곱돌산(滑石山, 215m)-퇴뫼산(堆山, 372m)

 

여행일 : ‘21. 1. 24(일)

소재지 : 경기도 남양주시 퇴계원읍과 진접읍. 별내동, 별내면 일원

산행코스 : 퇴계원역(2번 출구)→216.5m봉→곱돌산→197.5m봉→전두치고개→성터→퇴뫼산→옛성산→잣고개→에코랜드→별내면사무소(소요시간 : 약 11km/ 3시간 20분)

 

함께한 사람들 : 집사람과 함께

 

특징 : 남양주시는 1995년의 전국행정구역개편 때 남양주군이 미금시와 통합하여 도농통합시라는 새로운 형태로 출발했다. 어깨를 맞대고 있는 서울시의 교외화 현상으로 인한 인구가 증가로 급격한 도시화 현상을 겪고 있지만, 총면적의 70%가 아직도 산림이라는 또 다른 특징도 갖고 있다. 예봉산, 운길산, 천마산, 문안산 등 등산객들이 즐겨 찾는 산들을 많이 갖고 있는 이유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유명세를 띠고 있는 산들에 밀려 관심에서 멀어져있지만 남양주에는 나지막한 산들이 수없이 많다. 오늘 찾은 곱돌산과 퇴뫼산도 그 가운데 하나라고 보면 되겠다. 해발이 400m에도 못 미치는 나지막한 산이지만 지자체에서 도심공원처럼 잘 가꾸어 놓은 덕분에 산책삼아 걷기에 딱 좋다. 다만 탐방객들이 하도 많아 산행이 끝날 때까지 마스크를 벗지 못하는 불편은 있었다.

 

▼ 들머리는 경춘선 전철 퇴계원역(남양주시 퇴계원읍 퇴계원리 221-3)

코로나-19의 2.5단계 격상과 함께 문을 닫아걸었던 ‘헬스장’이 무려 6주 만에 다시 문을 열었다. 그러니 체육관에 가는 하루하루가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다. 거기다 50평도 넘는 널찍한 공간인데도 운동하는 사람은 기껏해야 대여섯 명이 전부이니 코로나의 감염을 걱정할 필요도 없지 않겠는가. 월요일에서 토요일까지 6일을 하루도 빼먹지 않고 나갔던 이유이다. 그러다 문득 글 쓰는 소일꺼리가 없어졌다는 것을 알게 됐다. 지난 주말에 다녀온 ‘청우산’의 원고를 어제 저녁에 끝마쳤기 때문이다. 그래서 온라인으로 주일예배를 마친 집사람을 채근해 부랴부랴 집을 나섰고, 20~30분 간격으로 운행하는 전철을 이용해 이곳 퇴계원역까지 왔다.

▼ 퇴계원역 ‘2번 출구’로 빠져나와 ‘강남아파트’ 단지의 사잇길로 들어서면서 트레킹이 시작된다. 첫 번째 삼거리에서 왼편으로 나가면 4차선 도로인 ‘퇴계원로’가 나온다. 이때 길 건너에 있는 ‘별내농협’을 보았다면 제대로 길을 찾은 셈이다.

▼ 일단은 횡단보도를 건넌다. 그리고는 북쪽 방향. 그러니까 별내농협이 위치한 방향으로 100m 조금 못되게 걷다보면 퇴계원초등학교와 퇴계원중학교의 이정표가 눈에 띈다. 이정표가 지시하는 대로 들어가면 잠시 후 ‘퇴계원초등학교’를 마주하게 된다. 퇴계원중학교는 건물의 뒷면만을 눈에 담을 수 있었다. 퇴계원역에서 초등학교까지는 6분 정도가 걸렸다.

▼ 초등학교를 오른편에 끼고 돌자 길이 둘로 나뉜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다. 두 길은 ‘퇴계원성당’ 앞에서 또 다시 합쳐지기 때문이다. 참고로 우리 부부는 성당에서 매달아놓은 이정표가 지시하는 방향을 따랐다.

