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MZ 평화의길 22코스(화천대교 - 풍산교)
여행일 : ‘25. 9. 20(토)
소재지 : 강원도 화천군 화천읍 일원
여행코스 : 화천대교→살랑교→꺼먹다리→딴산유원지→풍산교(거리/시간 : 15.3km, 실제는 역방향으로 14.28Km를 3시간 30분에)
함께한 사람들 : 청마산악회
특징 : 드디어 ‘코리아둘레길’의 4,500km 전 구간이 완성됐다. 2009년부터 시작된 ‘코리아둘레길’은 2016년 해파랑길(동해), 2020년 남파랑길(남해), 2022년 서해랑길(서해)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2024년 9월, 마지막 구간인 DMZ 평화의길(이하 평화의길) 개통으로 ‘코리아둘레길’이 완성됐다. DMZ 일대를 따라 구축한 코스로, 자유롭게 방문하는 횡단노선과 민간인 통제지역까지 들어갈 수 있는 투어 프로그램인 테마노선으로 구성된다.
▼ 10 : 00. 들머리는 풍산교(화천군 화천읍 풍산리). 식사 장소가 마땅찮아 역방향으로 진행했다.
중앙고속도로 춘천 IC에서 내려와 46번·5번 국도와 403번 지방도를 연이어 타고 ‘화천’으로 온다. ‘화천대교오거리’에서 평화로(461·460번 지방도)로 옮겨 ‘평화의 댐’ 방면으로 8km쯤 올라오면 ‘풍산2리 마을회관’에 이른다.

▼ 완주 인증 QR코드는 ‘풍산천’ 둑길(육교가 ‘풍산교’)의 ‘23코스 안내판’에 붙어있다. 마을회관 앞에서 징검다리를 건너면 되는데, 장마철에는 300m쯤 떨어져 있는 ‘다락교’까지 ‘П’자형으로 돌아와야 한다.

▼ 화천대교(회전교차로)에서 풍산교까지 15.3km의 여정. 북한강과 북한강 지류인 ‘풍산천’의 물길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청정 화천의 다양한 풍경들을 만난다. 딴산유원지와 꺼먹다리, 살랑교, 화천산소길 등이 주요 볼거리로 꼽힌다.

▼ 10 : 20. 실제 출발지는 ‘풍산마을 로컬푸드직매장’. 탐방로에서 살짝 비켜나 있는 딴산유원지와 화천산소길 등 화천의 내노라는 자랑거리들을 둘러보기 위해 정규 코스를 3.5km쯤 생략하기로 했다.

▼ 10 : 20. 로컬푸드직매장의 왼쪽, 골목길로 들어가면서 트레킹을 시작한다.

▼ 10 : 23. 몇 걸음 걷지 않아 ‘평화의길’을 만났다. 앱이 0.17km를 걸었다고 알려준다. 반면에 ‘두루누비(코리아둘레길 앱)’는 풍산교에서 3.7km쯤 떨어진 지점이란다. 정규 코스에서 3.5km쯤 단축해서 걷는다고 보면 되겠다.

▼ 자전거길을 따라 남진한다. 길가는 온통 인삼밭 세상이었다. 인삼은 한번 심은 땅에 10년간은 다시 심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했다. 인삼을 심을 새 땅이 많을 뿐만 아니라 일교차가 커서 인삼의 품질과 생육환경에 유리한 강원도(영서)로 재배지가 옮겨왔나 보다.

▼ 인삼은 오래 묵을수록 약효가 더 뛰어나다고 했다. 하지만 빠르게 자라는 탓에 6년을 넘겨 살기 힘들고 7년 이상이 되면 보통 썩어버린다고 했다. 그렇다면 요것은 대체 몇 년 근이나 되었을까?

▼ 10 : 29. ‘집앞교’는 스치듯 지나간다. 다리 건너에는 딱 두 채의 민가가 있었다. 그들만을 위한 다리라서 ‘집+앞’이란 이름이 붙었을지도 모르겠다.

▼ 요즘은 시도 때도 없이 비가 온다. 오늘도 역시 추적추적 비가 내리고 있다. 하지만 길가 벼들은 통통하게 살이 올랐다. 풍년 예감이다.

▼ 왼쪽에서는 ‘풍산천(豊山川)’이 따라온다. 한목령(화천읍 풍산리)에서 발원 남동방향으로 흐르다 북한강으로 유입되는 11.95km 길이의 한강수계 지방하천이다.

