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산(成芝山, 992m) - 대호산(大虎山, 592m) - 백운산(白雲山, 559m)

 

산행일 : ‘12. 6. 17(일)

소재지 : 전라북도 설천면과 적상면의 경계

산행코스 : 괴목마을 버스정류소→대호산→전망바위→성지산→명품바위→안부→암봉 왕복(알바구간)→백운산→무주호(산행시간 : 6시간)

함께한 산악회 : 곰바우산악회

 

특징 : 전인미답(前人未踏)이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사람의 발길이 뜸한 오지(奧地)의 산, 전형적인 흙산(肉山)으로 어쩌다가 한 그루씩 보이는 소나무들을 제외하면 산에는 온통 참나무와 철쭉나무 등 활엽수(闊葉樹 일색(一色)이다. 어쩌다가 나타나는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덕유산과 적상산의 조망(眺望) 외에는 별다른 볼거리가 없으므로, 오지산행을 즐기는 사람들이 아니라면 구태여 찾아볼 필요가 없는 산이다. 또한 이 산은 정상표지석은 커녕 그 흔한 이정표 하나 없이 철저하게 버려진 산이다.

 

 

산행들머리는 적상면 괴목마을

대전-통영간고속도로 무주 I.C를 빠져나와 19번 국도(國道)를 따라 안성방향으로 가다가 사신교차로(交叉路 : 적상면 사신리)에서 49번 지방도(地方道)로 바꿔 탄다. 치목터널 지나 조금 더 가다가 하조사거리(괴목리 하조마을)에서 727번 지방도를 만나 좌회전하면 곧 괴목마을이다. 괴목마을에 이르면 우람한 느티나무 한그루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느티나무의 한자음(漢字音)이 곧 괴목(槐木)일지니, 이 마을의 이름이 저 느티나무에서 유래(由來)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느티나무 몸통 아래를 빙둘러가며 원형으로 나무의자를 만들어 놓았고, 나무 옆에는 정자(亭子)까지 세워서 느티나무와 함께 멋진 쉼터를 조성(造成)해 놓았다. 이를 보면, 마을의 역사(歷史)가 적혀있는 빗돌의 뒷면을 굳이 읽어보지 않더라도, 느티나무와 이 마을에 얽힌 얘기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느티나무 아래를 지나 마을로 들어서면서 산행이 시작된다.

 

 

 

마을을 관통하는 골목길을 이용해서 동네를 벗어난 다음, 시멘트포장 농로(農路)를 따라 뒤편 언덕으로 오른다. 느티나무에서 출발한지 10분쯤 지나면 농로의 오른편이 야산(野山)의 경사면(傾斜面)과 만나게 되는데, 이곳이 맨 먼저 올라야할 대호산의 들머리인 것이다. 오른편에 보이는 지능선으로 접어들면서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막상 산에 들어섰지만 등산로가 보이지 않는다. 오늘 산행의 주제가 ‘오지(奧地) 산행’임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이 들머리부터 길의 흔적(痕迹)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산행대장의 발걸음은 거침이 없다. 사람이 다닌 흔적이 보이지 않는데도, 잠시의 멈춤도 없이 잡목(雜木)사이를 잘도 헤쳐 나가고 있다. 그야말로 오지산행으로 이골이 난 ‘곰바우산악회’의 관록(貫祿)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나뭇가지에 걸려 땅에 떨어진 모자를 다시 쓰고, 심심찮게 따귀까지 맞아가며 10분 정도 진행하다보면 삼각점안내판이 세워진 낮으막한 봉우리 위에 올라서게 된다. 이곳에서부터 등산로의 흔적(痕迹)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렇다고 걷기에 편해진 것은 결코 아니다. 일 년에 한두 명이나 다닌 듯한 산길은 있으나마나 이기 때문이다.

 

 

 

 

곁가지를 헤쳐야만 하는 산길을 40분 정도 치고 오르면 대호산에 이르게 된다. 커다란 호랑이가 자주 출몰(出沒)했다는 대호산을 과연 산(山)이라고 부르는 게 맞는 표현일까? 대호산은 볼록하게 돋은 능선 상의 한 지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돋아 오른 높이가 너무나 얕기 때문에 나뭇가지에 매달린 정상표시판이 아니라면 아무도 이곳이 정상인지를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이다. 산과 산 사이는 보통 깊은 골로 나뉘는 것이 보통이지만, 대호산과 성지산은 아무런 구분이 없이 밋밋한 능선으로 연결되고 있을 따름이다. 대호산 정상에는 국방부(國防部) 지리연구소에서 설치한 둥근 삼각점이 있다.

