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안고원길 10구간(용담호 보이는 길)
여행일 : ‘24. 5. 18(토)
소재지 : 전북 진안군 주천면·용담면 일원
여행코스 : 주천면사무소→성암마을→옛광석(인증)→와룡마을→옥거마을→용강산(인증)→회룡마을→용담면사무소(거리/시간 : 15.4km, 실제는 성암마을부터 12.86km를 4시간에)
함께한 사람들 : 청마산악회
특징 : ‘무진장(茂鎭長)’은 무주·진안·장수를 일컫는 말로 수려한 경관의 이미지를 동반한다. 그중 진안은 ‘북한에는 개마고원, 남한에는 진안고원’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수많은 산과 고갯마루를 품고 있는 곳이다. 산과 산 사이를 흐르는 물길도 마음껏 굽이진다. 그런 진안에 일상에서 찌든 근심을 훌훌 털고 자연을 즐기며 걷기 좋은 길을 내었으니 이게 ‘진안고원 길’이다.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길이 아니라 사람 왕래가 끊겼던 묵은 길, 잊혔던 옛길, 땔감과 약초 구하러 다니던 산길을 되살려냈다. 놀며 쉬며 걷는 재미있는 느린 여행길로 ‘미슐랭가이드지’로부터 별3개 만점을 받은 세계적인 둘레길이기도 하다.
▼ 주천면사무소(진안군 주천면 주양리)
통영-대전고속도로 금산 IC에서 내려와 13번 국도를 타고 용담호 방면으로 내려오다 ‘용수목삼거리’에서 우회전하여 55번 지방도. ‘흑암삼거리’에서 좌회전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주천면사무소’에 이르게 된다. 진안고원길(10구간) 조형물은 면사무소 앞 화단에 설치되어 있다.
▼ 주천면사무소에서 출발 용담면사무소에 이르는 코스로, 주자천과 용담호의 풍광을 눈에 담으며 걷는 여정이다. 천태산 능선 및 용강산을 넘는 산길이 다소 힘들지만 용담호의 조망이 이를 상쇄시켜 준다. 난이도는 ‘중’으로 분류된다.
▼ ‘와룡암(臥龍庵)’ 앞 주자천. 용이 웅크리고 있는 듯한 ‘와룡바위’ 주변은 소(沼)를 이룬다. 징검다리 사이를 지난 물이 바위를 만나 휘돌면서 못에 가까운 담(潭)을 만들었다. 그게 온몸에 청량함을 전해주고, 숲속에서 불어오는 싱그러운 바람은 몸속 깊이 자연의 숨결을 불어 넣어준다.(사진은 지난 9구간 때 찍은 것인데, 일행들 말로는 오늘은 물까지 맑아져 그 풍경이 한결 돋보이더라고 했다)
▼ ‘와룡암(臥龍庵, 전북문화유산자료)’은 긍구당(肯構堂) 김중정(金重鼎, 1602-1689)이 벼슬을 버리고 세상을 피해 숨어 살면서 유생들을 가르치기 위해 효종 때인 1650년 지은 정자이다. 건너편에 있는 주천서원(朱川書院)의 강당 노릇도 했단다. 참고로 김중정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첨지중추부사의 벼슬을 지냈다. 병자호란 때 인조가 항복하자 할아버지인 김충립(金忠立)과 함께 진안 용담(주천)으로 내려와 후학들을 가르치다 생을 마쳤다.
▼ ‘와룡암’의 저 이정표(인증용 이정표는 따로 만들어져 있다)는 9구간 답사 때 알바를 하게 만들었던 주범이다. 이곳에서 주천면사무소까지는 9구간과 10구간이 겹친다. 주천면사무소가 9구간의 종점이자 10구간의 시점이기 때문에 일단은 주천면사무소까지 갔다가, 10구간을 걸을 때 다시 이곳으로 와야 한다는 얘기다. 이정표에 노랗고 빨간 표시판이 2개씩 붙어있는 이유다. 그런데도 난 순(順)방향을 나타내는 노란색 표지판만 보고 진행했다가 1.5km나 더 걷는 낭패를 당하고 말았었다.
