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안고원길 12구간(고개너머 동향길)
여행일 : ‘24. 6. 15(토)
소재지 : 전북 진안군 안천면 및 동향면 일원
여행코스 : 안천소운동장→노채마을→긴재(인증)→상노마을→가래재(인증)→상능마을→추동교→외금마을→동향면사무소(거리/시간 : 16.7km, 실제는 ‘노채마을’부터 14.66km를 4시간 10분에)
함께한 사람들 : 청마산악회
특징 : ‘무진장(茂鎭長)’은 무주·진안·장수를 일컫는 말로 수려한 경관의 이미지를 동반한다. 그중 진안은 ‘북한에는 개마고원, 남한에는 진안고원’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수많은 산과 고갯마루를 품고 있는 곳이다. 산과 산 사이를 흐르는 물길도 마음껏 굽이진다. 그런 진안에 일상에서 찌든 근심을 훌훌 털고 자연을 즐기며 걷기 좋은 길을 내었으니 이게 ‘진안고원 길’이다.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길이 아니라 사람 왕래가 끊겼던 묵은 길, 잊혔던 옛길, 땔감과 약초 구하러 다니던 산길을 되살려냈다. 놀며 쉬며 걷는 재미있는 느린 여행길로 ‘미슐랭가이드지’로부터 별3개 만점을 받은 세계적인 둘레길이기도 하다.
▼ 안천소운동장(진안군 안천면 노성리)
통영-대전고속도로 무주 IC에서 내려와 19번 국도를 타고 장수방면으로 4km쯤 내려오다 ‘적상교차로’에서 30번 국도(진안방면)로 옮겨 12km쯤 들어오면 안천면 소재지인 ‘노성리’에 이르게 된다. 진안고원길(12구간) 조형물은 안천소운동장 앞에 조성해놓은 ‘길거리장터’의 캐노피(canopy) 아래 설치되어 있다.
▼ 용담호반에 자리한 안천면소재지를 출발 용담댐의 수원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긴재, 가래재 등 600m도 넘는 높은 고갯마루를 넘어야만 금강 상류의 ‘동향면’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점 때문에 ‘고개넘어’라는 수식어를 달았다. 때문에 가파른 산길을 올라가야 하는 수고로움은 필수, 눈에 들어오는 풍경도 단조로운 편이다. 대신 진안에서만 볼 수 있는 고원지대 특유의 풍광을 마주할 수 있다. 난이도는 ‘중’으로 분류된다.(지도는 ‘광주송아산악회’의 것을 빌려왔다. 궤적이 올바르게 그려진 유일한 지도였기 때문이다)
▼ 10 : 27. 실제 출발지는 ‘노채마을’. 5km 전방의 ‘상노마을’에서 기다리기로 한 집사람과 보조를 맞추기 위해 나도 2.2km를 단축해서 걷기로 했다. 기껏해야 2.8km를 더 걷는 셈이지만, 이게 높이 600m 남짓의 산 하나를 오롯이 넘어야하는 험난한 여정이라 시작부터 심난하다. 물론 서서히 걷는다면야 문제될 게 없다. 하지만 상노마을에서 내가 오기를 목이 빠져라 기다리고 있을 집사람을 생각하면 어찌 속도를 늦출 수 있겠는가.
▼ 뒤돌아본 ‘노채마을’. 문헌에는 ‘유채리(鍮債里)’로 적혀있기도 한데, 이는 옛날 이곳에서 놋그릇을 만들었다는 데서 유래한다. 놋쇠라는 한자어 ‘유(鍮)’가 우리말 놋으로 변해 ‘놋채’가 되었다가 한자화 과정에서 ‘노채(魯埰)’로 변했다는 것이다. 놋그릇 제조가 부(富)를 가져다주었던지 옛날에는 천석지기가 한둘이 아니었을 정도로 부촌이었다고 전해진다.
▼ 마을을 빠져나오다 눈물겹도록 반가운 풍경을 만났다. 그렇게나 귀한 과일이 주렁주렁 매달려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봉지로 싸놓은 것은 출하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얘기가 아니겠는가. 비록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사과나 배가 아닌 복숭아였지만 말이다
▼ 10 : 35. 한성양계장 앞에서 길이 둘로 나뉜다. 그런데 농장으로 들어가는 초입에 소독기가 설치되어있는 게 아닌가. 저렇게까지 외부로부터의 병원(病源)을 차단시키기고 있는데, 설마 걷기 여행자들에게 길을 내주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어 왼쪽으로 갔고, 덕분에 나는 무지막지하게 가파른 임도를 한참이나 오르다가 되돌아오는 우를 범하고 말았다. 하나 더. 사실은 갈림길에 ‘고원길’의 방향표지판이 설치되어 있는데, 섣부른 상황판단 때문에 이를 챙겨보지 못해 당한 참사였다.
