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숭산 (德崇山, 495m)


산행코스 : 주차장→소림초당→수덕사→소림초당→정혜사→정상→정혜사→우측능선→수덕사→주차장 (산행시간 : 2시간30분)


소재지 :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산행일 : ‘10. 4. 24(토)

함께한 산악회 : 집사람과 함께(산행 후, 수덕산을 오른 회사산악회와 합류)


특색 : 한마디로 말하자면 ‘작지만 큰 산’이다. 한 시간 남짓이면 정상에 도달할 수 있으니 그야말로 동네 뒷산 만한 야트막한 산. 그러나 그 안에 한국 조계종 5대 총림중 하나인 ‘德崇 叢林’을 품었으니 결코 작을 수 없는 산이다. 전체적으로는 흙산이나 계곡을 중심으로 암벽이 도사리고 있고, 곳곳에 기이한 형상의 바위들을 만날 있어 지루함을 느낄 틈이 없이 산행을 마칠 수 있다.

 


▼  산행들머리는 수덕사 주차장

40번 국도를 따라가다 수덕사방향으로 들어서서면 곧바로 수덕사입구 주차장이다. 언젠가 ‘일주문 밖이 사바세계’라는 글귀를 읽은 적이 있다. 수덕사의 일주문 밖에 위치한 집단시설지구는 사찰의 호젓한 멋과는 天壤之差인 혼잡 그 자체, 사바세계를 몸소 보여주고 있는 듯 싶다.  

 

 

▼  벚꽃이 만발한 길을 따라가다 보면 좌측에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읽은 적이 있는 ‘수덕여관’이 보인다. 이응노화백이 머무르며 그림을 그렸던 곳으로 소문이 나 있으나, 지금은 영업을 하고 있지 않다.  ‘청춘을 불사르고’의 저자인 김일엽스님과 한국 최초의 여류화가인 나혜석, 그리고 평생 이 여관을 지켜온 이응노화백의 부인 박귀희여사, 수덕여관과 인연이 깊은 세 여인을 기리며, 정호승 시인이 쓴 ‘수덕여관’이라는 시를 옮겨본다.

‘일생에 한번쯤 수덕사 수덕여관에 여장을 풀고 평생 오지 않았던 잠을 자보아라. 

열매 맺지 않는 꽃이 붉은 열매를 맺을 것이다.

비록 이튿날 아침 깨어나지 못한다 하더라도

일생에 하룻밤쯤 수덕여관 산당화에 기대어 잠을 자보아라.

열매 맺지 않는 꽃이 맺은 열매에, 다시 붉은 꽃이 피는 것을 볼 것이다.

그래도 평생 오지 않는 잠이 있다면 수덕여관 샘물을 한 바가지 들이켜보아라. 

물위에 코끼리를 타고 모든 쓸쓸한 사랑이 지나가 버린다.‘  

 

 

 

 

 

 

▼  수덕여관에서 조금 더 들어가면 ‘덕숭산 수덕사’라고 적힌 일주문이 나온다. 때는 바야흐로 부처님 생일인 ‘사월 초파일’이 내일 모레... 사찰 주변엔 온통 연등으로 넘쳐난다. 역시 이곳이 총림이라서? 다른 사찰에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수 많은 연등들이, 머리위에서 하늘에 넘실거리는 구름무늬를 따라 출렁이고 있다.

 

  

 

 

 

 

▼  修德寺 대웅전(國寶 제49호)

백제 위덕왕 때 지명스님이 창건, 鮮末 萬空스님이 중창하면서 후학들을 많이 배출한, 조계종 5대 叢林(총림이란 경전을 배우는 강원, 선을 닦는 선원, 율을 배우는 율원이 다 갖추어진 사찰로서 영축총림(양산 통도사), 해인총림(합천 해인사), 조계총림(전남 송광사), 덕숭총림(예산 수덕사), 고불총림(전남 백양사) 등이 있다) 중 하나, 국보 제49호인 대웅전은 부석사 부량수전과 함께, 현존하는 한국 最古의 목조건물이란다. 대웅전에 서면 단청이 빛을 바래 오랜 시간의 흔적만이 나뭇결에 이끼처럼 배어있지만, 그 소박한 빛깔은 오히려 우아하게 내 마음속으로 다가온다.

 

 

▼  본격적인 등산로는 수덕사 뒤에서 시작된. 대웅전 왼편 울타리 너머로 등산로가 있다. 출구를 개울 곁으로 난 계단을 따라 곧바로 진행하면 된다. 왼편 다리를 건너면 정혜사까지 이어지는 능선과 연결된다. 등산로는 돌계단, 계단은 가파르다, 완만해지기를 번갈아가며 이어진다.  

 

 

 

▼  골짜기를 끼고 정혜사로 가는 숲길은 참나무류가 주종, 느티나무와 굴피나무, 때죽나무가 군락을 이루는데, 산벚나무, 서어나무, 단풍나무 들도 심심찮게 보이고 있다.  소나무 숲 사이 골짜기 일대의 풍경은 푸르고 맑다. 희미한 물살 소리가 들려오는 계곡을 따라 이어지는 등산로는 좀 가파르지만 그리 힘들지는 않다. 거기다 기분 좋을 만큼 시원한 골짜기 바람이 뒤를 밀어주니, 발걸음은 무겁기보다 차라리 상큼하기만 하다. 거기에다 곳곳에서 어여쁜 진달래들이 살포시 고개를 내밀고 손짓을 하고있는데야...

