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벽산(赤壁山, 166m)-백마산(白馬山, 286m)-월명산(月明山, 334m)
산행일 : ‘14. 2. 8(토)
소재지 : 경남 산청군 신안면
산행코스 : 단성교→적벽정→적벽산→산성교→백마사→망춘대→백마산→질매재→월명산→상사바위→하촌마을(산행시간 : 2시간50분)
함께한 산악회 : 안전산악회
특징 : 적벽산과 백마산, 그리고 월명산은 높지 않은 산이다. 그렇다고 해서 넓지도 않다. 때문에 산행만 한다고 생각하고 찾아왔을 때에는 자칫 실망하기 쉬울 것이다. 마치 동네 뒷산을 오르는 기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산세(山勢)만은 다른 유명산들에 비해 크게 뒤떨어지지 않는다. 곳곳에 나타나는 바위절벽(絶壁)하며 특히 월명산에서 만나게 되는 기암괴석(奇巖怪石)들은 눈요깃거리로 충분하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이 산들은 옛이야기들을 안고 있기 때문에 당시 상황을 머릿속에 그려보며 산행을 이어가다보면 나름대로 유익한 산행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산행시간이 너무 짧은 것이 흠(欠)이라면 흠이다.
▼ 산행들머리는 단성교(橋 : 산청군 단성면 강누리 1099-1)
대전통영고속도로 단성 I.C에서 내려와 두 번째 삼거리에서 좌회전하여 20번 국도를 타고 의령방면으로 들어가면 5분이 채 안되어 경호강(鏡湖江)을 가로지르는 단성교에 이르게 된다. 경호강(鏡湖江)은 남강(南江)의 상류를 따로 부르는 이름이다. 단성교(橋)를 건너면 삼거리가 나온다. 오른편은 신안면 시가지로 들어가는 길이고, 왼편은 경호강을 끼고 이어진다. 이 삼거리에서 산길이 열린다. 쉽게 말해서 단성교를 건너자마자 만나게 되는 삼거리의 왼편 코너에 산행들머리가 있다는 이야기이다. 들머리에 ‘등산로’라고 쓰인 이정표가 세워져 있으니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 산비탈에 놓인 돌계단을 밟고 잠깐 오르면 삼거리(이정표 : 적벽산 정상 0.72Km/ 신안면사무소 0.26Km/ 단성교 0.10Km)가 나타난다. 오른편 길은 신안면사무소에서 올라오는 길이고, 적벽산 정상은 왼편에 보이는 기다란 철(鐵)계단을 밟고 올라가야 한다.
▼ 철계단을 타고 위로 오르면 잠시 후에 작은 전망바위를 만나게 된다. 멋진 조망(眺望)이 펼쳐지는 곳이다. 단성교 아래로 흐르는 경호강의 물줄기는 푸르기만 하고, 단성면 일대에 올망졸망 모여 있는 집들은 귀엽기까지 하다. 신안면 소재지인 원지리 시가지(市街地)가 코앞인 것은 물론이다. 저 멀리 보이는 산릉(山陵)은 아마 웅석봉이 아닐까 싶다.
▼ 바윗길 양편에 늘어선 소나무의 도열을 받고 조금 오르면 작은 정자(亭子)가 세워져있는 적벽정에 이른다. 들머리에서 12분 정도가 지난 지점이다. 정자 옆에는 ‘인자요산(仁者樂山), 지자요수(知者樂水)’라고 쓰인 빗돌(碑石)이 하나 놓여 있다. 얼핏 귓가를 스쳐가는 한마디, ‘락(樂)이 아니라 요(樂)라고 읽어야 하는 데요’누군가가 잘못 읽었었나 보다. 그러나 잘못 읽는 사람들이 어디 그 사람뿐이랴. 저 문구(文句)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은 대부분 락(樂)자로 읽는 것을. 하여튼 빗돌 아래로 유유히 흐르는 강줄기와 백마산에서 월명산을 잇는 산줄기가 한 눈에 잘 들어오는 곳이다. 강 건너 석대산 능선과 그 뒤에 펼쳐지는 웅석봉은 시원하기 그지없는 풍광(風光)을 자랑한다.
