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MZ 평화의길 26-1코스(두타연갤러리 – 피의능선전투전적비)
여행일 : ‘25. 12. 6(토)
소재지 : 강원도 양구군 방산면 및 동면 일원
여행코스 : 두타연갤러리→뱅이골소공원→도고터널→도사삼거리→동면사무소→피의능선전투전적비(거리/시간 : 12.7km, 실제는 13.6km를 3시간 20분에)
함께한 사람들 : 청마산악회
특징 : 드디어 ‘코리아둘레길’의 4,500km 전 구간이 완성됐다. 2009년부터 시작된 ‘코리아둘레길’은 2016년 해파랑길(동해), 2020년 남파랑길(남해), 2022년 서해랑길(서해)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2024년 9월, 마지막 구간인 DMZ 평화의길(이하 평화의길) 개통으로 ‘코리아둘레길’이 완성됐다. DMZ 일대를 따라 구축한 코스로, 자유롭게 방문하는 횡단노선과 민간인 통제지역까지 들어갈 수 있는 투어 프로그램인 테마노선으로 구성된다.
▼ 09 : 50. 들머리는 두타연갤러리(양구군 방산면 고방산리)
중앙고속도로 춘천 IC에서 내려와 46국도를 이용 양구까지 온다. 송청교차로에서 31번 국도로 13km, 도사삼거리에서 460번 지방도(화천방면)로 5km쯤 들어오면 ‘고방산교차로’에 이른다. 시점인 두타연갤러리는 ‘소지섭갤러리’로도 불린다. 소지섭이 영화촬영을 하며 들른 민통선의 아름다움에 빠져 DMZ 일대를 배경으로 포토에세이집 ‘소지섭의 길(2010)’을 출간한 게 인연이 됐다. 전시실에 영화나 드라마를 촬영할 때 입었던 의상 및 스틸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다고 했는데 문이 닫혀있어 구경할 수는 없었다.(2023년9월 평화누리길 답사 때도 문은 닫혀 있었다)

▼ ‘고방산교차로’에서 ‘피의능선전투전적비’까지 가는 26코스를 예약 못했을 때 이용하는 우회 노선. 특별한 볼거리가 전혀 없는데다 구간 대부분이 도로여서 위험하기까지 하다. 아니, 목숨 바쳐 나라를 지킨 젊은이들의 충정을 되새기며 걷는 엄숙한 코스이기는 하다.

▼ 완주 QR코드는 ‘평화 쉼터’ 맞은편, 평화의길 종합안내도에 붙어있다. 참! 종합안내도 뒤 언덕에 ‘백석산지구 전투전적비’가 세워져 있으니 길을 나서기 전에 한번쯤 꼭 들러보도록 하자. 붉은 색 구조물 왼쪽의 계단으로 올라가면 된다.

▼ ‘피의능선 전투’와 함께 6·25전쟁 기간 가장 치열했던 전투 중 하나로 꼽히는 ‘백석산지구 전투’는 1951년 8월 18일부터 10월 28일까지 벌어졌다. 국군 제7사단과 8사단이 북한군·중공군과의 격전 끝에 백석산과 그 일대를 점령하였고, 이 전선이 휴전협정 조인 시까지 유지되어 우리네 땅이 되었다.

▼ 갤러리 앞 ‘고방산교차로’ 중앙에는 백자조형물이 만들어져 있었다. 이곳 양구가 조선백자의 시원지임을 알리고 싶었던 모양이다. 참고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자기는 고려청자와 조선백자다. 고려청자가 옥빛의 화려함으로 보는 이를 찬탄하게 한다면, 조선백자는 그윽하고 담백한 여백의 미로 보는 이를 매료시킨다.

▼ 09 : 55. 평화로(460번 지방도)를 따라 동진(양구방면)하면서 트레킹을 시작한다.

▼ 동네 이름이 상호가 됐다. 고려 때만 해도 ‘방산현(方山縣)’은 이곳에 있었다고 한다. 그러다 현청을 현리로 옮기면서 ‘옛 고(古)’자를 붙여 ‘고방산(古方山)’이 되었다.

