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MZ 평화의길 30-1코스(서화마을 – 원통중앙공원)
여행일 : ‘26. 1. 18(토)
소재지 : 강원도 인제군 서화면 및 북면 일원
여행코스 : 서화마을→달빛테마공원→용늪자연생태학교→사천교→냇강마을→원통중앙공원(거리/시간 : 25km, 실제는 17.78km를 4시간 20분에)
함께한 사람들 : 청마산악회
특징 : 드디어 ‘코리아둘레길’의 4,500km 전 구간이 완성됐다. 2009년부터 시작된 ‘코리아둘레길’은 2016년 해파랑길(동해), 2020년 남파랑길(남해), 2022년 서해랑길(서해)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2024년 9월, 마지막 구간인 DMZ 평화의길(이하 평화의길) 개통으로 ‘코리아둘레길’이 완성됐다. DMZ 일대를 따라 구축한 코스로, 자유롭게 방문하는 횡단노선과 민간인 통제지역까지 들어갈 수 있는 투어 프로그램인 테마노선으로 구성된다.
▼ 09 : 50. 들머리는 서화2리(인제군 서화면 서화리)
중앙고속도로 인제 IC에서 내려와 31번 및 44번 국도를 이용 ‘원통’까지 온다. 원통교차로에서 453번 지방도(서화방면)로 옮겨 21km쯤 들어오면 ‘서화2리’에 이른다. 완주인증 QR코드는 ‘평화의길 방문자센터(서화2리 마을회관 북쪽 300m 위치)’ 앞 평화의길 종합안내도에 붙어있다.

▼ ‘서화2리’에서 ‘원통 중앙공원’까지 인북천 물줄기를 따라가는 25km의 여정. 예약이 필요한 30코스를 대체하는 우회노선으로 젊은 시절 군대생활을 추억하며 걷기 딱 좋은 코스이다.

▼ ‘DMZ 평화의길’ 방문자센터. 평화의길 도보여행자들을 위한 쉼터로 ‘평화와 생명, 미래가 열리는 희망의 땅 서화’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있었다. 금강과 설악을 잇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는 자부심이 대단한 모양이다.

▼ 방문자센터와 연계 운영되고 있는 ‘평화생명 산촌펜션’. 농촌체험형 숙박단지로 병풍처럼 둘러싼 산과 맑은 인북천 물소리가 잘 어우러진다는 자랑을 늘어놓고 있었다.

▼ GP를 철거하면서 나온 잔해물로 만들었다는 ‘떠오르는 평화(Rising Peace)’가 눈여겨볼만한 볼거리로 꼽힌다.

▼ 10 : 05. 출발지에서 4Km쯤 떨어진 ‘서화생활체육공원’까지는 산악회 버스로 이동했다. 트레킹을 시작하려는 지점(논장교)은 이보다 더 가야하지만, 30-1코스의 새로운 명물로 떠오르고 있는 ‘물빛테마공원’을 어찌 빼먹을 수 있겠는가.

▼ ‘파크골프’ 열풍을 면단위 체육공원에서까지 느낄 수 있었다. 축구장이 분명한데도 공을 차는 게 아니라 때린다. 그것도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이.

▼ 100m 남짓 걸어가면 ‘서화미소아파트’ 앞. 인북천에 놓여있는 ‘물결보도교’가 나온다. 물빛테마공원과 천도리를 잇는 길이 181m(폭 3.9m)의 다리로 보행자 전용이다.

▼ 다리는 인북천의 아름다운 경관과 어우러지도록 디자인했단다. 상판에 굴곡(屈曲)을 주어 넘실대는 물결을 나타냈는가 하면, 바닥에는 철망을 깔아 강물의 숨결까지 느낄 수 있도록 했다.

▼ 구슬을 닮은 영롱한 조형물이 다리 중간에 만들어져 있었다. 정체를 알 수 없어 고개를 갸웃거리는데 함께 걷던 이석암 작가님이 ‘물빛테마공원을 잇는 다리이니 분명 ’물방울‘일 것이란다. 역시 작가다운 추리력이다.

▼ 다리 아래는 ‘인북천(麟北川)’이다. 백두대간의 매자봉(1,144m)에서 발원해 북한 이포리·장승리를 거쳐 군사분계선을 넘은 뒤 가전리를 거쳐 이곳으로 흘러온다.

