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둘레길 16구간(가탄-송정)
여행일 : ‘22. 4. 30(토)
소재지 : 경남 하동군 화개면과 전남 구례군 토지면 일원
여행코스 : 가탄(0.7km)→법하(1.2km)→작은재(1.9km)→기촌(3.4km)→목아재(3.4km)→송정(거리 및 시간 : 10.6km/ 실제는 10.1km를 4시간 10분에)
함께한 사람들 : 청마산악회
특징 : 대한민국 국립공원 제1호인 지리산(1,915m)은 3개 도(전북·전남·경남). 5개 시·군(남원·구례·함양·산청·하동)에 걸쳐있다. 또한 아흔아홉 계곡과 500여 개의 자연마을을 품는다. 그 지리산의 둘레를 걷기 길로 이은 게 ‘지리산 둘레길(현재 20개 읍·면, 100여 개의 마을을 지난다)’이다. 오늘은 16구간(가탄-송정)을 걷는다. 7개 코스(68km)로 이루어진 구례권역의 첫 번째 구간으로 거리는 10.6km 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 구간도 난이도가 ‘상’으로 분류된다. 400m 내외의 고개를 2개나 넘어야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섬진강과 지리산 주능선에 대한 조망을 즐길 수 있어 그 고단함은 상당히 감소된다. 특히 깊숙한 숲길 사이사이에서 내려다보는 섬진강 청류의 굽이굽이는 자랑거리로 꼽기에 부족함이 없다.
▼ 들머리는 가탄마을 앞 길가슈퍼(하동군 화개면 탑리 321-2)
완주-순천고속도로 구례·화엄사 IC에서 내려와 19번 국도를 타고 하동방면으로 내려온다. ‘남도교차로(화개면 탑리)’에서 빠져나와 쌍계로(쌍계사 방향)를 따라 올라가면 잠시 후 가탄마을에 이르게 된다. 마을 앞 길가슈퍼가 16구간의 출발점이자 15구간의 종점이다. 둘레길 엠블럼과 벅수(송정 10.6㎞←가탄→원부춘 13.2㎞)도 슈퍼 건너편에 세워져 있다. 참! 슈퍼 앞에 있는 완주 인증 스탬프보관함도 놓치지 말자.
▼ 15구간의 거리는 10.6km에 불과하다. 하지만 중간에 400m급의 고갯마루를 2개나 넘어야 한다. 그것도 해발이 50m에도 못 미치는 바닥에서부터 오롯이 올라야만 한다. 경사가 버거울 정도는 아니라는 게 그나마 다행이랄까?
▼ 벅수의 붉은색 화살표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트레킹을 시작한다. 화개천 너머 녹색지붕은 ‘화개중학교’ 교정이다.
▼ ‘가탄교’ 아래로는 ‘화개천’이 흐른다. 영신봉에서 발원한 저 하천은 이곳까지 16km를 흘러오며 불일폭포나 용추폭포 같은 아름다운 경관을 수없이 만들어낸다. 하지만 섬진강에 가까워지면서 그 풍광은 밋밋해져 버린다. 대신 ‘십리벚꽃길’이라는 또 다른 볼거리를 품는다. 사랑하는 청춘남녀가 두 손을 맞잡고 걸으면 백년해로한다는 속설까지 지녔으니 화개(花開)라는 지명에 딱 어울리는 풍경인 셈이다.
▼ 가탄마을도 역시 차밭으로 유명하다. 그래선지 파릇파릇 새순을 자랑하는 차밭마다 주민들로 한 가득이다. 덕분에 난 찻잎을 따느라 정신없는 그네들의 손끝에서 무르익은 봄날을 찾아낸다. 그래!!! 모든 곡물이 잠에서 깨어난다는 곡우(穀雨)가 지난 주중에 있었다.
