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장산((內藏山, 763,2m)
산행일 : ‘13. 2. 23(토)
소재지 : 전북 정읍시 내장동과 순창군 복흥면의 경계
산행코스 : 추령→유군치→장군봉→연자봉→신선봉→까치봉→금선계곡→내장사→집단시설지구 주차장(산행시간 : 4시간40분)
함께한 산악회 : 뫼솔산악회
특징 : 월영봉(月影峰 : 1봉), 서래봉(西來峰 : 2봉), 불출봉(佛出峰 : 3봉), 망해봉(望海峰 : 4봉), 연지봉(蓮池峰 : 5봉), 까치봉(6봉), 신선봉(神仙峰 : 7봉), 연자봉(燕子峰 : 8봉, 일명 문필봉), 장군붕(將軍峰 : 9봉) 등 아홉 개 봉우리로 이루어진 호남 5대 명산(名山 : 지리산, 월출산, 내변산, 천관산, 내장산)중 하나이다. 산천(山川)이 붉게 물드는 가을 단풍철에 내장산이 보여주는 풍광(風光)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뛰어나다는 것은 아무도 부정하지 못한다. 바위로 이루어진 7개 봉우리들 사이사이에 가득 찬 단풍나무들이 붉게 물드는 경관(景觀)은 한마디로 풍광명미(風光明媚)를 자랑한다. 그러나 여름날의 푸르름과 겨울날의 흰 눈으로 뒤덮인 산하(山河)도 결코 가을철 단풍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아름다우니 놓치지 말고 찾아볼 일이다.
▼ 산행들머리는 정읍에서 순창으로 넘어가는 고갯마루인 추령
호남고속도로 내장산 I.C에서 내려와 708번 지방도로를 따라 정읍방향으로 잠깐(5분도 채 안 걸림) 달리다가, 신정사거리에서 우회전하면 신경교(橋)와 내장산터널을 지나 내장저수지에 이르게 된다. 이곳 내장저수지에서 49번 지방도로 옮겨 내장산 방향으로 들어가면 ‘내장산 집단시설지구(集團施設地區)’이다. 49번 도로는 집단시설지구를 왼편으로 우회(迂廻)한 후, 산사면(山斜面)을 절개하여 만든 구절양장(九折羊腸) 도로를 치고 올라 추령이라는 고갯마루에 이른다. 오늘 산행이 시작되는 곳이다.
▼ 산행은 추령의 주차장 뒤편 철망(鐵網)의 끄트머리에 보이는 쪽문을 통과하면서 시작된다. 길은 그다지 가파른 편은 아니지만 힘들기는 매 한가지이다.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그동안 운동을 게을리 한 탓이리라. 산행을 시작하고 한 10분쯤 지나면 길이 두 갈래로 나뉜다. 왼편은 길이 널찍하게 잘 닦여 있지만, 이곳에서는 오른편 능선으로 올라가는 것이 옳다. 왼편은 전북산림박물관에서 만들어 놓은 산책로(散策路)이기 때문이다.
▼ 왼편의 산책로를 따라가도 7분쯤 후에는 다시 능선으로 올라설 수 있으니 걱정할 필요는 없다. 다만 능선으로 가는 것보다 2~3분 시간이 더 걸린다는 것이 차이점일 것이다. 산책로가 능선과 다시 만나는 지점은 뛰어난 전망대(展望臺)이다. 내장산에서 가장 빼어난 경관(景觀)을 자랑한다는 서래봉 능선이 멋진 하늘금을 만들면서 창공을 가르고, 오른편에는 바위봉우리인 추령봉, 그리고 왼편에는 오늘 오르게 될 장군봉이 크게 클로즈 업(close up)되고 있다.
▼ 장군봉
▼ 이어지는 능선은 고저(高低)의 차이가 별로 없는 작은 오르내림이 반복된다. 길가에는 키 작은 산죽이 빽빽하게 늘어서 있고, 심심하다 싶으면 국립공원 표지판이 얼굴을 내민다. 산행을 시작한지 정확히 30분 후에는 유군치(留軍峙)에 이르게 된다. 유군치(留軍峙)에 이르면 처음으로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설치한 시설물(施設物)들을 만나게 된다. 지명의 유래를 알려주는 해설판과 등산안내도, 그리고 이정표(장군봉 0.9Km/ 동구리 1.1Km)가 바로 그것이다. 안내판에는 ‘임진왜란 때 망군정(望軍亭)에 진을 치고 공격해온 왜군(倭軍)을 승군장(僧軍將) 희묵대사(希默大師)가 이곳으로 유인하여 대파한 사실이 있었다.’고 해서 유군치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표지판이 서 있다. 참고로 유군치는 사거리로서 오른편으로 내려가면 내장사, 이정표에 나와 있지는 않지만 왼편으로 내려가면 화양리에 이르게 된다.