▼ ‘금평마을’. 신양리(新陽里)를 구성하는 4개 행정부락(광석·성암·금평·봉소) 중 으뜸마을로 10구간의 시점인 주천면사무소에서 1.1km쯤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옛 이름은 ‘영남촌’. 물에 뗏목을 띄워 놓은 형국의 길지인지라 일찍이 경상도에서 송씨와 김씨 집안이 피난을 와 살았다는 데서 유래했다. 그러다 일제강점기에 ‘금평’으로 이름을 고쳤는데, 마을이 들녘의 가운데 있는가 하면 남쪽에서 쇠붙이까지 생산되었다나?
▼ 10 : 36. 실제 출발지인 ‘성암(星岩)’마을. ‘신양리’의 또 다른 자연부락으로 ‘주자천’을 사이에 두고 ‘금천마을’과 마주하고 있다.
▼ ‘웃자 성암마을’이란다. 주민들은 물론이고 이 마을을 찾는 모든 이들이 함께 웃어보자는 얘기일 것이다. 가끔은 마을축제도 열린다더니 그 일환일지도 모르겠다. 시화전과 공연, 마을탐방 등 유익하면서도 의미를 새길 수 있는 시간으로 구성하여 주민 모두가 한마음이 되어 축제를 즐긴다나?
▼ 마을 앞에는 ‘십일거사기념비’가 세워져 있었다. 하지만 십일거사의 정체는 물론이고 누가 언제 무엇 때문에 세웠는지도 알 수 없었다. 주민이라도 눈에 띄었으면 후다닥 뛰어가 물어보겠는데 아쉽게도 마을은 텅 비어있었다.
▼ 10 : 36. ‘성암길’을 따라 걸으면서 트레킹을 시작한다. 주자천의 천변을 따라 자동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만한 길이 나있다.
▼ 이즈음 구봉산(,002m)의 헌걸찬 암릉이 눈에 들어온다. 눈만 조금 크게 뜨면 4봉과 5봉을 잇는 길이 100m의 구름다리도 눈에 담을 수 있다. 이미 옛날 얘기가 되어버렸지만 한때는 국내 최장을 자랑하던 산악 현수교였다.
▼ 10 : 46. 성암마을은 상·하 두 개로 나누어진다. 조금 전 트레킹을 시작했던 곳이 ‘윗마을’이고, 이곳은 아랫마을인 ‘하성암’이다.
▼ 이정표에서 오늘의 여정을 가늠해본다. 이정표는 시점(주천면사무소)까지의 거리를 2.1km로 적고 있다. 반면에 내 핸드폰(앱)은 0.48km를 찍는다. 그렇다면 10구간(15.4km)에서 지난번 9구간 때 걸었던 1.6km를 뺀 13,8km가 오늘의 여정이다.
▼ 10 : 52. ‘주천 공공하수처리시설’은 스치듯 지나간다. 도로 아래 등 공공 하수로를 통해 유입된 오염수를 정화한 다음 자연으로 되돌려주는 시설일 것이다.
▼ 고원길을 걷는 사람들을 꽤 많이 만날 수 있었다. 그것도 젊은이들이 대부분이다. ‘진안고원길’이 그만큼 인기가 많은 둘레길이란 증거일 수도 있겠다.
▼ 5월이면 전국 어디서나 흔하게 볼 수 있는 찔레꽃이다. 한국의 토종 야생화는 무리지어 피어날 때 아름다움이 배가된다. 길가 비탈진 언덕을 하얗게 도배하고 있는 저 찔레꽃이 그 증거다. 그런데 흘러간 옛 노래는 왜 찔레꽃이 붉게 핀다고 했을까? <찔레꽃 붉게 피는 남쪽나라 내 고향/ 언덕 우에 초가삼간 그립습니다>
▼ 그밖에도 꽤 많은 야생화들을 만날 수 있었다. ‘자주닭개비’도 그중 하나다. ‘닭이 장풀’에 비해 꽃의 색이 짙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었는데, 꽃말은 ‘존경하지만 사랑할 수는 없어요’라고 한다. 매혹적인 색깔과 외모를 지녔으면서도 서글픈 사연을 품었다. 아침 일찍 피어 저녁이면 지기 때문일까?
