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일 : ‘23. 3. 22()-29()

 

세부 일정 : 아테네수니온곶아테네산토리니아테네델피테르모필레메테오라아테네

 

특징 : 그리스 여행의 단골 섬.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다녀왔고 너무도 많이 소개가 된 곳이라 다시 거론하기 새삼스러울 정도지만 그래도 그리스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하는 바다, 그리고 하늘의 색깔을 직접 보지 않고는 그 어느 곳, 어떤 시간에서도 경험할 수 없을 정도의 압도적이고 독보적인 풍경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산토리니는 대략 울릉도 크기만 한 본섬을 가리키는 이름이고 그 섬 안에 피라와 이아, 카마리 등 여러 마을들이 산재해 있다.

 

 첫 방문지는 메사리아마을이다. 3일 동안 머무를 호텔이 이곳에 있기 때문이다. 섬의 동쪽 해변과 인접한 평지에 마을이 들어서있는데, 인근에 산토리니 공항이 위치하고 있다.

 산토리니는 에게 해에 있는 작은 섬이다. 때문에 피레우스 항(아테네의 외항으로 최고의 산업항구다)에서 배를 타고 들어갈 수밖에 없다. 아니 돈을 조금 더 쓰고 비행기(45)로 들어갈 수도 있다. 배도 급행 쾌속선(4시간)과 완행 페리( 8시간)로 나뉜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초승달처럼 생긴 산토리니는 푸른 바다, 하얀 벽, 파란 지붕, 그리고 절벽 가옥과 아찔한 골목으로 여행자의 심장을 쿵쿵 두드려주는 세기의 여행지다. 서쪽은 깎아지른 바위절벽, 반면에 오른쪽은 사람들이 접근할 수 있는 해안선을 끼고 있다.

 여행사는 이동수단 중 가장 싼 완행 페리를 이용하고 있었다. 호텔에서 나눠주는 아침식사 대용 도시락(·쥬스·사과·생수)를 하나씩 챙겨들고 승선인원이 2,500명이나 된다는 초대형 선박 블루 스타에 오른다. 좌석은 이코노미. VIP나 침대석 등 선택의 폭이 넓으나 여행사는 이 역시도 가장 싼 좌석을 이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배 안에 식당·카페·미니마켓 등 편의시설을 두루 갖추고 있어 이용에 어려움은 없다.

 완행 페리이어선지 산토리니로 가는 도중 두 곳을 경유하고 있었다. 첫 번째로 들른 섬은 파로스(Paros)’. 에게 해에 있는 키클라데스 제도에서 낙소스 다음으로 큰 섬이며, 반투명한 백색의 파리아 대리석이 생산되는 곳으로 유명하다.

 이 섬은 그리스 신화에도 등장한다. 신화 속 파로스는 트로이 전쟁을 끝내고 귀향하던 메넬라오스가 탄 귀향선의 선장 이름이다. 그는 메넬라오스 일행이 풍랑에 밀려 이집트 연안의 섬에 표착했을 때 뱀에 물려 사망한다. 그리고 그 섬의 이름이 됐다.

 선창은 배에서 내리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사진에는 안 나오지만 배를 빠져나가는 차량들도 꽤 여럿이다. 참고로 블루스타 호는 사람 말고도 꽤 많은 숫자의 차량을 함께 태운다. 내부에는 간단한 음료를 즐길 수 있는 바와 레스토랑, 선물 용품점이 있으며 좌석은 흡연석과 금연석으로 구분된다.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는 공간도 구비돼 있어 배에서도 업무를 처리할 수 있다.

 두 번째로 들른 섬은 낙소스(Naxos). 그리스 신화에서 크레타의 미궁에서 빠져나온 테세우스가 잠든 아리아드네를 버려두고 간 섬으로 유명하다. 아리아드네는 축제와 술의 신이자 낙소스의 수호신인 디오니소스에게 발견되어 그의 아내가 된다. 죽은 뒤에는 제우스신의 배려로 북쪽왕관자리라는 별자리가 되어 하늘에서 빛나고 있다.

 섬의 끄트머리에 떡하니 걸터앉은 저 유적은 아폴론 신전의 하나만 남은 문이라고 한다. 초기 키클라데스 시대의 유적인데, 다른 부분은 다 무너져 돌무더기로만 남아있고 저 문만 온전하게 남아있다나? 아무튼 낙소스의 상징처럼 항구와 함께 그림 같은 구도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패스트푸드로 때운 점심이 부실해 컵라면까지 소환할 수밖에 없었던 긴 여정, 잠을 청하려고 산 맥주는 소주까지 섞어가며 마셨다. 그렇게 8시간을 보낸 후에야 진행방향 저만큼에서 산토리니가 그 자태를 드러낸다.

 뱃전에서 만난 첫 도시는 이아마을이다. 산토리니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산토리니 여행의 중심이 된다. 특히 저 마을에서 바라보는 황금빛 노을은 세계 3대 일몰로 꼽힌다.