▼ 한성양계장에는 ‘(주)하림’의 안내판(알차고 건강한 자연이야기 ‘자연실록’)이 세워져 있었다. ‘자연실록’은 (주)하림의 ‘친환경 닭고기’ 브랜드이다. 그러니 이 농장에서는 닭을 기르면서 항생제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얘기일 것이다. 덕분에 우린 건강한 밥상을 차릴 수 있고...
▼ 농장을 지나면서 길은 엄청나게 가팔라진다. 사람을 스틱, 차량은 사륜구동을 준비해야만 올라갈 수 있을 정도로...
▼ 10 : 48. 그러니 찾는 사람들이 드물 것은 당연. 민가(이정표 : 동향면사무소 13.1km/ 안천소운동장 3.6km) 앞에서 놀던 개도 낯선 이방인이 오히려 반가웠던 모양이다. 짖어대는 대신 자신의 은밀한 속살까지 선뜻 보여주며 반긴다
▼ 10 : 53. ‘어디서 오셨나요?’ 주인장도 내가 무척 반가웠던 모양이다. 걷기 여행자들이 잊을만하면 한둘씩 지나간다며, 조금 더 올라가면 조망 좋은 곳이 있으니 꼭 들어가 보란다. 아니 말만으로는 못 미더웠던 모양이다. 차량으로 나를 앞지르더니 탐방로를 약간 벗어난 지점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게 아닌가
▼ 10 : 54. 그의 말마따나 용담댐과 구봉산이 일목요연하게 펼쳐지고 있었다. 그는 관광해설사 역할까지 자진해서 해줬다. 용담댐과 구봉산이 품은 소소한 이야기들까지 꼼꼼하게도 들려주셨다. 지면을 빌어서나마 그분께 감사드려본다.
▼ 그런 풍경을 줌으로 당겨봤다. 용담호의 아름다운 자태가 여과 없이 드러난다. 하지만 그의 손가락 끝에 걸려있어야 할 구봉산은 실루엣으로 처리되어 버린다. 그러니 4봉과 5봉 사이에 놓여있는 구름다리를 보는 건 언감생심이 되어버렸다.
▼ 10 : 58. 그와 헤어져 다시 길을 나선다. 그리고 몇 걸음 더 걷지 않아 산길로 들어선다.
▼ 산길 초입에 모던(modern)한 벤치가 놓여있었다. 가파른 산길을 오르기 전 잠시 숨을 고르라는 모양이다.
▼ 눈앞에 펼쳐지는 조망은 덤이다. 하지만 조금 전 농부의 안내로 눈에 담던 조망에 비할 바는 아니다. 구봉산은 아예 보이지도 않고, 용담댐도 주변 잡목들이 시야를 방해하기 때문이다.
▼ 산길은 무척 가팔랐다. 곧장 올라가지를 못하고 왔다갔다 ‘갈 지(之)’를 써가면서 겨우겨우 고도를 높여간다. 그렇다고 너무 걱정할 필요까지는 없다. 곳곳에 침목계단을 깔아놓았으니 속도만 조금 떨어뜨리면 될 일이다.
▼ 첩첩산중, 그것도 허리를 곧추세우고는 오르지 못할 산비탈도 인간에게는 치열한 삶의 현장일 수밖에 없는 모양이다. 특용작물을 재배하고 있으니 산길을 벋어나지 말란다.
▼ 설마 저 취나물까지도 재배하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 그나저나 12구간은 걷는 내내 저런 산나물들과 마주할 수 있었다. ‘고개너머’라는 브랜드 수식어답게 높은 고개를 넘는 탐방로 주변에는 드릅, 취나물, 당귀, 머위 등 산나물들이 지천으로 널려있었다.
▼ 11 : 15. 숨이 턱에 차오를 즈음 ‘긴재’에 올라섰다. 왼쪽으로는 형제봉(658.9m)를 거쳐 지장산(773.6m)로 연결되며, 오른쪽으로는 싸리재와 고산(875.8m)을 지나 금강에서 숨을 다하는 능선상의 한 지점이다. 높이는 610m(산길샘 앱). 아까 오르막길이 시작되던 한성농장의 해발이 320m이었으니 290m를 치고 오른 셈이다.
