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산(647m) 또는 제당산(祭堂山)

 

산행일 : ‘14. 7. 26()

소재지 : 충북 괴산군 청천면

산행코스 : 용추교585삼거리봉사랑산독수리바위코끼리바위용추슈퍼소나무 연리목용추폭포용세골용추교(산행시간 : 4시간 40)

같이한 산악회 : 가보기산악회

 

특색 : 괜찮은 산세(山勢)를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야산이나 악휘봉 등 주변의 명산(名山)들에 가려 숨어 지내던 사랑산이 언제부턴가 사람들로 붐비게 되었다고 한다. 사랑산으로 이름을 바꾸면서 부터란다. 사람들은 살아가다 일이 잘 안 풀릴 경우에는 이름을 바꾸는 경우가 종종 있다. 산이라고 해서 이름을 바꾸지 말라는 법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산도 개명(改名)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경기도 가평의 연인산이고, 또 대표적인 성공사례로 꼽을 만하다. 이곳 사랑산도 이름을 바꾸고 나서부터 사람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으니 개명이 성공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원래 산신제(山神祭)를 지내는 제당골이 있다고 해서 제당산(祭堂山)이란 이름으로 불리던 평범했던 산이 1999년에 용추폭포 인근에서 '사랑나무'로 불리는 연리목(連理木)이 발견됨으로써 사랑산으로 이름이 바뀌게 되었고, 그 결과 인근의 명산들과 어께를 나란히 하는 유명세(有名稅)를 떨치게 된 것이다. 아무튼 한번쯤은 꼭 들러봐야 할 산이다.

 

산행들머리는 에코황토마을 앞 도로(괴산군 청천면 후영리 8)

중부내륙고속도로 괴산 I.C에서 내려와 19번 국도를 이용해서 괴산읍내까지 들어온다. 괴산읍내를 지나서도 계속해서 19번 국도를 따르다가 지경삼거리(청천면 지경리)에서 좌회전 515번 지방도(도경로) 청천면소재지 방면으로 들어가면 오래지 않아 용추교에 이르게 된다. 이곳 용추교를 건너기 바로 직전에 좌회전하여 용세골 방향으로 200m쯤 들어가면 오른편에 멋지게 지어진 기와집이 한 채 보인다. 산행들머리인 에코황토마을(Naver지도 참조)'이다  

 

 

 

도로에서 에코황토마을 진입로를 겸한 다리를 건너면서 산행이 시작된다. 펜션(pension)인 듯한 에코황토마을의 앞에서 왼편으로 방향을 틀면 얼마 지나지 않아 화사한 무궁화축제가 막을 연다. 길가에 커다란 무궁화나무들이 줄지어 늘어서있는데 나무마다 화사한 꽃들을 가득 피우고 있는 것이다. 그 무궁화축제가 막을 내릴 즈음에 산길이 열리게 된다. 길가에 사랑산 등산로라고 쓰인 이정표가 세워져 있으니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산길은 인삼밭 두렁을 통해 산자락으로 들어서게 된다. 그리고 이어지는 산길은 무던히도 가파른 오르막길의 연속이다. 오늘은 무더운 여름날, 거기다 가랑비까지 추적추적 내리고 있다. 그런데 비가 오는데도 불구하고 다들 비옷을 입지 않은 채로 산을 오르고 있다. 하긴 이런 날 비옷을 입는다면 비 맞는 것 이상으로 땀에 젖을 것이 뻔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다행이도 그 거리는 짧다. 15분이면 지능선에 올라서게 되고, 이어지는 산길은 그 사나운 기세(氣勢)를 많이 누그러뜨리기 때문이다.

 

 

 

 

산길은 작은 오르내림을 반복하면서 서서히 고도(高度)를 높여간다. 짧은 내림과 긴 오름이 계속된다는 얘기이다. 참나무들과 소나무들이 사이좋게 섞인 숲을 뚫고 난 산길은 의외로 또렷하다. 산을 찾는 사람들이 예상외로 많다는 증거일 것이다. 그러나 산길은 특별한 볼거리는 제공하지를 못한다. 그저 앞사람의 등이나 보면서 걷는 게 일이다. 그렇게 32분 정도를 진행하면 585m에 올라서게 된다.