▼ 성당에서 50m쯤 더 들어가면 흙먼지 털이기까지 갖춘 등산로 입구가 나온다. 이곳에 이정표(곱돌산 정상 2.4㎞/ 마을회관 50m)와 함께 ‘등산로 종합안내도’가 세워져 있으니 한번쯤 살펴보고 가자. 퇴뫼산을 오르는 방법은 네 가지라고 한다. 그중 ‘1코스(5.5㎞)’를 가장 많이 이용하는데 퇴계원2리 마을회관에서 출발해 곱돌산을 거쳐 퇴뫼산에 이르는 코스이다. 2코스(3.1㎞)와 3코스(2.2㎞), 4코스(1.6㎞)는 각각 용암리와 별내면 행정타운, 대궐교에서 출발한단다. 하지만 막상 산행을 해보니 정상으로 연결되는 등산로들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었다.

▼ 50m쯤 더 들어간 곳에서 탐방로는 산자락으로 붙는다. 왼편은 널따란 과수원이다. 농원의 이름인 듯 지성원(志誠苑)이라는 표지석이 세워져 있었다. 참!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최근의 세태를 체감할 수 있는 현수막도 눈에 띄었다. 이젠 산에서도 마스크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는 얘기일 것이다.

▼ 농원의 끄트머리쯤(이정표 : 곱돌산 정상→ 2.16㎞/ 마을회관↓ 260m)에서 탐방로는 이제 산속으로 파고든다. 그리곤 통나무로 놓은 예쁜 계단을 따라 산을 오른다.

▼ 잠시 후 올라선 지능선(이정표 : 곱돌산← 2.09㎞/ 퇴계원4리→ 0.6㎞/ 마을회관↓ 0.36㎞)에서 왼편으로 방향을 틀자 곧이어 주능선(이정표 : 곱돌산→ 2.03㎞/ 극동아파트← 1.2㎞/ 마을회관↓ 0.42㎞)을 만난다. 쉼터로 조성된 곳이기도 하다.

▼ 오르내림이 느껴지지 않는 능선을 따라 8분쯤 걷자 이번에는 사거리(이정표 : 곱돌산↑ 1.71㎞/ 약수터← 0.2㎞/ 군관사→ 0.47㎞/ 마을회관↓ 0.68㎞)이다. 이렇게 자주 갈림길을 만나게 되는 것은 곱돌산. 아니 근교의 산들이 갖고 있는 특징이라 하겠다. 산자락 곳곳에 아파트단지가 들어서 있으니 산책길이 나지 않고 어찌 배겨내겠는가.

▼ 탐방로 곳곳에는 ‘걷기코스’라고 적힌 푯말도 세워져 있었다. 그런데 방향표시 밑에 적힌 숫자가 좀 애매하다. 곱돌산의 정상이랄 수 있는 헬기장까지의 남은 거리가 1.71㎞ 밖에 되지 않는데도 푯말에는 3.3㎞로 적혀있기 때문이다. 어딘지 모를 출발지를 기준으로 삼은 거리인지도 모르겠다.

▼ 소나무 숲속을 헤집으며 난 탐방로는 도심의 산책로보다도 더 낫다. 우선 경사를 거의 느낄 수 없을 만큼 능선이 완만하다. 거기다 일행끼리 얘기를 나누며 걸어도 될 만큼 폭도 널찍하다. 그뿐만이 아니다. 폭신폭신한 흙길에는 야자매트까지 깔아 질퍽거릴 염려도 없애버렸다. 산책코스로는 이만한 곳도 없겠다.

▼ 6분쯤 더 걷자 ‘160.5m봉’. 정자가 있던 봉우리이다. 하지만 지금은 공터로 남아있을 뿐이다. 파고라 모양의 정자를 짓는 모양인데, 또 어떤 모습으로 등산객들을 맞을지 모르겠다. 참! 이곳으로 오는 도중 주공아파트 갈림길(이정표 : 곱돌산↑ 1.44㎞/ 주공아파트→ 0.6㎞/ 마을회관↓ 0.97㎞)을 지나기도 했다.

▼ 색다른 푯말이 보이기에 카메라에 담아봤다. ‘누구나 걷고 싶은 길. 가꾸는 사람들’이란 제목 아래에 구간표시와 함께 관리하고 있는 단체의 이름을 적었다. 이곳 곱돌산 탐방로를 몇 개의 구간으로 나눈 다음. 관할지역의 단체들이 책임지고 가꾸어오고 있다는 얘기일 것이다.

▼ 피톤치드로 넘치는 소나무 숲속을 8분쯤 더 걷자 또 다른 삼거리(이정표 : 곱돌산↑ 1.05㎞/ 퇴계원8리→ 0.75㎞/ 마을회관↓ 1.36㎞)가 길손을 맞는다. 이곳에는 삼각점이 설치되어 있었으나 지리좌표 등의 내력은 알 수가 없었다.