▼ 다리를 건너면 ‘달빛테마공원’으로 연결된다. ‘평화지역 경관개선 사업’의 일환으로 조성한 3,600평 규모의 야영장으로 차박이 가능한 오토캠핑장 22면과 14대의 호텔형 이동식 카라반으로 꾸려졌다. 사이트마다 전용 샤워시설과 화장실이 제공되는가 하면, 카라반 내에서 취사·취침·바비큐가 한 번에 가능하다는 점에서 큰 인기를 끈다나?

▼ 규모가 커서인지 카페까지 들어서 있었다. 겨울철이라 문이 닫혀 있었지만.

▼ 관광객들을 불러 모으는 시설인데 ‘포토 죤’하나 없겠는가. 이곳은 ‘천도리’. 하늘에서 커다란 복숭아가 떨어진 곳에 집을 짓고 산 주민이 부자가 됐고, 복숭아가 떨어진 곳이 길지라고 생각한 사람들이 하나둘 모이다 보니 마을을 이뤘다는 전설이 있다. 그렇다면 저 조형물은 ‘천도복숭아’를 이미지화하는 게 좋지 않았을까?

▼ 사랑꾼인 집사람은 앉자마자 ‘하트’부터 그리고 본다.

▼ 10 : 35. 실제 출발은 ‘논장교’ 남단에서. 서흥리 관내 ‘인북천’을 가로지르는 다리로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서흥리’에 통합된 ‘논장리(論章里)’에서 이름을 따왔다. 이곳 서흥리(瑞興里)는 ‘용늪마을’로 불리기도 한다. 대암산 용늪 주변인 점을 착안 평화생태마을로 조성했다. 우리나라 제1호 람사르협약 습지로 등록(1997년)된 ‘용늪’은 일정 기간(보통 5월부터 10월까지), 그것도 제한된 인원에 대해서만 탐방을 허용한다. 용늪으로 들어가는 2곳의 출발지 중 하나가 서흥리인데, 1일 3회(평일은 2회), 회당 40~50명씩 출발한다. 인제군 대암산 용늪 홈페이지에서 신청하면 된다.

▼ 평화의길은 ‘용늪길’을 통해 이곳으로 온다. 표지석 뒤는 ‘서흥1리 마을회관’. 38선 이북에 있던 서흥리는 공산치하에 있다가 1951년에 수복되었다. 하지만 접경지역의 군용지로 사용되다 1955년 5월에야 민간인이 들어와 살기 시작했다. 서흥리는 조선시대 임천역(臨川驛, 후에 원통으로 이전)과 서화현의 쌀 창고인 ‘서창(瑞倉)이 있던 곳이기도 하다.

▼ 10 : 36. 인북천 물길을 따라 내려가면서 트레킹을 시작한다. 둑 위로 자동차 한 대쯤 지나갈만한 길이 나있다.

▼ 10 : 40. 잠시 후 만나게 되는 ’용늪자연생태학교‘. 마을의 귀중한 자산인 용늪을 활용, 주민소득을 높이기 위해 조성된 교육·숙박 시설이다. 자연생태 해설가와 함께하는 용늪 길 생태탐방 프로그램을 운영, 용늪에 자생하는 희귀한 곤충과 식물을 직접 관찰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단다. 용늪생태자연학교와 펜션 9동, 편의시설 등을 갖추고 있다.

▼ ’용늪체험학교‘가 들어섰던 옛 ‘서화분교(서화초등학교)’는 공사가 한창이었다. 전시홍보관, 습지연구실, 로컬판매장 등이 들어갈 ‘용늪 습지센터’를 새로 짓는 중이란다. 조금만 짬을 내면 용늪의 형성과정은 물론이고 사계절, 동식물 등을 엿볼 수 있었다는데 아쉬운 일이라 하겠다.

▼ ‘대암산’이 또렷하게 보이네요. 몽중루 작가님의 손가락 끝에 눈이 수북하게 쌓인 산릉이 놓여있었다. 람사르협약 국내 1호 습지이자 국내 유일 고층(해발 1180m) 습원인 ‘용늪’을 품은 산이다. ‘용늪’은 4000-4500년 전 형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고층 습원(습기가 많은 초원)으로 식물 343종, 동물 303종 등 북방계 식물과 희귀종은 물론 습원식물이 대규모로 자생하는 생태자원의 보고이다.