▼ 10 : 00. ‘고방산교’로 ‘수입천’을 건넌다.

▼ 수입천 상류. 저 물길을 거슬러 올라가면 ‘양구9경’ 중 3경인 ‘두타연(頭陀淵)’이 나온다. 민통선이 그려지면서 사람들의 발길이 불허된 금단의 땅. 시간이 멈춰버린 원시의 풍경 속에 들어앉은 천혜의 관광자원이다.

▼ 하류 풍경. 수입천(水入川)은 수입면(양구군이나 미수복지역)의 청송령(靑松嶺)에서 발원하여 문등리와 방산면 건솔리·금악리 등을 우회하여 파로호로 유입하는 길이 34.8km의 하천이다. 접경지역이라서 개발이 덜 되어 있지만 두타연 등 명승지를 여럿 끼고 있다.

▼ 다리 건너에는 ‘송현2리’ 마을회관이 있었다. 그런데 kakaomap은 이곳을 ‘고방산리(古方山里)’로 적고 있었다. ‘송현리’는 고방산리의 왼쪽(평화의길 25코스가 지나간다)에다 그려놓았다. 남의 땅. 그것도 꽤나 멀리 떨어진 곳에다 마을회관을 지어놓았다는 얘기일까?

▼ 10 : 05.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의 양구종합지진관측소. 2017년의 ‘포항지진(리히터 규모 5.4)’ 이후 우리나라도 지진에 대한 안심은 금물이 되었다.

▼ 지진관측소를 지나면서 고갯길이 시작된다. 탐방로는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다. 인도(人道)는 물론이고 갓길조차 허용되지 않는다. 누루누비(코리아둘레길 앱)가 대중교통 이용을 권하는 이유이지 싶다.

▼ 오랜만에 보는 굴뚝과 연기가 옛 추억을 소환시켜준다. 메케한 굴뚝연기, 무쇠 솥 여닫는 소리. 모두 다 고향풍경으로 흔들리는 알싸한 그리움이다. 부모형제의 포근한 숨결이 녹아있고 친구들과 골목길 누비던 유년시절. 아련한 추억의 그림자가 살아 숨 쉬는 내 고향.

▼ 함께 만들어가는 아름다운 세상. 걷기여행자와 차량운전자가 서로를 배려해가며 오가는 풍경이 정겹다.

▼ 평화로(고방산지구)는 공사가 한창이었다. 저 공사가 끝나면 인도가 확보될지도 모르겠다.

▼ 양봉은 양구군의 주요 특산물 중 하나다. 양봉농가가 111개나 된단다. 하지만 겨울철에는 집으로 돌아가는지 양봉장은 텅 비어 있었다.

▼ 10 : 29 – 10 : 34. ‘도고터널’의 해발 고도는 460m. 오르막이 계속될 수밖에 없지만 3km를 걷는 동안 150m만 높이면 되어서인지 힘들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다. 그렇게 한참을 걷다보면 ‘뱅이골 공원’이 반긴다.

▼ ‘뱅이골’은 ‘고방산리’에 속한 자연부락 중 하나인 ‘방이골’인 듯. 그러니 요 어디쯤에 ‘방이골’이 있다는 얘기일 것이다.

▼ 공원은 수많은 도자기 종(鐘)들로 치장되어 있었다. 백자의 고장답게 하얀 도자기로 풍경을 만들어 주렁주렁 매달아놓았다. 그 하나하나에는 방산면 주민들의 염원과 희망을 담겨있다나?

▼ 목장승 한 쌍이 세워져 있는가 하면, 그 앞에는 제단까지 만들어놓았다. 맞다. 양구문화원에서는 농사의 풍년과 지역주민의 안녕과 평온을 기원하는 장승제례를 군내 곳곳에서 봉행해온다고 했다. ‘방이골소공원’도 그중 하나란다.