▼ 11 : 07. ‘옛 광석’에 이른다. 요 아래가 용담호에 물을 담기 전 ‘광석’이란 마을이 있던 곳이라고 한다. 혹자는 광석이란 지명의 유래를 광산(鑛山)에서 찾기도 한다. 신양리의 또 다른 자연부락인 ‘금평마을’이 남쪽에서 생산되는 쇠붙이에서 유래된 지명이라면서 말이다. 금평마을의 남쪽이 이곳 ‘광석마을’이니 얼토당토않은 추정은 아닐 듯 싶다. 참고로 진안(동향면 대량리)에는 나말여초(羅末麗初)에 운영된 것으로 추정되는 제동유적(製銅遺蹟)도 있다.
▼ 이정표(용담면사무소 11.6km/ 주천면사무소 3.8km)가 하늘색 모자를 썼다. 10구간의 두 인증지점 중 하나라는 표시다.
▼ 호수 건너는 ‘신 광석’, 즉 새로운 ‘광석마을’이다. 수몰로 삶의 터전을 잃은 사람들은 전주나 대전으로 나갔다고 한다. 하지만 대처의 각박한 삶이 싫은 사람들은 근처에서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았고,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신광석’ 마을이다.
▼ 어느 문중의 제각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럴듯하게 잘 지어놓았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 흔한 편액 하나 달지 않았다.
▼ 11 : 12. 호반을 따라가던 길이 느닷없이 방향을 바꾼다. 그리고는 산자락으로 파고든다. 용담호에 발을 담근 능선이 너무 비탈진 탓에 길을 내지 못했던 모양이다. 와룡마을을 잇던 옛길이야 용담호의 물속에 잠겨버린 지 오래일 것이고.
▼ 이정표(용담면사무소 11.0km/ 주천면사무소 4.4km)에 매달린 QR코드가 눈길을 끈다. ‘OTT Find’라는 문구가 눈에 띄는가 하면, 진행요원으로 여겨지는 젊은이들이 포스트를 지키고 있다. ‘OTT Find’란 정해진 여러 포스트를 찍고 점수를 획득하는 MZ 세대들의 레포츠이다. 수많은 포스트들이 넓게 산재되어 있기 때문에 전략을 잘 짜는 것이 중요하단다.
▼ MZ 세대의 가장 큰 특징은 기존의 틀에 억매이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즉 남과는 다른 이색적인 경험을 추구한단다. 정규 탐방로를 벗어나 물가로 다가가고 있는 저 젊은이처럼...
▼ 잠시 후, 이번에는 산길로 들어선다. 울창한 솔숲을 헤집으며 오솔길이 나있다. 피톤치드 가득한 솔향을 코끝에 흘리며 걸을 수 있는 멋진 구간이다.
▼ 하지만 산길은 많이 고달팠다. ‘작은 능선 하나쯤이야’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들어섰지만 산길은 시작부터 가팔랐다. 통나무계단을 놓고 밧줄난간을 매어놓은 게 그나마 다행이랄까?
▼ 그렇다고 힘든 것 자체까지 덜 수야 없는 노릇. 지자체도 걷기 나그네들이 느낄 고통을 눈치 챘던 모양이다. 두어 곳에 벤치를 놓아 쉬어갈 수 있도록 했다.
▼ 쉼터의 자랑거리는 다른데 있었다. 벤치에 앉자마자 동공을 부풀리게 만드는 멋진 풍광이 펼쳐지는 것이다. 내(川)에서 보(洑)로 변신한 주자천이 풍만해진 자신의 몸매를 한껏 자랑하고 있다.