▼ 쇠파이프로 만든 터널에 호박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비닐봉지 안에서 자라고 있는 것도 눈길을 끈다. 요즘은 호박을 매달아서, 그것도 규격화를 시켜가며 기르나 보다.

▼ 길을 낼 수 없는 곳에는 다리를 놓았다. 자전거 라이더들을 위한 길을 새로 냈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 길을 요즘 ‘평화의길’이 더부살이 하고 있고.

▼ 길은 대부분 ‘풍산천’의 둑길을 따라간다. 때문에 감입곡류(嵌入曲流)의 물길이 만들어놓은 충적지 들녘을 심심찮게 에돌아간다.

▼ 10 : 41. ‘호음교’도 스치듯 지나간다. ‘홈사리고개(kakaomap은 호응고개)’를 넘어 동촌리(파로호 수변마을)로 연결되는 2차선 도로를 횡단한다. 참! 다리 오른쪽에는 ‘호음동(好音洞, 또는 홈사리)’ 마을이 들어서 있었다.

▼ 10 : 48. 선반처럼 길을 매달아놓은 곳도 있었다. 하천에 교각을 세울만한 처지가 못 되었던 모양이다. 대전차방호시설(낙석형)도 눈길을 끈다. 저곳만 막아버리면 탱크는 옴짝달싹 못하겠다.

▼ 풍산천은 곳곳에서 두물머리를 선보인다. 소하천의 물줄기를 심심찮게 보태면서 등치를 부풀려간다.

▼ 10 : 58. ‘처녀고개’에 올라선다. 과거길 떠난 도령을 기다리던 전설 속의 처녀를 기념하는 빗돌이 세워져 있으니 한번쯤 읽어볼 일이다.

▼ 아주 먼 옛날 장래를 약속한 도령과 처녀가 풍산마을에 살았다. 어느 해 도령은 과거를 보기 위해 한양으로 떠나며 고갯마루에서 장원급제하고 돌아올 자신을 기다려달라고 했다. 처녀는 자기 키와 같은 소나무를 골라 도령의 버선목을 매달아 놓고 기다렸다. 십수 년이 지나 장원급제를 하고 돌아온 도령은 버선목을 바꿔 달기 위해 소나무에 오르던 처녀가 미끄러져 강에 빠져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고, 곧바로 벼슬을 버리고 풍산마을에서 두문불출하며 농사를 지으며 살았다고 한다. 그로부터 마을에 풍년이 들자 사람들이 ‘풍산리’라 이름 짓고, 처녀의 명복을 빌기 위해 그녀가 버선목을 매달았던 소나무를 성황으로 모시고 고개 이름을 ‘처녀고개’라 지었다고 한다.

▼ 11 : 01. ‘딴산 숲 체험장’ 입구. 시야가 툭 트이는 곳이니 그냥 지나치는 일이 없도록 하자.

▼ 난간에 서자 ‘딴산 폭포’가 한눈에 쏙 들어온다. 시선을 조금만 비틀면 북한강 너머에 들어선 펜션단지가 덤으로 포개지며 한 폭의 풍경화로 둔갑한다. 그것도 잘 그린 그림으로다.

▼ 평화의길을 잠시 벗어나 ‘딴산 유원지’를 둘러보기로 했다. 첫 번째 방문지는 ‘딴산 숲 체험장’. 문이 닫혀있지만 빈틈을 이용해 안으로 들어갔다. 참고로 ‘딴산유원지’는 풍산천이 북한강에 합류되는 ‘두물머리’에 조성된 유원지다. 물가에 홀로 섬처럼 두둥실 떠 있는 딴산의 모습도 이채롭지만 일대의 산그늘과 강물이 시원해 쉼터로 부각되고 있다. 1992년부터 마을관리휴양지로 지정, 마을에서 위탁 관리·운영케 하고 있단다.

▼ 잠시 후 ‘유아 숲 체험원’에 이른다. 울울창창한 잣나무 숲속에 어린이들을 위한 각종 놀이거리(그물놀이대·통나무평균대·밧줄매달리기)과 구경거리(동물원·곤충호텔), 체험거리(방앗간·흙더미만들기)가 들어서 있다.

▼ 이즈음 ‘출렁다리’를 눈에 담을 수 있다. 다리를 건넌 길은 서슬 시퍼런 암릉길을 지나 ‘딴산폭포’의 상단에 만들어놓은 전망대로 연결된다. 전망대에 오르면 풍산리 계곡수와 화천댐 방류수가 만나 이루는 절경이 발아래로 펼쳐진다고 했다.

