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락산 (進樂山, 732m)


산행코스 : 수리너머재→북서릉→전망대→737봉→도구통바위→영천암→보석사 (산행시간 : 4시간)


소재지 : 충청남도 금산군 금산읍과 남이면의 경계

산행일 : ‘09. 12. 12(토)

같이한 산악회 : 청지산악회


특색 : 그리 높지 않은 흙산이나 정상을 잇는 능선이 암릉으로 이루어져있어, 흙산의 단점인 지루함을 없애게 만들어 주는 산. 보석사로 내려가는 하산길은 급경사로 겨울철에는 주의가 필요  

 

 

산행들머리는 수리넘이재

금산읍에서 남이면 방향으로 넘어가는 고개에 주차장이 설치되어있다. 오로지 진락산을 찾아오는 등산객들을 위한 편의시설인 모양인데, 등산로 주변정비나 이정표 설치 등, 금산군에서 진락산에 쏟는 정성들이 한층 살갑게 다가온다.  

 

 

 

지그재그, 그리고 임도를 연상케하는 평탄한 길, 그렇게 10분 넘게 오르면 우측으로 잘 정비된 소나무숲길로 이어진다.  등산로 가에는 장승이 둘... 

 

 

다시 지그재그 등산로를 따라 한참을 오르면 왼편 이래로 금산읍이 내려다보이는 북서릉 사거리 안부에 닿는다.

 

 

 

사거리 안부에서 북서릉을 타고 10분 정도 오르면 정면으로 수석처럼 암골미를 드러내는 진락산 북사면이 펼쳐진다. 서서히 왼편 멀리로 대둔산이 보이기 시작한다.  

 

 

 

땀을 닦아주는 한줄기 산들바람과, 저 장엄한 산줄기가 주는 시원함, 그리고 배낭에서 꺼내 마시는 한 모금의 시원한 물, 이것이 바로 산을 오르는 이유가 아닐까? 아무튼 산을 오르는 것은 정신의 청량함을 맛보려는 것일 것이다.

 

 

첫 번째 만나는 암봉에 올라서면, 자욱한 안개사이로 금산읍내와 인삼밭들이 눈 안에 들어온다. 산으로 둘러싸인 낮은 분지에 들어앉은 금산읍은 아늑한 모습을 띠고있다.

 

 

 

산의 능선길을 걷는다. 등산로 주변은 소나무, 대부분 반송이다. 키가 크지 않고. 나무 둥치의 아래에서 가지가 벌어지고 있다.  

 

  

 

능선 길에는 소나무가 주종이다. 아직 활엽수들이 여기까지는 잠식하지 못한 것 같아 다행이다. 뭐니뭐니해도 우리네 산은 소나무가 제격이니까...  

 

 

 

될 수록 천천히 걸어본다. 멀리 바라보이는 산봉우리들에 눈을 맞추기도 하면서 걸어간다. 서두를게 무에 있으랴~ 날이 저물면 못다간 길은 남겨둔 채로 내려서면 그만인 것을...  

 

 

진락산은 금산인삼의 발생지, 지금으로부터 약 1500년전 백제시대에 효성이 지극한 강처사가 노모의 병 치료를 위해 관음봉 관음굴에서 기도하던 중 산신령의 현몽으로 인삼의 씨를 얻어 처음 재배하기 시작했단다.  

 

 

능선의 올망졸망한 암릉을 따라 걸으며, 바위와 소나무가 어우러진 멋진 경관에 빠지다보면, 원효암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난다.  

 

 

 

효암 내려가는 바위 위로 길다란 밧줄이 늘어져있다. 바위의 경사는 그리 심한 것 같지 않지만, 밧줄을 매어 놓은 것을 보면, 원효암에서 올라오는 길은 그리 쉽지 않을 듯...  

 

 

정상에서 금산읍 방향을 내려다보면 수십 길 낭떠러지가 아찔하게 서있다.   금산은 역시 ‘인삼의 고장’ 들판이 온통 인삼밭 천지이다.  

 

 

원효암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나는 안부에서 주능선을 타고 10분 못되게 오르면 30여 평 넓이 헬기장이 나온다. 바로 진락산 정상이다. 정상에는 어른 키 높이의 정상표지석이 서 있다.   

 

 

 

 발 아래로 금산읍내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금산읍 뒤 멀리 보이는 것은 아마 천태산일 것이다.

 

 

남쪽을 바라보니 수많은 연봉들이 구름위에서 파도처럼 일렁이고 있다. 낮게 깔린 구름 때문에 시계가 그리 맑지 않아 어느 산인지를 딱 부러지게 끄집어 낼 수는 없지만 장엄하기는 짝이 없다.