▼ 가탄교를 건너자 벚꽃나무로 뒤덮인 도로(벅수 : 송정 10.2㎞/ 가탄 0.4㎞)가 나타난다. 탐방로는 쌍계사로 연결되는 이 도로를 횡단해 위로 오른다. 이어서 나타나는 도로도 물론 횡단해버린다.
▼ 트레킹을 시작한지 10분 만에 ‘법하마을’에 들어섰다. 1632년의 기록인 진양지(晉陽誌, 성여신이 편찬한 진주 읍지)에 화개의 10개 마을 중 하나인 ‘법가촌(法柯村)’으로 기록되는데, 이는 부처님의 법(法) 아래에 있는 마을, 즉 사하촌(寺下村)을 의미한단다. 마을 일대가 수많은 사찰이 있는 ‘불국토’라는 것이다. 천년고찰 쌍계사를 바로 이웃에 둔 형편을 잘 표현했다고 보면 되겠다.
▼ 탐방로는 황차(黃茶)의 명가(1호집)라는 ‘오죽헌’ 앞에서 마을을 빠져나간다. 문 앞의 벅수는 이제 겨우 0.9㎞를 걸었음을 알려준다.
▼ ‘한국예술 문화명인’이란다. ‘황차’의 ‘1호집’이란 자랑까지 늘어놓았다. ‘불 발효차(중국차의 6대 분류 중 하나)’의 일종인 ‘황차’를 가장 잘 만든다는 자랑일지도 모르겠다. ‘황차’란 누런빛이 그대로 나도록 말린 찻잎. 또는 그 찻잎을 우린 물을 말한다. 인체의 냉기를 빼주고 위의 부담을 덜어주는가 하면 기혈을 풀어주고 보한다고 해서 ‘장군수’라고도 불린다. 또한 감기에 좋다 하여 ‘고뿔차’, 달빛에 만들었다고 해서 ‘달빛차’로도 불린다.
▼ 마을을 벗어나자 달갑지 않은 팻말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농작물에 손대지 말아주세요.’ 하지만 눈살을 찌푸릴 일만은 아니었다. 꽤 많은 여자들이 팻말의 옆에서까지 고사리를 채취하고 있었으니까. 오죽했으면 동네 할아버지가 산짐승을 쫓을 때 사용하는 호루라기까지 불어댔을까? 아무튼 그런 이들과 함께 둘레길을 순례하고 있는 나 자신까지 부끄러워 할 수밖에 없는 하루였다.
▼ 길은 비좁은 골짜기로 파고든다. 이때 산비탈에 기댄 다락논과 밭이 눈에 들어온다. 하나같이 돌로 축대를 쌓았는데 그 높이가 만만찮다. 저건 우리네 조상들이 흘린 땀의 흔적들이다. 끼니를 걱정해야만 하던 시절, 우리네 어버이들은 돌멩이 하나하나 쌓아올려 다락 논밭을 만들었고, 그 밭에서 나온 잡곡으로 겨우겨우 보릿고개를 넘겼다. 다락 논밭은 지금 차나무가 자란다. 주민들 삶의 질을 높여주는 고마운 나무다.
▼ 고개를 돌리자 산촌의 목가적인 풍경이 확 다가온다. 다락처럼 달아낸 논에는 차밭이 들어섰고, 그 뒤편으로는 법하마을과 가탄마을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초록빛으로 덧칠된 세상은 한마디로 장관이다.
▼ 아주 잠깐이지만 편백나무 숲속을 지나기도 한다. 숲에 들자 빽빽이 줄지은 40-50년생 편백나무들이 일상에 지친 심신을 달래준다.
▼ 숲속에는 벤치를 놓아 쉼터를 겸하도록 했다. 편백나무는 피톤치드라는 천연 항균물질을 가장 많이 배출하는 나무다. 건강한 심신을 위해 떠나온 여행길이니 산림욕까지 해보고 가라는 모양이다.
▼ 울창한 산죽이 만들어내는 터널을 지나기도 한다.
