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안고원길 11구간(금강 물길)
여행일 : ‘24. 6. 1(토)
소재지 : 전북 진안군 용담면·안천면 일원
여행코스 : 용담면사무소→신용담교 동단→섬바위(11-1, 감동벼룻길)→용담가족테마공원(인증)→공도교→용담댐 조각공원→구곡마을→장등마을→도라마을→중리마을→오얏고개(인증)→안천 망향의 동산→안천소운동장(거리/시간 : 16km, 실제는 신용담교부터 15.30km를 4시간 20분에)
함께한 사람들 : 청마산악회
특징 : ‘무진장(茂鎭長)’은 무주·진안·장수를 일컫는 말로 수려한 경관의 이미지를 동반한다. 그중 진안은 ‘북한에는 개마고원, 남한에는 진안고원’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수많은 산과 고갯마루를 품고 있는 곳이다. 산과 산 사이를 흐르는 물길도 마음껏 굽이진다. 그런 진안에 일상에서 찌든 근심을 훌훌 털고 자연을 즐기며 걷기 좋은 길을 내었으니 이게 ‘진안고원 길’이다.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길이 아니라 사람 왕래가 끊겼던 묵은 길, 잊혔던 옛길, 땔감과 약초 구하러 다니던 산길을 되살려냈다. 놀며 쉬며 걷는 재미있는 느린 여행길로 ‘미슐랭가이드지’로부터 별3개 만점을 받은 세계적인 둘레길이기도 하다.
▼ 용담면사무소(진안군 용담면 송풍리)
통영-대전고속도로 금산 IC에서 내려와 13번 국도를 타고 장수 방면으로 18km쯤 내려오다 ‘용담삼거리’에서 좌회전하면 곧이어 ‘용담면사무소’에 이른다. 진안고원길(11구간) 조형물은 면사무소 앞 화단에 설치되어 있다.
▼ 용담호에 담긴 금강 본류를 따라 안천면소재지에 이르는 길이다. 지난번 10구간이 용담호의 북쪽 호숫가를 걸어 왔다면, 이번 11구간은 동쪽 호숫가를 따라 가는 여정이다. 용담호의 리아스식 호안과 섬들, 그리고 용담가족테마공원과 용담댐에 조성해놓은 조각공원이 주요 볼거리로 꼽힌다. 난이도는 ‘하’로 분류된다.
▼ 10 : 06. 실제 출발지는 ‘신용담교’ 동단. 11구간의 하이라이트로 꼽히는 ‘섬바위’를 둘러보기 위해 특별한 볼거리가 없는 초반부 2,5km 정도를 생략했다. 16km도 벅찬 집사람에게 추가로 2km나 더 걷게 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 10 : 06. ‘금강’ 표지판 옆으로 난 길로 내려가면서 트레킹을 시작한다. 차단봉으로 입구를 막아놓았으나 장마철 집중호우 때만 아니라면 개의치 않아도 된다. 하나 더. 이 구간은 11구간(금강 물길)이 아닌 11-1구간(감동벼룻길)이다. 길이가 4.6km(다녀오려면 왕복 9.2km를 더 걸어야만 한다)에 불과하기 때문에 걷기 여행자들은 11구간에 추가해 걷는 게 보통이다. 하지만 청마산악회가 허용한 5시간으로는 다녀올 수가 없어 하이라이트로 꼽히는 ‘섬바위’만 둘러보기로 했다.
▼ 몇 걸음 걷지 않아 강변에 내려설 수 있었다. 길은 따로 나있지 않고 그저 자갈밭을 걷는 모양새이다. 장마 때면 물이 넘실댈 수밖에 없는... 그래서 차단봉으로 초입을 막아놓았던 모양이다. 하나 더. 진안고원길은 이곳 ‘감동벼룻길(11-1구간)’을 1구간, 9구간과 함께 ‘전북천리길’에 포함시켜 놓았다.
▼ 10 : 13. 잠시 후 금강 물길이 S자로 휘도는 감입곡류의 지점 이르자 깊이를 알 수 없는 소(沼)가 드넓게 펼쳐진다. 산과 강이 어우러지면서 한 폭의 풍경화를 그려내는데, 그 안에 커다란 바위섬 하나가 오롯이 앉아있다. 참고로 이 부근은 사방이 막혀 일조 시간이 짧다고 해서 ‘어둔이’라고도 불린다.
▼ 물 위로 10m 정도 솟아 있는 저 바위가 ‘섬바위(島岩)’라고 한다. ‘지주석(砥柱石)’이라고도 하는데, 지주는 황하(중국) 중류에 있는 산으로 격류 속에 있으면서도 조금도 움직이지 않는다는 뜻에서 붙은 이름이다. 하나 더. 섬바위는 위에서 독야청청 자라고 있는 ‘천년송’으로 인해 한결 더 돋보인다. 그래선지 이 지역에서 영재와 학자가 많이 나온다는 전승이 전해지기도 한다. 참! 천년송을 품은 저 섬바위가 한때 애국가의 배경화면에 등장했었다는 것도 기억해 두자.
▼ 물멍 때리기 딱 좋은 모래톱은 유원지를 겸하는 모양이다. 간이화장실을 갖추었는가 하면, 주차되어 있는 차량도 꽤 많다. 물놀이를 하거나 준비 중인 보트도 여럿 눈에 띈다. 맞다. kakaomap은 이곳을 ‘용담 섬바위관광농원 캠핑장’으로 적고 있었다.