▼ 이제 탐방로는 천주교 묘역을 왼쪽 옆구리에 끼고 이어진다. 그런데 큰 묘석에 큰 봉분을 한 묘지들도 꽤 보인다. 묘표를 보니 그 내력이 상당하다. 유력 인사들은 죽어서까지 호사를 누리나보다.

▼ 묘역 덕분에 왼편으로 시야가 활짝 열린다. 별내신도시 너머로 불암산과 수락산. 그리고 그 뒤에서 도봉산과 북한산이 고개를 내미는데 이게 달력에서나 볼 법한 풍경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그것도 잘 그린 그림으로 말이다.

▼ 중말사거리로 연결되는 삼거리(이정표 : 곱돌산↑ 0.59㎞/ 중말사거리← 1.05㎞/ 퇴계원공동묘지↓ 2.32㎞)를 지나자 제법 가파른 오르막길이 시작된다. 그리고 그 끄트머리에서 산불감시초소를 만났다. 퇴계원8리 갈림길에서 16분쯤 되는 지점에 위치한 높이 216.5m의 산봉우리인데 인데, 이곳에도 삼각점(성동 303)이 설치되어 있다.

▼ 삼각점을 살펴보다가 ‘배하사’란 낯익은 이름을 발견했다. ‘금덕산’이란 정상표지판을 매달아 놓은 이가 바로 배하사인 것이다. 오지의 산을 찾아다니던 시절부터 알고 지내는 산꾼인데 이젠 정상표지판까지 설치하고 다니는 모양이다. 하지만 그가 적어놓은 ‘금덕산’이란 지명은 근거를 찾아볼 수가 없었다.

▼ 탐방로는 또 다시 딱 걷기 좋게 변한다. 소나무가 참나무로 바뀐 것 빼고는 ‘216.5m봉’ 이전과 똑 같다. 콧노래라도 부르며 걷기에 딱 좋은 구간이라는 얘기이다.

▼ 그렇게 5분쯤 걸으면 삼거리가 나온다. 그런데 이정표(곱돌산→ 0.1㎞/ 퇴뫼산← 3,2㎞/ 마을회관↓ 2.31㎞)의 거리표시가 좀 이상하다. 삼거리와 맞물려 있는 봉우리가 ‘곱돌산’의 정상이 분명한데도 이정표는 100m를 더 걸어야 한다고 적혀있는 것이다. 아무튼 삼거리 근처의 나무계단을 오르자 널따란 헬기장이 길손을 맞는다. 곱돌산의 정상이다. 하지만 정상표지석은 보이지 않는다. 퇴계원역에서 이곳까지는 1시간 5분이 걸렸다.

▼ 헬기장에서의 조망은 뛰어나다. 오남읍과 진접읍. 그리고 별내면 일대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데, 다만 웃자란 잡목들이 그 아랫도리를 잘라버리는 게 아쉬운 점이다.

▼ 헬기장에서 내려와 이정표가 지시하고 있는 ‘곱돌산 정상’으로 진행해봤다. 그러자 갖가지 운동기구들을 갖춘 체육공원이 나타난다. 벤치는 물론이고 팔각정까지 지어놓아 인근 주민들의 쉼터를 겸하도록 했다.

▼ 그리고 그 끄트머리에서 곱돌산의 정상표지석을 만났다. 일부러 쌓아올린 듯한 작은 봉우리 위에 작고 아담한 정상석을 세워놓은 것이다. 휑한 느낌의 헬기장보다는 해발은 조금 낮지만 산봉우리 느낌의 이곳이 한결 더 풍취가 있었던 모양이다. 참고로 ‘곱돌산’이란 지명은 옛날 이곳에 곱돌을 캐는 광산이 있었다는 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곱돌이란 ‘활석(滑石)’을 뜻하는 우리말이다. 납석 또는 각섬석으로도 불리는 곱돌은 입자가 치밀하고 단단하여 불에도 잘 견디며, 철분이 섞이지 않아서 쉽게 깨지지도 않고 알맞게 물러서 여러 가지 모양으로 깎을 수가 있어 가공이 쉽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도장재(印財)나 조각 재료, 내화벽돌, 타일의 재료로 많이 사용된다. 한때는 독이 없다고 해서 돌솥이나 고기를 굽는 불판으로도 많이 사용되기도 했었다.

