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MZ 평화의길 31-1코스(진부령  소똥령마을)

 

여행일 : ‘26. 2 21()

소재지 : 강원도 고성군 간성읍 일원

여행코스 : 진부령()진부령휴게소소똥령숲길 입구출렁다리소똥령1·2·3칡소폭포소똥령마을(거리/시간 : 10.7km, 실제는 소똥령숲길 구간만 1시간 50분에)

 

함께한 사람들 : 청마산악회

 

특징 : 드디어 코리아둘레길 4,500km 전 구간이 완성됐다. 2009년부터 시작된 코리아둘레길 2016년 해파랑길(동해), 2020년 남파랑길(남해), 2022년 서해랑길(서해)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2024 9, 마지막 구간인 DMZ 평화의길(이하 평화의길) 개통으로 코리아둘레길이 완성됐다. DMZ 일대를 따라 구축한 코스로, 자유롭게 방문하는 횡단노선과 민간인 통제지역까지 들어갈 수 있는 투어 프로그램인 테마노선으로 구성된다.

 

 들머리는 진부령(고성군 간성읍 흘리)

중앙고속도로 동홍천 IC에서 내려와 44번 및 46번 국도(간성방면)를 연이어 타고 75km쯤 올라오면 진부령(해발 529m)’ 고갯마루에 올라선다. 추가령·대관령과 함께 영동과 영서를 잇는 3대 고갯길이었고, 보부상이 넘던 오솔길은 1631년 간성현감 이식이 우마차가 다닐 수 있도록 넓혔다. 1930년 차량이 넘을 수 있는 비포장 도로, 1987년에는 왕복 2차선 도로로 확·포장됐다. 평창에 진부면이 있어 살짝 헷갈리기도 한다.

 진부령에서 2 흘리임도를 거쳐 소똥령마을까지 가는 31코스(14.5km)의 우회노선. 입산이 통제되는 산불조심기간에 대체되는 노선이다. 하지만 46번 국도에 인도는 물론이고 갓길까지 없기 때문에, ‘소똥령 숲길 입구(‘소똥령이야기 상부 노란색 도로에서 검정 선이 갈려나가는 지점)까지는 산악회 버스로 이동할 수밖에 없다. 두루누비(한국관공사 앱)에서도 버스로 이동할 것을 권한다.

 완주인증 QR코드는 진부령미술관 왼쪽에 세워놓은 평화의길 종합안내도에 붙어있다. 하나 더. 북한과 대치하는 지역이라는 것을 일깨우듯 군시설과 군인들이 눈에 띄기도 한다. 그러니 사진을 찍을 때 조심해야 한다. 카메라의 렌즈가 그들을 향했을 경우 불려가 사진을 다 지워야하는 낭패를 당할 수도 있다.

 진부령미술관부터 들러보기로 했다. 해발 고도 529m의 진부령 정상.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미술관이라는 네임벨류 하나만으로도 찾아볼만 하지 않겠는가. 지난 2000년에 문을 연 진부령미술관은 전석진(흉상) 관장의 모든 것이 담긴 공간이라고 했다. 고성군청 관계자들을 설득해 폐쇄된 간성읍 흘리출장소에 미술관을 개설했다.

 전석진 관장은 한국 영화계의 대부이기도 하다. 그는 꼬마 신랑, 돌아오지 않는 해병 등 영화 40여 편을 제작했다. 그래선지 영화 마부의 김승호,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의 허장강 등 1960~70년대를 호령하던 배우들의 사진이 걸려있었다.

 2층의 제1·2 전시실에는 선농미술인회 초대전 ..진부령에서가 열리고 있었다. 서울사대부고 선후배 작가들이 출품한 것들로, 방문객 모두가 예술을 통해 일상의 숨을 고르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나?

 선농미술인회 회원 30명이 참여해 회화, 한국화, 수채화, 조형 작품 등 각기 다른 시선과 감성을 담은 작품들을 통해 이라는 주제를 다층적으로 풀어내고 있단다.

 하지만 예술에 문외한인지라 작가의 의도까지 파악하기에는 무리. 사진만 몇 장 찍고서는 3층으로 올라간다.

 3층은 이중섭 상설전시실로 꾸며졌다. 이중섭(李仲燮, 1916-1956)은 작품  등으로 민족의 강인한 정신을 담은 국민작가로 평가 받는다. ‘비운의 천재 화가라는 수식이 붙는 그는 편지와 엽서, 그림을 통해 삶을 기록했다.

