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자도 여행 : 상추자도 올레길 트레킹

 

코스 : 추자대교한국전력발전소62m바랑케 쉼터추자등대나바론절벽 정상처사각순효각용듬벙나바론절벽 전망대낙조전망대동굴레산최영장군 사당추자항

 

상추자도 올레길은 다리를 건너자마자 왼편으로 방향을 틀면서 이어진다. 오른편으로 갈 경우에는 추자항으로 곧장 가게 되니 주의할 일이다. 그러나 들머리에 이정표(등대전망대/ 하추자올레길)가 세워져 있으니 걱정할 필요까지는 없다.

 

 

 

등산로의 들머리는 추자도의 불을 밝혀주는 미니 화력발전소를 지나서 오른쪽으로 열린다. 이 길은 65m봉을 넘어 추자등대로 연결된다. 65m봉으로 오르는 길은 산의 높이에 비해 제법 가파르다. 단번에 위로 향하지 못하고 갈지()자를 만들면서 위로 향하는 것도 모자라 침목(枕木)으로 계단을 만들어야 할 정도로 힘겹게 위로 향하고 있다.

 

 

그러나 다행이도 오르막길이 길지는 않다. 10분 정도 오르면 산길이 완만(緩慢)해지면서 또 다시 눈터지는 조망(眺望)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좌우로 바다와 섬들을 내려다보면서 능선을 타면 마치 구름 위를 걷는 신선(神仙)이라도 된 것 같은 느낌이다. 거기다 길이 완만하기 때문에 걷는데 조금도 부담이 없다. 그저 눈요기만 즐기면 되는 것이다. 발아래에는 수직의 바위절벽이 도열해 있고, 그 너머에는 보석처럼 수줍게 앉아있는 섬들, 이런 빼어난 경관(景觀)을 자주 접할 수 있는 기회는 그리 흔하지 않다.

 

 

 

전망바위가 있는 봉우리를 넘으면 산길은 능선안부에 있는 바랑케 쉼터(亭子)’까지 내려섰다가 다시 반대편 능선을 따라 위로 향한다. 그리고 얼마 후에는 산정(山頂)에 우뚝 솟아있는 추자등대에 이르게 된다. 이곳 전망대는 등대로서의 역할 뿐 아니라 추자군도 전체를 내려다 볼 수 있는 전망대(展望臺)로서도 최고이다. 추자대교 건너에 있는 하추자도를 위시한 추자군도(楸子群島)의 크고 작은 섬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광경을 볼 수 있는 최적의 조망(眺望) 포인트(point)인 것이다. 그 조망 포인트는 그림 같은 추자등대의 4층 옥상에다 만들어 놓았다. 옥상전망대는 한라산과 다도해(多島海)를 한꺼번에 볼 수 있는 유일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오늘은 아쉽게도 연무(煙舞)에 가려 한라산의 자태는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추자도등대에서 길 찾기에 주의가 필요하다. 세계최초의 등대인 파로스 등대의 조형물이 세워진 방향으로 진행할 경우 곧장 추자항으로 내려가 버리게 되기 때문이다. 올레길은 등대를 왼쪽에 끼고 90()쯤 돈 후 북서쪽 능선을 타야 한다. 능선의 왼편은 깎아지른 천애절벽(天涯絶壁)으로 이루어져 있다. 오랜 세월에 걸쳐 거센 바람과 거친 파도가 빚어 놓은 걸작(傑作)이다. 이 절벽이 추자도에서 가장 뛰어난 경관으로 알려진 나바론절벽이다. 2차 대전 당시 독일군이 점령했던 에게해(Aegean Sea)의 케로스섬에 있었던 난공불락(難攻不落)의 요새(要塞)였던 나바론에서 그 이름을 따왔다고 한다. 절벽아래를 내려다보기가 무서워 멀찌감치 안쪽으로 서서 200m쯤 걸으면 능선의 안부에서 이정표 하나가 길손을 맞는다. 그런데 이정표를 보는 사람들은 누구나 고개를 갸웃거릴 것이다. 현 위치를 나바론절벽 정상이라고 표기하고 있는데, 아무리 둘러봐도 절벽의 정상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절벽의 정상은 군()의 레이더기지가 있어서 민간인의 출입이 통제된다. 철책(鐵柵)으로 둘러싸여있는 탓에 출입이 불가능한 것이다.

