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둘레길 15구간(원부춘-가탄)
여행일 : ‘22. 4. 16(토)
소재지 : 경남 하동군 화개면 일원
여행코스 : 원부춘(4.1km)→형제봉임도삼거리(2.5km)→중촌마을(1.2km)→정금차밭(1.5km)→대비마을(1km)→백혜마을(1.1km)→가탄마을(거리 및 시간 : 13.2km/ 실제는 정금차밭에서 탐방로를 벗어나 가탄마을로 직진 10.79km를 4시간 10분에)
함께한 사람들 : 청마산악회
특징 : 대한민국 국립공원 제1호인 지리산(1,915m)은 3개 도(전북·전남·경남). 5개 시·군(남원·구례·함양·산청·하동)에 걸쳐있다. 또한 아흔아홉 계곡과 500여 개의 자연마을을 품는다. 그 지리산의 둘레를 걷기 길로 이은 게 ‘지리산 둘레길(현재 20개 읍·면, 100여 개의 마을을 지난다)’이다. 오늘은 15구간(원부춘-가탄)을 걷는다. 7개 코스(68km)로 이루어진 하동 권역의 여섯 번째 구간으로 거리는 13.2km 밖에 되지 않으나 높이가 800m나 되는 고개를 오롯이 넘어야하기 때문에 난이도는 ‘상’으로 분류된다. 하지만 화개골 차밭의 정취를 고스라니 맛볼 수 있으니 그 고단함을 능히 감수해볼 만하다.
▼ 들머리는 원부춘마을(하동군 악양면 축지리 945)
완주-순천고속도로 구례·화엄사 IC에서 내려와 19번 국도를 타고 하동방면으로 내려온다. ‘부춘교차로’에서 빠져나와 가파른 오르막 도로(부춘길)을 잠시 오르면 15구간의 출발점인 원부춘 마을회관에 이르게 된다. 둘레길 엠블럼과 벅수(원부춘 대축 8.7㎞←원부춘→가탄 13.2㎞)도 마을회관 앞에 세워져 있다.
▼ 15구간의 거리는 13.2km에 불과하다. 하지만 중간에 800m도 넘는 고갯마루를 오롯이 넘어야 한다. 무릎이 성치 않은 집사람에게 무리일 게 당연. 때문에 대미·백혜마을을 생략하고 정금차밭에서 정금마을로 내려간 다음 ‘십리벚꽃길’을 이용해 종점인 가탄마을(길가슈퍼)로 갔다.
▼ 마을회관은 꽃 대궐을 이루고 있었다. 벚꽃이 지고나면 핀다는 왕벚꽃은 지금이 제철인 모양이다. 만개한 꽃이 하늘이 보이지 않을 만큼 두툼한 터널을 이루고 있다. 투명한 꽃잎 뒤로 햇살이 반짝이자 그 화사함이 한층 더 돋보인다.
▼ 벅수의 빨강색 화살표 방향으로 걸으면서 트레킹이 시작된다. 형제봉 활공장으로 올라가는 가파른 임도이다.
▼ 누군가의 손가락을 따라 고개를 돌리니 신선대 능선에 구름다리가 걸려있다. 지리산둘레길(14구간)에서 조금 비켜나 있으나 한번쯤 들러볼만한 곳이다. 소설 ‘토지’의 무대인 평사리 들녘과 섬진강 비경, 섬진강 건너 우뚝 솟은 백운산의 자태까지 한꺼번에 눈에 담는다는 게 어디 그리 흔하겠는가.
▼ 시멘트로 포장이 된 임도는 무척 가팔랐다. 시작부터 버겁다는 얘기다. 길 왼편의 계곡에서 들려오는 청량한 물소리가 그나마 위안이랄까?
▼ 임도는 계곡을 거슬러 올라가는 모양새이다. 수량이 풍부한 개울은 맑은 물이 철철 흘러내리고 있었다.
▼ 원부춘마을 주민들은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가나 보다. 산 중턱. 그것도 가파른 비탈에 들어앉은 지형에 맞게 높다랗게 축대를 쌓은 다음 그 위에다 건물을 올렸다.