 

 

 

 

대호산을 지나면서 산길은 가파른 오르막길로 변한다. 오늘은 30도가 넘는다는 무더운 날씨, 이마에서 흐르던 땀방울은 이미 등산복 상의를 다 적셔버리고. 이제는 아랫도리를 향해 내닫고 있다. 숨이 턱에 차게 능선길을 올라가다보면 거대한 바위벼랑이 길을 막아선다. 오른쪽으로 돌아 바위벼랑 위로 오르면 시원스레 시야(視野)가 트인다. 아름드리 노송(老松)이 햇빛을 가려주고 있는 뛰어난 전망대(展望臺)이다.

 

 

 

까마득히 깎아 세운 벼랑 끝에 서면, 지나온 괴목마을이 발아래에 펼쳐지고, 치목마을과 치목터널도 한눈에 들어온다. 그 너머에는 적상산이 금방 손에 잡힐 듯이 가깝게 다가와 있다. 오른쪽에 아스라이 바라보이는 것은 아마 무주호일 것이다. 이곳 전망대가 오늘 산행의 백미(白眉)이다. 사실 오늘 산행의 대부분을 짙은 숲속을 걷게 되기 때문에 특별한 볼거리도 없을뿐더러, 조망(眺望) 또한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전망바위에서 다시 한 번 바윗길을 돌아 오르면 또 하나의 전망바위가 기다리고 있다. 조금 전의 전망바위만은 못하지만 이곳에서는 덕유산의 전모(全貌)를 엿볼 수 있다.

 

 

 

 

두 번째 전망바위를 벗어나면 오른쪽으로 능선길이 이어진다.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드문 탓에 웃자라버린 곁가지를 헤치며, 산길을 나아가다보면 곳곳에서 짐승의 배설물(排泄物)들이 눈에 띈다. 아마 멧돼지가 남긴 흔적일 것이다. 능선의 경사(傾斜)가 가파름과 완만(緩慢)해지기를 반복하다 보면 이내 성지산에 올라서게 된다. 산행을 시작한지 2시간 정도가 지났다.

 

 

 

 

능선상에 뾰쪽하게 솟구친 봉우리인 성지산 정상은 우선 좁다. 나무들을 베어내고 만들어 낸 공간(空間)의 한 가운데에는 삼각점이 놓여있다. 이곳도 역시 행정기관에서 만든 정상표시 빗돌은 보이지 않고, 어느 등산객이 정성들여 제작한 정상표시목만이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을 뿐이다. 이 정도의 산을 방치(放置)하고 있다는 것은 덕유산이나 적상산 등 이곳에는 사람들을 끌어 모을만한 산들이 많다는 증거일 것이다. 정상에서는 덕유산의 향적봉과 스키장이 보이지만 주변의 나뭇가지에 가린 탓에 그 형상만 간신히 내다보일 따름이다.

 

 

 

백운산으로 가려면 북쪽(왼편)으로 이어지는 주능선을 따라 진행해야 한다. 청량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따라가다 중간지점에서 왼편 지능선으로 내려서야 하는 것이다. 주능선은 참나무 고목과 바위들이 적당히 어울린 인적 없는 산길이다. 늙은 아름드리 참나무들이 온 힘을 다해 새잎을 내밀고 있다. 그 정성이 통했음일까? 간혹 고사목(枯死木)이 보이기도하지만 등산로는 한줄기 빛의 스며듬도 허락하지 않을 정도로 짙은 녹음을 자랑하고 있다.

 

 

주능선은 조금은 특이한 양태(樣態)를 보여주고 있다. 산길이 능선을 벗어나 우회(迂廻)를 해야 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거대한 바위들을 곳곳에서 마주치게 되는데, 연결되는 바위들이 하나도 없이 모두가 각각으로 널브러져 있는 것이다. 갑자기 어디에선가 날아와서 뚝 떨어진 것 같이, 흙으로 이루어진 능선 위에 각양각색(各樣各色)의 형상으로 널려있다. 그렇다고 카메라에 담을 만큼 멋지게 생긴 바위는 눈에 띄지 않는다.

 

 

 

 

능선을 따라 50분 정도를 진행하면 왼쪽으로 적상산이 잘 조망(眺望)되는 바위 위에 올라서게 된다. 바로 명품바위다. 능선을 걷는 동안 혹시라도 명품바위를 못보고 지나치기라도 할까봐 노심초사(勞心焦思)했던 것이 우스워지는 순간이다. 명품바위는 바위가 잘생겨서가 아니고, 바위 위에서 바라보는 조망이 명품(名品)이라서 그런 이름이 붙은 것이다.