 

 

 

585m봉을 지나서도 오르내림은 계속된다. 그러나 이번의 것들은 그 깊이나 가파름이 아까보다는 제법 심해졌다. 봉우리와 봉우리 사이의 골들이 아까보다 확연하게 깊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특별한 볼거리가 없다는 것은 아까와 달라지지 않는다. 아직도 날씨는 비가 오락가락한다. 추적추적 내리는 빗줄기를 맞으며 30분 정도 걷다보면 갈림길이 있는 644m봉에 올라서게 된다. 왼편에 보이는 길은 사랑산의 명품 소나무라는 연리목(連理木)으로 내려가는 길이다.

 

 

 

644m봉에서 사랑산 정상은 지척이다. 경사(傾斜)가 거의 없는 완만(緩慢)한 능선을 따라 5분 남짓만 걸으면 사랑산 정상에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 흙으로 이루어진 정상은 소나무들이 차지하고 있고, 검은 오석(烏石)으로 만들어진 정상표지석은 그중 가장 굵은 소나무 그늘 아래에 자리 잡고 있다. 소나무들 외곽을 또 다시 굴참나무들이 둘러싸고 있는 탓에 정상에서의 조망(眺望)은 트이지 않는다. 한마디로 이름에 걸맞지 않을 정도로 볼품이 없다는 얘기이다. 산행들머리에서 정상까지는 1시간30분이 조금 못 걸렸다.

 

 

 

정상에 오르면 사람들은 대부분 정상부근에서 한숨 돌리는 것이 보통이다. 정상에서의 조망을 즐기면서 가지고 온 간식거리를 먹기 위해서이다. 그렇다면 사랑산은 정상에서 머물 필요가 없을 것이다. 조망도 트이지 않은데다 마땅히 자리를 잡을 만한 곳도 눈에 띄지 않기 때문이다. 그럴 경우 곧바로 남동릉으로 하산을 시작하면 된다. 소나무기둥에 매달려 있는 자연휴게소라고 쓰인 이정표가 가리키고 있는 방향이다. 정상 바로 아래에 여러 사람이 둘러앉을 만한 바위쉼터들이 곳곳에 나타날 것이다.

 

 

 

하산길 초반에 만나게 되는 기암(奇巖), 일행 중 누군가가 코끼리를 닮았다고 한다. 그런데 내 눈에는 아무리 봐도 코끼리의 모양새가 그려지지 않는다. 그런 나를 보고 집사람은 심미안(審美眼)이 없다며 놀려댄다. 주눅이 들 수밖에 없는 난 그저 묵묵히 일행을 따라갈 뿐이다. 그러나 집사람의 의기양양함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나중에 진짜 코끼리바위를 만나게 되었던 것이다.

 

 

자연휴게소 방향으로 하산을 시작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오른편 늙은 소나무 그늘 아래에 숨어있는 너럭바위 하나가 나타난다. 바위의 끝이 바위벼랑으로 이루어진 덕분에 시야(視野)가 뻥 뚫리는 멋진 조망처이다. 날씨가 좋을 경우에는 주변 산군(山群)들의 빼어난 자태를 구경할 수 있으련만 아쉽게도 오늘은 비가 온 뒤끝인지라 사위는 온통 구름에 뒤덮여 있다.

 

 

전망바위에서 조금만 더 내려가면 독수리바위이다. 길이 4m에 높이가 2m 정도인 이 기암(奇巖)은 독수리가 다소곳이 앉아 있는 모습으로, 머리와 부리, 꼬리 등이 실제 독수리와 너무 흡사하다.

 

 

독수리바위에서 조금 더 내려가다가 길을 벗어나 오른편으로 조금만 더 들어가면 숲속에 숨어있는 두루뭉술하게 생긴 바위 하나가 보인다. 정상에서 25분 남짓 되는 지점이다. 누군가 이 바위를 곰바위라고 표현한 것을 보았는데, 왜 그런 이름을 붙였는지는 모르겠다. 어쩌면 바위의 생김새가 곰()처럼 우직하다는 게 그 원인이 아닐까 싶다. 하여간 나무기둥을 붙잡고 바위 위로 오르면 조망(眺望)이 시원스럽게 터진다. 구름이 아직 완전히 벗겨지지 않은 탓에 확실하게 감을 잡을 수는 없지만 희미하게 보이는 산들은 아마 가령산과 낙영산, 도명산, 백악산 등일 것이다.

 

 

 

잠깐의 방심이 화를 불러올 수 있다.’ 누구나 귀에 익숙한 말일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대부분 이 잠깐의 방심을 낀 채로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오늘 우리 일행만 해도 그렇다. 곰바위에서 빠져나오면 610m, 이곳에서 만나게 되는 삼거리에서 왼편으로 진행해야 하는데도 우리 일행은 오른편 길로 들어서고 만 것이다. 그 원인은 자연휴게소이정표, 정상에서부터 보였던 터라 아무 의심 없이 받아들인 게 1시간 동안 알바를 하는 화()를 불러온 셈이다. 화양계곡으로 내려가는 오른편 길보다 사그막골로 내려가는 왼편 길이 훨씬 또렷한데도 말이다.