▼ 적벽정을 지나면 산책로처럼 널따란 산길이 완만(緩慢)하게 이어지고, 7~8분 후에는 운동기구가 설치되어 있는 체육공원을 지나 적벽산 정상에 올라서게 된다. 정상으로 가는 길은 완만하다고 해서 무작정 발걸음을 재촉해서는 안 되는 구간이다. 산길 왼편이 절벽(絶壁)으로 이루어져 있는 탓에 곳곳이 멋진 전망대이기 때문이다. 절벽 위에 서면 S자로 흐르는 경호강과 백마산의 능선을 실컷 즐길 수 있다.
▼ 적벽산 정상은 제법 너른 공터에 정상표지석과 제단(祭壇), 이정표(백마산정상 1.69Km, 월명산 정상 2.27Km/ 단성교 0.82Km) 외에도 각종 운동기구들이 설치되어 있다. 요 아래에 살고 있는 하정리(신안면소재지) 주민들이 체육공원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 정상에서 백마산으로 가는 길은 꽤 가파른 내리막길이다. 그러나 위험할 정도는 아니니 걱정할 필요는 없다. 거기다 눈요깃거리까지 제공해준다. 가끔 경호강 물줄기와 곧게 뻗어나간 3번 국도가 내려다보이는 것이다.
▼ 정상에서 10분 조금 못되게 내려오면 임도(林道)에 내려서게 되고, 왼편으로 방향을 잡으면 2분 후에는 굴다리가 나온다. 바로 3번 국도 아래를 통과하게 되는 것이다. '구석다리'라는 토속 지명을 가진 이곳은 정유재란(丁酉再亂) 때 백의종군(白衣從軍)을 하며 권율장군의 군영에서 머물던 이순신장군이 원균의 패전소식을 듣고 율돌목으로 돌아갈 때 지나갔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 여러 갈림길로 나뉘는 ‘구석다리’에서는 백마사로 가는 길을 택한다. 들머리에 백마사 표지석과 이정표(백마산 정상 0.98Km/ 적벽산 정상 0.71Km) 그리고 등산안내도가 세워져 있으니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등산 안내도 뒤로 난 콘크리트 임도(林道)를 5분 조금 못되게 오르면 백마사에 이른다. 등산로는 사찰로 들어가기 직전에서 오른편으로 나있다. ‘절 안을 통과하면 더 쉽게 올라갈 수 있어요’ 조그만 것에서까지 보살펴주고 싶어 하는 나이 든 보살님의 배려가 곧 부처님의 가르침일 것이다. 백마사는 자그마한 절이다. 그러나 대웅전 등 전각(殿閣)들이 반듯하게 지어져 있고, 단청(丹靑)까지 화려하게 채색(彩色)되어 있는 것을 보면 시골 사찰(寺刹)치고는 제법 잘 나가는 듯하다. 산사에서 내려다보는 경호강의 풍경이 아름답다.
▼ 백마산 정상으로 오르는 길은 절 마당의 오른편으로 열린다. 절 마당을 나서면 얼마(30m정도) 지나지 않아 산길은 왼편으로 방향을 튼다. 들머리에 ‘정상 900m’라고 쓰인 이정표가 세워져 있으니 참조하면 된다.
▼ 백마사를 나서 산죽(山竹)길을 10분 가까이 오르면 길이 두 갈래(이정표 : 망춘대 300m/ 정상)로 나뉜다. 이곳에서는 어느 쪽으로 진행하더라도 정상으로 갈 수가 있다. 그러나 나는 왼편으로 진행해볼 것을 권하고 싶다. 절벽 위에 걸터앉은 바위전망대인 망춘대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망춘대에서 바라본 조망(眺望)은 사뭇 뛰어나다. 발아래에 있는 경호강은 S자로 유유히 흐르고, 남쪽에 보이는 **)적벽(赤壁)은 강가에 기대선 형상으로 나타난다.
(**)적벽(赤壁)은 중국 송나라 때 대문장가인 소동파의 적벽부(赤壁賦)의 배경이 된 양자강 적벽(호북성 황주 소재)의 경치에 못지않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는 이곳 외에도 전남 화순군과 충남 금산군에 ‘적벽(赤壁)’이라 불리는 바위절벽이 있다고 한다. 그중에 내가 가본 곳은 화순에 있는 적벽이다. 옹성산(572m) 자락의 깎아지른 절벽(絶壁)과 그 아래 동복호(湖)가 어우러지는 풍광(風光)은 한 폭의 잘 그린 산수화(山水畵)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자못 빼어나다. 이곳 산청의 적벽은 화순 것만은 못하다. 그러나 적벽산이라는 이름을 얻었을 정도이니 한번쯤은 가볼만한 나름대로의 풍취를 지녔지 않나 싶다.