 두 번째로 얼굴을 내미는 건 산토리니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피라마을’. 에게 해와 화산절벽이 만나는 칼데라 지형에 매달려 있다.

 갈 지()’자를 써가며 항구(old port)로 내려가는 길이 선명하다. 피라마을을 찾는 관광객들이 빼놓지 않고 들르는 코스로, 대부분은 당나귀를 타고 저 길을 따라 바닷가까지 내려온다.

 섬은 온통 바위, 그것도 서슬 시퍼런 절벽으로 이루어졌다. 화산 폭발로 인해 섬이 쪼개지면서 생긴 단애라고 한다.

 수직의 바위절벽 위에 하얀 마을이 걸터앉았다. 잡티가 하나도 없는 순백의 마을, 많은 이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산토리니의 전형적인 풍경이라 하겠다.

 잠시 후 도착한 아티니오스(Athinios)’항은 천 길 낭떠러지 아래 있었다. 절벽을 깎아 땅을 만들고 배가 정박할 수 있도록 항구를 조성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 뒤로 마을로 들어가는 도로가 보인다. 절벽을 깎아 길을 냈는데, 한 번에 치고 오르지를 못하고 왔다갔다 갈 지()’자를 쓰고 나서야 겨우겨우 올라간다.

 배에서 내리는 사람들과 그 배를 타려는 또 다른 사람들로 선착장은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민박집 사람들이 피켓을 들고 우르르 몰려들기도 한다. 본격적인 성수기가 시작되기 전인데도 이 정도라면 산토리니는 역시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섬 중의 하나임이 분명하다. 맞다. 성수기인 7~8월에는 저렇게 큰 페리인데도 좌석 구하기가 어렵다고 했다.

▼ 항구에는 카페, 레스토랑, 상점들이 늘어서 있었다. 호텔을 연결해주는 안내소도 눈에 띈다. 하지만 간판의 대부분은 렌터카가 차지하고 있었다. 산토리니에서는 대중교통 이용이 불편하다는 증거가 아닐까 싶다.

 깎아지른 바위절벽을 기다시피 오르고 있는 차량들이 눈에 들어온다. 하나같이 굼벵이 걸음으로 기다시피 오르고 있다. 바위절벽을 깎아 길을 내가보니 폭에 한계가 있었나 보다. 거기에 조금 전 크루즈에서 내린 차량들이 한꺼번에 올라가면서 체증을 불러일으켰을 것이고 말이다.

 숙소는 메사리아 마을에 있는 칼마 호텔이다. 3성급의 자그만 호텔이지만 화이트와 블루가 예술에 가깝게 어우러지는 조화, 산토리니가 자랑하는 시그니처 컬러이다. 거기에 지중해의 푸른 바다가 내다보이는 뛰어난 를 더했다.

▼ 제법 큰 수영장도 있었다. 하지만 성수기가 아니어선지 물은 채워놓지 않았다.

 독립적인 공간으로 만들어놓은 발코니도 자랑거리다. 덕분에 우린 몽키 맥주(옐로우·레드·크레이지가 출시되고 있었다)와 우조(Ouzo)로 피로연 분위기를 낼 수 있었다. 우조의 야릇한 향이 썩 내키지는 않았지만. 우조는 포도를 증류시킨 40도가 넘는 독주다. 거기에 아니스 향을 가미했다. 때문에 치약냄새가 나서 비위가 약한 사람들은 목구멍으로 넘기는 것부터가 만만치 않다.

 발코니에서는 산토리니의 다양한 풍경을 눈에 담을 수 있다. 구릉지는 기본, 황폐하지만 산도 있었고, 바다 방향으로는 작지만 들녘도 분포되어 있었다.

 이제 메사리아 마을을 둘러볼 차례다. 메사리아는 시골 냄새가 풀풀 풍기는 작은 마을이다. 베이커리나 카페, 슈퍼마켓, 렌터카서비스, 주유소, 문구점 같은 상점들도 사이좋게 하나씩 있을 정도, 하지만 있을 것은 다 있었다. 특히 레스토랑은 세 개나 눈에 띈다. 그게 메뉴 선택의 폭을 넓일 수 있었고, 홀 매니저가 추천해 준 메뉴(해산물과 육류를 각각 믹스 그릴)로 품격 있는 만찬을 즐길 수 있었다. 맥주와 우조(그리스 전통주)로 반주를 곁들였음은 물론이다.

 메사리아 마을은 한적하고 평화로웠다. 이아나 피라 마을처럼 입소문을 탄 관광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공항이 가까운 지리적 여건으로 일부 관광객들이 숙소로 이용하는 정도. 때문에 길거리도 텅 비었다. 자유 일정으로 편성된 우리 일행(30명이나 되었지만)이 전부였을 정도...