▼ ‘한국의 알프스’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건 하동. 약삭빠른 현대인들이 이렇게 빼어난 경관을 그냥 내버려두었을 리가 없다. 곳곳에 잘 지어진 펜션이 들어서 있다. ‘부춘골 펜션’도 그중 하나인데, 이곳은 다원도 겸하고 있는 모양이다. 군에서 세워준 팻말에 ‘녹차체험장’이라고 적혀있는 걸 보면 말이다. 맞다. 하동의 차 농가는 2000여 가구나 된다고 한다. 이 가운데 300여 곳이 자체 브랜드를 붙인 차를 생산하는데, 그 대부분은 가내 수공업 형태로 운영된단다.
▼ 가파른 오르막길은 변할 줄을 모른다. 아니 오히려 더 가팔라졌다. 하지만 고도가 높아질수록 발아래 펼쳐지는 심산의 절경이 피로를 잊게 해준다.
▼ 길은 곳곳에서 나뉜다. 그렇다고 걱정할 필요 까지는 없다. 어김없이 나타나는 벅수가 가야할 방향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거기다 ‘형제봉 활공장’ 이정표까지 곳곳에 세워놓아 길을 잃고 싶어도 잃을 수가 없다.
▼ 트레킹을 시작한지 30분. 가파른 산자락에 들어앉은 ‘수정사(秀精寺)’가 얼굴을 내민다. ‘청화선사’의 상좌였다는 장우스님이 수행해 온 토굴이 업그레이드된 사찰이란다. 청화선사 큰 스님의 약발이라도 받았는지 일천한 역사에도 불구하고 대웅전과 적멸보궁, 약사전, 관음전, 산신각, 조사전 등 꽤 많은 전각을 거느리고 있었다.
▼ 절은 역사가 오래되지 않은 듯 약사전과 극락전의 목재는 색깔도 변하지 않았다. 관음전으로 올라가는 길도 아직 덜 마무리되어 있음은 물론이다. 참고로 이 절과 연관이 있는 청화선사는 방에 눕지 않은 채 수행하는 장좌불와(長坐不臥), 하루 한 끼만 먹는 일종식(一種食), 깊은 산속 토굴정진으로 일관한 불교계의 참 스승이시다.
▼ 산자락에는 산벚꽃이 한창이다. 벚꽃은 나뭇가지를 안개로 뒤덮듯이 일제히 꽃을 피웠다가 일제히 구름처럼 사라지기 때문에 구름을 닮았다고들 한다. 어떤 이들은 너무나 일찍 사라져 인생의 덧없음을 상징하는 나무라며 우긴다. 하지만 나는 그 화사함에 반해 벚꽃을 볼 때마다 꿈결을 헤매는 기분이니 어쩐다?
▼ 이밖에도 수많은 야생화를 만날 수 있었다. 이 봄 여기저기 온 산하를 아름답게 수놓은 꽃무리. 그런 분위기속에서 덧없지만 아름다운 자신의 인생에 대해 고운 꿈을 마음껏 꾸어 보면 좋겠다.
▼ 해발 600m에 가까운 고지대인데도 펜션이 들어섰다. 펜션 앞 도로변에 사람의 얼굴을 연상시키는 커다란 바위가 놓여있었는데, ‘feel’이라는 저 브랜드는 그걸 감상해보라는 의미일지도 모르겠다.
▼ 걷기에도 힘든 이런 오르막길을 자전거로 오르는 저 라이더는 과연 어떤 심경일까? 나는 인상까지 써가며 겨우겨우 오르고 있는데...
▼ 하동 지역의 반달곰은 양순한 모양이다. 반달곰으로부터의 피해를 우려하던 산청지역의 현수막과는 달리 반달곰에 위해를 가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을 담았다.
▼ 트레킹을 시작한지 1시간 20분(앱은 3.89km를 찍고 있다). 왼편 암릉에서 인기척이 들리는가 싶더니 허총무님이 얼굴을 내민다. 그리고는 한참을 단축시킬 수 있다며 그냥 치고 올라오란다. 그 소리를 들은 집사람의 표정이 저렇게나 밝아지고 있으니 어쩌겠는가. 찔리고 할퀼 것을 각오하고 울창한 잡목사이로 들어섰다. 하지만 따귀까지 맞고 나서야 능선에 올라설 수 있었다.