▼ 조금 더 걸어 출렁다리로 올라서본다. 길지도 그렇다고 높지도 않다. 하지만 흔들거림이 상당해 아찔한 스릴을 선사해 준다. 하지만 끝을 막아놓아 ‘폭포 전망대’까지 올라가보지는 못했다.

▼ 냇가로 내려와 ‘딴산(165m)’을 눈에 담는다. 산이라기보다는 섬같이 물가에 떠 있는 조그만 동산이다. 구전에 의하면 금강산 1만2000봉 중 하나가 되기 위해 금강산으로 가던 바위가 이미 다 채워졌다는 소식을 듣고 이곳에 주저앉았다고 한다. 물가에 홀로 떨어져 있다 하여 '딴산'이라 부른단다.

▼ 딴산유원지의 가장 큰 매력은 자연 그 자체라는 점이다. 앞으로는 풍산천을 합친 북한강이 흐르고 뒤에는 그늘 아래 텐트를 칠 수 있는 평평한 공간이 넉넉하다. 특히 별도의 비용 없이 이용이 가능한 노지캠핑장이라는 게 자랑거리다. 대신 전기시설이나 상하수도가 없다는 점은 감안해 두자.

▼ ‘토속어류생태체험관’이 있는 건너편 펜션단지는 잠수교로 연결된다. 낚시꾼들로부터 사랑을 듬뿍 받는 장소이다. 아니 낚싯대를 까딱까딱 거리는 것이 물고기를 낚으려기보다는 희롱하는 선에서 만족하는가 보다.

▼ 잠수교는 ‘딴산폭포’를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이다. 2005년 설치된 높이 80m의 인공폭포로 시원스럽게 쏟아지는 물줄기가 여느 유명 폭포에 부럽지 않다. 겨울철에는 거대한 빙벽으로 변해준단다. 접근성이 좋은데다 초보자에서 고수까지 이용할 수 있는 다양한 난이도를 갖춰 빙벽 등반을 즐기는 ‘아이스맨’들이 즐겨 찾는다나?

▼ 집사람이 자신의 손바닥 위에 폭포를 올려놓아 달란다. 코로나(Covid-19)로 세상이 시끄럽던 시절, 우리 부부는 귀국길이 막힐 것을 걱정하며 이집트에 머물고 있었다. 당시 짬이 생겨 ‘기자의 피라미드(Giza pyramid complex)’에 들렀었고, 현지인의 현란한 손놀림으로 태어나는 사진들을 보며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스핑크스와 피라미드를 손바닥 위에 올려놓는가 하면 잡고, 때리며 뽀뽀하는 등 희한한 포즈들로 인생샷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집사람이 당시의 추억이라도 떠올렸는지 모르겠다.

▼ 11 : 18. 유원지를 빠져나오면 아까 숲체험장 앞에서 헤져졌던 ‘평화의길’과 다시 만난다. 참! 주어진 시간에 맞추다보니 ‘토속어류생태체험관’은 들러보지 못했다. 화천에서 서식하고 있는 토속어류들의 생태를 엿볼 수 있는 기회였는데 아쉽다.

▼ 몇 걸음 더 걸으면 이번에는 ‘평화로(460번 지방도)’가 맞는다. 안내판은 강 건너를 ‘어룡동(魚龍洞)’으로 적고 있었다. 구만리에 속한 자연마을로 ‘어리구지’라고도 불리는데, 마을 앞에 있던 커다란 연못(龍沼)에서 용이 승천하기 전 잠시 머물다갔다는 데서 유래된 지명이다.

▼ 왼쪽(평화로)은 ‘처녀고개’로 올라가는 길목.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처녀가 어딘가를 하염없이 바라본다. 전설의 풍산리 처녀가 과거길 떠난 도련님을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는 모양이다.

▼ 맞은 편 ‘암봉’은 산양의 놀이터라고 했다. 인터넷에는 저 꼭대기에서 노닐고 있는 산양을 촬영한 사진이 돌아다니기도 한다. 그러나 오늘은 눈에 띄지 않는다. 아쉽게도 나들이 대신 집에서 쉬시나 보다.