▼ 이곳은 12구간의 첫 번째 인증지점이기도 하다. 완주에 인증을 더하고 싶은 여행자라면 이정표(동향면사무소 12.4km/ 안천소운동장 4.3km)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둘 일이다.
▼ 반대편으로 하산을 시작한다. 안천면(노성리)으로부터 바톤을 넘겨받은 고원길은 이제 동향면(자산리)로 들어간다. 그나저나 내려가는 길도 무척 가팔랐다. 곧장 내려가지를 못하고 왔다갔다 ‘갈 지(之)’를 써가며 겨우겨우 고도를 낮추어간다.
▼ 잠시 후 내려선 계곡은 원시의 숲을 이루고 있었다. 하지만 길은 또렷하게 나 있었다. 표지기 또한 촘촘하게 매달려 있어 길을 잃을 염려는 없었다.
▼ 11 : 25. ‘상노마을’로 내려선다. 법정 동리인 자산리(紫山里)를 구성하는 6개 행정부락(대야·상노·용암·중노·하노·후고산·고산골) 중 하나로 해발이 456m나 되는 첩첩산중에 하늘 아래 첫 동네인양 들어앉았다. 진안군(안천면)과 무주군(부남면)의 경계에 놓여있기도 한데, 산천경개를 유람하던 ‘창령 성씨’(昌寧成氏)가 마을 뒷산인 국사봉(國士峯,756.8m)의 아름다움에 반해 정착하면서 마을이 생겨났다고 전해진다.
▼ 마을회관 앞에서 길이 좌우로 나뉘고 있었다. 이정표(동향면사무소 11.7km/ 안천소운동장 5.0km)는 왼쪽을 가리킨다.
▼ 군내버스 정류장, 회차(回車) 지점이어선지 꽤 넓은 공터로 이루어져 있다. 대형버스도 넉넉하게 차를 돌릴 수 있겠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를 몰랐던 나는 산악회장에게 13번 국도변에 있는 ‘하노마을(이곳으로 들어오는 1차선 도로의 초입)’까지만 집사람을 실어다 줄 것을 부탁했고, 덕분에 집사람은 2.5km나 더 걷는 수고로움을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 마을을 벗어나면 길은 임도로 연결된다. 산허리를 에돌아간다고 보면 되겠다. 참! 상노마을은 ‘갈골’로도 불린다고 했다. 자하리(紫霞里)와 합쳐지기 전의 지명인 ‘노산리(蘆山里)’도 주위 산이 비안함로형(飛雁含蘆形 : 기러기 갈잎을 물고 나른다)이라는 데서 유래됐다. 이 마을에 갈대가 많았다는 얘기가 아닐까 싶다. 하지만 그 어디서도 갈대는 찾아볼 수 없었다. 대신 눈에 들어오는 공터마다 망초만 흐드러지게 피어났다.
▼ 망초(亡草)가 밭에 자라면 농사를 망치고, 농사를 망치면 나라가 기운다고 했다. 뽑고 또 뽑아도 없어지지 않는데 질린 농부가 ‘에이! 망할 놈의 풀’이라 투덜댔다는 데서 유래된 이름이라는 설도 있다. 농부, 아니 온 나라가 싫어한다는 것을 에둘러 표현한 게 아닐까 싶다. 하지만 살림살이가 나아지면서 추억속의 옛 얘기가 되어 버린지 오래다. 어린잎은 봄나물이 되어 식탁으로 올라가고, 초여름이면 산하를 온통 하얗게 물들이며 여심을 자극한다.
▼ 집사람과 만난 다음부터는 걷는 속도를 뚝 떨어뜨렸다. 새순으로 돋아난 ‘드룹’을 채취하느라 부산을 떠는 집사람과 보조를 맞추기 위해서다. ‘단오’가 지난 지 일주일도 되지 않았으니 웬만한 산나물은 다 먹을 수 있다며 ‘참취’나 ‘당귀’의 연한 잎도 함께 따고 있다.
▼ 그렇다고 방심을 끼고 사는 그녀의 눈에 꽃이 들어오지 않겠는가. 꽃이 화려하고 예뻐서 나리꽃 중 으뜸으로 치는 ‘참나리’가 꽃망울을 활짝 열었으니 말이다. 꽃말은 순결, 깨끗한 마음, 존엄. 아름다운 꽃만큼이나 고귀한 의미를 품었다.
