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어산(防禦山, 530.4m) - 괘방산(457m)

 

산행일 : ‘13. 6. 6()

소재지 : 경남 함안군 군북면과 진주시 지수면사봉면의 경계

산행코스 : 어석재괘방산(삼각점봉)방어산고개관음사사거리마애삼존불상마애불삼거리방어산남강휴게소(산행시간 : 4시간20)

함께한 산악회 : 기분 좋은 산행

 

특징 : 방어산과 괘방산은 해발(海拔)500m 안팎에 불과한 산이다. 산세(山勢)도 또한 크게 자랑할 것이 없다. 군데군데 바위벼랑이 잘 발달되어 있고, 그 벼랑들이 소나무들과 잘 어울린다고는 하지만, 그 정도 풍광(風光) 쯤이야 웬만한 산들도 다 지니고 있을 정도이니까 말이다. 그러나 이 산들을 사람들이 갈망하는 복()과 연관시킬 경우에는 그 결과는 확연히 달라진다. 이 산의 정기를 받은 인근 마을들이 발복(發福)을 하였기 때문이다. 이 산을 사이에 두고 동쪽의 함안과 서쪽의 진주가 사이좋게 한 가지씩 복을 나눠 가졌다. 먼저 진주는 재복(財福)을 받았다. 그 증거가 바로 진주 땅에 위치한 지수초등학교라고 한다. 1명도 배출하기 어렵다는 국내 굴지의 재벌 창업자를 그것도 4(삼성그룹 이병철, LG그룹 구인회, 효성그룹 조홍제, 삼양통상 허정구)이나 배출하였으니 어느 누구도 이를 부정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장수(長壽)라는 복이다. 이 복()은 방어산의 동쪽 산자락에 위치한 영운마을에서 발복(發福)하였다. 보건복지부의 발표에 의하면 영운마을은 당시 65세 이상 노인 중 80세 이상 노인이 무려 66.7%나 달했다고 한다. 대단한 장수촌(長壽村)인 것이다.

 

 

산행들머리는 진주시와 함안군의 경계를 이루는 고갯마루인 어석재

남해고속도로 지수 I.C에서 내려와 1037번 지방도 이용하여 진주 사봉 농공단지(農工團地 : 진주시 사봉면 봉곡리 소재)까지 온다. 농공단지 옆에 있는 봉대교차로(交叉路 : 사봉면 봉곡리)에서 좌회전하여 1004번 지방도(함안방향)로 바꿔 들어가면 얼마 지나지 않아 부평휴게소(사봉면 부계리)가 나오고, 이어서 어석재에 올라서게 된다. 어석재는 함안군(군북면 원북리)과 진주시(사봉면 부계리)의 경계를 이루는 고갯마루이다. 산행들머리는 어석재 고갯마루에서 함안군 방향으로 50m쯤 떨어진 곳(낙석방지 철망이 끝나는 지점)에서 열린다. 도로 오른편 산자락에 산행안내도와 이정표(방어산 5.9Km)가 세워져 있으니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산으로 들어서자마자 나타나는 가파른 오르막길이 등산객들의 기를 꺾어버린다. 가만히 앉아있어도 땀이 줄줄 흐를 정도로 무더운데, 이런 가파른 길을 오른다는 것은 죽을 맛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행이도 그 오르막길은 얼마 지나지 않아 끝을 맺는다. 15분 정도가 지나서 만나게 되는 이정표(괘방산 1.0Km, 방어산 5.33Km/ 화광마을 0.34Km/ 어석재 0.47Km)에서부터는 경사(傾斜)가 많이 누그러지기 때문이다. 이마저도 힘들다고 생각될 때에는 옆에 보이는 임도(林道)를 따를 경우 정상 근처에 까지 어렵지 않게 오를 수가 있다. 다만 임도를 이용할 경우에는 걷는 거리가 조금 늘어나는 것을 감수해야할 필요는 있다.

 

 

 

 

 

 

임도와 헤어졌다 다시 만나기를 반복하다보면 지철마을 갈림길(이정표 : 방어산/ 지철/ 어석재)’을 만나게 되고, 이어서 괘방산 정상에 올라서게 된다. 어석재를 출발한지 45분이 지났다. 괘방산 정상에는 정상표지석이나 이정표 등 이곳이 괘방산이라는 아무런 표식도 찾아볼 수 없다. 좁다란 분지(盆地)로 이루어진 정상은 서툴게 쌓은 돌탑 하나와 삼각점이 지키고 있을 따름이다. 누군가가 삼각점 안내판위에 괘방산 457m’라고 써 놓아 이곳이 괘방산의 정상이라는 것을 알게 해준다. 별다른 특징도 없고, 거기다 조망(眺望)까지도 꽉 막힌 정상에서 머무르기를 포기하고 발길을 재촉한다.

