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지 : 산토리니(Santorini), 피라(Fira) 마을

 

여행일 : ‘23. 3. 22()-29()

 

세부 일정 : 아테네수니온곶아테네산토리니아테네델피테르모필레메테오라아테네

 

특징 : 그리스 여행의 단골 섬.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다녀왔고 너무도 많이 소개가 된 곳이라 다시 거론하기 새삼스러울 정도지만 그래도 그리스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하는 바다, 그리고 하늘의 색깔을 직접 보지 않고는 그 어느 곳, 어떤 시간에서도 경험할 수 없을 정도의 압도적이고 독보적인 풍경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산토리니는 대략 울릉도 크기만 한 본섬을 가리키는 이름이고 그 섬 안에 피라와 이아, 카마리 등 여러 마을들이 산재해 있다.

 

 산토리니 여행 셋째 날은 피라(Fira) 마을을 둘러보는 일정이다. 하늘길로 오든, 바닷길로 오든 모든 산토리니 여행은 섬의 수도 피라(Fira) 마을에서 시작된다. 본섬의 서쪽, 화산섬이 한눈에 내다보이는 경치 좋은 이 마을에 산토리니 인구의 대다수가 살고 있다. 피라는 행정적으로 산토리니의 수도 역할을 한다. 하지만 크기는 별로, 해안선을 따라 절벽 위에 길게 형성된 마을은 걷는 길이가 1.3km밖에 되지 않는다.

 피라마을 투어도 단순한 편이다. 칼데라의 바위절벽을 따라 길게 늘어선 마을의 메인 골목을 따라 걸어보면 된다. 선사·고고학 박물관 등 이곳저곳 빠짐없이 둘러보다가, 시간이 남을 경우 절벽 아래에 있는 올드 포트까지 내려갔다 오면 된다.

 투어는 테토코풀루 광장(Theotokopoulos Main Square)’에서 시작된다. 이 광장을 중심으로 상점 및 음식점들이 몰려있기 때문이다. 네댓 시간 동안 마을 곳곳을 둘러본 다음 이곳으로 되돌아와 주차장으로 이동하게 된다.

 광장에는 산토리니를 상징하는 당나귀의 조형물이 세워져 있었다. 저 당나귀들은 아직도 산토리니의 중요한 일꾼 역할을 수행한단다. 믿기지 않겠지만, 가파른 절벽에 지그재그로 만들어진 계단을 오르내리는 데는 저만한 교통수단이 없단다.

 옛 항구(Old Port)부터 가보기로 했다. 절벽 아래에 위치하기 때문에 조금 힘들지만 어쩌겠는가. 과거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니 한번쯤 둘러봐야 하지 않겠는가. 가는 길은 간단했다. 메인골목의 담벼락에 붙어있는 ’Old Port‘ 방향표지판을 따라가면 된다.

 몇 걸음 걷지 않아 시야가 툭 트이면서 비취빛 지중해가 펼쳐진다. 칼데라의 바위절벽 가장자리(경사진 부분)에 마을이 들어선 산토리니의 전형적인 풍경이라 하겠다.

 피라마을도 산토리니의 전형적인 풍경을 보여준다. 절벽의 경사면에 기대어 계단식으로 지어진 집들은 하나같이 하얀색으로 빛나고, 그 맞은편에는 에게 해의 드넓은 바다가 눈이 시릴 정도로 파란 색깔로 펼쳐진다. 단순한 색체들이 어울려서 만들어내는 경치는 담백하지만 그 앙상블은 여느 조합이 부럽지 않을 정도로 대단하다.

 발아래는 에게 해가 펼쳐진다. 화산폭발로 이곳 산토리니에서 갈려나갔다는 섬들과 함께. 오른쪽이 티라시아(Thirasia)’이고, 왼쪽은 분화구가 있는 니아 카르메니(Nea Kameni)’이다. 사진에는 나타나지 않았지만 맨 왼쪽에 팔리아 카르메니(Palia Kameni)’가 있다. 꼼꼼히 살펴보면 꼬맹이 섬인 아스프로니시(Aspronisi)’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계단이 놓인 경사로를 따라 몇 걸음 더 걸으면 길고 긴 계단(Karavolades Stairs)이 시작된다. 계단의 연속이라서 무릎이 시원찮은 노약자들에게는 다소 부담스러운 구간이다. 그래선지 입구에 당나귀를 타고 내려갈 수 있다는 안내판을 붙여놓았다. 편도에 ‘10유로란다.