▼ 데크로 만든 광장도 보인다. 인근 마을에서 올라온 듯한 사람들이 꽤 많이 운동을 하거나 쉬고 있었다. 인근 마을이 제법 크다는 증거일 것이다. 아니 고급 소재인 활석광산이 이곳에 있었다면 오래전부터 큰 마을이 형성되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 헬기장 아래 삼거리로 되돌아가 이번에는 퇴뫼산으로 향한다. 길이 너른데다 길가에 교통호까지 파여 있는 것으로 보아 군사도로가 아닐까 싶다.

▼ 군사도로임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이 이번에는 벙커까지 나타난다. 탐방로는 이곳에서 좌측으로 흐르는 군사도로와 헤어져 북쪽 방향의 능선을 탄다. 들머리에 이정표(퇴뫼산 2.88㎞/ 곱돌산 0.42㎞)가 세워져 있으니 길이 헷갈릴 일은 없겠다.

▼ 이후부터 탐방로는 오솔길 수준으로 작아진다. 그렇다고 걱정할 필요는 없다. 지자체에서 길을 잘 닦아놓았기 때문이다. 산비탈에 난간을 설치했는가 하면 조금이라도 가파를라치면 어김없이 계단을 놓았다.

▼ 이 구간의 특징은 유난히도 많은 묘들이 들어서 있다는 점이다. 그만큼 풍수지리가 뛰어나다는 증거일 것이다. 하긴 이 정도로 햇빛이 잘 드니 어찌 명당으로 꼽히지 않을 수 있겠는가. 거기다 오남읍과 진접읍 일대의 풍경이 한눈에 쏙 들어오는 조망까지 겹치고 있지 아니한가.

▼ 고개라도 돌릴라치면 이번에는 국사봉(國賜峰)이 눈앞으로 성큼 다가온다. 국사봉은 수락산에서 흘러나간 산줄기로 해발 331.3m인 주봉을 북쪽에 두고 남쪽으로 310봉과, 311.4봉, 190.5봉 등 4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다. 국사봉이란 이름은 조선 태조의 개국공신인 충경공(忠景公 柳亮)에게 이 산을 사패지(賜牌地)로 하사했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전해진다.

▼ 이곳도 역시 소나무가 많은 편이다. 완만한 능선 길에 솔향까지 가득하니 가족 산행지로 이만한 곳도 없겠다. 도란도란 묵은 얘기라도 나누다보면 쌓여있을지도 모르는 앙금 정도는 금방 털어낼 수 있지 않겠는가.

▼ 그렇게 25분쯤 걷자 ‘197.5m봉’에 올라선다. 물론 벙커 앞 삼거리에서부터 걸린 시간이다. 송전탑이 괴물처럼 버티고 있는 이곳에도 삼각점(성동 414)이 설치되어 있었다. 이런 삼각점은 이후로도 하나 더 만나게 된다. 곱돌산과 퇴뫼산이 400m에도 못 미치는 작은 산들이지만 지리좌표 상으로는 매우 중요하다는 증거가 아닐까 싶다.

▼ 잠시 후 탐방로는 ‘전두치 고개’로 내려선다. 이정표(퇴뫼산↑ 1.8㎞/ 내곡리→ 1.4㎞/ 광전리← 1.5㎞/ 곱돌산↓ 1.5㎞)는 이곳이 내곡리(진접읍)와 광전리(별내면)를 잇는 고갯마루라는 것을 알려준다. 하지만 이 고갯마루가 이름을 빌려왔다는 ‘전두치 마을’이 어디를 지칭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 기분 좋은 산길은 이후로도 계속된다. 다만 오르내림의 경사가 조금 가팔라졌을 따름이다. 하지만 곳곳에 나무계단을 만들어놓아 버겁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 ‘김(金)’이라고 적힌 석주가 심심찮게 보이기에 카메라에 담아봤다. 김씨 문중의 산임을 나타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 전도치고개에서 15분 남짓 더 걷자 또 다른 안부사거리가 나온다. 이정표(퇴뫼산↑ 1.03㎞/ 내곡리→ 1.82㎞/ 광전리← 1.1㎞/ 곱돌산↓ 2.27㎞)는 이곳 역시 내곡리와 광전리를 잇는 또 다른 고갯마루임을 알려준다.

