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흥산(乾興山, 572.1m)-취우령(驟雨嶺=아홉산, 795.2m)
산행일 : ‘13. 9. 7(토)
소재지 : 경남 거창군 거창읍과 마리면, 주상면의 경계
산행코스 : 상율마을 버스정류장→745봉→취우령(아홉산)→건흥산→거열산성→건계정→주차장(산행시간 : 3시간40분)
함께한 산악회 : 기분 좋은 산행
특징 : 건흥산은 거창읍의 진산(鎭山)이다. 그러나 높이로 봐서는 거창의 산답지 않다. 1000m대의 산들이 즐비한 거창에서 500m 대의 산이다 보니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오늘 함께 답사한 취우령도 건흥산보다는 200m 정도 더 높다고 하나, 도토리 키 재기라고 봐야 할 것이다. 거기다가 두 산은 전형적인 흙산(肉山), 흙산의 특징대로 산 자체로는 특별한 볼거리가 없다. 일부러 시간을 내어 찾아볼 필요는 없다는 얘기이다. 다만 거창 군민(郡民)들에게는 예외이다. 건흥산과 거열성을 한데 묶어 군립공원으로 조성해 놓아서 산책삼아 오르기에는 안성맞춤이기 때문이다.
▼ 산행들머리는 상율마을 앞 버스정류장
88고속도로 거창 I.C를 빠져나와 함양방면 24번 국도를 타고 마리면소재지(面所在地)까지 온다. 마리면소재지에 있는 지동교차로(交叉路 : 마리면 말흘리)에서 37번 국도를 갈아타고 무주방면으로 들어가면 얼마 지나지 않아 산행이 시작되는 율리마을(마리면) 앞 버스정류장에 이르게 된다. 마을로 들어가는 진입로 입구에 커다란 ‘상율마을’표지석이 세워져 있고, 도로 건너 맞은편에는 ‘금원산참숯가마’가 보이니 참조하면 된다.
▼ 버스정류장에서 상율마을로 들어가면서 산행이 시작된다. 마을로 들어가는 길가는 가을 기운이 완연(完然)하다. 가을의 전령사(傳令使)라고 일컬어지는 코스모스가 길가에 만발해 있는가 하면, 들녘에는 잘 익은 벼이삭들이 그 무게를 못 이긴 채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다 잘 익은 밤까지 볼 수 있었더라면 금상첨화(錦上添花)이었을 텐데, 주변에 밤나무가 보이지 않는 것이 안타깝다. ‘상율마을’은 율리(栗里)에 속한 일개 단위부락이다. 율리의 위쪽에 위치한 하나의 부락이라는 이야기 이다. 그렇다면 마을 이름으로 미루어볼 때에 밤나무와 연관이 있을 것이 분명한데도 주변에는 밤나무가 보이지 않는 것이다.
▼ 도로를 떠난 지 5분 남짓이면 ‘상율마을’, 마을 안 골목길을 다시 5분 남짓 걸으면 산자락 아래에서 길이 두 갈래로 나뉜다. 갈림길에서 왼편의 임도(林道)로 접어들면 얼마 지나지 않아 오른편에 오솔길 하나가 희미하게 나타난다. 그러나 섣부르게 이곳으로 들어서면 안 된다. 본래의 들머리는 이곳에서 한참을 더 가야 나오기 때문이다. 선두대장이 들머리를 잘못 잡은 덕분에 우리 일행은 이 오솔길로 들어서게 됐다. 그렇다고 이 오솔길이 우리가 올라야할 첫 번째 봉우리인 745봉으로 오르는 길이 아니라는 얘기는 아니다. 얼마 후에는 본래의 등산로와 다시 만나게 되기 때문이다. 다만 등산객들이 자주 이용하지 않기 탓에 길이 거칠어서 진행하기가 무척 힘들 따름이라는 얘기이다.
▼ ‘등산복 다 버리겠네요.’ 집사람의 말마따나 산길이 너무 사납다. 능선이 온통 잡목(雜木)으로 가득한 탓에 산길은 흔적을 찾기조차 쉽지가 않고, 혹여 산길을 찾았다고 해도 진행속도는 더디기만 하다. 명감나무와 산초, 산딸기 등 가시넝쿨들이 계속해서 발목을 휘감는다. 집사람은 모처럼 새로 장만한 등산복이 가시넝쿨로 인해 보푸라기가 일까봐 걱정하고 있는 것이다.