▼ 11 : 51. 하노마을에서 시작되는 메인 임도와 만난다. 이곳을 기점으로라도 삼으라는 듯 이정표(동향면사무소 10.5km/ 안천소운동장 6.2km)에 ‘삼거리’라는 이름표까지 달아놓았다.
▼ 임도 오른쪽으로 펼쳐지는 풍경. 발아래는 하노마을에서 올라오는 임도, 그 뒤는 아까 노채마을에서 넘어왔던 형제봉 능선이다. 그 너머에서 고개를 내밀고 있는 건 ‘고산(875.8m, ‘깃대봉’으로도 불리는데 암릉을 걷는 재미가 제법 쏠쏠하다)’이 아닐까 싶다.
▼ 임도는 ‘가래재’를 향해 올라간다. 500m를 걸어가는 동안 50m쯤 고도를 높이는 정도이니 별 어려움 없이 올라갈 수 있는 구간이다.
▼ 12 : 00 – 12 : 05. 두 번째 인증지점인 ‘가래재(이정표 : 동향면사무소 10.0km. 안천소운동장 6.7km)’에 올라선다. 덕유지맥 봉화산(885.6m)에서 국사봉(757.7m)을 지나 두억봉(503.5m)으로 가는 능선상의 고개로 높이는 해발 557m쯤 된다.
▼ 고갯마루는 벤치를 놓아 쉼터를 겸하도록 했다. 덕분에 먼저 도착한 일행들이 차려놓은 다양한 과일들로 갈증을 다스리다 갈 수 있었다.
▼ 쉼터에서의 조망은 뛰어난 편이다. 시야가 툭 트이면서 덕유산의 주능선이 호쾌하게 드러난다.
▼ 이후부터는 벌목을 마친 산비탈을 따라 난 임도를 따른다. 덕분에 최고의 조망을 즐길 수 있다. 하지만 오뉴월 뙤약볕을 가려줄만한 그늘이 없어 죽음의 행진이 될 수도 있겠다.
▼ 임도는 국사봉(757.7m)의 7부쯤 되는 능선의 산비탈을 헤집으며 나아간다. ‘고원’으로 대변되는 진안에서나 마주할 수 있는 풍경들을 눈에 담으며 걷는 멋진 구간이다.
▼ 고원길은 백두대간을 앞이나 옆에 놓고 이어진다. 남덕유산. 무룡산. 중봉. 향적봉으로 이어지는 ‘덕유 능선’이 백두대간과 궤를 같이하며 아슴푸레하게 산그리메를 그리고 있다.
▼ 그런 조망을 즐기라는 듯 중간쯤(이정표 : 동향면사무소 9.4km. 안천소운동장 7.3km)에 쉼터를 만들어놓기도 했다. 하지만 굴곡진 임도를 걸으며 만나는 풍경들이 더 또렷하니 일부러 쉬어갈 필요는 없겠다.
▼ 이렇듯 덕유산의 주능선을 앞에다 두고 걷기도 한다.
▼ 눈을 들면 사방이 첩첩산중이다. 그것도 1천 미터를 훌쩍 넘기는 고산준령들이다. 문득, 진안출신 동료에게 ‘간짓대 걸쳐놓고 턱걸이 하다 왔느냐’며 놀리던 기억이 떠오른다. ‘네 고향 순창도 오십보백보’라는 되받아치기가 이어졌지만 이곳 진안 출신은 너나없이 ‘촌놈’으로 놀림 받던 시절이었다.
▼ 벌목으로 얻은 통나무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구도만 잘 잡으면 인생사진 하나쯤 거뜬히 건질 수 있는 풍경이다.
▼ 벌목은 현재진행형이었다. 덕분에 먼지가 폴폴 나는 임도를 한참이나 걸을 수밖에 없었다.
▼ 그렇게 30분쯤 걸었을까 임도가 숲속으로 파고든다. 울창한 골짜기 숲에서 품어져 나오는 피톤치드와 청량한 공기를 마셔가며 걸을 수 있는 기분 좋은 구간이다.
▼ 안내판은 이 구간이 자산리 ‘하노마을’과 능금리 ‘상능마을’을 잇는 길이 8.20km의 임도임을 알려준다. 지도에 현재 위치를 표시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나 혼자만의 넋두리일까?
▼ 12 : 38. 곁가지 임도가 갈려나가는 삼거리. 이정표(동향면사무소 7.5km/ 안천소운동장 9.2km)는 이곳도 ‘삼거리’라고 적고 있었다.