▼ 길은 요런 상황과도 맞닥뜨린다. 낭떠러지 같은 비탈길을 밧줄난간을 부여잡고 오른다. 나뭇가지와 돌부리를 붙잡지 않는 게 그나마 다행이랄까?
▼ 11 : 26. 숨이 턱에 차오를 즈음에야 능선에 올라설 수 있었다. 이정표(와룡마을↑ 1.05km/ 천태산← 0.7km/ 신양리↓)는 이 능선이 천태산(648.5m)으로 올라가는 등산로임을 알려준다. 진안에도 ‘천태산’이 있었나? 영국사로 유명한 영동의 천태산이야 다들 알 것이고, 양산·공주·금산·정읍·화순·장흥 등 내가 올라본 것만도 십여 곳에 가깝다. 그런데 이곳에도 하나가 숨어있었던 모양이다.
▼ 내려가는 길은 무척 순했다. 가끔은 가파른 구간도 나타났지만 대부분은 완만하게 내려선다. 그것도 꽃보다 아름답다는 연록의 숲속을 헤집으면서. 힐링을 덤으로 얻어가는 구간이라 하겠다.
▼ 11 : 37. ‘용담호’까지 내려왔다 싶으면 이번에는 호반의 산비탈을 헤집으며 내놓은 길을 따라 간다.
▼ 이즈음 나뭇가지 사이로 시야가 열리기도 한다. 댐으로 발이 묶인 주자천의 물길이 몸집을 부풀려 ‘용담호’로 변해있다. 그 위로 ‘와룡교’ 다리가 지나간다.
▼ 11 : 46. 오솔길을 벗어나 2차선 도로인 ‘와룡길’로 내려선다.
▼ 초입에는 이정표(용담면사무소 9.3km/ 주천면사무소 6.1km)와 함께 ‘등산안내도’가 세워져 있었다. 그런데 우리가 내려온 곳이 ‘천태산’이 아니라 ‘성치산’으로 표기되어 있는 게 아닌가. 금산과 진안의 경계에 놓여있는 ‘성치산(648m, ‘금산 8경’에 꼽힐 정도로 산세가 뛰어나다)’이 진안에 위치한 천태산과 한 능선으로 연결된다는 의미가 아닐까 싶다.
▼ 이후부터는 도로를 따른다. 그런데 이게 또 새로운 눈요깃거리를 제공한다. 하도 흔해서 식상해져버린 벚나무 가로수가 아니라 ‘이팝나무’를 심어놓은 것이다. 이밥에 고깃국을 먹고 비단옷을 입으며 고래 등 같은 기와집에 사는 것이 소원이던 조선 시대. 벼슬을 해야 비로소 이씨인 임금이 내리는 흰쌀밥을 먹을 수 있었다고 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쌀밥처럼 생긴 새하얀 꽃을 가지마다 소복소복 뒤집어쓰고 있는 저 나무를 ‘이팝나무’라 불렀다고 한다. 넷으로 갈라지는 꽃잎 하나하나가 마치 뜸이 잘든 밥알같이 생겼고, 이들이 모여서 이루는 꽃 모양은 멀리서 보면 쌀밥을 수북이 담아 놓은 흰 사기 밥그릇을 연상시킨다는 것이다.
▼ 11 : 49. 200m쯤 걸었을까 또 다른 2차선 도로인 ‘주용로’를 만난다. 삼거리에는 버스정류장이 지어져 있었다. 그런데 이게 도심의 것보다도 훨씬 더 스마트하다. 건물 형식으로 지어 눈·비는 물론이고 추위까지도 걱정할 필요가 없도록 했다. 태양광 패널이 눈에 띄는 걸 보면 조명은 물론이고 난방시설까지 갖추었을지도 모르겠다.
▼ 건너편에는 ‘리용미술관’이 들어앉았다. 개인 미술관인 것 같은데 문이 닫혀있어 들어가 보지는 못했다.
