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류봉((月留峰, 401m)
산행일 : ‘12. 8. 9(목)
소재지 : 충청북도 영동군 황간면
산행코스 : 에넥스 공장→월류봉→2~5봉↔전망대→초강천(산행시간 : 3시간)
함께한 산악회 : 산두레
특징 : 한천정사 쪽에서 보면 떠오른 달이 능선을 따라 서쪽으로 흘러가기 때문에, 계속 봉우리 주변에 머무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달이 머물다 간 봉우리’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바위산이다. 월류봉에 오르면 한반도(韓半島) 지형의 특이한 언덕을 감상할 수 있는 등 볼거리가 제법 쏠쏠할 뿐만 아니라, 경부고속도로에서 접근(接近)이 편하기 때문에 찾는 사람들이 많은 편이다.
▼ 산행들머리는 에넥스 황간공장 입구
경부고속도로 황간 I.C에서 내려와 황간삼거리에서 국도 4호선을 타고 김천 방면으로 달리다가, 마산삼거리에서 백화산 방향으로 좌회전하여 조금만 들어가면 에넥스 황간공장 안내판이 보인다.
▼ 오른편에 보이는 에넥스공장 진입로(進入路)를 따라 100m쯤 들어가면서 공장의 정문에 다다르게 된다. 정문 왼편으로 난 임도(林道)를 따라 150m쯤 들어가면 이정표(월류봉 등산로, 제1봉 800m)와 산행안내도가 세워져 있는 등산로 입구이다. 정문 근처 임도의 가장자리에 이정표(월류봉 등산로 150m)가 세워져 있으니 길을 찾는데 어려움은 없을 것이다.
▼ 등산로 입구에서 임도를 따라 100m 조금 못되게 진행하다 오른편 산비탈로 올라서면서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이정표 : 월류봉 등산로 700m/ 하산 길). 산길은 초반에는 가파른 오르막이 없이 서서히 고도(高度)를 높여가다가, 오늘 오르는 산이 바위산이라는 것을 알아차리라는 메시지라도 주려는 듯, 자그만 바윗길을 잠시 보여주더니 이내 가파른 오르막으로 변해버린다. 바윗길에서 잠시 고개를 돌려보면 황간 시가지와 들녘이 한눈에 들어온다.
▼ 전망대에서 가파른 오르막길을 치고 오르면 오래지 않아 월류봉에 올라서게 된다. 월류봉 정상인 1봉은 주봉(主峰)이지만 봉우리의 높이(365m)는 다섯 봉우리 중에서 가장 낮다. 그러나 주변 풍광(風光)만큼은 다른 봉우리에 비해서 월등하다. 비록 정상표지석하나 없이 조그만 이정표(출발점 800m/ 1봉 10m)가 대신하고 있지만, 시야(視野)가 열리는 오른편 암릉 위에 올라서면, 우선 절벽(絶壁) 아래 월류정 앞을 휘돌아가는 초강천 물줄기가 한눈에 들어온다. 특히 초강천이 U자 모양으로 흐르면서 만들어 놓은 지형은 영락없는 한반도(韓半島)의 모양이다. 또한 북동쪽으로 주행봉과 포성봉으로 연결되는 백화산릉이 잘 조망(眺望)된다. 산행을 시작한지 40분 정도 지났다.
▼ 월류봉에서는 한반도 지형(韓半島 地形)을 닮은 특이한 언덕이 내려다보인다. 오른편 아래 초강천 너머로 우리 땅 모양을 꼭 빼다 박은 언덕이 펼쳐지는데, 마치 강원도 영월에서 보았던 한반도 지형의 마을과 흡사한 분위기다. 이러한 한반도의 모양은 1봉과 2봉에서 볼 때 가장 많이 닮았고, 3봉을 거쳐 4봉으로 가면서 점점 그 형상을 잃어간다.