 당나귀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예로부터 당나귀는 항구와 절벽 위의 마을을 잇는 주요 이동수단이었다고 한다. 그러다 케이블카가 들어서면서 이젠 관광용으로 쓰임새가 바뀌었고, ‘동키 택시(donkey taxi)’로 불리는 산토리니의 명물이 됐다. 그렇다면 저곳은 ‘donkey station’쯤으로 부르면 되겠다. 상부의 택시 승강장?

 (Donkey Way To Fira)은 아찔한 바위절벽을 헤집으며 나있다. 가장자리로 다가가보면 발아래로 비취빛 지중해가 아스라이 펼쳐진다. 무섭다는 얘기다. 절벽 쪽으로 난간을 둘렀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랄까?

 계단을 놓았으나 가파르기는 매한가지. 벼랑은 이마저도 내버려두지 않는다. 일정한 간격으로 왔다갔다 갈 지()’자를 쓰면서 겨우겨우 아래로 내려간다. ! 항구를 살펴본 다음 마을로 되돌아올 때 절대 걷지 말라는 것을 깜빡 잊을 뻔했다. 당나귀들이 싸 놓은 똥들이 풍기는 지독한 냄새를 감수할 요량이 아니라면. 아무튼 지금까지 맡아 본 동물의 배설물 냄새 중 가장 심했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숨결 속에 그 냄새가 들어있다고 생각해보라.

 오르내리는 여행객들의 버거움을 산토리니 당국도 알았나보다. 중간에 저런 쉼터를 만들어 두었다. 나무도 심어놓아 여름에는 시원한 그늘까지 만들어 주겠다.

 물품보관 창고로 여겨지는 건물도 눈에 띈다. 턱이 진 계단 길, 바닥은 돌과 회로 만들어져 있다. 그러니 파이는 것은 어쩌면 당연. 누군가는 보수를 해야 할 것이고, 그 때마다 자재를 운반해 올 수는 없었을 것이다.

 길의 보수는 동키 택시의 기사들이 하고 있는 모양이다. 택시를 옆에 세워둔 채 모르타르(mortar)를 만드느라 분주한 모습이다.

 길을 걷는 내내 올드 포트(old port)’가 발아래로 내려다보였다. 아티니오스에 신항이 만들어지기 전에는 중요한 상업 항구였지만 현재는 관광용 항구 역할만 수행한다.

 내려가는데도 땀이 줄줄 흐른다. 3월 하순이니 이른 봄이라 할 수 있겠건만 지중해의 날씨는 벌써 여름을 재촉하는 모양이다. 그렇게 얼마를 내려갔을까 또 다른 동키 스테이션이 보인다. 600여 개나 된다는 계단길이 끝나간다는 얘기일 것이다.

 땀을 한바가지나 쏟고 나서야 도착한 항구, 이왕에 내려왔으니 가슴 가슴마다 산토리니의 추억을 담뿍 담아가란다. 저렴한 가격에 모시겠다나?

 낚시 투어도 진행되는 모양이다. 수년 전, 다른 여행지에 갔다가 참치 낚싯배를 탄 일이 있었다. 초장에 양주까지 넉넉히 준비해 갔지만 결과는 전무, 만일을 대비해 가져갔던 햄버거로 허기를 채우며 툴툴댔던 추억이 솔솔...

 작은 고깃배 대여섯 척이 전부인 포구는 한가롭기 그지없다. 수심이 얕아 큼지막한 배는 접근조차 할 수 없겠다. 관광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새로운 항구를 만들 수밖에 없었던 이유일 것이다.

 wine shop은 문이 닫혀있다. 열렸다고 해도 살 생각은 없었지만...

 항구 주변은 빼어난 풍광을 보여준다. 항구를 감싸는 바위벼랑은 그 자체만으로도 아름다운데, 그 난간에 걸터앉은 건물 몇 채가 빈틈까지 메워준다. 하지만 기능을 잃어버린 항구처럼 자신의 몫을 다 했다는 듯 빈 건물로 남아있다. 하나 더, 저런 경관도 찬찬히 살펴볼 수가 없었다. 그늘진 곳은 모두 레스토랑이 차지했고, 거기다 호객을 하는 종업원들 때문에 오가는 것조차도 자유롭지 못했다.

 바다에는 크루즈 선박들이 정박해 있었다. 맞다. 산토리니는 최근 전 세계인들이 떠나고 싶은 유럽 여름휴양지 순위에서 1위를 차지한바 있다. 스페인의 이비사섬과 스페인 카나리아 섬 테네리페가 그 뒤를 잇는다. 조사기관인 CV빌라는 황금 일몰, 따뜻한 기온, 놀라운 풍경으로 유명한 산토리니가 반드시 방문해야 하는 명소 1위를 차지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평까지 덧붙였었다.