▼ 양구에도 ‘고인돌’이 있다고 했다. ‘고대리 지석묘군(高垈里 支石墓群)’인데, 파로호수몰지역에 있던 8기 중 1기는 현지에 복원·보존하고, 1기는 선사박물관으로 이전 복원해 놓았단다. 그게 ‘탁자식’이라는 걸 홍보라도 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 10 : 37. 잠시 후 삼거리를 만났다. 직진하면 ‘학령터널’이고 왼쪽으로 꺾으면 ‘도고터널’로 연결된다. 도고터널까지 올라가는 길이 가파른데다 너무 꼬불꼬불하다며 하부에 새로 건설한 게 ‘학령터널’을 포함하는 신도로이다. 하지만 평화의길은 계속해서 도고터널까지 올라가는 고된 길을 고집하고 있었다.

▼ 삼거리를 지나면서 경사가 가팔라지고 있었다. 그렇다고 버거울 정도는 아니니 걱정할 필요까지는 없다.

▼ 10 : 47. 그렇게 10분쯤 더 걸었을까 이번에는 ‘두타연 가는 길’이란 식당이 반긴다. ‘이영근 닭갈비’이자 ‘3대 막국수’ 본점이란다. 하지만 새로운 도로가 뚫리면서 차량통행이 뜸해진 탓인지 주차장은 텅 비어 있었다.

▼ 10 : 51. 드디어 ‘도고터널’이다. 학령터널이 새롭게 뚫리면서 도고터널은 뒷전으로 물러났다. 그뿐 아니다. 겨울철(2025.12.5.-2026.3.31.)에는 폭설·결빙·낙석을 이유로 차량 통행을 아예 막아버린다.

▼ 도고터널 입구에 적힌 ‘조선백자 원료의 중심 양구 백토’라는 글귀는 과거 조선백자를 빚던 원료의 산지로서 양구의 자긍심을 보여준다.

▼ 차량통행이 끊긴 터널은 사진촬영의 핫 플레이스로 손색이 없었다. 인생사진이라도 건지려는 듯 너나없이 포즈를 잡느라고 분주했다.

▼ 10 : 59. 600m 길이의 터널을 빠져나오면 행정구역이 방산면에서 양구읍으로 바뀐다. 입구에 적힌 글귀도 ‘조선백자의 시원지 방산’으로 바뀌었다. 터널이 ‘가마’ 역할을 했는지 원료가 제품으로 둔갑했다.

▼ 11 : 00. 양구읍 쪽 입구에서 ‘학령(鶴嶺)’으로 올라가는 길이 나뉘고 있었다.

▼ ‘학령’은 양구읍 도사리에서 방산으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매년 학이 찾아온다고 해서 흥학령(興鶴嶺)이라 불리다가 학령으로 변했다고 한다. 고갯길이 험해서 1968년 백호터널(21사단 마크 백두산호랑이)을 뚫었고, 1980년에는 백호터널 아래에 도고터널을 다시 뚫었단다.

▼ 길은 이제 내리막으로 변한다. 이 일대는 ‘학령골’로 불린다고 했다. 물론 마을을 포함하는 지명이다.

▼ 이즈음 새로 뚫었다는 ‘학령터널’이 눈에 들어온다. 도고터널과의 고도차가 50m 밖에 되지 않는다는데 많은 예산을 들여가며 새로 뚫어야만 했을까 싶다.

▼ 잠시 후, 터널 입구의 통행금지 현수막을 떠올리게 만드는 풍경을 만났다. 경사로에 눈까지 수북하게 쌓여 있었기 때문이다. 어쩌겠는가? 조심조심 내려갈 수밖에.

▼ 11 : 10. 아까 헤어졌던 도로. 즉 학령터널을 지나온 길과 다시 만났다.

▼ 이 지역도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산양’의 주요 서식지인 모양이다. 멸종위기 1급으로 현재 2000마리 정도가 백두대간 등에서 살아가고 있다나?

▼ 삼거리 풍경. 오른쪽은 학령터널. 왼쪽이 우리가 내려온 길인데 빙판이라 위험하다며 초입을 막아놓았다.

▼ 학령터널을 새로 뚫었지만 아직도 안심이 되지 않았던 모양이다. 폭설 때 살포할 제설제(除雪劑)가 산처럼 쌓여있다. 그런데 포장지에 비싸디비싼 ‘천일염’이라고 적혀있는 게 아닌가. 그동안 저렴한 염화칼슘만 뿌리는 줄 알았기에 놀라울 뿐이다.