▼ 탐방로는 이제 ‘주용로’를 따라간다. 왼쪽 호수 너머는 ‘와룡마을’이다. 천태산으로 여겨지는 원뿔형의 산봉우를 배경삼은 산골마을은 앞마당에 용담호라는 절경까지 펼쳐놓았다. 그게 한데 잘 어우러지며 한 폭의 수채화를 그려낸다.
▼ 11 : 52. 이후부터는 ‘용담호’에 놓인 다리를 연이어 건너면서 이어간다. 첫 번째 다리인 ‘신정교’는 인간의 삶이 담긴 ‘반도(半島)’로 이어준다. 인간은 자신들의 목마름을 해소하기 위해 높다란 댐을 쌓아 물길을 막았고. 그렇게 만들어진 커다란 호수는 주변 산릉들을 집어삼킨다. 매봉산(490.3m)도 그중 하나다. 자신의 꼬리를 용담호에 담그면서 저런 내륙의 반도를 만들어놓았다.
▼ 다리를 건너다보면 좌우로 그림 같은 풍경이 펼쳐진다. 산행에 이골이 난 어느 분은 이곳에서 천태산과 명도봉. 구봉산. 봉화산 등이 조망된다고 했다. 하지만 난 도무지 구분할 수가 없었다. 어느 하나 올라보지 않은 정상이 없건만... 참고로 1990년에 착공 2001년에 완공된 ‘용담호(龍潭湖)’는 진안군의 1읍 5면을 수몰시키며 만들어진 거대한 담수호이다. 유역변경식 댐으로 ‘금강’ 상류의 물을 하루 135만 톤씩 도수터널을 통해 완주군(고산면 소향리) 쪽의 ‘망경강’ 상류로 흘려보내 우리나라 최대 곡창지대인 호남평야의 농업용수 및 전주권의 생활용수로 사용하고 있다.
▼ 리아스식으로 변한 호안의 아름다운 풍광에 눈도 맞추어가며 다리를 건넌다.
▼ 11 : 55. 신정교 건너에서 만난 빗돌. 자신들의 노고를 역사로 남겨보려는 장삼이사도 꽤 많은 모양이다. 수몰된 옛 도로를 대신하는 신작로를 내면서 ‘기념비’를 만들고 공사에 참여했던 이들의 면면을 일일이 적어놓았다.
▼ 휴게소(이정표 : 용담면사무소 8.5km/ 주천면사무소 6.9km)도 하나 들어서있었다. ‘좋은 동네’라는 멋진 이름까지 달았다. 하지만 문을 열어본 적도 없는 듯. 내부는 인테리어조차 되어 있지 않았다. 문득 장사 천재라는 백종원씨가 떠오른다. 장사를 하려면 수요조사부터 제대로 하라던 어느 예능 프로와 함께...
▼ 11 : 57. 두 번째 다리는 ‘선화교’이다. 담수가 시작되면서 용담호는 진안군에서 빼놓을 수 없는 관광명소가 되었다. 그게 다 지금 지나고 있는 이런 다리들 덕분이다. 다리를 놓아 댐 일주도로를 연결시키면서 아름다운 풍광을 조금 더 가까이서 바라볼 수 있게 했기 때문이다.
▼ 이번에도 용담호의 빼어난 풍광을 맘껏 즐길 수 있다. 맞다. 용담호는 그 이름처럼 용이 꿈틀대는 듯한 형상을 자랑한다고 했다. 사시사철 아름다운 경관을 선보이는데, 특히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가을과 겨울에는 더욱 더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단다.
▼ 12 : 02. 다리 건너에서 만난 삼거리(이정표 : 용담면사무소 8,0km/ 주천면사무소 7.4km). 이팝나무 꽃무리가 한층 더 흐드러지게 피어나는가 싶더니 이젠 꽃향기까지 코끝을 간지럽힌다. 하지만 내 눈은 ‘옥천암(玉泉庵)’의 입구임을 알리는 빗돌에 더 관심이 간다. 신라 진성왕 6년(892년) 정현선사가 창건했다는 천년고찰이다. 거기다 물놀이하기 딱 좋은 ‘폭포’까지 끼고 있다니 어찌 들어가 보고 싶은 욕념이 생기지 않겠는가.