 

 

 

명품바위에서 다시 북쪽의 청량산 방향을 향해 산행을 계속한다. 그런데 명품바위에서 15분 정도 더 걸으면 보인다는 ‘국립공원 경계석’이 보이지 않으니 문제다. 이제나 저제나 하며 국립공원 빗돌이 나오기만을 기다리며 걸어보지만 30분이 지나도록 눈에 띄지 않는다. 그러다가 능선은 갑자기 가파르게 고도(高度)를 낮추더니, 안부를 정점으로 맞은편 능선을 향해 다시 가파르게 오르막길을 만들어내고 있다. 가파르게 오르막길을 올라가다 보면 왼편에 제법 또렷한 산길이 보인다. 백운산으로 가는 지능선이다. 당연히 왼편 갈림길로 내려서야 하는데도, 능선을 따라 계속해서 올라갈 수밖에 없다. 아직까지 개념도(槪念圖)에 나와 있는 ‘국립공원 경계석’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오늘의 하이라이트인 알바가 시작되었다.

 

 

갈림길에서 가파른 오르막길을 잠시 치고 오르면 그렇게도 찾아 헤매던 ‘국립공원 경계석’이 길가에 누어있는 것이 보인다. 다시 한 번 개념도(槪念圖)를 꺼내보고 방향을 잡는다. 이곳의 높이가 대략 910m정도 되니, 개념도에 나와 있는 빗돌의 지점과 일치한다. 당연히 백운산 갈림길은 앞으로도 한참을 더 가야만 나오게 되어 있다. 그러나 나중에 확인한 결과로는 우리가 못보고 지나친 빗돌이 있는 지점의 높이는 960m로 확인(다른 사람의 산행기) 되었다. 개념도(槪念圖)가 잘못 작성되어 있는 것이다.

 

 

 

빗돌이 누워있는 910봉 근처는 오늘 산행에서 유일한 암릉구간이다. 당연히 암릉구간의 특징대로 시야(視野)가 열리는 곳이 자주 눈에 띄는데, 바위 위로 올라서면 무주호가 잘 조망된다. 암릉의 바위들을 넘거나 우회하다보면 날카롭게 갈기를 세우고 있는 봉우리 하나를 만나게 된다. 선두그룹들이 봉우리 주변에 옹기종기 모여 있다. 왼편으로 내려가는 길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찾고 있는 중이란다. 그렇다고 무작정 청량산 방향으로 나아갈 수도 없기 때문에, 발길을 돌려 아까 지나쳤던 갈림길까지 되돌아 나온다. 가파른 오르막길과 힘겨운 싸움을 벌인 알바구간에서 40분 가까이 아까운 시간을 허비해 버렸다.

 

 

 

 

 

백운산 갈림길에서 백운산으로 향하는 하산길은 경사가 가파른 내리막길이 지루하게 이어진다. 큰 변화를 보여주지 않는 비탈길을 따라 50분 가까이 내려서면 안부에 이르게 되고, 산길은 610봉을 향해 다시 가파르게 위로 향하고 있다.

 

 

 

 

610봉에 올라서면 오늘 우리가 지나온 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제대로 걸어온 능선은 물론이고, 이빨을 악물로 올랐던 암릉구간(알바)도 바로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다. 610봉 정상은 아무런 표시가 없이 산악회들 리본 몇 개만이 바람에 팔랑이고 있다. 그냥 지나치려고 하는데 뭔가가 시선(視線)을 끈다. 뜬금없이 ‘백운산 559m'라고 쓰인 리본 하나가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는 것이다. 갈림길에서 내려온 누군가가 아무리 걸어도 백운산이 나오지 않자 심술을 부린 모양이지만, 산이라는 게 혼자만 오르는 것이 아닐 것이므로, 이런 장난은 삼가는 게 좋을 것 같다.

 

 

 

610봉에서 삼각점이 있는 백운산까지는 20분이면 충분하다. 백운산 정상도 오늘 지나온 산들의 정상과 마찬가지로 좁다란 분지(盆地)의 중앙에 삼각점이 심어져 있고, 나뭇가지에는 개인이 만든 정상표지판이 매달려 있다. 정상은 잡목(雜木)들로 둘러싸여 있어서 조망(眺望)이 트이지 않는다.

 

 

 

산행날머리는 무주호(湖)의 한국전력홍보관

백운산에서 하산은 서쪽능선을 따른다. 하산길은 초반에는 제법 또렷하게 나타나다가 내리막길이 가파르게 변하면서 길의 흔적(痕迹)이 희미해지므로 주의해서 진행해야 한다. 백운산에서 20분 조금 넘게 내려오면, 갑자기 넓어진 산길은 급하게 오른편으로 돌아 계곡으로 들어선다. 물기 한 점 없는 건천(乾川)을 따라 잠깐 동안 내려가면 이내 727번 지방도이다. 무주호반(湖畔)을 따라 난 지방도를 따라 오른편으로 5분 정도 걸으면 오늘 산행이 종료되는 무주양수발전소 홍보관이다. 홍보관 주변의 위락단지에는 음식점과 민박집이 꽤 많이 들어서 있으므로, 산행 후의 뒤풀이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