▼ 거리가 단축되는 즐거움은 중요한 포인트 하나를 놓쳐버리는 불상사를 초래했다. ‘형제봉 갈림길’인데 이 구간은 허총무님 등 다른 분들의 사진과 기억을 빌어 적어본다. 부춘리와 정금리의 경계인 ‘형제봉 삼거리(활공장 갈림길, 벅수 : 가탄 9.2㎞/ 원부춘 4.1㎞)에서 왼쪽의 임도를 따른다. 참고로 형제봉은 활공장이 있는 곳이다. 행글라이더를 즐기는 사람들은 이곳에 올라가 바람을 이용해서 탄다.
▼ 곧이어 나타나는 임도사거리(정금리)에서는 왼편으로 내려서서 수박산(812m)으로 연결되는 능선을 탄다. 초입에 벅수(가탄 9.0㎞/ 원부춘 4.3㎞)가 세워져 있으니 길이 헷갈릴 일은 없을 것이다.
▼ 이후부터 탐방로는 전형적인 산길을 따른다. 그것도 고도가 800m를 훌쩍 넘기는 고산이다. 바닥이 흙길이라는 게 그나마 다행이랄까? 하긴 ‘(사)숲길’에서까지 이 길을 놓고 의견이 분분했다니 오죽했을까. ‘이게 길이냐, 등산로지’와 ‘평탄한 길만 길이냐’로 대립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숲이 있는 평탄한 흙길이 길게 돌아가는 황량한 임도보다는 낫다’는 의견이 우세해 이 길로 결정됐다고 한다.
▼ 다음 주 수요일이 곡우(穀雨). 곡식이 자라는 데 도움이 되는 봄비가 내린다는 날이다. 그 봄비에 목이라도 축였는지 산릉의 진달래는 꽃망울을 활짝 열어 제켰다. 덕분에 콧노래 흥얼거리며 걷는 꽃놀이 산행을 즐길 수 있었다.
▼ 가팔라진 오르막길을 잠시 올라서니 고도계(헨드폰의 앱)가 801m(네이버 지도는 806m)를 찍는다. 지도에 나타나있는 헬기장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굽이구비 치마폭처럼 펼쳐진다는 지리산의 주능선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 806m봉(수박산으로 연결되는 산길이 나뉘는 지점이기도 하다)을 기점으로 하산이 시작된다. 그런데 이게 만만치가 않다.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가파른 내리막길이 계속되는 것이다. 침목계단과 돌계단을 놓았으나 이마저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하긴 1.6km를 내려오면서 550m나 되는 고도를 까먹어야 하니 오죽 가팔랐겠는가.
▼ 무성하게 우거진 숲속 가파른 능선을 따라 길은 내리꽂힐 듯 한없이 계속된다. 능선이 허리를 곧추세웠다면 이해가 갈지 모르겠다. 그러다보니 내리막길임에도 불구하고 속도를 낼 수가 없었다. 특히 무릎이 좋지 않은 집사람에게는 지옥의 구간이었다. 엉금엉금 기어 내려가다시피 했으니 얼마나 고생이 심했겠는가.
▼ 가끔은 완만해진 구간이 나타난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랄까? 언제 그랬냐는 듯이 또 다시 가파르게 변해버리지만 말이다.
▼ ‘이 뭣꼬!’ 가파른 내리막길을 고생고생하며 내려오는데 ‘山’이라고 새겨진 작은 시멘트 기둥이 길가에 서있다. 삼각점을 연상시키는 ‘十’자 표시가 윗면에 그려진 저 시설물의 정체는 과연 뭘까?
▼ 철망을 길게 두른 지역도 지난다. 철망 너머에서 산삼 같은 약초라도 재배하는 모양인데, 이때부터 산길은 그 사나운 기세를 상당히 누그러뜨린다.
▼ 그렇게 얼마를 내려왔을까 벅수(가탄 6.8㎞/원부춘 6.4㎞) 하나가 길손을 맞는다. 농작물에 손대지 말라는 안내판까지 붙어있는 걸로 보아 ’중촌마을‘에 이르렀음이리다. 그나저나 능선에서 이곳까지 내려오는데 무려 60분이나 걸렸다. 그 거리가 2km남짓임을 감안하면 얼마나 가팔랐는지 능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불편한 집사람의 무릎을 추가로 감안하더라도.
▼ 잠시 후 오두막처럼 지어진 작은 쉼터에 내려선다. ‘하늘호수 차밭’이란 간판을 내걸었는데, 이곳에서 운영하는 쉼터는 25년의 역사만큼이나 지리산둘레길을 걷는 이들에게 유명하다. 간단한 음식도 먹을 수 있고, 하동 차는 물론 커피도 내려준다. 하지만 오늘은 재료가 떨어져서 매식이 불가능하다고 했다.