▼ 요런 멋진 풍광도 만난다. 그 아름다움에 ‘우리 것이 좋은 것이여!’를 외치시던 고(故) 박동진 명창의 흉내를 내본다. ‘작은 것이 더 예쁜 것이여!’
▼ 12 : 15. 세 번째 다리는 ‘도실교’이다.
▼ 다리에서 만난 용담호는 요런 모습으로 변했다. 용담호가 관광지로 매력이 높은 것은 멀찌감치에서 호수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이렇듯 푸른 호수면 위를 직접 가로지르며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다.
▼ 다리 건너에는 ‘용담호 우리팬션’이 있었다. ‘뷰’가 있는 쉼터로 알려지면서 젊은이들이 자주 찾는다는 곳이다.
▼ 12 : 19. 네 번째 다리인 ‘용강교’. 이 다리까지, 지나온 다리 하나하나가 호수와 육지가 넘나들이하는 지점을 연결하고 있었다.
▼ 기세를 부풀려온 용담호가 이제는 거의 바다 수준으로 몸집을 키웠다. 맞다. 우리나라에서 다섯 번째로 큰 호수라고 했다. 그런데도 수면은 거울처럼 잔잔했다. 그 위에 진안고원의 높은 산줄기가 그림자처럼 비친다.
▼ 호수를 향해 툭 튀어나온 반도에는 펜션이 들어앉았다. 조용하게 ‘물멍’ ‘산멍’ 하기 딱 좋은 풍경이다. 저런 곳에서는 해질 무렵이면 마음속 깊은 곳까지 노을이 물든다. 그리고 그리움에 멍드는 곳이 된다.
▼ 12 : 24. 발걸음은 어느덧 ‘옥거마을(이정표 : 용담면사무소 6.0km/ 주천면사무소 9.4km)’에 이른다. 고원길은 버스정류장 뒤 포장길을 따라 올라간다. 참고로 ‘옥거리’는 용담댐이 축조되기 전까지 면사무소가 있던 용담면의 행정 중심지였다. 삼국시대 때 백제가 ‘물거현’을 설치했고, 고려 때부터는 용담현청이 있어왔다. 하지만 용담호에 물이 차면서 이젠 옛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 60m쯤 올라갔을까 마을회관을 지나자마자 등나무로 만든 터널 앞에서 오른편 산자락으로 파고든다.
▼ 이때 용담호반에 터를 잡은 ‘옥거마을’의 아름다운 풍광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 마을 앞으로 흐르는 내(川)가 있다고 해서 ‘도랑 거(渠)’자를 붙여 ‘거리(渠里)’. 그 물이 또 옥처럼 맑기에 ‘맑은 내’라는 뜻의 ‘옥거(玉渠)’가 되었다는 산골마을이다. 하지만 용담호에 물이 차면서 터를 옮겼고, 이젠 어촌 아닌 어촌이 되어버렸다.
▼ 산길은 무척 순했다. 보드라운 흙길에 경사까지 완만하다. 거기다 주변 소나무들이 피톤치드까지 보내오니 힐링이 따로 없는 구간이라 하겠다.
▼ 하지만 그런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다. 오래지 않아 가팔라져버리기 때문이다. 그것도 곧바로 오르지를 못하고 왔다갔다 ‘갈 지(之)자’를 쓰고 나서야 겨우 오를 수 있을 정도로 가파르다.
▼ 12 : 52 – 13 : 02. 그렇게 한동안 몸부림을 치고 나서야 산불감시탑이 보초를 서고 있는 ‘용강산’ 정상에 이를 수 있었다. 성치지맥에서 분기 봉화산(670.6m)을 거쳐 온 능선에 걸터앉은 봉우리다. 정상에는 올라오느라 고생한 이들에 대한 보상인 듯 벤치를 놓아두었다. 덕분에 우린 준비해온 간식을 먹으며 느긋이 쉬다 갈 수 있었다.