▼ 10 : 48. 둑길을 따라가던 탐방로가 작은 개울을 건넌다. 아치형의 나무다리가 놓여있다.

▼ 옛날에는 이곳에 ‘섶다리’가 놓여있었다는 얘기일까? ‘섶다리’라는 게 통나무 솔가지, 흙 등 자연에서 구한 재료로 직접 놓았던 계절형 이동 통로이니 말이다. 아무튼 주민들의 지혜와 삶의 방식이 고스란히 담긴 생활문화 유산을 떠올려 보는 계기는 되었다.

▼ 10 : 51. 몇 걸음 더 걷자, 이번에는 ‘무쇠점교’를 건넌다. 200여 년 전 무쇠점이 있었다는 ‘무수동(無愁洞)’ 마을과 ‘앞골’ 마을을 잇는 다리다.

▼ 인북천(하류방향)

▼ 다리를 건넌 다음에는 인북천을 오른쪽으로 바꿔 차고 간다. 길은 정비가 잘 되어 있었다. 쉼터를 만들어 놓았는가 하면, 곳곳에 벤치를 놓아 쉬어갈 수 있도록 했다.

▼ 11 : 01. 그렇게 얼마간 걷자 이번에는 ‘무쇠점1교’가 반긴다. 다리를 건너면 ‘모래내’ 마을, 즉 사천동(沙川洞)으로 연결된다.

▼ 다리 서단(西端)은 벽화로 도배되어 있었다. 사천(沙川)은 모래에서 유래된 지명이라고 했다. 상류에서 쓸려온 모래가 유속이 느려지는 이곳에 쌓여 모래톱 지형을 만들었단다. 그런데 뜬금없는 저 ‘고래’는 뭐란 말인가. 벽화의 바탕도 강이 아니라 바다가 분명하다. 설마 우리가 낸 혈세를 장난삼아 써버린 것은 아니겠지?

▼ 다리 아래는 쉼터로 꾸며놓았다.

▼ 정자까지 지어 풍치를 더했다. 그것도 이국적인 냄새를 솔솔 풍기는 것으로.

▼ 탐방로는 이제 오른쪽 둑길을 따라간다. 포토죤 조형물이 ‘대바위 마을’에 들어왔음을 알려준다. 하지만 인제군청의 지명유래 코너 ‘서흥리 편’에는 그런 지명이 없었다. 서흥2리에 ‘용늪대바위마을’이 있기는 한 모양인데 어디를 이르는지는 모르겠다.

▼ 11 : 12. 둑길은 인북천 물굽이가 만들어놓은 충적평야를 에돌아가는 모양새이다. 그 중간쯤에 있는 ‘영농조합법인’의 이름도 역시 ‘대바위골’이었다. 그나저나 정미소는 ‘사천동’ 들녘의 넓이만큼이나 컸다. 하긴 인제군 SNS 홍보단은 대바위골을 일러 논농사가 많아 인제군에서 가장 먼저 모내기를 하고 가장 먼저 추수를 하며 추석 제사상에도 가장 먼저 햅쌀밥을 올린다고 하지 않았던가.

▼ 정미소 앞에 취수 때 사용하는 듯한 시설이 설치되어 있었다. 강에서 끌어올린 물을 소방차에 담기 딱 좋게 생겼다.

▼ 11 : 16. ‘사천교’에 이른다. 나란히 놓인 두 개의 다리가 인북천을 가로지른다. 새로운 다리(사천교)가 놓이면서 옛 다리는 ‘구(舊)사천교’가 되었다.

▼ ‘사천리(沙天里)’는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사라진 지명이다. 논장리(論章里)와 합쳐져 서흥리(瑞興里)가 되었다. 옛 지명을 되찾고 싶었던지 표지석에 옛 지명을 적어 넣었다.

▼ ‘사천교’를 건너는데 서화면 청년들이 안녕히 가시라며 작별인사를 건네 온다. 맞다. 서흥리와 월학리(새재)를 연결하는 ‘사천교’는 서화면과 북면의 경계를 이룬다. 서화면의 산하를 숨 가쁘게 달려온 평화의길이 이곳에서 북면에게 바톤을 넘겨준다.