▼ 10 : 22. 출발지로 되돌아와 이번에는 ‘신용담교’를 건넌다. 13번 국도를 따라 용담댐조각공원으로 곧장 갈 수도 있지만, 11코스의 주요 볼거리인 ‘용담가족테마공원’을 거를 수야 없지 않겠는가. 물론 1km쯤 더 걷는 수고는 감수해야만 한다.
▼ 이때 용담댐을 눈에 담을 수 있다. 높이 70m에 길이가 498m나 되는 댐은 흡사 전설속의 거대한 괴물이 웅크리고 있는 모양새이다. 혹자는 저 댐의 하이라이트로 수문에서 물이 쏟아지는 때를 꼽고 있었다. 물을 내뿜고 있는 괴물을 쏙 빼다 닮았더라는 것이다. 참고로 용담댐의 만수위는 263.5m다. 홍수기 제한수위인 261.5m에 근접할 경우 수자원공사에서 방류를 시작한다.
▼ 10 : 24. 다리 건너(오른쪽)에는 용담체련공원이 들어서 있었다. 국제규격의 축구장을 육상 트랙이 둘러싸고 있는 모양새이다. 그 뒤로는 배드민턴장 등도 있다고 한다.
▼ 파크골프장도 조성되어 있는 모양이다. 골프채도 그렇다고 게이트볼채도 아니 요상하게 생긴 채를 든 사람들이 4명씩 조를 이루어 이동하고 있었다. ‘굿 샷!’은 만국 공통어인지 채를 휘두를 때마다 이구동성으로 환호성을 내지른다.
▼ 10 : 26. 왼쪽으로는 ‘가족테마공원’이 드넓게 펼쳐진다. 가족단위 여행객들이 여가를 즐기며 쉬어갈 수 있도록 각종 조형물, 분수, 실개천, 놀이터, 전망대 등을 배치했다. 하늘에서 내려다봤을 때 ‘용’의 문양이 나타나도록 시각화한 디자인에다(공원에 용이 꿈틀대는 형상으로 산책로를 조성해 놓았다), 가족단위 여행객들에게 특화된 시설을 갖추었다는 의미에서 그런 이름이 붙여졌지 않나 싶다.
▼ 공원을 지키는 여러 조형물 중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단연 ‘용(龍)’이다. 여의주를 입에다 무는 여느 용들과는 달리 이곳은 등에다 짊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도 여럿이서 단체로 둘러멨다.
▼ 십이지상은 볼거리를 넘어 즐길거리로도 충분하다. 띠마다 재미난 해설을 담아놨기 때문에 가족들의 함께 읽어보며 사랑하는 이들에 대해 알아가는 것도 하나의 재미다. 거기다 세련되고 지적이고 우아한 말들만 늘어놨으니 밑져야 본전 아니겠는가.
▼ 11구간의 첫 번째 인정지점은 테마공원의 시설 중 하나인 ‘팔각정’이다. 정자 앞에 ‘인증’ 마크를 단 이정표를 세워놓았다.
▼ 10 : 35. 795번 지방도(진용로)를 따라 ‘용담댐’으로 간다. 그런데 이게 엉뚱한 방향으로 가는 게 아닌가. 핸드폰의 트랙을 살펴보니 인증지점인 팔각정 뒤에서 길을 찾아보란다. 다시 되돌아가기도 뭣해 도로변의 잡목을 헤치고 나가 탐방로와 만났다.
▼ 10 : 38. 탐방로를 따라 잠시 걸으니 댐으로 올라가는 긴 계단이 나타난다.
▼ 10 : 43. 길고 긴 계단과의 씨름이 끝나고 ‘용담댐’ 정상부(이정표 : 안천소운동장 12.5km/ 용담면사무소 3.5km)로 올라선다. 이어서 나타나는 ‘공도교(관리하는 공도에 놓은 다리)’는 초입에 출입 통제용 차단기를 놓아두었다. 오전 10시에서 오후 5시까지만 개방하고 있단다. 자동차와 오토바이의 통행도 금지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 참! 수문(공도교 초입)을 지나자마자 만나는 ‘토끼생태체험학습장’도 한번쯤 들러보자. 방생하고 있는 토끼들에게 먹이를 주면서 쓰다듬어볼 수도 있다니 말이다. 다만 지정된 먹이(외부 음식은 절대금지)만 줄 것과, 토끼 휴식시간(12:00–13:00)은 방문을 자재해 주기를 부탁하고 있었다.
▼ 하지만 토끼는 눈에 띄지 않았다. 대신 아트디렉터이자 귀촌 작가인 ‘이웅휘’씨의 조각품들을 만날 수 있었다. ‘지구는 인간과 동식물간의 자연유지 공존의 땅이다(사진)’ 말고도 ‘목신의 분노’ 등 많은 작품들이 설치되어 있었다.
▼ 10 : 47. 이젠 용담댐의 상부(‘공도교’라고 불린다)를 걸어볼 차례이다. 이곳도 역시 문화의 공간으로 꾸며놓았다. 왼쪽에는 수백 개의 항아리(각기 다른 돌 조형물을 올려놓은)가 줄지어 늘어섰고, 오른편 난간에는 산·내·들·나무·꽃·물고기 등 용담호의 사계와 자연생태계를 타일 모양으로 그려 넣었다.