 

 

인생지사 새옹지마(人生之事 塞翁之馬)란 말이 있다. 인생의 길흉화복(吉凶禍福)은 변화가 많아서 예측하기가 힘들다는 뜻이다. 이 말은 우리 일행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싶다. 화양계곡 방향으로 길을 잘못 들어선 탓에 1시간 동안 알바를 했지만 그 대신 사랑산에 숨겨진 비경(秘境)들을 조금이라도 더 둘러볼 수 있는 행운을 얻었기 때문이다.

 

 

 

 

화양계곡으로 내려가는 길은 심심할 틈이 없는 길이다. 산길은 계속해서 바위들을 오르내리면서 이어지고, 또 어떤 때는 안전로프에 매달리는 등 짜릿한 스릴(thrill)을 즐기게 만든다. 거기다 길가에서 마주치게 되는 기암괴석(奇巖怪石)들과 암봉위에서 바라보는 조망은 일종의 보너스(bonus)이다. 한마디로 눈이 호사(豪奢)를 누리는 구간이다.

 

 

 

 

아까 길을 잘못 들어섰던 삼거리로 되돌아와 이번에는 왼편 사기막골 방향 진행한다. 정확히 1시간 동안 알바를 한 셈이다. 산길은 바닥이 반질반질할 정도로 잘 나있다. 이런 길을 잠깐의 방심으로 놓쳤다고 생각하니 헛웃음만 나올 따름이다. 왼편으로 들어서면 얼마 지나지 않아 넓적한 바위를 위태롭게 올라타고 있는 둥그런 바위 하나가 나타난다. 사람의 얼굴을 닮은 것 같기도 하고, 또 어찌 보면 흔들바위 같기도 한 이 바위의 이름은 사랑바위란다. 사랑바위는 바위에다 뽀뽀를 하면 반드시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전설(傳說)을 갖고 있다. 집사람에게 전설을 이야기 해주며 바위에다 뽀뽀를 해보라는데 굳이 안하겠단다. 이미 사랑이 이루어졌는데 뭐가 더 필요하겠냐면서 말이다. 그러나 그녀는 내 고집을 꺾지 못하고 끝내는 뽀뽀를 하고야 말았다. ‘이승뿐만 아니라 다음 생인 후생(後生)에서도 사랑하는 사이가 되고 싶다.’는데 어찌 뿌리칠 수 있었겠는가.

 

 

 

 

사랑바위에서 조금만 더 내려오면 전망바위에 닿는다. 갈림길에서 20분 가까이 되는 지점이다. 지도에 3 전망바위로 표기된 지점이다. 너른 암반(巖盤)의 위편에는 코뿔소바위라는 이름을 갖은 바위 하나가 놓여있다. 길이 2m에 높이가 2m 정도인 이 바위는 코뿔소가 북쪽으로 세차게 달려가는 모습이라는데 내 눈에는 글쎄요이다. 아무리 봐도 그런 형상이 그려지지 않는 것이다. ‘감성(感性)이 부족한 것이려니하고 다시 한 번 자세히 살펴보지만 도저히 안 나타나는 걸 어떻게 하랴. 그나저나 이곳은 왼편이 수십 길 절벽(絶壁)으로 이루어진 탓에 조망(眺望)이 뛰어나다. 사랑산을 통틀어 조망이 가장 뛰어난 곳이니, 잠시 쉬면서 배 터지게 주변 산하(山河)의 아름다움을 감상해보면 어떨까. 북으로 사기막리 너머로 옥녀봉과 군자산이 보이고, 동쪽에는 백두대간이 하늘금을 이룬다. 장성봉을 위시해서 대야산과 조항산, 청화산 등의 고산(高山)들이 헌걸차게 이어지고 있다.

 

 

 

 

3 전망바위에서 조금 더 내려오면 만나게 되는 기암(奇巖), 사람의 얼굴을 쏙 빼다 닮았다. 그것도 우리의 오래된 조상들을...