▼ 임도는 계속해서 울창한 숲속을 헤집는다. 하지만 가끔은 조망이 트이면서 덕유산능선을 보여주기도 한다.
▼ 12 : 44. 또 다른 임도안내판을 지나자 이번에는 작은 ‘소류지’가 얼굴을 내민다. 해발 400m를 훌쩍 넘기는 진안고원의 천수답은 저런 소류지가 있었기에 논농사가 가능했을 것이다.
▼ 12 : 49. 임도를 벗어나자 ‘상능마을(이정표 : 동향면사무소 6.7km/ 안천소운동장 10.0km)’이 얼굴을 내민다. 아니 능금마을의 ‘윗뜸’쯤으로 보면 되겠다.
▼ 국내 자급률이 1% 미만인 ‘우리밀’은 ‘신토불이’의 또 다른 축이 된다. 그런데도 서해랑길에서는 심심찮게 눈에 띄었었다. 하지만 진안고원에서는 누렇게 익은 밀밭은 보기드믄 풍경이 된다.
▼ 코스를 단축한 여유로움이랄까 ‘느림의 미학’을 즐겨보기로 했다. 먼저 천천히 걷는다. 다음은 만나는 모든 사람들과 인사를 나눈다. 하지만 고원길에서 만난 주민들은 먼저 인사를 건네 왔다. 그리고 하나같이 친절하게 길을 가르쳐 주시고 안전을 응원해 주셨다. 참! 상노마을에서 만난 할머니께 보리수를 한웅큼이나 얻어먹었다는 것을 깜빡 빠뜨릴 뻔했다.
▼ 마을을 지나다가 살구나무를 만났다. 하지만 집사람을 그냥 지나쳐버린다. 구미가 당기지 않는 탓일 것이다. 하긴 홍천의 농막에 심어놓은 과일나무들 중에도 살구나무가 있지만 다른 과일들에 밀려 동네사람들 몫으로 남겨둔지 이미 오래됐다.
▼ 13 : 16. 시시각각 변하는 능금리 풍경들을 눈에 담다보면 어느덧 ‘상능마을’에 이른다. 법정 동리린 능금리(能金里)의 5개 행정부락(상능·하능·추동·외금·내금) 중 하나로 ‘금(金)’이 많이 출토되었다는 마을이다. 거기에 마을이 번성하고 모든 일이 잘 풀린다고 해서 ‘능길’이라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한마디로 풍요가 넘치는 마을이라는 얘기일 것이다.
▼ 13 : 20. 49번 지방도(진성로)를 횡단한다(이정표 : 동향면사무소 5.0km/ 인천소운동장 11.7km). 그리고는 마을회관과 정자 사이를 지나 ‘능길교’를 건넌다. 이때 머리에 ‘소’를 얹고 있는 마을 안내판을 만날 수 있다. 이 마을에서 소를 많이 키운다는 얘기일 것이다. 안내판은 그밖에도 고추, 인삼, 콩, 마늘, 기장 등의 밭작물들을 특산물로 꼽고 있었다.
▼ 도로변에서 바라본 ‘상능마을(능길+웃담)’. ‘국사봉’ 자락이 동남쪽으로 뻗어내려 버덩(좀 높고 평평하며 나무가 없는 들)을 이루는데, 이 버덩의 위가 상능마을, 그리고 아래에 ‘하능마을’이 위치한다. 하나 더. 상능마을에는 ‘벼슬바위’가 있다고 했다. 이를 관바우, 관암이라고도 하는데, 이 바위가 떨어지면 마을에서 벼슬하는 분이 나온단다. 마을 어귀에는 ‘밀양 박씨 열녀비’와 ‘분성 김씨 열녀문’도 있다고 했지만 찾아보지는 못했다.
▼ ‘능길교’를 건넌다. 이때 ‘구량천(九良川)’의 물줄기가 내려다보이지만 특별히 눈에 담을만한 것은 없다. 아니 물가에 걸터앉은 ‘정자’는 나름대로 멋진 풍광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 인간의 생존에 있어 물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무릇 물은 생명을 살리며, 어디 한 곳 스며들지 않는 곳이 없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면서 순리를 일깨워준다. 그래서 고대 왕들은 물길을 다스리는 일을 가장 주요한 정사로 여겼다. 그 물길은 주요 이동수단이 되기도 한다. 물길이 사나우면 뗏목이 지나가고, 그게 수그러지면 나룻배를 띄운다. 그 길을 나는 지금 걸어서 간다. 물길이 아닌 물가로...