▼ 정상은 텅 비어있는 듯한 모양새이다. 정상석은커녕 그 흔한 표지기(산악인들이 매달아 놓은)조차 눈에 띄지 않는다. 고원길 이정표(완주 인증지점)가 이 모든 것을 대신하고 있을 따름이다. 그게 못내 안타까웠던지 누군가 이정표에 높이(420.3m)를 적어 넣었다. 하지만 내 앱은 434m를 찍는다. 이곳이 ‘용강산’의 정상이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얘기다.
▼ 정상에서의 조망은 뛰어나다. 구불구불 드넓게 펼쳐진 용담호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가파른 산길에서의 고달픔을 완벽하게 해소시켜버리는 아름다운 풍경이다.
▼ 13 : 02. 하산을 시작한다. 그렇다고 내리막길만 걷지는 않는다. 짧은 오름과 긴 내림이 반복되면서 고도를 낮추어간다.
▼ 산길은 울창한 소나무 숲을 헤집으며 간다. 솔향기가 코끝을 스쳐가는 멋진 오솔길이다. 소나무는 그렇게나 좋다는 피톤치드를 가장 많이 배출하는 나무 중 하나다. 그러니 오늘은 웰빙에다 힐링을 덤으로 얻어가는 셈이다. 이 아니 행복할 손가!
▼ 13 : 17. ‘금봉재’에 이른 산길이 왼쪽으로 방향을 튼다. 발걸음을 잠시 멈추고 인터넷을 검색해본다. 주요 포인트의 유래를 알아두면 다음에 만나게 될 풍경들에 대한 설명을 해나기가 훨씬 편해지기 때문이다. 아무튼 그런 와중에 진짜 ‘용강산(420.3m)’이 코앞으로 다가와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계속해서 능선을 타면 5분이 채 안되어 이를 수 있는 거리다. 그렇다면 아까 이정표가 세워져 있던 곳은 ‘용강산’이 아니고 용강산 능선에 있는 한 지점이었던 셈이다.
▼ 해발 383m인 금봉재(이정표 : 용담면사무소 4.4m/ 주촌면사무소 11.0km)는 용담면 송풍리와 옥거리를 잇는 고개이다. 과거 용담면 사람들이 금산이나 서울지역으로 가기위해 넘던 고갯마루 중 하나였다. ‘금봉(錦鳳)’이란 지명은 고개를 낀 지형이 부인들이 머리에 꽂는 금비녀처럼 생겼다는 데서 유래했다.
▼ 길이 더 고와졌다. 경사를 느끼지 못할 정도로 평탄한 길이 계속된다.
▼ 13 : 27. 자갈이 깔린 임도로 내려섰다. 왼쪽으로 방향을 꺾어 산모롱이를 살짝 돌자 이정표가 종점인 용담면사무소까지 3.8km 밖에 남지 않았다며 힘을 내란다.
▼ 이후부터는 임도를 따른다. 시멘트포장길인데 햇빛을 가려줄 나무가 없어 오뉴월에는 뙤약볕에 고생깨나 할 수밖에 없는 구간이다. 하긴 걷기 여행자들에게 양산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고 하지 않았던가.
▼ 길을 걷는 여행자에겐 반드시 지켜야 할 약속이 있다. 둘레길은 지역 주민의 생활 터전을 지나기 때문에 농작물을 따거나 논밭에 함부로 들어가는 일을 삼가야 한다. 주인 있는 임산물 채취도 마찬가지다. 지역 주민에게 농작물이나 임산물은 소중한 재산이자 자식과도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 ‘앗! 다슬기 닷!’ 앞서가던 집사람이 호들갑을 떤다. 그녀의 말마따나 꽤 많은 다슬기가 송사리 떼와 함께 노닐고 있었다. 그만큼 물이 맑다는 얘기일 것이다.
▼ 13 : 57. ‘옥수마을’을 앞둔 삼거리(이정표 : 용담면사무소 2.1km/ 주천면사무소 13.3km)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튼다.