▼ 각양각색의 산길을 전시하는 박람회장이라도 되는 양. 이번에는 침목 계단이 길게 놓여있다. 그런 길들은 하나같이 가파르다. 하지만 버겁지는 않다. 피톤치드가 뿜어내는 향기로 인해 오히려 상쾌한 기분까지 들 정도다.
▼ 트레킹을 시작한지 45분(법하마을에서는 35분)만에 ‘작은재’에 올라섰다. 신작로가 놓이기 전 구례(토지면) 사람들이 하동의 화개장에 장을 보러 다니던 옛길로, 하동과 구례의 경계이자 경상도와 전라도를 나누는 경계이기도 하다. 옛 사람들의 애환이 서린 길을 다시 찾아내 둘레길로 만든 것이다.
▼ 고갯마루에는 벅수(송정 8.8㎞/ 가탄 1.8㎞) 말고도 2개의 이정표가 더 있었다. 그중 하나는 이곳이 삼도봉에서 내려뻗은 ‘불무장등 능선’상의 한 지점(이정표 : 기촌마을↑ 1.9㎞/ 황장산→ 4.9㎞/ 법하마을↓ 1.2㎞)임을 알려준다. 이 능선을 탈 경우 촛대봉과 황장산을 거쳐 16-1구간(목아재~당재)의 끝 지점인 ‘당재’로 연결된다.
▼ 짓궂은 어느 누군가가 ‘촛대봉’에서 획 하나를 떼어버렸다. 장난기가 동한 내 입에서는 ‘촛대봉 셋을 주어도 저 봉우리 하나와 안 바꾼다’는 농담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왔고...
▼ 고생고생 해가며 올라왔건만 고갯마루에는 쉼터의 기능이 없었다. 그 흔한 벤치 하나 놓아두지 않은 것이다. 그렇다고 너무 실망할 필요까지는 없다. 몇 걸음만 더 걸으면 다리품을 풀고 갈만 곳을 만날 수 있으니까.
▼ ‘넘어진 김에 쉬어 가라’고 읽을거리까지 준비했다. 꽃창포·노루발풀·대홍란·물봉선·산수국 등 둘레길에서 만날 수 있는 야생화를 그려 넣었다. ‘다우니(P&G)와 함께하는 지리산둘레길 들꽃보호 캠페인’. 다우니(섬유유연제)와 페브리즈(방향제)로 유명한 ‘한국 P&G’가 ‘사단법인 숲길’과 함께 지리산둘레길의 들꽃 보호를 위해 발 벗고 나섰다는 얘기일 것이다.
▼ 고갯마루를 기점으로 둘레길은 전라도로 접어든다. 한결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살짝 건너뛰자 전라도 땅이다. 이어서 2-3분쯤 더 걸었을까 마을 터로 여겨지는 돌 축대가 나타난다. 작은재 근처에 있었다는 ‘어안동’이 아닐까 싶다. 하동 어안동과 구례 어안동이 공존했었다니 이곳은 ‘구례 어안동’쯤 되겠다. 그렇다면 당시의 작은재는 ‘이음의 길’이었던 셈이다.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고 소통시키는 역할을 했을 테니 말이다.
▼ 옛터는 쉼터로 꾸몄다. ‘어안동’이 이곳에 있었다는 사실을 알려주기라도 하려는 듯. 하지만 마을에 대한 안내는 찾아볼 수 없었다. 마을 자체도 축대 외에는 흔적조차 찾기 힘들다. 참고로 옛날 ‘어안동’에서 남쪽을 보면 겨울에 항상 기러기를 볼 수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마을 이름을 기러기가 산다는 뜻으로 ‘어안(御雁)’이라 했단다.
▼ 자잘한 통나무를 엮어놓은 의자는 ‘배’를 닮았다. 어안동에서 바라보인다는 섬진강. 그 강을 오가는 나룻배를 형상화했을지도 모르겠다.