▼ 그러다 앵두나무를 만났다. 때깔 좋은 과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어 자신도 모르게 군침을 흘리고 말았다. 하지만 참기로 했다. 맞은 편 민가에서 일부러 심어놓은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나그네에게 길을 내준 것만 해도 고마운데 민폐까지 끼칠 수야 없지 않겠는가.
▼ 13 : 29. 징검다리로 ‘구량천’을 건넌다. 우리네 기억속의 징검다리. 즉 제멋대로 생겨먹은 돌들이 아닌 게 흠이기는 하지만 종종거리며 건너다니던 옛 추억을 소환시키는 데는 부족함이 없는 풍경이다.
▼ 징검다리를 건넌 다음, 이번에는 ‘구량천’을 왼쪽에 끼고 간다. 이 구간은 검붉은 오디를 주렁주렁 매단 ‘뽕나무’가 함께 해준다. 집사람이 가다서기를 반복하며 오디를 따먹느라 여념이 없었던 구간이기도 한다. 아무튼 작년 이맘 때 ‘코카서스 3국’을 여행하면서 따먹던 오디처럼 새콤달콤하지는 않았지만 간식거리로는 이만한 것도 없었다.
▼ 탐방로 오른편으로 심심산골에서는 보기 드믄 풍경이 펼쳐진다. 구량천의 감입곡류(嵌入曲流)가 만들어놓은 충적평야(沖積平野)이다.
▼ 건강 밥상이 대세인 요즘이다. 이곳은 우렁이 농법으로 친환경 쌀을 생산하는가 보다. 뿌리를 내린 벼 포기마다 우렁이 알들이 매달려 있었다.
▼ 감입곡류의 물길은 저렇게 멋진 바위절벽들을 곳곳에 만들어 놓았다. 걷기 여행자들에게는 그게 훌륭한 눈요깃거리가 된다.
▼ 들녘 너머에는 ‘능금리’의 또 다른 자연부락인 ‘추동마을’이 있다. 옛 이름은 ‘가래골’. 가래나무가 많았다는 데서 유래했다. 그걸 한자화하면서 ‘추동(楸洞)’이 되었다. 저 마을은 또 보호수로 지정된 느티나무 아래서 지내는 ‘당산제’가 볼만하다고도 알려져 있다.
▼ 진안은 인삼의 고장이다. 하지만 수박도 이에 못지않은 모양이다. 들녘 곳곳을 수박밭이 점령하고 있는 걸 보면 말이다. 맞다. 인터넷은 진안 수박을 명품으로 꼽고 있었다. 20℃ 이상의 일교차가 큰 고랭지 기후의 영향으로 아삭한 식감과 12brix 이상의 높은 당도를 자랑한단다.
▼ 13 : 48. 2차선 도로인 ‘능금로’를 가로지른다. 이때 ‘추동교’를 장식하고 있는 ‘한우’가 눈길을 끈다. ‘진안’하면 흑돼지가 연상될 정도로 진안에서의 흑돼지는 독보적인 존재다. 그런데 저런 조형물을 스스럼없이 내걸 정도면 ‘한우’도 그에 못지않다는 얘기가 아닐까 싶다.
▼ 길은 계속해서 ‘구량천’을 옆구리에 끼고 간다. 이즈음 큼지막하게 들어선 사과밭을 만날 수 있었다. 사과는 진안의 또 다른 특산품이다. 청정 고랭지에서 맑은 이슬을 머금고 자란 ‘진안 사과’는 큰 일교차와 비옥한 토양성분으로 당분과 유기산, 펙틴 성분이 다량 함유되어 있다고 알려진다.
▼ 오뉴월 뙤약볕에 알알이 여물어간다. 하지(夏至)를 코앞에 두어선지 어떤 것은 붉은 빛깔까지 띠고 있었다. 제발 무럭무럭 잘 자라서 올 가을에는 부담 없이 사과를 먹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 감입곡류의 ‘구량천’이 아름다운 자태로 다가온다. 구량천은 하천 생태계를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자연의 보고로 알려진다. 청정 1급수에서만 자라는 다슬기와 쉬리, 쏘가리, 모래무지 등 어패류는 물론이고 갈대와 억새풀 등 수생식물도 만날 수 있다. 회색빛 도시 생활에 지친 이들이 잠시 쉬어가기에 딱 좋은 곳이다.
