 된다는 의미일 것이니 아까 동굴 가는 것을 포기한 우리의 결정은 최선이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산행 후에 산행대장에게 물어본 결과 동굴까지 다녀오려면 2Km정도를 더 걸어야 한단다. 그리고 막상 그곳에 가봐야 동굴도 없다면서 안 가길 잘했다고 했다. 갈림길에서 용소 쪽으로 조금만 더 내려오면 수변공원(水邊公園)이 나온다. 수변공원이라고 해서 별다른 것은 없다. 이름 그대로 물가에 조성해 놓은 공원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물가에 정자(亭子) 하나와 안내판 몇 개 세워놓은 것이 다이니까 말이다. 공원 앞에 소(小)자라도 하나 붙였으면 더 좋았지 않았나 싶다.
▼ 수변공원에서 몇 발작만 더 걸으면 용소폭포의 윗자락, 작은 와폭(臥瀑)들이 연이어 만들어내는 물길이 장관을 이루고 있다. 물줄기는 중간에서 암반에 걸려 한차례 바위구멍으로부터 힘차게 공중으로 솟구쳐 오른 후 다시 아래를 향해 힘차게 뛰어내린다.
▼ 폭포의 상단에 마련된 전망대에서 주변풍경을 눈에 담다가 아래로 내려오면 용소폭포의 전모(全貌)가 한눈에 들어온다. 폭포는 위에서 볼 때와는 또 다른 모습이다. 용(龍)이 승천하다가 피를 토하며 죽었다는 전설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주변 암반(巖盤)은 억겁(億劫)의 세월을 통해 계곡물이 암반을 깎아내려 흡사 용이 꿈틀거리며 지나간 듯한 모양을 만들고 있다. 그리고 그 위를 떨어져 내리는 물줄기는 우람했고, 아래의 소(沼)는 너르면서도 깊었다. 아마 최근에 내린 폭우로 인해 수량이 불어난 덕분일 것이다. 깊은 소가 부담스러웠던지 사람들이 들어가지 못하도록 목책(木柵)을 둘러놓았다. 참고로 용소는 영산강의 시원지(始原池)로 알려져 있다. 이곳에서 발원한 영산강 물줄기는 담양읍을 지나 광주, 나주, 영암 등지를 거쳐 목포 앞바다까지 111.5km를 흘러 영산강 하구둑을 통해 서남해로 흘러들게 된다.
▼ 용소폭포를 둘러봤다면 오늘 산행이 끝났다고 봐도 된다. 폭포 입구의 바위협곡을 지나고 나서는 주변 풍경도 그다지 특별한 것을 보여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냥 무작정 걷지는 말자. 지금 걷고 있는 가마골계곡은 우리의 아픈 역사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곳이기 때문이다. 한국전쟁(韓國戰爭) 기간 동안 남북 양쪽의 사망자(死亡者) 수는 130만 명이다, 거기다 행방불명자까지 합칠 경우에는 그 수는 무려 241만 명으로 늘어난다. 민족의 아픔이 아로새겨진 용추산 가마골에서 동족상잔(同族相殘)의 비극인 6.25전쟁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것은 어떨까.
▼ 산행날머리는 생태공원 밖의 주차장
용소폭포에서 25분 남짓 걸어 내려오면 산행을 시작하면서 헤어졌던 용연폭포 갈림길이 나오고 차가 주차되어있는 생태공원 밖의 주차장까지는 이곳에서도 10분 정도를 더 걸어야만 한다. 가마골을 찾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침에 차에서 내렸던 관리사무소 앞 주차장을 산행의 들머리와 날머리로 삼는다. 그러나 만일 회원들에게 제공하는 음식(飮食)을 직접 만드는 산악회라면 우리처럼 생태공원 밖에다 날머리를 잡을 수밖에 없다. 생태공원 안에서는 취사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오늘 산행을 따라나선 산악회가 식사를 직접 만들어서 제공한다는 것은 아니다. 산행을 끝내고 돌아온 회원들에게 시원한 막걸리 사발을 돌리면서 안주로 곁들일 도토리 부침개를 만들려다 부득이 이곳까지 오게 된 것이다. 오늘 산행은 3시간 40분이 걸렸다. 중간에 몸을 씻느라 쉰 시간을 감안하면 3시간20분이 걸린 셈이다.
♧ 에필로그(epilogue), 담양은 대나무의 고장으로 유명하다. 때문에 대나무와 관련된 볼거리와 먹을거리가 많다. 그 대표적인 것으로는 대나무 정원(庭園)인 죽녹원(竹綠苑)과 대나무 마디에다 밥을 해주는 ‘대통밥’. 그리고 ‘떡갈비’를 들 수 있다. 가마골에서 담양읍까지는 대략 20분 남짓, 오늘 산행을 따라나선 산악회(산두레)는 이런 고장을 그냥 지나칠 리가 결코 없는 산악회이다. 아무리 귀경시간에 쫓긴다고 해도 죽녹원 정도야 그냥 거를 수도 있겠지만 담양에서의 식사까지 포기할 정도의 산악회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만큼 그 지역의 먹을거리를 놓치지 않고 맛을 보여주는 것으로 전통이 있는 산악회인 것이다. 허나 문제는 대통밥과 떡갈비의 가격이 만만치 않다는 점이다. 거기다 지난번 산행에서 영양탕을 준비하느라 금고(金庫)가 바닥났단다. 그래서 바꾼 메뉴(menu)는 쌈밥정식. 대신 돈을 조금 더 주고 제육복음의 양을 늘렸단다. 담양군청에서 추천해준 식당답게 식사는 훌륭했다. 죽순요리를 포함한 16개나 되는 밑반찬은 정갈했고, 된장국은 맛깔스러웠다. 거기다 여러 번에 걸쳐 밑반찬을 보충해주면서도 인상 한번 쓰지 않는 종업원들의 접대 매너(manner)는 신선하기까지 했다. 이 자리를 빌어 산악회관계자 분들에게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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