 

 

남으로는 전북 운장산과 구봉산... 대둔산은 어디에 있지?  

 

 

정상에서 아기자기한 암릉구간과, 바위 위에 심혈을 기울여 기른 듯 싶은 소나무들... 어렵게 바위위에 뿌리를 내린 소나무들 사이를 통과하면 정상보다도 더 높다는 737봉이 나온다.  

 

 

 

봄, 여름이 지나고, 가을 또한 가버린 山川, 빈 나뭇가지 사이로 파란 하늘이 있다. 나무 하나하나가 裸木... 그래서 낙엽활엽수는 겨울철이면 서러워 보이나보다. 일년 내내 가꾸고 지켜왔던 자존심, 잎새와 함께 잃어버리고, 다가오는 겨울철 찬바람 앞에 서서 빈 가지만 흔들어댄다. 얼마 안 있으면 저 가지위엔 흰눈 소복이 쌓일 것이고, 그리고 나목들은 또 다른 나날들을 기다리겠지, 찬란한 봄을...  

 

 

 

정상비석이 있는 진락산에서 남동쪽 주능선으로 1.3km 거리에 있는 737봉은 정상인 주봉(732m)보다 조금 더 높다. 그런데도 주봉이 못된 것은 금산읍에서 737봉은 보이지 않기 때문이란다.  

   

 

하산은 남동쪽 737봉을 경유하여 석동리 보석사로 내려서는 코스가 보편적이다. 737봉에서의 하산로는 급경사, 로프가 메어져 있지만 겨울철 등반시에는 주의가 요망된다.  

 

 

능선을 따라 내려가다, 남쪽 등산로로 접어들면 돛대처럼 생긴 바위가 나온다. 일명 ‘도구통 바위’, 도구통은 절구통의 전라도 사투리이다. 우리네 나이쯤 되면 도구통이 무엇인줄 알겠지만, 과연 젊은 사람들은 저 바위에서 도구통의 어떠한 형상을 떠올릴 수 있을까???

 

 

 

영천암

도구통바위를 뒤로하고 남쪽 급사면을 지나, 바닥이 바짝 말라버린 계곡을 따라 걷다보면 산중 암자인 영천암이 나타난다.  영천암은 보석사와 같은 연대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 절 뒤의 동굴에서 샘물이 흘러나오는데, 사계절 끊이지 않고 나오는 영험한 샘으로 알려져 있다.  

 

 

영천암의 곁에서 절의 오랜 역사와 함께한 듯 싶은 나이를 측정할 수 없는 괴목... 

 

 

스님 한둘  정도는 머물법도 하건만 영천암의 대문은 굳게 닫혀있다. 절의 뜰에 있는 감나무 밑에는 꽤나 멀리서 올라온 듯 싶은 동네 꼬마 녀석들이 감을 따먹느라 정신이 없다.

 

 

 

영천암을 뒤로하고 계류를 따라 20분쯤 내려서면 거대한 은행나무가 어서오라 손짓하고, 아치형 나무다리 건너에 영천암과 같은 해에 창건되었다는 고찰 보석사가 보인다.

보석사(전통사찰 제5호)는 신라 헌강왕(886년) 때 祖丘大師가 창건한 절로서 마곡사의 말사이다. 처음 세울 당시 절 앞에서 캐낸 金으로 지었다고 해서 보석사라 불렀단다. 문화재로는 유형문화재 제143호인 대웅전이 있으며, 대웅전 앞에는 의승장 영규대사가 머물렀다는 의선각이 있다.   

 

 

보석사의 은행나무(천연기념물 제365호)

보석사 입구에 있으며 수령은 약 1천년 이상된 것으로 추정, 조구대사가 보석사 창건 무렵(886년) 제자와 함께 심었다고 전해지며, 근동 마을이나 나라에 재앙이 있을 때 운다고 해서, 마을의 수호신으로 전해지고 있단다.

 

 

보석사 앞의 전나무 숲길... 200m정도로 짧지만 알찬 길이다. 은행나무만큼이나 나이를 먹은 듯, 하늘을 향해 거대하게 솟구치고 있다. 이 길의 끄트머리에 보석사 주차장이 있다. 

 

 

작은 소

이것이 별것 아니겠지. 이렇게 생각하며 조그만 악이라도 소홀이 말라, 저 물방울이 모이고 모여 마침내 큰 항아리를 가득 채우듯... 어리석은 이는 조그만 악을 소홀히 하여 그 결과로 마침내는 큰 재앙을 불러들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