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지 : 산토리니(Santorini), 피르고스(Pirgos) 마을
여행일 : ‘23. 3. 22(수)-29(수)
세부 일정 : 아테네→수니온곶→아테네→산토리니→아테네→델피→테르모필레→메테오라→아테네
특징 : 그리스 여행의 단골 섬.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다녀왔고 너무도 많이 소개가 된 곳이라 다시 거론하기 새삼스러울 정도지만 그래도 그리스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하는 바다, 그리고 하늘의 색깔을 직접 보지 않고는 그 어느 곳, 어떤 시간에서도 경험할 수 없을 정도의 압도적이고 독보적인 풍경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산토리니는 대략 울릉도 크기만 한 본섬을 가리키는 이름이고 그 섬 안에 피라와 이아, 카마리 등 여러 마을들이 산재해 있다.
▼ 두 번째 방문지는 ‘피르고스 칼리스티스 (Pirgos Kallistis)’. 줄여서 ‘피르고스’라 부르는데, 이아나 파라 마을은 항상 붐비는데 비해 피르고스는 덜 알려져 여유로운 관광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오히려 인기가 높다. 19세기 초까지 산토리니의 수도였던 곳이라서 고전 건축물과 웅장한 교회 건물들을 둘러보는 재미도 있다. 산토리니 제일의 조망을 자랑하는 곳이기도 하다.
▼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초승달처럼 생긴 산토리니는 푸른 바다, 하얀 벽, 파란 지붕, 그리고 절벽 가옥과 아찔한 골목으로 여행자의 심장을 쿵쿵 두드려주는 세기의 여행지다. 서쪽은 깎아지른 바위절벽, 반면에 오른쪽은 사람들이 접근할 수 있는 해안선을 끼고 있다.
▼ 주차장에 내려 본격적인 투어에 들어간다. 피르고스는 산토리니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마을이다, 그러니 적당히 가파른 오르막길을 올라야함은 물론이다. 나중에는 숨이 찰 정도로 가팔라지기도 하지만.
▼ 골목길 바닥은 돌을 깔았다. 아니 바닥에 돌을 깔아놓고 그 틈새를 석회로 채웠다. 콘크리트를 타설하면서 자갈 대신 돌멩이를 넣었다고 여기면 될 듯. 그런 골목길을 잠시 오르자 커다란 교회가 고개를 내민다. ‘크리스토스 교회(Church Christos)’로 팔각 종탑이 눈길을 끈다. 이게 또 5층 높이라서 멀리서도 눈에 잘 띈다. 저런 팔각 큐폴라(cupola)는 산토리니(유일하다)뿐만 아니라 그리스에서도 드물기 때문에 건축학적으로 관심의 대상이 된단다.
▼ 관광객들이 모여드니 기념품 가게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그리스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컵과 미니어처, 색체가 강렬한 그릇까지 어느 하나 욕심나지 않는 게 없다. 하지만 지금은 여행의 초반, 끓어오르는 구매욕을 꾸역꾸역 집어넣을 수밖에 없었다. 짐의 무게가 늘어날수록 여행이 힘들어지니까.
▼ 산토리니는 기념품을 파는 가게마저도 신비롭다. 옛 유적을 본뜬 외관으로 관광객들의 시선을 이끈다. 아니 잔존 유적을 활용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 카페나 레스토랑이라고 빠지겠는가. ‘Cava alta’, 지중해 요리로 유명한 곳인데, 예약이 필수란다. 입구에 붙어있는 ‘Crazy donkey’ 팻말은 산토리니에 생산되는 맥주를 곁들이면 분위기 ‘업’된다는 얘기일까? 하나 더, 카페 입구에는 ‘들어올 때는 낯선 사람이지만 나갈 때는 친구이다’라는 글귀가 낯선 사람에 대한 친절을 의미하는 ‘philoxenia’라는 단어와 함께 적혀 있었다.
▼ 산토리니에서 해발고도가 가장 높다는 마을은 우리네의 옛 달동네처럼 집들이 산비탈에 기대어 지어졌다. 그래선지 골목길이 미로처럼 얽혀있다. 하지만 길을 잃을 염려는 없을 것 같다. 오르막길을 고집하면 옛 성터이자 정상에 이를 것이기 때문이다.
▼ 그런데도 우리 부부는 길을 잃고 말았다. 성채로 오르는 문을 놓쳐버린 탓에 성곽(비잔틴양식이라고 했다) 아래를 한참이나 헤매고 다녔다. 참고로 그리스어로 피르고스(Pirgos)는 ‘Tower’를 의미한다. 중세 때 바닷가에서 멀리 떨어진 산비탈에 지어졌는데, 처음에는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었다고 한다. 외세의 침략에 대비한 방어기지였던 셈이다. 그러다 해적의 위협이 사라지면서 성벽 바깥에도 마을이 형성 현재의 모습을 갖게 되었단다.