 전시실에는 드로잉을 비롯한 이중섭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이중섭 하면 사람들은 황소를 먼저 떠올린다. 하지만 가족을 주제로 한 작품도 많이 보인다. 진품은 아니고 프린팅 된 작품들이란다. 조금은 어설프지만 이중섭의 작품을 한꺼번에 모아 볼 수 있다는 게 어디 그리 흔한 일이겠는가.

 전시관의 하이라이트는 2.7m×4m의 대형 액자에 담긴 황소이다. 짧지만 강인하면서도 치열했던 그의 삶이 그림에 잘 반영되어있지 않나 싶다.

 이중섭 화백과 관련된 다양한 자료들. 결혼사진을 비롯해 신문기사 등 이중섭의 삶을 다양하게 펼쳐놓았다고 보면 되겠다.

 고갯마루에는 전망대가 있었다. 명칭은 전망대지만 실제는 이곳이 625전쟁의 격전지였음을 알리는 작은 공원이다.

 향로봉지구 전투전적비를 중심으로 진부령의 이력을 적은 표지석 진부령유별시비가 세워져 있다. 기념물 말고도 전망 데크와 운동기구 등을 배치해 다목적 공원으로 꾸며놓았다.

 향로봉지구 전투전적비에는 맹호 수도사단 용사들이 단기 4284 5 7일부터 동년 6 9일까지’ 89회에 달하는 괴뢰 제5군단의 반격을 격퇴하고 설악산과 향로봉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단기 4284년은 1951년이다.

 진부령유별시(陳富嶺留別詩)는 택당 이식(李植, 1584-1647)이 간성 현감으로 재직하다가 한양으로 영전되어 떠나면서 남긴 이별시다. 택당은 광해군·인조 때 벼슬을 했다. 1631년 인조가 아버지 정원군을 원종으로 추승하려는 것을 반대하다 대사간에서 간성현감으로 좌천당했다. 이때 보행조차 어렵던 진부령을 우마차가 다닐 수 있도록 확장했고, 1633 1월 부제학을 제수 받아 떠날 때는 간성 군민들이 눈 덮인 진부령까지 따라와 전송했단다. 그러니 저 시비는 마땅히 있어야 할 자리에 있는 셈이다.

 도로 건너에는 진부령이 백두대간에 놓인 고갯마루임을 알리는 빗돌이 세워져 있었다. 진부령은 사실상 남한에서 백두대간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백두대간 종주를 마친 필자는 군부대의 배려로 36km나 떨어진 금단의 땅 향로봉(1287m)까지, 그것도 걸어서 다녀올 수 있었지만. ! 홍보용인지 조미미가 부른 진부령 아가씨 노래비도 눈에 띄었다.

 이후부터는 2018 소똥령 옛길 답사 때 자료를 올린다. 소똥령 숲길 입구에서 소똥령마을까지 구간으로 평화의길과 완벽하게 겹친다. 인제와 고성을 잇는 진부령은 일제 강점기에 난 길이다. 백두대간을 넘는 고개지만 경사를 낮춰가며 길을 낸 탓에 인제와 고성 양쪽에다 16km에 이르는 구절양장 굽잇길을 풀어놓는다. 진부령을 넘었다고 해서 고개를 다 넘은 것은 아니다. 진정한 고갯길은 따로 있다. 이름만 들어도 입가에 웃음이 흘러나오는 소똥령이다. 소똥령의 본래 이름은 소동령(小東嶺)이라고 한다. ‘작은 동쪽 고개라는 뜻이다. 하지만 백두대간의 고개 중에서 작다는 뜻이지 결코 만만히 볼 게 아니다.

 고개를 넘어가는 약 3.4km의 트레킹 코스는 천연 그대로의 숲길이자 자연 생태의 보고(寶庫)이다. 아직까지 사람의 손을 많이 타지 않아 수목(樹木)들이 자연 그대로 잘 보존되어 있기 때문이다. 소똥령 옛길이 어린이들에게도 부담이 없을 정도로 순한 편이니 트레킹에다 소똥령마을에서의 팜 스테이까지 끼워서 가족단위 행사지로 추천할만하다.