 

 

이정표가 있는 안부에서 능선을 벗어나 오른편으로 난 올레길을 따른다. 이어서 침목(枕木)으로 만든 계단을 따라 내려서면 조금 후에 처사각(處士閣)에 이르게 된다. 처사각은 처사 박인택을 추모하기 위해 그의 후손들이 건립한 사당(祠堂)이다. 박인택은 추자도에 사는 태인 박씨의 입도(入島) 선조로 조선 중기 추자도에 유배(流配)와서 주민들의 병을 치료해 주고 불교교리를 가르치면서 살았다고 한다. 처사각의 정확한 건립연도는 알 수 없으나 애초 마을 내에 소규모 주택가에 초가집으로 건립되어 제()를 지내오다가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고 한다.

 

 

 

처사각에서 빠져나와 영흥리에 들어서면 제주 올레길의 참맛을 느낄 수 있다. 원래 올레란 마을의 골목길을 이르는 제주의 방언(方言), 곧 사투리이다. 그러니까 제주 올레길트레킹이라 함은 곧 제주 마을의 골목과 골목을 잇는 길을 걷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지금 영흥리의 구불구불한 골목길을 걷고 있으니 진정한 올레길 트레킹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순효각(純孝閣)은 마을 골목길을 통과하는 중에 만나게 된다. 순효각은 지극한 효성을 실천한 박명래(朴明來)의 행실을 기리기 위해 세운 사당(祠堂)이다. ‘밀양 박씨인 박명래는 효성이 지극했다. 병든 아버지가 먹고 싶어 하는 꿩고기를 구할 수가 없자 이를 슬퍼하며 하늘에 빌자 하늘이 이를 어여삐 여겨 꿩고기를 내려주었고, 또 어머니가 병에 들었을 때에는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 그 피를 먹여 생명을 연장하기도 하였단다. 목사가 이를 알고 그를 포상한 후 속수삼강록(續修三綱錄)에 기록했다고 한다. 이밖에도 추자도에는 최영장군의 사당과 처녀당이 있다. 최영장군이야 다들 알고 있을 테니 설명은 생략하고, 처녀당의 유래는 대략 이렇다. 옛날 제주의 해녀(海女)들이 추자도로 물질을 나올 때는 아기를 돌봐줄 처녀를 같이 데리고 왔는데, 이 처녀가 불의의 사고로 죽자 처녀의 원혼을 달래주기 위해 지은 사당이란다. 이렇듯 추자도에서는 한이 맺혀 죽은 사람, 벼슬아치, 장군 등 수많은 신()들이 모셔지고 있다.

 

 

순효각을 둘러본 후 마을을 빠져나오면 또 다시 바닷가를 만나게 된다. 화장실과 탈의실, 그리고 정자(亭子)쉼터까지 갖춘 자그마한 해수욕장이다. 이곳에서 길이 두 갈래로 나뉘는데, 추자도의 명물이라는 나바론의 절벽을 구경하기 위해서는 왼편으로 진행해야 한다. 갈림길에 세워진 이정표(용듬벙/ 봉골레산/ 순효각)의 용듬벙 방향이다. 용듬벙에 나바론 절벽을 보기 위해 만든 전망대가 있기 때문이다.

 

 

용듬벙으로 가다보면 호박터널을 지나가게 된다. 쇠파이프로 비닐하우스 모양의 긴 터널을 만들고, 양옆에다 관상용 호박을 심어 놓았다. 터널의 입구에 팻말 하나가 걸려 있기에 살펴봤더니 호박을 따가지 마라는 경고판이다. 설마 누가 저런 짓을 할까 생각이 들었지만 그동안 따가는 사람들이 숫하게 있었기 때문에 저런 경고판까지 붙여놓았지 않았나 싶어 눈살이 찌푸려진다.

 

 

나바론 절벽으로 가는 길에 보면 오른편에 양식장(養殖場)이 보인다. ‘! 추자도에는 양식(養殖)이 없고 모두 자연산(自然産)이라고 했는데 웬일이지?’ 누군가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탄식이 히스테릭(hysterical)하게 느껴질 정도로 날카롭다. 추자도에서는 물고기 양식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저녁식사로 회 정식을 주문해 놓았는데 양식장이 보이니 속이 상할 만도 할 것이다. 그러나 다음날 투어 때 만난 유람선 선장의 말로는 일반 양식장이 아니라 참 다랑어양식장이란다. 그렇다면 저곳에서 자란 물고기는 우리들이 밥상에 올라올 일이 없다. 엄청나게 비싼 참다랑어를 16천 원짜리 밥상에 올려놓을 주인장은 세상 어느 곳에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호박터널을 지나면 맞은편에 바위로 이루어진 산 하나가 나타난다. 산 위를 향해 놓은 긴 계단이 바위산과 어우러지며 제법 그럴듯한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그 바위산으로 가기 위해서는 쇠로 만든 다리를 한번 건너야 한다. 근처에 물웅덩이가 있기 때문이다. 바로 용듬벙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는 웅덩이이다. 용듬벙은 바위가 바닷물을 막아 물이 고인 곳인데 모양이 제법 아담하다. 못의 이름을 미루어 보건데 저 웅덩이에서 용이 머물렀던 것이나 아닌지 모르겠다.

