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둥산(민둥山, 1,119m)
산행코스 : 증산초등학교→임도 쉼터→억새군락지→민둥산 정상→삼내약수 갈림길→지억산(1,117m)→구슬동→화암약수 주차장 (산행시간 : 4시간40분)
소재지 : 강원도 정선군 남면(하산지점인 화암약수는 동면)
산행일 : ‘10. 10. 10(일)
같이한 산악회 : 월산악회
특색 : 산세가 둥글고 여성적이어서 중앙선 철도의 증산역에 내려서서, 산을 바라보면 민둥산은 마치 거대한 왕릉을 연상시킨다. 민둥산은 사람으로 치면 어깨부위까지는 숲으로 둘러싸여 있고, 그 위 부분에 광활한 억새평원이 펼쳐지고 있다. 산자락의 아랫부분의 나무들은 소나무와 참나무, 그리고 일본이깔나무가 주종, 눈요기를 위해 찾아온 민둥산에서 짙은 솔향을 실어 나르는 산뜻하고 싱그러운 바람을 맛보는 것도 민둥산에서만 가질 수 있는 豪奢 중의 하나이다.
▼ 산행들머리는 증산초등학교
38번 국도를 따라 태백방면으로 달리다가, 정선군 남면의 증산에서 내려서서 정선선 철길 밑의 굴다리를 빠져나가는 421번 지방도로 접어든다. 굴다리를 빠져나와 100m 정도 오르막길을 오르면 증산초등학교가 보인다. 학교 운동장 아래에 승용차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으며, 주차장 건너 입산통제소가 있는 곳에서 산행이 시작된다.
▼ 산행 안내도가 설치되어있는, 입산통제소 옆의 예쁜 다리를 건너면 ‘민둥산 3.4Km'라는 이정표가 서 있고, 그 앞에서 등산로는 두 갈래로 나뉜다. 急傾斜와 緩傾斜... 어느 길로 올라가든 약 10분 정도 올라가면 두 길이 다시 만나게 되니 구태여 어느 길로 올라갈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오른편 緩傾斜 길로 들어서면 잠깐이나마 계곡을 따라 걷게 되고, 청량한 물소리를 듣는 豪奢를 누릴 수 있다.
▼ 急傾斜와 緩傾斜 등산로가 합쳐진 후, 조금 지나면 또다시 등산로는 두 갈래로 나누어진다. 넘치는 등산객들로 인해 진도가 안 나가고 있는 급경사 등산로(정상까지 2.2Km)를 버리고, 왼편의 완경사 등산로(정상까지 2.4Km)를 따라 오른다. 한가한 걸음으로 잠시 걷다보면 왼편으로 증산市街地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 왼편 緩傾斜 길을 따라 20분 조금 넘게 걸으면 일본이깔나무(낙엽송) 숲속으로 이어지고, 또 다시 20분 정도를 피톤치드 향에 취해서 걷다보면 林道에 닿게 된다. 산행 들머리에서 약 1시간 정도가 지났다. 임도엔 간이매점과 화장실이 있고, ‘민둥산 1.12Km’라고 적힌 이정표가 서 있다. 쉼터에서 파는 막걸리 냄새가 등산객들에게 발걸음을 잠시 멈추고 목을 축이고 가라며 유혹한다.
▼ 쉼터에서는 맞은편으로 난 통나무 계단을 따라 등산로가 이어진다. 등산로 주변은 굴참나무 群落, 가끔가다 커다란 소나무가 보인다. 하나, 둘, 예쁘게 생긴 소나무 숫자를 헤아리기를 다섯에 이르면, 서서히 머리위의 나무 그늘이 벗겨지기 시작한다. 저 만치 다섯 번째 소나무 아래에 木製테크가 슬그머니 고개를 내밀고 있다.
▼ 木製 테크 어림부터는 머리 위가 뻥 뚫리기 시작한다. 나무는 온데간데없고 은빛 억새만이 하얗게 나부끼고 있다. 등산로 초입에서부터 2Km, 정상까지 0.6Km를 남겨 놓은 지점에서 드디어 억새와의 遭遇, 넘실대는 하얀 억새꽃 물결, 그들만의 群舞가 시작되고 있다. 등산로의 양쪽에 억새가 우거진 곳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나무로 만든 난간을 설치해 놓았다. 꼭 은빛 억새가 있어서만은 아닐 것이다. 산이 좋아서 산을 찾는 사람들이, 산을 오를 때마다 정상이 가까워오면 자연스레 힘이 생기게 되는 이유는, 이어서 맞이하게 될 시원한 바람과, 확 트인 조망에 대한 기대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가슴은 뛰고 머리는 맑게 정리되는 것이다.