▼ 다리를 건너면 월학리 ‘띠두루(버스정류장은 뒤뚜루)’. 띠밭이 있었다는 데서 유래된 지명이란다. 이곳도 역시 인북천이 만들어놓은 충적지, 평화의길은 그 충적지를 에돌아가는데, 그곳에 군부대가 들어서 있었다. ‘인제가면 언제 오나, 원통해서 못 살겠네’. 라때 시절, 죽어도 들어가기 싫었던 곳이기도 하다.

▼ 군부대는 사진촬영 금지. 대신 꽁꽁 얼어붙은 인북천 너머로 카메라 앵글을 맞춘다. 험상궂은 바위절벽이 나름대로의 아름다운 경관을 만들어내고 있다.

▼ 군부대가 끝나는 곳에는 ‘백마정’이란 정자가 지어져 있었다. ‘백마촌(白馬村)’에 왔다는 얘기일 것이다. 한국전쟁 직후 주둔하고 있던 9사단의 백선엽 장군이 이곳에 주택을 짓고 주민들을 입주시키면서 생긴 마을이다. 부대 마크인 ‘백마’에서 이름을 따왔다고 한다.

▼ 정자에는 춘향전에서 이몽룡이 읊던 시가 적혀있었다. 빈부의 격차가 점점 심해지는 요즘, 되새겨 볼만한 시가 아닐까 싶다. 먹고 마시며 즐기는 자유야 가진 자들 마음일지 모른다. 하지만 이를 비난의 눈초리로 바라보는 자유 또한 우리들 마음이지 않겠는가. <금항아리에 담긴 향기로운 술은 백성의 피요/ 옥쟁반에 담긴 맛있는 안주는 만백성의 기름이라/ 촛대에서 촛농이 떨어질 때 백성이 눈물 흘리고/ 노랫소리 높은 곳에 백성들이 원망하는 소리 높더라>

▼ 둑길은 제법 길게 이어지고 있었다. 왼쪽에는 백마촌, 송학동(松鶴洞) 같은 작은 마을들이 들녘 끝 산자락에 옹기종기 모여 있다.

▼ 인북천의 풍경도 만만찮다. 크고 작은 바위들이 잠깐의 눈요깃거리로 충분했다.

▼ 11 : 46. ‘풍전교’가 다시 인북천을 건너가란다. 송학동과 풍전동(楓田洞)을 잇는 다리다.

▼ 인북천(하류 방향). 굽이굽이 돌아가며 구미동으로 흘러간다.

▼ 다리 건너(西端)에는 작은 쉼터가 만들어져 있었다. 해학 넘치는 장승도 눈에 띈다. 하지만 정비를 하지 않는 듯 장승 하나는 바닥에 누워 썩어가고 있었다.

▼ 11 : 50. 풍전동 마을로 올라가던 평화의길은 ‘풍전1교’에서 ‘⊃’자 모양으로 되돌아간다.

▼ 강변을 따라 200m쯤 내려갔을까 느닷없이 ‘인북천’ 위로 올라간다. 자전거가 교차할 수 있을 정도의 넓이로 다리를 만들어 놓았다. 허리를 곧추세운 산자락을 피하다보니 어쩔 수 없었나 보다.

▼ 강 건너는 송학동(松鶴洞)이다. 소나무가 울창하고 학이 많았다는 데서 유래된 지명이다. ‘월학초등학교’까지 들어서 있을 정도니 산촌마을치고는 제법 큰 편이다.

▼ 다리 구간을 벗어나 ‘구미동’으로 들어간다. 드넓은 들녘은 온통 인삼밭 차지였다. 지구의 온난화는 인삼 재배의 북방 한계선을 끌어 올렸다. 금산(충남)·영주(경북) 일대에서 경기·강원지역까지 북상했다. 덕분에 인제에서도 6년 근 인삼재배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단다.

▼ 본채에 외벽을 하나 더 두른 민가가 눈길을 끈다. 울릉도, 그중에서도 춥기로 유명한 나리분지의 ‘투막집’을 닮았다. 투막집은 바람과 폭설에 대비해 만든 이중벽 구조인 우데기(눈비나 바람을 막기 위해 집 바깥쪽에 둘러친 외벽)가 독특한 집이다.

