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월산(舟越山, 470m) - 박달산(朴達山, 825m)
산행일 : ‘12. 7. 1(일)
소재지 : 충청북도 괴산군 감물면과 장연면의 경계
산행코스 : 주월령→주월산→느릅재→봉수대→헬기장→박달산→동골재→동골→방곡리 간곡마을(산행시간 : 50분 정도의 점심과 목욕시간 포함 5시간20분)
함께한 산악회 : 곰바우산악회
특징 : 산이 많기로 소문난 괴산군에서는 군내(郡內)에 소재한 수많은 산 중에서 가장 빼어나다는 35개의 산을 골라서 명산(名山)으로 관리하고 있다고 한다. 박달산과 주월산은 35명산의 스물한 번째와 서른다섯 번째의 자리에 당당하게 올라있다. 2개의 산이 느릅재를 사이에 두고 나란히 붙어있으며, 또한 두 산 모두 코스가 짧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두 산을 한꺼번에 종주하는 방법을 선호(選好)하는 편이다. 두 산은 바로 옆에 붙어있으나 산이 지닌 특성은 180도로 상이(相異)하다. 주월산은 옹골찬 바위산(骨山)인데 비해, 박달산은 전형적인 흙산(肉山)이기 때문이다.
▼ 산행들머리는 장연면과 감물면의 경계인 주월령
중부내륙고속도로 괴산 I.C를 빠져나와 19번 국도(國道)를 따라 괴산읍방향으로 잠깐 들어가면 방곡리 간곡마을이 나온다. 이곳에서 오른편에 보이는 구월리로 연결되는 지방도(주월로)로 바꿔 들어가면, 얼마 지나지 않아 오늘 산행이 시작되는 주월령 고갯마루에 올라서게 된다. 주월령은 감물면 구월리와 장연면 방곡리의 경계(境界)를 이루는 고갯마루이다.
▼ 주월령 고갯마루의 주월산 방향은 시멘트 축대(築臺)와 철망으로 된 펜스(fence)가 가로막고 있다. 장연면 방향의 펜스 끝에서 능선으로 올라서면서 산행이 시작된다. 산에 들어서면 길의 흔적이 보이지 않아서 당황할 수도 있으나, 걱정할 필요는 없다. 조금만 더 진행하다보면 희미하게나마 길의 흔적(痕迹)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 길의 흔적을 발견한 기쁨도 잠시, 산길이 가파른 오르막으로 변하면서 길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다. 간벌(間伐)을 한 나무들을 치우지 않고 방치한 탓에, 길의 흔적을 찾을 수가 없게 된 것이다. 바닥에 깔린 나무들을 넘거나, 넘을 수도 없을 경우에는 돌아서(迂廻) 오르는 사람들의 표정이 밝지 못하다. 하긴 욕설이 안 나오는 것만 해도 다행일 것이다. 그러지 않아도 오르기가 만만치 않은 가파른 오르막에 나뭇가지라는 복병(伏兵)까지 만났으니 죽을 맛이기 때문이다.
▼ 언젠가 변산반도 맞은편에 있는 위도에 간 일이 있었는데, 산행 중에 그곳의 면장(面長)님을 만나 이야기를 나눌 기회를 가졌었다. 그리고 난 그가 쏟아내는 열정(熱情)을 피부로 느끼며 무릎을 쳤었다. 매주 주말의 이틀 중 하루를 꼭 섬내의 등산코스를 둘러보며, 이곳을 찾는 외지인(外地人)들의 시각(視覺)에서 고쳐야할 사안을 찾는단다. 자기가 맡은 일에 대한 열정에 탄복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게 더 이상할 것이다. 그런데 오늘 이곳 주월산에서 정반대(正反對)의 경우를 대하고 보니 입이 씁쓸해질 수밖에 없다. 이 지역 관료(官僚)들이 한번이라도 이곳을 둘러봤다면 이런 상황은 결코 벌어지지 않았을 테니까 말이다. 이를 증명(證明)이라도 하려는 듯이, 주월산 정상에서 느릅재로 내려가는 등산로 길가에는 간벌을 한 나무들을 마치 자로 잰 듯이 반듯하게 쌓아 놓았다. 사람들의 눈에 빤히 드러나는 코스이기 때문이리라.
▼ 간벌목(間伐木)과의 악전고투(惡戰苦鬪)를 30분 정도 치르다보면 지능선과 나뉘는 분기점과 만나게 된다. 간곡마을에서 지능선을 따라 올라오는 등산로가 너무도 뚜렷하기 때문에. 주월령을 산행들머리로 삼은 것이 잘못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일 것이다. 혹시라도 나중에 주월산을 찾으려는 사람들이 있다면, 주월령보다는 간곡마을을 들머리로 삼을 것을 권하고 싶다.