▼ 길(평화로)은 이제 대암산(大岩山, 1312.6m) 능선을 마주보며 간다. 1천 미터를 훌쩍 넘기는 고산준령들을 한눈에 담으며 걸을 수 있는 멋진 구간이다.

▼ 11 : 21. 도사삼거리. 양구읍에서 온 국도 31호선을 이곳에서 만나 사이좋게 ‘해안(亥安)’으로 간다.

▼ 도고터널 입구에서 만난 표지석은 동면으로 가는 도로 아래를 일괄해서 ‘학령골’로 부른다고 했다. 행정구역은 양구읍 ‘도사리(都沙里)’이다.

▼ 도사삼거리를 지나면서 길의 이름이 ‘금강산로’로 바뀌었다.

▼ 11 : 28. ‘장기고개’를 넘는다. 양구읍과 동면을 잇는 고갯마루로 ‘장가현(峴)’이라고도 불린다고 했다.

▼ 이곳에도 장승이 있었다. 절개지(切開地)에 장승 한 쌍을 세우고 제단까지 놓아두었다. 기둥에 헝겊을 매어놓은 걸 보면 장승제까지 지내는가 보다.

▼ ‘장기고개’는 양구읍과 동면의 경계이기도 하다.

▼ 대암산을 마주보며 가는 길. 주변은 온통 인삼밭 천지다. 인삼은 양구의 주요 특산물 중 하나이다.

▼ 11 : 42. ‘덕곡2리’ 앞을 지난다. ‘덕이 깊은 마을’이라는 문패에 로고까지 붙여놓은 대문이 특이했다. 참고로 덕곡리(德谷里)는 덕성이 바른 주민들이 서로 상부상조하며 살아가는 마을이란 뜻을 지녔다고 한다.

▼ 입구에는 ‘금강산로’ 표지석도 세워놓았다. 국토정중앙면 구암리(송청교차로)와 동면 월운리를 잇는데, 금강산으로 가는 길목이라는 의미를 지녔다고 한다.

▼ 안쪽에 애국지사 최도환(崔道煥, 1851-1911) 선생의 묘가 있나보다. 양구 출신 의병장으로 옹기점·목재상·보부상으로 활동하다 1906년에 의병을 일으킨 분이다. 1911년 7월 일본 헌병에 체포되어 춘천감옥에서 복역하다가 같은 해에 순국하였다.

▼ 11 : 44. 몇 걸음 더 걸으면 ‘덕곡삼거리’이다. 양구읍과 국토정중앙면, 해안면으로 가는 길이 나뉘는 곳인데, 유독 커 보이는 ‘동면교회’가 시선을 붙든다. 자그마한 면소재지에 저렇게 큰 교회가 있다는 게 그저 놀라울 뿐이다.

▼ 덕곡삼거리를 지나면서 음식점과 상점이 여럿 눈에 띈다. 유동인구가 꽤 된다는 얘기일 것이다.

▼ ‘덕곡리’ 표지석. ‘지석리’를 지나왔고, ‘임당리’를 향해 간다는 것을 알려준다. 이정표를 가미한 재치 넘치는 표지석이라 할 수 있겠다.

▼ 12 : 04. 덕곡1리, 임당1리 버스정류장을 차례로 지나면 ‘골말’ 버스정류장이다.

▼ ‘골말’ 쪽 풍경. 임당1리(林塘1里) 앞에 있는 뜰로 옛 이름은 ‘옥터(獄垈)’였다. 조선 중기 상동면의 소재지였을 때 죄인을 교화하기 위한 감옥이 있었다는 데서 유래된 지명이다. 옥터라는 지명이 듣는 이들에게 나쁜 이미지를 준다고 해서 골말, 현촌(縣村), 현임당(縣林塘), 굴쑥뎅이 등으로 고쳐 부르게 되었단다.