▼ 이후부터는 구량천의 물길을 돌리게 만든 산자락을 따라 걷는다. 산비탈과 구량천 사이에 도로를 만들었는데, 양옆으로 굵직한 벚나무가 도열하고 있어 나름대로의 풍치를 자랑한다. 하지만 구간의 양쪽을 철망으로 막아 통행을 제한하고 있었다.
▼ 이 구간의 간식거리는 ‘산딸기’가 되어 주었다. 걷기 여행을 해오면서 따먹던 것들보다 작고, 새콤달콤한 맛도 약간 떨어졌지만 잠깐의 주전부리로는 충분했다. 거기다 산딸기를 장복하면 오줌줄기까지 굵어진다고 하지 않았던가.
▼ ‘산딸나무’도 붉고 탐스러운 열매를 주렁주렁 매달았다. 열매가 우리가 흔히 먹는 딸기와 비슷하게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과실은 식용이 가능하고, 달달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산딸기가 지천인데 그보다 맛이 떨어지는 것을 일부러 먹을 필요가 있겠는가.
▼ 14 : 10. 금곡교를 건너온 49번 지방도(진성로)로 올라선다. ‘외금마을’의 군내버스정류장(이정표 : 동향면사무소 1.9km/ 안천소운동장 14.8km)이기도 하다.
▼ 탐방로는 ‘도로(진성로)’를 만나자마자 다시 헤어진다. 그리고는 ‘능금리’의 또 다른 자연부락인 ‘외금마을’로 들어간다. 고려시대까지는 ‘금구사’로 불리었는데, 언제부턴가 ‘바깥 쇠실’로 바뀌었고, 이걸 한자화하면서 ‘외금(外金)’이 되었다고 한다.
▼ 외금마을 안내판. 저 조형물의 정체는 과연 뭘까? 아까 ‘상능마을’의 것에서는 뿔이 달려있어 한우를 유추해낼 수 있었는데, 요것에는 그마저도 없으니 정체불명의 짐승이 되어버렸다. 안내판이 마을 특산물로 꼽고 있는 ‘한우’가 맞겠지?
▼ 탐방로는 마을회관(경로당)을 기점으로 삼아 유턴(U turn)을 한다. 그리고는 마을을 감싸고 있는 산자락을 에둘러간다. 지도에 나오는 ‘말고개’로 연결시키기 위해 일부러 마을로 이끈 게 아닐까 싶다. ‘고개넘어 동향길’이란 브랜드의 취지를 살리기 위해 시답잖은 고개 하나를 추가했을 테고...
▼ 14 : 19. 잠시 후 49번 지방도(진성로)와 다시 만났다. 웬만한 왕릉이 부럽지 않을 정도로 규모가 큰 고분이 눈길을 끄는 고갯마루(이정표 : 동향면사무소 1.5km/ 안천소운동장 15.2km)이다. 묘역에 ‘창령 성공 양세 효자비’가 세워져 있는 걸로 보아, 창령성씨(昌寧 成氏) 문중의 지체 높으신 분이 묻혀있지 않을까 싶다.
▼ 탐방로는 이제 도로(진성로)를 따라간다. 도로 확포장공사로 인해 어수선하기 짝이 없는데, 오가는 차량이 드물어 먼지라도 덜 일으킨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라 하겠다.
▼ 14 : 24 – 14 : 29. 용담향교의 홍살문이 잠깐 들렀다가란다. 그것도 말에서 내려 걸어서 들어오란다. 그런데 ‘용담향교’가 왜 동향면에 있지? 이유는 간단했다. 원래는 용담면 옥거리(龍潭縣의 邑治)에 있었으나 용담댐 수몰로 지금의 자리로 이건(移建)했단다. 다른 군에 병합된 옛 군현, 나중에는 옛 고을마저 물에 잠겨버렸다. 그러니 향교라고 해서 옛 터를 고집할 수 있었겠는가.
▼ 향교로 들어가는 길가는 향교이건비, 헌성비, 공적비, 기적비 같은 빗돌들이 차지했다. 그중 ‘용담향교 600주년 기념비’가 가장 눈길을 끈다. 2017년 향교 중건 626주년을 맞아 그 역사적 의미를 다지기위해 세웠다는데, 당시 행사에 정세균 국회의장까지 참석했단다. 향교에 대한 진안군민들의 자부심을 살짝 엿볼 수 있는 귀띔이었다.