▼ 이어서 묘역이 들어서있는 고개로 올라간다. 높지도 그렇다고 낮지도 않은 고개인데 여정의 막바지라서인지 의외로 힘들었다.
▼ 나그네의 그런 고달픔을 가엽게 여긴 듯, 노송 그늘에 식탁용 벤치를 놓아두었다. 덕분에 얼음물로 갈증을 달랜 다음 다시 길을 나설 수 있었다.
▼ 14 : 04. 고개를 기점 삼아 다시 숲속으로 들어간다.
▼ 14 : 19. 고개를 넘으면 회룡마을(이정표 : 용담면사무소 1.3km/ 주천면사무소 14.1km). 법정 동리인 송풍리(松豊里)에 속한 자연부락 중 하나다.
▼ 이 마을은 살기 좋은 마을로 유명하다. 2010년도 그린빌리지 사업을 시작으로 2011년 참살기 좋은 마을가꾸기사업을 진행하면서 꽃길과 벽화 등 마을경관을 조성하는데 심혈을 기울인 결과다.
▼ 경운기를 모는 아버지나 짐칸에서 재롱을 부리는 딸내미가 부러울 정도로 행복해 보인다. 요즘 귀농·귀촌 인구가 늘어나는 추세라던데, 저런 정겨움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 아닐까 싶다.
▼ 누가 저리도 고운 글을 지었을까? <네가 나오게 오늘 길/ 네가 너에게 가는 길/ 서로의 길이 맞닿아/ 인연이라는 이름으로 자국을 남긴다.>, <날마다/ 희망이라는 선물을/ 가져다주는 오늘>
▼ 고원길은 회룡마을을 그냥 벗어나지 않는다. 야트막한 고개 하나를 더 넘으란다.
▼ 정자가 지어져 있는 고갯마루는 ‘장태봉’으로 올라가는 등산로의 들머리 역할도 겸하고 있었다. 처음 들어보는 이름인데, 봉화산(670.6m) 산줄기의 한 지점을 차지하고 있는 야트막한 봉우리이지 싶다.
▼ 14 : 24. 고개를 넘으면 송풍리의 또 다른 자연부락인 ‘문화마을’이다. 면사무소와 파출소, 우체국, 학교가 들어서는 등 용담면의 행정중심을 이루나 용담댐 건설로 새로 면소재지가 되면서 생긴 마을이라서 농촌도 그렇다고 도시도 아닌 어정쩡하다는 느낌이 강하다.
▼ 14 : 29. 문화마을을 관통해온 탐방로는 용담중학교 앞에서 23번 국도(안용로)와 방화천(노온교)을 연이어 가로지른다. 하나 더. 면소재지답게 문화마을에는 음식점과 마트 등 편의시설들이 들어서 있었다. 하지만 주말이어선지 문은 열려있지 않았다. 캔맥주를 사려고 들렀던 편의점도 주인장이 외출 중이었다.
▼ 14 : 33. 몇 걸음 더 걷자 ‘용담면사무소’가 나오면서 트레킹이 종료된다. 10구간이 종료됨을 알리는 조형물은 면사무소 앞 화단에 세워져 있었다. 그나저나 오늘은 4시간을 걸었다. 앱은 12.86km를 찍는다. 중간에 산을 두 개나 넘었음을 감안하면 적당한 속도로 걸은 셈이다.
▼ 오늘도 집사람과 함께 했다. 그리고 걷는 내내 많은 얘기를 주고받았다. 아니 십중팔구는 내가 얘기를 하고 집사람이 들어준다. 그것도 감정 이입을 해가며. 한자 ‘들을 청(聽)’에는 ‘듣는 것이 왕처럼 중요하고 열 개의 눈으로 보듯 상대방에게 집중해 상대와 마음이 하나 되는 것’이라는 의미가 담겨있다. 그러니 집사람은 듣기의 기본을 제대로 실천한 셈이다. 덕분에 난 마음 놓고 웃고 떠들며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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