▼ 길을 잘못 들어선 탓에 성곽을 반 바퀴나 돌았다. 인적이 뚝 끊긴 길은 오랫동안 방치된 성채의 아래로 위태롭게 나있다. 하지만 그게 더 좋은 결과를 가져다주었다. 새옹지마(塞翁之馬)라고나 할까? 정규 탐방로에서는 상상조차 못할 특이한 풍경들을 눈에 담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 요리조리 헤매다보면 암굴처럼 생긴 공간을 지나기도 한다. 주택의 아래로 난 통로가 영락없는 ‘굴다리’다.
▼ 벼랑에 기대듯, 아니 계단을 쌓아올리듯 지어놓은 주택은 하나같이 텅 비어있다. 기웃거려보니 텅 빈 공간에 틀만 남은 창문만 덩그러니 남아있다. 오래 전에 폐허가 되었다는 얘기일 것이다.
▼ 탁 트인 전망도 이 구간의 볼거리다. 산토리니의 북서쪽 끝자락에 들어앉은 이아마을이 한눈에 쏙 들어온다. 왼편에 있는 섬은 ‘티라시아’일 것이다.
▼ 들녘으로 이루어진 동쪽 해안도 눈에 들어온다. 그 너머의 섬은 ‘Anafi’일 것이다.
▼ 한참을 헤매다가 반대편으로 내려오니 관광객들이 보인다. 그리고 그들의 뒤를 쫓아 성채로 올라갔다.
▼ 옛 냄새를 폴폴 풍기는 건물이 눈에 띈다. 맞다. 안내책자는 피르고스의 골목길을 걷다보면 마을의 역사만큼이나 오래 묵은 건축물들을 만날 수 있다고 했다. ‘르네상스’ 양식으로 지어진 저 건물도 그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 ‘성 니콜라오스 성당(Agios Nikolaos)’이라고 한다. 1660년에 지어진 지붕이 돔형인 바실리카이며, 성당 입구의 빗돌은 산토리니 섬의 ‘전쟁 기념비’라고 했다. 그건 그렇고 이 성당은 길 찾기에 매우 중요한 포인트이다. 성당 부근에 성채 안으로 들어가는 문이 있기 때문이다.
▼ 피르고스의 성채는 15세기에 세워진 산토리니의 다섯 성채 중 하나이다. 이 문은 성으로 들어가는 유일한 통로인데, 외부의 침입이 있을 경우 문을 닫아 주민들을 보호했다.
▼ 피르고스는 산토리니에서 가장 오래된 거주지였고, 1980년까지는 산토리니의 행정 수도였다. 그래선지 눈에 들어오는 건물들은 하나같이 낡았다. 아니 정상 어림은 오래전부터 사람이 살지 않은 듯 텅텅 비어있었다. 덕분에 골목을 걷다보면 중세시대로 시간여행을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 마을 꼭대기에는 ‘카스텔리 성(Kasteli castle)’이 있다. 아니 그 터만 덩그러니 남았다. 성은 15세기 후반 베네치아인들이 당시 지중해에 만연했던 해적들로부터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 건설했다고 전해진다. 그게 세월이 흐르면서 그 필요성이 소멸됐고, 이제는 폐허로 남아 관광객들의 눈요깃감이 되어준다.
▼ 정상의 높이는 기껏해야 350m쯤 된다고 했다. 하지만 산토리니에서 가장 높은 곳 중 하나란다. 덕분에 산토리니의 모든 방향을 파노라마처럼 둘러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일단 사진부터 찍고 보자. 여행이란 게 본디 ‘왔노라! 보았노라! 그리고 찍었노라!’가 아니겠는가.
▼ 툭 트인 조망은 산토리니의 칼데라(caldera)를 여과 없이 보여준다. 그 난간에 피라마을이 걸터앉았다. 남쪽 맨 끄트머리에는 ‘아크로티리’마을이 있다. 땅 속에 파묻혀있던 유적지가 인근에서 발견됐고, 이를 유료 박물관으로 만들어 관광객들에게 개방하고 있다.
▼ 시선을 오른쪽, 즉 산토리니의 서북단 끄트머리로 옮기면. 선셋으로 유명한 이아마을이 얼굴을 내민다.
▼ 반대편, 동쪽해안은 광활하지는 않지만 평야지대다. 그래선지 공항이 들어서있고, 꽈리 튼 포도나무를 심어놓은 들녘도 눈에 들어온다.
▼ 정상에는 ‘세인트 조지 성당(Saint George Church)’이 있었다. 1680년에 지어진 아치형 바실리카로 예언자 엘리아스(Elias)의 수도원에 소속된 성당이라고 한다. 하나 더, 교회 입구에는 ‘Collection of icons and ecclesiastical objects of Pyrgos’라는 팻말이 걸려있었다. 성당 내부에 이콘 및 성물 컬렉션이 열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 인기척이 없어 안으로 들어가지는 않았다. 그 아쉬움은 입구의 예수님을 안은 성모상으로 대신하기로 했다.
▼ 정상의 광장은 ‘카페 보르타고(Botargo)’가 야외 홀로 이용하고 있었다.
▼ 피르고스도 눈만 들면 교회다. 이 마을에는 48개의 교회가 있다고 했다. 그것도 모두가 정교회란다. 하지만 대부분의 교회는 내부를 공개하지 않는다고 했다. 가족교회이기 때문이라는데 맞는지는 모르겠다.