▼ 둘레길은 울창한 솔숲을 헤집으며 이어진다. 이 부근은 산나물이 지천으로 널려 있었다. 우산나물과 취나물이 특히 많아 산나물 밭으로 착각했을 정도다. 참! 법하마을의 녹차밭 위에서는 군락을 이루고 있는 야생의 머위들을 만나기도 했었다.
▼ 아래 사진처럼 바위들을 만나기도 한다. 하지만 탐방로는 대부분 흙길을 지난다.
▼ 그렇게 20분쯤 내려왔을까 수십 그루의 고사목이 무리지어 있는 언덕빼기에 올라섰다. 이때 시야가 툭 트이면서 섬진강의 물줄기가 한눈에 쏙 들어온다.
▼ 그뿐만이 아니다. 아래로 굽어보면 내서천과 주변 마을 풍경이 이국적으로 다가오고, 시선을 올리자 금방이라도 지리산의 우람한 능선에 닿을 듯하다. 둘레길 도반인 ‘몽중루’님 말로는 ‘왕시루봉 능선’이라고 했다.
▼ 산비탈에 들어앉은 펜션촌은 특히 이색적이다. 알프스에서나 볼법한 주택들이 빼곡히 들어서있는 것이다. ‘한국의 알프스’라는 문구가 자연스레 연상되는 풍경이라 하겠다. 저런 멋진 풍광은 어디에 배치해도 ‘인생사진’이 된다.
▼ 다시 들어선 숲길. 언제부턴가 집사람의 손에 비닐봉지가 들렸다. 걷는 도중 틈틈이 우산나물과 참나물을 뜯는데, 나물이 지천이다 보니 금방 한 끼의 상차림으로 충분해졌다. 이중환(1690-1753)이 1751년에 쓴 ‘택리지’가 현실이 된 셈이다. <중이나 세속 사람들이 대를 꺾고 감과 밤을 주워서 수고하지 않아도 생계 꾸리기가 족하며, 농부와 장인들이 또한 많이 노력하지 않아도 충족하다.>
▼ 그렇게 10분 남짓 내려서자 밤나무 단지가 나타난다. 그것도 엄청나게 넓다. 사실 밤나무는 하동을 먼저 떠올리는 게 일반적이다.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밤나무 재배면적이 넓은 곳이니 말이다. 하지만 기촌마을의 밤나무단지도 그에 못지않아 보인다.
▼ 밤나무단지는 ‘머위’의 군락지이기도 하다. 널디 너른 군락을 이루며 큰 잎을 뽐낸다. 주인인 밤나무보다 객인 머위가 주인노릇을 한다고나 할까? 참! 아무리 지천이라고 해도 머위를 채취해서는 아니 될 일이다. 울타리는 비록 없지만 마땅히 주인이 있는 땅이기 때문이다.
▼ 작은재를 출발한지 45분 만에 ‘기촌마을’에 내려설 수 있었다. ‘19번 국도’에서 피아골로 들어가는 입구에 형성된 마을로, 마을 앞으로 흐르는 ‘내서천(특히 섬진강에 합류되는 지점)’은 여름철이면 피서객들로 성시를 이룬다고 한다. 참고로 기촌이란 지명은 마을을 개척한 ‘행주기씨(幸州奇氏)’에서 유래했다. 그의 성씨를 따 기촌(奇村, 기씨촌)이라 부르다가, 그가 조동(現 중기)으로 이사하고 타 성씨들이 입주하면서 기촌(基村)으로 개칭했단다.
▼ 첨탑이 예쁜 ‘외곡교회’ 앞 담벼락은 벽화로 채워졌다. 지리산으로 가는 버스가 인상적인데, 가슴에 와 닿는 것은 <생각하는 것이 인생의 소금이라면/ 희망과 꿈은 인생의 사탕이다/ 꿈이 없다면 인생은 쓰다>라는 ‘바론 리튼(바론 남작 : 영국의 소설가이자 정치가인 ’에드워드 불워리턴‘ 남작)’의 경구였다.