▼ 저 범종 조형물은 대체 뭘 전하고 싶은 것일까? 상단에는 청룡과 황룡을 매달았다. 용이 살고 있다는 ‘용담호’의 전설을 형상화했나보다. 하지만 범종과의 관계가 연상되지 않아 궁금증만 자아낼 따름이다.
▼ 한강다리에나 볼 법한 팻말을 이곳에서 만날 줄이야. <지금 힘든 것은 앞으로 나아가고 있기 때문이고/ -중략- / 불행한 것은 행복해지기 위해 노력하기 때문이다> 맞습니다. 맞고요.
▼ 눈에 들어오는 ‘용담호’는 바다를 닮았다. 1990년 착공해 2001년에 완공한 다목적 댐으로 총저수량은 8억 1500만t. 소양강댐·충주댐·대청댐·안동댐에 이어 국내 5번째 규모라니 어련하겠는가.
▼ 고개를 돌리자 이번에는 용담면의 행정 중심인 ‘송풍리’가 그 자태를 드러낸다. 전편에서도 얘기했듯이 용담댐이 축조되기 전까지 용담면사무소는 ‘옥거리’에 있었다. 그러니 저곳은 용담댐이 만들어낸 신도시인 셈이다.
▼ 저건 도수터널의 입구일지도 모르겠다. 길이 21.9km의 도수(導水) 터널을 뚫어 전주·익산·군산·김제와 군산·장항 산업기지 등 서해안 지역 300만여 명의 주민과 공장·농지에 연간 4억 9200만t의 생활용수·농업용수·공업용수를 공급한다고 했으니 말이다. 참고로 용담댐은 발전·용수공급·홍수조절 등을 위한 다목적댐이다. 그중에서도 전북·충남 지역의 고질적인 물 부족 해결이 가장 큰 기능이라고 보면 된다. 전주·익산·김제·완주·충남 서천 등 4개 시와 2개 군에 생활용수를 공급하고 있다.
▼ 10 : 55. 용담면을 달려온 고원길은 댐의 중간쯤에서 안천면으로 바톤을 넘겨준다. 이어서 댐을 건너자 ‘한국수자원공사 용담댐 관리단’이 길손을 맞는다.
▼ 맞은편에는 ‘물 문화관’이 있다. 물에 대한 소중함을 일깨우고 용담댐 건설과 관련한 지식을 제공하기 위해 2002년 문을 열었다. 하지만 카메라를 든 나로서는 보초를 서고 있는 조형물에 더 관심이 간다. ‘돈키호테의 시작여행(이웅휘 작)’이라는데, 말을 이용한 과거에서 바퀴시대 문명으로 넘어오는 과정과, 환경과 생명들이 공생공존하며 살아가는 여정을 담았다나?
▼ 안으로 들어가면 ‘문명, 자연 그리고 물’이라는 주제로 전시된 공간을 만난다. ‘지구의 탄생과 태초의 물’, ‘지구촌의 물’, ‘물의 순환, ‘고통 받는 물’ 등 물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를 돕는 내용이 전시되어 있다. 새롭게 얻어갈 만한 내용은 썩 눈에 띄지 않았지만.
▼ 11 : 00. 물문화관 옥상에서도 ‘용담호’를 구경할 수 있다. 망원경까지 설치해 조망을 돕고 있지만, 아까 댐의 상부에서 보던 풍경에 비하면 보잘 것이 없었다. 대신 밖으로 빠져나오면 다양한 볼거리를 만날 수 있다. 호안을 따라 드넓은 공원 겸 광장을 조성해놓았다. 잔디와 소나무, 자연석 등으로 깔끔하게 조경되어 있으며, 용담호를 조망하기 좋도록 벤치가 죽 놓여 있다.
▼ ‘용담호 준공기념탑’. 용담호를 상징하려는 듯 용을 형상화 했다.
▼ 푸른 잔디밭은 일상생활 속에서 발생한 폐품을 활용해서 만든 수많은 조각품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용담조각공원’으로 불리는 이유이다. 그런데 저 작품들도 ‘이웅휘’ 작가가 만들었단다. 환경파괴에 대한 반성과 성찰을 담았다나? 아무튼 토끼체험학습장에서 공도교, 물문화관을 거쳐 이곳까지 오면서 만난 모든 작품들을 이웅휘 작가가 만들었다는 얘기가 된다. 수많은 세월을 오로지 작품 활동에만 매달렸어야 가능했을 터, 대단한 열정이라 할 수 있겠다.
▼ 11-1구간인 ‘감동벼룻길’은 금강 물줄기를 따라 ‘감동마을’에 다녀오는 코스다. 이곳 물문화관을 출발 벼룻길(강가나 바닷가의 낭떠러지로 통하는 비탈길)을 4.1km쯤 걸어 ‘감동마을’까지 갔다가 같은 길로 되돌아오는데, 중간에 아까 둘러본 비경 ‘섬바위’를 만난다. 참! 이정표는 출발지인 용담면사무소에서 이곳까지의 거리를 4.3km로 적고 있었다. 반면에 코스를 약간 변경한 내 앱은 3.34km를 찍고 있다. 집사람의 체력을 핑계 삼아 1km쯤 단축해서 걷는 셈이다.
