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리왕산(加里旺山, 1,560m)
산행코스 : 숙암리 장구목이골→가리왕산→능선→중봉→오장동 임도→숙암리 마을회관(숙암분교 옆) (산행시간 : 5시간30분)
소재지 : 강원도 정선군 정선읍과 평창군 진부면, 북평면의 경계
산행일 : ‘10. 5. 21(금)
함께한 산악회 : 숲향 트레킹
특색 : 전형적인 육산이나 온통 너덜겅으로 뒤덮인 산, 등산로의 경사는 급한 편이나 험하지는 않다. 그러나 1,600m 가까이 되는 높이 때문에 일반인들이 접근하기는 쉽지 않은 산이다. 가리왕산은 국도지리정보원에 따르면, 예날 동해안 지방의 부족국가인 ‘맥국’의 갈왕이 이곳에 성을 쌓고 피난을 했다 하여 葛王山으로 불리다가 일제 강점기를 거쳐 加里旺山(2007년, 국토지리정보원은 일본식 표기인 旺자를 王자로 변경했다)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 산행들머리는 장구목이 입구
영동고속도로 진부I.C에서 정선방향으로 33번 국도, 오대천을 왼쪽으로 끼고 꼬불꼬불한 길을 달리다 보면 산행 들머리인 장구목이 입구에 도착한다. 장구목이는 장구목이 계곡과 그 옆 계곡의 사이가 중간에 상당히 좁아지는데, 흡사 장구의 목과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란다. 이곳에는 키가 큰 대장군과 키가 작은 여장군의 모습을 한 장승 4개가 돌무더기 및 산행 안내판과 함께 설치되어 있다.
▼ 산행은 장승 뒤로 난 등산로를 따라 오르게 된다(정상까지는 4.2km). 등산로는 왼편으로 계곡을 끼고 주욱 오르막길로 이어진다. 등산로 주변의 숲은 깊은 원시림처럼 하늘을 뒤덮고, 계곡은 시원스런 물줄기를 바위 틈새로 쏟아 부으며, 내뿜는 물소리가 마치 폭포수처럼 웅장한 굉음을 만들어 내고 있다.
▼ 산행을 시작한지 20분 남짓... 나무다리를 건너니 이번엔 계곡을 오른편에 끼고 다시 길게 이어진다. 등산로 주변에 습기가 많은 탓인지 고사리課 식물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 산이 깊어지면서 계곡은 폭포의 전시장을 방불하게 할 정도로 크고 작은 폭포들이 연이어 나타난다. 그리고 그 계곡은 환상적인 이끼계곡의 모습으로 내 눈앞에 그 자태를 드러낸다. 연녹색의 양탄자, 손에 닿으면 금방 초록물이 배어버릴 것 같은 느낌이다. 연녹색 이끼로 뒤덮인 바위와, 역시 초록을 한껏 머금은 나뭇잎들, 거기에다 이끼 위를 구르는 가늘고 하얀 물줄기들... 흰색과 녹색의 절묘한 조화에, 잠깐이나마 내 가슴은 전율에 휩싸이며 부르르 떨게된다. 억겁의 세월동안 씻어내어 벼루어지고 마모되어 반질반질해진 바위들, 그 옆으로 淸溪玉流가 감돌아 흐르고... 그 풍경은 어느새 아담한 小宇宙를 만들어 내고야 만다. ‘仁者樂山 知者樂水’일지니, 지금 深深山川을 걷고 있는 나, 그럼 난 知者요 仁者라고 自稱自讚이리라...
▼ 비교적 완만한 등산로를 따라 1시간 남짓, 또다시 30분 조금 넘게, 이번엔 입에서 단내를 안 풍기고는 결코 오를 수 없는 참나무로 뒤덮인 오르막길과 씨름하다 보면 장구목이 임도와 만난다. 등산로는 임도를 건너질러 이어지는데 경사도는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주변엔 이곳 가리왕산의 명물인 주목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 끈질긴 생명력, 대부분의 오래된 주목들이 속이 비거나 여러 줄기로 나뉘어져 있어 웬만한 것은 신기해 보이지도 않는데, 이 주목은 속이 완전히 비고 줄기의 반은 넘어져 있다. 아마 살아 千年을 몇 년 안 남기었나 보다.
▼ 이렇게 높고 넓은 가리왕산을 어찌 몇몇 주목들이 모두 다 차지할 수 있으랴~ 수백 년은 되었을 성 싶은 참나무들이 忍苦의 세월을 보내면서 뒤틀리고 뭉그러진 모습으로 '나도 있다!' 그 奇奇妙妙한 자태를 드러내고 있다.
▼ 가리왕산에는 ‘살아 千年, 죽어 千年’이라는 주목... 살아 千年동안, 눈보라나 비바람 등 모진 풍상에도 가리왕산을 초록빛으로 감싸며 굿굿이 살아오다가, 이제 그 몫을 다하고 죽어서도 세찬 바람에 비록 부러질망정 쓰러지지 않고 나머지 千年을 버티어가고 있는 주목들이 곳곳에 널려있다.