▼ ‘865번 지방도(피아골로)’로 내려선 탐방로는 피아골(오른편) 쪽으로 방향을 튼다. 이어서 100m쯤 올라가다 ‘외곡청소년수련원’ 앞(벅수 : 송정 6.7㎞/ 가탄 3.9㎞)에서 ‘추동교’를 건넌다.
▼ 개울 건너의 ‘은어마을’은 피서객들을 위해 새로 들어선 펜션단지이다. 그러니 그들을 위한 편의시설이 빠질 수 있겠는가. 개울가 공터에 작은 공원까지 만들어놓았다.
▼ 다리 아래로는 내서천(內西川)이 흐른다. 반야봉(般若峰, 1,732m)에서 발원하여 남쪽으로 10.2km를 흐르다가 외곡리의 연곡교 아래에서 섬진강으로 빠져나가는 지방하천이다. 상류에서 단풍으로 유명한 피아골과 천년고찰 연곡사(鷰谷寺)를 지난다.
▼ 다리를 건너면 유럽풍의 건물들로 가득한 ‘은어마을’이다. 피아골에서 흘러나온 ‘내서천’을 가운데 두고 기촌마을과 마주보고 있는 펜션단지인데, 물놀이도 할 겸해서 찾아온 피서객들을 위해 새로 생겨난 마을이란다. 참! 내서천과 섬진강이 만나는 연곡나루터 일원은 ‘은어’로 넘쳐난다고 했다. 내서천의 피서객들을 위해 들어선 마을답게 이 연어에서 이름을 따왔지 않나 싶다.
▼ 추동교를 건너면서 오르막길이 시작된다. 시멘트로 포장되어 있다지만 그 가파름은 만만치가 않다. 이곳(추동교)은 해발고도가 33m에 불과하다. 반면에 우리가 올라야 할 능선은 높이가 462m나 된다. 2km 남짓의 구간에서 고도를 400m 이상 높여야 하니 별 수 없었을 것이다.
▼ 이곳도 역시 차밭 일색이다. 엊그제 내린 비 덕분인지 차나무는 참새 혓바닥 같은(크기도 참새 혓바닥만큼이나 작다) 여린 잎들을 내밀었다. 그런 풍경에 동화된 난 ‘우설차’란 얼토당토않은 차 이름을 내뱉고 말았다. 작설차(雀舌茶)가 잘못 나와 버린 것이다. 이때 찻잎을 따고 있던 노인장이 ‘우전(雨前)’이라고 지적해준다. 곡우(穀雨, 4월20일) 전에 딴 새잎으로 만들었다나? 명전(明前)이란 차도 있다고 했다. 곡우보다 한 절기 앞선 청명(4월5일) 전에 수확한 찻잎으로 너무 귀해 임금님께도 진상하지 않았단다. 참고로 입하(5월5일) 전 펴지지 않은 잎이 ‘세작(細雀)’, 이후 펴진 잎은 ‘중작(中雀)’이라 부른다. 녹차의 계절은 이렇게 6월까지 이어진다.
▼ 그렇게 얼마쯤 걷자 추동마을(벅수 : 송정 6.1㎞/ 가탄 4.5㎞)이 나타난다. 그런데 첫 만남이 폐가가 되어버렸다. 대부분의 주민이 도시로 떠나버린 탓에 지금은 집이 4채 밖에 남아있지 않다더니 사실이었나 보다. 남은 집들이 옛날 그대로 남아 도시인들의 향수를 자아내기에 부족함이 없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랄까?