 

 

용듬벙을 건너려는데 산행대장이 왼편 바위벼랑 위에서 손짓을 하고 있는 것이 보인다. 맞은편의 용듬벙 전망대보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나바론 절벽이 더 뛰어나다는 것이다. 조심스럽게 올라 벼랑에 서니 그의 말대로 나바론의 전모(全貌)가 한눈에 잘 들어온다.

 

 

 

 

첫 번째 조망처에서 내려와 맞은편 용듬벙 전망대로 향한다. 긴 나무계단을 밟고 올라서면 나바론 절벽이 한눈에 쏙 들어오는 바위벼랑 위이다. 벼랑 위에는 나무데크로 전망대(展望臺)를 만들어 놓았다. 전망대에 서면 나바론 절벽이 웅장한 모습으로 눈앞에 펼쳐진다. 과연 절경이다. ‘나바론의 절벽1961년 영국출신의 J.리 톰슨(John Lee Thompson) 감독의 나바론 요새라는 영화(映畵)에서 나오는 바위절벽이다. 당시 이 영화에는 그레고리 팩과 안소니 퀸, 그리고 데이빗 니븐, 안소니 퀘일 등 쟁쟁한 세계적 스타들이 출연했었고, 나 역시 완성도 높은 이 영화를 관람했던 기억이 있다. 영화는 케로스 섬에 갇힌 영국군 2천명을 구하기 위해 벌이는 전쟁영화이다. 구하러 가는 길목에 나바론이라는 섬이 있었고, 이 섬에는 독일군의 거대한 대포가 두 대가 배치되어 있었다. 영화는 길목을 막고 있는 이 대포들을 폭파하려는 연합군과 이를 막으려는 독일군의 대결을 그린 영화였다. 연합군 특공대가 목숨을 걸고 오르던 절벽(絶壁)이 바로 나바론 절벽인 것이다. 지금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절벽은 영화에서 보았던 절벽 만큼이다 서슬이 시퍼렇다. 그래서 나바론의 절벽이라는 이름을 서슴없이 붙였나 보다.

 

 

 

 

 

 

 

 

나바론의 절벽을 구경한 후 다시 삼거리로 되돌아와 이번에는 봉골레산으로 향한다. 여유가 있는 풍경에는 농기계(農機械)까지도 멋진 소품이 되는 모양이다. 돌탑이 있는 쉼터에 방치되듯 놓여 진 경운기(耕耘機)까지도 멋진 풍광으로 승화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공원묘지를 지나면 다무래미 갈림길(이정표 : 봉골레산/ 다무래미)을 만나게 되고, 이어서 사각(四角)의 정자(亭子)가 지어진 봉골레산 입구에 이르게 된다. 봉골레산을 둘러본 후에는 다시 이곳으로 되돌아 나와야 한다. 그래야 다음 행선지인 최영장군 사당으로 갈 수 있기 때문이다.

 

 

 

 

 

 

봉골레산 입구에서 오른편으로 방향을 잡아 조금 오르다가 오른편에 보이는 오솔길로 들어선다. 오른쪽 언덕 위가 낙조전망대(落照展望臺)이기 때문이다. 쉼터를 겸한 전망대에 서면 아까 올랐던 나바론의 절벽 전망대가 한눈에 들어오고, 그 뒤에는 망망대해(茫茫大海)가 펼쳐진다. 저렇게 거칠 것 없이 너른 바다라면 티 하나 없는 낙조를 보여줄 것이 틀림없다. 한번쯤 낙조를 보고도 싶지만 아직은 이른 시간인지라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다.

 

 

 

 

낙조전망대에서 조금 더 걸으면 봉골레산이다. 봉골레산은 산의 정상이라기보다는 공원이라고 보는 게 더 옳을 것 같다. 분지(盆地)로 이루어진 너른 정상에 정자(亭子)와 체육시설은 물론 간이화장실까지 갖춘 쉼터를 조성해 놓았기 때문이다. 정상에 서면 추자항이 시원하게 내려다보이고 좌측으로는 수령섬, 악생이여, 염섬, 이섬, 추포도, 횡간도, 검은가리섬 등 추자군도의 대부분의 섬들이 모두 시야(視野)에 들어온다.