 오른편 산자락으로 들어서면서 트레킹이 시작된다. 들머리에 소똥령 숲길 입구라고 쓰인 입간판이 세워져 있다. 잠시 후 소똥령 숲길 종합안내판이 눈에 띈다. 인근 지도를 그려놓고 그 오른편에 소똥령의 유래를 적었다. ‘소똥령은 옛날 한양으로 가던 길이었다고 한다. 청운의 꿈을 품은 선비가 괴나리봇짐 메고 과거 보러 가던 길이기도 하고 소와 비단을 물물교환하기 위해 넘다가 산적을 만나기도 하던 고개였단다. 이름의 유래도 재미있다. 고개 정상에 주막이 있었는데 원통장으로 팔려가는 소들이 주막 앞에다 똥을 하도 많이 누어서 소똥령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연유야 어떻든 이름에서 풍기는 해학적이고 진한 고향의 향기가 포근하면서도 정겹기 짝이 없다. 그 옆에는 진부리 생명의 숲길 안내판도 있다. 길이 여러 갈래로 나뉘는 것을 보면 예전부터 있어왔던 소똥령 말고도 다른 숲길들을 새로 개설한 모양이다.

 숲길로 들어서자 북천계곡을 가로지르는 길이 58m,  1.5m의 구름(출렁)다리가 기다린다. ‘소똥령 옛길의 랜드마크(landmark)이다.

 원주의 소금산 출렁다리나 파주의 마장호수 출렁다리처럼 길지는 않다. 다리의 높이까지도 별로이다. 그러나 여기서도 안전만은 예외가 아니다. 일방통행과, 다리를 건널 때는 한번에 20명 이내로 건너고, 뛰거나 흔들거나 장난을 삼가는 등 다리를 이용할 때 지켜야 할 안전수칙을 적은 안내판까지 세워놓았다.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다리가 출렁거린다. 바르게 서서 걷기가 힘들 정도이다. 한 번에 20명 이상 건너지 말라는 경고문구가 비로소 이해된다.

 그러거나 말거나 집사람은 마냥 좋은가 보다. 다리를 더욱 흔들리게 만든다며 장난을 걸어온다. 얼굴의 웃음기 또한 사라질 줄 모른다.

 구름다리는 속살을 내보일 정도로 맑은 물이 흘러내리는 개울을 가로 지른다. 개울 너머로 설악의 헌걸찬 연봉들이 길게 펼쳐진다. 매봉산 줄기가 아닐까 싶다.

 트레킹을 이어간다. 바람을 타고 코끝으로 전해오는 숲 내음이 촉촉하면서도 싱그럽다. 하늘을 찌를 듯이 솟아오른 주변 전나무 숲에서 보내오는 선물이라 하겠다. 피톤치드(Phytoncide)가 듬뿍 들어있다는 솔향 속 세상을 향해 발을 내딛는다.

 푸름을 잔뜩 머금은 숲 내음이 코끝으로 전해져 온다. 꼬불꼬불 시나브로 옛 고갯길로 들어서자 조그만 계곡을 따라 흐르는 물에까지 푸름이 내려앉았다. 가뭄만 아니었으면 아름다운 물소리까지 벗 삼으며 걸을 수 있었을 텐데 아쉽다. 아쉽지만 어쩌겠는가. 주어진 여건에 순응하며 느긋이 걷는 게 트레킹의 묘미가 아니겠는가.

 길을 나선지 13분쯤 되자 갈림길이 나타난다. 오른편은 진부리 유원지로 가는 길이고, 소똥령은 물론 왼편이다.

 하지만 아까 초입에서 만났던 소똥령 숲길 종합 안내판은 어느 곳으로 진행해도 소똥령 마을로 갈 수 있다고 표기하고 있었다. 오른쪽으로 가더라도 첫 번째 임도갈림길에서 왼편으로 내려가면 소똥령마을이 나온다는 것이다. 이정표(칡소폭포 2.4, 소똥령 생태체험학습장 2.9/ 장신리 임도 980m, 진부리 유원지 1.3)가 세워져 있으니 마음에 내키는 방향을 골라서 진행하면 될 일이다.

 잠시 후, 그러니까 길을 나선지 15분쯤 지나자 소똥봉우리라는 푯말이 앞을 가로막는다. 옆에 봉긋한 한 무더기의 흙무덤이 내가 소똥봉우리요라고 속삭이는 듯하다. 긴 세월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넘다 보니 자연적으로 길이 패이면서 만들어진 봉우리란다. 그 생김새가 소똥을 닮았다고 해서 소똥령이라는 고개의 이름이 되었다는데 한마디로 앙증맞기 짝이 없다. 아무튼 길가에서 탐방객들에게 나침반 역할을 해주고 있으니 고마운 일이라 하겠다.