▼ 간곡마을에서 올라오는 지능선과 만나면서 오르막길의 가파름은 사라진다. 본격적인 능선산행이 시작된 것이다. 산길 주변은 소나무들의 숫자가 늘어나는 것과 보조라도 맞추려는 양 바위들의 숫자도 점차 늘어가고 있다. 완만(緩慢) 능선에서 두어 번 바위를 돌아 오르면, 전망대(展望臺)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사방이 시원스레 트인 주월산 정상이다. 그러나 오늘은 비온 뒤끝인지라 구름에 덮인 산하는 그 자태를 보여주지 않고, 겨우 발아래에 있는 산촌마을만 보여줄 따름이다. 산행을 시작한지 40분 정도가 지났다.
▼ 주월산의 정상은 서너 평 정도의 흙으로 이루어진 분지(盆地), 한가운데에 사각의 말뚝형으로 된 정상표지석이 심어져 있고, 그 뒤를 정성들여 쌓은 돌탑(石塔)이 지키고 있다. 주월산은 비록 나지막한 산이지만 보잘 것 없는 산은 아니다. 그래서 괴산의 35명산(名山)에 당당하게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정상에 오르면 나지막한 산임에도 불구하고 조망(眺望)이 뛰어나다고 알려져 있으나 사위(四圍)가 운무(雲霧)로 둘러싸인 오늘은 이를 허락하지 않고 있다.
▼ 정성스레 돌맹이를 얹고 있는 저들은 무엇이 저리도 간절할까? 원래 돌탑이란 사람들이 자기의 염원(念願)을 담아 쌓는 것이니, 저 돌탑에는 얼마나 많은 사연들이 깃들어 있을까? 가야할 길이 바쁜 난, 남의 손을 빌어 내 소원(所願)을 빌어본다. 저들이 얹고 있는 돌맹이에다 덤으로 내 작은 소원 하나 덧붙이는 것이다. ‘내 사랑하는 집사람과 영원히 함께할 수 있게 해 주소서! 천만번의 수많은 윤회(輪回) 속에서도 결코 헤어짐이 없는 영원한 인연(因緣)이 되게 해 주소서!’
▼ 정상에서 잠시 가파르게 내려서서 못생긴 노송(老松)들이 늘어선 능선을 따라 걷다보면 왼편이 시원스레 열린다. 깎아지른 단애의 위에 위치한 전망대이다. 단애(斷崖)의 끄트머리에 서면 맞은편에 있는 박달산이 한눈에 들어오련만 구름이 잔뜩 끼어있는 탓에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러나 소나무 사이로 내려다보이는 산 아래 마을 풍경(風景)은 한 폭의 그림이다. 몇 가구 되지 않지만 옹기종기 모여 사는 모습이 예전의 우리네 삶을 닮아 있는 것 같아 정이 간다는 것이다.
▼ 정상에서 암릉과 노송(老松)이 잘 어우러지고 있는 서릉을 타고 10분 정도 진행하다보면 매바위가 나온다. 누가 뭐래도 주월산의 백미(白眉)는 매바위 부근의 암릉일 것이다. 순탄한 산길을 여유롭게 걷다보면 갑자기 거대한 바위벽이 앞을 가로막는다. 산길을 바위를 우회(迂廻)하도록 되어있지만, 손맛도 즐겨볼 겸 서슴없이 바위벽에 들어붙고 본다. 마음 약한 사람들이나 암벽(巖壁)산행의 초심자만 아니라면 어렵지 않게 암릉 위로 오를 수가 있다.
▼ 주월산 정상에서 매바위능선으로 가는 길에 바라본 매바위, 남쪽 끝에 부리를 날카롭게 세우고 있는 매 한 마리가 머리를 한껏 뒤로 제키고 있다. 마치 맞은편 박달산을 향해 힘차게 날아오를 듯이...
▼ 매바위 암릉에는 분재(盆栽)처럼 아담하고 예쁜 명품(名品)소나무가 바위들과 어울려 멋진 풍광(風光)을 연출해내고 있다. 19번 국도가 지나가는 느릅재에서 이곳까지 30분 정도면 올라올 수 있기 때문에, 꼭 산행이 아니더라도 이런 풍광(風光)을 찾아서 이곳까지 산책삼아 올라오는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깎아지른 단애와 그 단애 위에 올라앉은 분재(盆栽)를 닮은 소나무들은 한마디로 말해 아름답다. 그래서 이곳을 주월산의 백미(白眉)라고 부르는 것이다.