▼ 주차장으로 되돌아오니 안내판 하나가 눈에 띈다. 피르고스를 중심으로 주변을 둘러볼 수 있는 하이킹코스가 개설되어 있는 모양이다.
▼ 그리스 와인은 신화에 등장할 정도로 역사가 깊다. 특히 이곳 산토리니의 와인은 세계적으로 명성이 높다. 그러니 어찌 와이너리 하나쯤 들러보지 않을 수 있겠는가. 산토리니의 포도재배 역사는 기원전 약 120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토착 품종인 아시리티코(Assyritiko) 백포도가 재배되는데, 이로부터 얻어지는 와인은 강한 시트러스 향을 특징으로 한다.
▼ 산토리니의 와이너리들은 대부분 시음을 포함한 투어를 진행하므로, 제조 과정과 함께 신선한 와인을 맛볼 수 있다. 그렇게 해서 찾은 곳이 ‘쿠초얀노풀로스 와이너리’. 4대에 걸쳐 와인을 제조하고 있는 쿠초얀노풀로스 가문의 와이너리로, 산토리니의 유명 와이너리답게 이곳도 역시 부설 박물관을 운영하고 있었다.
▼ 마당에는 와인생산에 사용되는 각종 기자재들을 전시해 놓았다. 덩치가 크다보니 박물관 안으로 들어가지 못했던 모양이다.
▼ 박물관으로 안내해주는 저 조형물은 대체 누구를 형상화한 것일까? 포도주의 신 ‘디오니소스’여야 맞을 것 같은데, 하반신은 말이고 상반신만 인간인 ‘켄타우로스’를 닮았다. 신화 속 켄타우로스는 포도주를 마셨을 경우 엄청나게 취하는 것으로 나오던데...
▼ 박물관은 와인을 저장하던 지하 8m 아래 동굴에 만들어 놓았다. 1660년부터 1970년까지 300년간 와인 저장고로 사용하던 동굴에 포도주 제조과정의 단계와 기계류들을 연대순으로 전시했다.
▼ 미로처럼 얽힌 동굴을 걸으며 산토리니 와인에 대해 알아간다. 산토리니 와인의 역사와 재배업자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도록 각종 전시물을 배치했다.
▼ 산토리니 와인을 대표하는 ‘빈산토(Vinsanto)’를 담았던 통인가 보다. 산토리니 주민들은 수천 년 전부터 만들어왔던 전통방식을 재현해냈다. 화이트와인을 만드는 ‘아씨리티코(Assyrtiko)’ 품종의 포도를 바로 수확하지 않고 2주 정도 햇볕에 더 노출시켰다가 당도가 훨씬 높아졌을 때 수확한단다. 참고로 빈산토는 섬의 이름인 산토(Santo)와 와인이란 뜻의 이탈리아어 ‘빈(Vin)’이 합성됐다. 산토리니에서 생산된 와인이 세계적 명성을 떨칠 때 원산지를 표시하기 위해 포장지에 적었는데, 이게 와인의 이름으로 굳어졌다.
▼ 농원의 쟁기질, 포도나무 가지치기, 과실 수확, 포도 밟기 등 제조과정을 24개의 과정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한국어를 포함한 14개의 언어로 자동음성 안내를 해주는 번역기도 제공된다.
▼ 와이너리는 포도를 재배하고, 그 수확물로 와인을 만드는 곳이다. 그 와인은 마트나 카페로 판매된다. 하나의 기업인 셈이다. 그러니 이에 대한 기록은 필수, 박물관은 이때 생긴 기록물들까지 전시하고 있었다.
▼ 이곳은 정교회의 나라. 와이너리를 이끌어온 조상들의 사진과 함께 성화가 벽에 걸려 있었다.
▼ 박물관 투어가 끝나면 20여 종류의 와인이 진열된 시음장으로 안내된다. 하지만 시음은 4가지 종류만 제공된다.
▼ 매장에서의 와인 구매로 투어의 마지막을 장식함은 물론이다. 참고로 산토리니 와인은 한때 세계적인 명성을 얻기도 했었다. 지금은 프랑스나 이탈리아에 밀려 지역 특산품쯤으로 취급되지만, 수천 년 전부터 빚어왔다는 전통 와인에 대한 산토리니 주민들의 자부심은 대단하다고 했다.
▼ 밖으로 나오면 포도밭, 이곳에서 우린 산토리니 특유의 포도나무를 만날 수 있다. 하지만 이제껏 보아온 선입견은 떨쳐버려야 한다. 포도나무의 높이가 무릎에도 차지 않을 정도인데, 그게 또 위나 옆으로 자라는 게 아니라 큰 새의 둥지처럼 원형으로 말아놓았기 때문이다. 이는 거친 바람과 강한 햇빛으로부터의 수분증발을 막기 위해 만들어낸 독특한 가지치기 방식(‘Koulara’ 재배법)으로 인해 생긴 형상이라고 한다.
▼ 와이너리를 빠져나오다 만난 꽃이 하도 예뻐서 카메라에 담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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