▼ 망춘대에서 정상으로 오르는 길은 어렵지 않다. 산책하는 기분으로 10분쯤 숲길을 가노라면 왼편에 널따란 반석(盤石)이 나타난다. 그런데 그 바위 표면에 10~15㎝가량의 구멍들이 여러 개 보인다. 옛날 **)백마산성(山城)의 망루(望樓)를 박았던 흔적이라고 한다. 이러한 구멍들은 이곳 외에도 여러 곳에서 만날 수가 있다. 한편 ‘홍의장군 곽재우가 타던 말발굽 자국’이라는 설(說)은 말 만들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지어낸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백마산성은 삼면(三面)이 절벽으로 둘레가 2,795척이고 동남쪽은 100여 척으로 된 자연산성이다. 임진왜란 때에는 진주에서 밀려오는 왜적(倭敵)들을 막기 위해서 창의병(倡義兵)들이 이 산성을 지키고 있었다. 한번은 폭염(暴炎)의 7월인데 왜적이 성을 포위한 채 며칠이고 기다리는 지구전을 펼치는 가운데 성안에는 물이 떨어져서 사람과 말의 기갈이 막심하였다고 한다. 이때 한 지혜로운 장수가 말을 바위 끝에 세워두고 쌀을 말 등에 퍼서 던졌더니 왜병(倭兵)들이 모두 퇴각하였다고 한다. 산 아래에서 성을 포위하고 있던 왜병에게는 그것이 마치 성안에 물이 많아서 말을 미역 감기는 것으로 보였던 모양이다. 이때 성안에 있던 병사와 말이 일시에 내달아 강물을 마셨더니 신안강 물이 세 치나 줄었다는 전설이 있고 그 일로 인하여 원래 이름이던 동산성이 백마산성으로 바뀌었다고 한다.(산청군청 홈페이지에서 발췌)
▼ 망루를 박았다는 흔적들을 힐긋거리며 소나무 숲길을 걷다보면 길섶에 작은 웅덩이들이 보인다. 물은 보이지 않는다. 하긴 이런 산꼭대기에 물이 있을 리가 없다. 지도(地圖)에는 연못으로 표기되어 있다. 그 연유가 무엇일까. 6.25때 백마산에는 인민군(빨치산 : partisan)이 주둔했었고, 산 아래의 신안면소재지에 주둔하고 있던 경찰들과 밀고 밀리는 치열한 전투(戰鬪)가 벌어졌다고 한다. 아마 그 당시에 마실 물을 모아두었던 곳이 아니었을까 싶다. 웅덩이를 지나면 금방 백마산 정상이다. 그러니까 망춘대에서 15분 정도가 지난 지점이다. 백마산 정상에는 정상표지석과 이정표(월명산 정상 1.01Km/ 적벽산 정상 1.69Km) 외에 제단(祭壇)이 하나 보인다. ‘면민안녕기원제단(面民安寧祈願祭壇)’이라는데 그럼 아까 적벽산 정상에서 보았던 제단은 무슨 용도였을까. 아무튼 백마산 정상에서는 진주시와 산청군이 경계를 이루는 집현산과 멀리 의령군에 위치한 한우산과 자굴산까지 눈에 들어온다.
▼ 백마산 정상에서 다시 가파른 내리막길이 시작된다. 5~6분쯤 내려가면 만나게 되는 바위전망대에서 맞은편에 우뚝 솟아오른 월명산과 그 뒤에 펼쳐지는 둔철산을 조망(眺望)한 후에 다시 길을 나서면 이번에는 앙증맞은 로프지대가 나타난다. 통나무로 다리형태를 만들어 놓고 그 위에다 로프를 늘어뜨려 놓은 것이 귀여울 정도이다.
▼ 백마산 정상에서 내려서는 길에 바라본 월명산
▼ 지리산 방향, 저멀리 보이는 산이 웅석봉일 것이다.