▼ 안으로 들어가면 주인이 손수 나무를 깎아 만든 탁자며 의자가 정겹다. 먼 풍경 방향으로 나란히 놓인 투박한 안락의자에 앉아 차를 마시면 말 그대로 딴 세상에 온 듯한 기분이 된다.
▼ 쉼터는 둘레길 순례자들에게는 중요한 포인트이기도 하다. 완주를 인증해주는 스탬프가 이곳에 설치되어 있기 때문이다.
▼ 다시 길을 나서자 중촌마을이 얼굴을 내민다. 산 중턱, 그것도 비탈에 들어앉은 오지마을이다. 고샅길을 걸으며 ‘어떤 계절이든 고립될 수도 있겠구나’하는 생각이 든 것은 나 혼자만의 느낌이었을까?
▼ 마을 앞에는 하동군에서 일괄적으로 주문제작한 듯한 ‘광고판’이 세워져 있었다. 방금 전 들렀던 ‘하늘호수 차밭’을 얘기하는 모양인데, 전통 수제차의 다인 ‘배윤천’과 함께 차를 만들어 볼 수도 있고, 하룻밤 묵어가는 것도 가능하단다.
▼ 중촌마을부터는 시멘트포장길을 따른다. 하지만 집사람에게는 이마저도 부담스러웠던가 보다. 산길을 내려오느라 시달린 무릎에 조금이다 부담을 덜 준다면서 아예 뒷걸음으로 내려가고 있다.
▼ 심심찮게 눈에 띄던 금낭화. 금낭화는 봄을 만끽할 수 있는 핑크빛 보물이다. 복주머니를 닮은 꽃 속에 황금빛 꽃가루가 들어 있어서 금주머니(금낭), 즉 금낭화가 되었다. 도시에서는 보기 힘든 저 꽃은 ‘여필종부’를 품고 사는 내 집사람을 쏙 빼다 닮았다. ‘당신을 따르겠습니다.’ 이 얼마나 사랑스러운 꽃말인가.
▼ 갈 길이 바빠도 집사람에게는 남의 일일 수밖에 없다. ‘단오 이전의 녹색 식물은 독성이 없다’고 믿는 집사람은 오늘도 손놀림이 바쁘다. 그렇게 뜯은 고춧잎나물과 민들레 등은 향기로운 봄나물로 변해 내일 아침 밥상에 올라올 것이다.
▼ 중촌마을을 지나면서 차밭의 규모가 커지는가 싶더니 어느덧 산비탈 전체를 차지해버렸다. 그런데 바위와 차나무가 묘하게 어우러지는 것이 영락없는 야생 차밭이다. 재배 차밭에서도 비료를 주지 않기 때문에 야생차와 품질이 큰 차이가 없다지만 말이다.
▼ 봄꽃이 만발한 곳에 어찌 벌통이 없겠는가. 그런데 윙윙거리는 소리가 들려오지 않는 이유는 뭘까?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꿀벌 연쇄 실종사건’의 연장선일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큰일이다. 아인슈타인은 지구상에서 꿀벌이 사라지면 인류에게 남은 시간이 4년밖에 없을 것이라 경고하지 않았던가.
▼ 계곡의 풍경은 빼어나다. 층층의 바위지대가 곳곳에 들어앉았는가 하면 그 암반에서 떨어지는 물은 어김없이 폭포를 만들어낸다. 하동 사람들은 자신의 고장을 ‘알프스’로 부르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산 좋고, 물 좋아 어딜 가나 한 폭의 수채와 같은 풍광이 펼쳐진다는 것이다. 그게 지금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 이렇게 아름다운 계곡을 그냥 내버려두었을 리가 없다. ‘알프스 동화’. 주변 풍광이 알프스를 닮았다는 얘기일 것이다. 아니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던지 지중해 연안에서나 볼 법한 붉은색 지붕에 하얀 벽으로 된 집들까지 들어앉혔다.
▼ 하늘정원 쉼터를 출발한지 30분. 제실(齋室) 앞의 삼거리(벅수 : 가탄 5.4㎞/ 원부춘 7.9㎞)’와 마주쳤다. 탐방로는 이곳에서 왼편으로 향한다. 오른편은 도심마을을 거쳐 신촌마을로 연결된다. 그리고 ‘쌍계로’를 따라 15구간의 종점인 가탄마을로 나갈 수 있다.