▼ 억새밭 시아로 뱀처럼 흐르는 길은 잘 닦여있다. 그러나 사람의 손길을 탄 길은 자연스러운 맛이 사라져 흥은 결코 없다. 편리함에 멋과 흥을 더할 수 있는 조화를 염두에 두었으면 좋으련만... 뱀의 허리를 돌아 흐르는 바람결 따라, 출렁이는 억새는 마치 은빛 파도를 연상시킨다.
▼ 억새는 해뜰녘이나 해질녘 마다 황홀하게 변신한다. 해뜰녘에는 해를 마주보면서 억새를 바라보면 햇살을 받은 억새가 찬란하게 빛을 발하고, 해질녘엔 은빛 억새가 황금색으로 변하여 사람의 눈을 어지럽힌다고 글 쓰는 이들은 말한다. 내가 억새밭을 찾은 시각은 불행히도 대낮... 그러나, 해를 등지든 아니면 마주보든, 난 억새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할 수 있으니, 이게 바로 조그만 행복에도 만족할 수 있음이려니...
▼ 짙푸른 가을 하늘과 맞닿은 정상에서 바람에 물결치면서 햇볕에 반짝이는 민둥산 억새밭의 장관은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아름다움이다. 바람이 불면 억새의 물결이 넘실거리는데다가 사그락거리는 공명까지 들려서 사람들의 가슴을 적신다. 그래서 옛 사람들은 이런 모습을 보고 廣坪秋波라 했다. 즉 광호라한 평원에 일렁이는 억새의 물결이라는 뜻이다. 은백색의 질감과 조용히 하늘거리는 억새의 모습은 무척 동양적이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無念無想의 禪의 세계를 연상시킨다고 말하기도 한다.
▼ 정상에는 ‘정상표지석’이 두 개가 있다. 정상에서 보면 가리왕산, 지억산, 두위봉 등 강원도의 특징인 ‘疊疊山中’ 산릉들이 첩첩이 쌓여있다. 정상에는 삼내약수와 화암약수의 진행방향을 알리는 이정표 외에 ‘발구덕 0.9Km’이라는 이정표가 하나 더 설치되어 있다. * 해발 800m의 높이에 있는 發九德마을은 증산초등학교에서 민둥산 정상까지 제일 쉽게 오를 수 있는 코스의 중간 어림인데, 오랜 세월에 걸친 지각변동으로 일어난 여덟 개의 구덩이라는 뜻으로 발구덕으로 불렸단다. 이곳까진 좁으나마 시멘트 포장길이 있어 차가 들어갈 수 있다.
▼ 人山人海, 억새꽃이 절정을 이루는 10월이면 민둥산은 사람들로 가득 채워진다. 오가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지만 길옆으로 펼쳐진 억새의 아름다움에 취하다 보면 복잡함 정도의 불편은 어느덧 사라져 버리고 만다. 민둥산은 이름 그대로 대머리처럼 생긴 산이다. 보통명사가 고유명사가 되어 버릴 정도로 정상 부근에 나무가 없는 산, 물론 이 부근에는 민둥산 말고도 정상어림에 나무가 없는 산은 많으나 그 광활함이 민둥산만한 산은 없다. 그러니 당연히 이 산만 민둥산이라 이름이 붙었을 것이다.
▼ 민둥산 정상에서 지억산은 능선으로 연결되어 있다. 등산로는 순수한 흙길이기 때문에 부드러워서 걷기에 아무 부담이 없다. 지억산으로 가는 능선을 따르다 보면 여러 개의 돌리네가 관찰된다. * 돌리네 : 카르스트 지형의 침하작용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으로 지표면이 꺼져 깔때기 모양의 구덩이가 생기는 것을 말한다.
▼ 민둥산의 억새는 사람 키로 거의 한길이 넘고, 매우 짙어서 길이 아닌 곳은 해쳐나가기도 어려울 정도이다. 등산로 가에 목책을 세워서 출입을 통제하고 있기 때문에 길이 아닌 곳은 들어갈 수도 없지만... 그래도 證明寫眞 한 장이라도 찍어보려고 살짝 억새밭으로 들어서보면 사람 키보다 더 큰 억새에 파묻혀 얼굴이 보이지 않을 정도이다. 그래서 산악인들이 민둥산의 억새를 전국제일이라고 하나 보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는 광활함 뿐만 아니라, 그 크기에서도 신불평원만 못한 것 같다.
▼ 드넓은 주능선 일대가 온통 억새밭이다. 바람에 출렁이는 억새는 마치 은빛 파도를 연상시킨다. 바람에 흔들리며 부르는 억새들의 황홀한 노래, 은빛 물결에 숨이 멎는다. 만발을 지나 이미 수술이 하나둘 떨어지고 있는 억새의 무리들~ 말 그대로 민둥한 산자락에 햇빛을 받아 은빛 물결을 이루고 있는 억새들의 장관에, 산행을 하고 있는 등산객들은 어린 시절의 꼬마들인양 동심으로 돌아가 마냥 기뻐하고 행복에 겨워한다.