▼ 들녘에는 비닐하우스가 꽤 많이 들어서 있었다. 안에는 시래기를 주렁주렁 매달아놓았다. 이웃인 해안면은 ‘시래기’의 주산지다. 주민들은 실한 가을무에서 수확한 무청으로 ‘시래기’를 만든다고 했다. 그게 ‘펀치볼’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돼 우리네 식탁에 올라온다. 그런데 이곳 동면도 그에 못지않게 시래기를 생산하는 모양이다.

▼ 12 : 06. 몇 걸음 더 걷자 ‘임당초등학교’가 맞는다. 1921년에 문을 열었다니 역사가 한 세기도 더 넘게 거슬러 올라간다. 하지만 최근의 농촌 현실을 반영이라도 하듯 학생수가 37명에 불과하단다.

▼ 임당초등학교는 구한말 사헌부 감찰을 지낸 정응진(1843-1922년)이 사재를 털어 1902년 설립한 ‘임당 개량서당’이 전신으로 알려진다. 주민들은 교육사업에 매진한 정응진의 공을 기리기 위해 1902년 ‘권학비(사헌부감찰 정응진 권학 불망비)’를 향리인 지석리에 세웠다. 2021년 개교 100주년을 맞아 임당초등학교 교정으로 이전했다.

▼ 임당리(林塘里) 표지석. 동면의 행정 타운으로 각종 행정기관과 편의시설들이 집중되어 있다.

▼ 초등학교 옆 폐가. 인걸은 간데없고 벽화만 남았다.

▼ 면소재지답게 음식점과 상점이 꽤 많이 들어서 있었다. 하지만 번화한 모습을 보이던 접경지역의 다른 면소재지들에 비해 왜소하기 짝이 없었다.

▼ ‘개느삼자생지’가 부근에 있나보다. ‘개느삼’은 우리나라에서만 자라는 특산식물이라고 한다. 거기다 이곳 양구가 개느삼이 자랄 수 있는 남쪽한계선이라서 천연기념물(372호)로 지정·보호하고 있단다. 하지만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를 몰라 들러보지는 못했다.

▼ 동면사무소. 양구군의 동쪽 위에 위치한다하여 상동면(上東面)이라 부르다가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동면(東面)’이 되었다. 후곡리·지석리·원당리·덕곡리·임당리 등 9개 법정 동리를 관할한다.

▼ 이곳은 접경지역. 군 장병을 위한 휴게시설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 12 : 16. 하나로마트. 길 찾기에 주의가 요구되는 지점이다. ‘금강산로’와 함께 걸어온 서해랑길이 이곳에서 다시 헤어지기 때문이다.

▼ 하나로마트를 오른편에 끼고 직각으로 돈다. 그리고는 농로(금강산로 지선)를 이용해 마을을 빠져나간다.

▼ 12 : 20. 농협미곡종합처리장을 지나 ‘서천(西川)’ 둑길로 올라선다. 지역 이름을 따 ‘임당천’으로 부르는 사람들도 있었다.

▼ 이후부터는 서천을 거슬러 올라간다. 둑 위에 산책로를 만들어 놓았다.

▼ 서천(西川)은 양구군 동면 팔랑리 돌산령에서 발원하여 동면 지석리·황강리를 돌아 양구읍 송청리에서 파로호로 유입되는 북한강의 지류이다.

▼ 둑길에서 바라본 ‘임당리’ 전경. 오른쪽은 해오름아파트이다.

▼ 둑길은 꽤 오래 이어진다.

▼ 12 : 28. ‘농촌 정주여건 개선’. 가속화되고 있는 ‘농촌 공동화’를 타개하기 위한 최선의 화두가 아닐까 싶다. 그래서일까? 농경지 서너 다랭이를 위해 다리까지 놓아주었다. 민가도 없는데 말이다.

▼ 서천은 임당리 들녘을 왼쪽에 끼고 도는 모양새이다. 서천 물줄기가 만들어놓은 기름진 충적평야이다.

▼ 임당리 주민들의 산책로로 이용되는 듯 둑길은 정비가 잘 되어 있었다. 하천 쪽에 난간을 둘러 안전을 확보했는가 하면, 공터라도 생길라치면 벤치를 놓아 쉬어갈 수 있도록 했다.