▼ 등산로는 급경사 오르막이 계속해서 이어진다. 가리왕산은 해발 1,561m로 매우 높은 산, 장구목이 입구의 해발이 400m에 불과하니 1,000m 이상을 치고 올라가야 하니 경사가 심할 수 밖에 없다. 苦盡甘來... 이 오르막을 극복하면 이윽고 부드러운 산길이 마중 나온다. 정상 600m(50분)이 남았다는 이정표와 샘터표시가 있는 곳을 지나면서부터 산길은 다시 완만한 등산로로 변한다. 이곳부터는 한두 그루씩 보이던 주목들이 집단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 주목은 ‘붉은 나무’라는 뜻으로 나무 속 색깔이 붉은 색을 띠고 있어서 붙여진 이름,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이니 인간사 몇 년을 내다보기도 힘 드는 법인데, 수십 세기를 앞뒤로 오르내리며 유유자적하는 삶, 그저 감탄스러울 따름이다.
▼ 바닥나가는 체력에 맞추어 서서히 걸으면서 주변의 주목을 감상하다 보면 어느덧 정상 안부 삼거리에 도착한다. 정상으로 가려면 이곳에서 오른편으로 방향을 잡아야 한다.
▼ 능선 안부에서 오른편으로 방향을 잡고, 굴참나무와 잡목으로 뒤덮인 등산로를 100m 정도 오르면 정상에 도달한다. 산행들머리에서 산행을 시작한지 2시간 30분 남짓 되었다. 정상에는 태백산의 제단처럼 생긴 돌무더기가 있고, 앞뒤로 정상표지석 두개(지자체, 산림청)가 서있다. 가리왕산 정상에서의 느낌은 연록으로 물들어가는 넓은 산록과 바람, 그리고 산릉 위를 넘어가는 구름과 주목 뿐이다. 다른 이들이 가리왕산의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있던데, 그럼 그들은 이런 허허로운 요소들을 아름답다고 보았던 것일까?
▼ 오늘은 날씨가 맑아서인지 가리왕산 정상은 나에게 멋진 조망을 보여준다. 저 멀리 북쪽으로는 계방산과 오대산, 그 너머의 설악산, 서쪽으로는 중왕산, 남서쪽으로는 남병산, 청옥산, 백덕산, 그리고 동북쪽으로는 발왕산, 겹겹이 에워싸고 있는 산릉들이 파도처럼 출렁이고 있다.
▼ 오늘 산행을 진행해야할 중봉으로 가려면 조금 전에 올라왔던 등산로를 따라 이정표가 세워져 있는 안부 삼거리까지 되돌아 가야한다. 중봉을 가려면 이곳에서 곧바로 진행해야 한다. 정상에서 내려서는 능선의 오른편엔 잘생긴 고사목 몇 그루... 고산지대의 혹독한 풍상을 삭이며 자라다 죽은 고산의 고목은 죽어서도 곳곳하다. 세월이 둥치를 굳게 만들어주었기 때문인 모양이다.
▼ 중봉을 향하는 등산로는 비교적 완만한 등산로로 이어진다. 이곳은 산나물의 보고로 불리우는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주어진 시간에 쫓기다보니 등산로 주변에서 곰취잎 몇장 채취할 수 밖에 없다. 걷는 중에 괴상하게 생긴 나무 몇 그루 만나고, 나지막한 봉우리 몇 개 넘으면 중봉에 도착한다. 가리왕산은 원래 山蔘이 많이 나기로 유명한 산, 마항치에서 올라오다보면 ‘蔘山封山’이라는 표지석을 볼 수 있다. 이는 朝鮮後期, 궁궐에 공납하는 산삼을 채취하는 곳이니 일반인들은 채취를 못하게 하는 것, 하산시간에 쫒기는 자투리 시간을 쪼개어 숲을 뒤져보지만 속세에 찌든 내 눈에 영물이 들어올리가 없다.
▼ 중봉(1,433m)에는 등산객들이 지나가면서 한 개씩 올려놓은 듯, 돌무덤이 두개가 다리에 힘이 풀린 나를 맞이하고 있다. 그 옆엔 중봉이라고 표기된 이정표.... 중봉에서 곧바로 진행하면 하봉, 그러나 난 숙암분교를 향하여 왼편으로 진행한다. 하산길에도 역시 주목들이 간간히 보이는데, 이곳의 주목들은 다른 곳의 주목들에 비해 키가 훤칠한 것 같다.
▼ 중봉에서 완만한 경사로를 따라 하산하다보면 오장동 임도를 만난다. 여기서부터 등산로는 급경사로 변한다. 등산로 주변은 떡깔나무를 비롯한 잡목이 많지만, 이따금 키가 크고 곧게 자란 낙엽송숲이나 적송숲도 보였다. 주변의 숲이 낙엽송으로 변할 즈음 등산로는 다시 완만해진다.
▼ 지루하게 이어지는 등산로를 따라 걷다보면 또다시 임도를 만나게 된다. 임도를 따라 오른편으로 50m정도 걷다보면 왼편에 숙암분교로 내려가는 등산로가 보인다. 난 임도를 따 계속 진행, 아스팔트 도로 주변에 쑥이 지천이다.
▼ 임도를 따라 걷다가 산에서 내리다 도로 옆 시멘트 방벽을 넘어 흐르는 물을 수통에 가득 채우고 다시 진행, 쇠 파이프로 차들의 진입을 막고 있는 임도입구에서 왼편으로 방향을 틀어 남의 집 안마당을 지나면, 날머리인 ‘철쭉꽃마을 메주방’이라는 입간판에 세워져 있는 숙암리 마을회관이다. 회관 뒤 민가에 미리 예약할 경우 곰취향이 그윽한 식사를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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