▼ 1봉에서 5봉까지의 능선은 오른편에 수백길의 바위절벽(絶壁)을 끼고 이어진다. 그러나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능선 산길의 폭이 넓을뿐더러 절벽에서 상당히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조금이라도 절벽에 가까워진다 싶으면 어김없이 로프로 경계표시를 해 놓고, ‘추락주의’라고 적힌 위험표시판을 매달아 놓았다.
▼ 1봉에서 잠깐 짧게 내려섰다가 맞은편 능선으로 올라붙으면 금방 2봉에 올라서게 된다. 2봉의 정상은 이정표(1봉 200m/ 3봉 230m) 외에도 산불감시초소가 자리를 지키고 있다. 오른편으로 고개를 돌리면 아까 1봉에서 보았던 한반도 지형(韓半島 地形)이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은 모습으로 눈앞에 펼쳐지고 있다.
▼ 2봉에서 3봉으로 가려면 이번에는 제법 깊게 떨어졌다가 다시 맞은편 바위능선으로 올라서야 한다. 바윗길은 왼편에 우회(迂廻)로가 있지만 구태여 돌아갈 필요는 없다. 경사(傾斜)가 약한 슬랩(slab)이라서 꼿꼿이 선채로 걸어도 별 무리가 없기 때문이다. 3봉에 올라서면 아직도 한반도 지형이 조망되기는 하지만 서서히 그 원형(原形)을 잃어가고 있다.(이정표 : 2봉 230m/ 4봉 300m)
▼ 3봉에서 내려서는 길에 바라본 4봉과 5봉
▼ 3봉을 내려섰다가, 맞은편 바윗길을 가파르게 치고 오르면 4봉이다. 4봉에 오르면 월류정 앞을 스쳐 U자를 그리며 흘러나가는 초강천의 모습이 잘 보인다. 한반도(韓半島)를 빼다 박은 듯이 닮았던 지형이 뒤틀어져 보통의 지형으로 변해 버렸다. 이제부터는 한반도를 담아왔던 가슴에 주행산과 포성봉으로 이어지는 백화산맥의 웅장(雄壯)한 흐름을 담아가며 산행을 이어간다.(이정표 : 3봉 300m/ 5봉 320m)
▼ 산행을 이어가다 뒤를 돌아보면 지나온 봉우리들이 잘 조망된다. 능선의 바위 색이 짙은 갈색 또는 붉은색이라는 점을 알게 된다. 자철(磁鐵)의 성분이 많은 바위 탓일 것이다. 그래서 이곳 월류봉 곳곳에 광산의 흔적(痕迹)이 많이 보이는 모양이다.
▼ 4봉에서 길게 내려섰다가, 다시 가파르게 치고 오르면 5봉이다. '상봉'이라는 별칭도 갖고 있는 5봉은 해발 405m로 5개 연봉 가운데 가장 높지만, 봉우리 자체는 별로 특징(特徵)이 없는 그저 밋밋한 봉우리일 따름이다. 그러나 발아래 내려다보이는 초강천과 원촌마을, 그리고 저 멀리에 우뚝 솟아오른 백화산의 조망(眺望)은 뛰어난 편이다. 5봉에서 길은 두 갈래로 나뉜다(이정표 : 하산 갈림길 350m/ 4봉 320m). 맞은편으로 곧장 진행하면 노근리 또는 우촌리 소내마을로 내려가게 되므로, 월류정으로 하산지점을 잡았을 경우에는 오른편으로 내려서야 한다. 1봉에서 4봉까지는 천천히 걸어도 40분이면 충분하다.
▼ 주어진 하산시간에 여유가 있기에 ‘하산 갈림길’ 방향으로 곧장 진행한다. 일부 사람들이 6봉이라고 부르는 봉우리를 찾아보기 위해서이다. 6봉(?)으로 향하는 길은 한마디로 곱다. 보드라운 흙길이 오르내림 없이 완만(緩慢)하게 이어지기 때문이다. 곱디고운 흙길을 따라 300m 가까이 걸으면 자그마한 바위봉우리 위에 올라서게 된다. 6봉은 사방으로 시야(視野)가 뻥 뚫리는 조망(眺望)이 뛰어난 멋진 전망대(展望臺)이다.