▼ 유군치를 지나면서 본격적으로 장군봉 오름길이 시작된다. 올라야 할 고도차(高度差)는 약 250m 정도다. 통나무 계단 길과 산죽(山竹) 길, 그리고 암릉 길을 차례로 지나며 경사(傾斜)는 점점 가팔라진다. 유군치에서 30분 조금 못되게 가파른 오르막길과 싸우다보면 헬기장을 겸하고 있는 장군봉(將軍峰, 696m)에 올라서게 된다. 장군봉 역시 안내판과 이정표(연자봉 0.99Km/ 유군치 0.97Km)가 세워져 있다. 급경사(急傾斜)의 험준한 봉우리인 장군봉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당시 승병대장 희묵대사(希默大師)가 이곳에서 승병(僧兵)을 이끌고 왜군과 싸웠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 장군봉은 의외로 조망(眺望)이 좋지 않다. 그러나 너무 서운해 할 필요는 없다. 연자봉 방향으로 조금만 더 나아가면 만나게 되는 오른편 바위절벽이 장군봉의 조망을 대신해 주기 때문이다. 절벽 위에서 바라본 내장산의 전경은 가히 일품이다. 내장산은 굵은 몸을 빙 둘러 거대한 성곽(城郭)처럼 보인다. 서래봉에서 시작해서 불출봉과 망해봉, 연지봉, 까치봉 ,신선봉 그리고 연자봉까지 이어지는 봉우리들이 어깨를 맞대고 우람한 산줄기를 이루고 있다. 그 안이 움푹 파여 혹자들은 흡사 말발굽을 닮았다고 한다. 성곽 속의 계곡은 유난히도 포근하게 보인다. 저 안에 깃든 모든 생명들은 추운 겨울에도 잘 견디어 낼 것 같다.
▼ 장군봉을 출발하면 능선은 갑자기 고도(高度)를 뚝 떨어뜨린다. 내려가는 길이 음지(陰地)인지 아직도 눈이 덜 녹은 탓에 곳곳에서 빙판(氷板)을 만들고 있다. 조심스럽게 내려서면 다음에는 바윗길이 선을 보인다. 덕분에 조망(眺望)이 시원스럽게 트인다. 남동쪽으로 펼쳐지는 순창벌판과 내장사지구가 잘 내려다보이는 암릉길에서는 다른 걱정 다 털어버리고 그저 조망만 즐기면 된다. 비록 암릉길이지만 쇠난간과 철계단으로 안전시설을 잘 갖추어 놓았기 때문이다.
▼ 산행을 하다보면 늘 보아오던 다른 산들과 다른 점을 느낄 수 있다. 전국의 산들을 오르다 보면, 어디서나 소나무 숲을 만나게 된다. 그만큼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게 소나무라는 얘기이다. 그러나 이곳 내장산에서는 그 흔한 소나무 대신에, 눈에 띄는 나무들이 모두 활엽수(闊葉樹)뿐이다. 어느 통계에서 활엽수가 95%를 차지한다고 발표했을 정도이니 소나무를 찾아보기 힘든 것이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내장산은 그 특이함으로 인해 더욱 유명해졌다. 산을 꽉 메우고 있는 활엽수들이 노란색이나 주황색 등 색감(色感)의 뛰어난 조화가, 아름다운 단풍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단풍나무가 밀집한 지역의 크기, 여러 단풍나무과(科)의 수목(樹木)이 어울려 빚어내는 가을색의 현란함은 다른 지역 명산들이 결코 따라올 수 없다고 한다.