 크루즈에서 내린 여행객들로 늘 붐비는 만큼, 항구 주변에 카페, 레스토랑, 상점 등이 늘어서 있다. 에게 해 푸른 바다나 칼데라 절벽을 눈에 담으며 맥주 한잔 하거나, 지중해식 음식 한 상을 즐겨보는 것도 좋을 듯.

 요트를 타고 화산 섬인 네아 카메니(Nea Kameni)와 팔레아 카메니(Palea Kameni) 등 인근 화산섬들을 돌아볼 수도 있다.

 절벽 위(마을)로 올라갈 때는 케이블카를 이용했다. 과거에는 카라볼라데스 계단(Karavolades Stairs)이 절벽 위로 올라가는 유일한 방법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1982년 케이블카가 놓이면서 선택에 자유가 주어졌다. 다만 6유로의 탑승료(편도)는 내야한다.

 대합실(Lower Station). 관광객들을 내려다보고 있는 저 분들의 정체는 대체 뭘까?

 케이블카는 단체로 움직이나보다. 먼저 온 사람들이 캐빈에 타고 있는데도 우리가 마지막 캐빈에 오를 때까지 멈춘 채로 기다리고 있었다.

 케이블카에서 내다본 세상. 네아 카메니, 팔레아 카메니 섬이 아득하게 내려다보인다. 그게 또 크루즈와 어우러지며 한 폭의 풍경화를 그려낸다. 그것도 잘 그린 그림으로... 참고로 저 섬들은 산토리니의 화산지형을 고스란히 담아낸 곳으로 알려진다. 네아 카메니는 분화구까지 트레킹이 가능하고, 팔레아 카메니는 유황온천에서 헤엄을 칠 수도 있단다.

 눈앞에 펼쳐지는 피라마을은 이아(Oia) 마을과 별반 다르지가 않다. 사실 여행자들에게 피라(Fira)는 낯선 편이다. 머릿속에 산토리니가 곧 이아(Oia)’라고 기억시켜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벼랑에 걸터앉은 하얀 마을, 좁은 골목 등 이아마을과 별간 다르지가 않다.

 티리시아(Nisos Thirasia)’ 섬도 눈에 들어온다. 본래는 산토리니 본 섬과 한몸이었는데, 수천 년 전 화산폭발로 갈라졌다고 전해진다. 그 오른쪽, 절벽에 매달려 있는 듯한 마을은 피로스테파니(Firostefani)’가 아닐까 싶다. 뷰포인트로 소문난 세 개의 종 교회(Three Bells of Fira iconic viewpoint)’를 옆에 끼고 있다는...

 상부 승강장(Upper Station)에서 내려 마을 투어에 들어간다. 메인 골목을 따라 끄트머리까지 간다. 클럽으로 흥청거리는 에리트루 스타부르 거리, 보석가게들이 즐비한 골드 스트리트, 고대 그리스의 공예품들을 판매하는 이파판티스 거리 등이 이방인의 발길을 유혹한다.(지명은 여행칼럼니스트인 서진님의 글에서 빌려왔다)

 피라마을도 교회가 참 많았다. 1990년대 말. 보고 일정에 쫓길 때마다 새벽 출근을 할 수밖에 없었다. 어스름을 헤치며 차를 몰다가 차창 밖으로 스쳐지나가는 십자가 불빛을 보며 세상 사람들이 모두 교회를 믿는 줄로 알았다. 그런데 이곳 산토리니는 거짓말 좀 보태 열 집 건너 한 집이 교회라고 할 정도다. 그리스 국민의 95% 이상이 기독교인이라는 통계가 실감이 난다.

 산토리니의 골목길을 비좁다. 도로도 비슷한 형편이다. 아니 유럽의 오래된 도시들 대부분이 마찬가지라고 보면 되겠다. 애초에 자동차가 아닌 마차나 사람의 통행을 고려해 설계됐기 때문이다. 아무튼 굳이 목적지를 정하지 않고, 끝없이 이어지는 그 골목들을 헤매는 게 피라마을 여행의 묘미다. 절벽에 빼곡히 늘어선 집과 그 골목사이를 걷다가, 흰 담벼락의 계단에 서서 아름다운 블루와 화이트의 조화를 감상한다.

 얼마쯤 걸었을까 길이 많이 넓어졌다. 오른쪽으로는 시야까지 열린다. 사진 찍기 딱 좋은 장소다. 끊임없이 눌러대는 카메라 셔터를 타고 산토리니의 다양한 풍경들이 프레임 속에 담긴다.

 산토리니의 일상. 엄마야 조급하건 말건 아이는 마냥 즐겁다. 저런 소소한 일상들이 모여 산토리니와 사랑에 빠지게 하지 않나 싶다. 거기에 신이 빚어낸 환상의 풍경이 더해지면서...