▼ 11 : 21. 평화의길은 이제 ‘평화로’를 따라간다. 북한강 쪽 가장자리를 따라 자전거길을 따로 만들어 놓았다. 그 초입에 ‘한강합류점’으로부터 115km가 떨어진 지점이라는 말뚝이 세워져 있었다. 북한강이 한강으로 흡수되는 양수리(양평) 두물머리부터 계산한 거리다.

▼ 줄지어 늘어선 은행나무가 그림처럼 고운 구간이다. 잎이 노랗게 물드는 가을철에는 더 고운 길로 변할 것이다.

▼ 길을 걷다보면 크고 작은 물줄기들을 곳곳에서 만나게 된다. 심지어는 손바닥만 한 골짜기에서도 구색을 갖춘 폭포를 만날 수 있다. 화천군은 면적의 86.2%가 산지로 형성된 산악지대이다. 동·서·북부에 높이 1,000m 이상의 높은 산들이 줄지어 있어, 북쪽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낮은 지역을 따라 군의 중남부로 흘러 파로호로 흐른다. 그래서 흔히 화천을 ‘산과 물의 나라’라고 일컫는다. 산자수명(山紫水明)이라고나 할까?

▼ ‘한강합류점’으로부터 114km 떨어졌단다. 이런 말뚝들은 1km를 걸을 때마다 계속해서 나타난다.

▼ 11 : 41. ‘643고지 전투전적비’ 표지판. 전란극복의 현장이라는데 어찌 들어가 보지 않을 수 있겠는가.

▼ 아프리카 돼지 열병 때문에 문이 닫혔으나 잠겨있지는 않아 빗장을 풀고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대신 ‘출입문은 닫고, 훼손은 신고하고’는 필수다.

▼ 수리봉(643 고지)지구 전투전적비는 한국전쟁 당시 중공군 제20군 예하 58·60·151 등 3개 사단이 화천댐과 발전소를 탈환키 위해 대규모 침공을 감행해 왔으나 국군 6사단과 미군 17연대가 합동작전을 펼쳐 치열한 백병전 끝에 고지를 사수한 전공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빗돌이다. 당시 아군은 적 21,550명을 사살하고 2,617명을 생포했으며 야포 86문과 기관총·소총 2,695점 등을 노획하는 등 한국전쟁의 무훈사에 빛나는 대전과를 올렸다고 한다.

▼ 11 : 46 – 11 : 57. 조금 더 걸으면 ‘꺼먹다리(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 제110호)’가 맞는다. ‘꺼먹다리’는 화천댐이 준공되면서 1945년에 건설한 다리이다. 한국전쟁 당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지만 남과 북을 잇는 유일한 교량이어서 어느 측에서도 다리를 폭파하지 않았다. 총알 흔적은 많이 남아 있지만 원래의 모습이 잘 보존되어있는 이유다. 하지만 일부 침목이 훼손된 채 난간도 없이 수십 년간 방치되다 2007년 문화재청의 승인을 받아 재정비 일반인에게 공개되었다.

▼ 폭 4.5m, 길이 204.84m의 다리는 철근콘크리트로 만든 기둥 위에 철골 구조물로 뼈대를 세우고 마지막으로 나무를 올려 완성하였다. 다리에 사용한 나무는 네모난 모양으로 깎은 후 대각선으로 놓았으며 부식을 막기 위해 콜타르를 칠하였다. 이 콜타르의 색이 검고 다리도 전체적으로 검은색을 띠므로 ‘꺼먹다리’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 다리는 3개국의 손을 거친 것으로도 유명하다. 교각은 일제가 세웠고 광복 이후 옛 소련, 지금의 러시아가 철골을 올렸단다. 상판은 물론 한국에서 놓았다.

▼ 계속해서 ‘평화로’를 따라간다. 왼쪽에서 따라오는 북한강을 빼면 특별한 볼거리가 없는 구간이다.

▼ 유해식물의 전시장? 국내, 국외 원산지를 대표하는 칡넝쿨과 가시박이 서로 뒤엉키며 치열하게 생존경쟁을 벌이고 있다.

▼ 처녀고개의 또 다른 전설에 나오는 ‘구만리(九萬里)’란다. 유학 온 총각에게 반한 중국 처녀가 있었다. 귀국한 총각을 찾아 만리(萬里)를 걸어온 그녀가 처녀고개에서 총각의 고향인 ‘살랑골’로 가는 길을 물었는데, ‘구만리’를 지나가야한다는 말을 듣고 살아서는 도착 못하겠다고 체념 해 그만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 간동면 ‘구만리(九萬洞)’를 ‘九萬+里’가 남았다는 뜻으로 이해한 것이다.