▼ 12 : 34. ‘금강산로’와 다시 만났다. 아담하게 공원이 들어서 있는 곳이다.

▼ 그렇다고 도로(금강산로)를 따라간다는 것은 아니다. 오른쪽으로 방향을 튼 평화의길은 ‘임당2교’를 이용해 서천을 가로지른다.

▼ 다리에서 내려다 본 서천 풍경. 발원지인 돌산령이 멀지 않은 점을 감안하면 강폭이 꽤 넓다. 높디높은 대암산 줄기에서 흘러내리는 많은 물줄기들을 보태면서 몸집을 부풀려온 탓일 것이다.

▼ 계속해서 서천을 거슬러 올라간다. 물줄기를 오른편에 끼고 오다가, 이번에는 왼편으로 바꿔 찼다는 게 다를 뿐이다.

▼ 12 : 43. 두물머리. 돌산령에서 발원한 ‘서천’이 이곳에서 백운저수지에서 흘러오는 물줄기를 보탠다.

▼ 진행방향 저만큼에 ‘임당교회’가 놓여있다. 아까 만났던 ‘동면교회’의 거대한 외관에 비하면 ‘시골’의 풍치를 보여주는 것 같아 마음에 쏙 든다. 그나저나 ‘평화의길’은 교회 앞에서 ‘죽포교’로 서천을 건넌다.

▼ 서천 상류에는 ‘팔랑리(八郞里)’가 있다. ‘팔랑’이란 여덟 명의 낭관(조선 6품관 벼슬)을 배출했다는 데서 유래된 지명이다. 양구 땅에 정착한 함경도 출신 선비 이학장이 혼례를 치렀는데 아내가 젖이 4개나 되더란다. 그리고 두 번에 걸쳐 네쌍둥이를 낳았는데 이들이 자라 모두 낭관 벼슬을 했다나? 지형이 바랑(물건을 넣고 지고 다니는 가방)처럼 생겼다 하여 ‘바랑골’로 불린다는 것도 알아두자.

▼ 12 : 45. 다리를 건너면 ‘펀치볼로’. 서해랑길은 왼쪽(월운리)으로 간다. 하지만 필자는 팔랑리 쪽으로 갔다. 조국을 지키다 산화한 젊은이들의 흔적을 찾아보기 위해서이다.

▼ 12 : 47. 100m 남짓 들어갔을까 ‘펀치볼지구 전투전적비’가 나온다. '펀치볼'이라 불리는 해안분지(亥安盆地)를 확보하기 위해 서화리·가칠봉·피의능선·1211고지·무명고지 일대에서 벌인 전투에서 죽어간 장병들의 넋을 위로하고자 세웠다.

▼ 펀치볼 전투(1951.8.29-10.30)는 한국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북한군과 치열하게 맞붙었던 전투이다. 해안분지의 지형이 마치 펀치볼(Punch Bowl, 화채그릇)을 닮았다 하여 미군들이 붙인 이름이다. 국군 제5사단이 중심이 되어 벌인 공격 작전은 해발 고지마다 포성이 울렸고, 분지 하나를 두고 수천 명의 젊은이들이 목숨을 바쳤다. 27코스 때 펀치볼을 내려다볼 수 있고, 28코스 때는 펀치볼을 횡단하게 된다.

▼ 12 : 51. ‘죽포교’로 되돌아와 이번에는 ‘동면교’를 건넌다. 곧이어 나타나는 회전교차로에서는 3시 방향의 금강산로를 따라간다.

▼ 앞에서도 얘기했듯이 농·어촌의 요즘 화두는 ‘정주여건 개선’이다. 사람들이 일정 지역에 살면서 안정적이고 만족스럽게 생활할 수 있는 모든 조건. 즉 단순히 집이 있는 것만이 아니라 주변 환경, 교통, 교육, 문화시설, 보건·복지 서비스까지 모두 포함하는 개념이다. 현수막들이 정주여건 개선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 몇 걸음 더 걸으면 ‘월운리(月雲里)’ 마을회관이다. 월운리는 야트막한 야산에 둘러싸여 있는 전형적인 농촌마을이다. 아니 요즘은 북한의 내금강으로 연결되는 최단코스 육로의 길목에 위치한 곳으로 더 유명해졌다.