▼ 5봉에서 초강천으로 내려서는 길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가파른 내리막길이다. 봉우리 바로 아래에서 만나게 되는 전망대(展望臺)에서 1봉에서 4봉으로 이어지는 암릉을 잠시 감상한 후부터는 비탈길과의 지루한 싸움이 계속된다. ‘겨울철에는 오르내리기가 힘들겠네요.’ 웬만한 산행에는 이골이 난 집사람이지만, 이곳 월류봉의 내리막길은 만만치 않은 모양이다. 곳곳에 안전로프를 설치해 놓았지만, 크게 도움이 되지 못할 정도로 경사(傾斜)가 가파르기 때문이다. 만일 이 길을 거꾸로 올라간다면 어떤 표현이 맞을까. ‘코에서 흙냄새가 날 정도..’로 경사(傾斜)가 가파르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 5봉에서 15분 정도를 비탈진 산길과 힘들게 싸우며 내려오면 커다란 동굴이 시커멓게 아가리를 벌리고 있다. 이 굴은 일제강점기(日帝强占期) 일본인들이 금은(金銀)을 찾아 파헤쳤던 흔적이란다. 해방 후에도 계속해서 운영하다가 1980년대 후반에야 문을 닫았다고 한다. 월류봉에는 이곳 말고도 이런 동굴이 여러 곳에 있다고 하니, 금의 매장량이 적지 않았던 모양이다. 동굴을 지나면서 갑자기 부드러워진 산길을 따라 얼마간 걸으면 ‘월류봉 산신’을 모시는 서낭당이 보인다. 서낭당은 왜소(矮小)하고 허술하기 이를 데 없으나, 누군가가 최근까지 기도를 드린 듯, 촛대와 그릇 등 제기(祭器)들이 구색을 갖추고 있다. 서낭당을 지나 조금만 더 내려가면 이내 초강천이다.
▼ 산신당을 벗어나면 진행방향의 수풀사이로 초강천이 내려다보인다. 냇가에 내려서면 미루나무들이 늘어서있는 백사장(白沙場)이 널따랗게 펼쳐진다. 이곳에서 TV 드라마 ‘해신(海神)’을 찍었다고 한다. 오른편의 자그마한 바위봉우리 위에 월류정이 의젓하게 앉아있는 것이 보인다. 이 정자는 예전부터 있던 것이 아니라 2006년에 세운 것이라고 한다. 후대 사람들이 만든 것으로는 가히 돋보이는 역작이다.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월류정에 올라본다. 난간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초강천의 유연한 곡선(曲線)이 보기 좋게 펼쳐지는데, 냇가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가슴까지 서늘하게 만들어 준다. 윗도리를 가슴까지 걷어 올려본다. 조금이라도 더 많은 바람을 맞고 싶기 때문이다.
▼ 월류정에서 내려와 산행이 종료되는 원촌마을 주차장으로 가기 위해서는 초강천을 건너야만 한다. 그러나 다리는 보이지 않는다. 물살이 약한 곳에 징검다리 비슷한 흔적이 보이나, 장마철 소낙비에 쓸려가 버렸는지 신발을 벗지 않고는 건널 수가 없다. 신발을 벗어 한손에 들고, 다른 한손으로는 집사람을 붙잡고 개울로 들어선다. 바닥에 깔린 이끼 낀 바윗돌들이 무척 미끄럽기 때문이다. 발을 물에 담그자 물살이 발가락을 어루만진다. 비록 차갑지는 않지만 물의 촉감이 부드러워 기분이 좋아진다. 이 물을 예전에는 차다고 해서 한천(寒川)으로 불렀다는데, 이상고온(abnormal weather) 탓인지 물은 미지근할 따름이다.