▼ 12 : 08. 강 건너에는 ‘화천수력발전소’가 있다. 일제강점기인 1939년 7월 경인공업지대에 대한 전력공급을 위해 설비용량 10만8,000KW(총저수량 10억2000만㎥)의 댐수로식 발전소를 착공, 1944년 5월과 10월에 1·2호기가 각각 준공되었다. 광복 후 38도선 이북에 위치하다 1950년 9월 우리 손으로 넘어 왔고, 북한의 역습으로 빼앗기고 빼앗는 공방전을 다섯 차례나 치른 끝에 1951년 4월에야 완전 수복하기에 이른다. 이 승리를 기념하여 현지를 방문한 이승만 대통령이 오랑캐를 격파한 호수라는 뜻으로 ‘파로호’라는 친필 휘호를 내리는 등, 당시 이 발전소를 얼마나 중요하게 여겼는지가 짐작된다.

▼ 12 : 11. 느닷없이 길이 숲속으로 파고든다. 북한강의 강변이 울창한 숲으로 변한 것이다. 1996년 4월5일, 제51회 식목일을 맞이하여 후손들을 위해 조성한 숲이란다. 그래서 이름도 ‘미래의 숲’으로 지었다.

▼ ‘미래의 숲’ 기념비.

▼ 숲 중간쯤에는 광장이 조성되어 있었다. 화장실까지 갖춘 널따란 주차장을 중심으로 정자와 파고라, 벤치를 배치해 여행자들이 쉬어갈 수 있도록 했다. 참! 오는 길에 ‘윗대이리 경로당’도 눈에 담을 수 있었다. 이곳 ‘대이리(大利里)’는 조선시대 수로운송의 거점인 대리원(大利院)이 있었다는 데서 유래된 지명이다. 옛날 이곳 사람들은 뗏목을 이용해 콩과 감자, 팥 등의 밭 농작물을 싣고 한양 마포나루까지 강을 따라 내려가 소금이나 옷가지 등 생활용품을 교환해 왔다고 한다. 하지만 1960년대 초 의암댐과 춘천댐이 건설되고, 신작로(국도와 지방도)가 만들어지면서 뗏목은 전설 속으로 사라졌다.

▼ 화천군 관광안내도. 토마토축제와 산천어축제를 대표 놀이거리, 그리고 살랑교와 백암산케이블카, 평화의 댐, 거례리 사랑나무를 대표 볼거리로 꼽고 있다.

▼ ‘미래의 숲’은 광장을 지나서도 한참이나 더 계속된다.

▼ 도중에 ‘해병대 화천지구 전투전적비’도 만나게 된다. 한국전쟁 당시 화천댐 수문을 사수하는 등 공을 세운 해병대의 공적을 기리고 전사자를 추모하기 위해 2016년 세웠다. 김대식 장군의 흉상도 눈에 띈다. 해병대 창설요원을 거쳐 사령관(3대)까지 역임했으나 친일반민족행위자로 분류되는 인물이다. 그가 화천지구 전투 당시 해병대 1연대의 지휘자였던 모양이다.

▼ ‘통일기원비’도 스치듯 지나간다. 38선이 그어지고 둘로 갈라져 반목하며 살아온 지 48년. 이제는 겨레가 다시 하나 되고 땅과 얼도 다시 하나가 될 때라며 그 소망을 담아 빗돌을 세웠단다.

▼ 12 : 22. ‘구만교’ 앞 삼거리에는 ‘육군군사경찰 초소’가 있었다. 선임을 하늘처럼 받들어 모시며 하루하루를 버텨가던 ‘라때’의 군대. 당시 헌병은 만나는 것부터가 겁나는 대상이었다. 동두천에서 서울까지 나오는 동안 서너 번을 거쳐야하는 저런 초소가 무서웠던 나는 미군 버스로 서울 나들이를 할 수밖에 없었다. 카투사였기에 가능한 특권이었지만.

▼ ‘구만교’는 겉으론 평범하지만 파란 많은 우리나라 근세사의 증인이라고 했다. 4개국이 합작해 만들었다는 것이다. 해방 전에는 일제가 기초를 놓고,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소련과 북한이 교각을 놓았으며, 휴전 후 남한이 상판을 놓은 다국적 합작품이란다.