 길이 움푹 파여 있는 게 보인다. 어른의 키를 훌쩍 넘길 정도로 깊은 곳도 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녔으면 저렇게 깊이 파였을까 싶다. 지금으로 치면 국도 1호선쯤은 되었겠다. 하긴 소똥령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근원을 그런 점에서 찾고 있는 사람들도 있는데 오죽하겠는가. 하도 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니다보니 자연스레 길이 파였고, 그로 인해 생겨난 작은 봉우리들의 모양새가 마치 소똥처럼 생겼다는 주장 말이다.

 탐방로는 정비가 잘 되어있는 편이다. 길은 널찍하게 잘 닦여있고 행여 산비탈이라도 지날라치면 어김없이 밧줄난간을 설치해 안전을 도모했다. 2015년엔가 소똥령 등산로를 정비해서 새로 열었다고 하더니 이렇게 변했는가 보다. 당시 기사는 3.34km의 탐방로에 데크다리를 비롯 목계단, 안전로프 난간, 목책, 종합안내판 등을 설치했다고 전했었다.

 옛길을 막아놓기도 했다. 원래의 탐방로는 산으로 곧바로 치고 오르거나 경사진 곳을 지났었다고 한다. 그러던 것을 고성군이 탐방로를 정비하면서 새 길을 냈다.

 갈 지()’ 자를 쓰면서 지그재그로 위로 오르도록 했다. 위험한 곳에는 밧줄난간을 매어두었음은 물론이다. 그만큼 경사가 가파르면서도 위험했다는 얘기일 것이다. 그렇다고 긴장할 필요는 없다. 기껏해야 10분 남짓이면 완만해진 길을 또 다시 만나게 될 테니까 말이다.

 가파른 오르막을 벗어나자 길가의 숲은 고요해진다. 정상으로 다가갈수록 숲은 더욱 원시적으로 울창해진다. 나무들이 하늘을 가리는가 싶더니 이내 열어 푸른 하늘을 내려놓는다.

 쉬엄쉬엄 산길을 따라 34분쯤 걷자 길이 두 갈래로 나뉜다. 이정표는 세워져 있지 않으나 이곳에서는 곧장 직진하는 게 옳다. 바로 위가 소똥령 1이기 때문이다. 능선을 따라 밧줄난간이 매어져 있으니 참조한다. 오른편으로 우회해도 위로 오를 수는 있다. 하지만 구태여 돌아서 올라갈 필요는 없지 않겠는가.

 정확히 35분 만에 숲속에 들어앉은 소똥령(1) 정상에 섰다. 힘들게 올라온 길손들을 반긴다고나 할까 빼곡히 들어선 나무들 사이로 벤치가 놓여있다. 옛날 지친 나그네의 발길을 잡던 주막의 흔적은 간데없지만 나무의자 하나만으로도 그 당시 나그네들의 편안함을 오롯이 느껴볼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정상표지석은 보이지 않는다. ‘소똥령 1이라는 이름표를 단 이정표(칡소폭포 1.7, 소똥령 생태체험학습장 2.2/ 소똥령 구름다리 1.1) 하나가 이를 대신하고 있을 따름이다.

 2봉으로 간다.

 오르내림이 거의 없는 능선을 따라 5분쯤 진행하자 2봉 정상이다. 물론 느린 걸음이다.

 ‘2도 역시 정상표지석은 보이지 않는다. 이곳도 역시 소똥령 2이란 이름표를 달고 있는 이정표(칡소폭포 1.6, 소똥령 생태체험학습장 2.0/ 소똥령 구름다리 1.2)가 이를 대신하고 있을 따름이다. 조망 또한 트이지 않는다. 벤치까지 놓여있지 않은 것은 구태여 머무를 필요 없이 그냥 지나치라는 암시일 수도 있겠다.

 ‘2의 볼거리는 누가 뭐래도 나이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오래 묵은 소나무라 하겠다. 소똥령을 지켜주는 신장(神將)이라도 되는 양 거대한 몸뚱이를 비스듬히 누인 채 정상을 지키고 있다. 하지만 하느님을 믿는 집사람에게는 일개 소나무일 수밖에 없나보다. 예쁜 자태에 반했는지 나무 위로 냉큼 오르고 본다.

 ‘3으로 향한다. 이번에는 제법 가파르게 떨어졌다가 다시 오른다.