▼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많은데 돌탑 하나 없겠는가. 오가는 사람들이 던져놓았을 돌들이 모여 어느덧 돌탑의 형태를 갖추었다. 그네들의 간절한 염원을 담고서 말이다.

▼ 퇴뫼산에 가까워지자 편의시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벤치에 평상까지 갖춘 널따란 쉼터도 그중 하나이다. 정상 근처에는 쉼터를 겸한 체육공원도 만들어져 있었다.

▼ 언제부턴가 산길이 가팔라졌다. 아니 많이 가파르다. 명색이 정상인지라 그냥 손님을 맞기가 민망했던 모양이다.

▼ 그렇게 20분쯤 올라서자 산비탈에 기대 듯 쌓아올린 석축이 보인다. ‘퇴뫼산성’일 것이다. 퇴뫼산성은 퇴뫼산의 정상부와 남쪽의 363.6m봉을 연결하고 서쪽으로 산복을 감싸 안으며 구축한 사모봉형(紗帽峰形 : 사모관대의 사모처럼 뒷면은 깎아지른 절벽으로 험준한 산악 지형이고 앞면은 완만한 협곡 지형)의 석축산성이었다고 한다. 형태는 남서쪽을 장변으로 하는 삼각형을 이루고 있으며, 성의 전체 둘레는 625m이다. 하지만 대부분 훼손돼 북서쪽 일부 성벽만 남아있을 뿐이다. 산성은 출토된 유물들로 보아 한강유역의 아차산성이나 호암산성보다 조금 늦은 통일신라 후기에 쌓아졌다고 봐야 한다. 고려시대에도 일시적으로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단다.

▼ 성터를 오른편에 끼고 돌아서자 널따란 분지(이정표 : 퇴뫼산 정상 0.17㎞/ 곱돌산 정상 3.14㎞)가 나온다. 옛날 이곳에는 성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건물들이 들어서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잡초만 무성하다. ‘어즈버 태평연월이 꿈이런가 하노라’. 야은(冶隱) 선생도 이런 상황을 접하는 느낌으로 시를 지었을지도 모르겠다.

▼ 분지의 가장자리. 커다란 바위 곁에 삼각점(성동 304)이 설치되어 있었다. 삼각점은 경도. 위도, 표고 등의 지리좌표를 측정하는 기준점이다. 따라서 인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설치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도 372m인 정상을 놓아두고 그보다 낮은 363m 지점에 설치했으니 이상한 일이라 하겠다.

▼ 그게 못마땅했던지 배하사는 이곳에다 ‘정상표지판’을 떡하니 매달아 놓았다. 정상이라고 해서 가장 높은 곳만을 주장할 필요는 없다는 얘기일 것이다.

▼ 삼각점에서 정상은 지척이다. 체육공원을 겸한 쉼터를 지나자마자 ‘퇴뫼산’의 정상에 올라선다. 먼 옛날 장대(將臺)가 있었음직한 정상은 이제 무인산불감시탑이 주인 노릇을 하고 있다. 정상표지석은 감시탑 앞에 세워놓았다. 김문암씨의 정상표지판이 매달려있는 걸로 보아 세운지는 얼마 되지 않는 모양이다.

▼ 한국지명유래집에서는 퇴뫼산(堆山 혹은 堆峯)이 어떤 힘센 장사가 흙을 날라다 쌓은 산이란 의미를 담고 있다고 전한다. 어학적으로 접근하여 '갈라져 나온 산'이라는 데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다. ‘퇴’는 결채, 행랑(廊)을 뜻하는 우리말로 본채의 앞뒤나 좌우에 달아 지은 반 칸 너비 정도의 작은 칸실을 뜻한다. 그러니 ‘퇴뫼’란 높은 산에서 줄기가 뻗어 나와 독립적인 봉우리를 이룬 산이 된다는 것이다. 퇴뫼산이 처한 상황과 딱 맞아 떨어진다고 볼 수도 있겠다. 이와는 별개로 태봉마을 동쪽에 위치한다고 해서 '태봉(胎峯)'이라 부른다는 것도 기억해 두자. 아니 태(胎)를 묻은 곳이 ‘태봉(胎峰)’이니 이곳에 어느 왕자의 태가 묻혀있을지도 모르겠다.