▼ 구만교의 옆모습. 화천읍 대이리와 간동면 구만리를 잇는다.

▼ ‘대붕교’로 가는 길. 세상에서 제일 재밌는 구경거리는 불구경과 싸움구경이라고 했다. 이 구간에서 우린 그 싸움구경을 실컷 하게 된다. 국내원산지와 국외원산지를 대표하는 유해식물인 칡넝쿨과 가시박이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것이다. 아쉽게도 승리는 외국에서 온 가시박 차지였다. 주변이 온통 가시밭넝쿨로 변한 걸로 보면.

▼ 12 : 30. 화천읍 대이리와 간동면 구만리를 잇는 또 다른 다리 ‘대붕교’는 다리 아래를 지난다.

▼ ‘대붕교’는 이웃 파로호에서 따온 이름이다. 파로호의 원래 이름은 ‘대붕제(大鵬堤)’였다. 날개처럼 생긴 호수가 하늘에서 보면 영락없이 대붕이 날아가는 모습이란다. 그게 해방되면서 ‘화천호’로 잠시 불리다가, 1951년 국군이 이곳에서 중공군 3만 명을 수장시키는 혁혁한 공을 세우자 이승만 대통령이 오랑캐를 격파한 호수라는 의미로 파로호(破虜湖)라는 휘호를 내렸다.

▼ 12 : 35. 길 주변에 ‘눈개승마’ 육성단지가 조성되어 있다. 대이리 일원 109.801 평방미터에 비점오염원(非点汚染源) 저감(低減)에 탁월한 효능이 있는 눈개승마를 심어놓았다. 우기 때 한강으로 유입되는 다량의 비점오염물질(흙탕물 등)을 저감시킴으로서 한강의 수질을 개선시키기 위한 방편이란다.

▼ 눈개승마는 20~30년의 다년생 작물로 높이 30~100cm로 자라며, 꽃은 6~8월에 노란빛이 도는 흰색으로 핀다. 경운작업이 없이도 토양의 유실방지 등 비점오염방지에 큰 효과가 있으며, 경관식물로서도 높은 가치가 인정된단다.

▼ 수익도 발생한다. 식재 3년 차부터 어린 순의 채취가 가능하며 5~9년에 본격적으로 수확되는데, 3가지 맛(소고기, 인삼, 두릅)이 난다고 해서 ‘삼나물’ 또는 ‘고기나물’로 불리기도 한다나?

▼ 12 : 41. ‘살랑교’ 북단으로 올라서자 ‘글자조형물’이 반긴다. 느긋이 앉아 주변 경관을 즐기라는 듯 벤치도 놓아두었다.

▼ 도로변 광장에는 각종 편의시설이 들어서 있었다. ‘학~씨! 파리채로 내려치고 쓰레빠루 후려쳐!’라는 기발한 광고판으로 유명한 ‘평양초계탕·막국수’집은 여행자들 사이에 소문난 맛집이고, 커피와 음료를 파는 ‘무인카페’도 눈에 띈다.

▼ 길이 290m에 폭이 3m인 ‘살랑교’는 사람과 자전거만 오갈 수 있는 인도교다. 간동면 구만리와 화천읍 대이리를 잇는데, 다리 남단에 위치한 ‘살랑골(구만리)’에서 이름을 따왔다.

▼ ‘두루누비’는 북한강의 북쪽 강변을 따라가는 저 자전거길을 따라가란다. 하지만 난 살랑교를 건너는 ‘숲으로 다리’를 이용하기로 했다. 다리품을 조금 더 팔아야겠지만 그에 대한 보상은 차고도 넘친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 다리 가운데 120m 구간은 투명유리가 설치된 ‘스카이워크존’이다. 교각 아래가 훤히 내려다보여 짜릿하다. 북한강의 하늘 위를 걷는 듯한 느낌이라고나 할까?

▼ 다리 위에 서면 시야가 훤하다. 다리는 높고 물길은 아득하다. 물길을 거슬러 오르면 종국엔 북한에 이를 터다.

▼ 하류 쪽에는 ‘숲으로 다리’가 놓여있다. 춘천호(북한강)의 수면에 폰툰(상자형 부유 구조물)이라 불리는 부교를 띄우고 그 위에 나무를 깔아 만든 물 윗길이다. 요즘 최고의 ‘핫플’로 떠오른 철원 물 윗길의 원조쯤 되겠다. 길이는 1.2km 정도. 코로나19 팬데믹에 이어 닥친 수해로 유실된 것을 2022년에 예전과 같은 모습으로 보수했다.