 

 

 

방어산 정상을 지나자마자 또 다른 지철마을 갈림길(이정표 : 망어산 4.4Km/ 지철 1.22Km/ 어석재 1.5Km)’을 만나게 되고, 외길로 이루어진 능선은 오르내림이 거의 없이 편하게 이어진다. ‘아예 딸기 밭이네요.’ 집사람의 말마따나 산길 주변에는 산딸기가 널려있다. 괘방산을 올라올 때부터 보이기 시작하던 산딸기가 괘방산을 지나면서부터는 아예 산딸기 밭으로 변해버린 것이다. 구태여 숲으로 들어갈 필요도 없이 길을 걸으면서 따먹어도 실컷 따 먹을 수가 있을 정도이다. 덕분에 우리 부부는 점심으로 싸간 도시락을 먹지 않고도 산행을 마칠 수가 있었다. 산딸기로 양을 채워 버린 것이다.

 

 

 

 

괘방산 정상에서 즐기지 못한 조망은 20분 정도 더 가면 만나게 되는 전망바위에서 실컷 즐길 수가 있다. 발밑 저수지가 보이는 너럭바위에 올라서면, 저 멀리 남강과 진주 월아산과 장군대산 그리고 남해고속도로가 한눈에 보인다. 오른편에 보이는 깎아지른 듯한 바위절벽을 끼고 있는 봉우리가 506봉일 것이다.

 

 

 

 

 

너럭바위를 지나면 능선은 암릉과 바윗길이 전망대 역할을 하며 이어진다. 너럭바위에서 10분 정도를 더 진행하면 산길이 암릉 위로 올라서면서 이번에는 함안방향으로 시야(視野)가 트인다. 높은 산이 거의 없는 함안 땅의 들녘이 널게 펼쳐진다.

 

 

 

집사람의 발걸음이 자꾸만 느려진다. 길가에 널린 산딸기를 그냥 지나치지를 못하는 것이다. 하긴 새콤하고 달콤한 산딸기를 어떻게 그냥 지나칠 수가 있겠는가. 속도를 줄이면서 따먹다보니 배고픔을 잊어버렸고, 우린 산행을 끝내고서야 늦은 점심을 먹을 수가 있었다.

 

 

 

괘방산을 출발한지 45분쯤 지나면 이름 모를 봉우리 위에서 하림마을 갈림길(이정표 : 방어산 2.9Km/ 군북하림 2.17Km/ 괘방산 1.5Km)’을 만나게 된다. 다른 사람들의 산행기를 보면 이곳을 506m봉으로 기록하기도 한다. ‘하림마을 갈림길에서 짧게 내려서면 안부가 나온다. 바로 방어산 고개라고 불리는 능선안부이다. 지도(地圖)에는 이곳을 사거리로 표시하고 오른편은 마애사, 그리고 왼편은 성불암으로 내려갈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이정표도 보이지 않는데다가 길도 또렷하지 않기 때문에 자신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방어산고개에서 가파른 오르막길을 치고 오르면 헬기장이 나온다. 오르는 길가에는 가끔 전망 좋은 곳들이 나온다. 의령의 자굴산 등 높고 낮은 산들이 눈에 잘 들어온다. ‘하림마을 갈림길에서 25분 정도를 더 걸으면 헬기장을 만나고, 이어서 15분 후에는 토실마을 갈림길(이정표 : 방어산/ 토실/ 괘방산)에 이르게 된다. 그런데 이곳 삼거리에는 이정표가 두 개가 서있다. 한 곳에 이정표가 두 개나 있다고 해서 이상할 것은 없다. 그러나 그중 하나(정상 4Km/ 마애불 5Km)가 얼토당토않게 거리표시를 해 놓은 것이 문제다. 산봉우리를 내려와서 다른 산봉우리를 다시 올라왔는데도, 방어산까지의 거리가 더 늘어나버린 것이다. ‘참 진주라는 명찰을 달고 있는 것을 보면, 진주시에서 세운 모양인데, 이런 일은 안하는 것만도 못한 것이 아닐까 싶다.

 

 

 

 

토실마을 갈림길에서 15분 정도를 더 가면 능선안부(이정표 : 방어산 1.3Km/ 마애사 0.79Km/ 관음사 1.67Km/ 괘방산 3.1Km)에 내려서게 된다. ‘관음사 사거리이다. 이곳에서 오른편으로 내려서면 마애사에 이르게 된다. 오늘 답사(踏査)하려고 하는 국보급 문화재인 마애불을 둘러보려면 마애사를 경유해서 갈 수도 있다. 그러나 마애불 때문에 지어진 마애사는 역사도 일천한데다 특별한 볼거리도 없어서 그냥 지나친다. 조금만 더 가면 마애불로 직접 내려가는 지름길이 나오기 때문이다.