▼ 작은 오르내림이 반복되는 바윗길에서 짜릿한 쾌감을 즐기다보면 어느새 두 번째 봉우리인 연자봉(燕子峰, 675m) 위에 올라서게 된다. 연자봉은 산봉우리가 붓끝 같다고 하여 일명 문필봉(文筆峰)이라고도 불린다. 풍수지리상 서래봉 아래 위치한 백련암을 연소(燕巢, 제비의 보금자리)라 부르는데 이 봉우리와 백련암이 서로 마주보고 있어 연자봉이라 부른다고 한다. 장군봉에서 연자봉까지는 30분 정도가 소요된다. 연자봉에 이르자 갑자기 사람들의 숫자가 불어난다. 단체로 왔는지 외국인(外國人)들까지 섞여서 가뜩이나 협소(狹小)한 봉우리가 소란스럽기 그지없다. 아무래도 이 봉우리 아래에 설치된 케이블카 때문일 것이다. 걸어서 오르기 싫은 사람들이 내장사 앞의 우화정(羽化停) 지구에서 케이블카를 이용할 경우, 이곳으로 오르게 되기 때문이다.(연자봉 이정표 : 신선봉 1.13Km/ 케이블카 0.7Km)
▼ 연자봉에서 신선봉으로 향하자마자 산길은 갑자기 고도(高度)를 뚝 떨어뜨린다. 긴 나무계단을 한차례 내려서면 산길은 작은 오르내림을 반복하면서 이어진다. 길가는 역시 키 작은 산죽(山竹)들이 지키고 있다. 혹시라도 누군가 내장산에서 가장 흔하게 눈에 띄는 게 무엇인가 물어본다면, 난 망설이지 않고 참나무와 바위에다 산죽을 포함시킬 것이다. 그만큼 산죽은 산행 내내 내 곁을 지키고 있었다.
▼ 완만(緩慢)하게 이어지던 산길은 안부에 이르러 오른편에 내장사로 내려가는 갈림길(금선계곡)을 만들어 낸 후에, 다시 오르막길로 변한다(신선봉에서 0.5Km 지점). 오르막길은 이내 가파른 너덜길이 길게 이어진다. 너덜길은 길의 양편에 로프를 매어 놓았지만 오르기가 여간 사납지 않다. 보폭을 맞추기가 어려울 정도로 돌의 규모나 간격이 들쭉날쭉하기 때문이다. 사나운 너덜길이 끝날 즈음 오른편에 거대한 암벽(巖壁)이 나타난다. 바로 내장사지구가 일목요연하게 눈에 들어오는 금선대이다. 이곳은 선인(仙人)들이 하늘나라에서 내려와 놀 때 선녀들이 시중을 들었던 곳이라고 한다.
▼ 금선대에서 멀지 않는 곳에 있는 신선봉(神仙峰, 763m)도 역시 헬기장을 겸하고 있다. 이곳도 안내판과 산행 안내지도 그리고 이정표(까치봉 1.44Km/ 대가 1.82Km/ 연자봉 1.1Km)가 세워져 있는 것은 다른 봉우리들과 마찬가지이나. 이곳에는 커다란 정상표지석이 하나 더 있다. 아마도 신선봉이 내장산의 9개 봉우리 중에서 가장 높은 것에 대한 예우가 아닌가 싶다. 정상에 서면 북쪽에 늘어선 서래봉과 망해봉. 연지봉, 까치봉 등의 봉우리 들이 잘 조망된다. 연자봉에서 신선봉까지는 대략 40분 정도 걸린다. 참고로 내장산탐방지원센터에서 케이블카를 이용해 연자봉에 오른 후 이곳으로 오거나, 순창군 복흥면 대가마을에서 올라오는 길이 신선봉에 이르는 가장 짧은 등산로다.
▼ 까치봉으로 향하는 길도 역시 가파른 내리막길이다. 안부로 떨어졌다가 다시 오름길로 변하고서도 산길은 한동안 완만(緩慢)하게 이어진다. 그러다가 산죽 길을 지나면 꽤 높은 바위절벽이 앞을 가로막는다. 밧줄을 이용해서 바위 위로 오르면 시원스럽게 시야(視野)가 열리면서 방금 지나온 신선봉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 이어서 헬기장을 지나면 까치봉의 전위봉인 530봉에서 길은 두 갈래(까치봉 0.3Km/ 소등근재 2.0Km/ 신선봉 1.2Km)로 나뉜다. 이곳에서 까치봉으로 가려면 오른편으로 진행해야 한다. 왼편 길은 소둥근재로 내려가는 호남정맥 마룻금이기 때문이다.
▼ 고개를 돌려보면 지나온 길이 아득하고, 그 길을 걸어온 나 자신이 대견스럽다. 상당히 긴 코스를 돌아오는 동안 자신을 짓누르던 초조감, 긴장감은 사라진지 이미 오래이다. 사실 산행이라는 것은 자신과의 끊임없는 싸움이다. 산행을 시작할 때 느꼈던 긴장감은 곧 육체적 고통으로 이어지고, 그 고통과 함께 완주(完走)할 수 있을까하는 불안감이 찾아오지만, 어느새 산행은 막바지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 전위봉에서 까치봉으로 가는 길은 암릉길이다. 암릉길의 특징대로 스릴이 있고 조망(眺望) 또한 뛰어나다. 산길은 한차례 안부로 깊게 떨어졌다가. 다시 가파르게 암릉길을 오른 후에 까치봉(717m)의 바위봉우리 위에 올려놓는다. 정상에는 산행안내도가 이정표를 대신하고 있는데, 옆에는 ‘내장산 서쪽 중심부에 2개의 바위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으며 봉우리의 형상이 까치가 날개를 펴고 있는 모습과 같다하여 까치봉이라 한다. 내장산 제2봉으로 백암산을 연결하는 주봉이며, 내장 9봉이 까지봉을 중심으로 대체로 동쪽을 향해 이어지면서 말굽형을 이루고 있다.’고 적혀있는 해설판이 보인다. 신선봉에서 이곳까지는 대략 50분 정도가 걸렸다.