▼ 물을 건너면 산모퉁이를 따라 길이 나 있다. 뒤쪽은 다리 이름을 낳게 한 ‘살랑골’일 것이다.

▼ 살랑교 남단의 이정표가 이 코스(북한강의 남쪽 강변을 따르는) 역시 ‘평화의길’임을 알려준다. 하지만 이 코스를 따를 경우 두루누비가 지시하는 코스보다 1.1km를 더 걸어야 한다.

▼ 12 : 50. ‘숲으로 다리’ 입구. 탐방로는 이제 숲과 강을 바짝 끼고 걸을 수 있는 물 윗길을 따른다. 다리 이름은 김훈 작가가 지었다고 한다. 다리 끝자락이 숲길로 연결되는 구조를 본 작가가 ‘숲으로 다리’라는 이름을 붙이면서 입소문을 탔다. ‘칼의 노래’로 잘 알려진 김훈 작가의 유명세 덕을 톡톡히 보았다고나 할까?

▼ 올려다 본 ‘살랑교’. 살랑살랑 불어오는 북한강의 시원한 바람과 로컬 이미지를 담았단다.

▼ ‘숲으로 다리’를 걷다 보면 강물 위를 걷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강물의 일렁임이 그대로 전해진다. 비 오는 날에는 강물 위로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촉촉한 감성에 젖어볼 수도 있단다. 특히 비가 그친 뒤 물안개라도 필라치면 더없이 몽환적인 풍경을 선보인단다. 반면에 바람이라도 세차게 불면 오금저리는 스릴을 느낄 수밖에 없다고도 했다. 그래서 ‘숲으로 다리’에선 맑은 날도, 흐린 날도 실패 없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다나?

▼ ‘숲으로 다리’ 중간쯤에는 벤치를 놓아두었다. 맑은 공기 마시며 쉬어 가기 딱 좋은 곳이다.

▼ 또 다른 쉼터. 이번에는 조형물까지 배치했다. 원 안에 ‘살랑교’의 주탑이라도 넣을라치면 환상적인 그림으로 변한다. 하긴 최고의 자전거 코스로도 꼽혔을 정도니 어련하겠는가. 부교와 숲길을 합치면 3km 남짓 되는데, 한국관광공사에서 선정한 ‘아름다운 자전거길 30선’에 꼽히기도 했다.

▼ 물위를 걷다보면 분위기 자체가 여행의 목적으로 변해버린다. 살랑대는 북한강 물결이 물고기 비늘처럼 반짝이는가 하면, 하늘하늘 불어오는 바람에는 가을 냄새가 물씬 풍겨난다.

▼ 13 : 06. 다리 끝은 2km쯤 되는 용화산 숲길과 연결된다. 위라리와 대이리 살랑골 사이의 산길로, 거의 원시림 상태로 보존된 숲과 만날 수 있다. 산림청에서는 이곳을 ‘살랑골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으로 지정·보호하고 있다.

▼ 탐방로는 이제 강기슭을 따라 화천읍내로 간다. 김훈 작가를 떠올렸음일까? 더 특별해진 길은 그의 소설 속 한 장면처럼 고요하고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 비탈진 산자락을 깎아 만든 길은 얼핏 ‘벼룻길’을 연상시킨다. 강변을 따라 굽이굽이 이어진 길은 자연과 사람을 잇는 감성 가득한 길이다. 강줄기를 따라 그려낸 수채화 같은 길로, 잔잔한 강물과 초록빛 자연이 걷기 여행자의 마음을 정화시켜 준다.

▼ 이 구간은 ‘파로호 산소(O2) 100리길’의 일부라고 했다. 화천의 자연과 문화를 온전히 느낄 수 있다는 명성답게 곳곳에서 뛰어난 경관을 마주한다. 참고로 ‘파로호 산소 100리길’은 화천 하남면 연꽃단지에서 북한강변(춘천호 담수구역)을 따라 화천댐까지 연결하는 순환코스이다. 전체 연장 길이가 42km라 ‘100리 길’이라 명명했다.

▼ 길은 구명장비까지 갖추고 있었다.

▼ 13 : 19. ‘살랑골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을 벗어나는 곳에 게이트가 만들어져 있었다.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 안내판과 화천관광안내도도 눈에 띈다. 잠시 쉬어가라는 듯 정자도 지어놓았다.