▼ 이정표(신촌차밭 0.8㎞/ 정금차밭 0.5㎞)와 함께 세워놓은 안내판 하나가 눈길을 끈다. 지리산둘레길과 별개로 지리산국립공원을 그린 다음, 그 위에다 ‘녹차 시배지’를 표기해놓았다. 이왕에 왔으니 녹차시배지까지 둘러보라는 의미일 것이다. 참고로 ‘차 시배지’는 이름대로 한국에서 차를 처음 재배한 곳이다. 신라 흥덕왕 3년(828) 당나라 사신으로 간 대렴공이 차 씨앗을 가져와 왕명으로 처음 심은 곳이란다. 쌍계사와 켄싱턴리조트 사이의 얕은 언덕에 위치하는데, 듬성듬성 바위가 섞인 차밭을 거닐 수 있도록 산책로가 나있고, 차와 관련한 글귀 25수를 새긴 조형물까지 세워놓았다니 그 뜻을 음미하며 걸어보는 것도 하나의 재미가 아닐까 싶다.
▼ 정금차밭으로 향하는 오르막길. 124m까지 떨어졌던 고도(高度)는 차밭에 가까워질수록 다시 높아져간다.
▼ 고개라도 돌릴라치면 도심마을(정금리)의 전원 풍경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차나무(‘천년 차나무’라고 불리었는데 높이만 4.2m에 달했단다)’가 자라던 마을이다. 2013년의 동해(凍害)로 나무는 고사했지만, 그 밑동에 어린 차나무들이 자라면서 그 명맥을 잇고 있단다.
▼ 10분 조금 못되게 더 걸으니 고개사거리다. 고갯마루 옆 언덕은 일류의 조망처다. 발아래로 흘러가는 화개천은 물론이고 저 멀리 섬진강까지 한눈에 쏙 들어온다. 그리고 잘 정돈된 차밭. 임도를 걸어오면 쌓였던 피로가 한꺼번에 풀려버리는 멋진 풍광이다. 지자체에서 그런 장점을 놓칠 리가 있겠는가. 이층으로 된 팔각정을 전망대 삼아 지어놓았다. 마을 이름에서 빌려온 듯 ‘정금정(丼琴亭)’이란 현판이 매달려 있다.
▼ 고갯마루의 시설물은 ‘천년 차밭 길’이 이곳에서 시작됨을 알려준다. 하동 야생차의 세계중요농업유산 등재에 맞춰 차시배지 일원의 야생차밭을 걷기명소로 키우고자 조성한 힐링 탐방로다. 탐방로는 이곳 정금차밭에서 신촌차밭을 거쳐 쌍계사 인근 차시배지로 이어지는 2.7㎞ 구간. 산자락의 푸른 야생차밭을 조망하고 깨끗한 공기도 마시며 심신을 정화시키도록 짜여있다.
▼ 쉼터용 정자는 나들이 나온 가족의 차지다. 젊은 부부에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어린이. 곁에는 음식물을 챙겨온 듯한 광주리가 놓여있다. 한갓진 토요일 오후, 망중한을 즐기고 있는 일가족이 한없이 행복해 보인다. 참! 가끔은 이곳에서 차밭을 배경으로 지역 예술인들이 공연도 한단다. 바람을 타고 흐르는 선율 아래서 차를 마셔보는 것도 가능하단다. 생각만으로도 행복하지 않을 손가. 모처럼 왔으니 ‘인생샷’만 찍지 말고 차와 풍경을 음미하는 것도 꼭 해볼 일이다.
▼ 정금정 부근은 차밭으로 조성해 놓았다. 오래된 차밭 특유의 푸근한 능선과 가지런한 차나무 사이 산책이 즐거운 곳이다. 눈을 들자 사방이 온통 차밭이다. 차를 눈으로 한 번, 그리고 입으로 한 번 마신다는 이가 있었다. 그렇다면 그는 눈앞에 펼쳐지는 저 풍경만으로도 차 서너 잔은 충분히 마신 기분을 냈을 것 같다.