▼ 주차장의 강둑에서 초강천 건너를 바라보면 ‘절경(絶景)이네’라는 말이 절로 나올 수밖에 없다. 깎아지른 절벽(絶壁) 위 능선에 솟은 5개 봉우리가 한 폭의 잘 그린 산수화(山水畵)이기 때문이다. 산 아래를 휘감아 도는 초강천을 따라 송곳처럼 날카롭게 치솟은 5개의 봉우리가 부채처럼 펼쳐져 있다. 거기다 월류봉에서 초강천을 향해 내려온 능선의 끝에 세워진 월류정(月留亭)은, 한마디로 화룡점정(畵龍點睛)이다. 이런 풍광(風光)을 보고 달마저 멈춘다는데 하물며 사람이야 말해 무얼 하겠는가.
▼ 주차장에서 월류봉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면 나이가 수백 년은 되었음직한 느티나무 두 그루가 보인다. 거리가 백 미터도 되지 않으니 다가가 보자. 이곳 월류봉을 유명하게 만든 ‘한천정사(寒泉精舍)’와 ‘우암유허비’가 있기 때문이다. 느티나무 옆 구멍가게 맞은편에 한천정사가 있고, 구멍가게를 끼고 왼편으로 돌면 우암유허비가 보인다. 월류봉은 우암 송시열과 인연이 많은 곳이다. 그는 한때 이곳에 머물며 초당(草堂)을 짓고 후학(後學)들을 가르쳤다고 한다. 이를 기려 후손과 유림(儒林)들이 한천서원(寒泉書院)을 세워 우암을 배향(配享)하다가, 대원군의 서원철폐령(書院撤廢令)으로 인해 폐쇄(閉鎖)되었다. 이를 기리기 위해 건립한 것이 한천정사(寒泉精舍, 충청북도문화재자료 제28호)와 영동 송우암 유허비(충청북도기념물 제46호)이다.
* 송시열은 조선(朝鮮)의 역사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유명한 인물이다. 물론 그에 대한 역사적(歷史的) 평가는 개개인마다 시대마다 다르겠지만, 사약(賜藥)을 받고 죽었음에도 유교의 대가들만이 오른다는 문묘(文廟)에 배향되었고, 전국의 수많은 서원(書院)에 제향(祭享)되었다. 그의 죽음은 신념을 위한 순교로 이해되었고, 그의 이념을 계승한 제자들에 의해 조선사회는 움직였다. 그가 조선사회에 끼친 영향력에 대해서는 이의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역사가 승자가 기록하는 것이라고는 하지만, 모든 흠결을 다 감쌀 수는 없을 것이다. 그는 기득권보호를 위한 당파(黨派)싸움의 한쪽 축(老論)이었고, 모화사상(慕華思想)에 빠진 선비였다. 무이구곡에 비해 화양구곡을 지칭한 것이나, 주자의 운곡정사(雲谷精舍)를 모방해 암서재(岩棲齋)라는 정자를 세운 것만 봐도 능히 그의 사대성(事大性)을 짐작하게 한다. 또한, 송시열은 화양동에 머물면서 중국(中國) 방식을 따르기 위해 명나라 복장과 평정건(平頂巾)을 사용했다고 한다. 거기다 더해 부인에게도 명(明)나라 여자처럼 쪽을 지게하고, 아이들에게는 머리를 쌍각으로 땋아서 드리우게 하였을 정도이다. 조선을 이끌어가던 최고의 지도자가 이렇게까지 중국을 사모했으니, 일반 사대부(士大夫)들은 과연 어떠했을까? 그 결과가 일제강점기(日帝强占期)를 불러오지는 않았을까?
▼ 산행날머리는 원촌마을 주차장
초강천을 건너 맞은편 제방(堤防)으로 오르면 오늘 산행이 종료되는 원촌마을 주차장이다. 주차장은 수도시설과 화장실, 그리고 쉬어갈 수 있는 정자(亭子) 등 제반 편의시설(便宜施設)을 비교적 잘 갖추고 있다. 주차장의 초강천쪽에 ‘달도 머물다 간다는 월류봉’이라고 쓰인 표지석이 세워져 있고, 맞은편에는 원촌마을 유래를 적어놓은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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