▼ 민가 옆에 ‘디딜방아’가 지어져 있었다. 방아류는 공이를 움직이는 힘의 원천에 따라 명칭이 달라진다. 사람의 손을 이용한 ‘손절구’, 발로 디뎌서 움직이는 ‘디딜방아’, 물의 힘을 이용한 ‘물레방아’와 ‘통방아’로 나뉜다.

▼ 디딜방아는 발로 디디어 공이의 상하 움직임을 통해 곡식을 찧거나 빻는 방아이다. 다리, 방아채, 방아공이, 방아확 등으로 이루어지는데, 7~8명의 여인이 하루 두 섬의 쌀을 찧었다고 한다.

▼ ‘구미동(龜尾洞)’으로 들어가는 초입에 신사임당의 시비가 세워져 있었다. 대관령을 넘으며 어머니와 헤어지는 아픈 심정을 읊고 있는데, 구미동이 신사임당과 어떤 관계인지는 알 수 없었다.

▼ 12 : 11. ‘구미교’를 건넌다. 구미동과 ‘달빛소리마을’을 이어주는 다리다. 참고로 구미동은 여러 기의 고인돌이 발견되었을 정도로 역사가 깊다. 그런 분위기를 넌지시 알리고 싶었던지 달빛소리마을 쪽 초입에 장승을 세워놓았다.

▼ 인북천이 무척 넓어졌다. 물줄기가 양쪽으로 나뉘면서 중간에 섬을 만들어놓았다. ‘육지 속 섬’이지만 훈련장으로 여겨지는 시설물이 들어서있을 정도로 규모가 컸다.

▼ 다리를 건넌 다음 이번에는 인북천을 오른편에 끼고 간다. 그러자 군부대가 얼굴을 내민다. 건물의 크기나 숫자가 아까보다 훨씬 더 커진 것이 여단 이상의 부대가 들어서있지 않나 싶다.

▼ ‘육지 속의 섬’으로 연결되는 다리는 막혀있었다.

▼ ‘사현동’ 들녘도 역시 충적평야다. 하지만 이곳으로 오는 도중 만났던 다른 충적지들과는 달리 둑 안의 농경지가 인북천의 수위와 얼추 비슷하다. 강물에 쓸려온 토사가 쌓인 것이 아니라 둑이 축조되면서 생긴 농경지라는 얘기일 것이다.

▼ 30-1코스는 25km나 되는 긴 여정이다. 때문에 체력 안배가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그러니 탐방로 곳곳에 만들어놓은 정자나 벤치에서 틈틈이 쉬어가도록 하자.

▼ 제12 보병사단의 ‘을지신병교육대’라고 한다. 제12보병사단(을지부대)은 1952년 11월 8일 양양에서 창설되었다. 한국전쟁 때 강원도 면적의 1/4을 확장하는데 기여한 사단이다.

▼ 면회 오는 가족들이 많은지 부대 앞에 민박집이 커다랗게 들어서 있었다.

▼ 11 : 35. 잠시 후 30-1코스의 명물 중 하나인 ‘달빛소리교’에 이른다.

▼ 11 :35 – 12 : 52. 다리 초입에 쉼터를 만들어놓았다. 덕분에 준비해간 간식들을 나누며 푹 쉬다갈 수 있었다.

▼ 들녘 뒤 산자락에는 월학2리 사현동(沙峴洞) 마을이 들어서 있다. 고인돌과 민무늬토기가 산포한 지역으로 지난 1972년 경작 중에 간돌검과 간돌화살촉이 발견되기도 했다. 마을은 전체가 하나 되어 ‘달빛소리영농조합’을 운영하면서 달빛소리마을(펜션), 산촌체험관, 토속발효관 등의 공동사업장을 운영한다. 산채체험, 막장담그기체험, 송어잡기체험, 숲체험 등 다양한 체험을 즐길 수 있단다.