▼ 까치봉에서 금선계곡으로 내려가는 길은 한마디로 가파르다. 그 가파름을 조금이라도 누그러뜨려보려는 국립공원관리공단의 고심(苦心)이 곳곳에서 느껴진다. 여느 가파른 내리막길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돌계단이나 통나무계단이 계속되지만, 계단만으로는 경사(傾斜)를 죽일 수 없었던지 이리저리 갈지(之)자를 만들거나 심지어는 둥그렇게 원을 그리면서 고도(高度)를 낮추고 있는 것이다.
▼ 산길의 주변에는 오래 묵은 참나무들이 울창하게 우거져 있다. 때문에 일절 조망(眺望)이 트이지 않는다. 가뜩이나 힘든 내리막길에다 눈요깃거리까지 없다보니 하산길이 여간 지루하지가 않다. 아무래도 내장산의 산신령께서도 이점이 못내 미안했던 모양이다. 잠깐이나마 왼편의 숲을 빼꼼히 열고서, 서래봉의 멋진 암릉을 선보이는 것을 보면 말이다. 잠깐 걸음을 멈추고 조망을 즐겨본다. 주변의 참나무들이 가지마다 겨우살이들을 탐스럽게 매달고 있는 것이 보인다. 항암(抗癌)효과가 탁월하다고 해서 각광을 받고 있는 식물이다. 남쪽 산에서는 보기가 쉽지 않은데 의외이다.
▼ 가파른 내리막길을 30분 남짓 내려가면 금선계곡이다. 오른편에서 보이는 길은 내장산 최고봉인 신선봉에서 금선폭포(瀑布)를 거쳐 내려오는 길로서, 이곳에서 오른편으로 조금만 더 올라가면 내장산에 **역사적(歷史的)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용굴’이 나온다. 용이 승천했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는 용굴(龍窟)은 임진왜란 당시 태조 영정과 왕조실록(王朝實錄)을 1년간 보관한 곳으로 알려진 덕분에 선조들의 숨결을 느껴보고 싶은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 내장산(內藏山)은 산에 숨겨진 것이 무궁무진하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 선조(先祖)들은 뛰어난 선견지명(先見之明)을 갖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만일 내장산이 아니었더라면 우리나라의 소중한 보물(寶物)이 사라질 뻔 했었으니까 말이다. 조선(朝鮮)은 전국에 4개의 사고(史庫 : 춘추관, 전주, 충주, 성주)를 두고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 국보 제151호)을 보관했었다. 그러다가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전주를 제외한 나머지 사고의 실록들은 모두 소실(燒失)되었다고 한다. 전주사고에 있던 실록들을 이곳 내장산(용굴)으로 옮겨 보관했던 덕분에 무사했던 것이다. 선조들은 내장산이 능히 보물을 품을 만한 산세(山勢)를 지녔다고 생각했을 것이고, 그래서 실록들을 이곳으로 옮겼을 것이다.
▼ 삼거리에서 계곡을 따라 10분 정도 내려오면 주막(酒幕)을 겸한 휴게소가 나온다. 주막에서 손수 담갔다는 동동주 몇 병이 평상에 진열되어 있고, 주막 안의 테이블에는 나그네 몇 명이 술잔을 나누고 있다. 술동이 속에서 익어가고 있는 동동주의 유혹을 이겨내지 못하고 한 병 챙기고 난 후에야 다시 발걸음을 옮기게 된다. 내장사로 가는 길은 ‘겨울 숲’의 고요함을 간직하고 있다. 키 큰 활엽수들 사이로 난 산길이 계곡물과 나란히 흐른다. 삭막한 지금보다는 ‘봄 숲’이나 ‘여름 숲’으로 만나고 싶은 숲이다. 주막을 출발해서 5분 남짓 걸으면 내장사의 뒷담이 보이고, 오른편에 케이블카의 상부 도착지인 전망대(展望臺)로 올라가는 길이 보인다. 이 부근은 **굴거리나무 군락지(群落地)이다.