 

 

전망바위에서 10분쯤 더 내려오면 거대한 바위무더기가 앞을 가로막는다. 산길은 왼편으로 우회(迂廻)를 하도록 나있지만 한번쯤 암릉 위로 올라가보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이 바위가 바로 2 전망바위이기 때문이다. 암릉 위로 올라서면 아까 코뿔소바위 근처에서 보았던 조망(眺望)이 다시 한 번 눈부시게 펼쳐진다. 이 암릉의 북쪽 끝이 바로 코끼리바위이다. 바위의 생김새가 코를 길게 늘어뜨리고 있는 코끼리를 빼다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코끼리바위에도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가 전해져 내려온다. 코끼리의 늘어진 코를 만지면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얘기이다. 집사람이 이번에는 두말 안하고 늘어진 코를 잡고 본다. 이미 사랑에 익숙해져 버린 모양이다.

 

 

 

 

 

코끼리바위에서 조금 더 내려가면 거짓말 좀 보태서 슬랩(slab)이라 불러도 좋을 만한 바위지대가 나타난다. 바위를 내려서는 길에 사기막리가 한눈에 잘 보인다고해서 1 전망바위라는 이름을 얻었다. 1전망바위를 내려서면 산길은 다시 흙길로 변하고, 소나무가 많은 평범한 산길을 따르다보면 조금 후에는 임도(林道)에 내려서게 된다. 이어서 널따란 임도를 따라 10분 정도 더 내려가면 사기막리이다. 코끼리바위에서 이곳까지는 30분 가까이 걸렸다.

 

 

 

사기막리(沙器幕里)는 괴산(청천면) 땅에 있는 오지(奧地)마을의 하나이다. 드문드문 농가가 자리하고 있고 마을은 한적하기 그지없다. 그러나 전형적인 농촌풍경임에도 불구하고 잘 지어진 전원주택과 민박(民泊)’ 간판들이 가끔 눈에 띄는 것을 보면, 우리가 생각해오던 산골마을은 이미 아닌 모양이다. 하긴 상시로 운영되고 있는 슈퍼마켓(supermarket : 용추슈퍼)’까지 있는 마을을 어떻게 오지라고 할 수 있겠는가. 이는 사랑산과 사랑산 아래에 위치한 용추폭포(瀑布)를 찾는 사람들이 그만큼 많다는 증거일 것이다. 참고로 사기막리(沙器幕里)는 고려시대 사기를 굽는 막사가 있었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마을을 지날 때 눈이라도 크게 치켜 떠보는 것은 어떨까? 마을 어딘가에 있을 옛 가마터에서 백자와 분청사기들이 우르르 쏟아질지도 모를 일이다.

 

 

마을을 빠져나오면 작은 개울을 만나게 된다. 용추폭포로 가려면 이 개울을 따라 내려가야 한다. 전형적인 시골길을 따라 10분 남짓 걸으니 임시로 세운 몽골텐트가 눈에 띈다. 사용용도를 궁금해 하며 지나는데, 근처에 청천면 관광안내도’(이정표 : 용추폭포 0.6Km/ 사기막리 1.2Km)물놀이 위험안내판이 세워져 있는 것이 보인다. 간이화장실까지 설치되어 있는 것을 보면 유원지(遊園地)로 관리되고 있는 모양이다. 아니나 다를까 숲 너머로 보이는 냇가는 하얀 암반(巖盤) 위로 맑은 물이 흐르는 것이 여느 유명 유원지에도 결코 뒤지지 않을 풍모를 지니고 있다.

 

 

 

 