▼ 시판(詩板)도 눈에 띈다. 유리에다 시를 써놨는데 예쁘장한 것이 그 자체만으로도 하나의 예술품이 된다. 그건 그렇고 허호석 시인의 ‘그리운 山河’가 왜 ‘귀향’으로 둔갑을 해서 실려 있을까?
▼ 11 : 10. 이후부터는 ‘13번 국도(안용로)’를 따라간다. 이정표(안천소운동장 10.9km/ 용담면사무소 5.1km)를 살펴본 다음 몇 걸음 더 걷자 ‘삼락교’가 반긴다. 참고로 용담댐은 1읍·5면의 68개 마을을 수몰시켰다. 마을과 마을을 잇던 길도 함께 물에 잠겼음은 물론이다. 이후 댐 주위에 11개 노선 64.4㎞의 이설도로를 냈고, 그 길이 기존의 마을들과 새로 조성된 마을들을 이어준다.
▼ 오월은 ‘장미의 계절’이라고 했다. 오월 말에서 유월 초는 전국 곳곳에서 장미축제가 열리기도 한다. 트레킹 도중 꽃 무게에 겨워 가지를 휘휘 늘어뜨리고 있는 장미꽃 무리를 심심찮게 만나는 이유이지 싶다.
▼ 호안을 따라 난 도로는 심심찮게 시야가 열린다. 그때마다 용담호가 자태를 드러내는데, 만수위보다 한참을 내려가 있는 모양새이다. 여름철 강우를 대비해 물을 빼놓지 않았나 싶다. 아무튼 그로인해 만들어진 풍경은 걷기 여행자들에게 좋은 사냥거리가 된다. 작은 섬들을 매단 리아스식 호안 풍경이 선명하면서도 멋진 산수화를 그려내기 때문이다.
▼ 그런 아름다움을 한층 더 돋보이게 하고 싶어 하단에 꽃을 깔고 사진을 찍어봤다. 불가리아와 루마니아를 함께 돌아다녔던 모 종합병원 과장의 조언이 생각나서이다. 결혼보다 여행이 더 좋다는 50대 후반이었는데, 아마추어인 내 솜씨로는 아무리 노력해도 그가 말하던 사진이 나오지 않는다.
▼ 11 : 23. ‘삼락쉼터(이정표 : 안천소운동장 10.2km/ 용담면사무소 5.8km)’도 만날 수 있었다. 개인이 운영하는 ‘무인 셀프카페’인데 용담호의 속살을 훔쳐보며 커피를 마실 수 있는 핫플레이스로 알려진다. 카페에 들어가자마자 멋진 풍경화를 걸어 놓은 것처럼 아름다운 용담호의 풍경이 창밖으로 펼쳐진단다.
▼ 삼락쉼터 근처에서 바라본 용담호 풍경.
▼ 도로주변으로도 부족해 호숫가까지 온통 ‘금계국’ 천지다. 그게 일제히 꽃망울을 터트리며 용담호의 푸른 물빛과 어우러져 장관을 이룬다. 봄날의 용담호 도로변은 이렇듯 개나리를 시작으로 벚꽃과 철쭉, 금계국 등 형형색색의 꽃들이 산자락의 신록과 어우러져 한 폭의 산수화를 그려낸다.
▼ 11 : 36. 그렇게 얼마를 걸었을까 왼편 산자락으로 임도(이정표 : 안천소운동장 9.4km/ 용담면사무소 6.6km) 하나가 갈려나간다. 초입에는 ‘지장산 등산로안내도’가 세워져있었다. 2018년 딱 이맘 때 근처 지소산과 연계해서 산행을 했는데, 이곳에서도 올라가는 길이 있는 모양이다. 당시 우리 부부는 아까 용담댐조각공원을 빠져나오자마자 만났던 ‘삼락교’에서 왼쪽으로 난 임도를 따라 올라갔었다. 임도는 정상에서 불과 600m밖에 떨어지지 않는 지점까지 이어진다.
▼ ‘지장산(774m)’은 지리산의 ‘지혜 지(智)’와 내장산의 ‘품을 장(藏)’을 쓰는 산이다. 지혜로움을 가득 품은 산이라는 의미가 아닐까 싶다. 하지만 내가 본 지장산은 일부러 시간을 쪼개가며 찾아볼 필요가 없는 산으로 기억된다. 산세도 볼품이 없는데다 등산로(정상에서 지소산을 거쳐 유평마을로 내려가는)까지도 정비가 안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저 포근한 모양새의 육산에서 지장산이라는 이름을 떠올렸던 게 다였다고나 할까?
▼ 11 : 40. 오가는 차량이 내지르는 굉음에 소름끼치는 위압감을 느끼며 걷기를 한참(‘삼락교’부터). 민가가 보이는가 싶더니 도로 가장자리를 따라 인도가 따로 만들어져 있다. 민가와 민가를 잇는 길을 따로 낼 수가 없었음이리라. 그 덕분에 우린 구곡마을까지 편안하게 걸을 수 있었다.
▼ 11 : 46. 구곡(九谷) 마을의 버스정류장을 지났다싶으면 곧이어 ‘마을회관’이 반긴다. 이때 이정표(안천소운동장 8.6km/ 용담면사무소 7.4km)가 도로를 벗어나 오른편 오솔길로 빠져나가란다. 하긴 인도가 다시 없어져버린 도로보다 조금 에돌지만 오솔길을 따르는 것이 더 바람직하지 않겠는가.