▼ 하동 차는 최고로 꼽힌다. 고려·조선시대에는 조정에 진상되며 ‘왕의 녹차’라는 타이틀까지 붙었다. 이유가 있다. 차 품질의 관건은 일조량. 화개천과 섬진강이 만나며 만들어지는 안개로 햇빛과 습도가 잘 조절되는 화개골은 차 재배의 최적지다. 여기에 집집마다 대대로 이어진 덖음 기술(제다법)이 더해져 ‘명차’가 탄생했다. 선인들도 한몫 했다. ‘차의 성인’으로 불리는 초의선사는 하동의 차를 바탕으로 ‘초의다신전’을 썼고, 추사 김정희 역시 ‘중국 최고 차인 승설차보다 낫다’며 이곳 차를 극찬했다.
▼ 지대가 높아서인지 참새 혓바닥만 하게 솟아난다는 새순은 눈에 띄지 않았다. 그래선지 찻잎을 따는 주민들로 붐벼야 할 차밭도 텅 비었다. 녹차 가운데서도 최고로 치는 우전(雨前)은 곡우 전에 딴 찻잎으로 만든다고 했는데도 말이다. 참고로 일찍 딴 찻잎이 귀한 대접을 받는 것은 햇빛을 그만큼 덜 받아 떫은맛이 덜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곡우보다 한 절기 앞선 청명 전에 수확한 찻잎은 ‘명전(明前)’이라 부르며 너무 귀해 임금님께도 진상하지 않았단다.
▼ 남해의 다랑논처럼 산비탈에 기대앉은 차밭 사이를 지난다. 하동은 우리나라 최대 야생차 생산지다. 국내 생산량의 30%가 하동에서 생산된다. 특히 이곳 정금마을 차밭은 국가중요농업유산에도 등재됐다. 2018년에는 유엔식량농업기구의 세계중요농업유산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오래된 차나무, 우수한 경관, 1200년 전의 재배방식을 그대로 이어오는 전통이 가치를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 정금차밭이 끝나면 삼거리(벅수 말고도 지리산둘레길 안내도가 세워져 있다). 대비마을과 정금마을로 가는 길이 나뉘는 지점이다. 탐방로는 여기서 왼쪽으로 꺾어 다시 오르막을 탄다. 하지만 체력적으로 부치거나 시간이 빠듯한 사람은 여기서 오른쪽으로 꺾어 내려간 뒤 하동으로 나가는 교통편을 이용하는 것이 낫다.
▼ 우리부부는 후자를 선택했다. 집사람의 체력이 방전된 탓에 대비마을과 백혜마을을 둘러볼 수 있는 여건이 못 되었기 때문이다. 그 결정에는 내 컨디션도 한몫을 했다. 고질병인 꽃가루 알레르기로 인해 눈물·콧물이 범벅인데 사진 찍고 메모할 정신이 어디 있겠는가.
▼ 단풍나무 가로수가 멋진 길(정금대비길)을 따라 잠시 내려가자 정금마을이 나온다. 마을 지형이 풍수지리상 옥녀가 가야금을 타는 형국이어서 탄금(彈琴)이라 하였는데 언제부터인지 정금(停琴)으로 바뀌고 다시 ‘정금(井琴)’이 되었다.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정금동·대비동(大比洞)·중촌동(中村洞)·도심동(道心洞)이 통합되어 정금리가 되었다.
▼ 이후부터는 벚꽃나무가 도열해있는 도로(쌍계로)를 따른다. 지리산 골짜기에서 흘러내린 화개천의 물줄기가 맑고 시원한 생명수를 공급해가며 수십 년간을 키워낸 굵직한 나무들이다. 꽃길은 화개천을 따라 4km쯤 이어진다. 길의 이름이 ‘십리벚꽃길’이 된 것도 이유이다.
▼ 아쉽게도 화사한 벚꽃 잔치는 구경할 수 없었다. 봄 햇살이 쏟아지면서 잠들었던 꽃봉오리가 톡톡 빗방울 같은 소리를 내며 연다는 그 연분홍 꽃잎도 눈에 띄지 않는다. 그저 철 지난 줄도 모르고 이제야 꽃망울을 연 지각생들 두엇이 그 아쉬움을 달래주고 있을 뿐.
▼ 십리벚꽃길은 화개천을 오른편 옆구리에 끼고 이어진다. 김동리는 그의 단편 ‘역마’에서 이 길을 ‘아무리 걸어도 길멀미가 나지 않는다’고 적었다. 그만큼 아름답다는 얘기일 것이다. 이 길은 또 사랑하는 청춘남녀가 두 손을 꼭 잡고 걸으면 사랑이 이루어진다고 해 ‘혼례길’로도 불린다. 그만큼 이 길은 봄 최고의 낭만 데이트 장소다. 그런 길 위에서 마음을 열지 않을 이, 누구인가.