▼ 정상에서의 조망도 훌륭한 편이다. 그래선지 조망이 트이는 곳에 벤치까지 놓아두었다. 여유를 갖고 조망을 즐겨보라는 모양이다. 건너편의 국사봉은 물론이고 불암산과 수락산, 그리고 북한산과 도봉산까지 한눈에 쏙 들어오는 명당자리이다.

▼ 이제 하산할 일만 남았다. 수리봉(536.8m)과 용암산(476.9m)으로 이어지는 북쪽 능선을 따르면 된다. 탐방로는 많이 가파르다. 그렇다고 걱정할 필요까지는 없다. 침목계단을 놓고 밧줄난간까지 매어놓아서 어렵지 않게 내려설 수 있기 때문이다.

▼ 내려오는 도중에는 자작나무 숲도 만날 수 있다. 하얀색 일색인 저 숲에 눈까지 쌓였다면 금상첨화일 텐데. 문득 러시아의 톰스크 지역에서 만났던 자작나무 숲이 생각난다. 7년쯤 전인가 현지 교수의 초청을 받고 그의 산막에서 하룻밤을 머물렀었는데 순백의 풍경을 연출하던 숲은 온통 자작나무 일색인데다 광활하기까지 했다.

▼ 길가 나무기둥에 곤충의 허물이 매달려 있었다. 생김새로 보아 매미가 아닐까 싶다. 그렇다면 매미란 놈이 ‘5가지 덕(五德)’의 본채를 허물로 남겨놓고 떠나간 셈이다. 이왕에 시작했으니 그 다섯 가지의 덕도 알아보자. 머리에 홈처럼 파인 줄이 지혜를 상징하는 갓끈과 비슷하니 첫째 덕목인 '문(文)'이요, 나무의 수액만을 먹고 자라 잡것이 섞이지 않았으니 둘째 덕목인 '청(淸)'이다. 다른 곡식을 축내지 않으므로 염치가 있으니 셋째 덕목이 '염(廉)'이고, 살 집을 따로 짓지 않아 검소하니 '검(儉)'이 그 넷째 덕목, 계절에 맞춰 오고 가니 믿음이 있기에 다섯째 덕목인 '신(信)'이 되는 것이다.

▼ 잘 가꾼 탐방로를 따라 15분쯤 내려서자 삼거리(퇴뫼산 0.61㎞)가 나온다. 그리고 이후부터는 ‘광릉숲 생물권보전지역 둘레길’을 따라 별내면사무소로 내려가면 된다. 참! 삼거리에 세워진 또 다른 이정표, 즉 ‘광릉숲 생물권보전지역 둘레길’의 1코스인 옛사랑길에서 세운 이정표(진접중학교 11.07㎞/ 별내면사무소 1.98㎞)를 보다가 문득 ‘옛성산’을 그냥 지나쳐버렸다는 것을 알아냈다. 옛성산의 정상이 정상표지석은 물론이고 그곳이 정상일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는 아무런 특징이 없었다는 얘기일 것이다. 하긴 오죽했으면 퇴뫼산과 하나로 취급하고 있겠는가.

▼ 길가 바위가 어디선가 본 듯해서 카메라에 담아봤다. 경주에 있는 단석산(斷石山)이란 이름을 낳게 한 ’단석(斷石)‘이다. 김유신이 난승(難勝)이라는 신인(神人)으로부터 얻은 신검(神劍)으로 내리쳤다는 그 바위 말이다. 마치 칼로 자른 듯이 반듯하게 둘로 쪼개진 것이 단석산의 바위와 다를 게 하나도 없어 보이는 것이다. 스토리텔링이라고 하나 붙여놓는다면 또 하나의 명품 바위로 탄생될 게 틀림없다.

▼ 탐방로는 이제 ‘광릉숲 둘레길’을 따른다. 정식 명칭은 ‘광릉숲 생물권보전지역 둘레길’. 여기서 말하는 ‘광릉숲 생물권보전지역’은 지난 2010년 유네스코로부터 국내에서 4번째로 지정받은 ‘생물권보전지역’이다. 생태·역사·문화·과학적 가치를 인정받아 생물 다양성의 보전과 지역사회의 지속가능한 이용을 조화시킬 수 있다고 평가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둘레길은 광릉숲과 그 주변의 숲들을 헤집으며 돌아다닐 수 있도록 내놓았다고 보면 되겠다. 그 가운데 첫 번째 구간인 ‘옛사랑길(별내면사무소↔진접중학교)’을 지금 걷고 있는 것이다.