▼ 길은 호숫가까지 바짝 고도를 낮춘다. 덕분에 가장 낮은 자세로 호수를 조망하게 된다. 더 나아가 마음만 내키면 호숫물에 손까지 담가볼 수 있다.
▼ 11 : 56. 하지만 그런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10분 만에 다시 도로(이정표 : 안천소운동장 7.9km/ 용담면사무소 8.1km)로 올라섰기 때문이다. 참! 13번 국도(안용로)의 가장 큰 특징을 깜빡 빼먹을 뻔했다. 내가 혹시 일본 땅에 와있는 게 아닐까 헷갈릴 정도로 전국의 도로는 지금 벚꽃나무 가로수로 도배되다시피 했다. 그런데 이곳 용담호의 호안도로는 우리나라의 토종 단풍나무를 가로수로 심었다. 수십 년은 족히 묵었을 굵직한 단풍나무들이 도로변 양쪽에서 줄줄이 얼굴을 내민다.
▼ 아까도 얘기했다시피 도로변은 ‘금계국’으로 장식되어 있다. 가끔은 ‘루드베키아(Rudbeckia)’도 눈에 띈다. 북아메리카가 원산지인데, 국화과인데도 해바라기를 쏙 빼다 닮았다. 꽃말이 ‘영원한 행복’이라니 집사람에게 바치는 내 밀어라고나 할까?
▼ 12 : 03. ‘장등마을’에 이른다. 조금 전 지나온 ‘구곡마을’과 함께 법정 동리인 ‘삼락리(三樂里)’를 구성하는 자연부락이다. 두 부락 모두 용담댐에 수몰되었으나 국도 13호선을 따라 옛 이름을 빌린 취락이 새로 조성되었다. 아무튼 탐방로는 장등마을로 들어가지는 않고 스치듯 지나간다. 참고로 ‘장등(長登)’이란 지명은 ‘진등’이라는 마을 뒷산에서 유래했다. 옥황상제의 아들이 그곳에 내려와 농사를 지으면서 마을을 만들고 하늘로 다시 올라갔단다. 그게 세월이 흐르면서 ‘장등’으로 변했다나?
▼ 12 : 08. 이정표(안천소운동장 7.0km/ 용담면사무소 9.0km)가 이제 그만 국도와 헤어지란다. 그리고는 왼쪽으로 갈려나가는 1차선 도로(백삼로)를 가리킨다.
▼ 길은 산골짜기를 거슬러 올라가는 모양새이다. 해발이 400m에 이르는 ‘도라마을’까지 가려면 고도를 130m나 높여야하니 어쩔 수 없었을 게다. 참! 도중에 ‘지소’라는 이름표를 단 이정표(안천소운동장 5.8km/ 용담면사무소 10.2km)도 만났다. 백화리의 자연부락 중 하나인 모양인데, 민가는 눈에 띄지 않았다.
▼ 골짜기는 갈수록 깊어진다. 그래선지 도로변의 꽃들도 산에서나 만날 수 있는 것들로 바뀌었다. 세뱃돈을 넣는 복주머니를 닮은 ‘금낭화(錦囊花)’도 그중 하나다. 사람들은 저 꽃이 땅을 향해 고개를 숙이고 있는데서 겸손과 순종을 느낀다고 한다. 그래서 꽃말도 ‘당신을 따르겠습니다’이다.
▼ 산이 깊어서인지 MBN의 ‘나는 자연인이다’에서나 나올 법한 풍경도 눈에 띈다. 텐트로 숙소를 삼고 있는 듯. 하지만 취사도구는 모두 밖으로 나와 있다. 땔감에서 나오는 연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 ‘꽃벵이 농장’이란다. ‘청춘회복’이란 부연설명까지 달았다. 궁금증을 못 이겨 부리나케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흰점박이꽃무지 애벌레’를 가리키고 있었다. 우리가 익히 아는 ‘굼벵이’다. 혐오의 아이콘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눈물겨운 노력이라고나 할까? 인구가 줄어든다며 아우성인 작금의 우리나라. 하지만 세계는 아직도 꾸준히 인구가 늘어나고 있다. 따라서 식량도 생산량을 꾸준히 늘려야만 한다. 하지만 공산물의 생산량을 늘리듯 식량 생산량을 늘릴 순 없는 일. 우선 곡물이나 가축을 더 키우기 위해선 땅과 물이 충분치 않고, 이때 발생되는 온실가스 등도 골칫거리다. 때문에 유엔식량농업기구(FAO)도 곤충을 유망한 미래 식량으로 꼽았다. 식용 곤충에 대한 전문가들의 회의 및 연구를 거친 결과다.
▼ 12 : 41. ‘도라마을(이정표 : 안천소운동장 4.9km/ 용담면사무소 11.1km)’에 이른다. 법정 동리인 ‘백화리(白華里, 배꽃이 땅에 떨어지는 ’梨花落地‘ 형국의 명당이 있다고 전해진다)’를 구성하는 7개 행정부락(율현·구례·상리·중리·하리·도라·교동) 중 하나로 ‘지장산’ 자락에 들어앉은 첩첩산중 오지마을이다.