 

 

 

관음사 사거리에서 5분 정도만 더 걸으면 오른편에 오솔길이 열려 있는 것이 보인다. 비록 이정표도 세워져 있지 않고, 입구도 좁지만 마애불로 내려가는 지름길이다. 물론 조금 더 올라가면 이정표가 서 있는 마애불 삼거리를 만나지만 이 길은 마애불을 보고 되돌아와야 되는 단점이 있다. 산행을 하는 사람들이라면 당연히 이곳 지름길을 선택할 것이다. 산의 사면(斜面)을 헤집고 난 오솔길은 가파르면서도 거칠다. 그러나 거리가 짧기 때문에 잠깐이면 내려설 수가 있다.

 

 

 

비탈진 오솔길에서 5분 정도만 고생하면 거대한 암벽(巖壁) 앞에 금동불상(金銅佛像)이 안치되어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다. ‘비로자나불인데 마애사의 주지스님이 조성했다고 한다. 불상의 왼편 절벽 하단에 유리창이 보인다. 뒤로 돌아가 보니 암굴(暗窟)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스님들이 공부방으로 사용했던 모양인데, 요즘에는 사용하지 않는지 흉물스럽게 방치되고 있다. 절벽은 파란 넝쿨식물들이 온통 둘러싸고 있다. 어쩌면 송악일 것이다. 드릅나무과의 상록 덩굴식물인 송악은 담장나무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보통 해안(海岸)과 도서(島嶼)지방의 숲속에서 볼 수 있다. 하지만 가지에서 공기뿌리가 나오기 때문에 암석(巖石)이나 다른 나무에 붙어 자란다. 잎과 줄기는 지혈작용과 경련을 멈추게 하는 작용 등이 있어 한방에서 사용하며, 지지하는 물체에 따라 독특한 모양을 만들 수 있기 때문에 관상수로도 이용되고 있다. 참고로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삼인리의 송악은 천연기념물 제367호로 지정되어 있다.

 

 

 

비로자나불 앞에는 공들여 쌓은 돌탑이 하나 세워져 있고, 그 옆에는 번듯하게 문까지 단 약수(藥水)터가 보인다. 이 석간수(石間水)는 물맛이 좋기로 인근에 소문이 나있을 정도라고 한다. 당연히 한 모금 들이켜 본다. 소문대로 물맛은 시원하면서도 달았다.

 

 

 

마애약사삼존불은 비로자나불에서 100m도 안 떨어져 있다. 반듯하게 잘라 놓은 듯한 바위 면에 새겨진 부처님들이 짓고 있는 천년의 미소가 참으로 온화하게 보인다. 방어산 마애불(防禦山 磨崖佛 : 보물 제159)은 방어산 자락(함안군 군북면 하림리)에 있는 마애약사삼존불(磨崖藥師三尊佛)로서 조성 시기는 801(신라 애장왕 2)으로 알려져 있다. 가운데에 약사여래상(藥師如來像)을 배치하고, 양 옆으로 협시보살상(脇侍菩薩像)인 일광보살(日光菩薩)과 월광보살(月光菩薩)을 선각(線刻)기법으로 새겼다. 삼존상의 오른쪽 여백에 불상조성기(佛像造成記)가 새겨져 있기 때문에, 조각 편년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이용되고 있다.

 

 

 

마애불에서 방어산으로 가려면 다시 능선으로 올라서야 한다. 철제난간을 잡고 힘겹게 오르면 3~4분 후에는 능선 위(이정표 : 방어산 1.25Km/ 마애사 0.55Km)에 올라서게 되고, 왼편으로 방향을 틀어 가끔 나타났다 사라지는 함안 들녘을 구경하면서 오르면 금방(10) 주능선 삼거리에 이르게 된다. 아까 마애불로 내려가면서 헤어졌던 길과 다시 만나는 지점이다.(이정표 : 방어산 0.8Km/ 마애불 0.34Km/ 어석재 5.1Km)

 

 

 

 

 

마애불삼거리에서 방어산 정상까지는 쉬엄쉬엄 걸어도 30분이면 충분하다. 무명봉은 왼편으로 우회(迂廻)하고 헬기장 두 곳을 지나서 밧줄까지 매어 놓은 바윗길을 통과하면 방어산 정상이다.