 그렇다고 두 봉우리의 사이가 길다는 얘기는 아니다. 5분이 채 안되어 정상에 올라설 수 있기 때문이다.

 ‘3의 정상도 앞서의 두 봉우리와 마찬가지 풍경이다. 정상표지석 대신에 이름표를 단 이정표(칡소폭포 1.4, 소똥령 생태체험학습장 1.9/ 소똥령 구름다리 1.4)가 세워져 있을 따름이다.

 다른 점도 있다. 앞서의 봉우리들과는 달리 조망이 트이기 때문이다. 멋진 자태의 소나무 가지 사이로 보이는 북쪽 하늘이 가슴을 시원하게 해 준다.

 이젠 하산할 차례이다. 하산은 가파른 내리막길로 시작된다. 나선형의 나무계단이 놓여있는 아름다운 길이다.

 그렇다고 그런 내리막길이 계속해서 이어진다는 얘기는 아니다. 잠시 후에는 또 다시 완만해지기 때문이다.

 이 구간에서의 특징은 원시의 숲이 아닐까 싶다. 나이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오래 된 갈참나무들이 심심찮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렇게 14분쯤 내려왔을까 굴참나무 지대라고 적힌 팻말이 세워져 있다. 그러고 보니 주변이 온통 굴참나무다. 아니 소똥령은 굴참나무가 대부분이다. 오래 묵은 소나무들은 양념 삼아 들어앉았을 따름이다. 그런데 이 부근에서는 그런 소나무들조차 눈에 띄지 않는 것이다. 고고한 품위를 자랑하는 소나무들이다보니 아랫자리는 아랫것들에게 내어주겠다는 심사일까?

 소똥령 보물찾기 지점이라는 팻말도 보인다. 소똥령마을 인근에 어린이들의 숲속 놀이터인 소똥령 유아숲 체험원을 만들었다고 하더니 그 시설의 일부인가 보다.

 길가에 멧돼지 물먹은 자리라고 적힌 팻말이 세워져 있다. 그렇다면 근처의 땅을 헤집어 놓은 흔적들은 요즘도 멧돼지들이 이용하고 있다는 얘기가 되겠다. 발걸음은 자연스레 서두름으로 변한다. 요즘 멧돼지는 유해동물이라고 하니 어찌 한가할 수 있겠는가. 옛날에는 산적(山賊)’을 조심했겠지만 요즘은 저적(猪賊)’이 두려운 세상이 되었다.

 이어서 나타나는 건 옛날 묘자리’. 팻말의 하단에 석비, 석부, 석상을 찾아보라고 적혀있다

 그런데 내 눈에는 석상(石像)만 보일 따름이다. 이 또한 소똥령 유아숲 체험원에서 하고 있는 프로그램들 가운데 하나인 보물찾기일지도 모르겠다.

▼ 그렇게 편안하게 이어지던 길이 갑자기 가파르게 변한다침목계단을 놓아야 할 정도로 가팔라졌다.

 그런 내리막길이 끝났다싶으면 곧이어 삼거리가 나타난다. 이정표(장신리 유원지 1.5/ 소똥령 구름다리 2.7, 진부리 유원지 4.2)에는 나타나 있지 않지만 칡소폭포로 가는 길이 왼편으로 나뉘는 지점이니 유념한다. 하긴 들머리에 소똥령 숲길 안내도 국가지점번호 표시목 외에도 칡소폭포 안내판이 별도로 세워져 있으니 눈을 감고 가지 않은 이상 놓칠 일은 없겠지만 말이다. 3봉에서 하산을 시작한지 30, 트레킹을 시작한지는 1시간 20분 정도가 지났다.

 폭포는 마을로 향하는 길에서 살짝 벗어나 있다. 왼편으로 방향을 잡아 100m 조금 못되게 들어섰을까 굉음에 휩싸인 칡소폭포에 이른다. 예전엔 고급관료들이 비밀스레 자주 찾아와 신선놀음을 했다고 전해지는 곳이다. 높이 3m에 불과한 폭포는 엄청난 물을 쏟아내며 주변의 푸른 숲과 함께 수려함을 자랑하고 있다. ! 이왕에 시작했으니 칡소폭포에 대해 한걸음 더 나가 보자. 예로부터 칡넝쿨로 그물을 짜서 폭포의 양쪽 바위에다 걸쳐놓으면 희귀성 어종인 연어나 송어 등이 산란을 위해 폭포를 뛰어넘다가 칡넝쿨 그물에 걸려 손쉽게 고기를 잡을 수 있었다고 한다. 칡소폭포라는 이름이 붙게 된 원인이 아닐까 싶다.