▼ 고려 초에 설립된 용담향교(龍潭鄕校, 전북 문화재자료 17호)는 1391년(공양왕 3)에 현령 최자비(崔自俾)의 발의로 중건(重建)되었다. 임진왜란으로 불타고 남은 건물을 이듬해 박지술이 동쪽으로 약간 옮겨지었고, 1664년(현종 5) 현령 홍석(洪錫)이 개축했는데 원래는 옥거리의 용강산 남쪽기슭에 있었으나 용담댐 수몰로 지금의 자리로 이건했다. 참고로 이 일대는 백제의 ‘물거현(勿居縣)’이었다. 신라 경덕왕 때 ‘청거(淸渠)’로 이름을 고쳤다가 고려 충선왕 5년부터 ‘용담(龍潭)’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조선시대는 독립된 군현이었으나 현재는 진안군에 포함된 상태다. 진안군 용담면·주천면·안천면·정천면 일대를 관할하였고 용담면 옥거리가 읍치(邑治)였다.
▼ 주말이어선지 외삼문(外三門)은 굳게 닫혀있었다(박물관이나 미술관 등 대부분의 관람시설은 주말에 문을 열고 대신 월요일에 쉰다). 아쉽지만 대문 앞에 있는 비각을 살펴보는 선에서 만족하기로 했다. ‘용담향교 공적비(진안군 유형 향토문화유산 제2호)’로, 안에는 정유재란 당시 공자 등 다섯 성인의 위패를 옮긴 고계춘과 구순의 공적이 기록된 빗돌 두 기를 모셔놓았다. 화재의 위급함속에서도 자신의 안위를 돌보지 않고 성현들의 위패를 지켜냈다나?
▼ 14 : 31. 몇 걸음 더 걸어 도착한 ‘동향체련공원’. 수박축제 등 동향면의 각종 행사가 열리는 곳으로, ‘풋살장’으로 여겨지는 전천후 경기장과 널찍한 잔디밭으로 이루어져 있다. 하나 더. 요즘은 ‘파크 골프’가 대세라고 하더니 이곳에서도 파크골프장을 만드느라 부산을 떨고 있었다.
▼ 이후부터는 천변도로를 따라간다. ‘능금리’를 달려온 고원길도 이즈음 ‘대량리’로 바톤을 넘겨준다.

▼ 구량천은 바닥이 암반으로 되어있어 물놀이하기에 딱 좋겠다. 거기다 오는 도중 양악천 등을 합치면서 등치까지 한껏 부풀렸다. 그런 풍경에 반해 잠시 내려가 탁족이라도 할까하다 그만두기로 했다. 인근에 건설 현장이라도 있는 듯 강물이 온통 흙탕물이었기 때문이다.

▼ 14 : 38. ‘창령 성씨’ 집성촌이라는 대량리(大良里) 양지(陽地)마을에 이르니 지역 특산물인 수박을 벽화로 그려 넣었다. 맞다. 동향면에서 수박은 매년 ‘수박축제’를 개최해 올 정도로 자부심이 크단다. 축제기간에는 수박화채를 상시 시식할 수 있으며, 깜짝 수박경매, 수박왕 선발대회, 수박 빨리먹기 대회 등 다양한 프로그램도 즐길 수 있단다.(작년은 폭우로 인해 취소됐다)

▼ ‘구량천’을 사이에 두고 양지마을은 둘로 나뉜다. 오른쪽은 오래전부터 있어왔던 큰 마을, 구량천 건너에도 면사무소와 농협을 중심으로 작은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두 마을은 파출소 앞에서 아치형의 인도교로 이어진다.

▼ 다리는 장애인에 대한 배려도 잊지 않았다. 계단 말고도 무장애 통로를 따로 만들어놓았다.

▼ 두 마을은 인도교로만 잇는 것은 아니다. 차량통행이 가능한 구량교(양지길)과 동향교(49번 지방도)가 인도교 좌우에서 두 마을을 이어준다.

▼ 14 : 47. 다리를 건너자마자 오른편을 방향을 튼다. 그리고 몇 걸음 더 걷지 않아 면사무소를 만나면서 트레킹이 종료된다. 진안고원길(13구간) 조형물은 버스정류장 옆에 설치되어 있었다. 오늘은 4시간 10분을 걸었다. 앱이 14.66km를 찍고 있으니 무던히도 더디게 걸은 셈이다. 길가에 널리다시피 한 간식거리를 따먹느라 지체했던 게 원인이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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