 

 

 

진주 쪽이 바위벼랑으로 이루어진 정상은 널따란 암반(巖盤)으로 이루어져 있다. 정상에는 아담한 정상표지석과 방어산의 유래가 적힌 안내판, 그리고 이정표(지곡 1.7Km, 박곡 2.2Km/ 가덕 1.9Km/ 마애불 1.2Km)와 왜 있는지 모를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다. 방어산(防禦山)은 이름 그대로 사방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천연요새이다. 정상어림에 옛날 성의 자취가 남아 있다고 해서 둘러본다. 그러나 아무리 둘러봐도 성터의 흔적은 눈에 띄지 않았다. 전설에 따르면 양쪽 겨드랑이에 날개가 달려 날아다니며 300근짜리 활을 쏘는 묵신우(墨神祐)라는 장군이 있었다. 병자호란 때 성을 쌓고 성문을 닫은 채 한 달을 버티다가 비로소 적을 물리쳤다고 한다. 그때 장군이 타던 말의 발굽 핏자국이 아직도 바위에 선연하다고 한다.

 

 

 

방어산 정상은 조망이 압권(壓卷)이다. 정상이 바위로 이루어진 탓에 사방으로 시야(視野)가 거침없이 트이고 있는 것이다. 북쪽으로 자굴산이 거대한 장벽으로 서 있고 북서쪽에 위치한 지리산은 가물가물하게 보인다. 그리고 동남쪽에는 여항산과 서북산이 어렴풋하다.

 

 

 

 

하산은 남강의 물줄기를 방향삼아 내려서면 된다. 정상석 옆의 바위틈으로 내려서면 나무계단 두 개가 연이어 나타나는 가파른 내리막길이 나오고, 10분 쯤 후에는 마당바위를 만나게 된다. 바당바위에서도 조망(眺望)은 시원스럽게 터진다. 발아래 굽이치는 남강의 물줄기가 부드러운 곡선(曲線)을 만들면서 유유히 흐르고 있다. 비록 이정표는 없지만 이곳에서 토실마을 가는 길이 나뉜다. 왼편으로 내려가면 지수면(경주시)의 토실마을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마당바위에서 내려서는 바윗길은 곳곳이 전망대(展望臺)이다. 그리고 보기 좋은 명품 소나무도 가끔 보이는 등 눈요기가 쏠쏠한 구간이다.

 

 

 

가파른 내리막길을 안부까지 내려섰다가 맞은편 능선으로 짧게 오르면, 장승이 길목을 지키고 있는 전망대(이정표 : 관음사 1000m/ 정상 400m)에 이르게 된다. 정상에서 15분이 조금 못 걸린다. 이곳에서도 조망은 뛰어나다. 유유히 흐르는 남강은 평온하고도 여유로운 풍광(風光)을 연출하고, 바위절벽으로 이루어진 방어산도 한눈에 잘 들어온다.

 

 

 

 

 

장승을 지나 5분쯤 지나면 오른편으로 길이 나뉜다. 곧바로 가면 관음사이고 가덕마을로 가려면 오른편 오솔길로 접어들어야 한다. 오솔길은 잠깐 사면(斜面)을 자르면서 돌아 지능선 위로 올려놓는다. 이어지는 산길은 부드러운 소나무 숲길이 이어진다. 이곳뿐만이 아니다. 오늘 걸은 방어산이나 괘방산의 산길은 대부분 울창한 소나 숲으로 둘러싸여 있다. 때문에 오랫동안 쌓여온 솔가리(소나무 낙엽)들이 수북하게 쌓여 발바닥이 포근할 정도이다. 흙길뿐만이 아니다. 심지어는 바윗길까지도 폭신폭신하게 느껴질 정도이다. 능선은 길이 부드러운 것 외에도 또 다른 볼거리가 있다. 진주의 들녘이 바로 그것이다. 도중에 만나는 바위전망대에서 바라보는 남강의 굽이치는 물길은 이번 산행의 백미(白眉)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아름답다.

 

 

 

산행의 날머리는 가덕마을

부드러운 소나무 숲길이 언젠가부터 경사(傾斜)가 가팔라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내 무서울 정도로 가팔라져 버린다. 오랫동안 걸어오느라 지친 무릎이 아우성을 치기 시작한다. 덕분에 속도를 낼 수가 없다. 차라리 더 더뎌진다고 봐야 할 것이다. 장승이 있는 전망대를 출발한지 40분 가까이 되면 능선은 그 가파름을 잃어버리고 완만(緩慢)해진다. 그리고 코끝을 스치는 야릇한 냄새, 무슨 냄새일까 하는 궁금증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밤나무 과수단지가 나타난다. 밤나무 밭을 벗어나면 곧바로 가덕마을에 들어서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