▼ 매바위 능선에서는 이담저수지와 별로 넓지 않은 들녘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촌락(村落)의 모습이 평화롭게 내려다보인다. 동쪽에는 조금 전에 지나온 주월산이 선명하고, 발아래의 구불구불한 19번 국도에는 성냥갑만한 차량들이 분주하게 드나들고 있다. 그리고 느릅재 너머에는 조금 후에 가게 될 박달산이 장쾌하겠지만, 짙은 구름 탓에 그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
▼ 소나무 숲길을 따라 걷다보면 오른편에 새로 지어진 산불감시초소가 보인다. 선답자(先踏者)들이 올린 산행기에는 매바위 암릉 위에 있었는데, 아마도 정상을 정비하면서 이곳으로 옮겼나보다. 평소에는 초소(哨所)를 지키는 사람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오늘은 인기척이 없다. 초소 옆의 아름다운 소나무들은 운무 속에서 환상적(幻想的)인 분위기를 자아내고, 초소의 뒤로는 시원스레 조망(眺望)이 트이고 있다. 백양리 들녘에는 이담저수지가 다소곳이 앉아있고, 그 너머에는 산모롱이를 휘감아 도는 달천이 운무(雲霧)속에서 희미하게나마 그 자태(姿態)를 선보이고 있다. 오늘 같이 비온 뒤끝이 아니라면 어떻게 이런 멋진 풍광(風光)을 즐길 수 있겠는가.
▼ 산불감시탑을 지나 느릅재까지는 호젓한 산길이 이어진다. 조림(造林)이 잘된 일본이깔나무(落葉松)들이 줄을 맞춰 하늘과 키 재기를 하고, 굵은 나무가 잠깐 자리를 비운 길가에는 이름 모를 들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다. 한마디로 볼만한 풍경(風景)이다. 들꽃들과 장난을 치며 걷다보면 어느새 느릅재에 내려서게 된다. 19번 국도가 지나가는 느릅재는 장연면과 감물면이 경계를 이루는 고갯마루로서, 예로부터 감나무가 많았다고 해서 감나무골로도 불린다.
▼ 느릅재에서 박달산으로 가기 위해서는 19번 국도의 방곡리 방향으로 50m쯤 걸어 내려가다 맞은편 능선으로 올라서면 된다. 들머리에 산행안내도가 세워져있으니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고저(高低)의 차(差)가 심하지 않아서 걷기가 편안한, 일본이깔나무(낙엽송) 조림지역을 7~8분 걸으면 새로 개설(開設)한 것 같은 임도를 만나게 되고, 임도(林道)를 건너 맞은편 능선으로 붙으면서 가파른 오르막길이 시작된다.
▼ 임도에서 봉수대(烽燧臺)까지의 구간이 오늘 산행에서 가장 힘든 구간(區間)중의 하나이다. 가파른 오르막길을 40분이나 계속해서 치고 올라야만 하기 때문이다. 원시림(原始林)을 방불케 하는 숲의 아래로 난 길은 다행히도 또렷하다. 소나무와 참나무 숲 아래로 난 가파른 오르막길을 40분 정도 치고 오르면 오른편으로 시야(視野)가 트인 전망대(展望臺)에 올라서게 된다(이정표 : 박달산 1.5Km/ 느릅재 1.5Km). 옛날에 봉수대가 있었다는 전망대는 50평쯤 되는 평평한 쉼터인데, 구불구불 제멋대로 자라난 소나무들이 군락(群落)을 이루고 있다. 전망대 앞에 서면 나뭇가지가 만들어내는 액자(額子) 속에 갇혀 있는 산골마을의 풍경(風景)을 볼 수 있다. 넓지 않은 들녘에 옹기종기 모여 앉은 산골마을이 평화롭기 그지없다.
▼ 전망대를 지나면 산길이 갑자기 바위지대로 변한다. 힘들이지 않고 오를 수 있을 정도인데도 이곳의 행정관청에서는 친절하게도 안전로프를 매어 놓았다. 아기자기한 바위능선을 따라 15분 정도 오르내리다보면 이정표(박달산 1.1Km/ 느릅재 1.9Km) 하나가 눈에 띄고, 그 오른편은 널따란 헬기장(740봉)이다. 박달산에서 유일하게 사방으로 조망(眺望)이 트이는 곳이라고 하지만 오늘은 짙은 운무(雲霧)에 가려 이를 허락하지 않고 있다.
▼ 헬기장을 지나면서 길은 아주 편하게 이어진다. 헬기장에서 잠시 내려섰다가 능선을 따라 20분 정도를 오르내리면 800봉에 올라서게 된다. 참나무 숲으로 둘러싸인 아무 특징(特徵)이 없는 곳이므로 머무르지 않고 곧장 발걸음을 옮겨버린다. 800봉에서 10분 조금 넘게 걸으면 참나무와 물푸레나무로 둘러싸인 박달산 정상이다. 정상근처의 능선에는 울창한 참나무 아래에 진달래나무들이 들어차 있다.