▼ 지성이면 감천이랄까. 벚꽃에 대한 아쉬움으로 힘없이 걸어가는데 난데없는 풍경이 동공을 활짝 열어 제치게 만든다. 길가에 조성해놓은 꽃밭에서 영산홍이 꽃망울을 활짝 터뜨리고 있는 것이다.
▼ 차밭은 위치나 형태가 제각각이다. 아까처럼 섬마을 다랑논처럼 산기슭에 계단식으로 축대를 쌓아 만든 차밭이 있는가 하면, 저처럼 물길 옆 너른 평지에 자리한 차밭도 꽤 많이 보인다.
▼ 카페 ‘티스토리’는 벚꽃 나들이를 나온 이들을 위해 포토죤까지 만들었다. 3층 정도의 계단을 만들어, 그 위에서 벚꽃을 배경으로 셀카를 찍을 수 있도록 했다.
▼ 정금마을에서 25분 가탄마을에 도착했다. 선경과 같은 아름다운 여울이라는 가여울(가탄)에서 유래된 지명이다. 지금도 주민들은 가여울 또는 개롤이라 부른단다. 그러다가 신선이 살면서 아름다운 여울에 낚싯대를 담갔다 하여 가탄이 되었단다. 여기서 신선은 ‘수옹(睡翁)’으로 정여창(鄭汝昌)의 별호이다. 정여창은 무오사화에 연루되어 배소에서 사망한 조선 전기의 문신이다. 갑자사화 때는 부관참시까지 되었다.
▼ 15구간의 종점은 마을 앞 도로변이다. 하지만 난 마을부터 둘러보기로 했다. 뭔가 가슴에 담아둘만한 얘깃거리라도 있을지 누가 알겠는가. 그렇게 들어선 마을 앞 당산나무 아래에는 ‘만수정(萬壽亭)’이란 정자가 지어져 있었다. 야생차밭의 깨끗한 공기를 마셔가며 천년만년 오래오래 살아가라는 모양이다.
▼ 날머리는 길가슈퍼(하동군 화개면 탑리 321-2)
마을안길을 빠져나오면 ‘쌍계로’. 도로변에 ‘길가슈퍼’가 들어서 있다. 지리산둘레길 15구간의 종점이자 16구간의 시점이 되는 곳이다. 그나저나 이 슈퍼의 간판이 눈길을 끈다. 도로변에 붙어있는 형편(길가의 슈퍼)을 표현한 상호로 여겼는데, ‘길할 길(吉)’자에 ‘아름다울 가(佳)’자를 쓰고 있는 것이다. 그 재치에 반한 난 캔맥주 하나 챙겨들 수밖에 없었다. 집사람에겐 시원한 아이스크림.
▼ 구간의 시·종점을 알리는 엠블럼(emblem)은 벅수(가탄 0.0㎞/ 원부춘 13.3㎞)와 함께 슈퍼 건너편 도로변에 세워져 있다(완주인증 스탬프는 슈퍼 앞에 있다). 그건 그렇고 오늘은 10.79km를 걸었다. 대비마을과 백혜마을을 건너뛰고 곧장 날머리로 이동한 덕분에 2.5km 정도가 단축됐다. 소요시간은 4시간10분. 거리에 비해 엄청나게 더디게 걸은 셈이다. 그만큼 길이 험했다는 얘기도 된다.
▼ 실제로는 1.2km를 더 걷고 나서야 트레킹을 끝낼 수 있었다. 가탄마을에는 대형버스를 주차할만한 공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도착한 화개면사무소. 조금만 더 내려가면 그 유명한 ‘화개장터’가 나온다. 화개장터가 전국적으로 알려진 건 가수 조영남의 영향이 크다. 노래 속 화개장터는 아랫말 하동 사람, 윗말 구례 사람에 삐걱삐걱 나룻배를 타고 섬진강을 건너온 광양 사람, 부릉부릉 버스를 타고 산을 넘은 산청 사람까지 어우러져 시끌벅적하고 정겨운 시골장터 분위기가 연상된다. 하지만 지금의 화개장은 오일장이 아니다. 그 명성 때문에 관광객을 위한 시장에 더 가까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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