▼ 조금 더 오르자 제대로 된 가옥이 나온다. 얼기설기 엮은 나무 위에 황토를 발라놓은 벽과 슬레이트 지붕이 우리 할아버지·할머니가 살던 그 집 그대로다. 지난 2011년 KBS 인간극장(지리산 두 할머니의 약속)에 등장한바 있는 이상엽할머니(2018년 작고)의 집일 것이다. 그런데도 댓돌에는 신발이 놓여있었다. 방송에 함께 출연했던 최상엽할머니(86세)가 형님이 살아계신 듯 아침마다 빈집을 쓸고 닦는다는 언론보도가 있었는데 그게 사실이었던 모양이다. 동서지간으로 서로를 만나 행복이 두 배였다는 할머니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사랑 얘기인가.
▼ 마을의 맨 위는 ‘숭모재(崇慕齋)’가 차지했다. 격식을 갖춘 제각은 물론이고 솟을대문(永守門)까지 거느렸지만 누구를 모시는지, 아니 어느 집안 것인지조차 알 수 없었다. 함께 걷던 이석암 선생(‘마음을 다스리는 산행’의 저자)과 함께 전각의 주련(柱聯)들까지 꼼꼼히 살펴봤지만 정체를 알아낼 수는 없었다.
▼ 숭모재를 지나면서 길은 더 가팔라진다. 대신 전망이 트이면서 섬진강 청류의 굽이굽이가 한눈에 쏙 들어온다.
▼ 추동교에서 25분. 지루하게 이어지던 시멘트길이 드디어 끝을 맺는다. 벅수(송정 5.6㎞/ 가탄 5.0㎞)는 이쯤에서 흙길로 들어서라며 왼편을 가리킨다. 참! 이곳을 지나면서 반대편에서 내려오고 있는 순례꾼들을 심심찮게 만날 수 있었다. 점심을 제공하지 않는 산악회라서 근처에 식당이 있는 가탄을 종점으로 잡았나보다.
▼ 이제 산으로 들어선다. 이곳의 해발고도는 227m. 앞으로 250m의 높이를 오롯이 치고 올라야만 한다. 그러니 가파른 오르막길이 계속될 것은 자명한 일이다. 고생문이 활짝 열린다고나 할까? 하지만 카메라 앞에 선 ‘몽중루’님의 표정을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은 모양이다.
▼ 맞다. 고진감래(苦盡甘來)로 보답해주는 경관을 만날 수 있으니 말이다. 전망이 확 트이면서 섬진강 줄기가 그대로 보이는 것이다. 언제 봐도 유려하고 아름다운 강이다.
▼ 다시 길을 나선다. 밧줄난간까지 매어놓아야 했을 정도로 가파른 구간이지만 버겁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5월의 신록이 거칠어진 호흡을 가다듬었으리라. ‘연록은 꽃보다 아름답다’는 말도 있지 않겠는가.
▼ 저건 또 뭐란 말인가. 옛길을 복원하면서 새로 낸 길인데 철망으로 경계를 삼았다. 위험스러울 정도로 비탈진 곳이지만 생김새로 보아 안전시설은 분명 아니다. 그렇다면 약초 재배지로 들어오지 말라는 울타리가 분명하다. 하도 비탈진 탓에 들어오라고 해도 들어갈 수 없겠지만.
▼ 산길로 들어선지 20분. 숨이 턱에 차오를 즈음 쉼터(벅수 : 송정 5.2㎞/ 가탄 5.4㎞)를 만났다. 그리고 준비해간 막걸리와 과일로 요기를 했다.
▼ 이후부터는 걷기 편한 솔숲길이 이어진다. 아니 고운 길이라고 하는 게 옳을 수도 있겠다. 보드라운 흙길인데다 경사까지도 거의 없기 때문이다. 거기다 솔가리까지 수북하게 쌓여있어 폭신폭신하기까지 하다. 이건 숫제 황제 산행이다.
▼ ‘구례 010’ 벅수(송정 4.9㎞/ 가탄 5.7㎞)는 지리산학생수련장의 이정표(6번 지점)를 목에 걸고 있었다. ‘인간은 교육의 산물이다’라는 캐치플레이즈 아래 독도법(讀圖法) 훈련이라도 하는 모양이다.