 

 

 

▼  10여분쯤 오르면 거대한 바위벼랑이 보이고, 그 위에 동양화에서 금방 뛰쳐나온 듯 싶은 초가 한 채가 올려져 있다. 만공선사가 손수 터를 잡아 지었다는 소림초당이다. 절벽과 어우러진 落落長松, 그 어렵다는 깨달음조차 이런 도원경에서는 자연현상으로 치부될 것 같다.   수덕산은 의외로 바위가 많은 산이다. 주차장에서 수덕사로 들어오며 느꼈던 온화한 기운은 언제부터 사라져 버리고, 곳곳에 나타나는 거대한 바위지대는 덕숭산의 새로운 면을 보여준다. 外柔內剛의 산??

 

 

 

▼  소림초당에서 조금 더 오르면 관음보살상이 자애로운 미소를 띠고 눈을 맞춰준다. 바위에 몸체가 붙어 있는 것이, 아마 바위에 직접 조각을 했나 보다. 이것 역시 만공선사가 만들었단다 

 

 

 

 

 

▼  석불을 지나 진달래의 향기를 코끝으로 감싸안으며 잠깐 오르다보면 만공선사를 추모하는 현대식 부도인 만공탑이 세워져 있다. 여기서부터 정상까지 650m가 남았다고 부도 옆에 서있는 이정표가 알려주고 있다.   

  

 

 

▼  정혜사, 수덕사와 같은 연대에 지어진 절로서, 수덕사 대웅전에서 정혜사까지 1,080개 계단이 놓여 있다. 오르면서 108번뇌를 열 번이나 떨쳐버리라는 의미일까?  여하튼, 이 암자는 구한말 만공 스님이 禪불교를 중흥시킨 곳으로서 한국 현대불교를 움직인 수많은 고승들을 배출한 ‘禪의 종갓집’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이절의 약수를 ‘부처님의 젖’에 비유하여 ‘佛乳閣’이라는 현판을 붙여 놓았다.  

 

 

 

 

▼  정혜사에서 정상까지는 경사가 심하지 않은 훍길로 이어진다. 덕숭산은 두드러지지 않고 두루뭉술하다.  가야산의 큰 힘과 용봉산의 날카로움을 적당히 포용하고 있는 산, 中庸의 美學을 담고 있는 산이라 칭하고 싶다  

 

 

 

 

 

▼  싱싱하게 우거진 소나무 숲 사이를 흐르듯 이어지는 등산로를 따르며 산을 음미해 본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너무 심오한 화두였을까? 화두의 짜뚜리를 잡아보기도 전에 나타나는 정상... 아니 화두가 어려웠던 게 아니라 등산로가 너무 짧았기 때문이다. 겨우 20분 정도의 거리였으니 말이다.    덕숭산은 동쪽의 수암산에서 시작해서 용봉산, 홍동산, 삼준산, 연암산, 뒷산, 가야산에 이르기까지 크고 작은 산들로 빙 둘러싸여 있는 가운데, 오롯이 바위산으로 솟아 있다. 어떤 이들은 연꽃을 닮은 형상이라고 한다. 연꽃은 불교와 인연이 깊으니 산은 당연히 名刹을 품고 있을 것이고, 그 절이 바로 수덕사일 것이다.

 

 

 

 

▼  정상에서 바라본 가야산, 정상에 서면 북쪽으로 어디 한 군데 모나지 않은 평평한 들녘, 그 오른편과 왼편에 용봉산과 가야산 줄기가 길다랗게 늘어서 있다. 서쪽에는 그저 고만고만한 산들...그 너머로 서해의 바다가 어렴풋이 보인다.  

 

 

 

▼  정혜사 바로 아래에 있는 石門

사찰에서는 대부분 문을 통과하면 殿閣이 나타나지만 이 石門의 안에는 아무런 건물도 없다. 이왕에 들어선 몸, 돌아 나오지 않고 아랫길을 찾아본다. 유난히 오른편 방향으로 두리번거림은 올라왔던 길을 또다시 밟기 싫은 것도 원인이지만, 사실은 오른편 능선에 있다는 견성암에 들러보기 위해서다.

 

 

 

▼  정혜사에서 소림초당으로 내려가는 길을 벗어나 견성암을 찾아보았지만, 행여 선방에 든 비구니들의 수행에 방해될 것을 우려한 부처님의 계시였는지, 견성암 대신 하산할 때까지 등산객이 한 사람도 보이지 않은 호젓한 능선을 밟게 되었다. 견성암은 만공선사가 세운 암자로서, 청도 운문사와 함께 최대의 比丘尼 선방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을 정도이니 차라리 잘 되었는지도... 

  

 

 

 

   

 

▼  比丘尼들의 수행에 지장을 주지 않으려는 내 선심에 대한 보답? 하산길은 奇奇妙妙한 바위들과 팔자 좋게 가지를 늘어뜨린 소나무들, 그 사이사이 고개를 내밀고 있는 진달래 군락, 오늘 산행 중에 제일 풍광이 좋은 등산로가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이 능선은 아까 산행을 시작했던 수덕사의 울타리로 이어진다.

 

 

 

▼    아무리 다른 산을 올랐을망정 서울서부터 같이 내려왔고 같이 올라갈 사이인데... 산악회에서 마련해준 맛난 저녁식사(파김치 민물장어구이) 후에 한 컷! 서두르다 보니 가야산을 올랐던 직원들 중에 안보이는 사람들이 꽤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