▼ 용화산 숲길은 ‘동려이십삼선로’에도 뽑혔나보다. ‘신선이 다니는 길’이라 해서 ‘선로(仙路)’란 이름이 붙은 길. 화천군은 관내에서 빼어난 생태길 23코스를 정해 '동려이십삼선로(同侶二十三仙路)'란 길을 만들었다. 이름을 풀어보자면 '함께 걷는 스물세개의 신선의 길'쯤 되겠다.

▼ 숲길은 보호구역을 지나서도 조금 더 이어진다.

▼ 13 : 22. ‘위라리길’로 올라선 다음 강변을 따라간다. 이때 화천실내체육관 등 강 건너 풍경을 실컷 눈에 담을 수 있다. 참! 이 구간은 흐린 날이나 이른 아침이 제격이라고 했다. 강을 따라 물안개라도 피어오를라치면 몽환적인 분위기가 극대화된단다.

▼ 화천 마리나 수상스키장. 여름뿐만 아니라 봄부터 가을 끝까지 모터보트나 바나나보트 등 수상 레저를 즐길 수 있는 곳이다.

▼ 강 건너에 있으나 변경된 코스 때문에 가보지 못한 ‘미륵바위’는 몽중루 작가님의 것을 빌려왔다. 광장에 임옥상미술연구소가 제작한 ‘흐르고 또 흐르고’란 조형물과 그 옆에 다섯 개의 미륵바위가 놓여있다. 하지만 미륵바위의 조성 시기는 알려지지 않는다고 했다. 그저 이곳이 조선시대 후기에 건립된 절터로 추정된다는 구전이 전해질 뿐이란다.

▼ 화강석으로 제작된 5개의 미륵 중 가장 큰 미륵은 높이 170cm, 둘레 130cm로서 이보다 작은 미륵 1기와 보다 작은 미륵 3기가 나란히 북한강을 바라보며 앉아있다. 생기기는 어설퍼도 영험했던 모양이다. 화천읍 동촌리에 사는 장모라는 선비가 이 바위에 극진한 정성을 들여 과거에 급제하여 양구현감까지 제수되었다는 전설과 소금배를 운반하던 선주들이 안전한 귀향과 함께 장사가 잘 되기를 바라며 제를 올렸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 길은 ‘화천 Sports complex’를 향해 간다. 위라리(하남면)에 종합경기장, 체육관, 파크골프장 등 다양한 체육시설이 들어서 있다. 화천박물관과 화천소방서, 화천중고등학교도 화천읍이 아닌 저곳에 모여 있다. 참고로 위라리(位羅里)는 이랑에서 유래된 이름이다. 사래(이랑)가 길다고 해서 사래 또는 사내(沙內)로 불리가가 변하여 ‘위라’가 되었다고 한다.

▼ 13 : 49. 화천대교 남단. 참! 이곳에서 100m쯤 떨어진 곳에 위치한 ‘위라리칠층석탑(강원도 유형문화재)’은 다녀오지 못했다. 고려 제25대 충렬왕(1274-1308) 때 일명사(逸名寺)를 지으면서 함께 세웠다고 해서 ‘일명사탑’으로도 불리는 석탑이다. 하지만 평소보다 훨씬 더 걸은 집사람의 체력을 감안해 그냥 지나치기로 했다.

▼ 화천대교를 건너 화천읍으로 들어간다. 다리 양쪽 가장자리를 따라 인도가 따로 나있다.

▼ 13 : 58. ‘화천대교 회전교차로’에 이르면서 트레킹이 종료된다. 교차로 중심에는 ‘오층탑’이 자리하고 있었다. 높이가 25.5m나 되는 이 탑은 화천을 대표하는 ‘청정’을 테마로 삼았다고 한다. 5개의 읍과 면을 형상화하여 5층을 쌓고, 산과 강이 어우러지고 산천어와 수달이 사는 청정지역 화천을 의미하는 조각품들을 하단에 배치했다. 맞은편에는 산천어를 낚는 ‘얼곰이’조형물을 세웠다.

▼ 완주인증 QR코드는 ‘회전교차로 소공원’의 평화의길 종합안내도 기둥에 붙어있다. 그나저나 오늘은 14.28km를 3시간 30분에 걸었다. 볼거리로 넘치는 코스라는 점을 감안하면 적당한 속도로 걸었다고 보면 되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