▼ 앗! 작은 오르내림만 반복하던 길이 또 다시 올라간다. 경사도 제법 가파르다. 하지만 버거울 정도까지는 아니니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 오름짓을 계속하던 길은 462m의 고도를 찍고 난 다음 다시 아래로 향한다. 탐방로는 공들여 닦은 흔적이 역력했다. 기억에서 사라져가던 옛길을 찾아내 다시 복원해놓은 이들의 노고에 다시 한 번 감사드려본다.
▼ 트레킹을 시작한지 2시간 50분(기촌마을에서는 1시간 20분)만에 ‘목아재’에 내려섰다. 목아재는 섬진강에서 피아골로 넘어가는 옛 고갯길이며, 왕시루봉 하산길 중의 하나였다. 뿐만 아니라 구례에서 화개로 통하는 큰 길로 물물교환을 했다는 고개이기도 하다. 참! 이곳에도 스탬프보관함이 설치되어 있으니 놓치지 말자.
▼ 고갯마루에는 쉼터용 정자와 지리산둘레길 안내판 같은 시설물들이 여럿 들어서있었다. 이름표까지 단 벅수(송정 3.4㎞/ 가탄 7.2㎞)도 그중 하나다. 그런데 벅수가 조금 이상하다. 이곳은 16구간(가탄-송정)의 한 지점이다. 또한 곁가지 구간(목아재-당재)의 시작점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벅수에는 당재로 가는 방향표시가 매달려있지 않은 것이다. 둘레길 엠블럼도 눈에 띄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 그렇다면 곁의 둘레길안내도에서 확인해 보자. 86km 길이의 구례구간은 모두 7개로 나누어져 있다. 그중 첫 번째 구간(가탄-송정)을 오늘 걷는 중이고, 나머지 5개 구간이 뒤를 이으면서 주천(남원시 주천면)으로 연결시킨다. 곁가지인 16-1구간(목아재-당재)은 맨 아래에 적혀있다. 지도에는 현위치 표시까지 해놓았다. 아직까지는 운영되고 있다는 얘기일 것이다. 헷갈린다. 길을 찾다가 오히려 구렁텅이에 빠져버린 셈이 됐다.
▼ 목아재에서의 조망도 괜찮은 편이다. 노고단을 중심에 둔 지리산의 주능선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지형에 어두운 나로서는 구분이 안 됐지만 누군가는 왕시루봉과 황장산까지 눈에 담을 수 있다고 했다. 그는 또 노고단과 삼도봉에서 남쪽으로 내달리던 2개의 능선이 각각 왕시루봉과 황장산으로 솟은 뒤 섬진강으로 스며드는 지형이라고도 했다.
▼ 둘레길은 임도를 가로지른다. 그리고는 ‘봉애산’을 향해 오르막 능선을 탄다. 하지만 일행 몇은 임도를 따라 내려가기도 했다. 연속되는 고갯길에 지쳤음이리라. 그렇다면 우리 부부는 어땠을까. 이 고개만 넘으면 종점이라는 사실을 알기에 수행삼아 묵묵히 넘기로 했다.
▼ 앗! 이곳도 반달곰이 출몰하는가 보다. 그것도 꽤나 사나운 모양이다. 동물을 보호하자던 하동지역과는 달리 이곳 구례는 곰을 피해 도망갈 것을 권하고 있다.
▼ 탐방로는 주능선인 ‘봉애산(611.7m)’ 정상의 바로 아래까지 오르고 나서야 내리막길로 변한다. 이젠 정말 내려가는 길만 남았다.
▼ 이 구간은 섬진강을 내려다보며 산의 남서쪽 허리를 감아 도는 모양새다. 그러다보니 여러 곳에서 섬진강이 조망된다. 유유히 흐르는 섬진강이 완만한 곡선을 선명하게 드러내면서 자신의 아름다움을 마음껏 자랑한다.