▼ 오솔길로 접어들어 40분 정도를 가시넝쿨과 싸우다보면 지능선에 올라서게 된다. 능선을 따라 제법 또렷한 산길이 좌우(左右)로 나있다. 본래의 들머리에서 산행을 시작했었더라면 왼편에 보이는 길을 따라 이곳에 이르렀을 것이다. 이곳에서부터 산악회의 시그널(signal)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동안 우리가 걸어온 코스에 시그널 하나 보이지 않았다는 것은 그만큼 이 코스를 이용하는 산악회가 없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본래의 등산로를 만나고 나서도 길은 그다지 크게 변하지 않는다. 길의 흔적이 조금 또렷한 것을 제외하고는 다른 것들은 거의 비슷하다. 소나무들이 가득한 숲길은 아직도 가시넝쿨들이 심심찮게 발목을 휘감지만, 다행인 것은 그 빈도(頻度)가 아까보다는 현저하게 줄었다는 것이다. 계속되는 오르막길은 경사(傾斜)가 완만(緩慢)하기 때문에 오르는 데는 그다지 어렵지 않지만, 아쉽게도 별다른 볼거리는 제공하지 못한다. 전형적인 흙산인 탓에 산자체가 단조로울뿐더러, 짙게 우거진 소나무 숲은 조망(眺望)을 허락하지 않는 것이다. 소나무가 몸에 좋다는 피톤치드(phytoncide)를 가장 많이 배출하는 나무 중의 하나라고 한다. 힐링(Healing) 산행으로 위안을 삼으며 산행을 이어간다. 갑자기 솔향이 스며들더니 마음은 한없이 행복해진다. 나도 몰래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산행을 이어간다.
▼ 본래의 등산로를 만나고나서 15분 정도를 더 진행하면 745봉에 올라서게 된다. 산행을 시작한지 1시간10분이 지났다. 주능선 상에 위치한 745봉에서 길이 두 갈래(이정표 : 취우령 1.5Km/ 넘터 7.0Km/ 상율 2.8Km, 상계 3.8Km)로 나뉜다. 745봉은 별다른 볼거리가 없는지라 머무르지를 않고 곧바로 오른편으로 방향을 틀어 취우령으로 향한다.
▼ 산길이 주능선을 따르면서 한결 더 또렷해진다. 그러나 넓어졌을 따름이지 곱지는 않다. 가시넝쿨이나 잡초(雜草)가 우거진 곳이 자주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곳 지자체(地自體)에서 등산로를 정비하지 않은 탓일 것이다. 능선은 작은 오르내림을 몇 번 반복하면서 이어진다. 그러나 골이 깊지 않은 탓에 조금도 힘이 들지 않는 편안한 길이다. 하지만 아쉬운 것은 능선에서도 조망(眺望)이 트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소나무들이 온통 능선을 둘러싸고 있기 때문이다. 몸에 좋은 피톤치드를 한껏 제공해주는 소나무들이 한편으론 조망을 막고 있는 것이다. 이것을 보고 새옹지마(塞翁之馬)라고 하지 않을까 싶다.
▼ 능선을 따라 걷다보면 얼마 뒤에 구산갈림길(이정표 : 구산 2.9Km)을 만나게 되고, 이어서 능선은 곳곳에서 억새 군락(群落)을 내보이기 시작한다. 비록 지금은 꽃을 덜 피우고 있지만, 찬바람이 일 시기이면 하얀 억새꽃이 바람결 따라 흐느적거리며 황홀한 아름다움을 자랑할 것 같다. 억새군락을 지나면 능선은 또 다른 풍경을 보여준다. 이번에는 들꽃 군락이 나타난 것이다. 널따란 분지(盆地)가 온통 샛노란 마타하리꽃으로 가득하다. 다들 들꽃 사이로 들어가 사진을 찍느라 정신들이 없다.
▼ 들꽃 군락지에서 취우령은 금방이다. 취우령은 묘(墓)가 있는 삼거리(이정표 : 건흥산 3.3Km/ 죽림정사 2.3Km, 2.8Km/ 넘터 8.5Km, 구산 2.8Km)에서 왼편으로 약간 비켜난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취우령 정상에는 정상표지석과 산불감시초소, 그리고 삼각점 외에 용도를 알 수 없는 유리로 만들어진 구조물이 하나가 더 보인다.
▼ 취우령 정상에 오르면 조망(眺望)이 시원스럽게 트인다. 정면에 보이는 금귀봉을 중심으로 왼쪽으로 보해산 양각산 수도산과 그 뒤로 단지봉 가야산이 확인된다. 정상에서 조망을 즐기는데 문득 의문점 하나가 고개를 든다. 취우령(驟雨嶺)이라는 이름이 어떤 이유로 붙여졌는지가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다. 령(嶺)이란 길이 나있는 높은 산의 고갯마루를 일컫는 말인데, 아무리 봐도 사람들이 길로 이용하기에는 마땅하지가 않기 때문이다.
▼ 능선은 취우령 근처에서 가파른 내리막길을 한 번 만든 후부터는 서서히 고도(高度)를 떨어뜨린다. 취우령과 건흥산의 고도(高度) 차이는 약 220m, 3.3Km의 구간에서 220m의 높이를 낮추다보니 급할 것이 하나도 없었던 탓일 것이다. 그렇다고 올라가는 구간이 아주 없다는 얘기는 아니다. 취우령의 다른 이름은 아홉산, 건흥산에서 취우령까지 능선이 아홉 개의 올망졸망한 봉우리들로 이루어진 탓에 얻게 된 이름이라고 한다. 당연히 건흥산으로 가는 길은 이 아홉 개의 봉우리 들을 오르내려야만 한다. 그러나 그 오르내림은 조금도 힘들지 않다. 짧고 완만(緩慢)하게 올랐다가 길고 완만하게 떨어지는 산행이 계속되기 때문이다.