▼ 달빛소리교. 월학리(月鶴里)는 1914년 송학동(松鶴洞)과 월하동(月下洞)을 합쳐 만들었다. 예로부터 달이 청정하게 뜨고, 학이 무리지어 놀았다는 마을들이다. 청정한 달빛에 학의 울음소리와 인북천의 맑은 물소리를 더했으니 ‘달빛소리’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 다리는 평화누리길 구축사업의 일환으로 만들어진 자전거 도로이다. 하지만 을지신병교육대에서도 유용하게 활용하고 있단다. 교육장으로 이동하는 훈련생들의 안전이 확보되고, 거리 또한 많이 단축된다고 한다.

▼ 또 다시 인북천 둑길을 따라간다. 인삼밭과 인북천 사이로 쭉 뻗은 길을 걸으며, 맑고 시원한 공기를 가슴 깊이 들이켜 본다. 겨울 날씨답지 않게 온화한 기운이 가슴 밑바닥까지 파고든다.

▼ 입체적으로 만들어진 태양광발전소도 잠깐의 눈요깃거리로는 충분했다.

▼ 13 : 06. ‘대터교’에 도착했다. 물길이 굽이도는 인북천의 서안에 들어서있는 ‘대터(竹垈)’ 마을로 이어주는 다리다. 참고로 대터마을은 한자로 죽대(竹垈)라 적는다. 마을에 대(竹)가 무성하다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 ‘대터교’ 서단에 자리한 식당은 ‘출렁다리’라는 상호를 내걸고 있었다. 대터교가 놓이기 전에는 ‘출렁다리’가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 다리를 건너지는 않는다. 스치듯 지나친 다음 계속해서 둑길을 따라간다.

▼ 커다란 시멘트 뭉치가 문설주처럼 놓여있었다. 인북천에는 아예 줄로 서서 물길을 가른다. 대전차 방어시설인 ‘용치(龍齒)’로 용의 이빨처럼 생겼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여졌다.

▼ 13 : 22. ‘도리촌교’는 스치듯 지나간다. 다리를 건너면 ‘453번 지방도(금강로)’로 연결된다.

▼ 다리 서단에 ‘도리촌’ 표지석이 세워져 있었다. 말거리 북쪽 강가에 있는 ‘도리도리’ 마을의 입구라는 얘기일 것이다.

▼ 인북천 물길은 쉼이 없다. 하지만 오늘은 얼음 속에 갇혀버렸다. 멍하니 물 흐르는 소리만 들어도 시름이 사라져버릴 터인데 아쉽다.

▼ 들녘 안쪽에는 ‘도리도리’ 마을이 들어서있다. 제법 너른 충적지를 뜨락 삼았지만 전형적인 산촌 풍경이다.

▼ 길이 인북천을 향해 바짝 자세를 낮춘다. 여름철 장마 때는 통행이 불가능할 수도 있겠다.

▼ 일 년 중 가장 춥다는 대한(大寒)이 코앞인데도 누군가는 고기잡이 삼매경이다. 젊은이들이 가장 싫어한다는 ‘라때’ 시절, 섬진강가에서 살던 필자도 심심찮게 고기잡이를 했었다. 당시만 해도 족대를 들이밀면 웬만한 장정 팔뚝보다 큰 메기며, 쏘가리, 빠가사리 같은 물고기들이 펄쩍 뛰어 족대 안으로 들어오곤 했었다.

▼ 13 : 37. 잠시 후 ‘효자교’를 건넌다. 다리 건너에서 오른쪽으로 가면 ‘소재골’이 나온다. 효자비가 있어 ‘효자골(孝子谷)’로 불리던 산골이다. 이게 구전되어오면서 효자가 소자를 거쳐 ‘소재’로 변했다고 한다. 다리 이름만이라도 옛 지명을 찾고 싶었던 모양이다.

▼ 이 일대는 ‘냇강마을’로 불린다고 했다. 대암산 자락에 위치한 산촌마을로, 선사시대부터 사람이 정착해 살아온 유서 깊은 곳이다. 대터, 소재골, 도리촌, 말거리, 김장소 등 다섯 개 소부락이 인북천을 따라 형성되어 있으며, 전통문화와 자연 생태가 어우러진 체험 공간으로 운영된다. 봄에는 들꽃과 농사 체험, 여름에는 물놀이와 냇강체험, 가을에는 수확 체험, 겨울에는 민속놀이 등 사계절 농촌 체험 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있다.

▼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소재교’를 건넌다. 냇강마을을 구성하는 소재골과 말거리를 잇는 다리다.