▼ 눈에 담아둘만한 기형의 바위들도 꽤 많이 만날 수 있었다. 그중 하나가 이스타섬의 모아이 석상을 쏙 빼다 닮았기에 카메라에 담아봤다.
▼ 작은재에서 만났던 안내판. 즉 ‘들꽃정원’이란 이름처럼 이번 구간은 걷는 내내 다양한 들꽃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 가운데 ‘덜꿩나무’를 게시해 본다. 별 모양의 흰 꽃이 빽빽하게 모여 있는 게 너무 예쁘지 않는가.
▼ 참! 이 부근에 두꺼비가 또 다른 두꺼비를 등에 업고 섬진강을 바라보는 형상의 바위가 있다고 했다. 노모와 효성이 지극한 아들이 죽어 이 바위로 환생했다는데, 내 효성이 부족했던지 눈에 담을 수는 없었다. 아무튼 그때부터 모래가 많아 다사강(多沙江)으로 불리던 강이 ‘두꺼비 섬(蟾)’자를 붙여 섬진강(蟾津江)으로 불리게 되었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 그렇게 50분쯤 진행했을까 시야가 트이는가 싶더니 길은 급전직하로 떨어져 버린다. 시간과 힘을 절약할 수 있기에 나에게는 고마운 구간이지만, 반면에 무릎이 성치 않은 집사람으로선 최악의 구간이다.
▼ 다행인지 그런 내리막길은 오래가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편백나무’ 조림지 사이로 난 임도로 내려서기 때문이다. 하지만 봉애산에서 내려오는 길이 집사람에겐 무리였던가 보다. 무릎이 부담스럽다며 거꾸로 돌아서서 내려가고 있다.
▼ 조림지 아래 첫 민가(벅수 : 송정 0.4㎞/ 가탄 10.2㎞)에 이르니 바둑이가 반긴다. 지나다니는 사람이 드문 탓인지 짓는 대신 오히려 꼬리를 흔들어 댄다. 그래 나도 반갑단다.
▼ 종료를 앞둔 곳에서는 요런 징검다리를 건너기도 한다. 하지만 개울(한수천)의 물이 불면 이곳은 폐쇄된다. 우회하라는 안내판을 세워두었으니, 그려진 그림을 숙지한 다음 이를 따르면 되겠다. 그게 조금 애매해 난감하겠지만...
▼ 개울(한수천) 건너 별밤펜션을 스치듯 지나치자 내한마을(송정리)에서 내려오는 ‘안한수내길’로 올라선다. 탐방로는 이곳(벅수 : 송정 0.1㎞/ 가탄 10.5㎞)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튼다. 참고로 ‘송정리’는 4개의 자연부락으로 이루어져 있다. 각각 한수내(川) 안쪽에 위치했다 해서 ‘안한수내(내한)’, 바깥쪽에 있다 하여 ‘바깥한수내’, 새로 생긴 동네이므로 ‘신촌’, 사적 제106호로 지정된 ‘석주관 칠의사묘’ 옆 ‘원송’이다. 원래는 4개 마을을 합쳐 내한이라 부르다가 한수내 근처에 쉬어가기 좋은 큰 정자가 있어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송정리로 개칭했단다.
▼ 날머리는 별밤펜션 입구 도로변(구례군 토지면 송정리 산 82-10)
둘레길 엠블럼과 벅수(가탄 10.6㎞←송정→오미 10.4㎞)는 섬진강 방향으로 50m쯤 내려오는 곳에 세워져 있었다. 정확한 위치 대신 ‘별밤펜션 입구 도로변’으로 표현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나저나 오늘은 4시간10분을 걸었다. 핸드폰의 앱이 10.1km를 찍고 있으니 꽤나 더디게 걸은 셈이다. 그만큼 힘든 여정이었다는 증거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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