**)내장산 굴거리나무 군락(천연기념물 제91호), 굴거리는 난대성 상록활엽 교목(喬木)으로, 가지가 굵고 잎이 가지 끝에 총총히 달리며, 높이는 5m까지 자란다. 한국뿐만 아니라 일본에도 분포하므로 한일난대구계(韓日暖帶區系)를 구분하는 표지종(標識種)이 된다고 한다. 내장산의 군락(群落)은 굴거리나무가 자생하는 북쪽 한계지역(北方限界線)이라는 학술적 가치가 인정되어 천연기념물로 지정·보호되고 있다. 참고로 한자어로는 교양목(交讓木)이라고도 부르는데, 이는 새잎이 난 뒤에야 지난해의 잎이 떨어져 나간다는, 즉 자리를 물려주고 떠난다는 뜻이라고 한다. 정원수나 가로수로 많이 애용되고 있다.
▼ 개울을 건너 **내장사(內藏寺) 경내(境內)로 들어서면 뭔가 하나가 빠진 듯 허전한 생각이 든다. 고색창연(古色蒼然)한 전각(殿閣) 너머로 서래봉의 암릉이 알뜰하게 눈 들어오는데도 말이다.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절 마당에 이르면 곧 이유를 알아차리게 된다. 사찰(寺刹)에서 가장 중요한 지점인 대웅전(大雄殿) 자리가 허전한 것이다. 전각(殿閣)이 있어야할 자리를 온통 가림막으로 가려 놓았다. 지난해에 대웅전이 불에 탔다는 뉴스를 접했는데, 그때는 그저 그러려니 했었는데, 막상 눈으로 직접 보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 내장사(內藏寺), 백제 무왕 37년(636)년에 영은조사(靈隱祖師)가 영은사(靈隱寺)라는 이름으로 창건하였다. 1539년(중종 34)에 내장산에서 승도탁란사건(僧徒濁亂事件)이 일어나자, 중종은 도둑의 소굴이라 하여 절을 소각시켰다. 이때 내장산에는 내장사와 영은사라는 독립된 2개의 사찰이었다고 한다. 1557년(명종) 희묵(希默)이 영은사의 자리에 법당과 요사채를 건립하고 절 이름을 내장사로 고쳤으나, 정유재란 때 전소(全燒)되었다. 이후 중창(重唱)과 중수(重修), 이전(移轉)과 개명(改名), 그리고 6.25동란으로 인한 소실(燒失) 및 중건(重建) 등 다사다난(多事多難)한 사건들을 거치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대웅전과 극락전, 관음전, 정혜루(定慧樓)등 다른 유명한 사찰들에 뒤지지 않을 만큼 수많은 전각(殿閣)들을 보유하고 있으나, 지어진지 오래지 않아 역사적(歷史的) 가치는 없으며, 동종(銅鐘)과 부도(浮屠)만이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49호로 지정되어 있을 따름이다.
▼ 이곳 내장사에서부터 일주문(一柱門)까지 일직선으로 뻗은 250m 길이의 도로는 가을이 제격이다. 100년 가까이 자란 108그루의 굵은 단풍나무 터널이 만들어내는 형형색색(形形色色)의 아름다움 때문에 ‘박대통령 고개’라는 별명까지 얻었을 정도이다. 옛날 박정희 전 대통령이 이 도로를 달려가는데, 갑자기 비행기 타는 기분이 들었나 보다. 그래서 뒤로 후진(後進)시킨 후, 다시 달려봤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겨울의 끄트머리인지라 그렇게도 아름답다는 단풍을 마음속으로만 그려볼 수밖에 없다. 참고로 이곳 단풍나무는 100여 년 전 내장사 스님들이 깊은 골짜기에서 자라는 단풍나무를 캐다가 심었다고 한다. 그 수가 108그루라니 아마도 이 터널을 걷는 사람들 모두 백팔번뇌(百八煩惱)를 벗어나라는 의미가 아닐까 싶다.
▼ 산행날머리는 내장사 제1주차장
내장사 일주문에서 매표소까지는 대략 3Km정도, 산행에 지친 다리를 이끌고 걷기에는 다소 부담스러운 거리이다. 행여 가을철이라면 단풍이라는 구경거리라도 있겠지만, 지금같이 삭막한 계절에는 걷는 게 짜증스러운 여정일 수밖에 없다. 여독도 풀겸 길가의 벤치에 주저앉아 아까 주막에서 산 막걸리로 목을 축인다. 산행이 종료되는 제1주차장은 매표소에서도 1Km정도를 더 걸어 내려가야만 한다. 참고로 내장사에서 주차장까지 왕복 운행하는 셔틀버스는 단풍철에만 운행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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