▼ 억새평원의 끄트머리 삼거리에서 지억산 방향으로 가는 등산로는 왼편으로 이어진다. 오른편은 발구덕마을, 억새밭을 벗어나면. 등산로 주변은 하늘을 향해 허리를 곧추세운 잣나무 숲으로 변해버린다. 이어서 전나무 숲길이 길게 이어지고, 그리고 심심찮게 일본이깔나무(낙엽송)와 굴참나무 숲이 등산로 주변을 들락거린다.
▼ 억새밭을 벗어나 지억산 방향으로 15분 정도 걸으면 枕木 계단이 나타나고, 계단을 따라 10분 정도 더 걸어 내려가면 하얀 자갈이 깔린 林道와 만나게 된다. 그러나 임도를 버리고 왼편 능선으로 올라서서 산행을 이어간다.
▼ 능선을 따라 20여분을 오르내리다 보면 넓은 공터가 나오고 화장실과 여러 개의 이정표가 보인다. 이곳에서 화장실 앞의 임도 건너로 보이는 희미한 등산로를 따라가면 지억산으로 오르게 된다. 20분이면 다녀올 수 있으나 특별히 볼만한 것이 없다는 것은 이미 확인된 사실, 집사람은 잠시 쉬고 있으라고 한 후, 속보로 지억산을 향한다. 일본이깔나무(낙엽송)와 키 작은 灌木 사이를 뚫고 지나가는 등산로는 희미하다.
▼ 지억산 정상엔 창고 같은 건물이 있고, 그 옆에 ‘몰운산 1116.7m'라고 적힌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지도에는 분명히 지억산이라고 표기되어 있는데.... 정상은 주위가 나무로 둘러싸여 있어 조망은 제로, 등산로가 정상에서 끊겨 있으므로 화암약수로 내려가려면 집사람이 기다리고 있는 ’임도 삼거리(공터)‘로 돌아 내려와야만 한다.
▼ 임도 삼거리(공터)에서 화암약수 방향으로 이어지는 등산로는 부드러운 풀밭, 마치 폭신폭신한 양탄자 위를 걷는 것 같다. 길가의 풍경 또한 빼어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빠지지도 않을 만큼의 눈요기도 선사하고 있고...
▼ 능선을 따라 곱게 이어지던 등산로가 갑자기 급경사로 변한다. 주변의 나무들이 굴참나무에서 일본이깔나무(낙엽송)로 바뀔 즈음 등산로는 다시 순해지다가, 이내 시멘트로 포장된 임도와 만나게 된다.
▼ 오솔길에 지천으로 늘어서있는 들국화와 코스모스, 그리고 달맞이꽃과 이름 모를 야생화들... 그윽한 향기에 취해서 산행의 피로까지 까맣게 잊어버린지 이미 오래다. 이런 풍취가 강원도에서나 맛볼 수 있는 내면의 세계이리라...
▼ 林道의 주변은 이미 가을의 초입, 대부분의 나무들이 비록 짙지는 않지만 노랗고 빨간 옷들로 갈아입기 시작하고 있다. 임도는 구슬동서 끝을 맺으면서, 정선군 남면사무소와 화암면사무소를 잇는 왕복 2차선 지방도와 연결된다. 임도 입구에 큼지막한 산행 안내판이 서 있고, 그 뒤에는 ‘민둥산 고사리 농장’이라는 예쁜 건물이 보인다.
▼ 산행날머리는 畵岩藥水
구슬동에서 화암약수로 향하는 도로를 따라 걸어가면, 한층 더 깊어진 가을이 마중 나온다. 여기저기 노랗고 빨갛게 물들어가고 있는 단풍들이 환상적인 분위기를 만들어 내고 있다. 그렇게 20분 정도 단풍에 취해 걷다보면 이내 화암약수에 닿게 된다. 도로 왼편의 계곡의 물이 맑다고 내려서는 것은 삼가야할 일, 상수원보호지역이니 말이다.
▼ 국민관광지인 畵岩藥水, 탄산이온과 철분, 칼슘, 불소 등이 주요성분으로, 탄산성분이 특히 많아 톡 쏘는 맛을 내는 약수다. 약수터 주변의 경치가 빼어나서 畵岩八景의 하나로 뽑혀 있다. 줄을 선, 후에야 약수 겨우 한 모금을 떠 마실 수 있었다. ‘휴~~ 다행이다’ ‘마음씨가 나쁜 사람들이 이 약수를 마시려면 물 안에 구렁이가 똬리를 틀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고 전해오는데, 다행이 내 눈에는 구렁이가 안 보이니 말이다. 국민관광단지답게 널따란 주차장 외에도 야영장과 수영장 등 편의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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