 아틀란티스 호텔. 아틀란티스는 오래 전에 사라졌다는 대륙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산토리니가 바로 그 사라진 대륙이라고 믿는다. 호텔의 이름을 아틀란티스로 삼은 이유가 아닐까 싶다.

 피라 마을은 파란 하늘과 맞닿아 있는 새하얀 집이 환상적인 풍경을 만들어내는 곳이다. 그중에서도 에게 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전망 좋은 곳에는 어김없이 바(Bar)나 카페, 레스토랑, 호텔이 들어섰다.

 그런데 테라스를 라운지 삼은 게 특이하다. 맞다. 어느 여행 작가는 그리스식 레스토랑인 타베르나도 절벽 사이에 테이블을 갖춰야 명당으로 꼽힌다고 했었다.

 피라의 가장 큰 특징은 집들이 하나같이 벼랑에 기대여 지어졌다는 점이다. 흰 테라스를 품은 집들이 벼랑 아래 계단을 따라 자리를 채운다. 어렵사리 담과 담을 비집고 골목도 생겨났다. 벽을 흰색으로 칠하고 창틀은 바다를 닮은 코발트색으로 칠했다. 그게 입소문을 타면서 이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섬이 되었다.

 푸른 대문의 집들 사이로 미로처럼 나 있는 좁은 골목 길. ‘피라에서는 아랫집 지붕은 윗집 테라스가 된다. 사람들은 그 테라스에 누워 에게 해의 바람을 맞으며 일광욕을 즐긴다.

 마을을 벗어난 북쪽 끝, 집들은 없고 봉우리에 원통형 바위만 뽈록하니 솟아올랐다. 산토리니 최고의 전망대로 알려지는 스카로스 바위(Skaros Rock)’ 18세기까지 베네치안 귀족들이 거주하는 산토리니의 수도였다고 한다.

 큰길가에 박물관이 있다기에 찾아보기로 했다. 절벽의 가장자리를 벗어나자 길을 따라 전통식당인 타베르나(taverna)와 가게들이 몰려 있었다.

 박물관 앞의 큰길, 산토리니의 여유로움은 읽혀지지 않았다. 대형 슈퍼마켓과 버스·택시 터미널, 행정관서와 박물관 등 핵심시설들이 들어서 있는 길가 풍경은 산토리니라기 보다는 아테네의 변두리 어디쯤에 더 가까워 보였다. 덕분에 슬로시티를 연상해온 내 상념은 확 날아가 버렸다.

 큰길가에 선사 박물관(The Museum of Prehistoric)과 고고학 박물관(Archeological Museum)이 있었다. 선사 시대와 고대를 일부러 나누어서 박물관을 운영할 만큼 관련 유물과 자료가 많다는 얘기일 것이다. 그러니 어찌 들어가 보지 않을 수 있겠는가.

 고대 화산폭발로 파괴된 청동기 시대의 도시인 아크로티리(Akrotiri)’의 유물을 전시하고 있단다. 박물관 1층에는 주로 기원전 17세기의 도자기, 오브제 등이, 지하에는 아크로티리의 건물을 장식했던 벽화(프레스코화)를 전시하고 있다.

 초기 키클라데스 시대(BC 2700-2400)의 대리석 조각상들

 기원전 17세기 탁자

 초기 키클라데스 시대(BC 2700-2400) 청동 단검

 후기 키클라데스 시대(BC 17세기 초) 도자기 물병, 주전자 등

 황금으로 만든 염소. 아크로티리에서 발견된 유일한 황금 조각상이란다. 이로보아 화산 폭발 때 주민들이 고가품들을 들고 대피했을 것이라나?

 아크로티리 벽화.

 아크로티리 유적지 조감도. ‘아크로티리 유적 BC1650~1500년 사이에 일어난 화산 폭발로 인해 화산재와 진흙에 묻혔던 청동기시대 미노아문명의 유적이다. 1967년부터 발굴되어 일반인들에게 공개하고 있는데 유적을 통해 당시 산토리니 섬에 살았던 사람들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이들은 크레타와 교류했고 2~3층의 건물에서 생활했다. 놀랍게도 상하수도 시설을 갖춘 도시였으며 수세식 변기가 있는 집도 발견됐다.

 점심은 큰길가에서 했다. 벼랑 위에 지어진 테라스 형 카페에서 지중해를 바라보며 식사를 할 수도 있었지만, 그런 경관이야 실컷 봤으니 오롯이 식사나 즐기자는 집사람의 주장을 따랐다. 대신 집사람의 입맛에 딱 맞는 연어스테이크에 해산물스파게티를 먹었다. 빈산토(Vinsanto)와 동키 맥주를 반주로 곁들였음은 물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