▼ 마을표지석. 임당리에서 왔고, 비아리로 넘어감을 알려준다.

▼ ‘여기는 금강산 가는 옛길입니다.’ 월운리의 특징을 가장 잘 나타내는 문구가 아닐까 싶다. 금강산 가는 길(31번 국도)의 최북단 마을로 비득고개와 연결되는데, 앞으로 통일이 되면 남북이 갈리기 전 주민들처럼 비아리·사태리·문등리를 거쳐 금강산까지 걸어 다닐 수도 있단다. 그게 하루가 채 안 걸린다니 얼마나 가까운 거리인가.

▼ 월운막국수. 유명 맛집인지 주차장이 차량들로 꽉 차있다. 참! 월운리는 구름속에 비친 달과 같이 은은하다는 이름처럼 주민들도 온화하고 서로를 위하는 부드러운 성품을 지녔다고 했다. 그래서일까? 바람 쐬러 나온 듯한 식당 주인이 지나가는 나그네에게 따뜻한 차라도 한잔 마시고 가라며 친절을 베풀어주었다.

▼ 13 : 03. 둑의 높이가 17.8m나 된다는 월운저수지. 1957년에 착공 1962년에 완공했는데, 월운리를 비롯한 8개 마을의 농지에 용수를 공급, 청정 양구쌀의 명성을 이어가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최근에는 스케이트장, 썰매장 등을 조성해 겨울철 레저 스포츠의 메카로 부상하고 있단다.

▼ 민통선 안에 있던 10년 전만 해도 ‘물 반 고기 반’의 꿈의 낚시터였다고 한다. 민통선의 후퇴로 저수지가 개방이 되면서 여건이 많이 변했지만 아직도 낚시꾼들이 자주 찾는단다. 여름철에는 붕어와 잉어 등이 많이 잡히고, 겨울철에는 가족단위 관광객들이 빙어낚시를 즐기기도 한다.

▼ 13 : 09. 저수지 반대편에 있는 ‘피의 능선 전투전적비’ 주차장에 이르면서 트레킹이 종료된다. ‘피의 능선’은 양구군 동면 월운리 북쪽의 능선을 뜻한다. 이곳에서 벌어진 전투 때 빗발처럼 포탄이 쏟아지고 대인지뢰가 터지는 가운데 수많은 발목 절단 부상자를 감수해 가며 끝내 고지를 탈취하는 모습을 미국 기자가 ‘Bloody Ridge Line’이라는 제목으로 전하면서 그런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 이곳도 역시 길다면 긴 ‘계단’을 올라가야만 전투전적비를 만날 수 있다.

▼ ‘피의능선(Blood Ridge) 전투(1951.8.18-9.5)’는 글자 그대로 시체를 넘고 넘으면서 전투를 벌였을 정도로 치열했다고 한다. 북한군 6사단·12사단·27사단에 맞선 국군 5사단 35·36연대와 미2사단이 캔사스선 북방 10-20km지역에 위치한 수리봉 일대에서 전투를 벌여 적군 1,480여 명을 사살하는 전과를 올리고 목표지역을 확보했다.

▼ 완주 QR코드는 주차장 앞의 ‘평화의길 종합안내도’에 붙여놓았다. 오늘은 13.6km를 3시간 20분에 걸었다. 학령고개를 넘어야하는 점을 감안하면 적당한 속도로 걸은 셈이다.

♧ 에필로그(epilogue), 27코스 및 28코스는 생략할 예정입니다. 2년 전 평화누리길을 걸으면서 답사했기 때문입니다. 궁금하신 분들은 ‘선현들의 애국충정을 배우며 걷는, 강원도평화누리길 11코스(양구 돌산령길)’ 및 ‘화채그릇을 닮은 해안분지서 통일을 배우다. 강원도 평화누리길 12코스(펀치볼길)’를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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