▼ 건흥산을 출발해서 30분이 조금 더 지나면 영승갈림길(이정표 : 건흥산 1.5Km/ 영승 2.7Km/ 취우령 1.8Km), 그리고 이어서 지내갈림길(이정표 : 건흥산 1.4Km/ 지내 1.8Km/ 취우령 1.9Km)을 만나게 된다. ‘여보! 사진 찍으세요.’ 그런데 아무리 둘러봐도 사진을 찍을만한 풍경은 보이지 않는다. 집사람에게 되물으려다가 문득 길가에 보이는 어른의 키를 살짝 넘길 정도의 바위 하나를 발견하면서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오늘 산행에서 처음으로 바위를 만난 것이다. 그다지 크지도 않을뿐더러 생김새까지도 평범한 바위이지만, 그 희귀성 때문에 새롭게 보인다는 점에서 우리네 인생의 한 단면을 보는 것 같아 슬며시 웃음이 나온다.
▼ 취우령을 출발해서 1시간을 조금 넘기면 습지(marshy land , 濕地) 식물이 가득한 분지(盆地)를 만나게 되고, 건흥산 정상은 이곳에서 지척이다. 건흥산 정상은 다른 산과는 조금 다른 점을 보인다. 정상표지석을 가장 높은 지점이 아닌, 봉우리 아래의 반반한 지점에다 세워놓았다. 산봉우리를 정상으로 여기지 않고, 그저 정상석의 배경으로 삼았을 따름인 것이다. 이러한 느낌이 드는 것은 정상석의 왼편 10여m쯤 떨어진 곳에 세워진 제단(祭壇)도 한몫을 한 것은 물론이다.(이정표 : 거열성 180m/ 하부약수터 0.5Km/ 취우령 3.3Km) 건흥산 정상도 탁 트인 조망(眺望)을 자랑한다. 먼저 발아래에는 거창읍내가 펼쳐지고, 그 뒤에는 숙성산과 미녀봉, 그리고 감악산과 오도산이 버티고 있다. 그리고 왼편에는 금원산과 기백산, 황석산과 남덕유산이 시야(視野)에 들어온다.
▼ 정상에서 조금만 더 내려오면 거열성(居烈城 : 경상남도 기념물 제22호)이다. 건흥산성(山城)이라고도 부리는데, 원래 가야 세력에 의해 처음 쌓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길이 2.1km의 석성(石城)인데, 그동안 터로만 남아오던 것을 최근에 일부구간(300m)을 새로 복원(復原)했다. 이 산성은 백제의 부흥군이 신라에 대항해 싸운 곳이며, 673년에는 신라의 아진함(阿珍含)이 당군과의 싸움에서 장렬하게 전사한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 거열성이 끝나는 지점(이정표 : 하부약수터 0.14Km/ 건흥산 0.36Km)에서 조금만 더 내려가면 약수터이다. 약수터는 한마디로 잘 가꾸어진 공원(公園)이다. 정자(亭子)와 갖가지 운동기구를 갖춘 체육단지, 그리고 나머지 너른 공간은 잔디밭으로 깔끔하게 조성해 놓았다.
▼ 약수터에서 건계정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나무로 만들어진 데크가 마중을 나온다. 습지보호를 위해 만들어진 것인데, 일명 ‘출렁다리’라고 불린다고 한다. 이름이야 어떻든 데크 위를 걷는 것은 여간 재미있는 일이 아니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출렁거리는 것이 제법 스릴이 느껴지는 것이다.
▼ 산행날머리는 건계정 근처에 있는 주차장
출렁다리를 지나면서 산길은 본격적인 내리막길이 시작된다. 자연석으로 이루어진 산길은 가파르기도 하지만 돌들의 굵기나 생김새가 제각각이기 때문에 일정한 보폭을 유지하기가 힘들다. 오늘 산행에서 유일하게 주의가 필요한 지점이다. 때문에 하산지점인 건계정까지 제법 많은 시간이 걸린다. 가파른 내리막길이 끝나면 갈림길(이정표 : 건계정 0.7Km/ 하부약수터 1.2Km/ 하부약수터 1.3Km) 하나를 만나게 되고, 이어지는 산길은 경사(傾斜)가 다시 완만(緩慢)해진다. 그러다가 이내 위천(渭川)에 내려서게 되고, 위천을 가로지르는 구름다리를 건넌 후, 조금만 더 내려가면 주차장이 나오면서 산행이 종료된다. 참고로 구름다리에서 오른편으로 100여m 떨어진 지점에 위치하고 있는 건계정은 이곳 거창의 명문 중 하나인 ‘거창 장(章)’씨들이 선조를 기리기 위해 1905년에 세운 고풍스러운 정자(亭子)라고 한다. 약수터에서 이곳 주차장까지는 약 30분, 건흥산 정상에서는 50분이 조금 못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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