▼ 인북천은 이곳에서 평화의길과 이별을 고한다. 그리고는 원통리(북천을 흡수한다)를 지나 인제읍 합강리에서 내린천과 합류한 뒤 소양강으로 이름을 바꾼다.

▼ 13 : 42. 다리 건너, 폐교된 효자분교에는 ‘청년커뮤니티센터’가 들어섰다. 19-49세 청년은 물론이고 인제군민 누구나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열린 공간이다. 그런데 청년이 49세까지란다. 노령화로 치닫고 있는 농촌의 현실이 적나라하게 반영된 나이가 아닐까 싶다.

▼ 다리 건너(東端)는 ‘말거리(馬坪)’이다. 샛강마을을 구성하고 있는 다섯 개 마을 중 하나로 말을 닮은 형국의 뒷산에서 유래된 지명이다.

▼ 이후부터는 ‘냇강마을로’를 따라간다. 고갯마루까지 100m쯤 고도를 높여야하기 때문에 살짝 가파른 구간이 나타나기도 한다.

▼ 이즈음 인북천 너머에 있는 ‘김장소 들꽃마을’이 조망된다. 삼척 김씨 집성촌이었다는 마을로 냇강두레농촌체험관, 들꽃사랑센터, 연꽃정원, 자생식물원, 자작나무길 등의 볼거리들로 꾸며져 있다.

▼ 14 : 07. 대전차방호벽과 을지장병기본훈련장을 지나 해발 322m의 고갯마루를 넘는다. 월학리와 원통리의 경계가 되는 고개이니 뭔가 이름이 있을 법한데 찾아낼 수는 없었다.

▼ 14 : 15. 고개를 내려가면 원통생활체육공원이 반긴다. 축구장과 농구장, 테니스장, 풋살장, 족구장은 물론이고 체육관까지 다양한 체육시설이 들어서있는 스포츠 컴플렉스(Sports complex)이다.

▼ 체육공원 앞에서 도로를 버리고 샛길로 들어섰다. 산 아래 자리한 원통 시가지가 살짝살짝 고개를 내민다.

▼ 14 : 22. 원통2리 마을회관을 지난다. 전설처럼 떠돌던 ‘인제 가면 언제 오나, 원통해서 못 살겠네’의 본고장에 들어온 것이다. 당시야 어디서 근무하던 힘든 군 생활이었지만 말이다. 기합이나 구타가 없어졌다지만 지금도 원해서 군에 가는 젊은이들은 흔치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꿋꿋이 나라를 지켜주고 있는 장병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해본다.

▼ 잠시 후, 원통(元通) 시가지로 들어선다. ‘원통’은 조선시대 인제읍과 한계령을 잇는 교통 요충지로, 말을 갈아타던 원통역(圓通驛)에서 유래된 지명이다.

▼ 14 : 29. 원통버스터미널은 인근 군부대 장병들이 휴가를 나가기 위해 거쳐야 하는 관문이다.

▼ 14 : 32. 원통오거리 회전교차로에서는 12시 방향이다.

▼ 14 : 38. 중앙공원에 이르면서 트레킹이 종료된다. 완주 인증 QR코드는 공원 문설주에 붙어있다. 오늘은 17.78km를 4시간 20분에 걸었다. 출발 지점인 논장교에서부터의 거리에다 물빛테마공원을 다녀온 거리와 시간을 더했다.

▼ 오늘도 집사람이 함께 해줬습니다. <어두운 곳에서 혼자 울지 마라/ 빛나는 것만이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그는 너로 인해 빛나는 것이고/ 너 또한 그로 인해 존재하는 것이다/ 때가 되면 모두가 너의 곁으로 돌아올 것이다 - 中略 - 외롭다고 울지 마라/ 너는 결코 혼자가 아니다/ 너의 슬픔은 그의 행복이고/ 그의 슬픔은 너의 행복일진대/ 때가 되면 모두는 모두의 경계를 넘나드는 것을/ 모두는 모두의 반쪽일 뿐/ 외롭다고 울지 마라> 김인화의 시 ‘가벼운 것들의 반란' 중 초반부와 후반부입니다. 사소한 일까지도 함께 해오고 있는 우리 부부의 삶을 읊을 것 같아 유난히 좋아하는 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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