 삼거리로 되돌아와 트레킹을 이어간다. 평지나 다름없는 길이 대부분이지만 가끔은 가파른 내리막길이 나타나기도 한다.

 중간에 작은 개울을 건너기도 한다. 목교 아래로 내려가 땀을 씻고 가기에 딱 좋은 장소이다.

 그렇게 25분 조금 못되게 걷자 넓게 펼쳐지는 소나무 숲속에 자리 잡은 자연() 생태체험 학습장이 나온다. 소똥령 마을의 우수한 자연생태계를 보다 잘 보전·관리하는 한편 자연생태환경을 활용한 휴식공간을 제공하기 위해 조성한 곳으로 탐방로와 생태습지, 야생화단지 등을 갖추었다. 또한 해설용 안내판들을 여럿 설치했음은 물론이고 정자와 파고라(pergola의 일본식 발음), 그네, 의자 등의 편의시설도 배치했다. 안내판에는 2001년에 만들었다고 적혀있지만 주변에 건설자재들이 널브러져 있는 걸로 보아 공사는 아직까지도 진행형인 모양이다.

 소똥령마을은 여기서도 한참을 더 내려가야만 한다. 이후부터는 도로나 다름없는 임도를 따른다.

 길가에는 군()에서 사용하고 있는 듯한 시설도 보인다. 일반에 개방되었다고는 하지만 민통선에서 가깝다보니 어쩔 수 없었나 보다.

 그렇게 6분 정도를 진행하자 소똥령 마을에 이른다.

 칡소와 멍덕소, 명주소, 소팽이골 등 크고 작은 계곡을 많이 지닌 아름다운 마을로 지난 2003년 농촌 전통 테마마을로 지정된 이래 많은 관광객(휴양객)들이 일 년 내내 즐겨 찾는다고 한다. 하루 정도 느긋하게 머물 수 있는 펜션부터 농촌체험관, 자연생태체험학습장, 교육농장 등 다양한 볼거리와 체험거리가 가득하기 때문이다. 머물면서 쑥·민들레·미나리 등 산야초 채취와 효소 만들기, 천연 염색, 소먹이 꼴베기와 여물주기 등 자연생태체험학습의 프로그램들을 실제로 경험해 볼 수 있단다.

 소똥령 마을의 또 다른 명물인 돌배나무를 둘러보기로 한다. 수령(樹齡) 300년이나 되었다는데 어찌 그냥 지나칠 수 있겠는가. 골목길을 따라 100m 남짓 들어가자 우람하기 짝이 없는 노거수(老巨樹) 한 그루가 길손을 맞는다. 돌배나무가 저렇게 굵은 것을 보면 수령을 300년으로 추정하는 게 옳을 것도 같다. 누군가는 조선 영조(재위 : 17241776) 때 강민첨장군의 후손이 공조참판 품계를 받은 기념으로 심은 것이라고 했는데 맞는지는 모르겠다. 그건 그렇고 경상북도의 기념물(119)로 지정되어 있는 청도의 상리 돌배나무 나이 추정치가 기껏해야 200년이라니 그보다 100년이나 더 묵은 이 나무를 하루빨리 기념수로 지정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트레킹 날머리는 장신유원지 주차장(고성군 간성읍 장신리 512)

마을에서 조금 더 내려가니 계곡유원지로 조성되어 있는 너른 주차장이 나온다. 향로봉과 진부령 정상에서 시작된 계곡수가 칡소폭포를 경유 이곳 소똥마을 끝자락으로 흐르는데, 그 개울가에다 유원지를 만들어 놓았다. 유원지는 피서객들의 편의시설인 주차장과 샤워장, 식수대, 수세식 화장실, 야외캠핑장 등을 갖추고 있으며, 특히 계곡 물놀이는 물이 눈이 시릴 정도로 맑고 깨끗한데다 수심까지 얕아 가족단위 피서객이 즐겨 찾는다고 한다. 오늘 트레킹은 총 2시간 10분이 걸렸다. 칡소폭포의 경관에 빠져 20분 정도를 놀았으니 실제로는 1시간 50분이 걸린 셈이다. 하지만 모처럼 느림보의 미학을 즐기며 걸었음을 감안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