▼ 이어서 조금만 더 내려가면, 그러니까 백마산 정상을 출발해서 12분 정도가 지나면 안부사거리(이정표 : 월명산 정상 0.72Km/ 산성마을 1.38Km/ 백마산 정상 0.29Km)에 이르게 된다. 마치 도끼로 찍어 놓은 듯이 움푹 파인 지형(地形)을 하고 있는 이 고갯마루는 일명 '질매재'로 불리는 곳이다. 도로가 뚫리기 오래전 중촌리 일대 주민들이 산청 장터를 오갔던 중요한 길목이라고 한다. 그런데 도끼로 찍은 듯이 움푹하게 파인 이유가 흥미를 끈다. 옛날 큰 인물이 나올 것을 두려워한 일본인들이 그 기(氣)를 끊어 놓기 위해 조선의 지도에다 붓으로 먹점을 찍어버렸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 질마재에서 맞은편 능선을 치고 오르며 산행을 이어간다. 월명산으로 오르는 길은 가파르다. 거기다가 아기자기한 바윗길이 대부분이다. 그 덕분에 곳곳에서 조망(眺望)이 트인다. 구태여 발걸음을 재촉하지 않고 나타난 바위마다 올라서고 본다. 백마산 정상이 바로 코앞이고, 그 오른편에는 경호강이 잘 어우러지고 있다. 동쪽 저 멀리로는 의령의 진산(鎭山)인 자굴산까지 보인다.
▼ 월명산 오르는 길에 바라본 백마산, 경호강과 잘 어울리고 있다.
▼ 조망과 스릴(thrill)을 함께 즐기며 어느 정도 치고 오르면 산길은 완만(緩慢)하게 변한다. 그리고 월명산 정상에 올라서게 된다. 질마재를 출발한지 30분이 조금 못 걸렸다. 꽤 너른 암반(巖盤)으로 이루어진 정상에는 정상표지석과 삼각점, 그리고 이정표(상사바위 0.60Km/ 백마산 정상 1.01Km)가 세워져 있다. 월명산 정상에서의 조망은 뛰어난 편이다. 천왕봉을 넘어 웅석봉에 이르는 백두대간이 웅장하게 펼쳐지고, 그 오른편에는 둔철산이 버티고 있다.
▼ 하산은 상사바위 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이 길은 평탄하게 이어지는데 기암괴석(奇巖怪石)들의 전시장(展示場)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는 구간이다. 갈 길을 가로막는 거대한 바위를 왼편으로 우회(迂廻)하면 지도에 나와 있는 두 번째 전망대이다. 전망대에 서면 상사바위가 바로 코앞에 펼쳐진다.
▼ 길가에 보이는 바위들, 마치 거북이 등처럼 갈라져 있다.
▼ 상사바위는 이곳 말고도 여러 산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상사바위들은 하나 같이 애달픈 사연들을 갖고 있다. 사랑을 이루지 못한 연인들이 스스로 몸을 던졌다는 것이다. 어쩐지 으스스한 느낌이 드는 것은 상사바위가 꼭 천애절벽(天涯絶壁)인 탓만은 아닐 것이다. 어쩌면 누군가의 한이 서렸다는 선입감 때문이 아닐까 싶다. 정상에서 상사바위까지는 20분 정도가 걸렸다.
▼ 상사바위를 내려와 7분 정도 소나무 숲길을 헤치고 나오면 남평 문씨 묘(墓)이다. 내려서는 길은 편안하게 내려설 수 있을 정도로 완만(緩慢)하게 이어진다. 묘에서 조금 더 내려오면 갈림길이 나오는데 이곳에서는 오른편에 보이는 길로 내려서면 된다. 맞은편은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320봉으로 가는 길이기 때문이다. 오늘 산행시간이 짧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은 320봉까지 다녀와도 무방하겠지만 그럴 필요는 없을 것이다. 조망(眺望)이 트인다고는 하지만 월명산 정상에서 본 조망에는 미치지 못할 테니까 말이다.
▼ 오른편으로 방향을 틀면 사슴농장 비슷한 농가가 나오고, 이어서 임도(林道)로 연결된다. 오른편 길가 계곡에 자그만 제단(祭壇) 하나가 보인다. 이런 곳에까지 제단이 만들어져 있는 것을 보면 월명산이 뭔가 신령스러움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 산행날머리는 하촌마을(신안면 중촌리)
이어서 방치된 묘(墓) 몇 기(基)를 지나면 도로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임도는 넓어지고, 잘 지어진 전원주택들을 만나게 된다. 날머리 근처에 세워진 빗돌에 의하면 ‘가나머루농장’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주택들 주변에 심어져 있던 넝쿨들은 포도나무가 아니라 머루나무였나 보다. 깔끔하게 아스팔트로 포장된 도로를 따라 내려오면 하촌마을에 이르게 되면서 산행이 종료된다. ‘남평 문씨 묘’에서 30분 정도가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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