 

 

 

동굴레산에서 다시 삼거리로 되돌아와 이번에는 최영장군 사당(祠堂)’으로 향한다. 이 길은 해안선을 따라 나있기 때문에 왼편으로 트이는 조망(眺望)이 시원스럽다. 그리고 그 조망은 최영장군 사당 뒤 소나무 숲 해안에 이르게 되면서 극에 달하게 된다. 해안의 절벽에 올라서면 시야가 완전히 트이면서 추자도 앞 섬들이 한 눈에 들어온다. 연무(煙霧)로 인해 비록 희미하게 나타나는 정도이지만 추자도가 제주의 다도해(多島海)라는 말이 실감이 난다. 그렇다. 추자군도에는 상추자, 하추자, 추포, 횡간도 등 4개의 유인도와 38개의 무인도 등 총 42개의 섬들이 모여 있는 것이다.

 

 

 

전망대에서 내려오면 사당(祠堂) 하나가 나타난다. 최영장군을 모시는 사당(제주도 기념물 제11)이란다. 육지에서 한참이나 떨어진 외진 섬이 최영장군과 어떻게 인연을 맺었을까? 고려의 공민왕이 명나라와 우호를 맺기 위해 제주의 말을 징발했는데, 제주에 주둔하고 있던 몽골인 목호(牧胡) 석질리(石迭里) 등이 1374년에 난()을 일으켰다고 한다. 이때 최영장군이 등장한다. 목호를 진압하기 위해 뱃길에 올랐던 최영장군이 심한 풍랑을 만나 추자도(점산곶 : 點山串)에 잠시 머물게 되었고, 추자도에 머무르는 동안 어민들에게 어망 손질법(어망편법 : 漁網編法)을 가르쳐주어 추자도 사람들의 생활을 도왔다는 것이다. 그 뒤 이곳 주민들은 장군의 위덕을 잊지 못하여 사당을 짓고 매년 봄가을에 봉향(奉享)하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위에서 말한 목호에 대해서 잠시 짚고 넘어가보기로 하자. 고려시대 무신정권의 사병(私兵)으로 꾸려졌던 삼별초(三別抄)용사들로 조직된 선발군이라는 그 이름에 걸맞게 항몽전(抗蒙戰)의 선두에 선다. 하지만 1273(원종14), 원은 탐라에서 항쟁하던 삼별초를 평정하고 일본 원정에 대비해 탐라총관부를 설치한다. 이어 제주도에 목마장(牧馬場)을 설치했는데, 이때 소나 말을 기르기 위해 파견하였던 몽골인들이 곧 목호(몽골의 목자, 목동)이다.

 

 

최영장군 사당을 둘러보고 추자초등학교 담벼락 옆으로 난 길을 따라 잠깐 내려오면 추자항에 이르게 되면서 추자도 올레길 트레킹이 끝을 맺는다. 트레킹이 끝나면 미리 예약된 숙소(여정여관 : 064-742-8111)에 들러 짐부터 푼다. 독립된 잠자리를 원하는 우리부부에게 주어진 방은 3, 칫솔과 샴푸(shampoo) 그리고 타월(towel) 등 세면도구는 물론 화장품과 헤어드라이에다 에어컨까지 갖춘 생각보다 뛰어난 시설과 서비스가 제공되었다. 물론 이 방을 따로 얻느라 3만원을 추가로 부담해야 했지만 말이다. 트레킹에서 흘렸던 땀을 깨끗하게 씻어낸 후에는 제일식당(064-742-9333)으로 자리를 옮긴다. 여관 주인의 호의로 미리 예약이 되어있으니 그냥 먹기만 하면 된다. 오늘의 메뉴(menu)회 정식(가격 : 16,000)’, 싱싱한 자연산 회는 맛이 있었고, 그 양도 충분했다. 그리고 나중에 나오는 지리탕도 담백한 것이 일품이었다. 추자도 음식이 맛있는 것은 다 이유가 있다. 추자도 주민의 대부분은 전라도 출신들이란다. 그래서인지 주민들의 생활권은 본섬인 제주도 보다는 육지인 전라도에 더 가깝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아이들을 목포로 유학(遊學)을 보냈을 정도였다니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런 연유로 남도의 손맛이 그대로 추자도에 전해졌고, 그 덕분에 우린 지금 맛깔스런 남도 음식을 맛볼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