▼ 도로는 버스정류장 앞에서 2차선으로 변해 안천면소재지로 간다. 하지만 고원길은 마을회관이 있는 쪽으로 더 올라간다. 봄이면 복숭아꽃이 비단처럼 흐드러지게 핀다는 ‘도라마을(挑羅谷, 산 위에서 내려다보면 복숭아처럼 생겼단다. ‘돌아가는 곳에 있는 마을’이란 설도 있다.)’을 속속들이 보여주고 싶었던 모양이다.
▼ 덕분에 신선처럼 살아가는 사람을 만났다. 집 앞에 작은 연못을 파고 그 안에 정자를 들어앉혔다. 옆에서는 물레방아까지 돈다. 도연명의 ‘귀거래사(歸去來辭)’가 부럽지 않은 풍경이라 하겠다. 복숭아꽃 만발한 도라마을은 도연명이 ‘도화원기’에서 그린 이상향, 즉 ‘세외도원’(世外桃源)이 될 테고, 저 정자에서 벗과 함께 술이라도 한잔 나눈다면 그 행복을 어찌 이태백의 풍류에 비하겠는가.
▼ 12 : 46. 도라골의 끄트머리쯤에서 360도에 가깝게 방향을 튼다. 표고는 383m. 지장산에서 쌍계봉을 잇는 능선, 즉 장수군과의 경계를 이루는 능선 바로 아래까지 갔다가 되돌아온다고 보면 되겠다.
▼ 이후부터 길은 ‘도라마을’의 진면모를 보여준다. 동네 이름처럼 열매를 주렁주렁 매단 복숭아나무가 군락을 이루면서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검디검은 오디로 도배를 하다시피 한 뽕나무가 자신도 있다며 곳곳에서 얼굴을 내민다.
▼ 작년 딱 이맘 때 코카서스 3국(아제르바이잔·아르메니아·조지아)을 15일 정도 여행했었다. 당시 심심찮게 뽕나무를 만날 수 있었고, 집사람과 나는 새콤달콤한 맛에 반해 틈날 때마다 따먹고 다녔다. 그런데 도라마을의 오디가 딱 그런 맛을 내고 있지 않은가. 같은 고지대(실제는 500m이상 차이가 나지만)에다 일조량까지 좋다보니 맛까지 비슷해졌나 보다.
▼ 반환점을 돌아섰지만 고도는 오히려 더 높아졌다. 그러면서 산중턱에 들어앉은 양계농장의 아래쪽을 지나간다.
▼ 12 : 57. ‘도라마을’에서 나오는 2차선 도로(이정표 : 안천소운동장 3.9km/ 용담면사무소 12.1km)로 내려서고, 몇 걸음 더 걸어 고갯마루를 넘으면 길은 가파르게 아래로 향한다. 도라마을의 표고가 그만큼 높았다는 얘기일 것이다.
▼ 13 : 08. 10분쯤 내려갔을까 이정표(안천소운동장 3.1km/ 용담면사무소 12.9km)가 또 다시 도로를 벗어나란다. 그리고는 백화리의 또 다른 자연부락인 ‘중리마을’로 연결시켜 준다.
▼ 탐방로는 마을 고샅을 따라간다. 길을 터준 주민들을 위해 정숙보행이 요구되는 구간이다. 참! ‘중리(中梨)’라는 지명은 마을 북쪽의 산(지선봉)에 울창하던 배나무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거기서 배꽃이 떨어진 ‘삼락지’ 중 중간마을이라 해서 중리(中梨)라 칭하고 오늘에 이르고 있다.
▼ 언제부턴가 ‘독거노인(獨居老人)’은 우리가 해결해나가야 할 최대의 화두가 되었다. 언론은 농어촌에서 더 심각하게 나타난다고 전했었는데, ‘독거노인 행복방’이란 간판을 달고 있는 저 건물이 그 증거가 아닐까 싶다.
▼ 13 : 17. 고샅을 빠져나오면 ‘마을회관’이 맞는다. 맞은편에 쉼터를 겸한 정자가 들어서있는데, 탐방로는 정자 앞으로 흘러가는 개울의 둑길을 따라 ‘하리마을’로 간다. 하지만 난 안천면소재지로 나가는 2차선 도로(백삼로)로 조금 더 가보기로 했다. 트레킹을 준비하면서 이 근처에 문화재 한 점이 있다는 정보를 얻어왔기 때문이다.
▼ 마을 정자는 ‘이화정(梨華亭)’이란 현판을 달았다. 배꽃이 활짝 핀다는 마을의 이미지를 브랜드로 내건 모양이다. 맞다. 이 마을은 초기 배나무가 많다고 해서 ‘배실(梨谷)’로 불리었다. 그러다 행정구역 개편 때 상·중·하리로 나뉘었는데, 정자 옆 이정표는 아직도 ‘중배실’이란 이름표를 달고 있었다.
▼ 100m 남짓 걸었을까 ‘화산서원(華山書院)’이 나온다. 조선 전기 명재상으로 알려진 ‘황희(黃喜, 1363-1452)’의 영정을 모시는 ‘장수 황씨’ 문중의 사당이다. 그의 차남 황보신(황黃保身, 역사는 그를 극도로 부패했던 인물로 꼽는다)과 5대손 황징(黃澄, 장수 황씨의 입향조)을 함께 배향하고 있는데, 1922년에 서원으로 승격되었다고 한다.