관광안내도에서 8분 정도 더 걸으면 용추폭포다. 그러나 주의해야 할 것이 하나 있다. 용추폭포에 이르기 전에 왼편을 잘 살펴보라는 얘기이다. 사랑산이라는 이름을 낳게 한 연리목(連理木)’을 보려면 왼편 산자락으로 올라가야 하는데, 들머리에 이정표가 세워져 있지 않은 탓에 그냥 지나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용추폭포로 내려가는 나무계단에 이르기 50m쯤 전에 왼편으로 고개를 돌리면 산악회 시그널(signal)들이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는 것이 보일 것이다. 왼편 산자락으로 접어들어 2분쯤 올라가면 사랑산의 명물(名物)인 연리목을 만날 수 있다. 연리목 또는 **)연리지(連理枝)나란히 붙어 있는 나뭇가지를 말하며, 뿌리가 다른 두 그루의 나무가 사이좋게 합쳐진다는 의미이다. 그중 가지가 붙은 나무는 연리지, 몸통이 붙은 나무는 연리목이라 한다. 그래서 연리지는 H자 모양이고, 연리목은 Y자를 뒤집어 놓은 형상이 된다. 이곳 연리목은 수령 약 70년에 둘레 1m쯤 되는 소나무 두 그루가 3~4m 높이쯤에서 달라붙어 하나가 되었다. 그래서 중부지방산림관리청에서는 이 나무를 연리목으로 분류하고, 보호수(1997-5)로 지정 관리하고 있다. 참고로 이 연리목의 하단 두 줄기 사이 틈새는 약 45cm. 이 틈바구니 사이로 부녀자가 빠져나가면 아들을 낳는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 연리지의 故事는 후한말(後漢末)의 대학자 채옹(蔡邕)에서 유래됐다. 효성이 지긋하기로 소문난 채옹은 어머니가 병으로 자리에 눕자 3년 동안을 옷도 벗지 않은 채로 간병을 했다고 한다. 병세가 악화되었을 때에는 100일 동안이나 잠자리에 들지도 않고 보살폈으나 끝내 돌아가셨다. 그 후 옹의 집 앞에 나무 두 그루가 싹이 나더니 점점 자라면서 가지가 서로 붙더니 마침내는 한 그루처럼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연리지라는 단어는 원래 효심(孝心)의 상징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던 것이 다정한 연인(戀人)의 상징으로 사용된 것은 당() 시인(詩人) 백락천(白樂天)에 의해서다. 백락천은 당현종과 양귀비의 비극적인 사랑을 장한가(長恨歌)라는 장대한 서사시로 읊었다. 그는 당현종이 양귀비의 무릎을 베고 누워 하늘의 별을 쳐다보면서 사랑을 나누는 장면을 이렇게 노래했다고 한다. 장한가의 끝 구절이다.

七月七日長生殿(칠월칠일장생전) 77일 장생전에서

夜半無人和語時(야반무인화어시) 깊은 밤 사람들 모르게 한 맹세

在天願作比翼鳥(재천원작비익조) 하늘에선 비익조가 되고,

在地願爲連理枝(재지원위연리지) 땅에선 연리지가 되자고 간곡히 하신 말씀...

天長地久有時盡(천장지구유시진) 하늘과 땅은 차라리 끝간 데가 있을지라도,

此恨綿綿無絶期(차한면면무절기)님을 사모하는 이 마음의 한은 끝이 없으리다.

 

 

 

다시 임도로 되돌아와 50m쯤 더 걸으면 나무데크로 된 계단이 아래 계곡을 향해 길게 놓인 게 보인다. ()이 승천(昇天)했다는 전설을 갖고 있는 용추폭포(龍湫瀑布)로 내려가는 계단이다. 계단 아래에 있는 전망데크에 서면 폭포가 한눈에 들어온다. 마치 여인네의 아랫도리처럼 생긴 소()를 향해 하얀 폭포가 힘차게 떨어지고 있는 형상이다. 폭포의 상부와 하부는 널찍한 반석지대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차()는 대략 12m 정도, 고운 화강암 절벽이 마치 병풍(屛風)을 두른 듯 이어진 사이로 커다란 물줄기가 쏟아지고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장관이다. 쪽빛으로 빛날 정도로 깊어 보이는 담()에 구명튜브 몇 개가 떠있는 것이 보인다. 아마 불상사에 대비해서 띄워 놓은 모양이다.

 

 

 

산행날머리는 에코황토마을 인근 도로

용추폭포를 지나서도 산길은 용세골 골짜기를 따라 계속해서 이어진다. 그러나 눈요깃감은 현저하게 줄어든다. 계곡이 점점 넓어지는 대신에 협곡(峽谷)이라는 인상을 풍기게 만들던 바위들이 점점 사라져 버린 탓이다. 그렇게 15분 남짓 걸으면 용세골의 민가(民家)들이 보이고(이정표 : 덕평리 4.7Km/ 용추폭포 0.5Km), 이곳에서부터는 시멘트포장 도로를 따라 걸어야 한다. 15분 가까이 되는 이 길은 오뉴월 땡볕이라도 내려쬘 경우에는 가히 지옥의 행군이 되기 십상인 길이다. 그러나 장점도 있다. 길가에 보이는 과수원(果樹園)에 들어가 나뭇가지에 매달려있는 싱싱한 과일을 직접 채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복숭아와 자두를 각기 한 자루씩 가득 들고 아침에 출발했던 장소로 돌아 나오면서 산행이 끝을 맺는다. 오늘 산행은 총 5시간5분이 걸렸다. 중간에 목욕 등으로 쉰 시간을 뺄 경우 4시간40분을 걸은 셈이다. 그러나 중간에 알바를 1시간 정도 했으니, 제대로 진행할 경우 3시간40분 정도 걸린다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