▼ 별로 넓지 않은 정상에는 오석(烏石)으로 만들어진 정상표지석과 무인(無人)산불감시탑, 그리고 국기게양대(揭揚臺)가 하나 서있는데, 특이한 것은 태극기가 게양대에 걸려있지 않고 산불감시탑의 철망에 매달려 있다는 것이다. 그러려면 무엇 때문에 게양대를 설치해 놓았는지가 궁금하다. 정상은 잡목(雜木)들이 봉우리 주변을 둘러싸고 있어서 오늘같이 안개가 자욱한 날이 아니더라도 조망(眺望)은 별로일 것 같다.
▼ 박달산에서 하산지점을 방곡리나 추점리로 잡을 경우에는, 정상으로 올라왔던 길의 반대방향으로 내려서면 된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코스인지 산길은 의외로 또렷하게 나있다. 가파른 내리막길을 따라 잠깐 내려서면 눈에 익은 바위 두 개가 보인다. 다른 선답자(先踏者)들의 산행기에서 빠지지 않고 나타나던 바위이다. ‘통천문(通天門)’이라는 그럴듯한 이름까지 붙인 이들도 있지만 내가 보기에는 그저 평범한 바위일 따름이다.
▼ 정상에서의 10분 정도 내려서면 안부 사거리에 이르게 된다(이정표 : 무임사, 종자마을 35분/ 추점리 70분/ 박달산 정상 20분). 바로 동골재로서 방곡리로 내려가려면 이곳에서 왼편으로 진행해야만 한다. 그러나 이정표에는 방곡리 방향을 표시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주의를 요하는 지점이다. 참고로 이곳에서 추점리 코스로 하산하는 사람들도 있으나 선답자(先踏者)들의 산행기를 종합해보면 바람직하지 않을 것 같다. 코스 중간에 있다는 작은 암릉을 걷는 재미는 느낄 수 있을지 모르나, 산길을 가로막고 있는 간벌목(間伐木) 때문에 고생을 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혹시라도 오늘 주월산을 오를 때 우리가 겪어야만 했던 고생을 기꺼이 감수(甘受)할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들이라면 모르겠지만 말이다.
▼ 동골재에서 왼편의 동골 방향으로 내려선다. 산행날머리를 방곡리로 잡았기 때문이다. 동골로 내려서는 산길은 많이 가파르다. 그러나 계곡에 이르게 될 때까지는 흙길이기 때문에 무릎에 무리를 줄 정도는 아니다. 군락(群落)을 이루고 있는 일본이깔나무(落葉松)의 솔가리(落葉)들이 소복하게 쌓여있는 산길은 차라리 폭신폭신할 정도이다.
▼ 계곡에 가까워지면서 사람들의 손때가 묻지 않은 숲길이 나타난다. 숲은 밀림(密林)을 연상케 할 정도로 우거져 햇빛 한 점 스며들지 못할 정도로 어두컴컴하다. 그런데 내려가다 보면 가끔 돌을 반듯하게 쌓은 축대(築臺)의 흔적이 눈에 띈다. 사람이 살았던 흔적(痕迹)일까? 그렇지 않고 산림보호를 위해 인위적(人爲的)으로 쌓은 것이라면 산림청 관계자들에게 찬사(讚辭)를 보내드리고 싶다. 그런 정성이 있었기에 우리나라의 산림(山林)이 이렇게 우거졌을 것이기 때문이다.
▼ 안부사거리를 출발한지 30분쯤 되면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리면서 동골 계곡에 이르게 된다. 인적이 끊긴 원시(原始)의 계곡은 푸른 이끼들로 포위되어 있다. 바위마다 본연의 바위 빛깔을 잃어버리고 진초록의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있는 것이다. 골짜기의 수량(水量)이 충분하다 싶으면 잠깐 물속에 들어가 목욕을 즐겨보는 것도 좋을 듯 싶다. 다른 오지(奧地) 산에 비해 서울까지의 거리가 가까워서 귀경길이 여유로울 것이기 때문이다. 골자기를 빠져나와 시멘트로 포장된 농로(農路)를 따라 20분 가까이 걸으면 오늘 산행이 종료되는 간곡마을이다. 자칫 지루하기 쉬운 농로의 주변은 주렁주렁 매달린 사과 열매가 눈요기를 시켜주고, 길섶(길의 양쪽 가장자리)에는 오디와 산딸기가 주렁주렁 매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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