 찾는 이들이 드물지만 이곳 역시 산토리니임은 분명하다. 하얀 마을로 대변되는 산토리니’. 그래선지 공원의 나무들까지도 아랫도리를 하얗게 칠해놓았다.

 가로수는 유칼립투스 나무(올리브인줄 알았는데 일행이 고쳐준다)’라고 했다. 그나저나 수령이 얼마나 오래되었기에 저렇게 굵을까?

 도로변 소공원을 지키는 저 동상은 대체 누구일까? 영문 표기가 없는데다 물어볼만한 주민도 눈에 띄지 않는다. 아무튼 그리스를 여행하다보면 저런 동상들을 시도 때도 없이 만나게 된다.

 안으로 들어가자 돌로 지은 화려한 주택이 여럿 눈에 띈다. 하지만 하나같이 텅 비어있었다. 창문도 떨어져나간 지 이미 오래다. 현지 가이드는 이곳에 고급 주택단지가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무슨 이유로 폐허가 되었는지는 그녀도 모른다고 했다.

 조금 더 들어가니 Feggaropetra라는 안내판이 눈에 띈다. 하단에는 traditional cave house라고 적어놓았다. Feggaropetra라는 이름의 전통 동굴 집이 있다는 얘기일 것이다. 참고로 동굴 집은 산토리니의 전통 가옥 중 하나다. 화산활동으로 인해 생긴 연질의 암벽을 파서 집을 지었다. 때문에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다고 한다.

 그러니 어찌 가보지 않을 수 있겠는가. 특히 얼마나 아름다운 장소였으면 6월의 탄생석인 월장석(moonstone)으로 이름을 삼았겠는가.

 상상속의 집을 그려가며 잠시 오르자 연질의 바위절벽이 나타난다. 바위벽에는 문도 여럿 달려있다. 동굴 가옥이 마을을 이루고 있었다는 증거일 것이다. 참고로 산토리니는 화산활동으로 인해 생긴 섬이다. 섬 주민들은 나무가 자라기 힘든 건조하고 척박한 환경으로 인해 나무로 지은 집 대신 화산재가 쌓여 형성된 지층을 파서 만든 동굴형 주택을 통해 그들만의 특별한 주거 문화를 발전시켜 왔다.

 하지만 절벽 앞 공터는 웃자란 잡초로 무성했고, 눈에 들어오는 문들도 하나같이 유리가 없었다. 주민들이 떠난 지 이미 오래라는 얘기일 것이다. 하긴 전통을 고집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누가 저런 곳에서 살까 싶다. 그나저나 폐허로 변한 동굴가옥과 그 위에 지어진 현대식 주택들이 묘한 대비를 이루고 있었다.

 마을에는 작은 공원이 여럿 조성되어 있었다. 덕분에 올리브나무 그늘에서 모처럼의 여유를 즐길 수 있었다. 쌍쌍으로 그네까지 타가면서...

 담장 너머에서는 레몬이 무럭무럭 익어간다. 저 철망은 오가는 사람들의 손길을 거부한다는 메시지일 수도 있겠다.

 반대편 골목도 걸어보기로 했다. 메사리아 마을은 작다. 하지만 아담한 것이 여간 귀여운 게 아니다. 골목을 돌아다니다보면 때맞춰 울리는 종소리도 들을 수 있다.

 그리스정교회의 예배당 역시 하얀 벽에 파란 지붕, 산토리니의 시그니처를 고집한다. 그런데 교회가 많아도 너무 많다. 동네 골목까지 비집고 들어온 우리나라의 카페만큼이나...

 또 다른 정교회. 그런데 하나같이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는다. 때문에 안은 들어가 볼 수 없었다. 그건 그렇고, 교회는 크건 작건 간에 대부분이 하얀색 벽에 파란색 지붕 그리고 종 3개 또는 5개가 구멍마다 달린 종탑을 가지고 있었다. 누가 저렇게 예쁜 디자인으로 교회의 모습을 통일적으로 짓게 만들었는지 궁금하다.

 이곳은 민주주의의 요람이라는 그리스, 민주주의는 획일성을 고집하지 않는다. 그러니 어찌 산토리니의 시그니처를 벗어난 순백의 교회 하나쯤 없겠는가.

 하도 많다보니 교회끼리 겹치기도 한다. 맞다. 그리스는 국민의 98% 그리스정교를 믿는다고 했다.

 특이하게 생긴 교회가 보이기에 카메라에 담아봤다. 가톨릭 국가에서야 흔하겠지만 그리스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외형을 지녔다.

 무턱대고 들어선 어느 예배당, 마당의 저 독수리 조형물은 무엇을 의미할까?

 산토리니에서의 자유일정을 마치고 아테네로 돌아오는 도중 또 한 번의 행운이 주어졌다. ‘블루 스타호의 갑판에서 에게 해를 붉게 물들이며 사그라지는 해를 눈에 담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해가 서서히 지면서 노을빛이 수평선을 따라 그려지는 아름다운 풍광이 연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