▼ 문이 잠겨있어 안으로 담 너머로 살짝 엿볼 수밖에 없었다. 전북유형문화유산인 ‘황방촌영정(黃尨村影幀)’은 맨 안쪽 건물(사당)에 모셔져 있다고 했다. 서원의 필수 시설인 ‘강당’은 위의 전경 사진에서 오른쪽으로 보이는 낡은 건물이란다.
▼ ‘황방촌영정(黃尨村影幀, 전북특별자치도 유형문화유산)’은 설명을 위해 인터넷에서 얻어왔다. 화산서원에 모셔둔 황희(黃喜, 1363-1452)의 초상화로, 방촌(尨村)은 황희의 호(號)이며, 경북 상주의 옥동서원에 소장되어 온 것을 1844년 옮겨 그린 것이다. 모사본 중에서 가장 우수한 작품으로 평가받아 국가 표준 영정으로 지정되어 있기도 하다.
▼ 서원 맞은편에는 ‘열부 옥천육씨 정려 烈婦 沃川陸氏 旌閭)’가 있었다. 육씨(陸氏) 부인은 임진왜란 때 남편 황대성(黃大成)이 의병을 이끌고 전투에 나서자 몸종인 천개(天介)와 함께 상배실 앞 구례마을로 피난했으나, 왜군에 잡혀 욕을 당하게 되자 적을 꾸짖으며 몸종과 함께 자결하였다고 한다. 이 일이 알려지면서 1699년 조정에서 정려를 내렸다. 본래 하배실 앞동산에 있었으나 1980년쯤 농로를 내면서 이곳으로 옮겨왔단다. 참고로 남편인 통정대부(通政大夫) 황대성은 임진왜란 때 수백 명을 이끌고 각지에서 왜군과 싸웠던 의병장으로, 일본에 포로로 압송된 뒤 천신만고 끝에 조선으로 돌아왔으나 부인 옥천 육씨가 순절한 것을 알고 뒤따라 자결했다고 전해진다.
▼ ‘효자 황민찬 정려(孝子 黃玟燦 旌閭)’는 서원 왼쪽에 있다. 황민찬(1876-1905)은 현령 황동규(黃東奎)의 아들로, 품성이 순하고 후덕하여 부모에게 효도하며, 형제에 우애하고, 배우기를 좋아했다고 한다. 그러다 어머니가 병이 났을 때 자신의 손가락을 상하게 하여 피를 내고, 이를 어머니의 입에 흘려 넣었는데, 이에 하늘이 감동하여 어머니의 병을 고쳐주었다고 한다. 이후 황민찬이 요절(夭折)하게 되자 고을에서 애석하게 여겼고, 이에 용담향교 유림들이 청원하여 1905년 정려가 내려졌으며, 동몽교관에 추증되었다.
▼ 13 : 27. ‘이화정’으로 되돌아와 이번에는 하리마을로 간다.
▼ 13 : 30. 하리마을에 들어서니 ‘낙안 김씨’ 문중의 사당인 ‘화천사(華川祠)’가 반긴다. 화천사는 1801년 충장공 정분(鄭苯), 충민공 임경업(林慶業), 양혜공 김빈길(金贇吉, 낙안읍성을 쌓은 분이다)을 향사하기 위해 세운 삼충사(三忠祠)로 시작된다. 1868년(고종 5) 훼철되었다가 1926년에 사당을 다시 세우고 ‘김빈길’의 영정을 안치했다. 1961년 사우를 중건하면서 화천사로 이름을 바꿔 오늘에 이른다.
▼ 진안군 향토문화유산(유형) 제14호인 ‘학륜당(學倫堂)’은 화천사에 딸린 부속건물이다. 낙안 김씨 문중에서 덕망 있는 학자들을 초빙해 인재를 양성하던 강당이라고 보면 되겠다.
▼ 13 : 33. 동구 밖에는 엄청나게 굵은 버드나무가 자라고 있었다. 진안군에 있는 54수의 보호수 중 유일한 버드나무라는데, 안내석은 수령을 194년(`82년 지정시 152년)으로 적고 있었다. 한돌쇠라는 이름을 가진 하인이 마을을 지키는 수호목으로 식재하였다는 전승이 있다.
▼ 13 : 36. 하배실을 빠져나와 ‘13번 국도(안용로)’와 개울을 차례로 건넌다.
▼ 13 : 42. 잠시 개울을 따르던 탐방로가 느닷없이 숲속으로 들어선다. 11구간에서 만나는 유일한 숲길이라고 보면 되겠다. 참! 이즈음에서 뽕나무 군락을 또 만났다는 걸 깜빡 빠뜨릴 뻔했다. 점심 생각이 사라져버릴 정도로 배부르게 오디를 따먹었는데도 말이다.
▼ 13 : 49. 앞서가던 집사람이 갑자기 걸음을 멈추어버린다. 남의 집 안마당이라는 것이다. 개까지 사납게 짖어대니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데 주인장이 나와 길을 안내해주는 게 아닌가. 자기네 마당이지만 탐방로가 맞다면서 말이다. 길을 내준 주민들에게 지면을 빌어서나마 감사를 드려본다.
▼ 고마운 마음에 눈에 띄는 사람마다 감사 인사를 드리며 동네(두 집이 다였지만)를 빠져나왔다. 그리고는 ‘오얏고개’를 향해 올라간다.