▼ 잠시 후 탐방로는 ‘잣고개’에 내려선다. 청학리와 내각리를 잇는 고갯마루인 잣고개는 옛날 어떤 사람이 잣 한말을 지고 가다가 고개를 넘으면서 까먹기 시작했는데, 고개를 다 넘고 보니 잣 한말을 모두 먹어치웠다는 데서 유래된 이름이라고 한다. 그만큼 고개가 길었다는 얘기일 것이다. 누군가는 대동여지도에도 이곳이 백현(柏峴, 栢峴)으로 기록되어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잣나무 백(栢)’자를 쓰고 있으니 지명의 유래와 딱 맞아 떨어진다고 하겠다.

▼ 잣고개는 이름 그대로 잣나무로 가득하다. 하늘을 가릴 정도로 울창한데 하나같이 굵다. 오래전부터 존재해왔다는 증거일 것이다. 그렇다면 ‘잣고개’라는 지명은 잣을 까먹은 것과 관련된 설보다는 잣나무가 가득한 데서 유래된 지명이라고 보는 게 옳을 수도 있겠다.

▼ 잣고개를 지난 탐방로는 곧이어 가파른 내리막길로 변한다. 그것도 속도 조절이 어려울 정도로 엄청나게 가파르다. 어쩌면 능선을 조금 더 타다가 내려섰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하긴 까짓 길을 조금 벗어났다고 해서 그게 무슨 대수겠는가. 가까운 시일 내에 걸어보려고 하는 ‘광릉숲 둘레길’의 1코스인 ‘옛사랑길을 걸을 때 확인해보면 되지 않겠는가. 거기 있는 줄도 모르고 그냥 지나쳐버린 옛성산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 가파른 내리막길이 끝나자 에코랜드가 나온다. 산과의 경계선을 따라 철망 울타리가 쳐져 있으나 문이 잠겨있지 않으니 그냥 열고 나오면 된다. 참! 들머리에 이정표(별내면사무소 1.2㎞/ 진접중학교 11.8㎞)와 함께 ’광릉숲 둘레길‘ 안내도가 세워져 있으니 한번쯤 살펴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그러다보면 ’광릉숲 둘레길‘을 걸어보겠다고 길을 나설지 누가 또 알겠는가.

▼ 탐방로는 이제 에코랜드 경내의 도로를 따른다. 아스팔트가 깔려있지만 이 길은 산책로를 겸한다. 입구에서 시작해 에코랜드를 한바퀴 돌게 되는데 총 거리는 1.8㎞에 이른다. 참! 쓰레기 적치장 너머로 보이는 마을은 ‘청학리(靑鶴里)’이다. 사람들은 청학동이라면 흔히 지리산 청학동을 떠올린다. 하지만 저 마을도 엄연히 청학동이다. 마을 뒤편의 계곡이 바로 청학동인 것. 마을 동쪽에 있는 은행나무에 청학이 살았다고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 전해진다. 참고로 저 마을에서 시작되는 등산로를 따라 수락산유원지를 지나면 수락산으로 이어진다.

▼ 에코랜드는 건설폐기물을 매립하면서 친환경적으로 처리하고 그 매립지를 공원 및 체육시설로 꾸며, 남양주의 새 명소가 된 곳이다. 수영장을 비롯해 축구장과 야구장, 풋살구장 등이 들어서 있다.

▼ 윗옷을 벗고 걸어야 했을 정도로 포근한 날씨. 하지만 아직은 엄연한 겨울이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이 엔코랜드의 명물인 인공폭포는 메말랐고, 그 앞의 연못은 꽁꽁 얼어붙었다.

▼ 에코랜드를 벗어나자 잘 꾸며진 조각공원이 길손을 맞는다. 도로가를 따라 수많은 조각품들을 마치 가로수처럼 세워놓았다. 살아있는 자연과 인간의 예술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길이라 하겠다.

▼ 산행날머리는 별내면사무소

그런 길을 5분 정도 걷다보면 ‘별내면사무소’가 나오면서 오늘 산행이 종료된다. 오늘은 총 3시간 40분이 걸렸다. 간식을 먹느라 쉬었던 시간을 감안하면 3시간 20분이 걸렸다. 선답자의 글에서 이번 코스가 11㎞라고 했으니 적당한 속도로 걸었다고 보면 되겠다.