▼ 13 : 52. 오얏고개의 이정표(안천소운동장 1.3km/ 용담면사무소 14.7km)가 이곳이 두 번째 인증 지점임을 알려준다.
▼ 13 : 57. 그렇게 한참을 걷다보면 ‘용담호’를 다시 만나고, 호수에 발이 묶인 길은 방향을 틀어 11구간(금강물길) 종점인 ‘보한마을’로 간다. 하지만 곧장 마을로 들어가지는 않는다. 이왕에 왔으니 수몰지역 주민들의 애환도 한번쯤 느껴보라며 ‘망향의 동산’으로 나그네를 안내한다.
▼ 14 : 02. 잠시 후 ‘망향의 동산(이정표 : 안천소운동장 0.6km/ 용담면사무소 15.4km)’에 올라선다. 수몰된 실향민들의 향수를 달래주기 위해 수자원공사가 조성한 것으로 조망이 좋은 둔덕 위에 꾸며져 있다. 전망대를 겸한 팔각정과 주차장, 화장실, 자판기 등 나름대로의 시설도 갖추고 있다.
▼ 구곡마을에서 옮겨왔다는 ‘지석묘(支石墓)’도 눈에 띈다. 출토된 토기편과 흠자귀, 반달칼, 돌화살촉 등으로 보아 이 고인돌이 2500여 년 전인 기원전 4-5세기에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단다. 전문가들은 고인돌의 크기가 그 부족의 세력과 비례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제법 큰 부족이 이곳 용담지역에서 웅거하고 있었다는 얘기일 것이다.
▼ ‘망향의 동산’은 용담호로 인해 삶의 터전을 잃은 이들을 위한 공간으로 꾸며졌다. 그러니 ‘망향탑(望鄕塔)’은 그 주인이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인 터다. 먼 먼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점지해준 터전에서 그 마음과 그 핏줄을 이어받아 가꿔오던 11개 마을, 505세대, 2,225명이 용담댐으로 인해 동서남북으로 뿔뿔이 흩어졌다고 적고 있다.
▼ 망향탑 뒤에는 수몰지역에서 옮겨온 빗돌들을 나란히 세워놓았다. 역대 면장들의 송덕비가 대부분인데, 지역 인사들에 대한 추모비도 몇 섞여있다. 그 하나하나에 주인공들에 대한 칭송이 담겨있겠지만, 실향민들은 이제 저 빗돌에서 물에 잠긴 고향 마을에 대한 그리움을 찾아내는 게 우선일 것이다.
▼ 봉우리 꼭대기엔 콘크리트 팔각정을 3층으로 세웠다. 호수를 조금이라도 더 넓고 깊게 살펴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 전망대로 오르자 안천면 소재지인 보한마을과 시장마을이 한눈에 쏙 들어온다. 용담호에 의해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인근 주민들이 새롭게 둥지를 튼 마을이다. 그래선지 마을은 바둑판처럼 질서정연했고, 집들도 부잣집 전원주택에 못지않게 잘 지어져 있다.
▼ 하지만 아쉬운 점도 있었다. 웃자란 주변 나무들로 인해 용담호의 아랫도리가 잘려나가 버렸기 때문이다. 물속에 잠겨버린 고향을 떠올리며 찾아오는 이들에게 큰 실망을 줄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 14 : 04. 마을로 내려가는 길은 반대편에서 찾아보면 된다. 마을을 향해 침목계단이 기다랗게 놓여있다.
▼ 이곳 ‘보한마을’은 용담댐으로 인해 생긴 마을이다. 고향을 차마 떠나지 못한 주민들이 인근에다 새로운 터전을 마련했다. 그런 고향 사랑은 마을 담벼락에 까지 나타나고 있었다. 운일암반일암, 섬바위 등 용담호 주변의 풍경을 담은 그림들을 벽화로 그려 넣었다.
▼ 14 : 16. 노성리(魯城里)의 자연부락 중 하나인 ‘보한마을’은 6세기 말 임진왜란 때 ‘창녕 성씨’가 외약고개 아래 서당 터에 자리 잡고 살면서 시작됐다. 당시 이름은 ‘보성(保城)’. 이후 ‘죽산 안씨’가 들어오면서 ‘보안’이 됐고, 1700년경 ‘청주 한씨’가 들어오고 나서는 ‘보한(保韓)’으로 변했다. ‘한씨를 보필한다.’는 뜻이라나? 주력 성씨에 따라 마을 이름이 오락가락하는 세태에서 우리 국회를 떠올리는 게 나 혼자만의 오해였으면 좋겠다.
▼ 탐방로는 ‘안천 소운동장’을 가로지른다. 다목적실내구장에 화장실까지 갖추고 있으니 소규모 ‘스포츠 컴플렉스’라고나 할까?
▼ 14 : 18. ‘안천소운동장’ 앞에 조성해놓은 ‘길거리장터’에 이르면서 트레킹이 종료된다. 12구간(고개너머 동향길) 조형물은 길거리장터 그늘막 아래에 세워져 있다. 그나저나 오늘은 4시간 20분을 걸었다. 앱나 15.30km를 찍고 있으니, 꽤 더디게 걸은 셈이다. 볼거리도 많았지만 그보다는 오디를 따먹느라 발걸음이 많이 더뎌졌던 게 원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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